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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시카고 통신>: 미국 대선을 통해 본 한국 대선 읽기 (이상철)

시평

by 제3시대 2012. 12. 17.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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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통신> : 미국 대선을 통해 본 한국 대선 읽기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Hyde-Park 사람들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된 다음 날(11월7일) 시카고 신학교 채플에서 시카고 대학 역사학 교수로 있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저자이기도 한 부르스 커밍스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미국 대선이 어제 진보진영(?)의 승리로 끝났고, 이제 남은 우리나라 대선에 대한 전망을 듣기 위해 학교로 가는데, 학교 진입하는 골목마다 경찰들이 깔려 있어서 시간이 좀 걸렸다. 오바마가 지금 하이드팍에 와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인권운동을 상징하는 지역이 몇 군데 있는데, 시카고 남부 하이드팍(Hyde-Park)이 그 중 하나다. 시카고대학을 끼고 있는 이 지역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후계자라 여겨지는 흑인인권 운동의 대부 제시 젝슨 목사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고, 그 밖의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담론들이 끊임없이 생산되는 미국진보 진영의 몇 안 되는 거점이다. 오바마의 집이 바로 이 하이드팍에 위치한다. 오바마는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 상원의원시절부터 이곳 하이드팍에 살았고, 오바마의 부인 미셀 오바마는 시카고 대학 병원 행정부원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오바마의 아이들은 시카고 대학내에 있는 부속 중고등학교에 다녔는데, 가끔 아이들을 학교에 ride해 주는 오바마의 모습이 종종 목격되기도 했었다. 우리학교 지하에 위치했던 서점에서 갓 출간된 오바마의 책에 대한 사인회도 열렸고… 이렇듯 하이드팍에는 오바마의 흔적과 추억이 곳곳에 서려있다.

미국 대선의 계산법

대선이 있기 전 하이드팍 사람들은 오바마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여론조사의 추이만을 따져보자면 만만치 않은 접전이 예상되었었다. 미국은 주마다 대통령 선거인단 수가 다르고, 주단위 선거인단 투표에서 승리하면 그 주 선거인단 수 전체가 모두 해당 대선 후보의 표가 된다. 이런 이유로 전국단위 선거인단 투표율에서 승리했지만, 선거인단 수 확보에 실패하여 대통령이 안된 케이스도 있다. 2000년 공화당 부시와 민주당 엘 고어가 맞붙었을 때가 그랬다. 이번에도 오바마와 롬니 간 투표율에서는 별 차이 없었는데, 선거인단 수에서는 오바마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늘 그랬지만 경합주들의 표심의 향배가 승부를 결정지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나름 확고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우리나라보다 더함). 그래서 공화당의 지지기반인 남부 바이블벨트로 상징되는 지역에는 민주당이 선거운동을 포기하고, 민주당의 지지기반인 뉴욕, 시카고, 샌프란 같은 대도시의 표심에 공화당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당락의 관건은 소위 Swing State라 불리는 경합주들의 향배다. 이것이 미국 대선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게임의 법칙이라 볼 수 있다. 플로리다, 오하이오, 펜실베니아, 위스콘신, 버지니아, 아이오하, 뉴햄프셔, 콜로라도 등이 대표적인 Swing State이다. 대부분 미중서 백인 밀집지역에 몰려있다. 오바마는 초접전이 되리라고 보았던 지역들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대의원수를 확보하여 332명(오바마가 얻은 선거인단수)대 206명(롬니가 얻은 표)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오바마가 잘 해서라기보다는…

