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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동물들과 아이들에겐 국경이 없다 (유경종)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6. 1. 2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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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과 아이들에겐 국경이 없다

 



유경종

(본 연구소 회원)



    얼마 전 한 도서관 사서로부터 도서관에서 개최하는 행사 홍보 기사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동물과 관련한 글을 쓰는 재일한국인 3세 작가가 도서관을 찾아와 강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자료로 모아 건네준 책들은 무척 흥미로웠다. 몇권의 논픽션과 동화책을 하룻밤동안 다 읽은 다음 나름 정성을 들여 행사를 알리는 기사를 썼다. 그리고는 강의가 있는 날 도서관으로 가서 직접 작가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이야기는 교토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세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심강만의 이야기다. 동시에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동물과 관련된 주목할만한 논픽션과 동화를 쓰고 있는 작가 김황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둘은 55세로 나이도 같고 키도 같다. 다만 아저씨 심강만은 재일조선인 3세이고, 작가 김황은 재일한국인이다. 먼저 심강만의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좀 길지만 한번 읽어 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기를 바란다.





* 친척들과의 이별과 맞바꾼 출생


    심강만의 할아버지는 경남 진주가 고향이다. 십대 후반인 1930년대에 강제 노역 노동자로 끌려 가 일본 교토 인근의 망간 광산에서 노예처럼 일을 하게 된다.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전쟁이 끝난다. 당시 일본에는 200명의 조선인들이 있었는데 다수가 귀국하지만 65만명은 일본땅에 남게 된다. 그 대부분은 한국으로 돌아가도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이들이었다. 미국이 주축이 된 연합군 총사령부는 귀국하는 조선인들에게 일화 1000엔만 가지고 나가게 했단다. 심강만의 할아버지가 일본에 남은 까닭은 일본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가족들을 굶어 죽일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삶도 순탄하지 않았다. 값싼 미국의 광물이 수입되면서 망간 광산은 폐쇄되었다. 마침 그 즈음 조국에서 손짓이 왔다. 문제는 그 조국이 북한이라는 것. 재일조선인(아시겠지만 남한 사람도 북한 사람도 아닌, 해방 이전의 조선에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있는 이들이 곧 재일조선인이다)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과 무대책으로 일관한 남한과 달리 북한은 일본에 남아 있는 조선인들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보였다. 물론 체제 경쟁과 정치적 선전의 목적이었다고는 해도 말이다. 그런 까닭에 재일조선인 대부분이 남쪽에 고향을 두고 있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1959년부터 북송 사업이 시작된 이래 거의 십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북녘땅에 있는 조국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1960년 심강만의 할아버지도 모든 가족을 데리고 북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이 또한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십대 때 끌려와 망간 캐는 일밖에 모르던 조선 청년이 어느새 식구들이 줄줄이 딸린 무직자 가장이 되었는데 달리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하필 그 때 첫째 며느리(심강만의 엄마)가 임신중이었다. 낯선 곳에서 아이를 낳는 게 두려웠던 심강만의 엄마는 북송선을 나중에 타겠다고 고집을 피웠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뱃속의 심강만은 일본에 남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모 삼촌 등 나머지 아홉 식구가 모두 북송선에 몸을 싣는다. 가족들과 헤어지며 심강만의 아버지는 동생에게 은밀한 부탁을 한다. 편지 속에 몰래 약속된 사인을 표시해서 그 곳이 정말 살만한 곳인지 아닌지를 알려달라고 말이다. 얼마 후 북으로 간 동생으로부터 편지가 온다. 그 안에는 형과 약속한 사인이 숨어있었다. 그 사인 뒤에서 동생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형, 이곳은 지상 낙원이 아니예요. 형은 오지 마세요... 북녘행을 포기하며 심강만의 아버지는 가족들과 영영 이별을 하게 된다. 그렇게, 모든 친척들과의 엇갈림을 담보로 태어난 아이가 심강만이었다. 


* 어린 시절의 유일한 친구


    일본에 남은 심강만의 가족들은 이웃들로부터 경멸의 대상이 된다. 아버지가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며 근근이 먹고 살았지만, 가족 모두가 북한으로 넘어간 간 집이라는 눈총은 늘 따라다녔다. 심강만이 학교에 입학하자 아이들은 김치냄새 나는 녀석이라며 심강만을 따돌렸다. 간첩일지도 모른다는 수근거림도 들렸다. “조선놈은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늘 들으며 학교에 다녀야 했다. 심강만의 유년 시절은 심한 콤플렉스와 자괴감만이 가득한 무채색의 세계였다.

