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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왜 '계'모와 '계'부가 문제인가 (김진호)

시평

by 제3시대 2016. 4. 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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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계'모와 '계'부가 문제인가[각주:1]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원영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비정한 부모’에 대해 경찰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부작위 살인 등의 혐의를 적용해서 검찰에 송치했다. 그리고 검찰은 전담반을 만들어 이 혐의의 공소유지에 총력을 다할 것을 밝혔다. 누가 보아도 살인임이 명백한데, 그것도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너무나 악질적인 살인행위인데, 경찰과 검찰의 이런 모습이 좀 의아하다. 무려 3개월간 화장실에 가둔 채 1ℓ짜리 락스를 두 병이나 몸에 뿌리는 등 가혹한 학대행위를 해왔고, 사망 전날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에 옷을 다 벗기고 찬물을 끼얹은 채 방치하여 죽게 했으며, 죽은 시신을 야산에 유기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웬만한 모의살인보다 더 악질적인데 미필적 고의 살인은 뭐고, 전담반을 만든다거나 총력을 다한다거나 하는 말들은 뭔가.

    그런데 실은 그럴 만했다. 지금까지 자녀학대가 사망으로 이어진 사건들 중 살인죄가 적용된 사례는 불과 15%에 불과했다.  

    학대로 인한 사망 사건들 그 어느 것도 원영이 사건에 비해 악질적 양상이 덜 하지 않은데, 실제로 적용된 양형은 터무니없이 ‘관대’했다.

    해서 원영이 사건을 비롯해 최근 연이어 터져나오는 자녀학대와 그로 인한 사망 사건들에 대해서 한국여성변호사회는 국가적 차원의 안전시스템 미비가 원인임을 지적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정치권이 너나없이 공천에만 몰두하고 있는 와중에 나온 이 성명에는 정치권이 외면하고 있는 구체적인 대안들도 적시되어 있다. 아동학대 행위에 대한 엄정한 양형기준 마련, 아동학대 예방교육 상시화, 아동학대 피해자 지원제도 개선 등이다. 

    한데 이 성명에도 언급되지 않은 다른 하나가 내겐 걸린다. 이 사건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은 ‘계모’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사건 직전인 지난 2월에 밝혀진 부천 여중생 사망 사건에서도 딸을 죽게 한 직접적 가해자로 밝혀진 신학자인 이모 목사와 함께 그의 부인인 백모씨도 학대 가해자였는데, 그녀가 ‘계모’임이 강조된 바 있다. 또 그 무렵 다섯 살 된 아이가 시끄럽게 군다고 밀쳐 죽게 한 비정한 아버지에 관한 사건이 보도된 바 있는데, 이때도 언론들은 앞다투어 이 남자가 죽은 아이의 계부임을 강조했다. 

    이렇게 자녀학대와 사망 사건에서 계모, 계부 등이 언급되면 사람들은 사건의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 자세히 알기 전에 미리 답을 예단하는 경향이 있다. 콩쥐, 심청이, 장화와 홍련, 신데렐라 등 가장 대중적인 고전 이야기들의 주인공도 계모에 의한 학대의 피해자들이다. 이것은 동서양을 아우르고,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대중의 일반적 생각 중 하나로 자녀학대를 계부모, 특히 계모의 학대로 동일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원영이를 죽게 한 가장 의심스러운 부모의 성향은 ‘온라인 게임 중독’이다. 원영이가 사망하던 무렵 8개월 동안 무려 6000만원을 온라인 게임에 지출했으며 거의 모든 대인관계가 단절된 상태였다는 정황은 그녀가 온라인 게임 중독자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게임 중독이 자녀 살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건은 최근에 적지 않았다. 그 사건들 대부분은 계모, 계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많은 전문가들은 온라인 게임이 충동조절장애를 야기하고 이것이 자녀 살해로 이어질 가능성을 이야기한 바 있다. 

    게다가 최근 일어난 자녀학대 사건 중 80%가 친부모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계모, 계부와 자녀학대가 당연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나는 최근 연이어 터진 자녀학대와 사망 사건들에서 ‘계’모, ‘계’부 등의 무의미한 표현이 마치 의미있는 것인 양 소비되는 것에서 우리 사회 안전시스템의 중대한 문제 하나가 드러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가령 자녀학대와 사망 사건 중 분노조절장애가 직접적인 이유인 것이 많다고 알려져 있는데, 분노조절장애는 그이가 겪었던 특정한 사건(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리고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범죄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수많은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살인 사건들의 가해자들은 어린 시절 겪은 피학대 경험, 게임이나 약물 중독, 경제적 위기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최근 우리 사회에서 연이어 불거져나온 자녀학대 및 사망 사건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해서 이 사건들에 대한 좀 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며, 그것에 대한 사회적 진단과 대안이 필요하다. 그런데 계부니 계모니 하는, 언어 습관의 일부가 되어 버린 ‘혈연주의적 깔때기’는 이런 진단과 대안 모색의 중대한 장애물이다.  □ (올빼미)


ⓒ 웹진 <제3시대>



  1. <경향신문> 2016년 3월 19일자 '사유와 성찰'에 게재된 칼럼 글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60318204043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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