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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희망과 대안을 향해 투표하고 싶었다. (양권석)

시평

by 제3시대 2016. 4. 1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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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대안을 향해 투표하고 싶었다.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나만 그랬을까?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점점 무기력증이 더해졌다. 기적을 바라면서도, 기적을 바라는 내가 너무 싫었다. 사실은 투표장에 가서까지도 망설였다. 언제까지 어처구니 없는 이 나라 정치의 프레임에 갇혀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이 말도 안 되는 선거 프레임에 나를 가둘 것인가? 그리고는 희망이나 기대 같은 것은 일단 주머니 속에 접어두기로 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셈을 해 가면서 표를 찍었다. 이게 마지막이다. 다시는 내 표를 낭비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면서 잊어버리고 싶었다.  

    개표 방송은 보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다. 또 다시 속을 끓이며 참담함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맞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보고야 말았고, 새벽이 다 되도록 그 결과를 되새겨야 했다. 제 1당의 순서가 바뀌는 순간, 방송국 기자들이나 패널들도, 믿기지 않는 듯,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쯤은 환성을 터뜨리거나, 가슴을 쓸어 내리며, 오래 묵은 분노와 스트레스를 날려 버려도 좋았을 것인데. 마음이 그렇지가 않았다. 아니,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했지만, 감동이 물밀듯 밀려오고 그러지 않았다. 

    분명히 주어진 선거 프레임을 마음껏 즐기며 타고 놀았던 많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선거의 결과가 승리와 패배에 대한 분명한 판정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번 선거의 결과를 결정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의 표심을 대변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나는 이번 선거를 결정한 사람들, 이번 선거를 통해 진실을 말하고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간절한 마음들과 진심들을 나눌 수 있는 정치적 장을 허락 받지 못한 사람들. 분노와 절망을 공개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정치적 통로를 허락 받지 못한 사람들. 선거결과를 바라보면서 아니 선거 기간 내내, 내가 떠 올릴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유권자들로부터 세월호 진실에 대한 물음을 박탈하는 정치, 유권자들로부터 역사에 대한 판단과 반성의 능력을 빼앗는 정치, 유권자들의 도덕적 의식과 지적 판단 능력을 빼앗는 정치, 테러방지를 위해, 기본적인 권리와 존엄마저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정치, 그것이 지금의 정치다. 모든 것을 먹고 사는 문제로 환원시키면서, 정작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고 하는 정치다.

    정말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주권은 통치자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통제하고 배제하는 만큼 얻어지는 것 아닌가? 그리고 지금의 여당과 야당, 그리고 모든 정치적 계파들은 바로 이 불량한 권력을 나누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표심을 알 수 있을까? 주권을 회복하려는 국민의 요구를 정말로 알 수 있을까? 자신들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공동체의 권력을 세우기 위해,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하는 국민의 마음을, 대통령 존영 운운하는 자들이 알기나 할까? 이들이 선거 결과를 놓고 견강부회하고 공과를 평가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 유권자로서 나는 너무나 참담하다.  

   한 표 한 표에 담긴, 국민들의 분노와 절망과 냉소들을 읽어낼 수 있는 혜안은 정말 없는 것인가?국민을 섬기는 정치, 유권자를 섬기는 정치는 정말 불가능한가? 이번에 선택된 사람들에게 유권자들이 던지는 질문 혹은 간절한 소망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현재 정치의 틀을 바꾸어내고, 다시 국민에게 주권을 돌려주어, 국민의 양심과 진실과 정의를 향한 요구에 봉사하는 정치를 해 달라는 주문을 정말로 귀 기울여 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더 이상 분노와 미움으로 표를 던지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그리고 희망과 대안을 향해 유권자들이 참여하는 선거와 정치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헛된 기대였음을 확인하게 될지 모르지만 다시 희망을 걸어 본다. 이미 분노와 미움으로 던져진 수많은 냉소의 표심들을 희망과 대안을 향한 소망으로 바꾸어 내는 일 역시 이 번에 선택된 사람들에게 맡겨진 일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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