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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정보: 바울신학가이드4] 바울신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수현)

신학비평

by 제3시대 2013. 11. 2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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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4]

바울신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바울신학의 새관점 - 제임스 던(James Dunn)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E. P. 샌더스, 제임스 던, 그리고 바울신학의 새관점

    지난번 글에서 E. P. 샌더스 (E. P. Sanders)를 다룸으로써 이른바 뉴퍼스팩티브를 논하기 위한 대략적인 밑그림이 그려졌다. 이번 글에서는 뉴 퍼스팩티브(The New Perspective)라는 신조어를 만들었고, 샌더스의 연구결과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바울신학을 새로쓴 제임스 던(James Dunn)의 주장에 대해 살펴보면서 그의 연구가 바울 신학계에 의미하는 바를 이야기해 볼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계약적 율법주의’(언약적 율법주의)와 ‘뉴 퍼스펙티브’라는 두 용어를 정의해야 한다. 뉴 퍼스펙티브란 ‘새 관점’이란 뜻이다. 던이 자신의 바울에 대한 연구를 새 관점이라고 명명하고, 그 이전의 연구를 ‘올드 퍼스펙티브’라고 함으로써 자신의 연구를 그 이전과 구분하였는데, 여기에서 ‘새관점’이란 던의 의도를 담은 하나의 표현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던이 샌더스의 연구 결과에서부터 바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에 계약적 율법주의는 바울 신학의 새관점과 연관을 맺게 되는데, 쉽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던은 샌더스가 제2성전기 유대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고 말한다.[각주:1] 이는 계약적 율법주의란 것으로 요약될 것이다. 던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샌더스 이전까지 바울은 유대주의의 율법의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율법주의가 예수를 통한 복음에 배치된다고 생각했고, 유대주의와 등을 지고 기독교의 시대를 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자체가 그 당시 유대주의의 율법관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도대체 바울이 예수의 복음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샌더스의 바울에 대한 결론은 간단하다. 그냥 다르다는 것이다. 바울의 하나님이 유대교의 하나님인 것은 맞으나, 바울은 예수를 만난 후 새로운 구원론, 즉 새로운 종교적 가능성에 눈을 떳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바울에게 율법은 큰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이미 ‘다른 세계’로 들어갔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율법은 더이상 큰 의미가 없어졌고, 어쩌면 새로운 구원의 가능성을 위해 던져버려야만 하는 것이었을 것이라 샌더스는 생각했다. 던은 자신이 샌더스의 대답에 만족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각주:2] 필자도 샌더스가 종횡무진 당시의 고수들을 누르면서 논리를 전개할 때에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가 마지막 바울의 장에서 ‘그저 바울과 유대주의는 구원에 있어서 다른 생각일 뿐’ 이라고 했을 때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던은 자신만의 대답을 찾아보기로 한다.[각주:3] 그 연구의 결론에  ‘뉴 퍼스펙티브 온 바울’(New Perspective on Paul)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계약적 율법주의와 바울에 대한 새관점은 같은 말이 아니다. 계약적 율법주의로 대표되는 제2성전기 유대주의의 관점에서 탄생한 바울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바로 “뉴퍼스펙티브 온 바울”이며 첫 시작은 제임슨 던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와 비슷한 관점을 유지하면서 파생된 여러 학자들의 담론들을 이후에 묶어 NPP, 바울의 대한 새관점(The New Perspective on Paul)이라 하고 학계에 통용되게 된 것이다.

    바울 신학에 대한 새관점

    그럼 던의 생각은 무엇일까? 효과적으로 던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바울 연구에서 기본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을 살펴보면서 던의 입장을 정리해 보도록 하자. 미리 말한다면 던의 입장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아니, 바울학자들의 관점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그들의 연구는 엄청 복잡하기도 한데, 그 이유는 바울의 서신들에 나타나는 양립불가능해 보이는 바울의 언술들이 자신들의 결론에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주석적 작업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 대부분 그들의 저서들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결론들을 가지고 같은 문서를 읽으며 자신들이 맞다는 것을 서로 논증하니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필자는 여기서 그러한 논증의 흐름을 소개할 생각은 없다. ‘바울의 율법관’을 알기 위해 그에 대한 책을 수십권(정말로 읽어야 할 책은 수백권이 넘는다.)을 읽으며 정신줄을 놓기보다는 먼저 텍스트를 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당시의 배경자료를 습득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 다음 학자들의 저서들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던의 연구 또한 그 결론은 복잡하지 않다. 던의 여러 저서들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자신의 결론을 바울의 서신을 통해 증명하기 위해 쓰여졌다. 이제 바울연구의 기본적 이슈들로부터 시작하여 던의 생각을 알아보자.

