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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바벨탑을 바라보며 와인 한잔하다(박여라)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7. 12. 2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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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을 바라보며 와인 한잔하다

 


박여라*




    사람들이 와인에 대해 불평할 때 뭐 이리 많고 복잡하냐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 얼굴을 생각해보자. 지구에 인구가 75억인데 그 사람들 얼굴이 다 다르게 생겼다. 똑같은 얼굴은 정말 하나도 없다. 나무도 돌도 꽃도 고양이도 다 다르게 생겼다. 자연이다.


    와인이 셀 수 없이 많고 복잡하고 다양한 것은 자연에서 왔다는 증거다. 그리고 살아있기 때문에 그대로 머무르지도 않는다. 물론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도 다른 개체이기에 엄밀하게는 다 다르다. 와인도 공장에서 찍어내듯 대량생산된 경우는 거의 그러하다. ‘참이슬’처럼. 그러나 한 사람이 같은 나무에서 거둔 포도로 만들어도 작년 와인과 올해 와인은 다르게 마련이다. 그러니 같은 포도종이어도 어디에서 어떻게 키웠는지 그해 날씨에 따라 다른 와인이 되는 것은 두말해 잔소리다.


    복잡하고 너무 많다 뭐랄 것이 아니라 다양해서 좋다고 할 일이다. 길을 걸어가는데 사람들 얼굴이 다 똑같다면 상상만 해도 징그럽다. 그리고 무섭고 끔찍하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뱉어내는 수많은 말로 유난히 피곤한 계절을 보냈다. 같은 이야기도 사람들은 자신이 받아들인 대로, 이해하는 대로,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했고 그 조금씩 다른 이야기들은 또 각기 여러 버전으로 퍼져나갔다. 돌아 돌아 나에게 다시 들리는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달라서 혼란스럽고, 이런 방식이 여러 번 반복되니 힘겨웠다.


    바벨탑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말이 다 같아서 마음 먹은 대로 하늘 높이 탑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말을 서로 다르게 하여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되었다는, 전설 같으면서도 신화 같으면서도 성서에 담긴 이야기.


    그렇다. 우리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 뒤섞였다고. 내가 이것이 저러하다고 말할 때 그 똑같은 단어가 남들도 공장에서 찍어낸 듯 같은 뜻으로 쓰냐고.


    좋아하는 장난감 ‘옥스퍼드 와인 컴패니언’(잰시스 로빈슨)을 집어 들었다. 와인 언어는 세 가지 단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맛을 보고 향을 맡는다, 와인을 묘사하는 단어들이 분명치 않다, 고객에게 멋지게 보이기 위해 이상한 표현들을 만들어낸다. 이 부분을 읽으며 그렇지! 맞다! 했다. 또한, 우리가 뭔가를 묘사할 때 표현하는 말과 평가하는 말은 다른데, 와인에 대해서 말할 때는 이 구별이 쉽지 않다는 점도 특징이란다.


    바디감이 있다, 가 대체 무슨 말이냐고. 몸뚱어리(body)가 있다는 거냐. 무거운 느낌이 있다는 거냐. 와인 언어는 한 번에 듣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이 정말이지 너무 많다. 영어로도 full body의 반대말이 empty body가 아니고 light body인지 이상한데, 우리말로 옮기려면 더 이상해져서 그냥 풀바디, 라이트바디다.


    어떤 향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다. 이끼 냄새라니. 누가 이끼 냄새를 맡냐고. (물론 와인 오타쿠들은 제대로 알고 표현하려고 돌멩이도 핥아본다.) 이끼도 장소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향이 날 것이다. 분명히 묘사하려면 자세히 설명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일 수 있겠다. 언제나 그럴까? 문맥이 복잡할수록 더 공감대도 많겠지만, 그래서 더 오해의 여지도 클 것이다.


    와인이 복잡한 이유는 바벨탑 건설현장에서처럼 말이 뒤섞여서인가. 백과사전에 ‘와인 언어’에 대한 부분 끝에 ‘와인 철학’을 더 읽어보라는 안내가 있다. 과연 와인은 언어만 문제가 아니었다. 와인 경험이 객관적일 수 있냐가 큰 물음표를 달고 버티고 있는 문제다. 그러니 옳고 그름에 대해 논의는 아니라는 점, 그런데도 괜찮은 와인이라는 건 어떤 와인인가, 맛의 기준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 완전 내 취향이다.


    사람들이 같은 와인도 다르게 경험한다는 것은 사실 와인을 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한다기보다는 흥미롭게 한다. 이야기를 나눠야만 하는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얼마큼 떫은맛이 느껴져야 아주 떫은지 약간 떫은지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신맛에 민감한 편인지 단맛에 민감한지 관심도 없었는데, 무엇을 잘 느끼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는 과정이 신기하다. 혼자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론적으로 괜찮은 와인은 향과 맛이 단순하지 않고 여러 가지 복잡하며, 시고 달고 떫고 하는 요소들과 알코올이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잘 어우러져 있으며, 여운이 길게 남는 와인이다. 그런 기준들을 두고도 내가 좋아하면 좋은 거다.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시비를 가릴 수는 없지만, 와인이 맛있는 때는 그 자리의 이야기가 좋을 때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럴 때 와인은 옳다. 다른 주류에 비교해 와인이 그 역할을 잘 한다. 밥상을 물리고 차 한두 잔 더 마시는 것처럼 느긋하게 이야기 나눌 때가 어울린다.


    다시 성서로 돌아와 창세기 11장을 보면, 거기엔 ‘바벨탑’이라는 말은 없다.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고 탑을 쌓았다. 야훼께서 땅에 내려와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싶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말을 뒤섞었고, 사람들은 도시 세우던 일을 그만두었다.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창세기 11장 9절, 공동번역) 여기에 붙은 각주도 전에 없이 눈에 들어왔다. 바벨은 히브리어로 ‘뒤섞어 놓는다’는 말과 소리가 비슷해서 ‘혼란’이라 해석되었는데 갈대아어로는 ‘신의 문’이라는 뜻이란다.


    바벨은 하나님께 이르는 문이었을까? 사람들의 말이 뒤섞인 것은 벌일까, 축복일까? 둘 다 아니지만, 굳이 고르자면 축복으로 보고 싶다. 왜?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니까. 혼란 속에서 서로 도우며 함께 하나님께 이르라는 뜻 아닐까, 맘대로 갖다 붙여본다. 하다못해 와인도 말이 혼란스럽고 복잡해서 알기 어려운데, 하나님은? 그러니까 저 아는 대로 재단하고 저 좋은 대로 제한하지 말라고. 경험과 이야기를 나눠 더 잘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의 문에 함께 이를 수 있게 서로 도와주자고.


* 필자소개_ 박여라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썼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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