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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후쿠시마 이후 선교는 가능한가? (김진호)

시평

by 제3시대 2011. 10. 2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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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이후 선교는 가능한가?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가련하고 빈궁한 사람들이 물을 찾지 못하여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탈 때에, 나 주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겠다.
― 「이사야서」 41장 17절


지난 3월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이 사고로 100만 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보도를 내놓았습니다. 그것은 1986년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20년 동안 방사능오염으로 사망한 20만 명의 다섯 배나 되는 수치입니다. 그 방사능 유출의 양은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방사능보다 무려 168배나 되는 양이라고 합니다. 체르노빌 사고의 13배나 된다고 합니다. 

이 무시무시한 재앙은 인간의 기술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시사하는 하나의 전조입니다. 더구나 그것은 전쟁이나 테러 같은 재앙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파괴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사고’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그 피해는 대규모 전쟁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더욱 치명적인 재앙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여 2011년 3월 11일 이후 후쿠시마는 ‘문명발전의 의도하지 않은 파괴성’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후쿠시마 이후’는 인류의 발전지상주의적 문명에 대한 성찰의 절대적 요청에 직면한 시간의 도래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후쿠시마 이후’에 대하여 더 이야기할 게 있습니다. 일본의 저명한 반핵 평화운동가인 히로세 다카시는 '지금은 운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시민사회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날 때까지 원전의 치명적인 위험에 대하여 거의 알지도, 문제로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사고가 나고서야 히로세 다카시가 말한 것과 같은 정보가 비공개되고 있다는 걸 문제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정보의 독점이 시민사회가 위험을 감지할 기회를 차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원전은 하나의 신화처럼 일본 시민들의 가슴 속에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관리국가이고, 따라서 원전은 현존하는 가장 안전한 에너지라고 말입니다. 또한 그러한 원전으로 말미암아 일본 같은 초일류국가의 발전은 담보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무모한 확신은 정부와 기술엘리트에 의해 독점된 정보로 말미암아 시민사회가 원전의 위기에 대해 무지함으로써 지탱된 것이었음이 사고 이후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하여 시민사회는 국가와 기술엘리트가 충동질하는 발전지상주의 체제에 자신의 욕망을 함께 실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사회의 종말이 ‘후쿠시마 이후’가 시사하는 성찰의 내용인 것입니다.

한데 한국사회 또한 이점에서 일본사회와 쌍생아적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1986년 체르노빌 사태가 발생했을 때, 한국의 전두환 정부는 미국과 신규원전 건설계약을 맺었습니다. 이 계약은 그 해에 있었던 전 세계의 유일한 원전 수주계약이었습니다. 또 올해 3월 후쿠시마 사건이 발발할 즈음, 대통령 이명박은 아랍에미레이트와 맺은 원전 수출 기공식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원전은 발전을 상징했고, 실제로 한국사회가 이룩한 성공은 원전이 제공한 전기 능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할 정도로 원전 의존적 성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시민들도 일본의 시민만큼이나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그리고 원전에 관한 정보는 국가와 기술엘리트에 의해 독점되어 있었습니다.

두 사회는 공히 전 세계에서 가장 발전 지상주의를 신봉하는 사회입니다. 국가의 복지 시스템보다는 국가적 발전주의가 시민이 상상하는 유토피아의 밑그림을 이루는 사회인 것입니다. 물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지구를 휩쓸었던 1990년대에 이르면 세계의 거의 모든 사회가 이러한 발전지상주의의 제도화를 추구하지만, 특히 일본과 한국은 신자유주의 이전부터도 그런 지향성의 사회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발전 지상주의는 국가와 기술엘리트를 중심으로 하여 정당화되었습니다. 기술엘리트는 이른바 과학적 맹신주의를 퍼뜨리는 주역이었고, 국가는 이러한 기술엘리트의 과학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안전의 신화를 성공주의와 결합시켜 통치의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하여 시민은 발전주의를 뒷받침하는 기술문명의 요소들을 경유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키워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의 신화가 후쿠시마로 인해 여지없이 붕괴된 것입니다. 

