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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그들의 기념비를 세우라 - 차별금지법 논란에 즈음하여 (김진호)

시평

by 제3시대 2013. 5. 2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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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기념비를 세우라
: 차별금지법 논란에 즈음하여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우리말 성서에서 ‘회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콰할’(qahal)은 칠십인역성서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될 때 ‘에클레시아’(ecclesia)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에클레시아’는 제2성서(신약성서)에 나오는 ‘교회’의 원어다.
한데 「출애굽기」 16,9의 용법에 따르면 ‘콰할’은 모세의 법 앞에 모인 백성을 뜻한다. 이 구절은 형식상 국가 이전 시기 광야의 유랑자들이 야훼가 내린 법을 통해 법공동체가 되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하지만 법공동체는 (떠돌이 사회의 상상이 아니라) 국가형성의 상상이다. 떠돌이 집단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복잡한 사회적 집단이 되었을 때, 이들을 묶어내는 양식이 곧 법의 반포인 것이다. 하여 법의 반포는 그 법이 포괄하는 공동체의 안과 밖을 나눈다. 즉 다양하고 복잡한 전통과 관습과 역사를 가진 이들을 일괄하여 법의 일원으로, 곧 법의 ‘안’이 되게 함으로써, 그들이 그 나라의 백성이라는 자의식을 갖게 하고, 나머지를 ‘밖’으로 배제하여 이방인이 되게 하는 이분화의 형식이 바로 국가에서 법의 효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정치적 집단이 법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그들이 비로소 국가다운 국가가 되었다는 시금석이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누가 그 공동체의 일원인가의 문제다. 즉 법은 누구를 ‘안’으로 포함하는가의 문제가 국가 형성의 핵심적 과제가 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유다국의 멸망 이후, 그곳에서 일어난 재건공동체가 국가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누가 법공동체의 일원인가’를 둘러싼 논의를 살피고자 한다. 여기서 유다 재건공동체는 과거 유다국이 바벨로니아 제국에 의해 멸망할 때 유배되어 끌려간 자들의 일부가 반세기 이후부터 돌아오게 되면서 시작된다.
귀환자들이 속속 돌아왔다. 바벨로니아가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 먼 곳에서 오려니 나이든 이들은 엄두를 내지 못했고 혹여 용기를 내어 길을 떠난 이들도 험한 여정에서 쓰러졌다. 하여 기어이 고향 땅 유다로 무사히 돌아온 이들은 대개 청년들이었다. 경험이 많지 않지만 열정은 넘쳐나는 이들이다.
이들은 전에 왕족 혹은 귀족 집안의 자제였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던 이들의 자손이었다. 해서 그들은 꿈꿨다. 그 땅에 무사히 돌아오면 다시 주인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 하루아침이 유배민으로 전락하여 고생고생하며 살아가는 종의 신세가 아닌, 땅의 주인이 되는 삶, 인생역전의 꿈이다. 
한데 그들이 당도한 꿈의 땅 예루살렘은 폐허가 된 채 버려진, 아무도 살지 않는 땅, 불에 탄 잿더미와 무너져버린 벽돌, 무수한 잡초만 가득한 ‘죽은 도시’였다. 그들을 환대해주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없었다. 고국 땅에서 주인이 될 줄 알았던 귀환자들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폐허가 된 담벼락을 보수하고 잡초를 치워 가까스로 살 집을 마련했고, 겨우겨우 끼니를 잇는 절박한 생활고에 꿈이 자리잡을 곳은 없었다. 몇 번에 걸쳐 대대적으로 귀향한 사람들, 새 나라에 대한 꿈에 한가득 부풀었던 그들은 번번이 절망하고 말았다.
그중 한 귀환집단이 있었다. 예수아 제사장과 즈루빠벨 총독이 이끄는 귀환자들이다. 이들의 지도자들이 황제가 준 기금을 가지고 와서 그 날이 곧 도래할 거라고 부추겼을 때, 그들과 앞서 귀환했던 이들, 그리고 그 지역의 일부 토착민들은 힘을 내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지었다. 성전이 세워지면 야훼가 보살펴줄 것이라고, 하여 영광의 시간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성전이 세워졌어도 야훼의 영광은 보이지 않았고, 비루한 현실은 여전했다. 게다가 때만 되면 몰려오는 약탈자들은 성전이 세워진 뒤 더 기승을 부렸다.
그렇게 한 세기가 지났다. 다시 큰 규모의 귀환자들이 돌아왔다. 지도자는 느헤미야 총독, 페르시아 황제의 관리였다는 자다. 그는 황제가 준 기금과 유배민 공동체에서 수거한 기금, 그리고 귀환민들로부터 징수한 기금을 모아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가까스로 성벽이 세워지니 이제 더 이상 약탈자들에게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성벽은 그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이곳이 다름 아닌 예루살렘이었기 때문이다. 성전이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멀리 디아스포라 공동체들에서 보내온 기부금과 기부물품이 쌓이기 시작했고, 성전 제사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으며, 제사장들의 권위는 다른 성소들의 권위를 압도하게 되었다.
