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는 박근혜의 미래다!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2008년 미 대선에 대한 기억: 오바마에 대한 깔대기

 

지난 달에 이어 ‘철 지난 미국 대선을 통해 본 2012년 한국대선 읽기’ 두 번째 글이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캐리와 공화당의 부시가 맞붙었을 때, 본 게임 전에 결선에 나갈 민주당 후보를 뽑는 최종 전당대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모임에서 캐리에 대한 지지 연설을 했던 몇몇의 연사가 있었다. 그 중의 한 명이 유독 눈에 띠었다. 당시 필자는 미국 온지 2~3달 밖에 안되었던 터라 어리버리하던 시기였고, 귀도 뚫리지 않았던 때라 무척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였다. 그런데 유독 그 사람의 영어는 귀에 쏙쏙 들어왔고 비록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의 에너지와 열정만은 너무나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정치가이고, 차기는 모르겠지만, 차차기 민주당 대권후보군으로 부상할 인물 중 하나라고 시카고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던 한 친구가 말했줬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가 바로 현 미국 대통령 바락 오바마이다. 오바마는 차차기 민주당 대권 후보군 중 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차기 2008년 선거에서 미 합중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뒤늦게 나는 그가 내가 살고 있는 시카고가 속한 일리노이주의 주지사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가 다니는 교회가 현재 필자가 재학하고 있는 시카고 신학교가 속해 있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단인 UCC(United Church of Christ)라는 점, 그의 멘토가 지난 2008년 대선에서 선거초반 ‘갓 뎀 아메리카’논쟁으로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시카고 트리니티 UCC교회의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라는 점, 그리고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오바마가 당선된 그날 밤 시카고 밀레니엄 Park였는지, 아니면 오바마 취임식 날이었는지 가물가물한데, 유독 CNN에서 그 실황을 중계하면서 클로즈업 했던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시카고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이자, 몇 십 년 전에(지미카터가 대통령으로 당선될때)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도 참여한 경력이 있는 제시 잭슨 목사이다. 그는 미국 흑인인권 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 멤피스에 있는 한 모텔 2층 베란다에서 저격당 할 당시 바로 그 옆에서 선생을 부축하고 후송하고 죽음까지 목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잭슨목사는 후에 오바마의 정치적 후견인이 되었다. 그날,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제시 잭슨 목사가 아무 말도 없이 아무 표정도 없이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 계속 방송을 타고 전파되었는데, 많은 미국민들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감격만큼이나 제시 잭슨 목사의 눈물이 지닌 의미에 더 울컥해 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눈물을 흘리는 제시 잭슨 목사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날을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 밤 나는 ‘발터 벤야민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었고, 발터 벤야민의 유명한 <역사철학 테제>에 대한 발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업에 참여한 교수, 학생들의 관심사는 온통 최대의 선거인단을 보유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선거결과에 집중되어 있었다. 캘리포니아만 접수하면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수업의 전반부가 끝나고 후반부가 시작될 무렵 캘리포니아가 민주당으로 넘어왔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그것이 어느 정도 가시화되자 모두 수업을 접고 신학자 폴 틸리히가 시카고에서 강의할 때 자주 갔다던 맥주집으로 향해 축배를 들었다.
특별히 우리학교 식구들이 느끼는 오바마 당선에 대한 기쁨과 흥분은 유별났다. 앞서 말한 오바마의 정치적 후견인인 제시 잭슨 목사, 오바마의 맨토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가 모두 시카고 신학교 출신이라는 점 (둘 다 공교롭게도 시카고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학교 졸업식이나 무슨 행사가 있을 때 어김없이 참석하여 걸출한 입담으로 사람들을 한 바탕 웃기고 간다), 오바마의 집이 차로 우리학교와 2분 거리이고, 오바마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우리학교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이며, 오바마가 쓴 책의 Book 사인회가 우리학교 지하 Co-op Book Store에서 열렸고, 대선 때 마다 민감한 이슈로 떠오르는 낙태, 동성애 등의 윤리적 이슈들에 대한 신학적 자문에 (물론,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편에서) 우리학교 교수들이 오바마 캠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는 소문 등등…..여러가지 시카고 신학교와 오바마 간의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우리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두 세달 무척 행복했던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그런 종류의 신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우리가 노무현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물론, 오바마는 국내정치에 있어서 부시보다 상대적으로 탁월한 진보적인 색깔을 드러내 보였다. 미 진보진영의 숙영 사업인 의료보험 개혁안을 추진하고, 동성애자 군복무 제한에 대한 철폐, 이민정책과 불법체류자 문제에 있어 공화당보다 상대적으로 유연한 정책을 펼친다는 점, 무엇보다도 수 백년 동안 백인들의 폭력에 신음하고 위축되었던 흑인들의 자존감에 긍지를 주었다는 점이 가장 큰 오바마의 치적(?)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역시 미 합중국의 대통령이었다. 외교적 문제나 국제 분쟁을 바라보는 관전포인트나 FTA에 임하는 자세 등은 어느 미국 대통령 못지 않게 국익에 종속된 모습을 보이며 그것에 충실하다. 특별히 한국과의 FTA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FTA 사상 유례없는 유리한 조건으로 타결함으로 미국의 국익을 챙겨 불안했던 재선 가도에 한숨을 돌렸다는 평가를 현재 받고 있다. 그래서 오바마는 MB를 좋아한단다.

힐러리에서 박근혜를 보다!

