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비평의 눈]『민중신학, 고통의 시대를 읽다』를 말하다(이상철)

비평의 눈

by 제3시대 2018. 11. 8. 15:51

본문


『민중신학, 고통의 시대를 읽다』를 말하다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1. 

심원 안병무기념사업회에서 2018년 민중신학 강좌와 민중신학 도서출판 지원 사업을 결정하였고, 그 즈음 분도출판사에서 <민중신학의 당대성>(가칭)이라는 제목으로 민중신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까지를 아우르는 서적출판에 대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출판기획위원회는 화석화된 민중신학이 아닌 현 재와 미래에도 유통 가능한 민중신학의 당대성을 드러내는 ‘오늘의 민중신학 총론’ 성격을 띤 책을 목 표로 2018년에 열리는 젊은 민중 신학자들의 월례포럼 강좌 (한국민중신학회 월레포럼, 제3시대 그리 스도교연구소 월례포럼)와 연동시켜 저술 작업을 진행하였고, 그 결과물을 여기게 담았습니다.

우선 이 책의 외형적 특징은 카톨릭 계열의 분도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필자 전원이 개신교 학자들로 구성된 채 말입니다. 어려운 가운데 용단을 내려준 출판사에 감사드리며, 이것이 한국교회 에큐메니컬 역사에서 좋은 성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책은 지금까지 나왔던 민중신학 서적들 중에서 가장 젊습니다. 대부분의 필자들이 80년대 말에서 90년대 대학을 다녔던, 혁명의 기운이 잦아들고 포스트모던이라는 광풍과 IMF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의 악령과 대면하면서 신학수업을 받고 신학적 사유를 성장시켜 갔던 필자들입니다. 70,80년대와는 다른 양상속에서 전개되는 21세기 민중들의 고통을 젊은 필자들의 새로운 지각을 통해 투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전 시대의 민중신학 서적과는 다른 시각과 감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내용상으로 본서의 특징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민중신학 다시 읽기, 다시 쓰기’입니다. 이 책이 의도하는 바는 민중신학에 대한 설명, 혹은 민중신학의 진본과 역본을 가리는 작업은 아닙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민중신학이 오늘의 구체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작동되고 유통될 수 있는가, 입니다. 민중신학에 대한 기술(記述)이 아니라, 민중신학에 대한 해석(解釋)이 본서의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민중신학 이라는 객관적 세계보다는 민중신학을 바라보는 다양한 필자들의 사유에 이 책은 오히려 주목합니다. 어쩌면 진리를 향한 과정이란 세계라는 객관적 진리가 존재함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가능함을 드러내는 것 아닐는지요. 이런 이유로 본서에서는 ‘민중신학이 무엇이다’ 라는 선언과 정의보다는 민중신학에 대한 참신한 해석과 상상에 방점을 두었습니다.

출판기획위가 마지막 단계에서 고민했던 부분은 책 제목을 정하는 것이었는데, 최종적으로 『민중신학, 고통의 시대를 읽다』 가 낙점되었습니다. 21세기 민중신학은 이데올로기가 선사하는 당위적이고 장엄한 목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던 작은 이야기들에 주목합니다. 민중신학이 여전히 동시대적이고 당대적일 수 있다면 그것은 전체로 환원될 수 없는 부분들의 편에 서기를 자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번영을 담보로 차이의 제거에 공모하는 신학이 아닌, 은폐된 차이와 모순을 세상으로 드러내는 신학! 근본적으로 사유하지만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사유의 깊이를 흠모하되 자기만의 방에만 갇히지 않는 신학! 신앙적 강박에 빠져 누군가를 교화시켜야 한다는 집착으로부터도 자유하고, 신학적 이슈와 담론을 선점하면서 상품화, 권력화하려는 세력에 맞서 분명히 “No!”를 외칠 줄 아는 신학! 그것이 바로 온갖 쭉정이 같은 신학들이 난무하는 세계 속에서 교회와 사회를 지켜냈던 신학의 참 모습이라 믿습니다. 이러한 필자들의 생각은 고통을 예각화하려는 시도로 이 책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3.

1부는 ‘민중을 말하다’라는 주제 하에서 오늘날 특별하게 부각되는 민중 현상학에 대한 부분입니다. 민중신학은 기본적으로 거대담론이라 할 수 있고, 이런 이유로 작은 이야기들은 그것에 묻혀 소외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성문제가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순양이 작심하고 민중신학이 무지하여 놓쳤던 여성의 부재상황을 해체주의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신랄하게 비판합니다(1장). 성소수자의 문제는 시대의 과제이고 요청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여전히 동성애 혐오의 매카로 군림하면서 온갖 호도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진정 그리스도교와 동성애, 성서와 성소수자는 화해할 수 없는 평생선일까요. 박지은의 글을 읽고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2장). 청년의 위기는 시대마다 늘 있어왔지만 오늘의 청년은 과거의 청년들과 달리 그들의 미래가 절망이라는 운명을 믿는 청년이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김윤동이 탄식하는 21세기 청년과 대면하는 민중신학자로 발언대에 섭니다 (3장). 제국주의적 선교정책에서 벗어나 타자를 향한 사귐과 환대로서의 선교를 제안하는 홍정호의 글은 제주 예멘 난민문제와 맞물려 21세기 민중신학적 타자 이해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합니다(4장).

