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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탐욕스런 안보 (김진호)

시평

by 제3시대 2012. 4. 3.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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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스런 안보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바울이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그대로 갇혀 있게 하여 달라고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황제에게 보낼 때까지 그를 가두어 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 「사도행전」 25장 21절

통치가 절정에 이르던 기원전 22년 헤롯 왕은 항구도시를 대대적으로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본래 항구가 있던 자리가 아닙니다. 항구로 사용하기엔 해안이 너무 깊었지요. 굳이 그런 곳을 선정한 이유는 아우구스투스가 선물한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10년쯤 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그는 안토니우스의 지지자였습니다. 한데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 해전(기원전 31년)에서 승리하고 안토니우스는 자결을 했지요. 그의 통치에서 최고의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처세술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인물 헤롯은 놀랍게도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에서 승전 퍼레이드를 할 때 그를 보좌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원로원에 의해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았고, 아우구스투스로부터 헤롯은 팔레스티나 지역의 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하여 헤롯은 로마의 새 통치자에게 충성스런 봉신국 왕임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지요. 이 도시는 바로 그런 이유로 건설된 것입니다. 과거 옥타비아누스가 카이사르(시이저)의 양자로 입적되었을 때 그의 이름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가 되었지요. 이 이름을 따서 항구도시는 ‘카이사리아(가이사랴)’로 명명되었습니다. 요컨대 이 도시 건설은 헤롯 정부의 안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항구도시는 ‘단지 충성심’ 때문에 지어진 것만은 아닙니다. 그는 지중해 동부에 위치한 최대의 무역항을 꿈꾸었습니다. 페니키아 인들이 건설했던 작은 도시는 이제 지중해 동부를 대표하는 거대도시로 탈바꿈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국제무역항이 필요했습니다. 소아시아와 시리아에서 이집트를 잇는 뱃길의 중간 기착지 말입니다. 또한 로마와 아라비아반도를 잇는 동서간 국제무역에서도 지중해 동단에 위치한 항구의 필요성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남쪽으로 50여 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욥바라는 오래된 항구도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엔 여긴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성이 차지 않게 작은데다 이스라엘 성향이 너무 강해서 국제도시가 되기엔 적절치 않았습니다.

한데 문제는 이곳은 항구가 들어서기엔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수심이 너무 깊은데다 파도가 거센 탓에 선착장을 만들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헤롯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해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조상대대로 살아온 주민들은 강제로 쫓아냈고, 부역에 동원하였습니다. 수심이 깊은 곳에 나무로 거대한 곽을 짠 다음에 콘크리트와 돌을 부어 수심을 낮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센 풍랑을 맞으며 60미터에 달하는 방파제를 건설하게 합니다. 하루아침에 살 곳을 빼앗긴 이들이 목숨을 걸고 이 위험한 노역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바닷가에 살지만 바닷사람이 아닌 이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건 난해한 건축에 동원된 것입니다.

언덕빼기에는 신전을 건립하여 여러 종족의 사람들이 각기 자기들의 방식대로 바다의 신에게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착장에 이어지는 지하에 거대한 창고를 건조하여 신속하게 수하물이 선적, 하적되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국제무역항은 손색없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왕궁이 있는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주민들은 왕궁, 경기장, 원형극장, 수영장, 공중목욕탕 등의 건설에도 동원됩니다. 자기들이 살던 터에 왕족과 귀족들의 공간이 들어섭니다. 또 그이들이 마실 식수를 대기 위해 멀리 갈멜 산에서 9킬로나 이어지는 도수교를 건설했습니다.

