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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이방인을 환대하는 지혜(조영관)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8. 6. 28.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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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환대하는 지혜[각주:1]


조영관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제주도에 찾아온 예멘 난민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난민 보호를 반대하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38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유럽도 복잡하다. 얼마 전 이탈리아는 지중해에서 구조된 난민 600여명을 태운 배의 입항을 거부했고, 헝가리 극우정권은 난민을 돕는 개인과 단체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었다.

존재의 부정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는 난민 숫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올해 6월 발표한 글로벌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까지 전쟁과 폭력 그리고 박해로 인해 생겨난 난민은 6850만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보다 많은 숫자다. 2017년 한 해 동안 1620만명이 새로 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의 공포에 의해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고, 이들이 여러 이유로 점점 더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러모로 비극적이다.

예멘도 대표적인 분쟁국가 중 하나이다. 홍해가 지나는 아라비아반도 가장 남쪽에 위치한 예멘은 우리에게 익숙한 아덴만을 사이로 남쪽으로 소말리아와 마주하고, 북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그린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과거 남북으로 분단되어 전쟁을 경험했고, 2015년쯤부터는 정권을 차지하려는 이슬람 시아파 무장단체 ‘후티’ 반군과 예멘 정부군의 내전이 3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참혹한 전쟁을 피해 28만명의 예멘 난민이 국외 피란길에 올랐으며, 대부분은 요르단, 이집트, 수단 등 인근 국가로 피신했다. 한국에는 지금까지 예멘 난민의 0.4% 정도인 1000여명이 난민 보호를 신청한 것으로 파악된다. 죽음의 공포를 피해 우리나라에 보호를 요청한 이상, 적절한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 난민협약을 비준하고 독립된 난민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현행 법제도에 부합한다. 더불어 유엔난민기구가 과거 한국전쟁의 수많은 피란민을 지원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국제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도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으로 오는 난민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지만 통계는 그렇지 않다. 2012년 난민법 시행 이후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2016년 발표한 ‘OECD 회원국 체류 난민과 난민업무 처리 현황’에 따르면 난민법 시행 이후 체류 난민의 숫자는 총 1313명으로 37개 회원국 중 30위로 하위권이며, 신규 난민신청자 숫자도 다른 OECD 회원국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조사되었다. 난민 심사기간이 길어지거나, 불인정 결정에 불복하는 등 난민신청자의 체류기간이 길어지는 문제는 법무부가 심사인력을 확충해 난민 심사절차의 전문성과 수용성을 높이는 것으로 해결해야 한다. 500명이 넘는 예멘 난민신청자를 심사하는 인력이 단 2명뿐이라는 사실은 부실한 초기 심사절차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예멘 난민신청자들이 주로 젊은 남성이며,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라는 사실도 이들을 반대 하는 논거로 등장한다. 유럽에서 발생한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와 무슬림 남성들이 저지른 여성을 향한 비인간적 범죄 사실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물론 테러와 범죄는 어떤 이유에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20만명의 무슬림과 난민으로 보호받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나 범죄자로 낙인찍어 적대시하거나, 정당한 법적 권리를 빼앗아 배제하고 추방시키는 것도 결코 올바른 해결책은 아니다.


뜨거워진 공론장에서 합리적인 제도와 원칙을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키며 정확한 사실에 기초하여 현실적인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의 제시가 시급하다. 그동안 한발 물러나 사태를 관망하고만 있는 정부의 태도가 매우 실망스러운 이유다. 이방인을 환대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2018. 6. 24 경향신문에 동일한 제목으로 실린 칼럼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6242056015&code=990100#csidx94874a2d0c17206a06f2e3e6477b57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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