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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마당] 귀향(歸向): 비전향 장기수 19인의 초상(이상철)

목회마당

by 제3시대 2018. 10. 1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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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歸向): 비전향 장기수 19인의 초상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어제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귀향(歸向): 비전향 장기수 19인의 초상’ 사진전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교회 박종린 선생님 사진이 비전향 장기수 19인 초상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비전향 장기수 분들이 오셔서 특별한 순서를 마련하는 날이었습니다. 열아홉 분 중 지난 8월에 한분이 돌아가셨고 어제 오셨던 분은 여섯 분이었습니다. 박종린 선생님은 몸이 불편하셔서 불참하셨습니다. 이 사진전은 경향신문 정지윤 사진기자가 기획했습니다. 얼마 전 비전향 장기수 열아 홉 분 사진이 경향신문에 실려 여론의 관심을 받은 바 있었죠. 그 사진을 크게 확대하고 그분들의 일상을 사진에 담아 지금 전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오셨던 어르신들이 모두 너무 기쁘다 하시더군요. 생전에 이렇게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사진기 앞에 서서 사진을 찍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진들이 커다랗게 확대 인화되어 전시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행복해 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30~40년 감옥에 있었고, 출소한 뒤에도 항상 미행과 감시, 불안과 공포 가운데 사셨던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조명을 비춰 빛 가운데 서게 하고, 자리를 마련하여 원 없이 말할 기회가 처음으로 허락된 것입니다.


한분씩 나와서 당신들이 지나왔던 모진 시절을 이야기하고, 북에 대한 소회를 나누고, 앞으로 남은 삶에 대한 다짐을 하고 들어가십니다. 꼭 북으로 갈 것이라는 희망 섞인 발언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서로 지나온 경험과 고통의 모양새는 달랐지만, 그분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와 사람입니다. “당에게 미안하다. 당을 실망시켰다. 당을 배반했다. 하지만 나는 당을 사랑한다, 당이 있어서 지금까지 견디었다. 당이 보고 싶다....” 그 분들에게 당은 무엇일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저는 이런 식의 이야기들, 이런 식의 강렬한 이데올로기, 교리, 도그마, 신앙고백, 지식체계를 우호적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야기하고, 해체주의를 이야기하는 제가 아닙니까. 역사에서 자행되었던 저토록 강렬한 음성들의 말로가 비극이었음을 너무나도 잘 아는 저는 확신에 저 목소리들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제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당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당이 어떤 당인지는 난 모르지만, 그 당 때문에 저분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그 당 때문에 아직까지 그 분들이 여전히 희망가운데 있다면, 그 당은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라고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박종린 선생님도 당에 대해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요새는 편찮으셔서 교회 못 나오고 계시죠. 가끔 찾아뵙는데 그때마다 수척해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심방을 가면 전에는 그래도 막걸리 한 사발은 받으셨는데 요새는 전혀 못하십니다. 그래서 저만 먹다 옵니다. 지난 봄에 선생님께 처음으로 ‘선생님, 기도해요’라고 했더니, ‘네’라고 하시더군요. 손을 잡고 기도하는데 흐느끼시더라구요. 저도 울고 선생님도 울고... 기도 끝나고 제가 ‘빨갱이도 기도하면서 우나요?’라고 농을 건넸더니 ‘신은 모르겠고 한백은 믿습니다’라고 했던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돕니다. 그럼, 한백이 당이 되는 것가요, 다음에 선생님 뵈러 갈 때 물어봐야겠습니다.

그것이 당이면 어떻고, 신이면 어떻고, 한백이면 어떻습니까. 그것이 누군가를 구원으로 이르게 한다면 우리가 믿는 신은 그 과정과 역사에 함께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믿는 신이 그 정도는 되어야죠. 박종린 선생님과 지금 살아계신 열 일곱분의 비전향 장기수 어르신들이, 꿈에도 목놓아 그리던 북으로 돌아갈 때 까지 주께서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20181007 한백교회 ‘삶의 고백’ 중에서)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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