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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세이] 숨었다 드러나는 선 (백정기)

사진에세이

by 제3시대 2018. 4. 1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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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었다 드러나는 선

 

들뢰즈는 “모든 작가는 각자의 방식대로 회화의 역사를 요약한다.”고 했다. 노련한 작가들을 보면 쉽게 수긍이 가는 말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감상자도 마찬가지다. 노련한 감상자는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작품을 정리한다. 정보의 발달로 요즘은 쉽게 예술작품에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이 없으면 예술작품은 소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을 감상에 앞서 뚜렷한 기준을 먼저 새우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선은 미술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다. 고대 이후 지금까지 어떤 미술에서든 선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선이 모두 같은 위상을 갖지는 않는다. 어떤 작품은 선이 전면에 드러나 분명한 역할을 하고 어떤 작품은 선이 불분명하여 역할이 축소된다. - 선이 선명하고 흐릿한 정도를 선예도라고 한다. - 왜 어떤 작품은 선예도가 강하고 어떤 작품은 선예도가 낮을까. 여러 가지 가설로 설명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원전 2세기경 이집트 벽화는 평면적이고 선이 분명한 반면 그리스 벽화는 입체적이고 선이 흐릿하다. 보링거는 척박한 이집트와 풍요로운 그리스의 자연 환경이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르네상의 예술에서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내륙과 항구라는 경제 환경이 더 결정적인 요인처럼 보인다. 이상적인 고전의 복원을 꿈꾼 피렌체 미술은 외곽선이 비교적 분명하고 낭만적인 항구도시 베네치아는 감각적인 효과 때문에 선이 흐릿하게 보인다. 지금 북경과 상하이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차이를 더 선명하게 상상 할 수 있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처럼 개인의 성향에 따라서도 선의 강약은 달라진다. 다빈치는 과학적 태도로 사물을 보았다면 미켈란젤로는 그보다 신비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다. 다빈치가 300 여구의 시체를 해부하고 기계를 제작하기 위해 많은 드로잉을 남긴 것은 실용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가 취했던 과학적 태도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선의 차이는 통시적 형식의 변화에서도 포착할 수 있다. 가장 분명한 예시는 르네상스와 바로크다. 르네상스 대표 작가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에 삼미의 신이 등장한다. 여신들은 분명하고 유려한 외곽선으로 둘러져 있다. 반면 바로크 시대 루벤스 [삼미의 신]에 등장하는 여신은 덩어리가 강조되면서 외곽은 어둠에 침식되어 사라진다. 그밖에도 미술가의 예술적 목표에 따라 달라지는 선의 위상도 근대 미술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위, 보티첼리 [프리마베라] 속 여신들의 외곽이 분명하다. 반면 아래, 루벤스 [삼미의 신] 속 여신들의 외곽은 흐릿해 보인다.

방대한 미술의 역사를 보편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선의 드러남과 숨음”과 같은 작은 관점으로 보면 미술사도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 작가소개

홍대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개인전을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 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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