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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정보] 성서숭배에 관한 자서전적 초상(이해청)

신학비평

by 제3시대 2017. 11. 2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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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숭배에 관한 자서전적 초상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1. 근본주의적 신앙, 과학, 그리고 타종교


     원불교대사전에는 근본주의가 이렇게 제시되고 있다. “근본주의는 넓게는 18ㆍ19세기 미국의 보수적인 신앙운동 경향인 복음주의(evangelicalism) 전통 안에 일어난 신앙운동이라 볼 수 있다. 개신교의 근본주의자들은 1911년 《근본주의(The Fundamentals)》라는 책자에서 밝힌 다섯 가지 교리인 《성경》의 축자영감무오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ㆍ대속ㆍ육체적 부활ㆍ임박한 재림 등을 기본 사상으로 체계화했다.”라고 말이다. 기독교도 아닌 원불교대사전에 이렇게 실려 있는 것을 보니 뭔가 기분이 묘해진다. 하지만 이 사전이 타종교에도 관심을 갖고 있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기에 서로 다른 종교들 간의 사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친다면 묘하다는 느낌은 분명 잘못된 일일 것이다. 아무튼, 여기서 지적하는 근본주의 5대 강령은 내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적어도 10대 때까지는 말이다. 이 5대 강령 중 핵심은 다른 무엇도 아닌 축자영감무오설일 것인데, 왜냐하면 나머지는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강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중고등학교 시절 한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나름 지성적이라 여겨졌던 IVF에서 활동한 교회 선생님께서 성경공부 시간에 “창세기 1장 1절이 믿겨지면 신앙은 다 정리된다.”고 하셨다. 이 말에 반박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말씀하신 배경이 교회이기도 했지만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할 말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창세기 1장 1절이 믿겨지면 전체가 다 믿어진다는 논리가 그리 틀린 말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논리적으로야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글자 그대로 믿는다면 그 뒤에 이어지는 성서의 모든 기적들이 믿겨지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한 아이는 교회라는 공간에서만 살지 않는다. 이미 세속화된 세계에서, 그것도 진화론이 열심히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으로 가르쳐지는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 학교에선 진화론이 교회에선 창조론이. 이러한 공존할 수 없는 두 대립되는 세계에서 10대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사실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 교회에선 진화론을 이야기하면 창조론을 말할 것을, 한 예로 과학시간 시험에 진화론과 관련한 문제가 나오면 틀릴 것을 주장하는 그런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유포되는 장소에서 말이다. 대안은 정신분열적 증세를 겪으며 견디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철이 먼저 든 친구들은 데미안이라는 책을 내게 주며 “야 이 전도사 그리 고민하지 말고 좀 솔직해져봐라” 라고 했다. 학교에서 열심히 전도하던 나였기에 친구들은 가끔 전도사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전도사라는 별칭에도 자신은 분열증을 앓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친구들은 이런 나를 구해주려 무지 애를 썼다. 물론 그들 중 몇몇은 서서히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들은 편지로 때론 대화로 나의 신앙에 흠집을 낸 것이다. 성서가 너무 믿기지가 않아 힘들었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마다 나는 “아 이러면 곤란해 신앙으로 무장해야지”라며 스스로 체면을 걸던 때도 있었다. 흔들린 신앙은 참석한 전도 집회 때마다 “자 여러분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없으면 지금 당장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그런 분들은 일어나세요” 라고 외치는 목사님의 말에 일어서도록 만들었다. 확실히 과학은 나의 신앙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자연히 성서의 말씀은 믿어지기 않게 되었고 이와 함께 찾아온 회의적인 신앙은 구원의 확신마저도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사영리에 나오는 영접기도를 남몰래 교회에 가서 수십 번 기도해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미 주술로 전락한 기도 문구는 흠집이 난 신앙을 고치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한데 과학만 그랬을까. 돌이켜보면, 과학만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었던 것처럼 보인다. 친구들은 철학이나 신화로 나를 유혹하기도 했다. 니체가 말이야 혹은 다른 신화를 보면 말이야 하는 식이었다. 성서만 부지런히 읽고 QT생활을 즐기던 내게 철학이니 다른 종교의 신화니 하는 이야기들은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으나, 진화론으로 인해 갈등을 겪은 후로는 그래 그런 것도 말은 되겠구나 하는 쪽으로 변하도록 만들었다. “어 닮았네 그렇다면 과연 성서의 하느님은 맞을까 혹은 있을까” 하는 물음을 묻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다른 종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이야기에도 창조설화는 얼마든지 있었다. 단지 교회는 그것은 사탄의 이야기이고 다른 종교가 말하는 허탄한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르쳤기에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성서는 무오한 하느님의 말씀이었고 진리였던 반면에 다른 종교경전은 사탄이 뿌린 씨앗에 지나지 않았기에 말이다. 간단히 말해, 다른 종교에는 구원의 진리가 없다고 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흔들리기 시작한 마음은 다른 종교 경전의 이야기를 듣도록 해주었다. “아 다른 종교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구나. 신기하네. 그렇다면 뭐지”라고 하는 쪽으로 나아가도록 해주었다는 점이다. 내 종교의 무오가 옳다면 다른 종교의 무오도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옳은가. 그런데 누가 옳은지를 어떻게 가릴 수 있을까. 점차 종교다원주의라는 문제로, 그래서 공부를 한다면 비교종교학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마 내가 종교학을 공부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아 종교학을 통해 내가 다른 종교를 좀 더 잘 알고 그렇게 되면 내 신앙도 풍부해지고 열린 마음을 가진 목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 목사나 선교사가 되기로 하느님께 서원한 상태였기에 말이다.


