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시선의 힘] '싫음'과 '불편함'에 대하여 (김난영)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6. 10. 4. 19:42

본문



'싫음'과 '불편함'에 대하여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아이를 대할 때 매번 웃는 낯으로 대할 수 없다. 천사표 엄마의 유통기한은 고작해야 2-3년, 아이는 날이 갈수록 부모의 뜻과 통제를 벗어난 행동들을 시전함으로써 부모의 미간을 찌푸리게 하기 마련이다. 4세, 6세 형제를 키우는 요즘은 엄마도 희노애락을 가진 인간임을, 특히 격노할 수 있는 미약한 존재임을 아이에게 날마다 각인시키며 지낸다. 그 때마다 “정말 싫어! 하지마!”라고 감정을 쏟아놓곤 했는데, 매번 뒤끝이 남는 게 영 찝찝하고 ‘내가 정말 싫었을까? 그건 아닌데...’싶다.  

        지난 6개월 동안 아이를 함께 키우는 공동체 생활을 하며 익숙해진 표현을 소개할까한다. 이곳에서는 아이든 어른이든 ‘싫다’는 표현을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대신 ‘불편하다’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네다섯 살 아이들이 투닥거리며 “니가 공을 가져가니깐 불편하잖아!”라고 이야기하고, 울며 격분한 아이가 선생님 앞에서 “으앙~ ○○이가 자꾸 놀리니깐 불편했단 말이야!”라고 하소연한다. 어른이 아이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하는 공간에서 큰소리로 떠드는 건 나도 불편하고 다른 친구들도 불편할거 같아”라고 아이를 타이른다. 아이와의 대화에서 ‘싫다’라는 말을 대신 할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 한 나로서는 ‘불편하다’라는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눈물콧물 범벅이 되도록 흥분한 아이가 뚜렷이 발음하는 ‘불편하다’라는 고급진 단어는 생경하기까지 했다.   

      유아기의 언어발달 과정에 대한 학술적 견해는 잘 모르겠으나, 두 아이를 키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두세 돌이 갓 지난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때 ‘불편하다’는 어휘를 쓴다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다. 이 시기의 아이는 보통 ‘싫다’는 표현으로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전달한다. 물론 상황을 지켜보는 부모는 ‘싫다’고 외치는 아이의 말 외에도 몸짓이나 표정의 언어를 통해 보다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선을 읽겠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하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4세부터 7세까지 아이들이 함께 하는 이 공동체에서 누구나 ‘불편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목표가 뚜렷한 훈련인 듯하다.   

       ‘싫음’과 ‘불편함’에 대해 한동안 생각해봤다. ‘싫다’는 매우 단정적인 표현이다. 면전에 대고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일단 피하고 싶다. 선뜻 그 앞에 머물기가 민망해진다. 상대가 개입할 여지없이 관계를 단절해버리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가 담긴 말이다. 대신 ‘불편하다’는 말은 부연이 필요하다. 꾸역꾸역이라도 뒤에 이어갈 말을 찾아야한다. 상대가 “왜?”라고 받아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완곡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억울함, 짜증, 분노 등 참을 수 없이 앞서가는 감정을 추스르고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주겠다는 화자의 의지이며, 상대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유지하려는 배려와 정성이다. 

        아이들은 ‘불편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상대를 배려하며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고 세밀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훈련한다. 어른 역시 같은 방법으로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아이의 언어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법을 배운다. 물론 현실은 따박따박 말대답하는 아들 두 마리와 포효하는 한 마리 짐승으로 밖에 묘사할 수 없는 못난 어미가 싸우는 정글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솔직한 감정을 인간의 언어로 주고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이에게 규율이나 규칙으로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것보다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고 배려할 수 있는 언어를 훈련시키는 것이 동물의 세계보다 더 무섭고 끔찍한 혐오가 넘쳐나는 이 세상에 더욱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 웹진 <제3시대>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