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보이지 않는 혼탁한 삶의 자리에 찾아든 아름다운 

이창동의 <시>




이희승*



  꼭 일년 전, 다르덴 형제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의 리뷰로 2016년 한해를 열었던 것이 마치 어제처럼 가까운데 벌써 2017년 첫번째 영화 읽기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사다난’이라는 표현조차 무색할 정도로 모두의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소식들이 쏟아지고, 그 절망감 속에서 그간 공동체라는 명제에 냉랭했던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혁명에 가까운 변화들을 체험하는 와중에, 저도 모르게 급물살에 휩쓸리듯 2017년의 출발점에 도착해버리고만 기분입니다. 땅끝 나라에 사는 저 또한 대한민국의 운명을 염려하며 어지러운 뉴스들 속에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영화를 고르려니 쉽지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달아 올랐었나 봅니다. 그래서인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2010)>가 소란스러운 머릿속을 다스려 주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가져 봅니다.


  이창동 감독은 소설가로 등단한 후, <그 섬에 가고 싶다 (1993)> 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95)> 의 시나리오 집필로 영화인생을 시작한 문인 출신의 영화감독입니다. 주변의 적극적인 권유로 만들게 되었다는 그의 감독 데뷰작 <초록 물고기 (1997)>는, 장르와 국적을 가리지 않는 열렬한 영화팬이었지만 역사적인 관점을 담지하면서 공감가는 동시대의 초상을 제대로 그려낸 한국영화에 목말라 있던 저에게 한국영화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준 영화였습니다. 모두가 오래도록 기억하는, 또 기억해야 하는 영화 <박하사탕 (2000)>은 저의 단골 강의 주제이기도 하지요. 숨겨지고 외면당한 현대사의 그늘만을 예리하게 가려내어, 철저히 정제된 영화미학으로 전달하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은 시대를 가열차게 이끈 ‘영웅’보다는 한번도 스스로를 역사의 주체라고 인식하지 못했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존재하는 이유인 ‘그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집니다. <오아시스 (2002)>는 장애를 가진 공주(문소리)와 사회부적응자인 종두(설경구)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번영을 앞세우며 내달리는 대한민국이 적극적으로 추방시키고자 했던 사회적 유배자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들’을 우리 사회의 일부로 복원시키고자 합니다. <밀양 (2007)>은 남편과 아들을 잃고도 처절할 정도로 그 상실을 망각하고 싶어하는 신애(전도연)를 폭압과 독재의 기억과 흔적을 애써 지우려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등치시키죠. 그리고 <시 (2010)>는 억울하게 희생당하고 잊혀지는 어린 소녀를 기리는 미자(윤정희)의 시작 (詩作)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정의와 화해를 가로막는 자기보호 본능과 이기심을 예술행위를 통해 극복해 보려는 영화적 실험을 시도합니다. 어찌보면 다행스럽게도 2016년 말, 역사는 그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속에 등장한, 출구없이 지리멸렬한 삶에 고통스러워 하는 ‘그들’이 바로,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모아들고 광장으로 향한 ‘우리’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증명해낸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포스터에서 이창동 감독이 직접 썼다고 알려진 한 글자 ‘시’ 가 우선 눈에 띱니다. 정성을 다해 완성한 단 세 획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글자. 엄청난 사건을 담아내면서도 그 단아함을 잃지 않는 <시>는 바로 이 글자와 닮아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미자는 예순을 훌쩍 넘긴 노년의 여성입니다. 이혼한 딸이 맡기고 떠난 외손자 종욱(이다윗)을 돌보며 자신의 인생 자체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생의 남은 날들을 가볍게 지워 나가는 미자이기에 치매 초기라는 진단도 마치 가벼운 어깨 통증처럼 별로 충격적이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 남자들 마음께나 설레게 했던 미모의 흔적이 그나마 그녀에게 남겨진 유일한 삶의 훈장이고, 예쁜 꽃을 좋아하고 처지에 맞지 않는 화사한 옷차림으로 자신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향한 본능을 발산하는 좀 엉뚱한 할머니일뿐이지요. 중풍으로 몸이 불편한 강 노인 (김희라)의 시중을 들며 용돈벌이를 하고, 동네 문화센터의 시짓기 교실에 다니던 그녀의 평온한 일상은 예상치 못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겨우 중학생인 외손자 종욱이 집단 강간 사건의 피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종욱과 그의 친구들이 동급생인 희진(세례명 아네스)을 상습적으로 강간했고 피해자인 희진이 끝내 강물에 투신자살하는 사건은 절망도 희망도 없이 진공관같던 미자의 노년을 송두리째 흔들죠. 시덥지 않게 시작했던 시짓기는 이제 엄청난 고통과 충격을 견디게 하는 절실한 희망이 되고, 미자는 평생 한번도 써보지 않았던 시 한편을 쓰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된 양 매달리며 시를 완성하는 ‘인생의 가장 뜨거운 순간’을 간절히 소망하게 됩니다.


