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삶이, 예술이 그리고 영화가 유의한가요?  

키아로스타미의 <체리향기>




이희승*



  제가 일하고 있는 대학에서도 구조조정이 한참입니다. 인적 자원의 효율적 관리와 무한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한 생존전략을 마련해 내놓으라고 연일 격려와 독촉의 이메일들이 날아 듭니다. 소위 실용학문을 하는 타 단과대학도 머리를 싸매게 하는 이 상황은 르네상스의 미학을 연구하고, 세익스피어 시대를 읽고, 고대 중국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데 평생을 바쳐 오신 인문학 교수님들에게는 참 난감하기 그지없는 요구네요. 특히, 대학 경영진이 보낸 이메일에 이런 쓸모없는 ‘Hobby course (취미 과목)’ 들을 정리해 내라는 모욕적인 표현이 부끄러움 없이 등장하기 시작하자, 인문학부에서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새내기 시간강사로써 분노와 함께 좌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의 삶이란 자원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자본으로 전환하기 위한 여정일까요?


  춘추전국시대를 능가하는 이런 난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지난달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들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돈과 유명세를 얻기 위해서, 무슨 사상과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 어떤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등등의 실용적인 이유에 기대지 않고도, 영화를 만들고 보는 것만으로도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그런 영화들을 말입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빛나는 카메라는 소박하지만 천박하지 않게, 어눌하지만 가식적이지 않게 사는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습니다. 실수로 집에 가져온 친구의 공책을 돌려 주려고 낯선 이웃마을을 헤메는 어린 소년의 오후를 그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1987)>의 마지막 컷에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는 말린 들꽃 책갈피, <올리브 나무 사이로 (1994)>의 엔딩에서 언덕 아래로 소멸하는 하얀 점 두개로 변한 젊은 연인들 사이의 대화를 대신하던 올리브 나무 사이를 지나는 잔잔한 바람소리 등은, 영화 보기를 밥먹듯 해야하는 저같은 사람에게조차도 신산한 마음과 고단한 삶을 든든히 지탱해 주는 기둥같은 순간들입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1997년 수작 <체리향기>는 특히나 그렇습니다. 삼십년 넘게 불패의 경제 성장을 이루던 대한민국이 IMF라는 경제 위기에 직면해 휘청거리던 그 때, 요동치는 환율로 영국유학을 접고 서울에 돌아와 있던 저에게 세상 저편에서 기적같이 도착한 편지 한 통처럼 다가왔던 영화지요. 1998년 대한민국 자살율이 그 전 해보다 40%이상 급증했던 그 암울한 시절,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저 먼 땅 이란에서 그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영화는 상큼하게 입맛을 돋우는 그 제목과는 달리, 당시 대한민국에 느닷없이 드리운 죽음의 향기를 진하게 풍기며 시작합니다. 밑도끝도 없이 인생을 결말짓고 싶은 중년의 남자가 자신이 스스로 판 무덤에 누워 수면제를 먹고 죽음을 맞이한 아침, 시체가 되어 누워 있을 자신을 위해 흙 몇 삽을 뿌려 덮어 줄 누군가를 찾아 헤메는 이야기이니까요.    


    1990년에 국토를 강타한 어마어마한 대지진의 폐허에서 회복 중인 이란의 근교는 보기에도 처참하리 만큼 황량하고, 민망하게 헐벗은 신작로와 벌거숭이 언덕을 분주하게 누비며 주인공 남자는 자신의 무덤에 흙 덮어 줄 누군가를 찾아 헤맵니다. 돈은 좀 있는 듯 보이는 미스터 버디는 길에서 마주친 선량하지만 경제적으로 곤궁한 사람들에게 거부하기 어려운 큰 돈을 제안합니다. 하나같이 순박한 이들은 주인공이 제시하는 큰 돈도 마다하고 이 남자를 절망과 죽음에서 구해 내려고 애를 쓰지요. 미스터 버디와 일련의 인물들은 삶과 죽음에 대해, 그리고 삶의 유의함에 대해 나름 진지한 대화를 이어갑니다. 시멘트와 모래가 풀풀 날리는 건설현장의 주변에서 근근히 삶을 이어가는 주변인들은 어찌보면 배부른 투정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을 진심으로 걱정해 줍니다. 허나, 죽음의 논리를 오랫동안 준비해온 이 남자를 설득하기는 역부족입니다. 무슨 연유인지 완전히 증발해 버린 삶의 향기로 인해 죽음에 가까이 닿은 미스터 버디를 진심으로 이해하기에는, 그의 죽음을 향한 행진에 잠시 동행하는 이들은 모두 비루하지만 그래도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삶을 긍정하는 사람좋은 이웃들이지요. 신기하게도 영화가 중반부를 넘어 가면서 관객들은 모두 저마다 삶의 시름이나 걱정을 내려 놓고 이 남자가 죽지 않기를, 이 남자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돌려 놓을 입심좋은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게 되죠. 혹은 누군가 나타나 관객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도 자리잡고 있는 이 끈질긴 죽음에의 유혹을 이겨 주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도 같습니다.  