    바울은 누구였는가?[각주:4]
    바울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면, 당연히 바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성경을 통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운이 좋게도 우리에겐 바울이 직접 기록했다고 믿어지는 7편의 편지(데살로니가 전서, 갈라디아서, 빌레몬서, 빌립보서, 로마서, 고린도 전후서)가 있다. 게다가 사도행전에서도 바울에 대한 기록들이 있다. 이를 통해 바울에 접근해 가다보면 사도행전의 바울의 모습과 바울이 쓴 서신들의 모습이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먼저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7장의 스테반의 순교장면에 등장했다가, 9장에서 예수의 제자들을 죽이기 위해 다메섹을 향하다 거꾸러진다(보통은 바울의 개종으로 소개되는 장면).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바나바의 중재를 통해 예수를 만났음을 알리고 예수의 제자들과 함께 지내며 복음을 선포하다가 다소로 간다. 11장에서 안디옥에 생긴 교회로 바나바가 가게 되고 안디옥 교회를 돕기 위해 다소로 가 바울을 찾아서 안디옥으로 가게 된다. 13장으로 넘어가면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예언자이자 선생으로 소개된다. 비로서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에 의해서 함께 복음전도자로 파송받게 된다. 누가복음의 속편인 사도행전의 바울의 모습을 보면 ‘유대와 사마리아와 온 땅(로마)’을 향해 전진하는 사도들의 행진에서 바울이 로마로 복음을 가져가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비록 사도라는 칭호로 바울을 불러주지는 않지만). 바울은 예수를 만난 이후 예루살렘 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그들에게서 배우고 훈련받고, 마치 신학교의 신학생처럼, 전도자로 파송된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직접 말하는 그의 이야기는 이와는 매우 다르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급작스럽게 ‘다른 복음’에 정신이 팔린 교회에 사자후를 토하면서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받은 복음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한 것이며 누구를 통해 얻은 것도 아니라고 강조한다(갈 1:11). 자신이 과거에 주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지만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자신(안에 또는 에게 - 헬라어 ‘엔’의 뜻이다.) 나타내 보이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울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예수의 제자들)에게 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간다. 아라비아에서 무엇을 하였는지 알 수 있는 아무런 단서도 없다. 그곳에 얼마나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바울은 다메섹으로 왔다가 3년 후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만나 15일을 지낸다. 바울은 이때 베드로 이외에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갈 1:19). 그 후, 바울은 전도여행을 떠난다.
    이 완전히 다르다면 다른 두 가지 바울의 전도여행 이전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부분의 바울 학자들은 바울이 직접 기록한 부분에 신빙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두가지 질문이 생긴다. 왜 사도행전 기자는 예루살렘교회에 충실한 바울의 모습을, 그것이 실제와 다르며 바울의 서신에도 나와있는 바울의 기록과는 다르게, 그려내고 있을까? 이 질문에 있어서 바울에 대한 새관점이든 그 이전이든 학자들간에 동의가 있는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적 기독교와 헬라세계를 중심으로 한 헬라적 기독교가 서로 어느 정도 긴장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각주:5] 그렇게 본다면 이후 헬라적 기독교의 중심 인물이 된 바울(신약성서의 반 정도에 바울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바울의 교회가 그의 사후 예루살렘 교회와 대등한 주도권을 가지게 된 것을 알 수 있다.)을 어떤 형식으로든 교회의 연속적인 역사에 맞추어 기록할 필요가 사도행전의 저자에게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도행전의 모습에서 벗어나 갈라디아서의 바울을 보면 그야말로 겁없는 한 사람을 볼 수 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는 실제 생전의 예수와 함께 생활했고 그의 육성을 들은 예수의 실제 형제(주의 형제 야고보)와 직계 제자(이후 사도로 명명됨)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아라비아로 발 길을 돌리는,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는 한 남자의 모습이 있다. 어떤 결론을 얻었는지는 바울이 남긴 편지들을 보고 유추할 수 있을 뿐이나, 아라비아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간 바울은 베드로를 만나 15일간의 길고긴 만남을 갖는다. 그리고 홀연히 여행을 떠난다. 이방인, 또는 헬라인들에게, 또는 유대인이라 불리우는 사람들 이외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리고 14년 후, 예루살렘에 다시 바울은 모습을 나타낸다(갈 2:1). 이번에는 우에는 바나바, 좌에는 디도를 끼고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담판을 짓기 위해서이다. 바로 그의 이방인 전도를 정식으로 승인받기 위해서였다(갈 2:2). 할례를 받지 않은 디도를 데리고 바울은 예루살렘의 기둥들(주의 형제 야고보, 베드로, 그리고 요한)에게 예수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유효함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오로지 하나의 조건을 걸고,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자유로이 전할 것을 약속한다 (갈 2:9). 그 조건은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보내는 것으로 약속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예수의 복음에 대한 단 하나의 조건, 잊어버리면 복음이 아닌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해서는 이 연재의 마지막 부분쯤이 될 것이다.)
