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상철
(본지 편집인 / 한백교회 담임목사)

 


   제가 최초로 전태일이라는 이름 석자를 들었던 날은 아주 까마득합니다. 그날이 언제였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그 이름을 제게 일러준 사람은 저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목사로 안수받기 전에 꽤나 많은 직업을 전전했습니다. 신문사편집국장, 고등학교 영어선생님, YMCA 총무, 고등학교 윤리선생님, 대학강사, 번역가...등. 사회가 분화되기 이전 전근대 상황에 놓여있었던 한국사회에서는 이러한 일이 가능했겠지만 지금처럼 사회가 분화된 상황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발행되는 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전태일이 불에 타 죽던 1970년 11월, 아버지는 기획조사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전태일 사건이 터졌고, 그 사건에 대한 기획기사를 편집회의를 거쳐 그 호의 헤드라인으로 잡고 분명 인쇄소로 넘겼는데, 다음 날 나온 신문에는 그 기사가 빠져있었다 합니다. 그래서 당장 편집국장에게 올라가서 따지면서 항의하고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그 날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고 합니다. 사표를 장렬하게 던지고 나오는데 편집국장이 아버지 뒤통수에다 대고 했던 말을 아버지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하십니다. “야, 네가 그런 식으로 얼마나 대한민국에서 버틸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며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던 것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오는데 등골이 오싹하게 무서웠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고 하십니다. 이 일은 제가 생후 16개월 때 발생했던 일입니다. 아버지의 당시 나이는 지금의 제 나이보다도 열일곱살이나 적은 서른 한 살 때 였습니다.   

   전태일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47년이 지났습니다. 한국에는 지난 47년 동안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변화에 대한 필모그라피를 일일이 여기서 나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불변하는 진실이 있네요. 여전히 한국은 47년 전 전근대적이었던 시절이나, 2016년 최첨단을 달리는 현재나 같은 패밀리의 지배하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1970년 전태일의 죽음의 배후에는 박정희가 있었고, 2016년 백남기의 죽음 뒤, 그 전에 있었던 세월호의 죽음 배후에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우뚝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면 이 지긋지긋한 주술이 풀릴까요? 

    예전에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청년이라는 말보다, 전태일이라는 말보다 ‘아름답다’ 라는 말에 눈길이 꼿혔습니다. 이성적인 청년 전태일, 의지적인 청년 전태일, 용감한 청년 전태일이 아니라, 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랄요? ‘진,선,미’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서양전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정은 제일 하위개념입니다. 그것은 감성, 욕망과 쌍을 이루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감성과 욕망은 이성과 의지에 의해서 억압되어야 합니다. 고양된 이성과 투철한 의지를 지닌 인간! 그들이 이룩한 진보의 역사, 발전의 역사가 다다른 종착역이 바로 이곳, 21세기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제목에서 저는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라는 종말론적 메시지를 발견합니다. 전통적인 미학이론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정은 어떤 대상을 향한, 혹은 그 대상으로부터 전달되는 숭고함에서 비롯됩니다. 숭고란 이성과 의지, 논리와 윤리로 잡히지 않는 영역입니다. 그 잡히지 않는 영역을 향한 비월과 낙하를 칸트는 자유라고 말했다지요. 그렇다고 볼 때, 어떤 시스템을 넘어가는 자유로운 행위를 감행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성도 아니고, 논리도 아니고, 의지도 아니고, 용기도 아닙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영민한 감수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세상의 법칙과 세상의 질서와 다른 진공의 영역이 있다면 그곳은 분명 미적인 감수성이 지배하는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그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마음이 현실의 질서에 틈을 내고 균열을 일으키는 것! 그것이 혁명 아닐런지요. 이런 이유로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라는 말은 적어도 제게는 유효한 언사이고, 이런 이유로 저는 혁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 주간에 아버지가 제주도에서 올라와서 하루 묵고 내려가셨습니다. 병원 검진 때문에 올라오신 것입니다. 늘 그렇듯이 아버지는 공항에 도착하면 종로 3가 극장가를 먼저 찾습니다. 피카데리, 단성사, 서울극장이 몰려있는 그곳말입니다. 그곳에서 영화 한편을 꼭 봅니다. 주기적으로 종로3가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병원예약을 하는 건지, 아니면 병원 올라온 김에 시내구경을 하는 건지 약간 헷갈릴때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저녁 무렵에 저와 종로통에서 만나 순대국을 먹고 종로길을 걷다가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몇 권사고, 광화문 세월호 광장으로 올라와 참배도 하고 각 부스를 돌아보면서 거기서 자원봉사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십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광화문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저는 너무나 뻔하고 익숙한 광화문인지라 한쪽에 앉아 카톡질을 하고 있었답니다. 아버지의 광화문 기행을 마치고 우리는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무리들 틈을 천천히 거슬러 걷다가 지하철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로서는 오래간만에 맛보는 미세먼지가 가득했던 서울의 싸늘한 밤공기였을텐데... 어떤 심정이었을지 궁금해졌지만 묻지는 않았습니다.... 분명 ‘아름다운 밤’이었을 것입니다. 전태일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었듯 말입니다.  

    _ 한백교회 전태일기념주일 중 <삶의고백> 에서...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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