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기회론'이라는 망상



 

백승덕*


 

   20세기 초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탈리아의 극작가 루이지 피란델로는 생전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메리카니즘(Americanism)이 우리를 온통 휩쓸고 있다. 나는 바로 여기서 새로운 문명의 횃불이 타오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미국은 근대성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때가 1930년대였으니 미국은 100년 가까이 근대성과 동일시되어왔다. 미소 간에 체제경쟁을 하던 냉전 중에도 미국은 군사력이나 생산력 등 어느 부분에서도 소련에 대해 항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근대화가 곧 미국화를 의미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대학 신입생끼리 모여서 자기 고향에 햄버거 가게가 있는지 없는지를 가지고 도시수준을 따지던 때가 있었다. 미국식 생활은 근대성의 지표였고, 조국 근대화를 위해서 계속 나아가야 할 목표였다. 아이들이 미군 지프차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기브 미 초코렛’을 외치던 땅에서 보기에 미국은 꿈의 나라였다.  


아메리카니즘의 위기


   그랬던 아메리카니즘이 추락하고 있다. 냉전이 끝나고 미국의 세기가 지속될 거란 기대가 금방 무색해졌다. 2008년 금융위기는 결정적이었다. 미국이 그간 누려온 풍요가 사실은 가계부채 위에 쌓은 빚잔치였다는 사실이 준 충격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미국의 대응은 굼떴다. 세계 온갖 군데에 손을 뻗쳤던 터라 발이 묶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에 미군은 중동에서 계속 죽어나갔고, 이어서 IS처럼 이슬람 극단주의가 세력화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미국은 어디에서건 손을 대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 ‘마이너스 손’이 돼버렸다.  

   여태껏 미국이 근대성의 상징으로 자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래도 ‘자유’와 ‘민주’라는 가치 때문이었다. 나치독일을 비롯한 파시즘 세력에 대항해서 싸웠던 역사가 부여해준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트럼프 돌풍’으로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공화당 유력 대선후보가 마치 히틀러를 떠올리게 할 만큼 자극적인 표현으로 이민자들과 무슬림 추방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라 반파시즘은 더 이상 미국의 상징이 되기 어려울 지경이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거대한 장벽을 설치해서 이민자들을 막겠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는 인물을 개그맨이 아니라 대선후보라니.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인물이 유력 대선후보로 떠올랐단 사실은 미국을 세계에서 근대성의 상징으로 유지하기 위해 치루는 비용을 미국인들이 얼마나 버거워하는지 보여준다. 트럼프는 구체적인 정책을 이야기할 땐 오락가락하지만 한 가지는 일관되게 이야기한다. 미국 국내 문제, 정확히 말하면 돈 버는 것 말고 다른 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IS가 중동에서 뭔 짓을 하든, 북한이 자기 땅에서 핵실험을 하든 개의치 않겠다고 말한다. 동맹국들 역시 방위비를 더 내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거듭 선언하고 있다.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게 경제중심적인 관점으로 일관하는 것인데, 이런 트럼프를 미국인들 중 절반가량이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한국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이런 사정을 ‘축복’으로 환영하는 모양이다. 한국발 트럼프 기회론에는 인터넷 진보언론 <프레시안>이 앞장서고 있다. <프레시안>은 참여정부에서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문정인의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당선이 한국의 자주국방에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트럼프가 주한 미군 급료까지 한국에 부담하게 만들면 한국 여론이 주한미군 철수와 전시작전권 회수에 동의할 거란 이야기다.


한국 진보진영에서 부는 트럼프 기회론


   이러한 주장은 문정인만의 것이 아니다. 이 매체에 실린 다른 칼럼이나 기사에서도 비슷한 관점을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역사학자 이병한 역시 고정 칼럼을 통해 트럼프 당선을 핑크빛으로 그려냈다. 트럼프가 억만장자이기 때문에 군산복합체 등의 눈치를 보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호전적 정책에서 벗어날 거란 이야기였다. 이병한은 심지어 트럼프가 서구의 근대 민주주의가 지닌 신화를 무너뜨려 유라시아의 옛 문명들을 회생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가 염두에 둔 유라시아의 옛 문명들 속에는 한국의 지분도 들어있을 것이다.

   분수령은 지난 5월 17일이었다. 이날 트럼프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김정은과 대화할 것이며 그와 대화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말한 것이 알려지자 그에 대한 장밋빛 기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김정은과 대화에 나설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남한이 언제까지 미국에 의존해서 남북대화를 미루고만 있을 거냐는 이야기였다. 요컨대 이 기회를 빌어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주체성을 키우자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이 일리가 있을 만큼 한국은 안보와 관련해 미국의 힘에 의존해왔다. 주한미국대사가 피습 당하자 한복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서 부채춤을 추면서 쾌유를 기원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최근 <미디어오늘>을 통해 보도된 사실은 충격적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제주해군기지로 보내는 철근 400톤이 배 안에 실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 중 상당수가 선박 복원력을 약화시키는 위치에 실려 있었다고 한다. 과적은 세월호가 침몰하게 된 주요원인으로 꼽혀왔는데, 배에 무리해서 실은 것이 바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자재였던 것이다. 일부 선원들이 승선을 기피할 정도로 안전에 문제가 있었지만 무리하게 출항한 이유 역시 기지건설 공사기일을 맞추기 위해서였단 이야기도 나온다. 제주해군기지 공사일정은 미국과 약속한 것이기에 시민들의 안전에 우선해서 고려된 것이다.