식민지가 된 이후 유다 지역에서 가장 유력한 성읍이 되었던 미스바(예루살렘 북족의 13킬로의 성읍)도 예루살렘에 밀리게 되었고, 남쪽으로 30킬로 떨어진 성읍 벧수르도 예루살렘에 복속되었다. 하여 느헤미야는 이제 영토다운 영토를 다스리는 총독이 되었다. 그 주(州)의 이름은 ‘예후드’였다.
예후드 주에서 느헤미야 총독은 강력한 분리주의 정책을 취했다. 식민지 이후 이 지역은 한동안 사마리아에 복속된 하위의 정치단위였었다. 또 사마리아 못지않은 강력한 정치세력이던 암몬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하여 느헤미야는 분리주의 정책을 통해 사마리아와 암몬으로부터 실제적으로 독립된 자치구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얼마 후 에스라 제사장이 황제의 재가를 받아 이곳으로 파송되었다. 그는 예후드 주의 백성을 결속시키는 법을 반포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법은 ‘성전에 계신 야훼께서 주신 율법’이라는 것이다. 이제 느헤미야의 분리주의는 하느님의 법의 이름으로 실행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율법이 최초로 백성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통합시키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성전 제사도 비슷한 통합의 기능을 하지만, 그것은 제사 드리는 그 순간에야 효력을 미친다. 한데 예후다 영토가 넓어지자 모든 이가 제사에 참여할 수 없게 된 데다, 제사는 연중 불과 몇 회만 시행될 뿐이다.
반면 율법은 성전까지 오지 않아도 백성이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자의식에 매어 있게 할 수 있다. 마을마다 율법을 가르치고 예배하는 공간이 생겼다. 그리고 이 예배와 교육은 매 안식일마다 시행되었다. 법은 이렇게 제사보다도 예후다의 백성을 더 촘촘하게 결속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안식일마다 마을에서 천명되는 율법에서 핵심은 ‘누가 예루살렘 성전공동체 예후다의 백성인가’라는 문제에 있다. 이때 에스라의 율법은 백성이 아닌 이를 규정함으로써 백성인 이들을 포용하는 형식을 지녔다.
누가 법의 백성이 아닌가 하면, 첫째로 이방인이 그렇다. 심지어는 이방인과 결혼하는 이도, 그이들의 자제들도 이방인이다. 강력한 배타주의다. 이방인과 결혼 중인 이들까지 강제로 이혼시키고 한 편을 국외로 추방하는 조치가 내려질 정도로 고강도의 폐쇄주의다.
둘째는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고자’는 배제의 대상이다. 왜 하필 ‘고자’라고 표현했을까? 추측컨대 ‘생산을 할 수 없는 성(性)’이라는 점이 고자 속에 담긴 핵심 논지였을 듯싶다. 왜냐면 이방인과의 결혼 금지가 혼혈의 위험으로부터 피를 깨끗하게 유지하려는 것이라면, 고자 배제의 원리는 깨끗한 피의 백성이 번성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고자 배제’ 원리 속에 함축된 것은 ‘생산하는 성’만이 진정한 ‘법의 내부’라는 주장을 천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생산 없는 성’을 왜 하필 ‘고자’라고 했을까? 아마도 남성 중심사회에서 불임 여성을 거론하는 것보다는 불임의 남성을 얘기하기 위해, 불임 남성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고자’가 배제의 대표집단으로 거명된 것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느헤미야-에스라 식의 이러한 분리주의와 순혈주의는 유대주의적 성전공동체를 하나의 독자적인 정치적 세력으로 부상하게 했고, 하나의 사회적, 종족적 정체성을 가진 집단으로 주체화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한데 문제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이 체제는 누군가를 강하게 차별하는 배제주의적 사회를 만들어냈다. 하여 이 체제를 실행하기 위해 이웃 족속과 결혼했던 이들을 강제로 갈라놓았고, 생산하지 못하는 성에 대한 사회적 처벌을 제도화했다. 결국 소수자에 대한 배제를 제도화함으로써 그 사회는 성립했던 것이다.