    영화의 전개는 이렇게 둘로 내달리는 평행선을 그리는 듯 합니다. 주인공 미자가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인생의 마지막 장에서 붙잡은 시에 대한 뜬금없는 열정, 그리고 집단 강간 사건을 소리없이 마무리하려는 가해자 소년들의 아버지들과 학교의 후안무치. 하지만 창작의 고통을 통해 세상과 교감하기 시작한 미자는 이 평행선에 의미있는 교차점을 만들고자 혼자 애를 씁니다. 미자의 좌충우돌 시쓰기 프로젝트는, 목소리를 잃은 채 희생자요 망자로써 플롯의 외곽에 존재하던 어린 소녀 희진을 끝내 내러티브의 중심으로 불러 들이죠. 영화는 비아그라의 힘을 빌어서라도 육신의 마지막 불꽃을 사르고자 미자와의 육체적 관계를 요구하는 강 노인, 정작 시쓰기엔 별 관심없는 이들이 모여 앉아 커피와 술과 무게없는 말들을 나누는 시짓기 교실, 그리고 일말의 뉘우침없는 종욱과 그의 친구들 사이를 오가는 미자의 일상을 통과하면서 시쓰기와 생에 대한 윤리적 자세를 찾는 과정을 명백하게 동일시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게 혼탁한 삶 가운데 놓인 미자에게 시짓기 교실 강사이자 시인으로 등장하는 진짜 시인 김용택은 시를 쓰려면 세상을 잘 봐야 한다고 일러 줍니다. 미자는 어린 여학생처럼 순진하게 처음엔 식탁에 놓인 사과를, 집 앞에 선 나무를, 죽은 소녀의 사진을, 희진의 학교 교실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린 소녀가 그 짧은 생을 내던졌던 검은 강물을 진지하게 들여다 보지요. 강가에서 홀로 맞은 굵은 빗방울이 종잇장에 세차게 새겨 넣은 말없는 ‘시’를 받아내는 미자는 이제 시를 쓸 준비를 마친 듯 합니다. 카메라는 미자가 찾아 오지 않는 시상을 기다리며 정한수처럼 받쳐든 노트의 빈 페이지에 뚝뚝 떨어져 박힌 빗물 자국을 한참동안 응시하며, 관객에게도 시인의 자리에 앉아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이창동 감독은 경박하고 의미없고 결코 아름다움을 담아 낼 수 없었던 미자의 삶이 서서히, 잊혀진 자들의 목소리에 자리를 내어 주는 자기희생적인 진혼곡으로 마감하는 모습을 그립다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잊어버린 정감어린 소박한 풍경들 속에 담아 냅니다. 그리고는, 클로즈업으로 드디어 만나는 희진과 눈을 맞추는 것으로 영화를 닫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썼다는 이창동 감독의 ‘아네스의 노래’는, 진실된 예술행위를 통해 볼품없는 인생의 가장 뜨거운 순간을 경험한 미자의 손끝을 통해 곱게 원고지에 옮겨지고, 미자의 시를 통해 비로소 가해자들의 일방적이고 고의적인 망각에서 부활한 희진의 목소리에 실려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게 됩니다. 나누고 싶었던 그 수많은 재잘거림을 뒤로 하고 깊은 바다에서 침묵한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태웠던 광장의 촛불을 먼 타국에서 지켜보면서 문득 이창동의 ‘아네스의 노래’를 떠올렸습니다. 제발 2017년에는 그들이 불렀을 노래를, 그들이 써내려갔을 아름다운 시를 기억하고, 함께 부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탓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니 그래서 2017년 첫 영화읽기는 ‘아네스의 노래’로 맺으려 합니다.


 아네스의 노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 필자소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강사 및 정신분석가. 동 대학의 미디어 영화학과에서 각색영화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고찰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아시안학과에서 한국 영화와 텔레비젼 드라마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호주 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가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 라캉 포럼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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