   조금 더 넓게 보더라도, 그간 미국이 주도한 국제법 질서는 국가 간 계약에 기반을 둔 권력을 해당국가의 사회에 각인시키는 과정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한-미, 미-일 상호방위조약 등의 계약을 가장 상위에 둔 채로 사회질서가 자리 잡았다. 2005년에 평택으로 미군기지가 이전될 당시에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한국군까지 출동시켰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에 UN 안보리 결의도 없었지만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을 이유로 파병했다. 

   그러니 미국은 그간 사실상 계약을 매개로 한 패권을 휘둘러온 셈이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이 지역에 해군기지를 원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공공연한 비밀이다. 


중국화하는 동아시아라는 문제


   일각에서는 중화질서를 새로운 대안으로서 호출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동아시아 근대성,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중국화한 동아시아가 미국이 주도한 국제법 질서를 대체할 대안이라는 것이다. 다시 <프레시안>으로 가보자. 이 매체는 오랫동안 칼럼을 써온 역사학자 김기협을 초청하여 기획강연을 열었는데, 김기협은 이 자리에서 중국의 군사력이 서구와 달리 “주변에 있던 지역들을 안정시키는 방어적 성격”이라고 구분 지었다. 게다가 중국의 조공체제가 “약한 국가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서로 다른 위치에서 하나의 질서를 위해 공헌하자는 식의 유인책”이라고 긍정했다. 이처럼 중국화한 동아시아를 긍정하는 그의 입장은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와 '대안으로서 동아시아 전통의 가치'에 관한 책을 소개하는 연재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으로 표상된 근대성이 몰락하는 이 시점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핑크빛 기대는 두 가지로 수렴된다. 하나는 주체성 회복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화한 동아시아의 부상이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현실을 돌아보면 핑크빛 기대는 어김없이 깨진다. 최근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보이고 있는 행태를 보면 그렇다.

   최근 중국은 남중국해 남사군도에 있는 암초들을 매립하여 인공섬을 만들고 있다.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려는 무리수다. 이 지역은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이 오래 전부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서 갈등이 이어져온 곳이다. 중국은 인공섬에 활주로 등 군사시설을 배치하여 이 지역에 대한 지배를 확실하게 하려고 나선 모양새다. 중국의 군사력이 “주변에 있던 지역들을 안정시키는 방어적 성격”이라던 김기협의 설명이 무색해지는 상황인 것이다.

   여기서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논리는 더욱 기가 막힌다. <주간동아>(2015.11.16)의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작년 11월 한 연설에서 “남중국해 도서들은 오래전부터 중국의 영토였다”며 “남중국해에서 영토 주권과 해상에서의 정당한 권익을 수호하는 것은 중국 정부가 짊어진 책무”라고 말했다. 명나라 영락제 때 해양원정에 나선 정화의 항해 때부터 이 바다가 중국의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이 기사는 “영해나 EEZ 같은 국제법 용어 대신 ‘정당한 권익’ 같은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섬과 암초의 구분이나 육지로부터의 거리처럼 국제법상의 구체적인 논의를 모두 뛰어넘은 채로 바다에 U자형 선을 긋고 영유권을 주장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이 중국화한 동아시아가 보여주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이란 말인가? 김기협이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조공체제라는 것도 사실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예식을 반복함으로써 유지하는 ‘소극적 평화’에 지나지 않는다. 유교적 천하질서에서 ‘평정(平定)’이란 말은 작은 것이 감히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억눌러서 유지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했다. 높은 것은 높은 자리에, 낮은 것은 낮은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바로 유교적 평화질서였다. 그러니 지금의 중국이 보이는 행태가 왜곡되었다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계약에 기반을 둔 권력과 전통을 등에 업은 패권 사이에서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메리카니즘 몰락 이후에 현실을 핑크빛으로만 보기가 어렵다. 한국이 더 많은 분담금을 내고 주한미군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하던 방식으로 서해에서 영유권 주장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받아들여야만 한다. 중국화한 동아시아에서 조공체제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 선택지는 북한의 길이다. 지난 1월 제4차 핵실험 직후 조선중앙TV는 특별 중대 발표를 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의 엄혹한 현실은 자기 운명은 오직 자기 힘으로 지켜야 한다는 철의 진리를 다시금 명백히 실증해주고 있다. 사납게 달려드는 승냥이 무리 앞에서 사냥총을 내려놓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은 없을 것이다.” 한국이 주한미군을 떠나보낸 뒤에 오로지 자국의 힘으로만 중국과 상대하려면 이러한 자세까지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러한 자세를 취한 사회가 지금의 북한처럼 경직되지 않을 수 있단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주체성을 위한 고난의 행군 중에는 자국의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 시민들의 안전을 볼모로 삼는 행태 또한 비일비재했다는 점을 북한의 역사가 보여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메리카니즘의 몰락을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다. 한국 진보진영 일각에서 불고 있는 트럼프 기회론 역시 위험한 망상이다. 우리는 지금 계약에 기반을 둔 권력이 몰락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을 등에 업은 패권이 발흥하는 걸 상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 사이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모색해야만 하는 때다.



* 필자소개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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