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묵시록 12 : 맥도날드 블루스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나의 미국은 동네 맥도날드에서 시작한다. 아침에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맥도날드에 들리지 않는 날은 거의 없다. 내가 나타나는 모습이 보이면 주문을 하지 않아도 남미출신 직원은 커피를 따르기 시작한다. 분명한 단골이지만, 장사에 도움이 되는 고객은 아니다. 작은 사이즈 커피에 크림 두 개가 전부다. 직원은 전부 남미 출신 아니면 흑인이다.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다. 아침의 맥도날드는 동네 백인 노인들의 다방이다. 10명 내외의 노인들이 예외 없이 앉아 대화를 나눈다. 주로 전날 스포츠 경기에 대한 얘기나 자동차 문제, 젊은 시절 군대나 최근 정치 얘기가 주된 대화거리다. 대화에서 개개인이 맡는 역할은 언제나 비슷하다. 늘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 늘 빈정거리는 투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맥도날드를 처음 드나들 때부터 내 시선을 끈 한 사람이 있다. 언제나 검은 운동모자를 쓰고 다니는 백인 노인이었다. 군부대 마크와 더불어 한국전쟁 참전용사란 글씨가 박혀 있는 모자였는데, 한 번도 그 모자를 안 쓴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미국에 징병제가 있던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라 거의 모두가 한국전쟁 아니면 베트남전쟁의 참전용사들이었다. 어깨 너머로 그 노인이 한국 어느 지역의 전투에서 싸우던 얘기를 하는 걸 몇 번 들은 적도 있다. 그 경험이 특별하지 않았다면 그런 모자도 쓰고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눈인사만 나눴지 한 번도 개인적인 대화를 나눠보지 않은 노인이 작년부터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멤버들도 교체된다.


    맥도날드는 한때 미국의 상징이었다. 맥도날드의 브랜드 로고인 골든 아치(Golden Arch)는 미국의 효율주의와 실용주의를 대표하는 가장 미국적인 상징이었다.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로 끝없는 확장과 불패의 상징이었다. 효율주의를 자본주의의 조각난 시간개념에 맞는 ‘패스트푸드’란 음식문화로 완성시켰고, 여기서 근대의 합리성은 패스트푸드의 효율성으로 대체되었다. 맥도날드는 어느 순간 저렴한 햄버거를 효율적이고 표준화된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기업이 아니라 미국의 가치와 문화를 대변하는 이념으로 부각되어, 반미 데모의 현장에선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집착이 강해 어떤 훼손에도 소송으로 대응하는 기업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상징과 경험의 괴리는 언제나 넓고도 깊다. 그 내부를 직원으로 또는 고객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이 맥도날드의 상징을 얘기하는 경우는 없다. 그들의 경험은 맥도날드가 상징하는 이미지나 매장 내부 공간을 디자인한 사람들이 만들지 못한다. 그것은 그곳에서 일하고 음식을 사먹는 고객들의 몫이다. 최근 맥도날드의 직원들이 미국의 생활임금 논쟁의 주역으로 등장한 이유는 맥도날드의 상징성 때문이었다. 효율주의는 개념에 불과하지만, 그 대가는 최저임금을 약간 웃도는 시급이다. 내가 아는 맥도날드는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 노인들이 경로할인 받은 커피 한 잔으로 친구들과 하루를 시작하는 곳이고, 남미의 이민자들이 미국이라는 땅에서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기 위해 투쟁하는 일터다. 승리의 교향곡보다는 서글픈 현실의 블루스가 더 어울리는 곳이다.


