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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정보: 바울신학가이드6] 바울신학과 탈식민주의I (한수현)

신학비평

by 제3시대 2014. 2. 28.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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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6]

바울신학과 탈식민주의I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왜 탈식민주의(포스트콜로니얼리즘)인가? 그것도 바울에 대해 말하는 와중에 뜬금없이 탈식민주의라는 생경한 이야기를 꺼내들어야 할까? 오늘의 웹진에서 필자는 바울을 말하기 위해서, 또는 성서를 현실사회에서 의미있는 말씀으로 끌어오기 위해서 탈식민주의적 관점이 필요함을 역설해 볼 것이다. 탈식민주의가 아니라 탈식민주의적 관점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웹진의 전체를 걸쳐 필자가 말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성서를 현실의 삶 안에서 구체적 메세지로 읽어낼 것인가, 즉 바울신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다시 또한 기억해 주길 바란다.
   해체주의라는 표현을 기억할 것이다. 영어로 Deconstructuralism이라고 번역하는데, 언뜻 해체주의라는 표현이 와닿는 표현이긴 하지만 데리다가 말했던 단어의 의미와는 조금 거리가 느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데리다가 말했던 것은 해체중심의 어떤 것이 아니라 구축주의(Constructuralism)를 벗어나자는 의지가 더 강했던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필자의 은사님이셨던 이경재의 독법을 따라 해체주의를 ‘탈구축주의’로 이해한다. 왜 ‘탈’이라는 표현에 대해 고민할까?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표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떻게 해석할까? 포스트라는 표현이 ‘이후’라는 뜻이 있으니 ‘근대이후주의’라고 번역하면 알맞을 것 같다. 근대이후주의라고 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은 근대시대이후에 나타난 모든 ~주의를 망라한 것이라는 표현이 된다. 그러나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 때의 의미가 이러한 것이었을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표현 안에 이미 모더니즘에 반하는 또는 모더니즘을 극복하려는 어떤 것이 있다는 표현이 아닐까? 만약 그렇게 이해한다면 ‘탈근대주의’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이러한 ‘포스트’에 대한 해석의 다의성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라는 표현에 오면 더욱 심각해진다. 왜 ‘식민이후주의’라고 해석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식민주의가 끝이 났는가? 일본의 식민통치가 종언을 고했고, 이제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으니 식민주의의 시대는 끝이 났는가? 아니면 우리는 아직도 온갖 종류의 식민주의의 잔재들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가? 아니 전세계가 근대주의를 뒤덮었던 식민주의의 그늘아래 있지 않은가? 아니 구세대의 식민주의는 군사력과 땅의 정복을 필두로 하였다면 현대의 식민주의는 금융, 산업, 그리고 정보의 힘을 앞세우고 있지 않은가? 만약에 이러한 끝나지 않은 식민주의의 그늘아래서 현실을 바라보고 이에 대한 메세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탈식민주의’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여기서 ‘탈’이라는 표현은 1960년대 이후, 유럽의 식민주의가 각지의 독립운동에 의해 종언을 고했다는 시각에 대한, 또는 식민이후주의라는 번역에 대한 저항이며 여전히 남아있는 식민시대의 효과적인 대안담론을 모색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언제나 식민주의라는 통치체제의 위에는 제국주의라는 정치이념이 자리잡고 있다. 제국주의와 식민통치의 가장 고전적이고 효과적인 예를 든다면 알렉산더가 이루었던 마케도니아 제국을 들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Alexander the Great) 타국이나 타지역의 부족들을 약탈하는 대신에 그리스문명을 소개하고 언어와 문화를 통일하여 그리스문명의 가치에 찬성하는 나라와 부족들을 흡수함으로 효과적으로 또한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팽창을 이루었다. 이를 전격적으로 받아들인 곳이 바로 로마였고 이후 로마가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공화정 중심의 국가에서 황제중심의 제국으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제국주의의 역사를 거꾸로 읽어본다면 제국주의는 민중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 일어났을 때 이에 대한 지배계급의 방어기제로 형성된 정치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각주:1] 과연 대표적으로는 마케도니아, 좀 더 과거로 가면 앗시리아와 바빌론제국, 로마 이후에는 대영제국 등으로 이어온 제국주의의 시대는 끝이났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의 시대를 Post-imperialism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로버트 영은 그런 의미에서 제국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식민주의 시대로부터 시작된 압제에 대한 저항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각주:2] 하지만 제국은 변했으며 세계 또한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저항의 담론은 현실에 대한 바른 통찰이 없으면 공허함에 그치게 된다. 탈식민주의는 변화된 제국과 식민의 시대에서 구체적 저항의 방법과 실천을 모색한다.

