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신학정보] 바벨탑 무너뜨리기: 언어의 상실, 권력, 그리고 소수성 살리기(김혜란)

신학비평

by 제3시대 2018. 2. 14. 14:06

본문


바벨탑 무너뜨리기: 언어의 상실, 권력, 그리고 소수성 살리기

 



김혜란
(
캐나다 세인트앤드류스 대학, 실천신학 교수)


 


이 세대 안에, 즉 앞으로 50년 안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언가의 수가 절반으로 준다고 상상 해보자. 이 무언가는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한 존재인데, 그 존재가 사라진다면?

생물학자들은 예고한다. 현재 20% 포유류가 멸종의 위기에 있고, 11% 조류가 멸종의 위기에 있고, 5%의 어류가 멸종의 위기에 있고, 10% 식물류가 멸종의 위기에 있다고. 우리 세대 안에 이 모든 생명체들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이 현실, 얼마나 충격적인가?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은 우리가 알고 보고 배우고 보호하려 했던 이 다양한 동물, 식물, 생명체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영원히 없어진다는 뜻이다. 아니, 이들의 멸종으로 현존하는 생물체의 생존자체도 위기에 처해질 것이다. 그 생존의 위기는 우리 인간의 삶도 포함한다.

절반으로 줄어들 그 무언가, 즉, 50%가 멸종의 위기에 처해있는 것은 바로 언어이다. 인류학자, 언어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지구상에 쓰여지는 언어는 7,000개라고 한다. 그 중 3,500개의 언어는 더 이상 말해지지 않고, 우리 세대가 죽고나면 다음 세대로 전수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종을 울린다. 언어가 단순히 의사소통의 매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 생동하는 언어의 절반이 멸종된다면, 이는 이미 인류의 대재난으로 선포할 만큼 절대절명의 위기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위기를 인식하기는 커녕, 우리 삶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무관심하게 살고 있다. 왜 그럴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인류학자이자 식물학자인 웨이드 데이비스 (Wade Davis)의 연구와 지혜를 구한다. 데이비스에 의하면, 멸종의 위기에 있는 3500개의 언어 중 600개 이상의 언어는 100명이 채 되지 않는 극소수 원주민 (indigenous) 들이 쓰고 있고 이 수는 점점 더 줄고 있다. 이 원주민들의 삶과 생태계의 위기가 직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생태계의 위기로 빙하가 녹고, 바닷물의 수위가 높아져서 섬에 사는 원주민들은 삶터를 잃게 된다. 또는 북극에 사는 이들은 이들대로 삶터를 잃게 된다. 반면 가장 많이 쓰이는 10개의 언어는 번성하고 있다. 다시말해 여기서 번성의 의미는 그 언어를 배우고 쓰는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강자언어는 바로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아랍어, 중국어, 일본어, 힌디, 벤강리, 분자비이다.[각주:1] 이 10개의 언어를 쓰는 인구가 제 세계 인구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반면, 80% 전체 인구는 7,000개 언어 중 단지 83개의 언어만을 쓰고 있다.[각주:2]

데이비스의 통계를 한국인의 현실 우리의 삶으로 반영해보자. 아마 한글은 이 83개의 언어 중에 하나에 속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말을 쓰는 한국인들 모두는 다수에 속한다. 강자언어인 10개 언어에 속하지는 않지만, 한글은 전세계 인구 대다수가 쓰는 83개 언어에 속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인으로서 인류의 절반이상이 쓰는 강자언어 10개의 언어들을 배우고자 시도해보지 않은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부터 모든 한국에 사는 아이들은 영어를 배운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경험을 했던 우리 조상들은 좋던 싫던 일본말을 배워야 했고, 조선시대까지 우리 조상들은 귀족과 교육받은 지식인들은 모두 중국말을 배워야 했다. 10개 언어 중 영어를 포함해서,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는 유럽식민주의의 영향이기에, 수백만 식민주의가 끝났어도 강자언어라는 권력으로 그 식민주의의 잔재는 탈식민주의 현실로 우리 삶을 지배한다. 나머지 6개의 언어는 모두 아시아대륙에 속한 언어이자, 변화하는 21세기 현실, 이슬람교의 증가와 인도 중국의 경제 성장을 잘 반영한다. 전형적 유럽 식민주의 언어였던 불어와 독일어는 지난 몇 년동안 떠오르는 신자본주의세력인 중국과 인도/파키스탄 등에서 쓰는 언어인 벵갈리, 분자비 언어에 밀렸다.

