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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정보] 반 제국주의자 "모세" (김진양)

신학비평

by 제3시대 2016. 3. 21.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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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제국주의자 "모세"[각주:1]





김진양

(Ph.D. The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 (the Old Testament))




    시카고 루터란 신학교(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 도서관 2층에는 중세기 희귀문서를 보관하는 방이 있다. 15세기에서 18세기에 출판된 책들로 무려 300여권을 소장하고 있고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직접 작성한 편지와 그가 번역한 성서도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이중 오래된 성서 한 권이 내 눈에 들어왔다. 종교개혁 이전에 출판되었던 독일어 성서다(Koberger Bible, 1483). 15세기 성서의 내용이 궁금해서 페이지를 한 장 두 장 넘겨보는데 한 삽화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성서에 삽화가 포함된 이유는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자들이 삽화를 보고 성서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삽화는 출애굽기 2장의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출 2:1-10). 모세의 모친이 모세를 나일강에 띄워 보내고 바로의 딸은 모세를 강에서 건져내어 모세를 자신의 아들로 양육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출애굽기 2장은 모세의 모친이 모세를 강에 띄워 보낸 것이 아니라 강가 갈대 사이에 숨겨 놓았다고 한다.


   필자가 이 삽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삽화 오른쪽 중간에 모세가 바로의 머리에서 왕관을 벗기는 장면이 보인다.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출애굽기는 모세가 바로의 왕관을 벗기는 행동을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 삽화를 그린 이는 어떤 근거에서 이 장면을 그려 넣었을까? 그 답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책 『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 2:232-36)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요세푸스는 출애굽기 2장을 다음과 같이 의역하였다: 


   때무티스는 모세를 양자로 삼았다. 어느 날 그녀는 모세를 아버지 바로에게 데려갔다. 자신에게 자식이 없기에 바로의 대를 이을 자가 바로 모세임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데리고 온 이 아이는 강의 혜택으로 얻었는데 신의 성품을 가진 아름다운 아이로서 제 자식으로 삼았고, 앞으로 이 제국을 이어갈 황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녀는 바로에게 아이를 건네주었고 바로는 그 아이를 가슴으로 껴안으면서 자신의 왕관을 모세 머리에 얹었다. 하지만 모세는 그 왕관을 바닥에 집어 던지고 발로 짓밟았다. 이는 애굽 제국에 재앙이 임함을 예견하는 것이었다. 이를 본 애굽의 신령한 학자가 발끈하여 이렇게 말했다. “왕이시여! 이는 하늘이 주는 메시지로서 이 아이를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애굽 제국은 멸망 할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이 이 아이를 통해 자신들이 노예에서 해방될 것을 희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때무티스는 모세를 보호하기 위해 모세를 잡아챘고 바로도 모세를 즉시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다행히 모세는 바로 딸의 보호 아래서 교육받고 자랐다. 히브리인들은 모세를 의지하게 되었고, 앞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을 희망했다. 반면, 애굽인들은 모세로 인해 일어날 일에 대해 염려했다. 


    요세푸스의 글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바로가 자신의 왕관을 모세에게 건네주지만 어린 모세는 왕관을 바닥에 던지고 발로 짓밟았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애굽 학자의 경고처럼 애굽 제국의 멸망을 의미한다. 즉 모세의 등장이 애굽 제국의 멸망을 의미함과 동시에 모세는 반제국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것도 함께 명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모세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놀라운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요세푸스와 비슷하게 유대인 미드라쉬 전통도 모세가 바로의 왕관을 받아 자신의 머리에 얹으므로 모세가 바로를 대신하는 왕으로 해석한다. 이는 모세의 등장이 억압과 폭정의 애굽 제국의 멸망을 초래하지만 동시에 해방과 나눔의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Tanhuma Exodus 8; Midrash Exodus Rabbah 1.26; Midrash Dueteronomy Rabbah 11.10; Yashar Exodus 131b-132b).


    요세푸스는 정치적으로 친 로마 성향을 보였지만 자신의 뿌리인 유대교 문화와 종교의 우월성을 그 어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대변한 사람이었다. 그의 글 여러 곳에서 로마 제국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흔적이 보인다. 따라서 요세푸스가 묘사하는 모세의 모습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글이 로마제국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지적을 교묘히 빠져 나가기 위해 요세푸스는 모세가 너무 어려 어린이의 장난으로 바로의 왕관을 집어 던진 것이라고 기록하였다. 


    로마제국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은 요세푸스의 다니엘서 의역에서도 여전히 드러난다. 요세푸스는 다른 예언자들보다 다니엘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다니엘서가 내포한 묵시 종말론적 메시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니엘서 2장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자신의 꿈에서 본 거대한 신상을 소개하고 있다. 정금으로 만든 머리는 바벨론 제국을 상징하고, 은으로 만든 가슴과 팔은 메데 제국을 상징하고, 놋으로 만든 배와 넓적다리는 페르시아 제국을 상징하고, 철로 만든 종아리는 그리스 제국을 상징한다. 그러나 요세푸스의 네 왕국은 첫째는 바벨론 제국, 둘째는 페르시아 제국, 셋째는 마케도니아 제국, 넷째는 바로 로마 제국이다(『유대고대사』 [Jewish Antiquities] 10.10.4, §209). 느부갓네살의 거대한 신상 꿈은 세상에 순차적으로 등장한 제국이 하나씩 멸망하지만 마지막에 하늘이 세우는 영원한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는 묵시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따라서 유세푸스는 다른 모든 제국과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 역시 멸망의 길로 갈 것이라는 로마 제국의 멸망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모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요세푸스는 로마의 멸망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각주:2]  


   요한계시록 15장 3절은 짐승(로마제국)을 물리친 자들이 유리바다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모세가 부른 애굽 제국에 대한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다시 재현하고 있다. 이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 애굽 제국과 그들의 신을 물리친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찬양하는 모세의 노래를 연상케 한다(출애굽기 15장). 모세는 이렇게 노래한다: “주님께서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출 15:18, 새번역). 이렇게 요세푸스의 글에서 발견되는 모세의 반 제국주의적 이미지는 이사야의 예언처럼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는 묵시적 맥락으로 보아야 한다(이사야 65:17).



* 필자소개

    현재 미 연합감리교회 북 일리노이 연회에서 목회, 시카고 루터란 신학대학에서 구약학 전공(Ph.D.), Wartburg College에서 강의


ⓒ 웹진 <제3시대>

  1. 이글은 지난 2010년 8월 9일 필자의 블로그 Old Testament Story에 게재한 글을, “Moses in the Koberger Bible (1483),” 수정/보완한 것임을 알린다. [본문으로]
  2. Louis H. Feldman, Josephus's Interpretation of the Bibl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 p. 65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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