    그런 심강만에게 구원이 찾아온다. 한국에서 친구 한 명이 전학을 온 것. 그 친구의 이름은 김황이었다. 그는 운동을 잘 했고, 싸움도 잘 했다. 무엇보다도 김황은 스스로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는 당당한 아이였다. 김황은 일본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심강만을 돕는다. 그리고는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다. 아무리 왕따를 당해도, 아무리 세상이 지옥같아도, 정말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단 한명의 친구만 있으면 견딜만한 게 또 세상이다. 심강만에게 김황은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의미를 찾아 준 친구였다. 비로소 심강만은 사람으로서의 자존감을 처음으로 품게 된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자 심강만은 친구 김황처럼 한국말을 잘 하고 싶어서 민족학교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는 기쁜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김황에게 전한다. “김황아, 나 어제 아빠하고 얘기했는데 중학교는 민족학교로 가기로 했어.” 하지만 기대는 빗나갔다. 왠일인지 다음날부터 김황은 심강만을 멀리 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김황의 아버지는 민단계열의 한국 학교를 세우기 위해 한국에서 파견 온 교장이었다. 아들이 조총련계 민족학교를 가겠다는 친구랑 사귀는 것을 봐 줄 리 만무한 시절이었다. 결국 김황은 단 하나의 친구와 멀어지게 된다. 세상은 다시 깜깜한 지옥이 되었다. 그 사건은 심강만에게 너무나도 큰 상처로 남는다.

  심강만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까지도 교토의 조선학교, 다시 말해 조총련계 민족학교를 다닌다. 같은 처지의 친구들끼리 함께 생활한 민족학교 시절의 생활은 유년시절에 비해 훨씬 행복했다. 그러면서 심강만은 자연스럽게 북한을 자신의 뿌리로, 정치적 조국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한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어릴 적 가슴 아픈 이유로 멀어져야 했던 친구 김황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 사육사의 꿈을 포기하고 세탁사가 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차별과 좌절은 다시 시작된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았던 심강만은 동물원 사육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조선국적 신분으로는, 그리고 민족학교 졸업장을 가지고는 사육사 시험에 응시조차 불가능했다. 공립 동물원에서 일해야 했기에 사육사는 공무원 신분이었다. 당시만 해도 민족학교는 학력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모든 권리에서 배제된 제도권 밖의 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심강만은 동물원 사육사의 꿈을 접고 조선민족학교의 교사가 된다. 민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그는 남다른 지도력을 발휘해 탁구부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지도한다. 그가 지도한 탁구부가 교토시 학생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하지만 민족학교에게 출전권을 주어지지 않아 전국대회 출전 자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전국의 민족학교끼리 모여 탁구 대회를 열어 우승컵을 차지한다. 그리고 우승자의 특권으로 탁구부 아이들을 데리고 북한땅을 밟는다. 이 때 북쪽의 탁구 국가대표 선수들과도 안면을 트게 된다.  

   1991년 남북 통일팀이 지바에서 열린 국제탁구대회에 참가한다. 우리에게는 현정화와 리분희의 복식조로 기억되는, 영화 <코리아>의 소재가 된 바로 그 대회다. 이 때 심강만이 통역으로 활동한다. 그는 주최측 일본에서 선발한 통역이었지만, 남과 북의 선수단을 넘나들며 보이지 않게 그 둘 사이의 비공식적 만남과 접촉을 매개하는 역할을 재밌게 해 낸다.

