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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주목하라, 로자바(Rojava)를! ISIS와의 전쟁 최전선에 서 있는 저 유토피안적 사회 공동체를! (서명삼)

시평

by 제3시대 2016. 1. 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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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하라, 로자바(Rojava)를! 


ISIS와의 전쟁 최전선에 서 있는 저 유토피안적 사회 공동체를! 

 



서명삼

(University of Chicago, 종교사회/인류학 박사과정수료)




    0. 먼저 양해부터 구하고 싶다. 원래 계획했던 대로라면, 이번엔 1920년대 미국에서 (정치)지도자(the elite)와 대중(the public)간의 바람직한 관계설정 문제를 둘러싸고 존 듀이 (John Dewey)와 월터 리프만 (Walter Lippmann) 사이에 벌어졌던 논쟁을 되짚어 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지난 몇 개월 사이 프랑스와 미국에서 연달아 벌어진 테러리즘과 그에 대한 반발로 다시금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반이슬람주의의 광풍을 접하면서, 기존의 계획에서 다소 벗어날지라도 어떤 식으로든 이슬람 극단주의와 서방세계에서의 뿌리깊은 오리엔탈리즘을 소재로 글을 써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지난 11월 말 뉴욕타임즈 매거진에 게제된 “ISIS의 뒷마당에서 피어나고 있는 세속적 유토피아의 꿈 (A Dream of Secular Utopia in ISIS’ Backyard)[각주:1]”이라는 신선하고도 충격적인 르포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다루어진 내용이 다분히 시의적절할 뿐만 아니라 알린스키의 주민조직운동이나 급진적 실용주의 전통과도 어느정도 상응하는 면이 있다는 판단하에, 이번에는 저 기사를 길잡이 삼아 시리아 북부 로자바에서 탄생한 이 이상적 정치-사회 공동체에 대해 소개해볼까 한다.



    1. 우선 로자바의 지정학적 위치부터 확인하고 넘어가자. 위의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로자바는 시리아 북동부 끝단에 동서로 가늘고 길게 뻗어있는 지역으로 북쪽으로는 터키와 그리고 동쪽으로는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런데 사실 ‘로자바’는 원래 쿠르드어로 ‘서쪽’을 뜻하는 단어다. 정확한 역사적 연원은 불분명하지만 쿠르드족은 천년의 세월 넘도록 오늘날의 터키, 시리아, 이라크, 그리고 이란에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뿔뿔이 흩어진 채로 살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쿠르드 민족의 입장에서 볼 때, 시리아 북동부는 ‘로자바예,’ 즉 ‘서쪽에 있는’ 쿠르드족 영토에 해당하는 곳이다. 하나 이런 지리학적인 용어상의 혼란이 시사하듯이 쿠르드족은20세기 들어 탈식민지 시대를 거치는 중에도 주변의 여러 나라들과 달리 끝내 자신들만의 독립된 민족-국가 (nation-state)를 건설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쿠르드족은 각종 차별과 견제와 탄압을 받으면서 ‘국가’없는 소수 ‘민족’으로 근근히 그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오늘날 로자바에 거주하는 시리안 국적의 쿠르드족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힘겨운 상황에 처해있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로자바의 주민들은 아사드 (Assad)가의 세습 독재 정권에 반대해 시리아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반군 연합에 가입해 정부군과 내전을 진행중이다. 또, 이라크에 뿌리를 둔 ISIS 세력이 이 혼란을 틈타 시리아로 그 세력을 확장하면서 로자바는 ISIS와도 크고 작은 게릴라전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자국의 쿠르드 소수 민족을 억압해온 터키 정부 역시 로자바에게 적대적이긴 마찬가지다. 시리아 내전이 터지고 ISIS가 기승을 부려 시리아 난민이 급증하는 상황에서도 터키는 쿠르드족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경계 태세를 조금도 늦추지 않고 있다.


    2. 그런데 이러한 전쟁통 한가운데서 선뜻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몇년 사이에 로자바 지역에서,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 PYD (Partiya Yekitia Demokrat; 민주연합당)의 주도하에 시리아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여러 집단이 연합해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아프린 (Efrin), 코바니 (Kobane), 그리고 자지라 (Cizire) 이 세 행정구역(canton)에서, 성별, 민족, 종교, 계급에 관계없이 일정한 나이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주요한 정치적-사회적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급진적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험이 실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슬람 근본주의와 가부장적 위계질서가 사회문화 전반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걸로 잘(못) 알려져 있는 중동 지역의 한복판에서, 게다가 국제사회에서 테러리스트 관련 집단으로 분류되어 군사적-경제적 제제를 받고 있는, 그리고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터키의 아르도간 정권, 그리고 무엇보다도 ISIS와 상시적으로 교전 상태에 있는, 바로 그 로자바에서 말이다.