    급박한 협정이 끝나고 긴장이 사라져갈 무렵, 예루살렘과 바울사이에 파국을 일으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안디옥으로 바울을 만나러 온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당도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 황급히 식사를 내려놓고 물러선 것이다(유대인들은 음식에 대한 엄격한 규율이 있기 때문에 이를 지키지 않는 이방인들과 식사하는 것은 부정해지는 것을 뜻한다.) 갈라디아서 2장 11-14절을 보면 바울이 베드로를 앞에 두고 꾸짖었고, 격렬한 논쟁 끝에 바울과 함께 있던 바나바까지 베드로의 편을 들어주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바울이 그들에게 보내는 언사는 간단하다. “이 위선자들아!” 그리고 바울은 그 유명한 갈라디어서 2장 하반부에서 ‘이신칭의’, 즉 믿음으로 얻는 의에 대해 말하면서 율법의 행함(The works of Law)를 통렬히 비판한다. 던이 그의 바울신학의 닻을 힘차게 내린 지점이 바로 루터가 발견했던 갈라디아서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던은 그 이전에 바울에게 일어났던 일을 이신칭의의 콘텍스트로 봄으로 루터와는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율법의 행함 - 유대인들의 아이덴티티 마커
    던은 샌더스의 계약적 율법주의를 받아들임으로 공로를 통해 얻는 구원관의 입장이 당시 유대주의의 생각이 아니었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주의를 비판하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무엇이 바울에게 이른바 ‘율법주의’ 또는 ‘공로주의’를 떠올리게 하였을까? 던은 바로 갈라디아서가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고 생각했다. 바울에게 오로지 하나의 조건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라’라는 조건만을 걸었던 사도들이 펄쩍 뛰었고, 바울과 그 옛날 15일을 함께 지내며 이 후 바울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었던 베드로까지 물러나게 만든 것. 유대인들의 정결법전, 바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표식: 할례, 음식법, 안식일에 대한 준수에 대해서는 끝내 양보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울은 바로 여기에 복음의 정체성을 걸어 버린다. “만약에 의가 율법을 통하여 온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된 것입니다!” (갈 2:21) 무엇이 바울에게 할례를 받는 것은 의롭게 됨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더 나아가 할례를 받는 순간 그리스도를 헛되게 하는 것이라고 (갈 5) 말하게 할까? 던은 바울 당시의 유대사회와 바울서신의 긴밀한 읽기를 통해 당시 유대사회에는 유대인들과 타민족들을 나누는 아이덴티티 마커라는 것이 존재했었다고 말한다.[각주:6] 당시의 헬레니즘 사회에 살았던 헬레닉 유대인들은 본토 유대인들보다 율법에 대한 이해가 휠씬 느슨했으며 점점 헬라제국과 로마제국의 영향아래 흡수되어 가는 유대민족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기 위해 세가지 표식들이 유행했는데 이것이 타민족들에게도 유대인임을 알게 하는 눈의 띄는 하나의 표식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식은 자연스럽게 유대인들의 종교적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것이 되었고, 그들의 신앙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유대사회를 지배했다는 것이다. 던은 이를 마카비서등의 성서 외적 자료들과 신약성서내의 증거들을 통해 재구성해 내었다. 샌더스가 ‘계약적 율법주의’를 말했다면, 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유대인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아이덴티티 마커로서 세가지의 율법을 행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유대종교를 자신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여러 이방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에게서 자신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아이덴티티 마커’를 가지는 것이 유행하였는데, 할례를 받고, 음식법을 지키고,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으로 그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로마의 다신교 사회 안에서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덴티티 마커가 당시 바울의 복음을 받은 이방인들에게도 예루살렘 교회나 다른 유대 전도자들을 통해 들어왔으며 바울은 이에 격렬하게 응대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던의 생각이다.
    아이덴티티 마커가 나쁜 것이 아니다. 율법이 나쁜 것이 아니다. 아이덴티티 마커를 받아들이고 행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복음의 의미를 없애버린다는 것이 바울의 결론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커들을 행함을 강조하는 것은 복음에 대치되며 필연적으로 복음의 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던이 보기에는 바울이 그토록 눈을 부릅뜨고 반응했던 것은 유대교의 율법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아이덴티티 마커 (할례, 음식법, 안식일)를 통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가지고 있었던 ‘민족적 우월감’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에게 오로지 예수를 통해 드러나 완전한 하나님의 의에 대한 신념을 바울은 굽히지 않았고 ‘율법의 행함’에 대한 바울의 공격은 민족적 우월의식이 가지는 종교적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인 공동체로 나가기 위해 바울이 해야만 했던 것이었다.
    던의 이러한 시각으로 모든 바울 서신에 나오는 바울의 입장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의 바울이 가진 율법에 대한 입장이 다르고, 그것은 다른 서신들도 마찬가지므로, 던은 이후 연구를 통해 끊임없이 보충하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입장이 바울의 가장 기본적인 시각이었음을 역설하였다. 이는 이후 새관점 진영에서도 여러 다른 의견들이 나오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나 샌더스의 연구를 더욱 끌고가서 바울의 서신을 읽음으로 이전에 발견할 수 없었던 바울의 모습과 더 나아가 바울의 복음을 새로운 지평을 볼 수 있었다는 것에 있어서 던의 연구는 바울학계에 독보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다.

