ὑπομονή (후포모네) 신앙

 



김혜란
(
캐나다 세인트앤드류스 대학, 실천신학 교수)


 

    지난 6월에 한국을 잠시 방문했다. 한국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지 얼마 후다. 그런데도 많은 가족들 친구들이 이렇게 살기가 힘들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어쉬었다. 그 고통의 무게가 그들의 한숨소리로 내게도 강하게 다가왔다. 열심히 사회 운동을 하고, 진보적인 기독교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시는 분들을 만나도 분위기는 같았다. 동성애 문제, 이슬람교 종교간 대화 문제, 교회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가 없을 정도라고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드셨다. 그 분들의 답답함과 아픔이 전해졌다. 

    이는 한국에 사는 한국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지난 6월 23일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독립을 하기로 국민투표를 했다. 어째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 한탄하는 소리가 유럽 전역에 울리고 있다. 7월 첫주 이슬람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절기인 라마단 기간 중에 이슬람국가 중 대표적인 이라크, 그것도 수도 바그다드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그것도 같은 라마단을 지키고 그 종교를 믿는 이슬람교도(물론시아파, 수니파 이렇게 파는 다르지만)에 의해 벌여진 사건이다. 무고한 시민들 150여명의 생명이 희생되었다. 그 희생의 울부짓음 소리가 중동, 서아시아 그리고 세계를 울리고 있다.  

    북미로 가보자. 6월 12일 올란도 한 게이바에서 총기를 든 미국시민권자인 오마 마틴 (동성애혐오주의자이고 반미주의자이자 극단적 이슬람교 출신)이 당시 바에 온 무고한 이들을 마구 학살한 사건이 있었다. 약 100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총기난사가 비일비재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조차도 한 사람의 총기로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상자를 낸 것은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고 보도한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마틴이 총 한방에 수십 수백번 총알이 퍼지는 그런 총, 도저히 민간인이 소지해선 안되는 전쟁용 총을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7월 5일 루이지에나주에서 흑인 남성 앨튼 스털링 (37세)가 CD를 팔고 있다가 백인 경찰이 쏜 총에 의해 사망했다. 다음날 6일 미네소타주 세인트 폴지역에서 젊은 흑인 남성 필란도 카스틸 (32세)가 자신의 차 안에서 백인 경찰이 쏜 총에 의해 사망을 했다. 연일 벌어진 이런 살인사건은 약 2년 전 2014년 8월 미져리주 세인트 루이스에서 벌어진 마이클 브라운의 살인 사건과 유사하다. 그 때도 백인경찰에 의해 쏜 총에 맞아 18세의 젊은 흑인 청년이 사망을 했다.아직 어른이라고 할 수 없는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은 마이클 브라운의 죽음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엄청났다. Black Lives Matter라는 운동 조직을 중심으로 인종에 관계없이 미국 도시 곳곳에서 경찰의 폭력, 인종차별, 그리고, 총기 난사에 대해 반대시위를 벌여왔다.  

    7월 5일 6일 희생된 흑인 남성들의 죽음에 대한 시위가 8일 달라스에서 일어났다. 평화시위였다. 많은 경찰들이 그 평화 시위를 보호하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 경찰들을 향해 총기를 겨눈 흑인이 있었다. 아프카니스탄 참정용사 출신인 미가 존슨 (25세)은 백인경찰을 향해 마구 난사를 했고, 5명의 경찰이 목숨을 잃고 10명이상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그는 이런 흑인을 차별하는 백인이 싫고, 백인 경찰이 싫고, 그래서 그들을 죽이고 싶다고 고백을 했다. 심지어, Black Lives Matter시위도 지겹고 싫다고 말했다. 달라스 경찰 살인사건이 일어난지 열흘이 지났는데, 분위기는 계속 살벌하고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위는 계속되고 있고, 경찰을 향한 분노는 죽음의 협박으로까지 벌어지고 있다.

