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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홍어'들만의 '5.18'? (황용연)

시평

by 제3시대 2011. 5. 1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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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들만의 '5.18'?


황용연
(미국 GTU 박사과정)

 
야구팬인 필자가 미국에서 주로 찾는 한국 인터넷 사이트 중에 하나는 한국프로야구 관련 사이트이다. 그런데 필자가 주로 구경하는, 한국프로야구 관련 사이트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축에 속하는 사이트 A에서는 최근 특이한 현상 하나가 벌어지고 있다. 이 사이트와 규모에서 경쟁 관계에 놓이는 다른 야구 관련 사이트 B에서 시시때때로 A사이트를 게시판 도배와 욕설, 비꼼 등의 방법으로 공격하는데, 그 공격의 내용이 주로 '호남 비하'인 것이다.

A사이트에는 일반적으로 광주 연고의 KIA 타이거즈 팬이 가장 많다고 여겨지며, 또한 A 사이트의 정치적 성향은 주로 '반한나라당'으로 인식된다(이 사이트는 2008년 촛불시위와 연관되어 언급된 사이트이기도 하다). 그래서 A사이트가 공격받을 때, 공격하는 B사이트 이용자들은 A사이트를 호남 사람들에 대한 비하어인 '홍어'들이 주로 모인 '홍팍'이라고 지칭하며, 공격하는 날짜는 예를 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일이라거나 전두환의 생일 등이고, 공격내용은 전라도에 대한 비하, 5.18 항쟁에 대한 '폭도' 비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하 등이다. A사이트의 회원들은 5월 18일이 또다른 공격의 날이 될 것이라고 예측할 지경이다.

물론 이런 현상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여전히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호남차별과 5.18 항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수구적 입장의 표출이다. '민주화 이후'의 시기에도 이런 현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인식되고 비판되어야 할 대상일 것이다.

그러나 호남차별과 5.18 불인정이라는 나쁜 행태의 지속이라고만 일축하기에는 생각할 여지가 남는다. 왜냐하면, 위에서 서술한 B사이트의 호남차별과 5.18 불인정의 행태에 대해서, 그 행태가 어떤 굳건한 신념으로 인해 이루어졌다기보다는 그냥 싫은 대상인 A사이트에 대한 편가르기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한 인터넷 위키사이트의 설명은 필자의 이런 의문을 뒷받침하는데, 그 설명에 따르면 B사이트의 경향이 보수적이고 호남차별적이 된 것은, '반한나라당' 성향이고 KIA 타이거즈 팬이 많다는 A사이트와 경쟁 관계에 놓이다 보니 A사이트의 반대 성향을 추구하게 되어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신념이라기보다는 편가르기일 뿐일지라도 '나쁜 생각'을 선택한 것 자체는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의문의 방향을 조금 다르게 잡아 보고 싶다. 그렇다면 '좋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람들은 '편가르기'에서 자유로울까.

경북 지역 대학의 어느 교수는 자신의 연구에서 흥미로운 진술을 한다. 1980년대 이후 5.18 항쟁이 한국 민주화의 상징이 되면서 국가적으로 기념되자, 다른 지역에서는 '우리 지역'의 민주화운동을 찾아 기념하는 의례들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보면 각 지역별로 민주화운동의 전통이 개발되고 있다는 것이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5.18 항쟁은 '호남'의 것일 뿐이니 그것보다는 '우리 지역'의 것이 더 좋다라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A, B 사이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5.18 항쟁을 비롯한 민주화운동은 '우리 편'이 아닌, '호남'이나 '운동했다는 사람들' 등의 '저 편'의 것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민주화운동'이 '편가르기'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하는 것은 '상대편'이 그 의미를 접하지 않으려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그렇다면 '민주화운동 지지'나 '반한나라당' 동의 '좋은 생각'을 한다는 사람들은 과연 '편가르기' 이상의 의미를 창출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좋은 생각'을 한다는 사람들이 공유한다는 가장 흔한 어휘부터가 '반한나라당'인 것에서 보듯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보다는 '한나라당'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를 훨씬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긍정적으로 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여기에다가 '한나라당'을 일단 몰아내고 봐야 한다는, 마치 악당을 최후의 한판으로 쓰러뜨린다는 식의 무협지 내지는 액션영화스러운 상상력이 덧붙여진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물론 지금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너도나도 '보편적 복지'라는 답을 내놓고 있긴 하다. 그런데, 지금 너도나도 외치는 '보편적 복지'란 말 속에는, 그 '복지'의 기반이 되는 사회구조와 현재 한국 사회의 구조가 어떻게 다르고 그래서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보편적 복지를 하면 이렇게 좋아요"라는 프로파간다만이 보이고, 그래서 '답'이 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질문에 대한 '얼버무림'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필자만의 지나친 생각일지.

상황이 이렇다면 5.18 항쟁에 관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왜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는가를 한탄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반복의 의도가 어떻든 또다시 '편가르기'에 빠질 테니까. 오히려 필요한 것은 5.18 항쟁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던 사람들의 '자기 해체'일지도 모르겠다. '민주화운동'을 해왔다는, '수구세력'과 싸워왔다는, 거기에 덧붙인다면 그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사람 중에서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더 '왼쪽'으로 가서 '진보운동'을 했다는, 그 코드 외의 다른 현실과 맞닥뜨리기 위한 '자기 해체' 말이다.

그러고 보니, 사실 5.18 항쟁이야말로, 바로 그 '운동'을 해 왔다는 사람들의 코드 밖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었던가.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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