    끝없는 논쟁속에서

    필자가 느낀 미국의 성서학의 분위기는 워낙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기는 하지만, 보수와 진보간에, 또는 복음주의와 진보적 성서학간에 암묵적인 동의가 존재한다. 그들은 정말 필요하지 않는한 서로를 논쟁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특정한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경우는 있지만 서로의 학문적 분야에 대해서는 거리를 둔다. 그런면에서 던만큼 보수 복음주의적 성서학자들의 포격대상이 된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던의 바울의 새관점에 대한 저작들과 로마서 주석들이 나온이후로 던의 생각이 수많은 비판과 논쟁의 대상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필자가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바울학자들간의 거대한 동의가- 하등한 율법주의를 넘어서는 보편적 구원으로서의 기독교- 샌더스의 연구를 통해 금이 가기 시작하여 던에 와서 바울이 공격하는 율법주의를 바울의 콘텍스트에서 읽음으로 걷잡을 수 없이 균열이 가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복음주의진영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필자는, 던 자신 또한 강조했듯이, 바울의 보편적인 구원관의 가능성을 던이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던이 강조하고자 한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유대주의의 율법주의가 아니라 민족적 우월주의 또는 분리주의에 대한 바울의 적대감이 바울을 때로는 반율법주의 또는 반유대주의로 보여지게 만든 이유였으며 이러한 새로운 시각을 통해 우리는 바울의 복음이 현세계에 말하고자 하는 긴박한 목소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세계의 여러 민족간에, 문화간에, 또는 어떠한 고정된 신념체계간에 갈등에 대해 바울이 내고 있는 복음의 메시지는 일견 분명한 것인데, 그 어떤 분리나 분파적인 성향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복음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참여와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다시 태어남만이 중요하고, 그 안에서 그 어떤 위계질서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각주:7]
    그러나 한편으로 던의 한계 또한 분명한데, 첫째는 아이덴티티 마커에 대한 유대기독교의 입장에 대한 바울의 비판을 명확하게 감지해 내면서도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 되풀이 되는 기독교 자신의 아이덴티티 마커 쌓기에 대한 이렇다할 비판을 바울을 통해 찾아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그러다보니 오히려 바울의 서신에 나오는 세례등의 예식이 아이덴티티 마커를 뛰어넘는 혁명적인 것임을 당시에 유대교와의 콘텍스트에서 만이 아니라 현재에서도 논증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어쩌면 바울이 비판한 입장에서 다시 시작하는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던이 이러한 성향을 가지게 된 이유는 필자가 보기에는, 첫번째로 그가 기독교 성서학자로서의 종래의 한계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고 (새관점을 제외하고는 그의 성서에 대한 입장이나 신학적 입장은 그리 새롭지 않다.) 두번째, 계속되는 논쟁속에서 그의 관점을 계속 설득력있게 주장하는데만 지나친 시간을 할해 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신학계에서 던의 위치는 샌더스와 함께 참으로 중요하다 할 것이다.