한데 저는 ‘후쿠시마 이후 교회는 선교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특히 한국사회에 관하여 제기한 논점입니다. 왜냐면 알다시피 발전 지상주의에 있어 한국사회와 교회는 너무나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한국사회의 고도성장과 교회의 고도성장은 시기와 양상을 같이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한국사회의 성장지체와 교회의 선교 위기도 서로 겹쳐 있습니다. 요컨대 발전지상주의의 제도화에 있어 한국사회와 교회는 서로 엮여 있습니다. 이것은 발전지상주의를 극복하려는 모든 개혁적 시도에 발목잡고 있는 주된 사회적 세력의 하나가 교회임을 의미합니다. 확실히 우리사회에서 교회는 성공에 미친 사회를 추동하는 역사적 세력임에 분명합니다.

최근 정부와 서울시가 ‘부채 의존형 사회’의 위기에 빠져버린 것도 발전지상주의 정책을 추구한 결과입니다. 알다시피 한국정부와 서울시의 발전지상주의 정책은 과도한 토건주의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이른바 부동산 거품으로 만들어진 발전/성공의 신화를 공모하는 사회를 통해 정권을 유지하고자 했던 체제가 위기의 나락에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물론 이 나락으로 먼저 떨어진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이고, 점차로 전 국민이 함께 내던져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체제를 충동질했던 이들은 아마도 마지막으로 떨어지겠지요.

아무튼 이러한 토건주의적 발전지상주의에 교회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교회는 뻥튀기된 욕망을 교회건축을 통해 표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교회를 특징짓는 가장 두드러진 현상입니다. 그런데 과도한 교회건축은 전 교인을 이 과도한 교회건축에 총동원해야만 가능한 사업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신앙은 끊임없이 발전지상주의를 정당화하면서 제도화됩니다. 즉 한국교회의 신앙체계는 발전지상주의를 체현한 신자들을 양산합니다. 즉, 발전지상주의에 익숙한 신자들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의 발전지상주의에 이물감을 느끼지 않는 시민-성도, 발전지상주의를 욕망함으로써 신앙과 세속의 성공을 함께 누리는 자들을 양산하는 장치가 교회라는 것입니다.

하여 한국사회에서 교회는 가장 발전지상주의에 열렬한 광신자들의 온상입니다. 그런 이들이 교회를 찾아오고, 또 교인이 되는 과정은 그런 이들로 거듭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교회담론 속의 권력의 구조도 한몫하고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담론에서 하느님과 성도는 서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성도를 구원하고 축복하는 신은 성도에게 그러한 구원의 말을 직접 전하는 것이 아니라 중계자들을 통해 합니다. 그것은 그 중계자들이 신에 관한 정보를 독점하고 있기에 가능합니다. 이것은 국가와 기술엘리트가 정보를 독점하고, 이러한 정보 망각상태에서 이뤄지는 시민의 거품 욕망의 체계가 한국과 전 세계의 발전지상주의의 담론 구조인 것과 유사한 형식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발전지상주의는 엄청난 재앙을 낳았습니다. 2011년 후쿠시마는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계기적 사건이었습니다. 하여 우리 시대에 시민의 성찰은 ‘후쿠시마 이후’라는 개념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지요.

문제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성찰을 가로막는 주요 장소인 것입니다. 하여 교회는 오늘날 선교를 할 수 없습니다. 낡은 시대의 낡은 인습, 낡은 욕구의 체계가 잔존하는 장소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여 교회는 선교 대신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성장지상주의의 키워드가 들어 있는 모든 제도적 장치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해체하며 후쿠시마 이후를 성찰한 새로운 모색들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 첫걸음은 성장주의를 추구하지 않는 ‘작은 교회’의 추구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은 사회 속의 작고 빈궁한 자의 축복을 위한 신앙과 교회의 모색에 있다고 봅니다. 후쿠시마 이후의 선교가 가능하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서 텍스트는 그러한 신앙의 한 전거입니다. 발전지상주의를 추구했던 다윗왕조의 신학은 국가의 몰락을 초래했습니다. 다윗왕조만이 신의 축복을 백성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국가신학이 낳은 재앙입니다. 한데 식민지 시대 유배지에서 과거 다윗왕조의 신학을 위해 성전에서 일했던 일단의 사제와 하급성직자들이 새로운 개혁의 구호를 외칩니다. 그중의 하나가 이 텍스트에 담겨 있습니다. 신은 다윗계 왕의 기도에 응답하는 이가 아니라, 가련하고 빈궁한 이들의 신음 소리에 응답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재앙의 시대에 개혁은 바로 이와 같이 국가의 성공을 추구하는 신학이 아니라 작은 자들의 고통에서 시작하는 신학이라는 것입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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