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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사회 기행 (신창하)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0. 1. 1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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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행

 
신창하
(이우고 1학년)  

아침 일곱 시, 열일곱 살의 소년이 납작하고 더러운 이불 위에 죽은 듯 누워 있었다. 피곤에 전 소년이 잠자리에 든 후 한 번도 뒤척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불은 처음 몸을 덮었을 적 모습 그대로였고, 소년의 머리맡에는 어젯밤 벗어놓은 옷이 허물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누구라도 가까이 다가가 소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더라면 분명 마음이 무거워졌을 것이다. 여드름이 좀 나 있긴 하지만 아직 앳된 그 얼굴은 참으로 안되어 보였다. 소년의 입은 한 일자로 굳게 닫혀 있었고, 미간은 악몽을 꾸는 듯 수시로 경련했다. 소년은 자면서도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냉기가 도는 소년의 방은 싸구려 여인숙이나 창고마냥 황량했다. 이 방은 이 집의 유일한 방이었고, 그가 이 방을 혼자 차지한 탓에 유일한 가족인 그의 할머니는 거실에 있는 그 집의 유일한 소파에서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잠자리가 불편하기는 방안이나 거실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방은 그나마 외풍이 덜했다.

자, 주위를 둘러보자. 소년의 방 한켠에는 2단 옷 행거가 있다. 2단 옷 행거는 옷이 너무 많아서 옷장에는 도무지 다 넣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나 제대로 된 옷장을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물건으로, 간편한 설치에 이사할 때 갖고 다니기도 편한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이 물건을 이용하는 고객층 중 소년은 후자에 속했기 때문에, 행거에는 코트 하나, 셔츠 두 개, 청바지 하나, 그리고 교복이 걸려있을 뿐이었다. 또 방에는 박스 두 개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손톱깎이, 전화번호부, 빨래집게, 수도세 요금 고지서, 소년의 교과서 등이 들어있었다. 마지막으로 옷 행거와 박스 사이에는 텔레비전이 놓여 있었다. 소년의 할머니가 매일 6시간씩 절대로 거르지 않고 시청하는,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그럼 이제 소년 방 탐사가 끝났다. 어항이나 컴퓨터, 핸드폰 충전기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거실이나 부엌으로 나가보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기껏해야 그릇 몇 개, 숟가락, ‘우리 주 예수는 사랑이시니’ 라고 쓰여 있는 액자 따위를 추가할 수 있을 뿐이었다.

어째서 컴퓨터가 없는가. 그것은 소년의 할머니가 컴퓨터를 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컴퓨터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고, 소년이 아무리 소리를 높여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역설해도

“아무리 들어봐도 그것은 게임기랑 하등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어. 비싼 돈 처들여서 그런 것 사려고 하지 말고 공부를 허야지.”

라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소년으로써는 미칠 노릇이었다.

어째서 핸드폰이 없는가. 그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어차피 전화를 할 사람이라고는 할머니밖에 없는데 할머니는 전화를 받지 못한다. 귀가 반쯤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그는 반 아이들 사이에서 거의 고립된 처지였다.

 

아, 드디어 소년이 눈을 떴다. 불쌍하게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방금 정말로 악몽에서 깨어난 참이기 때문이다. 그는 할머니가 죽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소파에는 할머니가 담요를 덮고 누워 있었는데, 얼굴빛이 푸르스름한 것이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더 가까이 다가갔고, 할머니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벌어진 입 사이로 얼마 남지 않은 이가 보였다. 그는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할머니....’ 하고 부르며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 순간 할머니의 몸은 풀썩하고 먼지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소년은 슬픔보다는 경악을 느꼈고, 머릿속에서는 ‘할머니가 죽은 거야! 이제 세상엔 나 혼자만 남았어.’ 란 외침이 메아리를 쳐댔다. 눈앞이 막막했다.

잠에서 깨어난 소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거실로 갔다. 할머니가 무사한지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할머니는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부엌으로 가 보았다. 그곳에도 할머니는 없었다. 넓지도 않은 집을 두리번거리던 소년은 할머니가 화장실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머쓱해진 소년은

“할머니! 나 아침 안 먹고 학교 간다! 반찬도 없고 맛도 없고 졸라 싫어 할머니 밥.”

하고 냅다 소리친 후 얼른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소년은 학교에 가면서 계속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너무나도 불안하고 답답했다. ‘정말 할머니가 죽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분명 막장이 될 것이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지금껏 해 본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잘 하는 일도 없었고, 성적은 밑바닥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비행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커서 노숙자가 되어도 다행일 것이었다. 정신없이 고민을 해 보았지만 로또 이외에는 이렇다 할 방안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래,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이제는 나도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가야지. 공부를 시작해야 해.’ 학교에 도착할 때쯤 소년은 굳게 다짐했다. 마음이 좀 놓이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수업이 시작되니 소년은 다시 암담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간만에 고개를 쳐들고 수업을 들으려고 애썼지만 선생이 하는 말도, 칠판에 휘갈기는 글도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알아듣고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놈들도 있었고,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살다 살다보니까 이금동이 수업시간에 깨 있는 걸 보는구먼, 이젠 자는 것도 지쳤나보이?”

선생이 이죽거렸다. 소년은 기분이 팍 상했다.

‘젠장, 점심시간까지만 자야지. 5교시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듣지 뭐.’

그는 다시 머리를 책상에 파묻었다.