오바마 승리의 요인에 대한 많은 분석들이 있었다. 막판에 몰아친 허리케인 샌디가 롬니의 열기를 식혔다는 의견에서부터 여성결정권(낙태)을 둘러싼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망언이 롬니의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에 이르기까지 이번 선거 역시 많은 이야기 거리들을 남겼다. 사실 이번 대선은 4년 전 과는 달리 오바마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커서 오바마를 선택했다기보다는, 롬니에 대한 경계와 불안 때문에 오바마를 택한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오바마 1기는 전 부시 행정부의 무리한 전쟁으로 엉망이 된 경제상황, 그로 인한 국론분열, 전쟁 종주국이라는 국제사회에서 추락한 미국의 위상 등 어느 것 하나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있었던 것이 없었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딴지에도 불구하고 나름 소신껏 경제회생의 의지를 관철시켜 실업률을 선거막판에 7%대로 떨어뜨린 점, 의료보험과 이민법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는 점 등이 그나마 오바마의 자존심을 세워준 부분이라 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7%후반에 머물고 있는 실업률,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 실물경제, 미국민들이 갖고 있는 강한 미국에 대한 미련과 미국의 대외정책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불신 사이에서 어떻게 대외정책을 지혜롭게 풀어가야 하는지의 문제, 이번 선거에서도 하원 장악에 성공한 공화당, 풀리지 않는 난제인 이스라엘과 중동평화 등등 오바마 집권2기 역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고, 그렇다고 특별히 뾰족한 돌파구는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오바마의 지난 4년을 학점으로 따지만 B- 정도, 그리고 앞으로의 4년도 전체적으로 흐림의 상황인데 미국민들은 다시 오바마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민들은 왜 다시 오바마를 선택했고, 이번 미국 대선의 메시지를 한국대선에 어떻게 감정이입을 시켜야 할까?

부시의 망령 

필자가 보기에 가장 큰 오바마의 승리요인은 공화당의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막혀있는 태도에 대한 반사이익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미국이 영국 식민지 시절 무리한 조세강요에 항거한 ‘보스톤 차사건’(Boston Tea Party, 후에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됨)에서 유래했다는 ‘티 파티’운동은 오바마가 추진하는 각종 경제개혁에 발목을 잡으며, 국가안보 최우선(테러와의 전쟁), 전 국민의료보험 확대 반대에 목소리를 냈는데, 이는 전통적 공화당 지지자들을 하나로 묶는 데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부동층을 끌어안는 데는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하였다. 롬니는 오바마와의 1차 TV토론을 거치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나름 보수적인 이미지를 벗고 중도적 이미지를 보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롬니는 선거운동기간 내내 공화당 출신의 전임 대통령 부시와 비슷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무지 애를 썼지만, 그가 말하는 공약들은 미국민들로 하여금 부시의 악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기업들에게는 세금인하, 친재벌, 탈규제를 약속했고, 불공정무역에 대한 보복을 강조하면서 중국을 몰아부치며 다시 냉전의 분위기를 연출하려 한다는 점, 오바마의 어정쩡한 정책들이 미국의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켰기에 ‘강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점 등 롬니는 너무나도 Bush스러웠다.  지난 4년으로 부시를 잊기에 미국민들은 부시에게 당한 것이 너무나 많았고 혹독했다.

너무나 닮은 롬니의 사람들과 박근혜의 사람들

롬니의 지지세력은 백인, 부자, 남성들이었다. 이는 오바바의 지지층인 유색인종, 가난한 자, 여성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표심이었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여성결정권(낙태)을 찬성하는 오바마에 맞서 보수적 기독교 세력들의 표를 규합하기 위해, “강간에 의한 임신도 하나님의 뜻” 혹은 “강간으로 임신이 안 된다”는 망언을 일삼았다. 그야말로 남성우월주의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이런 구태는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쳐 20대 유권자의 60%, 30대 유권자의 55%를 오바마로 향하게 했다. 공화당의 여성비하는 여성표에도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쳐 여성유권자의 55%가 오바마를, 44%가 롬니를 지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나라도 정치권에서 발생하는 여성비하 발언과 성추문 사건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사례가 한 두 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온도차는 미국 유권자들과는 전혀 반대다. 예전에 최연희, 박계동 같은 사람들 식당여주인, 여기자 성희롱 사건이 터졌을 때 뻔뻔하게 응수했던 것 기억해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이미지에는 별반 타격이 없었다. 성희롱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던 한나라당 사람들이 버젓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로 무사히들 안착했다.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면서  ‘당대표가 여성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성희롱당’ 이미지 성립이 불가되고 있지 않는가?’라는 물음을 가진 적도 있었다. 문제는 박근혜의 ‘여성성’이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아니, 지금 생각해 보니 그녀의 의지대로) 반(反)여성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여성성은 철저히 가부장제에 기생하는 여성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는 한국 여성운동의 최고 수혜자일는지 모르겠다. 모든 사회운동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 운동의 열매는 투쟁한 당사자들보다는 권력에 근접한 사람들이 맛보기 마련이다. 여성운동 역시 가부장제 사회의 기득권과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여성이 최대 수혜자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물론 그 여성은 힘있는 아버지를 둔 딸들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그 굴레가 딱 대통령의 딸, 재벌의 딸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2012 미국 대선 총평, 그리고 한국 대선

