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변화시키는 기도



류헌조

(GTU Ph.D. Candidate)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오늘 받을 은총 위해 기도했나요.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리.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시오.” 기독교인들이 즐겨부르는 복음성가의 1절 가사입니다. 힘들고 지쳐서 주저 앉고 싶을 때, 희망이 보이지 않아 낙심과 염려가 몰려 올 때, 이 노래를 부르면서 그리고 이 노래의 가사가 호소하는 것처럼, 기도하면서 위로와 용기를 얻고 다시금 힘을 내는 경험을 합니다. 기도에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참된 기도, 간절한 기도, 믿음의 기도는 실제로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듯 합니다. 많은 종교들이 기도(prayer)와 명상(meditation)을 대단히 중요하고 필수적인 수행방법의 하나로 생각하고 이를 수련하는 데 힘써 왔습니다. 기도를 빼고서는 거의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만큼, 기독교에서도 기도는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합니다. 기도는 자주 호흡에 비유되곤 합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죽은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조직신학자이자 영성신학자인 사이몬 찬(Simon Chan)에 의하면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성숙을 위해 실천해야 할 수덕(修德)의 첫 번째 원칙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기도는 정말로 효과(effect)가 있는 것일까요?

   기도의 효과에 대하여 상반되는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한 쪽 입장의 맨 끝에는 기도하면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여기고 기도를 마치 만병통치약, 만능열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은 오로지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강력한 기도를 더 오랫동안 더 많이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기도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한편, 이러한 입장의 반대쪽 끝에는 기도 무용론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기도는 종교가 사람들을 현혹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민중의 아편”이요, 인간이 “심리적 투사”로 만들어낸 신에게 말하는 자기 독백입니다. 그리하여 기도는 니체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성과 자유로운 정신을 박탈하고 결국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하게 합니다. 결국,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기도는 아무런 효과도 없습니다.

   기도의 효과에 대한 이 두 가지 극단적 입장 사이에는 기도의 효과를 긍정하고 실제로 경험하면서도 그 효과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신학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여성신학자인 도로테 죌레(Dorothee Sӧlle)는 기도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역설하는 반면, 네덜란드의 개혁신학자 아브라함 반 디빅(Abraham Van De Beek)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일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편, 해방신학자들처럼 기도와 사회정의의 불가분리성을 크게 강조하는 신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최근의 영성신학자들이 그러한 것처럼 기도를 통해 한 개인의 내면을 성찰하고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데 집중하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사실, 이들 모두의 주장은 기독교 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기도에 관해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가치들을 정당하게 짚어주고 있으며, 서로 뗄 수 없는 긴밀한 상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신학자들 사이에는 참된 기도는 분명히 효과가 있고, 제대로 기도하면 무엇인가가 반드시 일어난다는 기본적인 믿음, 합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신학자들이 기도는 특별히, 인간의 내면(정신 또는 마음)에 어떤 변화를 불러 일으킨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인간의 마음만큼 변화무쌍하고 통제하기 힘들며 또한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력 그리고 창의성을 가진 것도 드물 것입니다. 한 인간의 마음은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인간의 마음은 세상을 정의와 평화로 가득 찬 행복한 곳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불의와 폭력이 가능한 죽음의 장소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인간의 마음은 죄와 고통이 발생하는 악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을 잘 다스리고 선(善)으로 지향(志向)시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많은 종교들, 특히 기독교는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기 위한 도구로서 기도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가르쳐 왔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니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절)

   한 인간의 내면, 한 인간의 마음(정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성서, 특히 히브리 전통에서 마음은 인간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을 의미했는데, 그것은 한 개인이 어떠한 일을 결정하는 중심 기관이며 또한 도덕적인 판단이나 선택을 하는 곳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유명한 독일의 개혁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목사님은 인간의 마음을 가리켜 “내적 삶의 모든 심층들”이라고 말합니다. 즉, 마음은 한 인간의 중심이요 핵심이며 중추(中樞)입니다. 오늘날 뇌과학(brain science) 또는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 연구자들은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뇌의 활동에서 찾으려고 시도합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정신을 뇌세포들의 물리적 메카니즘으로 단순하게 환원시키거나 축소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더불어,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사용되는 뇌(brain)라는 용어와 뇌의 활동을 통해 창발적으로(emergently) 나타나는 인간의 의식/정신을 서로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인간의 마음(의식/정신)은 뇌세포들의 물리적 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영역에 속해 있다는 뜻입니다.