여기에 건립된 헤롯 왕궁의 면모에 대해서는 당대의 역사가 요세푸스가 찬사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헤롯에 대해서 그토록 극한 언사로 비난해마지 않았던 그가 왕궁을 보고는 너무나 아름답다고 내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카이사리아는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서 로마로 연결되는 국제적 ‘관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국의 권력이 유입되는 곳이며, 또 팔레스티나 통치자의 권력이 공고히 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헤롯 사후, 팔레스티나의 통치권을 장악하고자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로마로 갔던 이들은 이 도시를 통해 나갔고 성공했든 실패했든 이 도시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또 로마 황제의 대리인으로 팔레스티나의 총독이 되어 부임한 이들은 이곳 관저에서 지냈고, 영전하든 좌천하든 임기 이후 이곳에서 떠났습니다. 헤롯의 손자였으나 헤롯에 의해 척살당한 집안의 장손인 아그립바 1세는 이곳을 통해 로마로 떠났고, 칼리굴라의 죽마고우로서 대권을 손에 쥐고 팔레스티나로 귀환할 때 이 도시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이 도시는 팔레스티나의 권력의 핵심이었고, 그 배후에는 로마 황제가 있었습니다. 즉 이곳은 로마의 정치적 식민주의의 관문인 것입니다.

또한 이곳은 부의 중심지입니다. 황제의 재가로 이곳에서 특권을 쥔 이들은 이곳에서 벌어지는 국제무역을 장악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 이 도시는 동부지중해 전역에서 가장 큰 재화가 형성되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 풍요로움은 이곳을 발판삼아 처세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여 비잔틴 시대에 인구 10만이나 되는 거대도시로 발전하기까지 합니다. 즉 이곳은 로마의 경제적 식민주의의 관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가능한 항구도시를 위대한 국제무역항으로 만들어낸 원천적 자원은 바로 원주민들의 땀과 피였습니다. 그들의 노동과 목숨이 기반이 되어 이 도시는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집을 빼앗기고 빈민지역에 거주하는 하층민이 되거나 떠돌이가 되어야 했습니다.

결국 이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 이 도시에서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 어느 누구도 그 원주민들의 고통과 죽음을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탐욕을 가지고 이 도시로 들어오고 탐욕을 가지고 이 도시를 살아가며 탐욕을 배우며 이 도시를 떠나갑니다. 반면 거의 아무도 도시의 제일 밑바닥 층에 화석이 되어 묻힌 원주민들의 몸을, 영혼을, 고통을, 삶과 죽음을 발견해내지 못합니다.

나는 여기서 안보론을 떠올립니다. ‘안보’는 통치자의 언어입니다. 통치자는 그 사회와 자신의 안전의 공통분모를 찾아 안보라고 명명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명명된 안보는 어떤 것과도 거래될 수 없는 절대적 위상을 지닙니다.

헤롯에게 로마는 안보의 핵입니다. 로마에 적대하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전 팔레스티나 사회를 몰락하게 할 것입니다. 해서 그는 로마 황제를 기리는 도시를 건립합니다.

한데 그곳이 항구이어야 할 이유는 안보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발전의 논리이지 안보의 논리가 아닙니다. 한데 이곳은 항구가 될 수 없는 지역입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무리한 사역을 위해 전 주민을 희생시킵니다. 한데 그 결과는 자기 자신과 주변의 세력에게만 이익을 줄뿐입니다. 나는 이렇게 안보와 발전논리가 교묘하게 결합하면서 극단의 비대칭적 이익을 창출하는 것을 ‘탐욕스런 안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탐욕스런 안보의 한 예가 최근 강행되는 강정의 해군기지입니다. 이 해군기지의 명분은 원래 남방 해역 안전과 해저자원 및 해양수송로 보호에 있었습니다. 한데 그것이 갑자기 대북 안보 문제로 둔갑했습니다. 

이것은 본래 미국의 대(對)중국 아시아 방위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아시아 방위전략이 영구주둔거점을 확보하는데서 순환배치로 전환되면서 중국에 대한 광역의 포위망을 순환거점 확보를 통해 형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안보 문제가 한국 국민의 안보로 둔갑한 것입니다.

여기에 지난 정부가 추진하다 중단된 것을 현 정부가 갑자기 추진하는 것은 총선용 색깔론의 혐의가 짙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규모 건설사업이 거대자본들의 이익과 맞물려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기에는 통치자와 지배권력의 탐욕이 안보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데 바로 이런 안보론의 제일 큰 문제는 ‘구럼비의 눈물’을 망각하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폭파되어 산산조각나고 있는 구럼비 바위처럼, 통치자들의 탐욕스런 안보론은 주민들과 그곳 물과 뭍의 생명체와 비생명체들 모든 것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산산이 흩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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