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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환골탈태: 콩은 청국장이 되고, 포도는 와인이 되고(박여라)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8. 2. 2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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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 콩은 청국장이 되고, 포도는 와인이 되고

 


박여라*




    지금 나는 '홍어 과다' 상태다. 지난 1년 동안 먹은 홍어는 내 평생 그 이전까지 먹은 홍어보다 훨씬 많다. 가리는 음식이 없어 뭐든 잘 먹지만, 그리고 홍어는 특별하고 맛있는 음식이라고 여기긴 하지만, 그렇다고 어느 날 홍어가 먹고 싶다든지, 먼저 나서서 먹으러 가자고 주창할 정도로 홍어가 내게 우선순위가 높은 음식은 아니다.


    작년 겨울 몇이 모여 홍어삼합에 애탕을 먹고 다음에 또 만나기로 했는데, 처음 만날 때 고른 홍어집 명단에서 다른 곳들도 가보자고 한 게 발단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홍어 먹은 얘기를 하다가 그 모임에서도 홍어를 먹으러 갔다. 급기야 몇 주 전 원래 모임 사람들과 홍어 기행이라며 영산포엘 다녀왔다.


    나주 기차역에 내려서 영산포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온 동네에 홍어 기운이 공기에 가득했다. 좋다고 하기도 싫다고 하기도 모호하고 오묘했다. 문득 오래전 만들었다 망한 청국장이 떠올랐다.


    먹고 싶은 것은 다 만들어 보던 시절, 좋은 콩 구해다 무쇠솥에 푹 삶고 정성 들여 뜸 들였다. 그리고 꼬마 불이 켜 있어 늘 미지근한 구식 가스 오븐에다 청국장을 띄웠다. 끈끈이가 잘 떠서 보기에 모양은 좋았는데 냄새가 좀 청국장 더하기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이 더 있었다. 온도가 너무 낮았을 수도 있고 그 오래된 오븐 안에 오만가지 잡균이 있어 다같이 콩에 들러붙어 함께 번식했을 수 있다.


    그래도 가게에서 파는 것처럼 한 덩이씩 빚어서 양념을 얹고 이쁘게 포장했다. 막상 청국장을 끓이니 냄새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들인 정성이 아까워 연거푸 몇 끼를 끓여 먹다 결국은 나머지를 버렸다. (정성은 정성이고, 청국장은 사 먹는 걸로!) 문제는 그 뒤로 며칠을 두고 부엌에만 들어가면 풍기던 그 청국장인 듯 청국장 아닌 청국장 같은 냄새가 영 없어지지 않았다. 홍어를 먹으러 간 영산포구에서 이때가 떠올랐다.  


    콩이 청국장(또는 된장)이 되는 과정은 환골탈태(換骨奪胎)다. 한자어 뜻 그대로는 뼈를 바꾸고 태를 빼내는 그런 변화다. 뒤져보니 중국 송나라 때 무슨 문헌에 적혀있기로는 시 쓰는 방법을 설명하는 말이란다. 옛 시문을 따다 뜻은 그대로 두고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환골'이고, 자기 표현으로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 '탈태'라고 한다.


    발효는 환골탈태 같은 변화과정이다. 콩이 청국장이 되는 과정도 그렇고, 흑산도 홍어가 영산포 삭힌 홍어가 되는 과정도 그렇고, 포도가 와인이 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물론 온도, 습도 같은 조건이 잘 맞아야 하지만, 재료는 단순하고 꼭 필요한 효모는 공기 중에 있다. 그리고 환골탈태하여 알아볼 수 없이 다른, 더 좋은 것이 된다.  


    나주 내려가는 길에 일행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내보았다. "우리 다른 것도 먹으러 다녀요." 그럼 냉면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은 어떨까 하다 곧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영산포구 수많은 홍어집 가운데 아무 데나 들어가 앉았는데, 막상 먹다 보니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데 한 3년은 먹자"는 말에 크게 호응을 보내진 못했지만, 충분히 이해는 가더라는! 아이고야, 다음번엔 와인을 한 병 가져가야겠다.


* 필자소개_ 박여라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썼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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