    3. 워낙 최근의 일인 데다가 서로 상충하는 내용의 보고들이 떠돌아 다니는지라 다소 조심스러운 면이 없진 않지만, 지난 2014년 1월 공식 발표된 로자바의 <사회계약헌장>[각주:2]을 토대로 거기서 시행되고 있는 급진 민주주의 제도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다음과 같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이 ‘계약’에 참여하고 있는 복수의 민족들이 — 쿠르드인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아랍인, 앗시리아인, 그리고 아르메니안인 등 여러 다른 민족도 그 구성원에 포함된다고 한다 — 자주 독립 ‘국가’의 건설보다는 오히려 반국가주의, 반중앙집권주의, 그리고 정교분리의 원칙에 입각해 각 지역사회에 조직된 민회 혹은 평의회 (municipal councils)를 기본단위로 한 연합체 (confederation) 구성을 그 정치적 이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민족-국가의 모델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시각에서 보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인데, 아무튼 로자바의 헌장은 입법-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모든 기구는 물론이거니와 민병대와 민간치안부대의 권한과 의무에 대해서까지 자세히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국가 체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로자바의 주민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시리아 ‘국민’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지역 내에서 아사드 정권에 충성하는 집단과도 긴장 속에서 불안정한 동거를 하고 있다. 굳이 설명을 시도해보자면, 로자바는 ‘국가’라는 제도가 가진 현실적 힘을 어느정도 인정해주고 있긴 하나 궁극적으로는 없어져야 할 것 혹은 자치권만 획득하면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싶다. 


    4. 이밖에 로자바의 사회-경제적인 정책도 눈여겨 볼 지점들이 많다. 일단 성평등 측면에서, 로자바의 사회헌장은 모든 정치 단위에서 (지방 평의회에서부터 연합 행정위원회까지) 남녀 어느 한쪽이든 최소한 40%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도록 명시해 놓았다. 더불어 ‘공동통치 (co-governance)’라는 개념을 도입해 모든 정치 직책을 여성과 남성이 한 짝을 이루어 맡는 방식도 제도화해 놓았다. 이러한 철저한 양성평등주의는 사방 (社防; 국방이 아니라)의 영역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로자바의 여성주의자들[각주:3]은 가부장적 위계질서와 성적 차별이 가정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 무력 분쟁에서도 똑같이 발현된다고 보기 때문에 진정한 여성 해방을 위해선 자신들이 직접 총을 들고 종종 남성의 영역으로 일컬어지는 전쟁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YPJ (로자바의 민병대) 내에서 여성으로만 구성된 부대[각주:4]는 ISIS와의 전투에서 중요한 전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성의 경우 ISIS에게 포로로 잡히면 성적노예로 전락되기 쉽상이라 이들 여성부대원들은 정말 생사를 가리지 않고 — 대부분 잡히기 전에 스스로 자결을 택한다 — 전투에 임한다고 한다. 그런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유명한 ISIS의 전투원들은 자신들이 여성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성차별적 신념[각주:5]을 갖고 있어 로자바의 여성민병대와 맞닥뜨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로자바의 경제 정책을 짧게 언급만 하자면, 로자바에서는 개개인의 사적 재산을 인정하지만 모든 토지와 건물, 그리고 천연자원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공개념을 적용해 전 사회의 공동재산으로 규정해 두었다. 또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로자바는 자본논리에 따른 개발지상주의에 반대하면서 생태주의와 지속가능한 개발 방식에도 큰 관심을 기울인다.



 

