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고찰 II

 



김혜란
(
캐나다 세인트앤드류스 대학, 실천신학 교수)


 

지난해 11월 원고때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위기를 다시한번 고찰한다고 약속을 했다.
지난해 11월 원고를 쓸 땐 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한 직후였다. 한국에선 박근혜 최순실 파일사건으로 매일 매일 한국 국민들이 거리로 나오던 때였다.
지금 1월 이 글을 쓰는 이번주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주다.  특별히 선거기간동안 벌어진 성차별과 여성혐오의 문제에 저항하면서 취임식에 맞추어 1월 21일 여성들의 대대적 시위 (Women March)가 준비되고 있고, 내가 살고 있는 카나다에서도 여성 동시다발 연대시위가 계획 중이다. 지나 두 달간 한국은 6주에 걸친 엄청난 수백만명의 끈질긴 시위로 인해 12월 9일 국회는 박근혜의 대통령직을 탄핵하는 결의를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취임을 하지만, 트럼프가 제대로 대통령직을 수행해 낼지는 오리무중이다. 헌법재판소로 탄핵건이 넘어갔지만,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을지 역시 오리무중이다. 알 수 없는 이런 정치적 흐름은 비관적 또는 냉소적 판단이라기 보다는 그만큼 변수와 어려움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해준다. 우린 이러한 위기에 대해 자각하는 차원에서, “깨어있어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새기면서, 11월 소개했던 제니퍼 웰쉬의 역사의 회귀로 돌아가보자.[각주:1]
웰쉬는 역사의 회귀라는 큰 테제를 야만주의; 대다수의 인구의 이주; 냉전체제 그리고 불평등의 회귀라는 소테제로 나누어 어떻게 부정적, 폭력적 역사가 회귀하고 있는지 통찰한다.
웰쉬는18세기 시작부터 20세기 초중반까지 정립된 서구자유민주주의는 3그룹의 차별을 기반으로 세워졌다고 주장하면서, 서구 자유 민주주의가 지닌 본질적 한계를 날카롭게 집어낸다. 여기서 이 그룹은, 재산이 없는 자, 여성 그리고 유색인종이다. 즉, 서구 자유민주주의는 귀족, 백인, 그리고 남성을 보호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데 기초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20세기 초까지 영국의 경우 투표권은 오직 재산 (부동산)을 가진 자에게만 주어졌다 (귀족계급). 1918년이 되어서야 서구 유럽사회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그리고 미국의 경우 1965년이 되어서야 흑인의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이런 차별정책에 기반한 민주주의는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즘에 입각한 제국주의 세력 (나치, 일본군국주의)을 패배시킴으로써 본 힘을 갖기 시작했다. 1960년대 유럽식민주의하에 속했던 나라들이 독립을 성취하고 탈식민주의국가로 변화되면서 민주주의는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이제는 보편화되어버린 민주주의지만, 완전하지 않은 민주주의의 모습, 위기를 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인 야만주의의 회귀의 예는ISIS의 등장이다. 민주주의에 도전을 주는  ISIS의 등장은 아이러니칼하게도2011년 아랍 스프링, 민주주의투쟁의 여파로 등장했다. 중동지역과 아프리카지역 이슬람 대중들은 전제독재주의를 반대하고 독재자 (예. 시리아 바샤 알아사드)들을 권력에서 끌어내는데 성공을 했지만, 그 성공의 여파는 길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 권력의 공백을 틈타ISIS가 권력을 잡았다. ISIS가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는 전쟁에 대한 정당방위논리이다. 2001년 911 테러이후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쉬의 논리와 비슷하다. 테러를 대항한 전쟁 (War on Terror)를 선포하면서 그는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전쟁은 정당화되었다. 10년이 지났지만 그 전쟁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아니 ISIS의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여기서 역사의 회귀와 재현을 논하면서 주목할 점이 있다. 이는 역사는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라는 점이다.  즉,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그 길로 돌아가고자 하는 대중들의 현재의 욕구를 역사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 새마을 운동 및 경제개발을 그리워하는 이들에 의해 이명박이 경제 대통령이 둔갑을 하고 그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 것이 그 한 예가 아닐까?