   탈식민주의, 바울과 다리놓기

   이와같이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에 대해 살펴보다 보면 이들이 성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된다. 먼저 이스라엘 신앙의 뿌리 자체가 이집트 종살이의 해방의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해방의 경험은 곧 야웨신앙의 중심이 되었고, ‘우르’라는 고대의 도시제국에을 떠나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아브라함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많은 학자들이 구약성서의 근간에 오경의 편집연대가 바빌론 포로기라는 것은 바빌론 제국의 종교와 문화적 식민으로서 신앙을 지키기 위한 저항이 바로 구약과 유대교 생성의 근원이라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구약은 바빌론이라는 제국하에서 신약은 로마제국 아래에서 편집되고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성서, 또는 기독교의 근본 뿌리가 바로 제국에 대한 저항임을 말하는 것이다. 제국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면 성서의 저항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화하며 저항의 담론을 뒤집어 지배의 담론으로 만들었고 이는 이른바 제국이라 일컬어지는 대영제국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므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코드는 성서를 읽는 여러 관점 중 하나라기보다는 수천년전의 성서와 현대의 우리의 해석을 역사적, 정치적으로 연결시켜주는 ‘마스터 코드’(Master Code)가 된다. 이 이야기가 새롭게 들리는가? 독재하에 한국을 뒤흔들었던 민중신학이 이야기한 민중의 시각에서 성서읽기가 바로 이것 아니었던가? 예수와 로마제국이라는 표현이 바로 이러한 시각이 아닌가? 여성신학, 해방신학, 흑인신학이 지칭하는 ‘압제자’에 대한 비판과 ‘억눌린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시아신학이 말하듯 서구로부터 이식된 서구적 신학의 카테고리로부터 자체의 문화적 코드로 신앙을 읽어내려 했던 ‘토착화 신학’이 하던 이야기가 아니던가? 결국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서구의 인문학계는 ‘탈식민주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가, 여성이, 그리고 민중이 외치던 방법으로 텍스트를 읽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론적 틀을 ‘탈식민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성서학’ (Biblical Studies)이라는 학문은 근대의 산물이다. 하나의 거대한 교회, 카톨릭시즘이 지배하던 중세의 교황권이 신학과 성서의 표준이 되던 시대가 종교개혁의 물결에 와해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성서를 읽고 이해하는 기준을 다시 찾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와중에 등장한 것이 바로 ‘해석학’이라는 학문인데, 과연 “어떻게 성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학문으로 시작된 해석학은 근대적 주체로서의 인간관과 함께, 성서의 해석의 단초를 인간에게 놓게 된다. 물론 교권의 권위와 교리주의의 힘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성서해석은 이성의 토대 위에서 이해될 수 있는, 또는 이해되어야만 하는 것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에 넓은 의미에서 ‘역사비평학’(Historical Criticism)의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이를 쉽게 말하면 바로 성서와 동시대의 다리를 놓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서가 쓰여질 당시의 상황이나 문화, 언어에 대한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성서 텍스트에 접근하여 그 메세지(Message)를 이해함을 통하여 현대에 성서가 말해질 수 있는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역사비평학’의 목적이라 할 것이다. 쉴라이에르마허에 따르면 이러한 비평적 읽기는 두가지 지평의 가능성으로서 가능해지는데, 하나는 인간의 정신적(Psycological) 지평과 문법적, 또는 언어적(Grammatical) 지평에 의해서이다. 즉, 인간은 텍스트를 통하여 시대와 시간을 뛰어넘어 정신적인 공감대를 저자와 형성하고 언어적 읽기 (문법적, 문학적)를 통하여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믿음은 신비평(New Criticism)- 역사적, 사회적 배경 이해를 전적으로 배재하고 텍스트 자체가 함의하는 뜻을 읽어보려는 다양한 시도-에 와서 와해되기도 하고, 그 이후 새롭게 재구성되기도 하면서 발전 또는 지양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성서학에는 남아있다. 적어도 ‘어떻게’ 성서를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답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왜’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쉬운 듯하면서 힘든 이 질문. ‘왜’ 성서를 읽어야 할까? ‘왜’ 성서에서 무엇인가를 찾아야만 할까? 