 

    바울신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불트만을 통해 신약성서신학이 실존주의신학과 기막힌 하모니를 이루면서 인문학적 담론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시대가 가고 난 이후, 성서학은 분과학문의 위치를 넘지 못하고 여러 신학적 담론을 지지하는 구절들을 생산하거나, 역사비평학을 통해 종교적 정체성을 제공하거나, 현대교회의 여러 운동들에 대한 신학적 증거를 제공하거나, 교회의 신앙 체계에 대한 이슈들의 논쟁들로 점철되어 왔다. 그러는 와중에 한국의 민중신학이나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계에서는 자신들의 신학적 중심으로 성서의 위치를 자리매김하면서 성서의 힘을 다시금 보여주었고, 다양한 콘텍스트 안에서 성서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해석으로 나타나는지 증명해 주었다. 어찌 보면 바울신학 조차도 현실의 콘텍스트와 동떨어져 흘러온 적이 없었다. 길고긴 위정자들을 위한 나팔수였던 전통적 성서학이후에 독일의 관념론을 통한 기독교 우월주의의 교과서에서 구조주의의 영향아래 샌더스를 통해 유대주의와 바울서신이 분리되고, 민족적 갈등과 종교적 갈등이 극에 달한 시대에 던에 의해 분리와 분파주의를 깨치고 헤쳐 모이는 선포의 목소리가 된것은 우연한 결과가 아닐 것이다. 던 또한 가장 충실한 주석학자였으나, 어떻게 역사의 흐름과 세계의 콘텍스트가 바울신학의 주요주제가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바울서신이 루터 신학에 경도된 감옥에서 (루터가 틀렸다는 것을 강조함이 아니라 복음서와는 달리 너무 오랫동안 바울서신을 하나의 목소리에 가두어 둔것을 말함) 벗어났을 때, 여성차별론자, 기독교 우월론자, 독재자, 정치적 순응주의자 (롬 13)인 바울이 상상치 못한 방법으로 현재의 우리 삶에 적용될 수 있는지 보여준 예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필자는 이후의 필자의 바울신학에 대한 글이 바울의 율법관이나 구원관에 대한 글이 아니라 바울신학이 현재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관한 것임을 밝히고 싶다. 바울의 새관점은 그 학문적 결과물을 차지하고서라도 바울을 묶고 있던 사슬을 끊어내고 바울 서신이 스스로 현재에서 울러퍼질 수 있게 한 좋은 하나의 예이자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 웹진 <제3시대>

 

 

  1. James D. G Dunn, The New Perspective on Paul (Grand Rapid, Mich.: W.B. Eerdmans Pub. Co., 2008), 5. [본문으로]
  2. Ibid., 7. 던은 샌더스의 바울이해가 결국 종래의 프로테스탄트적 바울이해와 그리 다르지 않음을 지적한다. 샌더스는 유대주의에 대해서는 새관점을 제공했지만 바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3. The Cambridge Companion to St. Paul (Princeton, N.J.: Recording for the Blind & Dyslexic, 2004), 10. 던은 그의 여러 저서에서 그의 연구의 출발점이 바울이 타겟으로 삼고 있는 공격대상이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본문으로]
  4. James D. G Dunn, 김철, and 채천석, 로마서 (상) (서울시: 솔로몬, 2003), 49–56. 제임스 던의 저서중 새관점에 대한 필자가 사용하는 저서들은 한국에 번역본으로 나와있다. 간단한 바울에 대한 소개로 WBC 주석 시리즈의 로마서(상)의 부분을 참조하라. 필자는 바울의 서신을 바탕으로 제임스의 던의 생각을 재구성해보았다. [본문으로]
  5. 필자는 이 두 교회를 명확하게 나누고 연구를 진행하는 것에는 이견을 가지고 있다. 이 후 이러한 구분은 유대적 기독교, 유대적 배경의 헬라적 기독교, 헬라적 배경의 유대 기독교등으로 복합하게 나누어지게 된다. 마치 코리언 어메리컨 한 명을 데려와 어디까지가 어메리컨이고 어디까지가 코리언인지를 논쟁하는 것 만큼 어렵고도 애매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초대 교회를 이런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있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6. Dunn, The New Perspective on Paul, 9–10. [본문으로]
  7. Ibid., 35–36. 던은 그의 저서에서 그의 바울읽기가 바울의 콘텍스트에서 그의 서신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 상황안에서 바울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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