3장에서 웰쉬는 피난민의 문제는 전대미문의 대다수 이주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소위 “안보주의”라는 이름으로, 타자에 대한 두려움, 기득권자들의 기득권상실에 대한 공격적 표현이 실체화되어 피난민에 대한 배타적인 반응이 더 큰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미국 트럼프의 선거 당선을 볼 필요가 있다. 미국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자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 바로 백인기득권자들의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백인 정체성 상실에 대한 화풀이로 표현되었고(p. 154), 그렇게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장벽을 높이고 국수주의 안보를 강화하는 그 댓가 (cost)는 기본 인권에 대한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인종, 국적, 성, 계급을 넘어서서 누구나 누릴 권리), 자유 (자유롭게 움직이고 정착하고 살 권리)라는 기본 가치를 내던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p. 158). 비단 미국만이 아니라,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의 발원지에 속하는 유럽의 나라들도 제2 , 제 3의 트럼프를 정치지도자로 선출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국수주의와 인종/종족 말살주의 입장이 공공연하게 세계 곳곳에서 발현되고 있다.
민주주의 또 다른 위기인 냉전체제의 회귀의 단적인 예는 푸틴이다.  2005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러시아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까지 냉전의 역사는 종말을 맞이하는 듯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연방체제의 달콤한 과거는 끊임없이 회자되었고, 영화로운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이런 욕망을 웰쉬는 “근육강화” 정책으로 표현한다 (p. 193). 2011년부터 악화되고 있는 현 시리아 사태 역시 러시아의 근육강화정책의 일환이다. 러시아의 인권유린, 인권침해, 언론의 통제 등 내부 상황과 동시에 주변국가 사이버 공격을 통한 정보유출의 행태는 심각하다. 이런 행태는 주권민주주의 (Sovereign Democracy) 정책의 결과이다 (p. 234). 웰쉬는 이 주권민주주의는 철저하게 국수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새로운 교리라고 설명한다. 이 주권민주주의는 실제로는 반자유주의다. 그런 점에서 레닌-스탈린 시대의 공산주의독재의 모습과 유사해 보이지만 다르다. 국수주의 측면에서 반자유주의적이지만, 자유시장경제체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러시아는 자유를 지향하고 동시에 지양하는 이런 모순의 기로를 걷고 있다. 무엇보다 과거 소련연방체제와 현 러시아 체제가 같지 않은 이유중 하나는 종교의 자유이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종교는 아편이고, 그러므로 제거될 존재이다. 그러나, 현 러시아 주권민주주의하에서, 러시아 정교회는 영적 양식을 제공하는 곳으로 인정된다. 푸틴 대통령 권위 다음으로 권위를 행사하며 다양한 특혜 (조세, 법) 받고 있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p. 237).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는 경제불평등의 회귀이다. 지난주 발표된 옥스팜 보고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62명의 재산을 합하면 세계 인구의 절반 36억명이 가지고 있는 전재산을 합한 것과 같다고 한다. 이 편차는 매년 놀라운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각주:2] 이런 부의 편중은 1980년대 레이건 미정권과 대처 영국 수상의 시절에 등장했다.  11월 원고에서 인용했듯이, 1989년 후꾸야마학자는 역사의 종말을 선언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외쳤다. 같은 책에서 미국이라는 사회가 얼마나 평등한지, 누구든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계급없는 사회를 주장했다 (p. 256). 그러나 소위 우리는 99%라는 “Occupy Movement”가 미국 전역을 휩쓸 때, 2008년 뉴욕증시가 추락했을 때, 계급이 없기는 커녕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간격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승리, 역사는 진보한다는 낭만적이고 안일한 선형적 역사관이 팽배할 1980년대, 신자유자본주의를 견제할 공산주의가 몰락한 그 1980년 후반기부터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서구사회는 경제적인 정체와 퇴보를 겪고 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대부분 99% 수입은 상대적으로 줄고 있고 1% 수입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1% 그룹은 직접적인 생산노동에 동원되지 않은 그룹을 지칭하며 그 그룹이  자본주의체제하에서 누리는 특혜를 웰쉬는 지적한다 (p. 265). 무슨 직업을 가졌고 얼마나 성실하게 일을 하느냐보다 어떤 부모밑에서 어떤 자산을 상속받고 현재 소유하고 있는지가 부의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는것이다. 이런 점에서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한국의 속담은 거짓이다.