   심강만은 30살 때 교사를 그만둔다. 연년생으로 쪼로록 태어난 세 명의 아이들을 기르기 위해서는 좀 더 안정된 직장을 찾아야 했다. 심강만은 스스로 결심한다. 나는 이 세 아이의 아빠로 행복한 삶을 사는 걸 내 남은 생의 목적과 의미로 삼으리라. 그때 아버지가 건강에 문제가 생겨 새탁소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심강만은 아버지의 세탁소를 이어받기로 결심하고는 세탁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관련기관을 찾아간다. 그런데 웬걸, 민족학교를 졸업한 재일조선인에게는 세탁사 자격증조차 주지 않는 것이었다. 심강만이 바란 건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저 동네에서 열심히 다림질하며 장사할 수 있는 세탁사가 되겠다는 거였다. 심강만은 차별적 행정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편지를 써서 직접 내무성 장관에게 보냈다. 다행히 장관이 응시해도 좋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렇게 심강만은 내무성 장관의 특별 편지를 통해 자격증을 취득한 첫 번째 세탁사가 되었다. 비로소 세 아이를 먹여 살릴 안정된 호구지책을 얻게 된 것이다.


* 심강만, 스스로 김황이 되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해소되지 않았다. 동물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국적을 이유로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에 대해 뭔가를 간절히 외치고 싶었다. 그는 결심한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자. 그래서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세상에 대해 말하면서, 아울러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차별과 불평등을 호소하자. 더 이상 재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꿈을 접어야 하는 아이들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은 목소리라도 내 지르자! 

    막상 작가가 되려고 결심했지만 앞길은 막막했다. 민족학교를 다닌 탓에 일본어도 세련되지 못했고, 그렇다고 조선말도 완벽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작가로서 빠른 시일에 성공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쿨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긴 안목으로 3단계 계획을 세운다. 세탁소일을 하면서 짬짬이 공부를 하고 글을 써서 35세에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고, 40살이 되기 전에 첫 책을 내고, 45살에는 남들이 알아줄만한 상을 하나 쯤 받고, 드디어 50살에는 세탁소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독립하기로 말이다. 

    제2의 인생을 출발하며 그는 또 하나의 선택을 한다. 작가로서의 제 2의 인생을 상징할만한 필명을 갖기로 한 것이다. 그가 선택한 필명은 바로 하나밖에 없었던 유년시절의 친구, 김황이었다. 어릴적 자신에게 우정과 선의를 처음으로 베풀어 준, 하지만 너무도 안타깝게 멀어질 수 밖에 없었던 친구. 심강만은 그 자신이 김황이 돼 버리기로 한다. 그 이름 안에는 자신을 사람답게 대해 준 한명의 친구에 대한 고마움, 친구의 이름 앞에 부끄럽지 않은 진실하고 작품을 쓰리라는 다짐, 그리고 언젠가는 그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까지도 담겨 있었다. 

    심강만, 아니, 작가 김황은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까? 첫 번째 약속은 그리 성공적으로 이루지 못했다. 40세에 그는 알뜰히 모은 돈을 털어서 자비 출판을 하지만 책은 겨우 300여 부 팔린다. 하지만 두 번째 약속은 얼추 비슷한 시기에 제대로 지켰다. 마흔 여섯 되던 해에 그의 책 <코끼리 사쿠라>는 일본 논픽션대상 최우수 작품상을 받는다. <코끼리 사쿠라>는 일본의 한 동물원이 폐원하면서 한국의 서울대공원으로 이사를 가게 된 사쿠라라는 이름의 코끼리의 행적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장난꾸러기 코끼리 사쿠라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동물을 매개로 한 한국과 일본의 교류의 역사를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사려 깊게 되짚는 흥미로운 책이다. 책 전반에 흐르는 김황의 섬세하면서도 친절한 시선이 따뜻하게 전해지는 책이기도 하다. <코끼리 사쿠라>가 계기가 되어 김황은 한국과의 인연을 시작한다. 50살에 세탁소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독립하겠다는 세 번째 꿈 역시 55살인 현재 절반만 성취했다. 매일 가게에 매여야 하는 세탁소는 얼마전 그만두었다. 하지만 글만 써서 먹고 사는 일은 여전히 언감생심이라 아내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먹고 산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자유롭게 글을 쓰기 위해 동물들을 만나러 다닐 수 있어서 만족스럽단다.


