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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정보] 타자論 I :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따라서 (이상철)

신학비평

by 제3시대 2011. 1. 1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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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I :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따라서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 이제 타자(他者, the other)다!

 

타자에 대한 논의만큼 21세기에 유행처럼 번지는 담론이 있을까? 하지만, 타자에 대한 이론만큼 논란이 많은 경우도 드물어 타자에 대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나 그에 대한 책을 접하는 독자들 모두 왕왕(아니, 대부분) 혼란에 빠지는 경우를 목격한다. 필자 역시 타자에 대한 윤리를 주제로 논문을 진행시키고 있는데, 타자에 대한 사상적, 신학적 의미를 논하기 이전에, ‘타자가 누구이고 무엇이냐?’는 첫 번째 질문에서부터 말문이 막힌다. 우리가 이런 문제에 봉착하는 이유는 타자에 대한 논의가 굉장히 복잡하고 길었던 사상사의 전개과정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타자에 대한 논의가 지난 호 웹진에서 살펴보았던 주체에 대한 논의, 다시 말해 자기에 대한 이해와 맞닿아 있기에 그렇다. 타자의 반대말이 자아, 주체 아닌가? 자기를 어떻게 무엇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타자에 대한 규정과 이해가 다르다. 저마다의 입장과 맥락에 따라 저마다의 주체가 성립하고 그에 대한 대립각으로 다종의 타자가 존재한다고 볼 때 타자에 대한 논의는 그야말로 타자적이다.

 

본격적으로 타자의 윤리를 논하기 이전에, 사상사에 등장했던, 촘촘한 의미의 두께를 지닌 타자에 대한 굵직했던 흐름을 살펴보는 시간을 차례로 갖는다. 우선, 이번 웹진에서는 근대 이전의 타자론에 대한 부분을 다룬다. 특별히 몰락하는 중세를 배경으로 쓰여진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통해 중세인들이 지녔던 타자에 대한 배제의 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그리고 타자의 출현이 중세의 몰락과 근대의 도래라는 역사적 전환기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칸트와 헤겔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의 타자론이고, 마지막은 프로이트와 라깡으로 이어지는 타자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접근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논의는 거칠고 매끄럽지 못하다. 그것이 거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필자가 지닌 타자에 대한 이해가 아직 과문하기에 그렇다. 비록 지금은 이처럼 남루하지만, 언젠가 너덜너덜 이곳 저곳에 붙어있는 타자론을 유려한 칼솜씨로 깔끔하게 발라낼 그날을 꿈꾸며이제 타자에 대한 여행을 시작한다.   

 

 

 

투박하게 읽어내는 근대이전의 타자론

 

서구 기독교 발전과정에서 여러 교리 논쟁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신과 인간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관한 해석을 둘러싼 싸움이 아니었나 싶다. 그것은 흔히 내재와 초월로 불리며 고대의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의 논쟁에서부터 20세기 바르트와 브루너의 자연신학 논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학 논객들에 의해서 계속 이어져 왔다. 이처럼 신의 내재와 초월에 대한 해석은 당대 신학의 최대 이슈였으며 앞으로도 마땅히 그러할 것이다. 중세교회를 바라보는 이해의 창도 커다란 틀에서는 위의 도식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초월적 신에 대한 일방적 독주가 중세 1000년을 내내 지배했다는 말이 옳다. 이 시기에는 세상과 유리된 전적타자로서의 신에 대한 믿음과 순종만이 허락되었고, 체제(로마교황청)밖에서 제공되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그것이 무엇이든 에어리언으로 취급되었다. 그리하여 중세인들에게 타자란 두려움, 죄악, 악마, 공포, 마녀, 처단 등등의 말로 대치되면서 중세 특유의 타자포비아를 낳았다.   

 

타자에 대한 의식이 광기적으로 작동하고 합리적인 타자에 대한 접근이 지연되었던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언급하면 중세인들이 지녔던 세계관에 기인한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세계를 아름답고 친근하고 낙천적으로 이해한다. 세계관이 이처럼 따뜻했던 이유는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되는데, 하나가 공동체 자체의 안정성(폐쇄성)이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늙고 죽음을 맞이하는 인생의 모든 회로가 중세 전 까지는 모두 한 공간 안에서 이루어졌고 익숙한 구성원들 사이에서 발생하였다. 이렇듯 끈적하고 친밀한 횡적 공동체인 가정과 사회와 교회, 그리고 국가는 종적으로 하늘과 맞닿아 있다. 단일한 공동체성이 첫 번째 특징이라면, 하늘()과 관계맺는 무한에 대한 집단적 신뢰(믿음)가 중세 세계관의 두 번째 특징이었던 것이다. 근대 이전은 신과 인간 사이의 불연속성, 즉 무한에 대한 믿음이 당대를 지배했던 사회이고, 무한한 하나님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인 계시(은혜)에 의해 인간은 신과 만났다. 이러한 매커니즘에 의해 중세의 (폐쇄적)공동체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고, 그 중심에는 어김없이 교회가 위치하였다.