바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2008년 미국 대선은 민주당의 막강했던 두 명의 대선 주자 오바마와 힐러리간의 민주당내 경선이 오히려 본게임보다 더 많은 흥행과 토론의 이슈, 그리고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냈던 경우다. 11월이 대선이었는데 민주당은 치열했던 양 진영간의 난타전으로 인해 여름에서야 비로소 대선 후보가 정해지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여성대통령이 먼저 나와야 하느냐?’ 아니면, ‘흑인 대통령이 먼저 나와야 하느냐?’ 이 문제는 ‘여성의 해방이 먼저일까?’ 아니면, ‘흑인 해방이 먼저일까?’ 라는 전통적 주제와 결부 되면서 많은 이야기 거리들을 만들어냈다. 둘 다 워낙 묵직한 존재론적인 차원의 문제인데다, 그 존재론적인 차이로 인한 억압과 폭력의 기억을 둘이 공히 경험하고 있는 까닭에 사람들은 좀처럼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힐러리는 1800만 표를 득표하고도 패배했다. 그리고 패배 시인 연설에서 힐러리는 “비록 나는 가장 높고 견고한 유리 천장을 깨지는 못했지만 1,800만개의 금을 가게 한 균열을 냈다”고 말했다. 참고로 미국은 건국 후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여성 대통령도 배출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것도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동안의 눈물겨운 투쟁의 시간을 거쳐 현재 미국 내에서 여성의 지위가 놀랄 만큼 높아졌다고는 하나, 미국 사회가 기본적으로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환상으로 통합을 꾀하려는 사회이고,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의 대부분이 보수적 신앙노선 위에서 여성의 역할을 성경에 나와있는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유럽과 비교할 때 미국 여성의 역할과 한계가 기본적으로 제한적이고 뚜렷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힐러리가 말한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 사회내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과 승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장벽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힐러리의 마지막 연설은 나름 멋있고 감동적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비록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서 오바마에게 고배를 마셨지만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하게 색깔을 바꾸어 가며 권력에 대한 야심찬 면모를 선거운동 기간 내내 보여줬다. 오히려 오바마보다 의제설정에 있어서 한 발 앞섰던 것 같고, 오바마보다 모든 공약에서 반보 진보적인 내용을 선보였다. 오바마는 본인이 흑인이라는 상징성이 득이 될 수도 있지만, 득표에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도 있음을 너무나도 잘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온화하고 무난한 모습으로 백인들이 지닌 본인에 대한 거부감을 다독이는데 상당한 노력을 경주했었다. 하지만, 힐러리는 달랐다. 오바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정적으로 비치는 본인의 이미지를 극복하고자 아주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자세로 자신이 오바마보다 더 진보적임을 천명하였다.
특별히, 힐러리에게 인상 깊었던 것은 남편이 대통령이었다는 프리미엄을 거부하였다는 사실이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힐러리는 남편을 대동하지도 않았고, 본인에게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의 후광이 미치는 것에 대해 의식적 거리두기로 일관했다. 가부장제 시스템 속에서 여성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혹은 남편의 이름으로 포장된 채 소개되거나 전달되기를 바라는데, 힐러리는 단호히 남편이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백악관을 재탈환하려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비록, 퍼스트레이디 라는 껍질을 벗어 던지고 민주당 대선 후보자로 변신하였던 그녀의 과감한 도전은 좌절되었지만, 힐러리의 자세와 시도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문득, 이 대목에서 박근혜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왜일까?

필패, 박근혜 ?

둘 다 퍼스트레이디였다는 점, 둘 다 아버지의 이름 혹은, 남편의 이름이라는 가부장제 시스템의 수혜자라는 점, 둘 다 대권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등 여러가지 물리적, 외형적 공통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자는 같지만 다르다. 힐러리는 그동안 자신을 감싸고 왔던 외피가 그녀의 대선가도에서 마이너스가 될 요소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뼈를 깎는 고통으로 환골탈퇴하여 자신을 대선경쟁 레이스에 나온 주자들 중 가장 왼쪽에 위치시켰다. 하지만, 박근혜는 여전한 박정희의 후광과 여전한 지역정서와 여전히 변하지 않는 보수-수구적 마인드에 휩싸여 있다. 물론 박근혜의 대세론은 실재로 존재하며 실제로 그것은 지난 4.11 총선에서 분명히 입증되었다. 그녀는 아무때나 선거를 치러도 minimum 35%이상의 확고한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박근혜 필패론의 근거라면? 뭔가 알 수 없는 유령이 지금 자기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까? <다음 호에 계속>

P.S: 다음 호에서는 데리다의 후기 철학을 대변하는 유령론(hauntology)에 기대어 박근혜 필패론의 근거를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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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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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2.05.22 11:4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P.S 2> 제가 이 글을 쓸때 약간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박근혜가 승리한 4.11 총선 결과때문에 열받아 있었고, 총선 후 얼마후에 있었던 Ph.D Qual Exam 과목중 하나가 Derrida였는데, 시험 예상 문제중 Derrida의 유령론를 둘러싼 문제들이 많았죠. 시험공부를 하면서 잘 하면 박근혜 현상과 데리다의 유령론을 하나로 엮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시험도 끝나고, 총선결과에 대한 흥분도 사라진 지금, 더구나 통진당이 개판을 치고 있는 요즘의 형국을 보면서... 내가 괜한 말 했다는 후회가 밀려듭니다. 한달간 무척 괴로울 것 같네요. 일단 써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접겠습니다.
  2. 김형태
    2012.06.14 00:5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국민을 궁민으로 만드는 지도자라고 국민이 선택에 뽑았다면 ....그 결정을 존중해주어야
    하지 않을지요...

    권력앞이 비열하고 더러운 것은 진보. 수구세력 다 똑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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