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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정보]교회의 미투(#MeToo) 운동과 ‘빌리 그래함 룰’(The Billy Graham Rule)(김나미)

신학비평

by 제3시대 2018. 3. 2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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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미투(#MeToo) 운동과 ‘빌리 그래함 룰’(The Billy Graham Rule)





김나미

(미국 Spelman College 교수, 종교학)




    요즘 뉴스 미디어에서 ‘마이크 펜스 룰’ (The Mike Pence Rule)[각주:1] 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복음주의 개신교인으로 알려진 미국의 현 부통령 마이크 펜스가 2002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자신의 부인이 아닌 여성과는 단둘이서 식사를 하지 않고, 자신의 부인이 동석하지 않은 모임에서는 술도 마시지 않는다고 한 것에서부터 그의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미 미국의 많은 여성들이 ‘마이크 펜스 룰’ (이하 펜스 룰)이 성차별을 더욱 심화시키고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막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미투(#MeToo) 운동이 사회 여러 분야로 퍼져 나가는 이 때에 행여나 성희롱, 성추행으로 구설수에 오르거나 성범죄자로 낙인 찍히는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 펜스 룰을 적용하는 직장내 남성들이 늘고 있다는 뉴스 보도가 나오고 있다. 즉, 여성 직원들과는 일대일의 업무상 대화도 자제하고, 회식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채용조차 꺼려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배제가 직장내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대치 방안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원래 ‘펜스 룰’은 미국의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 중 한명으로 알려졌고 한국 복음주의 기독교의 확산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 빌리 그래함 목사의 이름을 딴 ‘빌리 그래함 룰’ (The Billy Graham Rule)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국에서 복음주의가 한창 퍼져나가던 때인 1948년에 당시 목사들이 돈과, 권력, 거짓말, 성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보고 이를 경계하고 막기 위해서 그래함 목사가 몇몇의 동료 목사들과 함께 선포한 ‘모데스토 선언’ (Modesto Manifesto)이 ‘빌리 그래함 룰’ (이하 그래함 룰)로 불려져왔다. 얼마전 타계한 빌리 그래함 목사는 모데스토 선언이후 자신의 부인이 아닌 여성과는 단둘이 만나지도 않고, 식사를 하지도 않고, 출장도 가지 않음으로서 구설수에 오른적이 없는 도덕적으로 ’위엄’ (integrity)을 지킨 목사로 칭송받았다.


최근 한국에서 미투운동 동참자들의 증언이 보여주듯이 여러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성희롱, 성추행도 다반사이고, 피해자가 가해자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성폭행도 셀 수가 없는 듯 하다. 그런데, 개신교를 비롯한 종교계에서 일어난 성폭력의 사례들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경우가 많다. 영역의 특성상 종교지도자들이 공적이고 개방된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일삼기 보다는 밀폐된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을 저지른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혹시 ‘펜스 룰’이나 ‘그래함 룰’이 여성들을 보호할 수 있는 하나의 장치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러할까?‘그래함 룰’이나 약간 수정된 형태의 룰을 지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남성목사들을 만나본 적이 있을 것이다. 또 아래와 같이 말하는 남성목사들의 ‘(성)도덕성’을 칭찬하는 교인들을 접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여자 성도님과 같이 차에 탈 일이 있으면 그 분은 차 뒷좌석에 앉게 해요. 괜히 옆좌석에 타고 같이 가다가 구설수에 오를 수 있어서요…”  

“여자 전도사님들이나 여자 목사님들은 같이 사역하기가 불편해요. 심방을 같이 다니기도 불편하고… 그래서 남자 전도사들이 편합니다.” 

“심방갈 때는 와이프와 꼭 같이 갑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를 존경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함 룰’은 성폭력으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하지도 않고 애초에 그럴 의도도 없이 만들어진 룰이다. 오히려 이 룰은 이미 2010년에 시작된 한국교회내 미투운동이 왜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는가를 보여주는 한 단서이다. 이 룰과 개신교 전반에 깔려있는 여성혐오적 사상을 한국기독교가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뿌리 뽑지 않는다면 김진호 목사가 최근 시평[각주:2]에서 전망한 것 처럼 지금의 미투운동이 개신교내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래함 룰’이 왜 해결책이 아닌 문제가 되는 것일까?