2. 종교학, 신화학, 역사비평학


     다시 원불교대사전으로 돌아가 보자. 성서를 숭배하는 신앙, 즉 성서무오설을 견지하는 근본주의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19세기 신학계를 주도하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고 기독교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전개된 개신교의 보수주의적ㆍ복고주의적 종교운동이념”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10대 때에 그토록 잘못된 연구 잘못된 방식으로 성서를 읽는 자들이 자유주의자라고 들었던 진영으로 나는 서서히 발을 옮기고 있었던 셈이다. 종교학은 사실 내가 기대했던 바대로 다른 종교에 눈을 뜨게 해주는 차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가진 신앙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는 눈을 뜨도록 해주었다. 자기 종교에 메스를 들이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기가 믿는 신앙에 수술을 집도하는 행위는 엘리아데가 말한 바와 같이 우주의 중심이 무너지는 경험을 갖게 하는 일과도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과학으로 인해 일어난 갈등은 무너질 때 무너지더라도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 영역인지를 탐사하도록 만들었다. 종교학은 다른 종교에도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갖고 있으며, 그렇기에 객관적으로 중립적으로 정의될 필요가 있으며, 때문에 항상 종교연구에 있어 연구자는 자기신앙을 괄호쳐야 한다고 가르쳤다. 특히, 엘리아데는 기독교 이외의 종교들아 가진 영적인 풍요로움을 기독교 교리에 맞추지 않고 그 자체를 보게 함으로써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종교적 인간은 기독교에만 생겨날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생겨날 수 있고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우주의 중심을 찾고 있었음을 가르쳐주었다. 성현의 변증법을 겪는 인간인 호모랠리기우스는 어디서나 체험될 수 있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교신화학은 서구중심적인 시각을 깨트리고자 애를 쓰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인 레비스트로우스를 읽으면서 기독교의 많은 이야기들은 다른 곳에도 존재하며, 이 이야기들 간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그 이야기들이 원용되어 성서에 들어왔는지를 묻도록 해주었다. 대학원 2학년 1학기에 만난 배철현 선생님과의 만남은 결정적이었는데, 그때 들었던 고대근동 신화와 창세기에 대한 강의는 성서를 보는 나의 눈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종교 신앙의 확산과 그 영향에 관한 강의는 10대 때 교회 선생님이 말씀하신 믿음만으론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그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언어학에 근거한 역사비평학은 한 마디로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점차 나는 소위 자유주의 신학, 즉 근본주의가 그토록 싫어하던 역사비평학으로 발을 들여놓았던 셈이다.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항해하는 선원처럼, 하지만 먼 바다를 항해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선원처럼 나는 그렇게 비평학이라는 학문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신대원으로 갔다. 불행히도 신학교에서의 수업은 그리 감흥이 있지 않았다. 다양한 종교들 간의 비교나 텍스트에 대한 꼼꼼한 비평적 주석 달기 수업이기보다는 대체로 교양정도의 수준에 그치는 마는 터라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논문을 준비하면서 공부하게 된 신약학의 여러 학자들을 통해 새삼 역사비평학과 문학비평이 가져다준 자유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도 신화비평을 전개하는 학자들은 큰 영향을 끼쳤는데 - 불트만은 마가복음서를 그 방향으로 전개하도록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았고, 이후의 다른 학자들을 뒤지면서 - 특히 19세기 네덜란드의 래디컬 그룹과 그 그룹의 비평을 이어받은 신학진영 바깥의 사람들을 통해 나는 성서를 연구하는 자유가 짜릿하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로버트 프라이스는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비로소 나는 성서에 대한 우상숭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성서란 성서무오설이 말하는 것처럼 글자 그대로의 역사가 아니라 다른 의도와 의미들이 숨겨진 문헌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역사의 세계가 아닌 이념들의 세계, 즉 슈트라우스가 지적한 것처럼 관념들이 지닌 정신의 세계를 꿰뚫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교회의 이념들의 역사가 펼쳐지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3. 해석학과 탈식민주의


     분명 교회의 신앙의 이념들의 역사가 펼쳐진 공간의 극적인 양식은 약속과 성취일 것인데, 이것은 신약의 구약 인용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하지만 어떻게 교회는 구약을 원래의 문맥과 전혀 다른 뜻을 적용해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결국 해석학으로 옮겨오도록 만들었다. 이 점에서 로버트 포울러는 가장 흥미로운 학자였는데, 그는 마가복음서가 하나의 독자반응비평으로 읽혀질 수 있는 텍스트임을 증명해냈다. 원저자의 의도가 아니라 그것을 인용하고 적용하며 나름의 이야기를 구축해내려는 종교적 인간의 심성을 이해하는데 있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나로 하여금 이것은 해석학이라는 문제로 나아가도록 이끌었다. 인간이란 원래의 텍스트를 들이대면서도 이 텍스트의 의도는 그게 아니고 이것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존재임을 말이다. 때문에, 성서무오설은 더 이상 활개를 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이러니, 패러디, 수수께기 말놀이와 같은 일종의 전유에 관한 논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상호텍스트성에 관한 관심을 열어 제친 셈이다.

