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그들, 제로섬 게임을 벌이다[각주:1]


 

권오윤[각주:2]



       현실 사회에서 범죄는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금기시 하는 행위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범죄자의 편이 되어 그를 응원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범죄자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들이 범행을 모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다루는 케이퍼 영화가 대표적인 경우죠. 값진 물건을 절도하거나 현금성 자산을 강탈하는 범죄를 모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관객은 마치 자기가 그 일원이라도 된 것처럼 스릴을 느낍니다.

       일반적인 범죄 스릴러 영화, 즉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과 그에 맞서는 인물이 엇비슷한 분량으로 등장하면서 쫓고 쫓기는 대결을 펼치는 경우에도 범죄자에게 어느 정도 감정 이입할 수 있습니다. 범죄에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요. 사람을 마구 죽이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와 동일시 할 관객은 거의 없을 테지만, 강간범을 살해하고 도망치는 여성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을 것입니다.

       범죄자에 대한 호감은, 관객의 마음 속에서 범죄 행위에 대한 본능적인 반감과 갈등을 일으키며 영화에 대한 흥미와 집중도를 높여 줍니다. 이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는 그런 식의 양가 감정을 잘 활용하여 영화의 재미를 확보한 아주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과가 화려한 형 태너(벤 포스터)와 차분한 성격의 동생 토비(크리스 파인)는 서부 텍사스의 미들랜드 은행 지점에 연쇄적으로 침입해 현금을 강탈합니다. 이 은행에 저당 잡힌 가족의 농장에서 석유가 발견되었는데, 대출 만기일이 다가와 소유권을 완전히 박탈당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맡은 베테랑 수사관 해밀턴(제프 브리지스)은 이들의 범죄 수법을 간파하고 곧바로 추적에 나섭니다.

       황량한 텍사스를 무대로 서로 쫓고 쫓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영화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그만큼 냉혹한 하드보일드도 아니고 이야기 구성도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은행 강도에 나서게 된 형제의 감정과 상황을 자세히 보여 줌으로써 관객의 공감을 얻는 데 주력합니다.


       벤 포스터와 크리스 파인의 앙상블이 빛을 발하는 지점도 그런 부분들입니다. 두 배우는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말썽꾸러기 형과 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냉정한 성격의 동생이라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진짜 형제 간에 있을 법한 감정의 교류를 사실적으로 구현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 때문에 관객은 이 어설픈 무법자 형제들이 어떻게든 성공했으면 하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됩니다.

       은퇴를 앞둔 수사관 역할을 맡은 제프 브리지스는 보수적인 텍사스 남자들 특유의, 거들먹거리는 늙은 수탉 같은 느낌을 잘 표현하면서 현실감을 높여 줍니다. 베테랑 특유의 직감과 혜안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그의 존재감은 주인공 형제들이 정말 잡힐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주면서 극에 스릴을 더하지요.

      <영 아담>(2003), <할람 포>(2007) 등으로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던 영국 감독 데이빗 맥켄지는 우리나라에서는 작년에 개봉됐던 <스타드 업>(2013)으로 상업적인 아이템에도 자신의 연출력이 통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바 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사이의 잡힐 듯 말 듯 이어지는 서스펜스를 점진적으로 끌어 올려 결말까지 쭉 밀고 나가는 뚝심을 보여 줬습니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의 각본으로 이름을 알린 시나리오 작가 테일러 쉐리던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범죄 행위와 수사하는 과정의 디테일을 꼼꼼하게 재현합니다. 삼촌과 사촌 형제들이 모두 텍사스 주의 법 집행관인 ‘텍사스 레인저’였기 때문에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를 통해 시나리오의 디테일을 채워 넣었다고 합니다. 초반부는 다소 심심하지만, 형제의 진짜 동기가 제시된 이후의 전개는 흥미진진합니다. 특히 곳곳에 자리잡은 세련되고 맛깔스런 대사들이 돋보이지요.

       이 세상에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가난한 삶에 만족하고 욕심부리지 않는 태도를 좋게 여기는 ’안빈낙도’라는 말도 있지만, 이 사자성어의 대표격으로 칭송받는 공자의 제자 안회는 평생을 궁핍하게 살다가 불과 서른 한 살에 요절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도 안 되어 늘 쪼들리는 사람에게 ‘도’를 논하자고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 영화 속의 형제는 다음 세대에게 가난을 물려 주지 않기 위해서 은행 강도를 저지릅니다. ‘빈곤은 모두를 피폐하게 하는데, 그걸 내 자식들이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는 주인공 토비의 말은 너무나 가슴에 와닿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돈과 기회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강탈한 그들의 행동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에 불과합니다. 자신들의 빈곤과 불행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일을 한 것 뿐이니까요.

       개개인이 자력 구제 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그냥 저절로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각자 알아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중요하고, 돈과 권력이 있으면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생각을 용인해 온 이 사회가 만들어 낸 일입니다. 개인의 탐욕을 위해 멋대로 사회의 룰을 바꾸려 한 사람들과, 자기의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거기에 빌붙고 떡고물을 얻어 먹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썩은 고름이지요.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소수에게 집중된 부와 권력을 적절하게 제어하여 다수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혜실 게이트’(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제대로 단죄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보여 주는 확고한 이정표를 세울 수 있으니까요. 그러지 못하면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가난에 허덕일 수 밖에 없는, 각자도생의 지옥은 계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황량한 벌판에 석유 시추기만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텍사스의 풍경이 바로 그런 세상의 미래일 것입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11월 9일자 기사 <빈곤을 물려 주고 싶지 않았던 그들, 제로섬 게임을 벌이다>(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258964 [본문으로]
  2. <발레교습소> <삼거리극장> <화차> 등의 영화에서 조감독으로 일했으며, 현재 연출 데뷔작을 준비 중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물 [권오윤의 더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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