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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마당] 新 公無渡河歌 (부제: 저 물을 건너는 방법에 관하여) (이상철)

목회마당

by 제3시대 2016. 2. 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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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公無渡河歌(신 공무도하가)[각주:1]

부제 : 저 물을 건너는 방법에 관하여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한신대 외래교수)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진을 떠날 때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백성 앞에서 나아갔다. 

그 궤를 멘 사람들이 요단 강까지 왔을 때에는, 마침 추수기간이어서 제방까지 물이 가득 차 올랐다. 

그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물가에 닿았을때에... 

- 여호수아 3:14-15

 



I. 

    오늘 설교제목이 신공무도하가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고전문학 시간에 배웠던 고대가요입니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公無渡河 공무도하)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公竟渡河 공경도하) 

    물에 빠져 죽었으니,(墮河而死 타하이사) 

    장차 임을 어이할꼬.(將奈公何 당내공하)  


    이 곡은 어느 이름 모를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아내가 지었다고 합니다. 원가(原歌)는 전하지 않지만, 그 한역(漢譯)인 「공후인(箜篌引)」이 진(晋)나라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에 설화와 함께 채록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최표의 『고금주』에 기록된 이 노래의 배경설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후인은 조선(朝鮮)의 진졸(津卒) 곽리자고(霍里子高)의 아내 여옥(麗玉)이 지은 것입니다. 자고(子高)가 새벽에 일어나 배를 저어 가는데, 머리가 흰 미친 사람(백수광부)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호리병을 들고 어지러이 물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뒤쫓아 외치며 막았으나, 다다르기도 전에 그 사람은 결국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이에 그의 아내는 공후(箜篌)를 타며 ‘공무도하(公無渡河)’의 노래를 지으니, 그 소리는 심히 구슬펐다고 합니다. 그의 아내는 노래가 끝나자 스스로 몸을 물에 던져 죽었습니다. 자고가 돌아와 아내 여옥(麗玉)에게 그 광경을 이야기하고 노래를 들려주니, 여옥이 슬퍼하며, 곧 공후로 그 소리를 본받아 타니, 듣는 자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라는 전설이 전해져 옵니다.  


II. 

    공무도하가는 죽음이 주제이고 물이 소재이죠. 거의 모든 민족의 신화나 설화속에서 물은 생명을 상징하는 아이콘이기도 하고, 반대로 죽음, 난관, 어려움, 고난을 상징하는 아이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원칙을 더 말하자면 통과의례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물로 상징되는 고난과 역경과 죽음의 그림자를 통과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는 집단적 주술이 물과 관련된 이야기들 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도 물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를 보면 물을 항아리에 붓는 장면이 나오고,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서 물을 깃는 대목에서는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이 생수와 관련된 내용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의 물은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여호수아 본문 역시 물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물과 관련된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출애굽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애굽 사건 과정에서 등장하는 물은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고, 통과의례를 상징하는 사건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출애굽의 시작은 물을 건너는 것이고, 출애굽의 완성 역시 물을 건너는 것입니다. 전자의 물은 홍해이고, 후자의 물은 요단강입니다. 종교학적으로 설명하면 출애굽과정에서 등장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두 차례의 도하(渡河)가 고등종교로 발전하는 과정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홍해를 건널때와 요단강을 건널때의 차이가 뭡니까? 홍해를 건널때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가 갈라진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건넙니다. 반면, 오늘 여호수아 본문에 등장하는 물을 건너는 장면에서는 요단강이 갈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 앞에서 강물이 철철 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흐르는 강물을 향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발을 담금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표상에 의지하지 않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또한 현상과 감각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와 우주의 소리를 일치시킬 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적 깨달음, 구원의 시간, 해탈의 시간이라는 말로 바꿔도 무방할 것입니다.   


III.

    공동의회를 하루 앞둔 어제‘하늘 뜻 나누기’를 준비하면서 오늘 본문이 생각났습니다. 공동의회를 하나 치루는 것이 무슨 홍해나 요단강을 건너는 거창한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앞에 두고 어떤 심정이었을까? 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동안 의지하고 믿었던 모세도 없습니다. 이제 그들은 성인이 되었기에 세상을 전처럼 마냥 낙관적으로만 바라보지도 못합니다. 세상이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았고, 하나님이 마냥 우리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달았으며, 우리들 사이 관계 역시 생각만큼 견고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지난 40년의 광야생활을 통해 알아버렸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은 지금 이 순간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시퍼런 요단강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전처럼 하늘을 우러러 저 흐르는 강물을 멈추게 해달라고, 예전처럼 하늘을 우러러 저 강물 사이로 길이 생기게 해달라고 더 이상 그들의 신에게 땡깡을 부리지 않습니다. 그냥 눈을 질끈 감고 흐르는 강물에 자신들의 몸을 던집니다. 저에게는 이 장면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여호수아 3장 16절까지 하지 않고 3장 15절까지만 했습니다. 물론 16절 이하를 읽어보면 강물이 멈추고 땅이 말라 모두 무사히 그 강을 잘 건너갔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지만, 저는 16절 이하에 나오는 성취와 성공에 대한 스토리보다는 오늘 우리가 읽은 14-15절 내용이 더 빛나는 내용이 아닐까 합니다.


IV.  

    잠시 후에 우리는 공동의회를 합니다. 2015년 한해를 결산하고, 2016년 한백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바를 결정하고 실행하겠음을 다짐하는 공동의회입니다. 작년 한해 우리를 지켜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올 한해도 동일한 기쁨과 감사가 깃들기를 함께 바라는 공동의회가 될것입니다. 특별히 이번 공동의회에서는 그동안 5년 동안 헌신했던 김0숙 장로님, 김0승 장로님을 대신할 두 분의 장로님을 선임하는 시간이 들어있습니다. 늘 이렇게 누군가를 다시 세워야 하는 시간이 되면 우리는 고민하고 걱정을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이 두 분을 대신할 분이 누가 있을까?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주께서는 우리의 염려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백교회 교우 여러분, 이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오늘 여호수아 본문에 나오는 요단강가에서 법궤를 들고 서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 모두 한백이라는 법궤를 함께 지고 발을 한 발짝만 앞으로 내밉시다. 그리하면 우리 앞을 흐르는 강물도 멎을 것이고, 그리하면 젖어있던 땅도 말라 있을 것입니다. 그러할 것입니다. 정말로 그러할 것입니다.  


ⓒ 웹진 <제3시대>


  1. 지난 2016년 1월 31일 주일 한백교회 ‘하늘 뜻 나누기(설교)’ 원고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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