한국말이 비록 강자언어는 아니지만, 다수의 언어에 속한 것임은 분명하다.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한국말 이외 강자언어를 할 수 있고, 배우고 있기에, 우리는 다수자로서 언어의 상실, 인류의 대재난에 무감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는 언어는 권력과 직결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니, 언어의 상실과 다수의 힘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소수를 대변하는 언어의 다양성 (heterogenity), 언어의 독특성 (particularity)이 사라질 때 벌어질 일을 상상해 보자. 왜 소수성을 지키는 일이 중요한지 생각해보자. 왜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인류가 한언어만을 쓰게 하지 않고 각기 다른 언어를 쓰게 하는 쉽지 않은 선택,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그 결정을 했는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데이비스는 강의 중 누군가 너무 천연스럽게 (권력의 문제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우리 모두 한 언어를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모두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고, 그러므로 분쟁과 오해가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좋지요." 데이비스는 쉽게 대답을 하며 다음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그 언어를 "하이다" (카나다 원주민 언어 중 하나), "요루바" (서아프리카에서 쓰는 언어 중 하나), 또는 "이눅투트" (카나다 북극에 사는 이들의 언어)로 하면 어떨까요?"

이 글을 읽는 그 어느 누구도 소수의 부족 언어가 인류 공용어가 되게 하자고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 것이다. 아니, 공용어를 위해 6999개의 언어를 없애고, 쓰지 못하게 하고, 그 언어를 통해 전승되었던 어마어마한 유산과 지혜, 문학, 구전예술과 문화적 공헌을 지워버려야 한다는 걸 상상하는 건 참으로 고통스럽고 허망하고 폭력적인 일일 것이다. 더 이상 한글을 쓸 수 없다면, 한글이 이 지구 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언어는 단순히 문법 체계, 단어의 모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는 인간의 영혼을 담고 있는 매체이자 그 영을 교감하게 하는 끈이기 때문이다.

2018년 새해의 벽두가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었다. 우리 모두 21세기 중 약 오분의 일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 80여년 간 벌어질 끔찍한 일들 중 하나는 바로 기상 이변과 지구 온난화 즉, 환경문제일 것이다. 앞서 나열한 것처럼, 생태계에 속한 다양한 피조물들이 멸종의 위기를 겪으면서 신음할 것이고, 그들의 삶과 더불어 우리 인간의 삶도 그 고통의 강도를 더할 것이다. 문제는 그 고통의 최전선에서 피해를 볼 자들은 바로 다수에 속하지 않은, 소수자들일 것이다. 앞서 말한 600개의 멸종의 위기에 언어를 쓰는 자들을 포함해서 신음하는 생태계를 지키고 본인들의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바로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원주민들 공동체들이 바로 소수자들이다.

지난 몇 년동안 카나다 정부는 그동안 원주민들, 특히, 원주민 기숙학교 (Residential Schools)를 만들어, 유치원 갈 나이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떼어놓고, 집단 수용해서 교육을 했다. 이 교육은 거의 100년간 이루어졌고, 그 교육을 받는 동안 자체 원주민 언어를 쓰지 못하게 하고, 오직 영어와 불어만을 쓰게 했다. 체벌은 물론, 성희롱, 성추행, 강간, 등 차마 입에 담긴 어려운 폭력이 성직자를 통해 이루어졌다. 탈출하려다 죽은 아이들도 수천명에 달하며, 아픈데 제대로 치료를 못해서, 배고픈데 제대로 먹지 못해 죽은 아이들도 수천명에 달한다. 수세대에 걸친 이 교육으로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은 철저하게 박탈 (cultural genocide)되었다. 언어를 통해 전수되어야 할 삶의 지혜, 공동체의 지혜, 관계의 중요성은 단절, 이니 멸절의 위기에 있다. 기숙학교 출신의 원주민들 중 많은 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어른이 된 아이들은 자신이 부모가 되어도 부모로서 할 역할을 몰라서, 자신들의 아이들을 방기하고, 알콜, 약 중독등으로 피폐한 삶을 살고 있다. 기숙학교는 폐지되었지만, 식민주의의 폭력은 그 폭력의 잔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폭력의 악순환은 아직 끝나지 않앗다. 이 악순확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근 카나다 정부는 원주민들을 차별하고 억압한 식민주의 폭력을 인정했고, 사죄했고, 그 잘못된 사실을 기억하고 교육해서, 다시는 이런 억압과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다짐을 했다. 그 다짐의 일환으로 그 고리를 끊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사실과 화해 위원회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TRC)이라는 기구를 통해 그 기숙학교를 나온 생존자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5년에 걸쳐 전국에 진행시켰고, 2015년 최종 보고서[각주:3]가 출간되었다. 그 기숙학교를 운영한 주체가 바로 교회 였기에 (로마카톨릭, 성공회, 장로교, 그리고 카나다연합교회) 교회는 그 TRC 최종 보고서를 받고, 교회는 교회대로 회개와 실천을 위한 다양한 사명 (Calls to Action)을 열거했다.