이제 오늘 우리 시대 얘기를 해보자. 최근 다시 차별금지법안이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상정되었다. 북한 미사일 사태에 시민사회가 정신이 온통 쏠려 있는 중에 이 차별금지법 문제는 개신교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쳐 있다. 기독교계 매체들 가운데 몇 개 빼고는 거의 전부가 차별금지법에 대해 일방적 비난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해서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한 지금까지 표출된 여론은 반대 일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다시 해묵은 물음이 제기된다. 왜 개신교계는 그토록 차별금지법 반대에 열을 올리는가? 말할 것도 없이 반대의 핵심은 동성애나 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 문제에 있다. 수많은 반대 주장에 들어 있는 공통된 불만은, 이 법이 제정되면 동성애나 트랜스젠더를 죄라고 하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니 이게 가당한가라는 주장이다. 적어도 그들에게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인 이들은 반성서적이고 반자연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성서적이라 함은 성서가 동성애자를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반자연적이라 함은 생식 없는 성은 부자연스런 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억지다. 성서가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텍스트가 단지 몇 개 있기는 하지만, 그 텍스트가 동성애와 무관한 것이라고 해석할 여지 또한 있으므로 그것으로 성서가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주장은 자명하자 않다. 설사 반대한다는 해석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성서의 모든 주장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니, 불과 몇 개 텍스트에 불과한 것을 성서의 가르침이라고 일반화하는 것은 지나치다. 가령 성서가 월경하는 여자를 불경하다고 하고, 그 기간에 그녀가 눕는 자리, 앉았던 자리에 닿는 것까지도 주변의 모든 사람을 부정타게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어느 교회도, 어느 목사도 그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또 고기를 먹을 때 피까지 먹어서는 안 된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반복하는 교회는 없다. 심지어 어떤 교회에선 주일 점심 식사로 선지국이 나오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개신교 신자들은 동성애 같은 몇 개 요소만은 성서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나마 그런 성서 문구조차도 동성애 반대 논지가 불명확하니, 억지 부린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반자연적이라는 주장도 그렇다. 자연적이라는 것을 다수자의 선택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단지 다수자에 속하는 이들이 낯설게 느낀다고 해서 그것이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는 것은 종종 다수자의 폭력으로 드러나곤 하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소수자든 다수자든 그 선택이 주변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차별금지법은 인권법이다. 인권법은 소수자라 하여 차별받지 않는 권리에 관한 법이다. 소수자든 다수자든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한, 그 선택은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한데 소수자의 선택이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낀다는 이유 때문에 어떤 소수자들은 차별대우를 받는 일이 흔히 발생한다. 그런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바로 차별금지법인 것이다.
하여 차별금지법 같은 인권법은 다수의 동의를 요하기보다는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인권 개념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법제화되는 것이다. 즉 차별금지법은 그 사회가 국제적 인권의 관점에서 얼마나 성숙한 인격을 갖추었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차별금지법 논란은, 우리 사회가 누구를 법공동체의 일원으로 삼을 것인가를 둘러싸고 국제적으로 격조 있는 사회가 될 것인가 아닌가의 기로에 선 논란이다. 그리고 한국 개신교 지도자들은 한국사회를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국제적 인격을 결여한 사회가 되게 하려는 일에 앞장섰다.
다시 성서 얘기로 돌아가 보자. 「이사야서」 56,4~7는 느헤미야-에스라가 주장하는 법공동체의 폐쇄적 개념에 대항하고 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록 고자라 하더라도, 나의 안식일을 지키고,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면, 그들의 이름이 나의 성전과 나의 성벽 안에서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겠다. ......”
주님을 섬기려고 하는 이방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여 주님의 종이 되어라.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고, 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는 이방 사람들은, 내가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겠다. ......”

주장인즉슨, 이방인이나 고자라는 이유로 하느님의 공동체에서 추방하는 것은 안 된다는 얘기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 그 사회의 질서를 반하는 행동이라고 한다면, 안식일을 지키는 이방인과 성소수자는 그 사회로부터 차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 구절은 당시 예후다 지역의 지배적 법률인 에스라의 법의 배제주의에 대항해서 제기된 하느님의 차별금지법인 셈이다.
이 성서 구절에서 “그들의 이름이 나의 성전과 성벽 안에서(곧 야훼의 법 공동체 안에서)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겠다”는 표현이 주목된다. 누가 우리 사회, 우리의 법공동체의 일원인가?를 둘러싼 논의에서 차별당하는 소수자의 기념비를 세우는 일이 야훼의 가르침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부활에 관해 상상해본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부활은 몸이 난도질당한채 죽임당한 이들이 그 마지막 때에 하느님나라의 백성이 되어 일어서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몸의 부활 모티브는 그 살해당한 이들이 고문당하고 처형당하는 과정에서 신체가 심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부활은 몸의 복원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하여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부활은 그들, 곧 소수자이기에 차별받았던 이들이 하느님나라의 백성이 되는 사건이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차별당하고 죽임당한 소수자들의 기념비를 세우는 일을 벌인다. 그것이 바울 사역의 핵심이기도 하다. 곧 그것은 하느님의 차별금지법의 바울식 실천인 셈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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