* 호적에서 나와 한국 국적을 택하다

 

   한국과의 교류가 깊어지면서 김황은 또 다른 선택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을 자유롭게 오가며 한국의 학자, 작가, 출판업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려면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게 장애가 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조선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로 결심한다. 김황이 자신의 결심을 말하자, 그의 부모는 대노한다. 어머니는 심지어 부엌에서 칼을 들고 와 국적을 바꾸려면 니 에미를 찌르고 가서 바꾸라는 말까지 했단다. 그 말 앞에서 김황은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단다. 굳이 지역적 연고를 따지자면 남쪽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들이 왜 대한민국에 대해 그토록 격렬한 거부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일까? 김황은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북으로 간 형제들에 대한 미안함과 의리, 또 하나는 마이너리티로 살아온 이들의 뿌리 깊은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강렬한 자기 방어 본능, 그리고 남한 정부에 대한 뼈에 사무친 서운함 등이 그것이라는 것. 

   김황은 결국 부모의 호적에서 독립하고 나서(좋은 말로 독립이지 호적에서 파버린 것)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 부모를 제외한 모든 친척들과의 이별과 바꾸며 태어난 심강만은, 일본과 남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작가 김황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이제 부모와도 이별하게 된 것이다. 


* 반편이의 목소리

 

   책을 통해 그가 다루는 소재는 인간과 가장 친근한 동물인 개로부터, 멸종 위기에 처한 황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그의 글이 일반적인 생태 동화들과 조금 다른 점은, 인간 사회의 차별과 소외를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이 늘 배어있다는 점이다. <황새>라는 논픽션에서는 부리를 다쳐 다른 황새들로부터 따돌림당하는 암컷 황새를 보며 왕따로 인해 고통받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생태통로>라는 동화에서는 동물들을 위한 생태통로가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이동하기 힘든 날다람쥐를 주인공으로 삼아 마이너리티 중에서도 더 마이너리티인 존재에까지 관심의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실제로 날다람쥐만을 위한 높은 기둥형 생태통로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그는 스스로를 반편이라고 칭했다. 일본인도 아니고 조선 사람도 아닌, 남한사람도 아니고 북한 사람도 아닌 반편이. 하지만 그는 반편이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역할이 있다고 여긴다. 그 스스로가 증거가 되어 차별과 편가름의 어리석음을 호소하는 역할이 그것이다. 그는 말한다. 동물에게는 국경이 없다고. 또 하나, 아이들에게도 국경이 없다고. 

  누구에게나 산다는 일은 어느 정도 가혹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은 특별히 더 그렇다. 심강만의 삶을 가만히 상상해보면 구멍이 숭숭 뚫린 한겨울의 창호문처럼, 도처에서 스산한 바람이 분다. 하지만 사람으로 인해 얻은 기쁨과 사람으로 인해 얻은 상처와 정면으로 부딪히며 자신의 방식으로 의미있는 길을 열어가는 모습을 김황이 된 심강만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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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에필로그 1 : 김황은 부모와 여전히 등 돌리고 살까? 아니다. 화해를 했다. 부모의 마음을 녹인 건 황새 복원 사업에 대한 논픽션을 쓰면서 찍은 단 한 장의 사진이었다. 복원된 황새의 자연방사행사장을 찍은 그 사진 안에는 아키히토 천황의 둘째 아들과 김황이 한 프레임에 잡혔다. 김황의 부모는 그 사진을 가문의 영광처럼 받들었다. 동네방네 다니며 우리 아들이 황세자와 사진을 찍었다고 자랑을 했단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동물 복원 사업에 관여하는 김황을 받아들였단다. 황민화 교육의 깊은 영향과 늘 약자로 살아온 이의 뿌리 깊은 인정 욕구가 복합적으로 빚어 낸 웃픈 장면이 아닐 수 없다.

    ■ 에필로그 2 : 가짜 김황은 진짜 김황을 만났을까? 만났다. 한국의 한 잡지에 작가 김황이 친구 김황을 찾는다는 글을 썼더니, 글을 읽은 진짜 김황의 친척이 연락을 해 줘서 몇해 전 한국에서 다시 만났단다. 김황은 어릴 적 함께 찍은 사진과 다시 만났을때의 사진을 나란히 비교하며 보여줬다. 잘생긴 꼬마였던 진짜 김황은 여전히 인상 좋은 호남형 아저씨였는데, 소심해 봬는 꼬마 가짜 김황은 그 사이 머리숱이 모두 사라진 대머리 중년이 되었다. 하지만 둘의 미소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주 천진하게 닮아 있었다.


* 필자소개

    몇 달 전부터 고양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신도제일교회에서 청년들과 생각을 나누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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