    그때, 혜성처럼 –이라고 하기엔 행색이 너무 초라한 – 장년의 박제사가 주인공의 차에 동승합니다. 자기 이야기를 다 듣고도 꼭 죽어야 겠다면 그때가서 흙 덮는 일을 해주리라 약속하고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죠. 엄청나게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설득을 기대했다면 다분히 실망스러울 수 있는 그저 그런 보통 사람의 삶인데, 유독 한 장면이 이 간절히 죽고 싶은 남자의 마음을 흔들게 됩니다. 노인의 젊은 시절, 좌절감에 목을 매 죽으려고 올라간 뽕나무에서 해돋이를 망연히 쳐다 보며 따먹은 뽕나무 열매 맛을 잊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지요. 더욱 재미있는 것은 노인이 목을 맬 밭줄을 묶으려고 올라간 뽕나무 위에 앉아, 나무 밑을 지나서 학교로 향하던 아이들에게 나뭇가지를 흔들어 뽕나무 열매를 떨궈주고는 자신도 그 맛난 열매를 한줌 집어서 집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던 아내에게 가져다 주었다는 대목입니다. 자신이 회복한 삶의 향기를 혼자만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나눔으로써 진정 죽음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노인의 진실한 체험이 과거의 이야기에서 현재의 장면으로 자연스레 넘어 오면서, 죽지 못해 안달이 난 이 중년의 남자에게도 ‘삶 아니면 죽음’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초월하는 새로운 삶의 지경을 은근히 보여 주는 것만 같습니다.  


  노인은 이야기 중간중간 길 안내를 하며, 나무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고 연한 색깔의 잎사귀와 꽃들이 비치기 시작한 언덕 저편으로 차를 몰게 합니다. 천하 절경은 아니지만, 심오한 지혜의 한마디는 아니지만 어쩐지 이렇게 그냥 죽기는 좀 억울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이 영화의 후반부 장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야만 하는 낮은 곳에서나 가능한 그런 힘을 가진 듯 합니다. 미스터 버디는 끝내 죽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지만, 자신의 무덤을 봉해 달라는 다짐을 받아내고 헤어져 돌아 가는 길에 다시 노인이 일하는 박물관으로 미친 듯이 달려 갑니다. 그리고는 노인에게 아침에 무덤가에 와서 자신을 세번 정도 아주 세게 흔들어 깨워서 그냥 잠이 든 것이 아닌지 확인을 해 보고, 그래도 죽은 것 같으면 흙을 덮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지요. 이유를 딱히 설명할 수 없지만, 제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장면입니다. ‘그래, 딱 저만큼만 삶에 대한 희망이 있어도 살 수 있어!’ 라는 깨달음에 맥이 탁 풀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물기 많은 체리를 꼭 내 입에다 넣고 씹지 않더라도, 피처럼 붉은 체리가 풍기는 그 흐드러진 향기를 생각하기만 해도 우리는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참 겸손한 생각을 나누는 이런 영화가 있기 때문에, 예술과 사상이 인류에게 ‘취미’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확신을 다잡아 봅니다. 


* 필자소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강사 및 정신분석가. 동 대학의 미디어 영화학과에서 각색영화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고찰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아시안학과에서 한국 영화와 텔레비젼 드라마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호주 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가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 라캉 포럼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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