성서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른바 ‘진리’라는 것을 담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소위 넓은 의미에서 ‘축자영감설,’ 즉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므로 신자는 그 안에서 삶의 표준과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라고 현대인들에게 주장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성서가 도스토에프스키의 ‘죄와벌’ 또는 현대의 인간의 삶의 군상과 현실을 반영하고 또한 승화시킨 아름다운 예술작품들보다 더 심오한 삶의 진리를, 의미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보통 진보진영에서 이에 대한 질문으로 흔히들 성서는 이미 성스러운 텍스트(Sacred text)로써 때로는 해방의 단초로서, 반대로 억압의 증거로서 사용되기 때문에 성서비평학의 책임은 무한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필자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서를 현대에서 강력한 진리의 계시로써 읽을 수 있을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으려면 종교적 믿음과는 다른, 시간의 넓디 넓은 틈을 연결시킬 수 있는 주제(Theme)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민중신학이 민중의 역사를 구약의 출애굽에서 찾아서 읽은 것처럼, 갈레아의 예수를 현시대의 민중 안에서 재발견한 것처럼 역사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강한 고리가 성서학에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민중의 관점, 여성의 관점, 흑인의 관점, 노예의 관점, 아시아인의 관점이 성서를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주제로 근대와 그 이후의 시대에 새롭게 대두되었고 그들을 통해 성서가 새롭게 읽혀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세상은 짧은 시간에 참으로 많이 변해버렸다. 지배와 압제는 스스로를 은폐하고 변화시켜 과연 누가 지배자이고 누가 압제자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버렸다. 전태일 열사를 장렬한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처참한 환경의 방직공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는 저개발국의 어느 곳으로 숨어버렸고, 우리는 값싸고 질좋은 옷을 발견했을 때 횡재한 듯 기뻐하며, 그 옷에 누구의 피가, 아픔이, 그리고 죽음이 숨어있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삼성공화국을 욕하면서도 삼성의 신형 핸드폰을 조금이라도 값싸게 사기 위해 밤을 세워 인터넷을 누빈다. 현재에도 우리는 과거에 미국의 누군가에게 당했던 어떤 짓을 필리핀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행하고 있다. 언뜻 보면 나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종교, 정치, 경제들이 거대한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개인들을 수많은 연결고리들 안에 밀어넣고 있으며 우리는 수많은 다른 이름들과 관계들로 규정되고 파편화되고 있다. 결국 세계는 너무나 복잡하여 하나의 관점으로만 해석되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그러한 세계에서 아직 식민주의는 끝나지 않았다는 탈식민주의의 사자후는 꽤나 설득력있다. 복잡한 세계를 단순하게 보기보다는 복잡한 관계속에서 간명한 구조를 가지고 세계를 보기 위한 탈식민주의 이론은 더욱 다양해지고 복합해져왔으며, 결국 탈식민주의는 지역적인 담론이기보다는 전지구적 담론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 그리하여 탈식민주의는 끊임없이 초국가적 사회정의를 지향하면서도 지나치게 이상화된 정의를 지양하는 학문으로 발전되게 되었다.[각주:3] 지금의 세상이 복잡하다면 성서의 시대는 단순했을까? 그 복잡성의 정도를 따진다면 현대를 따라가기 힘들겠지만 성서의 세계 또한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다. 예수가 논쟁을 벌이던 바리새인이 누구이던가? 로마제국의 앞잡이였던가? 아니 오히려 종교적 담론을 통해 소박하게나마 혁명을 꿈꾸던 세력이 아니었던가?(톰 라이트에 대한 웹진 참조) 예수의 제자들은 가장 낮은 민중의 정체성을 나누었다고들 하지만 복음서의 여러 여성들이나 군중들에게 군림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훗날 예수의 우편과 좌편을 차지하려고 싸움을 하지 않았던가? 사두개인들은 친일파와 같은 기회주의자들었던가? 아님 유대종교라도 로마로부터 지키려 했던 현실주의자였던가? 과연 그러한 상황에 예수는 어떤 형식의 복음을 말했던가? 그것이 ‘복음’이 되었다면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도 분명 뜻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이러한 여러가지 질문에 답하려 하는 것이 탈식민주의와 신약성서, 또는 바울신학이라 할 것이다.

