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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나의 환대가 아닌, 낯선 환대(강선구)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8. 11. 2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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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환대가 아닌, 낯선 환대




강선구*

 


길을 가다가 모르는 한 남자가 나에게 걸어오며 말을 붙인다. 그 남자는 몇 시간 전에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집까지 가려면 기차를 타야하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한다. 그 남자의 행색으로 보아 노숙인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며, 순간 이 사람에게 돈을 줘도 되나 고민에 빠진다. 돈을 주면, 이 남자는 정말 집까지 가는 기차표를 사는데 돈을 쓸까? 혹은 나는 이 남자에게 돈을 주면서 스스로 존재론적 우월감에 빠지지는 않을까? 예상치 않은 찰나의 순간, 나는 수많은 고민에 빠지면서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를 했고, 그로 인해 나는 그 도움을 줄 수 있는 약간의 여유가 있는 위치에 의도치 않게 놓여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의도치 않게 나는 그의 행위에 대한 선택을 해야만하며, 그로인한 결과역시 내가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아주 짧은 순간에, 나는 낯선 남자로 인해 낯선 상황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단순하게 돈을 줄지 말지는 나의 선택인 것 같기도 하지만, 엄밀히 보자면 나는 낯선 타자와 얽힌 꽤 복잡한 구조안에 놓여버렸다.

환대의 윤리로 유명한 데리다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뭐라고 조언해줄까? 환대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조건적인 환대이고, 다른 하나는 조건없는 환대이다. 조건 없는 환대란, 그 남자가 실제로 노숙인이던 아니던, 지갑을 실제로 잃어버렸던 아니던, 그런 사실들은 그 남자를 돕는 환대의 실천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환대는 나의 기준으로 설정한 한계를 환대의 조건으로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한한 타자의 요청에 대한 무조건적인 응답이다. 반면, 조건적인 환대란 현실의 사회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나의 기준으로 한계들을 설정하고, 그 한계선들을 넘지 않는 한에서만 베푸는 환대를 의미한다. 다시 앞의 상황에 적용해보면, 낯선 남자의 신원조사를 거쳐, 그 사람이 어려운 처지가 확인 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의 안전 확보가 타자의 환대보다 우선되는 조건들인 것이다. 이와같이 환대의 종류를 구분해서 설명한 데리다의 의도를 예측컨데 조건적인 환대는 나쁘고, 무조건적인 환대만 해야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데리다의 환대는,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타자와의 관계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내가 원해서 내가 선한사람이어서 타자를 환대를 한다는 게 아니다. 이미 나와 얼키고설킨 타자들과의 관계구조 때문에, 환대는 나의 선택이 아닌 피할수 없는 요청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와 타자가 함께하는 구조적 관계는, 나중심의 사고방식을 해체하고 타자를 받아들여야만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건없는 환대는 내안의 타자를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도달할 수 있기에, 불가능성으로 있는 타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건없는 환대는 조건적인 환대를 초과하면서 현존하고(exceeding within presence), 완성되지 않고 다가오는 (to come) 것이기에 둘의 관계는 꽤 긴장상태로 진행되는 구조라는 것이 데리다의 설명이다. 데리다의 환대는 주체의 도덕적 우월감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애초에 환대의 요청은 타자로 인해 발생하며, 타자의 요청에 대한 주체의 응답 역시 오롯이 혼자의 몫이 아닌 관계구조의 긴장이 더 큰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19세기, 경제공황과 산업혁명으로 인한 빈곤의 문제에 당면했던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된 자선조직협회(Charity Organization Society : COS)와 인보관운동(Settlement Movement) 조건적 환대와 무조건적 환대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자선조직협회는 자선을 효율적으로 하고, 원조의 대상을 ‘가치 있는 자’로 한정하기 위해 철저한 케이스 조사를 원칙으로 한 환대였다. 철저히 자선을 베푸는 자들의 입장에서 조건을 만족시키는 대상자의 경우에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위계적 체계였다. 반면, 비슷한 시기의 인보관 운동은 목회자들과 지식인들이 직접 빈민가로 들어가서 함께 생활했고, 일대일로 인격적인 접촉을 하면서, 그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사회 교육적 집단활동을 실시했다. 동시에 인보관 운동의 핵심가치인 우정(friendship)을 기반으로, 사회계층간의 거리감 해소를 위해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고자 했던 과정들은 인보관 운동이 무조건적인 환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소중한 사례이다. 물론 서로 다른 조건에서 살아왔던 타자들이 서로 불편을 감수하고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문화를 공유하며 우정을 쌓는 과정들 가운데 그렇게 낭만적인 일들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문제를 타자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나와 연관된 관계중심적 구조로 담지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 또한 우정과 환대라는 관계중심적 과정을 지향하고자 했던 인보관 운동의 시도자체가 해체적 주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나의 환대가 아닌 타자로인한 낯선 환대이기에, 타자와의 조건없는 진정한 관계맺음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희망해본다.


인보관 뮤직클래스(1950)




* 필자소개

현재 '목회적 삶'과 '목회자의 삶'의 경계에서 고민중에 있으며, 친구들에게는 네살 선구라 불리우고 있다. 미국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에서 종교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목사수련생 과정을 밟고있는 중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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