지난 가을 우리 학교 신학교 교수들과 원주민 학자들의 공동 책 출판 준비 심포지엄이 있었다. 이 심포지엄은 바로 TRC Calls to Action의 작은 실천이다. 원주민이 아닌 우리 학교 교수들이 각 전공분야에서 TRC 문제를 연구하고, 원주민 학자들 (법, 여성학, 종교학, 활동가)과 함께 교회에 속한 평신도들이 읽고 공부하고 화해를 향한 신앙적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을 함께 책으로 출판하자는 동기로 모였다. 이틀에 걸친 시간동안 많은 나눔과 이해, 그리고 서로의 학문 분야를 두고 주제 토론을 했다. 그 과정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원주민 학자들의 원주민 언어들은 다양했다. 그런데 언어는 다르지만, 같은 부모밑에 속한 형제자매들은 아니지만, 우리들을 연결시키는 관계를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단어는 바로kinship이다. 이를 굳이 영어로 쓴 이유는 번역이 혈연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바른 번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뜻이 사실 정반대이다. 혈연관계가 아닌 관계를 표현하는 관계, 우리 한국말에도 친형제자매친척이 아니어도, 우리와 관계가 있는 지인들, 친구들을 "삼촌, 이모" 이렇게 부르듯이, 이들 원주민들 언어안에도, 이런 관계를 표현해 내는 언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필리핀 타갈로그 언어에도, 남쪽 아프리카에 속한 나라들에도 그 언어 (unbuntu)가 존재하고, 남미 원주민들 언어들에도 비슷한 관계를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는 사실을 공유했다. 물론 여기서 kinship은 인간중심주의가 아니라, 피조물 하나 하나를 다 포함하는 우주적 생태학적 관계 개념이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강이 내 형제요, 산이 내 자매요, 바위가 내 사촌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심포지엄 마감하는 마지막 시간에 하버드 법대 출신이자 유엔 원주민 인권을 위한 대선언 (UN Declaration on the Rights of Indigenous Peoples) [각주:4] 작업에 참여하고 공헌한 미그마 원주민 학자가 이렇게 말을 했다.[각주:5]


"인간이 만들어낸 그 모든 억압체계가 다 없어지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식민주의가 없어지고, 공산주의, 사회주의, 전제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제, 인종차별, 심지어 신학이라는 하나님 체계까지 없어지고 나면..?"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남는 것, 바로 그것은 "kinship" 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그렇다. 생명과 생명을 연결시키는, 살아있는 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그 진리, 아니 죽어도, 그 관계는 계속된다는 그 진리가 바로kinship이다. 우리의 현실은 죽음과 과거와 미래가 이 kinship 으로 연결되어있고,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조상들과, 우리 이후에 살아갈 다음 세대들이 이 kinship으로 관계를 맺고 있고, 이 kinship으로 인해 살아있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그 진리만이 남을 것이다. 그래서 이 지구 (mother earth)가 바로 언어 (language)라고, 이것이 진리라고 다른 원주민학자가 덧붙였다!

이 진리가 자유로와지도록, 옥죄어 숨이 막혀 죽지 않도록 하려면, 소수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소수 언어인, 멸종의 위기에 있는 언어들이 현 세대에 멈추지 않도록 해야한다. 강자언어가 세상을 지배하지 않도록, 우리 다수자들도 원주민들과 연대하여 바벨탑 무너뜨리는 노력을 해야한다.

"처음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썼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자, 벽돌을 빚어서, 단단히 구워내자."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주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만일 사람들이 같은 말을 쓰는 한 백성으로서, 이렇게 이런 일이 하기 시작하였으니,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주께서 거기에서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창세기 11장 1,3,4, 6-8절)


ⓒ 웹진 <제3시대>



  1. https://www.babbel.com/en/magazine/the-10-most-spoken-languages-in-the-world [본문으로]
  2. Wade Davis, The Wayfinders: Why Ancient Wisdom Matters in the Modern World (Toronto: Anansi Press, 2009), 5. [본문으로]
  3. http://www.trc.ca/websites/trcinstitution/File/2015/Findings/Calls_to_Action_English2.pdf [본문으로]
  4. http://www.un.org/esa/socdev/unpfii/documents/DRIPS_en.pdf [본문으로]
  5. https://www.usask.ca/nativelaw/staff/sakej-henderson.php [본문으로]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