 

만일, 이런 안정된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타자)이 등장하면 무차별한 숙청이 자행된다. 중세의 마녀사냥이 그 좋은 예이고, 특별히 무한한 하나님의 자기현현 방식인 계시에 반하는,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시도는 그것이 무엇이든 감시와 통제와 제재를 받았다. 이를 통틀어 신비주의(mysticism)’라 부르고, 그것을 중세교회는 이단이라 정죄하였다. 근대이전 타자는 바로 이단자였던 셈이다. 전적 타자인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접속이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에 기인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더 이상 피조물들의 타자로 머물게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인간 역시 하나님에게로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두렵고 위험한 존재로 다가왔겠는가? 이처럼 타자에 대한 억압과 배제가 사회전체를 지배했던 사회가 중세였고, 중세의 위기는 이 공식에 균열이 가해지면서 도래하기 시작하는데……

지금부터 다룰 <장미의 이름>은 중세교회가 지녔던 타자규정의 매커니즘을 파악하기에 유용한 자료이고, 중세가 지녔던 타자에 대한 증오의 두께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케해주는 흥미로운 해석이 될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따라서

 

쟝자크 아노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져 상영된 바 있는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은 단순한 소설이기에 이전에, 중세 말 흔들리는 교회의 권위와 위기속에서 이를 수호하려는 수구 기독교 세력이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학하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14세기 중세교회가 상한가를 치고 십자군 원정의 실패 후 차차 몰락의 길로 접어들던 그 무렵, 한 수도원(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이에 윌리암 수사(영화에서는 숀 코너리가 배역을 맡음)가 사건의 해결을 위해 급파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범인은 수도원 도서관 사서로 40년 넘게 수도원을 장악했던 요르게 수도사였다. , 요르게는 사람들을 하나씩 죽였을까? 그리고 죽임을 당했던 인물들이 넘었던 금단의 벽은 무엇이었나? 이 질문은 소설의 주제이면서도 동시에 중세가 당면했던 교회의 위기와 세계관의 붕괴를 바라보는 중세 교권주의자들의 초조와 불안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장미의 이름’ 책표지


우선, 사건의 시작이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벌어진 것이 흥미롭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서방교회 수도원 운동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는데 생활의 특색이 켈틱(Celtic) 수도원의 그것과 유사하였다. 켈틱 수도원은 영국의 웨일즈와 아이랜드에서 발달한 수도원 유형이었다. 그런데, 이 지역은 묘하게도 어거스틴과의 인간론 논쟁 이후 이단으로 몰린 펠라기우스가 숨어들어간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각주:1]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원죄교리를 배격하였다. 무엇보다 그에게 있어 은혜란 인간의 이성을 개발시켜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은혜는 인간성의 한 부분이지, 인간 본성에 예외적으로 부가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펠라기우스의 이러한 견해는 제국의 질서를 신의 질서로 등치시키기 위한 로마제국의 기독교 국교화 정책에 반하는 발언이었고, 무엇보다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제도기독교의 입장에서도 마땅히 제거해야 할 불온 사상이었다. 이렇듯 교회사의 전개과정에서 변방으로 내몰리고 이단으로 정죄당했던 펠라기우스가 자리잡았던 곳에서 베네딕트 수도원의 전통이 시작된 것이다. 그들은 펠라기우스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자연신학을 신봉하였고, 창조의 선함과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들은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학문을 장려하였고, 창조의 선함을 믿기에 금욕생활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지도 않았으며, 피조세계의 건강함을 근거로 노동의 신성함도 이끌어낸다.