한국에 조.중.동이 있다면 미국에도 그에 못지 않는 수구, 보수 언론이 많다. 대표적인 것인 폭스 뉴스와 러시 림보인데, 그곳에 등장하는 조갑제 같은 보수언론인들의 땡깡과 억측과 막말이 이번 미국 대선에서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공화당의 꼴통 이미지를 더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독설로 유명한 폭스뉴스 진행자 빌 오라일리는 6일 선거가 끝난 후 이런 말을 하였다: “미국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미국이라 할 수 없다. 미국의 인구분포가 바뀌어 백인들이 이제는 소수파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말이다.  아직까지 패배의 원인을 정확하게 감지 못하는 미국 근본주의 세력의 현실감각을 잘 표현해주는 논평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미국대선은 시대의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에서 공화당의 롬니보다 오바마의 자유로운 이미지가 아직까지 미국 유권자들에게 약발이 먹히고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대선 때마다 공화당이 물고 늘어졌던 낙태와 동성애 문제에 먼저 선수를 치면서 공격적으로 맞섰고, 의료보험, 이민법 문제 등에서 보여준 오바마의 제스처는 다문화 사회를 걸어왔고, 지향하는 미국의 정체성과도 부합하는 일관된 태도라 볼 수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최초로 레즈비언 상원의원이 탄생했고, 메인주와 메릴랜드 주에서는 동성결혼이 투표로 합법화되어 미국 내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주의 숫자를 아홉으로 늘렸다. 콜로라도와 워싱턴 주에서는 마리화나가 합법화되었다. 이로서 마리화나가 합법화된 주가 19개에 이르렀다. 한국에 계신 분들은 미국 사회가 망조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으나, 미국 사회가 매우 치열하게 차이와 다름에 대해 고민하고 몸부림 치면서 다양성을 수용하는 최적의 방식을 놓고 숙고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이제 12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우리는 미국 대선으로부터 무엇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까? 앞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오바마는 유색인종, 가난한자, 여성들에게 표를 얻어 대통령에 재선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오바마는 흑인의 93%, 히스패닉의 71%, 아시아계 70%, 여성55%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이들을 무조건 가난한 자 혹은 소수자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백인 남성 위주의 미국 주류사회에서 상대적 약자였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이들은 본인들에게 덧칠된 사회적 약자라는 굴레를 극복하고 자신의 계급과 사회적 위치를 자각하면서 그것을 배신하지 않은 채 적극적으로 이번 대선에 참여하였다. 즉 자신의 계급에 반하지 않는 정치 참여가 미국사회를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는 말이다.  4년 전 이명박이 당선되었을 때,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다: “국민은 무능보다는 부패를 선택했다.” 그 다음해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은 서울 강북을 싹쓸이했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지난 선거에서 자신의 계급을 대변하는 후보보다는 자신이 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부추기고 그 환상을 계속 주입하는 후보에 한 표를 행사했다는 말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그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남아 있는 대선 기간 동안 자신의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자기의 입장과 계급과 위상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각자가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일 날, 나의 신념에 부합하는 한 표를 정직하게 행사한다면, 우리사회가 조금 앞으로 옮겨지지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답답한 마음은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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