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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세이 : 환경그림책 시리즈 II] 소금밭 3 (자우녕)

사진에세이

by 제3시대 2017. 4. 1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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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그림책 시리즈 II  「소금밭」3





하루는 시집간 시누이가 와서 인천 댁이 딴 포도를 슬금슬금 옮기고 있다. “뭘 도와주냐, 이제껏 모른 체해놓고 이제 와서 뭘…….” 하지 말아라 하며 만류했는데도 계속하기에 그녀는 시누이의 멱살을 한 움큼 움켜쥔다. 그런 힘이 어디에서 났는지 시누이를 들었다 놨다 한다.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하며 악을 쓰다가 마침 다른 손에 포도 따는 가위가 들려 있어서 시누이 목에 댄다. “오늘 너 죽이고 내가 감방 가겠다” 하고 윽박지르는데 동네사람들이 말려 할 수 없이 놔준다. 죽을 뻔한 위기에서 풀려난 시누이는 염전에서 일하고 있는 오빠한테 가서 그대로 이른다. 그때 인천 댁의 남편은, 네 언니가 오죽했으면 그랬겠냐 하고 인천 댁을 두둔한다.



치매 3년, 중풍 10년, 모두 13년을 시부모 병수발에 바치고 시동생, 시누이 키우고 시집⋅장가보내는 동안 인천 댁의 아이들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관습이어도 상관없고 운명이어도 상관없는 삶에 순응하며 살았건만 대부도 읍내로 들어가는 길에서 장성한 둘째 아들을 잃고 만다.


교통사고가 일어난 그날, 하늘이 갈라지고 어두워진 그날, 인천 댁은 그만 정신 줄을 놓아버린다. 야윈 얼굴이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가 멍하니 천장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가 아무 신이나 신고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온갖 바람을 맞고 돌아다니다가 급기야는 어두운 방구석에서 그대로 쓰러져버린다. 그녀의 몸은 염장한 무처럼 점점 쪼그라져 오랫동안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흐른 세월이 얼만데 제 손으로 키운 시동생, 시누이는 인천 댁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래도 나머지 자식들이 있기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방문을 열고 나온다. 햇빛이 눈을 찌른다. 색 바랜 꽃문양의 모자를 쓰고 어지럽혀진 농기구 중에 가위를 용케 찾아 손에 들고 밥 달라고 쳐다보는 개들을 지나 염전 앞 포도밭 언덕으로 올라간다. 포도밭 사건은 이런 연유로 생긴 일이다. 그날 저녁 시누이는 오빠가 준 포도상자 한 박스를 기어코 손에 받아 들고서야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집 뒤뜰엔 여러 그루의 두릅나무와 엄나무가 자라고 있다. 엄나무에 돋아 있는 가시는 악귀를 물리친다 하여 집집마다 엄나무를 심어놓지 않은 사람이 없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가지를 꺾어 현관에 달아놓고 가족의 건강을 비는 것이 대부도의 오랜 풍습이기 때문이다. 남은 자녀들만큼은 잘 건사하고 염전 질은 절대 하지 않아야겠기에 인천 댁은 올해도 엄중하게 가지를 꺾는다. 그러나 포도밭 사건 이후로도 몇 번은 성난 본능이 치밀어 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기에 그녀의 손은 제 스스로 엄나무의 가시가 된다.


“비가 오면 쉬거든요. 염전은 비 오면 일을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 부부는 집안일 하거나 밭일을 합니다. 비를 맞으면서.”




 


자우녕 作 (미술작가)


- 작가소개

프랑스 마르세이유 조형예술대학에서 Fine Arts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Master's Fine Arts과정을 이수, Diplome를 받았다. 2016년 한국복지예술인재단에서 파견되어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였으며 경기만에코뮤지엄의 <선감이야기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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