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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엘리자에게 (유병주)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0. 1. 1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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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에게

유병주
(노원통합지원센터 소장)

날씨가 많이 춥구나. 정말 겨울인가보다.

너는 지금 캐나다 어느 도시에 있겠구나. 그곳은 독일보다 더 춥다는데--. 어딘가에서 읽었는데, ‘캐나다는 우리나라 퇴직자가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나라 중 하나이지만 날씨가 너무 추운 것이 단점’이라고. 그 추운 곳을 너는 처음으로 엄마를 떠나 찾아갔구나.     

네 엄마는 1988년 내가 독일에서 공부를 시작하기 전, 어학과정에서 만난 가장 친한 대만친구였단다. 그때 나는 어학시험을 빨리 붙어 전공공부를 시작하고 싶어 동향인을 피해 친구를 찾던 중 같은 생각을 가진 네 엄마를 알게 되었단다. 성격이 명랑한 엄마는 일본에서 온 요시에를 내게 소개시켜주었고 우리 셋은 단짝처럼 다녔단다. 서로 서툰 독일어로 소통하면서 너무 재미있어하던 세 사람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우습지 않니?  우리 중 유일한 독일인이었던 네 아빠는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궂은 일을 도와주었단다. 네 아빠의 전공이 중국학이었고 대만과 일본에서 공부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얼마나 편하게 해주었는지 모른단다. 그리고 네가 태어났는데 동서양의 아름다움만 지닌 네가 우리는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단다. 커 갈수록 점점 예뻐지고 독일어와 중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던 너는 요시에와 나의 딸이기도 했단다. 그러던 중 요시에가 먼저 일본으로 떠났고, 2000년 공부를 마친 나도 독일을 떠나면서 엄마 혼자만 남게 되었단다. 그 때 너는 9살이었을 거야.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났구나. 나는 다시 이곳에 뿌리를 내리느라 고군분투하는 사이 지쳐갔고, 오래 잊고 있었던 마음 속의 추억으로 남아 있던 엄마를 찾아갔단다. 우리가 함께 다니던 대학의 맨자에서 7년 만에 나를 다시 만난 엄마는 울더구나. 처음에는 항암 치료로 머리가 빠지고 수척해진 나의 모습이 안쓰러워 우는 것으로만 생각했단다.

“그럼, 리자 많이 컸지. 16살이야. 이제는 엄마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는지 아니? 지가 제일 잘났는지 알아.” 네 안부를 묻는 내게 답할 때도 사춘기 딸을 가진 엄마의 진부한 푸념이려니만 생각했지.  

네가 6살 때라고 하더구나. 유치원에서 선생님은 중국 혼혈아인 네게 중국어를 해보라고 시켰고 또랑또랑 중국어로 대답하던 네게 기대하지 못했던 반응이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라고 엄마는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네 엄마의 눈을 보았단다. 박장대소하는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너는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 중국어로 말하는 것은 물론 엄마를 부정하기 시작한 너를 엄마는 마음으로 울면서 대변하더구나. 곧 어학연수를 떠나면서도 중국인이 없는 곳을 제일 조건으로 고른 네가 나를 위해 엄마와 만두를 만들어 주었고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나의 딸 리자, 네 고통이 지금 네게 왜 이리 크게 전달되는지 모르겠구나. 못된 것들! 리자, 너 아니? 엄마친구 잉와의 아들도 너와 똑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을? 아니 정반대로, 그 아이는 선생님의 격려와 칭찬으로 두 문화를 자랑스럽게 모두 소유하고 있단다. 차라리 네가 네 동생 요나단처럼 아시아의 모습을 더 많이 지녔더라면 네 갈등이 조금 적지 않았을까하는 어리석은 생각이 두는 구나. 너는 검은 머리의 매력적인 독일 소녀인데 말이다. 중국과 독일, 두 문화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네가 누릴 수 있는 행운의 기회를 져버리지 말라고 충고하는 내 말을 흘려듣는 네 모습이 내 눈에 아프게 박혀오는구나.

그래, 리자! 네가 그렇게 바라던 대로 네 곁에는 엄마와 같은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 없기를 바란다. 그래서 네 마음이 편하다면 말이다. 그래도 네 마음 한 켠이 많이 추울 때 항상 너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를 생각하기를 바란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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