2부는 ‘시대를 말하다’라는 타이틀을 달았습니다. 오늘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민중신학적 문화비평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경일은 사회구조만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안에도 은거하며 작용하는 신자유주의의 유혹 방식인 ‘혼종성’, ‘공모성’, ‘영성’을 살펴보고, 신자유주의의 유혹을 떨치기 위한 한국적 상황에서의 사회적 영성을 ‘알아차림’, ‘함께 아파함’, ‘자기비움’ 세 차원에서 모색합니다 (5장). 한국사회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갑과 을의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회적 증상이 되었습니다. 박재형이 어떻게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와 민중신학을 연결시킬지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6장). 민족의 문제와 통일의 문제는 민중신학의 고유성이기도 했으나 민중신학을 스스로 제한하는 한계이기도 했습니다. 황용연이 어떻게 양자를 염두에 두면서 남북평화체제에 대한 상상을 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7장). 포스트휴먼에 대한 논쟁에는 테크놀로지의 문제, 자본의 문제, 문화와 가치와 윤리, 그리고 종교의 문제까지가 모두 투여됩니다. 신익상의 안내를 따라 실타래처럼 얽힌 포스트휴먼에 대한 이해를 한 후에 민중신학적 대안에 대한 숙고를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8장).

3부는 민중신학의 개념어들에 대한 현대적 해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한(恨)과 고통에 대한 발견에서 민중신학이 탄생했다 할 수 있을 만큼 고통은 민중신학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정용택의 글(9장)은 ‘고통의 현상학’의 관점에서 이 질문을 다듬고 그에 대한 잠정적 답변을 제출해보려는 시도입니다. 민중신학의 ‘공(公)’ 개념은 자본주의적 탐욕에 맞설 수 있는 대항논리이자 실천강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민중신학과 경제윤리를 아우르는 최형묵은 현저한 공의 사유화에 대항하여 일어났던 촛불혁명의 맥락에서 그 의의를 재조명하고 있습니다(10장). 민중신학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주제는 ‘민중메시아’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철이 현대 좌파 철학자들의 메시아론과 민중메시아를 엮으면서 새롭게 민중메시아를 독해할 수 있는 틈을 마련합니다(11장). 민중신학자들은 성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것이 전통적 성서해석과 무엇이 달랐고 왜 특별했는지를 이영미가 친절하고도 분명하게 말해줄 것입니다(12장). 한국교회는 정신의 무능과 제도의 병폐를 떨쳐내는 종교혁명을 벌일 수 있을까요? 교회의 삶에서 예수의 에토스를 되살려 낼 수 있는 민중신학의 지혜를 듣기 원한다면, 김희헌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13장).

사전 기획 단계에서 민중신학의 지성사적 통사에 대한 부분을 훑어야 되지 않나, 라는 논의가 있었는데 민중신학의 동시대성에 더 집중하자는 취지에서 본문에서는 빠졌습니다. 하지만 민중신학이 출현하던 시절의 풍경과 그 이후 궤적에 대한 이해는 민중신학의 당대성으로 나가기 위한 전 단계이므로 그 물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사안이었습니다. 이러한 요청에 의거해 두 명의 필자를 본서로 초대하였습니다. 민중신학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이정희가 민중신학이 지녔던 근원적 문제의식을 책 중간에 선생 특유의 해박한 문체와 시적 아포리즘으로 보여줍니다. 김진호는 에필로그에서 세대론으로 품을 수 있는 민중신학의 내부와 세대론으로 품을 수 없는 민중신학의 외부를 드러냅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민중신학의 과거에 대한 회상과 현재에 대한 진단,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상상까지를 아우르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김진호는 이를 “운동의 신학”에서 “고통의 신학”이라 최종적으로 명명합니다.


4.

이제 민중신학은 지난 세기를 뒤로하고 새로운 시절을 향해 나아갑니다. 기독교가 개독교가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교회가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풍조 속에서 신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깊은 좌절과 번민에 빠지다가도, 여전히 신학함에 대한 믿음, 신학의 가치를 아끼는 의로운 사람들이 있었기에, 비틀거리지만 쓰러지지 않고 민중신학이 여기까지 왔음을 우리는 압니다. 신자유주의가 선사하는 냉소주의와 자본이 제공하는 쾌락과 욕망의 법칙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나가느라 앞으로도 우리는 지속적으로 힘겨울 것입니다. 하지만 민중신학은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과 탄식의 증언자로, 감시자로, 그리고 고발자로 남을 것입니다. 민중신학이 어떤 권위와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편견도 아집도 없는 열린 신학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 주십시오. 기억하소서. 그대가 우리의 힘입니다.



ⓒ 웹진 <제3시대>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