   종교를 생물학적 관점, 특히 인간의 뇌의 활동과 관련지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신경과학자(neuroscientist)이자 신경신학자(neuro-theologian)인 유진 다퀼리(Eugene d’Aquili)와 안드류 뉴버그(Andrew Newberg)는 Why God Won’t Go Away (한국어 책 제목은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라는 책에서 자신들이 시도했던 획기적인 실험과 그로 인해 도출된 흥미로운 결과들을 소개합니다. 티벳불교의 승려들이 기도(명상)을 시작합니다. 기도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혈관에 방사성물질을 주입한 후 SPECT(Single Photon Emission Computed Tomography, 단일광자방출단층촬영)을 위해 제작한 특수한 카메라로 승려들의 뇌를 촬영합니다. 카메라의 촬영에 의하면, 기도가 절정에 이르기 전에 이들의 뇌는 아주 활성화되어 있었고 전반적으로 빨간색과 노란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절정에 이르렀을 때 촬영영상은 뇌의 색깔을 파란색과 초록색으로 나타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가요? 그것은 OAA(Orientation Association Area, 물리적 공간 안에서 방향과 거리, 각도 등을 인식하고 안전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뇌의 영역)의 활동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유진과 뉴버그는 프란시스코회 소속의 수녀들을 상대로도 같은 실험을 하였고 비슷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피실험자들은 기도의 절정에 이르러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할 만큼 자신들이 어떤 무한한 실재와의 연합을 경험했다고 말했습니다. 티벳승려들의 경우 온 우주 만물과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고 프란시스코회 수녀들은 하나님과 말할 수 없이 가까워지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요약하면, 기도와 명상은 사람들의 의식에 분명히 어떠한 변화를 일으켰고 그것이 실험을 통해 관측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실험을 했다고 해서 기도의 효과가 어떤 것인지를 자신있게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실험은 일정 그룹의 아주 훈련된 수도자들을 대상으로 행한 실험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수준의 사람들이 하는 기도나 다른 종류의 기도에 대해서 그 결과를 동일하게 적용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촬영영상을 통해 뇌의 활동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해서 그것이 한 사람의 생각이나 인생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 영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실험의 결과를 통해서 기독교인들이 믿는 신(God)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 실험을 통해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결론은 기도와 명상으로 지칭되는 이 특정한 종교적 활동이 인간의 뇌, 그리고 뇌의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마음/정신에, 부인할 수 없는 어떤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 과학적 실험을 통해서 우리는 기도의 효과에 대한 경험적인 증거(empirical evidence)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퀼리와 뉴버그는 이후 The Mystical Mind 라는 책에서 인간의 뇌는 일곱가지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연산자(operators)를 가지고 있고, 이 중 이항 연산자(the binary operator)는 뇌가 자신이 경험하는 사물(사건)들을 두 가지 대조적인 그룹으로 범주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설명합니다. 인간의 뇌는 이 이항 연산자의 기능에 따라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선과 악, 참된 것과 나쁜 것, 정의와 불의, 행복과 슬픔 등으로 분류하는데, 이를 통해 자신이 처한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현실을 효과적으로 파악하고 대처함으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종의 악(evil)의 신화(myth)가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뇌는 이항 연산의 기능을 통하여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이해하기 힘든 일들 -- 선한 사람에게 왜 악한 일이 일어나고, 악한 사람에게 왜 좋은 일이 일어나는지와 같은 – 을 신화의 형태로 바꾸어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리하여, 악은 이제 실제적인 것(as real)으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악의 신화가 작동하게 되면 인간의 뇌는 불안(anxiety)을 느끼게 되고 이 불안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특히 적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 불안을 해소하려 할 때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고 합니다. ‘죄와 기도 그리고 종교적 신비에 대한 논의의 타당성’을 인지과학의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George Tsakiridis는 최근 이 주제와 관련하여 Evagrius Ponticus and Cognitive Science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의 뇌가 느끼는 불안을 부적절한 방식으로 처리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이 부작용으로부터 죄(sin)가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에 의하면, 이 죄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한 방법이 바로 기도와 명상입니다. George Tsakiridis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명한 심리학자 Kenneth Pargament의 임상실험결과를 예로 들며 “기도를 동반하는 영적 치료(spiritual therapy)가 영적인 면을 배제한 심리치료보다 훨씬 더 탁월한 치료효과를 보여준다”는 증거를 제시합니다.

   기도는 오랜 세월 동안 종교인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려 왔습니다. 아마도 신앙인들의 삶에서 기도를 제거한다는 것은 한 그루의 나무를 뿌리부터 뽑아내버리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통해 주어지는 새로운 희망, 용기, 위로, 지혜와 평온함을 경험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정결하게 하고 인생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도와줍니다. 기도는 인생의 본질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한 인간의 삶이 보다 더 건강하고 가치 있게 되도록 도와줍니다. 이를 통해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게 됩니다. 기도의 효과는 경험으로 느껴지는 실재(reality)입니다. 오늘날 인지과학과 심리치료의 발전은 이러한 기도의 효과를 예전보다 더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기도의 작동 메카니즘, 기도의 유효성을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입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과학으로 완벽히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기도의 효과가 실재가 아니라거나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신학자인 저의 관점에서 볼 때, 기도를 통해 주어지는 초월적인 종교 체험은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얻게 되는 이론들보다 때때로 삶의 궁극적 실재를 더욱 더 분명하게 제시해 주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앞으로 계속적인 과학 연구의 발전을 통해 이 종교적 신비가 더욱 효과적이고 이해가능한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신학과 과학(또는 종교와 과학)이 인간의 마음을 더 아름답고 선하게 하는데 협력하고 그리하여 한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인류의 삶과 나아가 온 세상이 더욱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이 가득한 곳으로 바뀌어 가도록 함께 힘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by 제3시대

공지사항

카테고리

웹진 <제3시대> (831)
특집 (8)
시평 (94)
목회 마당 (60)
신학 정보 (136)
사진에세이 (39)
비평의 눈 (72)
페미&퀴어 (25)
시선의 힘 (135)
소식 (153)
영화 읽기 (32)
신앙과 과학 (14)
팟캐스트 제삼시대 (12)
연구소의 책 (13)
새책 소개 (38)
Total : 352,578
Today : 62 Yesterday : 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