웰쉬는 경제불평등은 실제로 인권유린만큼이나 민주주의에 치명적이라고 설명한다. 이자놀이로 1997년 한국경제를 흔들었고 지금도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IMF 국제금융기구조차도 경제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불평등한 빈부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p. 269). 왜냐하면, 빈부격차에 기반한 불평등 경제는 경제활동기회라는 기본권을 박탈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된다는 뜻은 개인과 공동체의 존재적 위기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단지 돈이 없다고 또는 일자리가 없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의 상실, 기본 존엄성의 상실로 이어지기에 그 불평등은 사회적 불안정으로 직결된다. 이 점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불평등이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이유이다.  여기서 경제와 정치가 만날 수 밖에 없다. 공공성은 단지 부의 재분배만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정책의 입안이요, 그 정책의 수행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다수가 혜택을 볼 수 있는 공공성, 즉, 공적 관심과 공적 이익을 지향한다.
이 점에서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도 민주주의 위기 극복에 한 몫을 담당할 수 있다고 본다. 종교적 삶은 기본적으로 이기주의나 자신의 욕심만을 위해서 살기보다 나누고 섬기는 삶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약자와 소수라는 이웃에 대한 관심, 타자에 대한 개방성, 즉 근본적으로 부정의에 저항하는 예언자적 전통이 기독교를 포함해서 모든 종교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자유민주주의는 역사의 진보와 낙관을 보장하는 숭배의 대상도 완전한 제도도 아니다.  실제로 민주주의 선봉자 (나찌즘에 맞서) 윈스턴 처치힐은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부형태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외 정부형태는 더 최악이기에 이를 지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서구자유민주주의가 지닌 한계와 문제점을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전제주의, 공산주의, 군사독재주의보다는 낫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헌신한 그 지도력을, 그 과거를 기억해야하며 이 민주주의가 정체하고 부패하지 않도록 현재 깨어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자유민주주의가 이렇게 부족하기에 강하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이다.  즉,  우리 (공동체)의 바르고 꾸준한 노력으로 더 성숙하게 유지, 지속될 수 있는 역동적 존재가 바로 민주주의이다. 미국의 최근 선거를 보면서 얼마나 무지가 폭력적인지 배웠다. 사실이 거짓으로 진리가 기만으로 둔갑하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아니 안하는) 대중들의 무지, 비판적 의식의 부재가 얼마나 위험한지 실감했다. 그래서 난, 인권유린, 경제불평등과 함께 민주주의를 부패시키는 독소는 바로 무지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래서 해방신학에서 critical mass (비판적 대중), 민중신학에서 의식을 가진 주체로서의 민중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본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위기 극복은 공적 지식, 즉, 비판적 의식(critical consciousness), 상생의 삶을 가르치고 배우는 실천이다. 우리는 이것이 무엇인지 안다. 최근 한국의 남녀노소가 다 참여한 대대적 시위를 보면서, 정치를 한다는 권력층이 대중들을 기만할 때, 대중들이 그걸 알았을 때, 그 무지에서 깨어나 뿜어내는 힘은 엄청나다는 것을 보았다. 이 힘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 힘을 더 키울 때다.



ⓒ 웹진 <제3시대>


  1. Jennifer Welsh, The Return of History: Conflict, Migration, and Geopolitics in the Twenty-First Century (Toronto: Anansi Press, 2016). [본문으로]
  2. https://www.theguardian.com/business/2016/jan/18/richest-62-billionaires-wealthy-half-world-population-combine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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