     그런데 이처럼 전유의 문제라면, 내가 사는 공간은, 다시 말해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공간은 어디이며, 또한 그 공간에서 자라고 있던 종교적 유산은 무엇일까에 관한 질문을 던지도록 만들었다. 신약학에서, 특히 복음서 연구에서 자주 등장하는 삶의 자리에 관한 물음은 역사비평학이 탄생했던 서구가 아니라 식민지적 세계, 식민지적 종교세계에 내가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텍스트를 전유하는 문제가 선교이고, 그 선교가 복음서라는 텍스트를 탄생시켰다면, 더 이상 서구의 자리에서 내가 물어야 할 것이 아니라 탈식민의 자리에서 성서를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피어났던 셈이다. 성서무오설은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구약이 말하는 바와 같은 유대인의 자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약이 말하는 서유럽의 세계도 아닌 동북아 지역에 살고 있으며 여기서 성서라는 문헌을 대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아무리 성서무오설을 외친다 해도, 인간이란 시대와 장소에 의해 중개되는 존재이기에 원래의 텍스트가 이러하다 저러하다는 말은 자기기만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기만은 마치 내가 10대 때 과학으로 인해 신앙에서 정신분열증을 앓아야 했던 것과 거의 흡사하다. 그러므로 성서를 숭배하는 일은 더 이상 가능치가 않다. 그것도 문자적으로 숭배하는 일은 말이다. 차라리 숭배가 아니라 전유하는 일이고, 이 전유를 통해 새로운 생성을 말해야 하는 과제가 더 진실한 신학적 물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탈식민적으로 성서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응구기와 치옹고처럼 그것은 우선은 정신을 탈식민화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두베가 말한 것처럼 완전한 탈식민은 불가능하다. 서구적 독법들을 소화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대위법적으로 넘어서는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 성서를 제대로 전유하는 일이 아닐까. 성서를 비판적으로 복원하는 자리가 아니라 비판적으로 전유하는 일이 생산적인 것이라면 - 물론 비판적 복원과 전유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쌍둥이일터인데 - 서구가 전유하는 방식과 나의 존재론적 공간인 동북아가 전유하는 방식은 원래 달라야 하며 다를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서구적 성서읽기에 목을 매다는 나의 열등감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성서문자숭배가 전하는 길과는 다른 길에 서 있는 인간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것이 성서에는 전혀 나타나 있지 않은 그러한 길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바울은 이미 문자는 죽은 것이고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더구나 공관복음서를 긴밀하게 검토해보면 이것은 동일한 이야기를 서로 다르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망을 담은 텍스트임을 보여준다. 공관복음서와 큰 차이를 보이는 요한복음서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행전을 읽으면 이미 서로 다른 유파들이 예수에 관한 서로 다른 이해를 내비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1세기의 신앙인들은 지금보다 훨씬 유동적이고 자유로운 해석의 자유를 누리며 그 나름대로 복음에 관한 진실된 이야기를 들려주려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문자무오설은 애초에 유지될 수 없다.

     문자숭배. 하나의 프로테스탄트적 노력이지만 노예적으로 전락한 신앙을 파괴하도록 부추긴 그러한 숭배이다. 사실 역사비평학은 이러한 문자숭배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자숭배는 결국 전유의 문제로 나아가도록 만든다. 그러니까 프로테스탄트의 문자숭배로 인한 역사비평학은 복원이 아니라 전유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텍스트들 간의 병행과 치환 및 접속과 탈구는 말하고자 하는 이의 욕망과 맞물려 새로운 이해를 가져다줄 수 있는 일종의 놀이일 것이다. 물론 이 때의 놀이란 경박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놀이일 것이다. 아무튼 그렇다면 나의 행로는 신앙은 문자를 지키고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전유이고 의미생성임을 가르쳐 준 그러한 것이었을까. 16세기 이후에 등장한 프로테스탄트의 문자숭배, 다시 말해 중세의 4중적 해석을 물리치고 문자숭배를 최고로 간주한 구호, 즉 ‘오직 성서만으로’는 나로 하여금 신앙은 문자에 있지 않고 그것을 전유하고 누리는 것에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원래의 의미가 아니라 전유하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자유를 말이다. 복음을 전해 준 백인에 대한 종속적이고 열등한 감정, 특히 그들의 과학적인 신학적 주석 방법에 대한 열등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 왜냐하면 서로 엮여 있는 세계이고 순수의 세계는 없기에 - 더 이상 구속이 아닌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하나의 기표의 미끄러지기 일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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