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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퀴어] 엄마, 나 사실 섹스했어 (유하림)

페미&퀴어

by 제3시대 2017. 4. 2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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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사실 섹스했어



유하림*

 


    개방적인 부모 밑에서 자랐다.(고 믿어왔다.) 물론, 섹스를 하기 전까지.

   엄마 아빠는 이십대에 환경운동을 했고, 아빠는 여전히 시민운동 진영에서 활동한다. 집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한겨레 21이 배달 오고, 가족끼리 대화를 하면서도 구조 문제, 계급 문제, 여성 문제, 환경 문제 등 다양한 정치적 의제를 나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땐 그것에 자부심이랄게 있었다. 건강하고, 진보적인 가족 구성원은 그리 흔하지 않았으며, 무작정 공부하라거나,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고 닥달하지 않는 부모를 만난 것은 여지껏 행운이다. 그러나 그들도 예외인 구석이 있었다.

   엄마는 열여덟이던 내 두 손을 잡고 이야기 했다. 하림아, 뽀뽀는 꼭 스무살을 넘기고 해야한다. 등 한가운데로 땀줄기가 흘렀다. 마음 속으로는 엄마 미안해를 외쳤지만 입으로는 알겠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당시에 그것은 미안한 일이었다. 나는 차마 엄마의 철썩 같은 믿음을 뒤집을 수 없었고, 엄마가 원하는 열여덟 순진한 소녀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 때 깨달았다. 절대로 들키면 안된다. 내가 애인을 만나는 것은 알리더라도, 그와 어떤 걸 하는지는 들키면 안된다. 적어도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는.  

   스무살을 넘긴지 고작 2년이다. 그래도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메갈리아와 강남역 사건등이 계기가 되어 사회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각종 언론과 SNS는 페미니즘 이슈로 도배되고, 페미니스트를 타겟팅한 상품과 광고가 나온다. 

   페미니즘이 우리집만 빗겨갈리 없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엄마 또한 페미니즘 서적 몇 권을 뒤적이며, 내게 종종 질문했다. 우리는 자주 대화했다. 임신중절수술 합법화에 대해서, 동성애에 대해서,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서, ‘예쁘다’는 말의 폭력성에 대해서, 내 몸에 대해서도 대화했다. 주로 내가 말하고, 엄마는 들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엄마한테 말을 할 것이다. 언제까지 숨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엄마에게 더 이상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친하지도 않은 친구를 유학길에 오르게 하고, 없는 동아리를 만들어 엠티를 가는 것은 꽤나 피곤한 일이었으며, 이렇게 둘러댈 거짓말을 생각해내는 것 또한 중노동이다. 그래서 작년 여름, 엄마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이하 우리의 대화.   


   나 : 엄마, 나 다음주에 남자친구랑 여행갈거야. 

   엄마 : (눈이 동그래지며) 갑자기 여행에 간다니까, 뭔가 불안하네. 

   나 : 뭐가 불안해? 내가 남자친구랑 섹스할까봐? 

   엄마 : 그런 건 안물어보면 안될까? 나도 프라이버시가 있거든 !?


   그렇게 대화는 끝났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지만, 엄마의 말대로 불안해보였다. 그런 엄마 입장에서는 다행이었을까, 여행은 가지 못했다. 남자친구와 크게 싸웠기 때문이다. 여행 당일 날 집에 누워있는 나를 보며, 엄마는 아무것도 못해봐서 어쩌냐고 말했다. 엄마의 말은 틀린 말이었지만, 모른 척 했다. 여전히 내가 섹스를 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못한 것이다. 세상이 차츰 변해가고,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었으나 나의 섹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

   엄마, 나 사실 섹스했어. 라는 말을 들은 엄마의 표정을 자주 상상한다. 특히나 섹스를 끝내자마자 그런 상상을 하고, 동시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나 똑같이 우리 엄마의 자식인 오빠도 섹스를 한 뒤 죄책감을 느낄까? 오빠의 ‘나 오늘 안들어가’ 라는 카톡에는 반응하지 않으면서, 나의 ‘나 오늘 안들어가’라는 카톡에는 당장 전화를 걸어온다. 엄마는 오빠가 열아홉이 되던 해에 섹스할 땐 콘돔은 꼭 끼라고 말해줬으면서, 내가 열여덟이 되었을 때는, 스무살은 넘기고 스킨십을 해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섹스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 엄마가 성에 대해 보수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이 사회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억압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다. 여성과 남성의 섹스를 바라보는 방식은 너무나 다르다. 남성의 섹스는 경험이며,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을 수록 멋진 남성이 된다. 반면에 여성의 섹스는 헤프거나 싼 것이 돼버린다. 또한 남성의 성욕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묘사되면서, 여성의 성욕은 가시화 시키지 않는다.

    나는 잘 모르겠다. 왜 내가 섹스를 한 것이 엄마에게 미안한 일이 되어야하는건지, 왜 내가 섹스를 했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숨겨야 하는지. 그것은 이른 아침에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하고, 가방에 넣어놨다가 지하철 역 화장실에 버려야 한다는 것이고, 사후 피임약을 먹어서 속이 메스꺼워지고, 생리 불순이 찾아오더라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렇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과 이어진다.

   페미니스트라고 섹스가 자유로워야하고, 아무한테나 섹스한 사실을 떠벌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더군다나, 엄마와 나의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만 건강한 관계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외박할 때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임신에 대한 불안을 나눌 수 있다면, 나는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아니, 그런 결과까지 가지 않더라도 섹스를 하면서 엄마 얼굴이 떠오르며 죄책감을 느끼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여성이 섹스를 한다는 것, 여성도 섹스를 말 할 자유가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은 보장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을 엄마가 볼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엄마, 나 섹스했어.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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