첫째, ‘그래함 룰’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개신교 (백인)남성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평판에 흠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고 따르려고 했던 룰이다. 이 룰에 담긴 기본적인 전제는 여성이 남성을 성적으로 ‘유혹’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여성을 ‘성적 유혹’을 도발하는 존재로 보는 여성혐오적, 남성주의 시각의 전형적인 경우이다. 물론, 여성을 죄의 근원으로 보는 여성혐오적, 남성주의적 시각의 성서해석과 신학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바람직한’ 규칙으로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거룩한 종’인 ‘영적’ 지도자들을 여성들의 유혹으로 부터 지켜낼 수 있게 해주는 룰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시각 – 여성들이 ‘영적’ 지도자들을 타락으로 이끈다 — 이 교회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 동참을 망설이게 하거나, 미투 참여후에도 ‘2차 피해’를 교회와 주위 교인들로 부터 지속적으로 당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거룩한 종’을 타락시키는 것은 ‘사탄’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 룰은 미국의 백인 중산층, 이성애 핵가족을 모델로 하고 있다. 이 모델에서 (백인)남성은 가족의 ‘머리’이고, 남성과 여성의 성은 결혼 안에서만 허용이 된다. 또한 가족의 ‘순결’을 지키는 것은 여성의 책무이다. 이런 룰이 빌리 그래함으로 대표되는 복음주의 백인남성 목사들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룰은 남편에게 순종적이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중산층, 개신교, 이성애자 백인여성들을 ‘이상적’ 여성상으로 여겼던 19세기 ‘백인 레이디’ (the White Lady) 담론과 ‘가정예찬/숭배’ (the Cult of Domesticity) 담론 –(백인)여성들이 있어야 하는 공간은 머리되는 남편을 섬기고 자녀들을 도덕적으로 성장하도록 양육하는 사적인 공간이다 – 을 바탕으로 한 젠더화된 신학에 근거하고 있다.[각주:3] 이 두 담론들에는 성서에도 깊이 새겨져 있는 여성을 ‘성녀’와 창녀’ (the ‘virgin/whore’ dichotomy)로 나누는 이분법이 전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는 미국의 역사적 상황에서 ‘순결한’ 백인여성들과 대조되어온 ‘지나치게 성적’(hypersexual)이고, ‘저속’하고, 남성들을 유혹하는 사악한 ‘이세벨’ (Jezebel)로 여겨진 흑인여성들이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지속적으로 흑인여성들의 여성성은 다양한 형태의 성적인 존재로 타자화되고, 폄하되고, 대상화 되어지고 있다.[각주:4] 물론 (백인)여성 목회자들 (설사 모든 모임에 배우자를 동행시킬수 있는 여성목회자라 할지라도)이나 퀴어목회자들은 이 룰을 지키는 사람들의 상상에서조차 존재할 수가 없다.


셋째, ‘그래함 룰’ 또는 ‘펜스 룰’은 남성지도자의 ‘성적 타락’을 막거나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미리 방지하는 방안이 자신의 부인을 벽으로 삼는 성분리 (sex segregation)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남성지도자가 행여나 ‘성적 타락’을 했거나 구설수에 오르게 되면 그 모든 책임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부인이나 자신을 ‘타락의 길로 이끈’ 여성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남성지도자들의 (성)도덕적 위엄과 품격을 지키는 길은 여성을 피하거나 여성을 원망하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이 ‘빌리 그래함 룰’은 교회내의 성폭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이성애가부장적인 교회 구조와 여성혐오가 만연한 문화를 견고히 하는 한 축이 되어 왔다고 볼수 있다. 성폭력이 권력(power)과 폭력의 문제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성폭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폭력을 가능하게 하고 지속시키는 구조를 들여다 보고 구조적 차원에서 원인 분석과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렇기에 여성혐오적이고 이성애가부장적인 교회의 구조를 견고히 하는데 동조한 ‘그래함 룰’을 해체하고 그 룰의 신학적 전제들을 교회에서 뿌리 뽑는 것이 교회내의 미투행진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데 절실하게 요청된다.[각주:5]





ⓒ 웹진 <제3시대>



  1. ‘The Mike Pence Rule’ 이나 ‘The Billy Graham Rule’의 ‘rule’은 ‘규칙’ 또는 ‘법칙’으로 번역될수 있으나 이 글에서는 미디어에서 쓰는 ‘룰’로 쓰고 있다. [본문으로]
  2.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935 김진호 목사의 지난 웹진 시평 '왜 개신교에선 '미투' 운동이 이어지지 않는가' [본문으로]
  3. 참고. Kathy Rudy, Sex and the Church: Gender, Homosexuality, and the Transformation of Christian Ethics (Boston, Mass: Beacon Press, 1997). [본문으로]
  4. 10년전 미국에서 미투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 흑인여성 타라나 벌크(Tarana Burke) 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많은 여성들 –특히 여러 소외 계층의 여성들–이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장벽들 때문에 미투운동에 동참을 하지 못하는 것을 인지하고 어떻게 미투운동을 넓혀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5. 자신들의 (성)도덕적 위엄과 좋은 평판을 지키기 위해서 ‘그래함 룰’을 따르는데 주력한 (남성)목사들과 지도자들도 자신들이 성폭력 가해자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의 숨을 내쉴 것이 아니라 ‘그래함 룰’을 하루 빨리 파기하고,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정의로운 해결과 회복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피해자를 비난하지 않고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에 보다 근본적인 책임을 지게 하는 교회내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정착시키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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