   오리엔탈리즘 또는 유대주의라는 허상

   이전의 웹진의 원고들이 이른바 NPP(New Perspectives on Paul), 바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중심으로 쓰여져왔고, 톰 라이트 또한 이와 먼거리에 있는 학자는 아님을 설명하였다. 필자는 이 새로운 관점들과 탈식민주의 관점이 그 줄기를 함께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새관점주의의 시작으로 일컬어지는 E. P. 샌더스가 말하고자 했던 근대초기의 유대주의에 대한 연구가 유대인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반유대주의(Anti-Semitism)와 기독교적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결국 샌더스는 유대주의에 대한 이러한 여러가지 오해들이 유대주의를 기독교 경전의 뿌리이면서도 기독교교리와는 완전히 다른 종교로 만들었음을 밝혔다. 물론 중요한 논쟁은 ‘이신칭의’나 ‘언약적 율법주의’등에서 불붙었지만, 샌더스의 업적중의 하나는 완전히 객관적인 학문으로 보였던 성서학이 어떻게 지배자의 논리를 정당화 시키고 보호하는지를 밝힌것에 있다. 샌더스의 책이 나온 1970년대말은 시오니즘으로 무장한 일련의 유대인들이 이미 이스라엘이라는 독립국을 손에 넣었고, 자본의 힘을 등에 엎은 유대인들과 우수한 유대계 학자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던 시대이므로, 이러한 샌더스의 업적인 나올 정치, 경제적 배경이 무르익었던 때였던것으로 보인다.[각주:4] 이른바 허상으로 만들어진 유대교에서 벗어서 (샌더스에 따르면) 바울을 바라보는 것이 새관점주의라는 엄청난 여파를 낳았다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또는 지배자의 논리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허상들은 없을까? 그것을 벗으려할때 가지게 되는 또다른 바울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은 없을까? 바로 이러한 통찰이 바울에 대한 새관점과 함께 탈식민주의를 통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진리에 대한 탐구의 가능성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제임슨 던과 톰 라이트의 글들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시대에서 바울의 복음이 어떤 의미로 나타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임스 던에게는 민족우월주의를 넘어서려는 바울의 노력을, 톰 라이트에게서는 제국의 시대에서 새로운 신앙 공동체의 도래에 대한 바울의 목회적 노력이 핵심이었다고 한다면 바야흐로 탈식민주의에서는 제국과 자본주의, 신식민주의 아래서의 신앙공동체에 대한 바울의 메시지가 주안점이 될 것이다. 먼저 탈식민주의는 에드워드 사이드, 가야트리 스피박, 호미 바바라는 탁월한 이론가를 만나게 되면서 샌더스로부터 시작된 지배층의 논리에 대한 더욱 깊은 연구와 이른바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재발견하게 되는데 이를 간단히 살펴보면서 바울과의 관계를 고찰해보자. 