    5. 그렇다면 로자바의 이 유토피아적 사회에 대한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가? 이를 제대로 설명하자면 따로 긴 얘기를 풀어놓아야 할 테지만, 간단히 줄여 말하면 이렇다. 이 실험의 주체인 로자바의 PYD (민주연합당)는 이웃나라 터키에서 활동하고 있는 PKK (Partiya Karkerên Kurdistanê; 쿠르드 노동자당)의 시리아측 파트너라 할 수 있다. 70년대 말부터 2천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PKK는 맑스-레닌-마오이즘의 영향 아래에서 터키 정부를 상대로 게릴라전와 테러리즘을 동원해 가열찬 무장독립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다가 1999년 당의 최고 지도자인 압둘라 외잘란 (Abdullah Öcalan)이 체포되어 터키에 있는 이므라레 (Imrali) 섬 한복판의 감옥에 수감된 이후 PKK는 급격한 노선변경을 하게 된다. 외부 세상과 거의 완벽하게 차단된 상태에서 외잘란은 오직 독서를 통해 앞으로 쿠르드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해서 다시금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던 와중 2002년 경 우연히 미국의 좌파 유대인 지식인 머레이 북친 (Murray Bookchin, 1921~2006)의 저작들을 접하게 된다. 그때부터 북친의 사상에 매료된 외잘란은 기존의 맑시즘 전통에서 탈피해 사회 생태주의, 여성주의, 급진 민주주의, 코뮌주의 (communalism), 그리고 민주적 연방주의 (Democratic federalism) 등의 사상들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외잘란은 (변호사를 통해) 감옥 밖에 있는 자신의 동지들에게 PKK의 운동 노선을 북친의 사상에 비추어 전면적으로 수정할 것을 제안하는 한편, 2004년에는 미국의 버몬트주에 거주하고 있던 북친과 접촉해 중동의 한복판에서 그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사회적 공동체가 탄생중에 있음을 알리기까지 한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지금 로자바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토피아적 정치-사회적 실험은 외잘란을 매개로 해서 북친의 사상이 중동의 땅 한가운데서 마침내 실현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 로자바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점차 외부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슬라보예 지젝[각주:6]이나 데이비드 그래버[각주:7]같은 서구의 여러 좌파 지식인들도 이 쿠르드계 시리아인들의 투쟁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했다. 아사드 정부는 러시아와 (같은 시아파 이슬람 국가인) 이란이라는 든든한 우방을 갖고 있고, 터키는 EU의 일원으로 서방 세계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ISIS는 (구체적인 확증은 없으나) 터키를 비롯한 수니파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암묵적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는 얘기가 떠돈다. 이 막강한 정치-군사 세력들 틈바구니 속에서 시리아의 쿠르드족은 홀로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면서도 인류의 고귀한 이상을 향해 뚜벅뚜벅 전진하고 있다. 물론 빛이 있으면 그늘이 생기기 마련이듯, 로자바에 대해 몇가지 우려할 만한 지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권단체들[각주:8]은 쿠르드족 중심의 민병대나 민간치안부대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나 ISIS와 전쟁 중인 상태에서 정부나 ISIS의 끄나풀들을 색출하거나 그들이 은신하고 있는 마을을 공격할 때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폭력을 사용한 사례들과 18세 미만의 어린 소녀/소년들이 성인과 함께 종종 총을 들고 전쟁에 참가하고 있는 사례를 들어 로자바 역시 인권침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지적해 왔다. 또한 외잘란에 대한 쿠르드족의 절대적 신뢰도 다소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근 15년 넘게 감옥에 정치범으로 갇혀있는 상황에서 외잘란은 끊임없는 집필 활동을 통해 터키와 시리아에 있는 PKK와 PYD 세력의 정신적 지주이자 실질적인 지도자로 군림해왔다. 그래서인지 로자바에 관련된 기사를 찾다보면 공식 행사장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집에서도 거의 예외없이 외잘란의 그림 혹은 사진이 벽의 한 복판에 걸려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이 외잘란에 대해 갖고있는 존경심이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나, 그에 대한 경외감이 자칫 개인숭배 (cult of personality)로 흐르게 될 경우 로자바가 내걸고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원리마저 적잖게 그 빛이 바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분명 귀기울여 들어야 할 지적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염려가 되는 건, 국제적으로도 거의 고립되어 상황에서 게다가 다양한 적들과 힘겨운 싸움들을 이어가면서 로자바가 과연 얼마나 자신들이 세운 고귀한 이상을 스스로 지켜나가고 실천해나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 (야멸찬 소리로 들릴 지 모르겠으나) 피와 살덩이로 이루어진 외부의 적과 싸우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일 수 있다. 자본과 권력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에 대항해서 이들 로자바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적들과도 어쩌면 ISIS를 상대로 한 싸움보다 훨씬 더 어려운 전쟁을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기대와 염려를 가득담아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7. 주목하라, 로자바를!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 웹진 <제3시대>

  1. http://www.nytimes.com/2015/11/29/magazine/a-dream-of-utopia-in-hell.html?_r=2 [본문으로]
  2. http://peaceinkurdistancampaign.com/charter-of-the-social-contract/ [본문으로]
  3. https://cambridge.academia.edu/DilarDirik [본문으로]
  4. https://www.facebook.com/Kurdish-Female-Fighters-YPJ-1814267612131127/?fref=photo [본문으로]
  5. http://www.mirror.co.uk/news/world-news/angels-death-isis-savages-fear-6275913 [본문으로]
  6. http://www.newstatesman.com/world/middle-east/2015/12/slavoj-zizek-why-we-need-talk-about-turkey [본문으로]
  7. http://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4/oct/08/why-world-ignoring-revolutionary-kurds-syria-isis [본문으로]
  8. https://www.hrw.org/sites/default/files/reports/syriakudrs0614webwcover.pdf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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