점심시간이 끝나니 사회시간이었다. 가방에서 종이를 주섬주섬 꺼내는 아이들을 멍하니 쳐다보던 소년은 가까스로 수행평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지금 멍때리는 새끼들은 뭐야. 대가리가 있는 새끼들이야? 이거 20% 짜리라고 했지? 했지? 안했냐? 안했어? 안했다고 한 새끼 나와.”

“.....”

“이제 너네는 피똥싸게 공부해서 시험 100점을 맞아도 기껏해야 80점 인생이 되는 거야. 애새끼들이 수행평가가 얼마나 중요한 줄 모르고. 응? 아주 그냥 정신들을 놓으셨지?”

소년은 선생의 말에 다시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참다못한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뭐야?”

“아 선생님 저 숙제를 놓고 왔는데. 내일 낼게요.”

선생은 어, 이것 봐라? 하는 표정이 되었다.

“하기는 했냐? 그래, 내일 교무실로 갖고 와. 조회 전까지만 받는다.”

조그맣게 한숨을 내쉰 소년은 수업이 시작되자 눈을 부릅뜨고 칠판을 노려보았다. 오늘은 할 일이 많았다. 사회 수행평가가 뭔지 알아보는 걸 포함해서.

 

학교가 끝나고 그는 20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뭐가 어찌 됐든 알바를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유니폼으로 갈아입자마자 그는 카운터를 맡고 있던 여자애를 밀쳐내고 컴퓨터를 차지했다. 그는 일단 빌어먹을 사회숙제의 뜻부터 알아보아야 했다.

‘미국의 경제 대공황에 대해 조사하고 이때 정부의 뉴딜정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생각을 논술하여라.’

미국의 경제 대공황? 뉴딜 정책? 이건 정말이지 말도 안 돼는 일이었다. 어떻게 고등학생에 불과한 아이들에게 이런 어려운 용어를 사용해서 숙제를 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찾아보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정 안되면 백과사전에서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를 해버리지 뭐.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가 인터넷을 접속하려고 하자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창이 떴던 것이다. 그는 입을 쩍 벌리고 알바 여자애를 쳐다보았다.

“야, 이거 뭐임? 비밀번호 입력하래. 뭐, 뭐야 이게?”

“그거 점장이 걸어놨음. 손님들이 알바새끼들이 컴퓨터로 영화 다운받아보느라 계산을 안 해준다고 항의를 해가지고.”

젠장. 왜 하필이면 이런 때에. 그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어쨌건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저녁 여덟 시에 편의점에서 나온 소년은 근처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가 어렸을 때 학교가 끝나면 가끔 가던 곳이었다. 만화잡지만 실컷 보고 나왔지. 그는 생각했다.

도서관은 정말 크고 시설이 좋았다. 무인 대출 반납기, 자동 도서 검색기 등의 기계가 한쪽 벽에 있었고, 저녁인데도 학생들은 책상에 빼곡히 들어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는 어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적합한 책을 찾아내었다. 하지만 무인 대출 반납기 앞에 선 그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회원증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책을 구석에 숨겨놓고 사무실에 갔다.

“회원증 만들어주세요.”

“지금 너무 늦어서 안 되는데.”

“아, 형 제발요. 저 꼭 읽어야 할 책이 있어요. 그거 못 읽으면 저 죽어요. 그냥 해주시면 안 돼요?”

“신분증 줘 봐.”

그는 좋아라 하며 학생증을 내밀었다.

“도서관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은 했지?”

“......??”

“회원가입을 먼저 해야 회원증을 만들어줄 수 있어. 이게 다 컴퓨터로 하는 거여서. 집에 가서 회원가입 하고 다시 와라.”

“..........”

그는 솟구치는 분노를 제어할 수 없어 대답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마지막으로 pc방에 갈 수 밖에 없었다. 한 시간에 2000원을 내야 한다는 게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고, 머리에 까치집을 얹고 10시간씩 게임을 하는 폐인들을 보기도 싫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pc방에 최대한 빨리 가서 숙제를 끝내는 게 급선무였다.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 분 후 소년은 그날의 마지막 좌절을 겪게 된다. 힘없이 거리를 걷던 그는 같은 반 친구를 만났다.

“야, 어디 가냐. 이 시간에?”

“pc방.”

“미친 새끼.”

“숙제 하러 가는 거야.”

“너 거기 못 들어가.”

“왜?”

“이제 기말고사라고 선생들이 pc방, 당구장, 이런 데 지키고 있는 거 몰라? 걸리면 너 내일 학교에서 쳐 맞어. 나 아까도 영무 걔가 pc방에서 죽을 상 돼서 나오는 거 봤다.”

“아, 씨발.”

“나 간다.”

“야, 야, 잠깐만. 나 너희 집에서 숙제 좀 하면 안 돼? 집에 컴퓨터가 고장 나서.”

“야아, 열 시 넘었어.”

“.....그래.”

“안녕.”

“안녕....”

 

‘오, 신이시여. 이럴 수가 있습니까. 당신은 정녕 내가 바른 인간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입니까.’ 소년은 모든 의욕을 잃었다. 집까지 걸어갈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세상의 냉정함을 곱씹었다. 컴퓨터가 없는 애들은 숙제를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도서관에서 책은 어떻게 빌리라는 말인가. 젠장. 다 필요 없었다. 그는 그냥 되는 대로 살기로 다시 마음먹었다. 더러운 세상, 노숙자가 되면 어떠리.

‘아, 그리고 할머니더러 방에 들어와서 자라고 해야지. 요즘엔 날씨가 너무 추워.’ 버스 안에서 소년이 피곤을 못 이기고 머리를 떨구기 전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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