 

사실, 펠라기우스와 어거스틴의 대결은 그 전시대에 있었던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 논쟁, 중세로 넘어가서는 유명론과 실재론 논쟁으로 이어지며 등장했던 초월과 내재를 둘러싼 오래된 지적, 신학적 전통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그리고 양자간의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긴장과 갈등은 토마스 아퀴나스로 대표되는 스콜라 철학에 와서 표면적으로 봉합되고 종합되었다. 스콜라철학은 그간 교회사 전통에서 배제되어왔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자연현상과 창조현상을 이해하는 도구로, 아울러 세상속에 내재하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한 접촉점으로 인간 이성을 내세웠다. 그 후 억제되어왔던 인간이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점차 (교황청입장에서 볼 때) 암세포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하면서 1000년의 전통을 자랑하던 중세교회는 서서히 몰락의 수순을 밟게 되는데[각주:2]

 

소설 속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사건은 수도원내 도서관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의 유일한 필사본을 둘러싼 비밀로부터 연유한다. <시학> 2권은 희극론, 즉 웃음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살해당한 사람들은 웃음은 예술이며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의 내용을 알고 이에 접근했던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요르게는 왜 그들을 죽이면서까지 <시학> 2권의 존재를 감추려 했을까? 이는 혹 중세 세계 전체를 감싸고 있었던 신과 인간사이의 불연속성, 즉 무한에 대한 믿음을 수호하기 위한 중세 교회의 최후 발악이 아니었을까? 요르게로 대표되는 중세교회의 교권주의자들에게 있어 웃음이란 엄숙과 경건을 저해하는 요소이며, 교회에 대한 권위와 두려움마저 소멸케하는 위험인자이다. 그리하여 필경에는 신적 계시의 위엄과 무한한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파괴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기에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된다. 만약 이 사실이 만방에 알려졌을 경우 교회를 위협하는 많은 이단(타자)들이 창궐할 것이고 그 전에 미리 이것을 차단하여야 한다.[각주:3]

  

요르게 수사는 몰락하는 중세교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로서 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무한의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한 투쟁를 벌이며 온몸을 바쳐 잠재적 이단의 등장을 막고자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요르게의 발악은 이미 시작된 근대를 향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이키기에는 너무 역부족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그에 따른 타자의 등장은 <시학> 2권을 감추는 것만으로 멈춰서지 않는다.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이미 전방위적으로 중세의 붕괴는 시작되고 있었고, 그것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타자의 출현을 의미하였다. 

 

무너지는 중세, 도래하는 근대

 

중세의 붕괴와 근대의 도래를 규정하는 여러 가지 입각점이 있다. 문화사적으로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부터 중세에 대한 균열과 근대를 여는 단초가 마련되었다고 주장 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에 따른 봉건경제의 붕괴, 이에 따른 초기 자본주의의 등장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적으로는 종교개혁의 후폭풍이라 할 수 있는, 수 백년간 진행된 각종 종교전쟁들로 인한 유럽대륙의 국민국가화와 프랑스 대혁명의 발발로 야기된 고양된 시민의식을 들 수 있다. 이는 중세 교회와 봉건영주의 전횡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태동과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이 밖에도 각 분야별로 중세의 종말과 근대의 도래를 예감케하는 여러 전조들을 거론 할 수 있겠지만, 특별히 타자론의 관점에서 근대의 시작은 물리적으로는 지리상의 발견, 정신사적으로는 칸트와 헤겔로 이어지는 지적전통에 기반한다. 지리상의 발견을 통한 횡적 세계의 확대는 안정적이고 폐쇄적 공동체이었던 중세사회에 틈을 내면서 다름에 대한 공포, 충격, 그를 대하는 자세, 대책 등을 한꺼번에 모색하게 만들었다. 상상해보라! 평온했던 우리 마을에 배를 타고 온 노란머리 하얀피부 (검은 머리 검은피부 혹 노란피부)의 사람들이 등장한다면? 그 다름과 차이에 대한 해석, 타자를 하나로 엮어내는 방식, 타자에 대한 논의의 집대성, 내지 (당대 유럽식) 타자에 대한 해법의 완결판이 바로 헤겔철학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 웹진 <제3시대>

  1. Philip Newell, A Celtic Spirituality, 정미현 역, 『겔트 영성 이야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중 1장 “창조의 선함에 귀기울이기: 펠라기우스”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2. 소설 속 요르게는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창세기는 우주의 창조에 대해 모자람 없이 설명하고 있는데도 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는 자연과학으로 우주를 음산하고 불결한 언어로 나타내고 있소”-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이윤기역 (열린책들, 1989), 533. [본문으로]
  3. 계속 요르게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소설 속 발언을 인용하면: “저 철학자(아리스토텔레스)의 일자일언은 이 세상의 형상을 바꾸어 놓았오. 이 서책( 『시학』 2권)이 공공연한 해석의 대상이 되는 날, 우리는 하느님이 그어놓으신 마지막 경계를 넘게 될 것이오.”- Ibi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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