    경찰의 총기 난사, 특히 흑인과 유색 인종을 향한 폭력의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매일 미국 경찰이 쏜 총에 의해 발생한 사망자는 3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사망자는 거의 흑인이거나 유색인종이다. 가히 충격적이다. 흑인-백인 분리정책이 공식적으로 폐기된지 50년이 지났다. 그런데, 흑인과 백인들 관계는 풀리지 않고 있다. 6월-7월 올 해 벌어지는 일련의 인종관련 폭력 상황을 두고 많은 이들은 1968년 상황이 되풀이 되는 건 아닌지 우려를 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흑인-백인 관계가 물과 기름처럼 나누어진 것은 아니라고 선언했다. 피부색을 넘어서 대다수 많은 이들이 인종 차별에 항의하고, 총기없는 세상을 외치고, 정책적 변화, 구조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오바마는 이런 모습을 기술하면서 지금 모두 힘들지만 어렵지만 대안이 안 보이는 것 같지만 절대 희망을 버려선 안된다고 전 미국인들을 향해 호소를 했다.

    이런 희망이 담긴 메시지를 들으면서, 절망하지 말라는 절절한 메시지를 들으면서, 연상되는 성서메시지가 떠올랐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 다양한 성서 본문들이 떠오르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별로 인기가 없는, 그래서, 감히 단언하건대, 다들 별로 알지 못하는 성서를 소개하려고 한다.

    히브리서신은 학자들 내에서 신약성서의 고아라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인기가 없는 성서다. 로마서와 고린도전서 다음으로 세번째로 긴 장 수를 가지고 있기에 신약성서에서 비중이 있는 성서이지만, 그 내용이 낯설다는 이유로 설교자들, 일반 교인들 모두 기피하는 성서다.

    나도 마찬가지다. 성차별적이고 희생을 강요하는 서신으로 이해하고 기피했다. 지난 22년동안 한번도 히브리서신을 본문으로 택해서 설교를 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최근 내가 속한 사스카추완 주립대 교수인 Mary Ann Beavis 와 이 서신을 주석하는 작업을 같이 하면서 이런 생각이 바뀌었다.[각주:1]


    히브리서신은 16장 전체가 하나의 설교다. 마치 유대인출신 초대 기독교인들 공동체에게 서신기자가 긴 설교를 했다고 상상해보라. 이 설교가 선포될 당시 상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 상황만큼, 아니 그 이상 심각했다. 이 공동체는 소수였다. 미국의 흑인이나 유색인종처럼, 한국사회 이주민들처럼 소수였다. 유대교를 따르는 대다수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박고, 동시에 로마 제국으로부터도 박해를 받는 기독교인들이었다. 곧 오실 거라 믿었던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자고 깨면 같이 신앙 생활하던 친구들이 순교를 당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살벌하고 두려운 상황에서 살아야 했던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이 설교가 들려졌다.