   1970년대가 저물어갈 무렵, 팔레스타인 출신의 사이드라는 학자가 출판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책이 인문학계를 뒤흔들게 된다. 사이드는 미쉘 푸코의 담론(discourse)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근대까지의 ‘오리엔트’(Orient)에 대한 서구의 연구가 객관적 연구의 결과라기보다는 서구의 중동과 아시아에 대한 일종의 허상에 지나지 않음을 역설했다. 푸코는 그의 유명한 담론에 대한 연구에서 당시까지 일종의 사적 또는 공적인 말하기나 여러 종류의 텍스트를 뜻하던 담론(discourse)라는 표현을 지식(Knowledge)이라는 영역으로 사용한다. 이른바 우리가 당연한 것이라고 알고 있는 ‘지식’이 유통되는 담론이라는 장은 자유롭게 지식들이 생산, 유통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곧 어떠한 것이 지식으로 인정되고 인정되지 않는지 결정한다. 근대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교육기관의 등장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던 인간이 발전시켜 온 기술과 학문들을 대학이라는 기관이 모으고, 분과학문별로 나누어 독립시키면서 근대적 스콜라쉽(Scholarship)을 발전시키기에 이른다. 언뜻 보면 지식과 학문이 전근대적인 종교와 왕권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적 개체로 성장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을 보면 근대의 다양한 힘과 권력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거대한 하나의 지식산업을 형성하여 힘의 논리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의학’(Medicine)을 들 수 있다. 보통 우리는 의학이 하나의 순수한 지식이고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전문분야라고 생각을 하지만 푸코식으로 보면 의학이라는 것은 치료(Healing)라는 것이 무엇이고, 질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관장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세계와 어떻게 관련맺어야 할지를 규정한다.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피해야 하며, 어떻게 먹고 생활할지를 조정한다. 놀라운 것이 이러한 엄청난 힘이 규제와 억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설득의 방법을 토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한의학이 대학을 통해 전파되고, 하나의 정치적 힘을 가진 단체로 성장하기 전에는 의학은 한의학을 하나의 미신으로 규정하고 의학의 분야에서 밀어냈었다. 수천년의 역사와 철학을 내포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담지한 학문이 단순한 미신과 질낮은 기술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단계가 순전히 자연스럽게 근대의 시대에 이루어졌다. 사이드는 이러한 담론이론을 가지고 와서 중동과 아시아에 대한 서구인의 지식이라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상에서 이루어져왔음을 고발하고,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구인들은 오리엔트를 지식의 영역에서 지배하고 자신들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반명제로서 사용해 왔음을 보았다.
   푸코의 이론을 이용한 사이드의 중동과 아시아를 향한 지식담론에 대한 비판은 거의 최초로 서구의 학문이 피지배 국가와 문화에 대한 연구에 대해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으며 일견 서구사회에서 주변담론으로 치부되던 중동과 동아시아에 대한 학문들이 다시금 탈구축되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것이 신약성서학에 끼친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는데, 첫째, 서구성서학이 자신들의 논리와 성서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피식민지인들의 신앙과 문화에 영향을 끼쳤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제국의 그늘아래에 피식민인으로 살아가던 유대인들이 남긴 성서의 전통이 제국과 식민주의의 영향을 감안하여 읽혀져야 한다는 인식을 낳았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웹진에서 설명할 호미 바바(Homi Bhabha)의 이론이 중요한데, 기독교문화를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보는 시각에서 유대문화와 제국의 문화 사이에서(in-betweeness) 생성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셋째,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문화에서 성서가 어떻게 응답하는지, 복음은 그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읽는 시도가 더욱 힘차게 개진되었다. 넷째, 근대의 제국주의가 낳은 산물인 인종차별, 여성차별, 계급차별에 대해 열린 눈으로 성서를 다시금 들여다보는 시도가 행해지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웹진에서 다룰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J. C Young, Post-colonialism: An Introduction (Oxford: Blackwell Publishers, 1999), 28. [본문으로]
  2. Ibid., 27. [본문으로]
  3. Ibid., 58. [본문으로]
  4. 유대인이라고 묶어서 부를 수 없음을 유의하자. 시오니즘을 주창하는 유대인들이 있는 반면 그에 대해 엄청난 비난을 퍼붓는 유대인들도 있다. 한국인이 그렇듯이 유대인들또한 무한한 다의성 -Multiplicity-을 가지고 있음을 유의하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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