    테일러주의(Taylorism)라는 효율성을 강조한 자본주의의 대량생산 체제는 맥도날드와 같은 패스트푸드 체인점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익숙해졌다. 프레더릭 테일러의 이론은 단순했지만 20세기 미국의 자본주의에 그 어떤 이론보다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실험은 노동의 과정에서 불필요한 동작을 줄인 최소한의 동작을 시간으로 환산해 하루의 목표치를 노동자에게 지정해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의 효율성 연구는 과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순했지만, 효율성과 경쟁을 20세기의 종교로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가 스톱워치를 사용해 철강회사 베들레헴 스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측정해 노트에 기록하는 모습은 20세기 자본주의의 노동자가 만들어지는 장면이었다. 노동의 시간을 분 단위까지로 나누고 그 쪼개진 시간 내에서의 효율성을 측정하여 노동자의 가치를 평가했다. 테일러주의의 의도는 실수나 불확실성을 배제하고 계산과 예측을 할 수 있는 경영을 추구하는 것이었지만 그 본질은 ‘인간적’인 차원을 생산과정에서 배제하여 ‘기계적’인 인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햄버거를 생산하는 목적은 고객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기업의 기계화된 생산 시스템을 관리하는 게 된다. 자본주의가 원하는 소외된 인간을 만들어내는 공간에서 내가 목격한 만큼의 인간관계가 이뤄진다는 것은 사람들의 창의성과 저항정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패스트푸드라는 ‘빠른 음식’은 흥미로운 시간의 이해를 담고 있다. 음식이 빨리 제공되어야 하는 이유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노동시간도 짧아진 20세기 중반에 시간이 없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왜 패스트푸드 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하여 가난한 자들의 음식문화로 정착하게 되었을까? 맥도날드를 필두로 패스트푸드 산업이 성장하기 시작한 1950년대 미국은 손목시계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던 시기였다. 시간이 갑자기 소중해진 것일까 아니면 차원이 다른 개념의 시간을 살게 된 것일까? 그 시대 미국은 핵전쟁으로 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포 속에 살고 있었다. 불안과 공포의 시간은 자본주의에 유용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를 이해하는데 시간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제국주의가 공간의 개념이라면 자본주의는 시간의 개념이다. 자본주의 문화가 보편화 되면서 시간에 대한 이해도 바뀌게 된다. 시간은 쪼개지고 나뉘고 분리되어 사라지게 된다. 출근표에 시간을 찍고 출근하고 휴식시간이나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 또다시 시간을 찍고 나와야 하는 일상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일이 아니라 시간에 사로잡히고 내몰린 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시간은 여유가 아니라 참고 견뎌야 하는 대상이 되었고 결국은 시간으로부터의 소외라는 현상을 만들었다. 그 결과 현대인들의 의식 속에 자본주의의 시간은 사라진 시간 그리고 남의 시간을 사는 경험으로 남아있다. 패스트푸드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실제적인 시간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몇 분의 시간도 기다리기 힘든 시간이 된다. 시간의 효율성을 지향하는 자본주의는 햄버거를 만드는 과장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에게도 그 공간은 자본주의의 시간을 확인하고 강요받고 실천하는 곳이다.


    시간이 없다는 인식은 묵시록의 시간 이해다. 미국에서 그 인식을 재확인시켜준 건 냉전 시대의 핵전쟁 공포였다. 패스트푸드의 개발과 함께 대규모 고속도로 건설이 진행됐다. 핵전쟁으로 먼저 파괴될 도시로부터의 탈출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공간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시간은 역설적으로 사라졌다. 패스트푸드는 냉전 시대의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그 중심에 묵시록의 시간 이해가 있다. 자본주의가 끝나야만 새로운 시간이 열릴 것이란 기대를 일축하며, 자본주의로 시간이 끝난다는 어떤 예언을 패스트푸드는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냉전 시대 묵시록의 공포를 만들어내고 패스트푸드를 통해 ‘사라진 시간의 음식문화’를 만들어낸 자본주의를 묵시록의 철학이라 할 수 없을까. 맥도날드는 몇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햄버거와 감자튀김으로 유명하다. 구매한 지 몇 년이 지나도 멀쩡한 햄버거와 감자튀김이 박물관에까지 전시 되었다는 뉴스가 한때 화제였다. 또 한 달 동안 맥도날드 음식만 섭취하고 몸의 변화를 측정한 사람이 만든 다큐멘터리도 있었다. 음식이 썩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의 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시간이 멈추어 더는 작동하지 않는 상태이고, 소비자 인간에겐 사라진 시간을 사는 상태다. 바로 여기서 묵시록의 시간과 자본주의의 시간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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