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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벌써 일년. (김난영)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7. 8. 1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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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년.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벌써 일년. 남편은 8월 1일자로 회사에 복귀했다. 육아휴직이 끝났다.

       남편의 휴직 첫 날, 아이들을 함께 등원시키고 즐겁게 시작한지 채 한 시간도 안되어 부부가 대판 싸웠다. 다툰 이유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절대 서로 하루 종일 붙어있지 말자’는 결론을 내리고 화해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를 둘 키우는 동안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진짜 가족이 된 느낌에 조금 씁쓸하기도 했지만, 현명한 결론이었다.

        남편은 일년 동안 아이들과 해보고 싶은 일을 그때 그때 적어 내려가고, 나는 육아와 살림을 잠시 내려놓고 '엄마'가 아닌 나를 찾아보기로 했다. 모두들 ‘다신 없을 일 년’이라며 알찬 계획을 물었지만, 타고난 부부의 성격상 조급해하지 않고 그때 그때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지냈다. 아이들이 없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맛집을 찾아 다니기도 하고, 궁금했던 다른 동네를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비수기 저렴한 숙박비와 마일리지 항공권을 이용해 아이들과 장거리 여행도 다녀왔다. 

      남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 남편 육아휴직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6개월이었다. 나는 직장으로 돌아갔다. 물론 예상보다 훨씬 적은 보수였고 계약직이었지만, 7년의 경력단절여성에게 예전에 하던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일터가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야근이 일상화 된 업종이라 일주일에 한두 번 겨우 아이들의 얼굴을 볼 때도 있었다. 집에만 오면 쓰러져 자기에 바빴다. 가끔 얼굴 보는 아이들이 이제 나를 보며 "아빠!"라고 불렀다가 "아니, 엄마"라고 고쳐 부른다. 세 남자가 지내는 집안 꼴은 한숨이 나오지만, 나보다 용감하게 다섯, 일곱 살의 남아 둘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는 남편을 보니 고맙다.

       남편의 복직 후에도, 나의 계약기간은 4개월이 더 남았다. 직장에서도 계약을 더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마음만 먹으면 친정엄마께 아이들을 맡기고 워킹맘이 될 수도 있었을 거다. 헌데, 남편의 복직과 함께 나는 집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남편 말처럼 내가 너무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7년만에 돌아간 일터는 즐겁고 신나는 일이 가득했지만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이 과중한 업무를 소화해내고 있었고, 남편이 직장으로 돌아간 빈자리까지 메울 자신이 없어 집으로 도망치기로, 아니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서로의 역할을 바꿔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 년이었다. 힘들게 밥벌이하는 남편에게 잔소리 덜 하는 아내가 될 자신이 생겼다. 꾸준히 공부하고 준비해서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다시 일터로 돌아갈 자신도 생겼다. 아이들이 이 일 년을 어떻게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부부에게 있어서는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복직이 다가온 남편에게 물었다. 

        "어때? 다시 돌아가는 심정이? 아쉽지 않아?" 

        "글쎄, 그냥 후련해. 아이들이랑 해보고 싶은 거 거의 다 해봤어." 

        복직 후 며칠이 지나 남편에게 물었다. 

        "회사생활은 어때?" "어후, 죽을 맛이야." 

        속으로 이야기했다. '여보, 아직 우리에겐 둘째(를 위한 육아휴직이)가 남아 있어. 힘내.'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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