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젠더다 1 : 연재를 시작하며



(평범한 워킹맘, 페미니스트, 간간이 글쟁이로 변신)


    “한국에는 세 가지 성이 있다. 남성, 여성, 아줌마.” 


   이건 아주 오래된 농담이지만 여전히 널리 사용된다. 지하철 빈 자리에 가방을 던져 뛰어가 앉거나, 마트 할인 매장에서 사람들을 제치고 물건을 집어 드는 중년 여성들을 우스갯 거리 삼을 때 주로 이런 말을 입에 올린다. 성적 매력이 없다는 의미로 ‘아줌마'를 남성/여성으로부터 분리하면서도 그들을 다시 제3의 성으로 호출해 내는 이 농담의 작동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그렇게 제 3의 성으로 분류된 ‘아줌마'의 섹슈얼리티는 아마도 (안하무인의) 생존력일 것이다.  


   <이 악질적인 농담에도 유효한 지점은 있다. 이 농담이 은연 중에 적시하고 있는 것처럼 아줌마는 남성이나 여성과는 다른 ‘성적 주체’이다. 이들의 섹슈얼리티는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을 다루는 방식과는 다르게 다루어진다. 말하자면 ‘아줌마'를 제 3의 성으로 일컫는 이 농담 속에서 ‘아줌마'를 하나의 젠더 문제라고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아줌마의 섹슈얼리티는 가부장적 가치관에 억압되거나 배제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공공화된 것이다. 그녀들의 성은 가족 구성원들에 의해 전유되고, 재구성된다. 이 과정에는 ‘육아'와 ‘엄마'라는 또 다른 단어들이 개재되어 있다. ‘엄마'라는 이름은 아줌마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지만 그다지 다르지도 않다. 단지 ‘아줌마'로 향하는 과정적인 이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기를 임신했을 때, 우연히 길을 가다 한 모녀를 본 적이 있다. 3-4살 정도로 추정되는 딸아이는 레이스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고 머리까지 예쁘게 땋고서 유모차 안에 앉아 있었는데, 그 엄마는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짝이 맞지 않는 츄리닝을 입고 다크서클이 깊게 패여 흡사 환자 같은 얼굴로 유모차를 밀고 있었다. 아이에게 맞추느라 자신은 돌보지 못했을 그녀의 일상을 상상하면서, 어쩐지 앞으로의 내 삶이 두려워지기까지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해도 나는 그녀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속 나를 보살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육아의 과정을 겪어내며 이 생각은 송두리째 달라졌다. 그 전까지 내 질문이 ‘어떤 사람이 아줌마가 되는가.’였다면, 이제 내 물음은 ‘어떤 과정을 통해 아줌마라는 제 3의 성이 탄생하게 되는가.’이다. 


   개인적인 의지만으로는 ‘아줌마'로 가는 길에서 탈출할 수 없다. 운 좋게 성평등 관념이 투철한 남편을 만나 가부장제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병원 시스템이나 SNS, 육아 시장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적으로 요구되는 ‘아줌마'의 역할에서 빠져나오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사회의 부름에 따라 아기를 가진 그 순간부터(즉 ‘엄마’라는 역할을 부여받는 순간부터) 여자는 ‘아줌마’가 되어야 한다. 


   웹진 <제3시대>에서 소중한 지면을 허락해주신 덕택에, 이제부터 나는 ‘누가 아줌마를 요청하는가.’라는 주제를 탐구하려 한다. 글의 초반부에서는 임신-육아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내가 아줌마로 이행하게 된 과정’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그리고 중후반부에서는 다른 여성들의 엄마-되기를 인터뷰로 풀어내려 한다. 엄마가 된다는 과정 가운데 자아를 잃지 않으려 고군분투하고, 저항하며 때로는 타협하는 삶을 듣고, 그 가운데에서 어떤 때에 스스로를 아줌마로 느끼게 되는지, 사회가 요청하고 과거의 내가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아줌마’에 대해 관찰하려고 한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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