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시선의 힘] 피부색이 다르다고(조영관)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7. 11. 2. 18:05

본문


피부색이 다르다고[각주:1]


조영관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피부색이 다르다고 일하다 다친 상처에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하는 말이 다르다고 작은 휴대전화 화면 속 가족들과 나누는 이야기에 그리움이 묻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땀 흘려 일하고 난 뒤 느끼는 바람의 싱그러움을 모르지 않는다. 월급날이면 괜히 마음 한쪽 두둑해져 친구들에게 호기롭게 술이라도 한 잔 사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다. 만나보면 대부분 특별할 것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다. 

   아니, 우리나라에서 일하려면 피부색이 다르면 아픔을 느끼지 못해야 한다. 지난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다 다칠 확률이 내국인보다 6배 높았다. 문진국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이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산재보험에 가입된 내국인 노동자의 산재 발생률은 0.18%인 반면 외국인 노동자는 1.16%로 6배 높았다. 또한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율은 2012년 0.59%에서 2016년 0.49%로 낮아졌지만 같은 기간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율은 6.9%에서 7.4%로 오히려 증가했다.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일터가 안전해지고 있는데, 피부색이 다른 이주민들이 일하는 일터만 오히려 더 위험해지고, 더 쉽게 다치고 있기 때문이다.

   산재처리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니 일하다 다치고도 산재보험 신청을 하지 못한 경우까지 보태어 보면 사실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올해 초 대구·경북지역에서 이주노동자 378명을 대상으로 산업재해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일하다 다친 이주노동자 중 산재보험 신청을 하지 않고 스스로 치료비를 부담한 경우가 37.9%, 회사에서 치료비를 지급받은 경우가 35%로 조사되었다.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은 경우는 27.1%로 4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보호 장비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다치더라도 심각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 올해 5월 한 달 동안에 양돈축사에서 분뇨를 치우던 이주노동자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노동자들이 작업하던 양돈장 정화조는 악취뿐만 아니라 몸에 치명적인 황화수소나 암모니아 등 유해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에 사람이 아닌 기계가 하거나, 제대로 된 보호 장비가 지급되어야 했지만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월급도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올 추석을 앞두고 고용노동부가 공식 확인한 외국인 노동자 임금체불액은 515억원을 넘었다. 2012년 240억원이던 임금체불액은 5년 만에 두 배를 넘었다.

    얼마 전 1960~1970년대 독일로 이주했던 한국 간호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전시를 관람했다. 분단국가 한국에서 또 다른 분단국가 독일, 특히 분단의 도시인 베를린에서 낯선 한국여성으로 삶을 꾸려가고, 독일 사회에 뿌리내린 이주민의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중 흥미로웠던 점은 그녀들이 당시 독일 사회에서 여성인권과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새로운 눈을 얻었다고 고백하는 부분이었다. 한국의 짙은 가부장제 그늘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기도 했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한국의 민주주의 운동을 지원했다. 힘들기도 했지만 그들은 독일과 한국 모두에서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오고 있다.

    인권 선진국을 자임하는 한국의 모습은 이에 비하면 매우 부끄러운 수준이다. 고향을 떠나 먼 한국땅에서 마주한 열악한 노동환경, 장시간 저임금 노동, 높은 산재 발생률과 만성적인 임금체불은 이주노동자들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만들 뿐이다. 언제쯤 우리는 이들에게 차별과 고통이 아닌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삶의 경험을 온전히 전해줄 수 있을까?


ⓒ 웹진 <제3시대>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710152101025 이 글은 경향신문 칼럼 2017. 10. 15에 동일한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본문으로]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