   이 설교를 듣는 대부분 교인들은 아마도 자신들도 곧 박해로 인해 순교할 것을 알았다. 죽을 줄 알면서, 믿음을 버리지 않고 결단하는 이들을 설교자는 위로하고 이들의 믿음을 격려한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바탕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11:1) 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히브리 서신은 그 공동체가 겪는 고민과 고통을 자신 히브리 신앙의 선배들도 겪었다고 위로를 한다. 아브라함도 사라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라합도,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리고 모든 예언자들이 이런 고생을 겪었다고, 너무나 많은 성서의 인물들을 열거하면서 위로한다. 이 신앙의 선배들도 당신들이 바라고 소망하는 곳으로 가지도 못했고, 원하고 바라던 모든 일을 이루어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힘든 길을 갔다고, 그러니 우리도 갈 수 있다고 이들 공동체를 격려한다. 그래서, 이들 모두가 “구름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되어 이 공동체를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다고 확신을 준다. 그러니 보이지 않지만, 지금 보이는 현실이 너무 갑갑하고 어둡지만, 소망하는 그것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고통을 견뎌내고 달려가자고 절절히 외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주석 작업을 하면서 배운 점이 많다. 하나는 후포모네 (hypomone)라는 헬라어의 의미다. 소위 “인내, 감내, 저항”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이 단어는 구약, 신약성서 전역에 걸쳐 나오는데 (예. 시 37:9, 이 51:5; 미 7:7; 스 3:8; 마 24:13, 롬 5:3-5), 히브리서신엔 11장 27절에 나온다. “그는 보이지 않는 그 분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견디어 냈습니다” 라고 설교자는 여기서 모세를 인용하고 후포모네를 썼다. 즉, 후포모네는 고통을 견딘 모세의 파라오 이집트 제국에 대한 저항을 가리킨다. 신약성서에서 히포모네는 저항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저항과 약간 의미가 다르다. 무언가 나서고 드러내고 시위를 하는 저항도 중요하다. 그래서 Black Lives Matter는 오늘도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보면 드러나지 않고 견디어내는 것, 이런 저항도 필요하다. 바로 이 저항을 히브리 서신이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서 히브리서가 고통을 무조건 감내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더 더욱 고통을 이쁘게 포장하고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는 것, 그 고통이 올 때, 수동적으로 피하지 않고, 감내하겠다는 것, 그 결단을 고백하고 있다.

   여기서 히브리서신이 가지고 있는 구원론 (그리스도론)을 잠시 살펴보자. 이 서신기자가 펼치고 있는 십자가의 신학이 가히 놀랍다. 십자가가 구원의 상징인 것은 그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이 변화되셨기 때문이라고 사도 바울과는 완전히 다른 주장을 펼친다.[각주:2] 사도바울은 십자가 사건이 구원의 사건인 것은 그 사건이 믿는 자들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갈 2:20). 그런데, 히브리서신 기자가 보기에 십자가 사건이 구원의 사건인 것은 그 사건이 예수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히 5:7-10; 2:9-18).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그 길을 가지 않고 피할 수 있었지만 (5:8), 예수님은 몸소 힘들게 그 길을 갔다고 히브리서신은 고백한다. 그리고 그 고통과 죽음으로 예수님은 우리 인간, 아니 피조물 모두가 겪는 고통에 대해 죽음에 대해 철저하게 경험했다는 것이다 (2:9; 2:17). 그래서 우리 인간과 유한한 피조물을 완전하게 이해하시고, 우리와 완전히 공감하시고, 우리를 완전하게 품어내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5:9).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 (12:2)이다. 예수님이 완전하신 건 그 분이 인간의 고통을 완벽하게 공감한다는 의미이다. 그 분이 하나님이신 건, 구세주인 것은, 그 분이 철저하게 인간의 고통, 죽음을 감내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후포모네 신앙의 역설이자, 히브리서신이 주는 지혜이다.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 지 모르는 요즘 같은 세상, 살상이 난무하고, 분노가 폭력으로 자행되는 이런 세상, 평화의 길이 도대체 안 보이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포기하지 않으나 감내하는 후포모네 신앙의 저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살기가 너무 힘들어 한숨이 나오고, 땅이 꺼질 만큼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야하지만, 그런 상황을 견디어 내는 신앙이 필요하다. 그 신앙은 결코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런 고통이 (다른 이에겐 일어나도) 내겐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안일함에 후포모네 신앙은 우리에게 함께 다른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라고 격려한다. 예수님도 하셨기에, 그 분이 우리와 함께 철처하게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셨기에 우리도 그를 따르는 자들로서 할 수 있다는 히브리서신 공동체의 믿음의 고백을 우리도 할 때다.


ⓒ 웹진 <제3시대>


  1. Mary Ann Beavis and HyeRan Kim-Cragg, Hebrews Wisdom Commentary (Collegeville: Liturgical Press, 2015). [본문으로]
  2. Ruth Hoppin, “The Book of the Hebrews Revisited: Implications of the Theology of Hebrews for Gender Equality,” cited in Beavis and Kim-Cragg, Hebrews, 57-5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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