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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초보 학부모의 초등생 적응기(김난영)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8. 6. 28.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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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학부모의 초등생 적응기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율이는 새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하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친구들도 쉽게 사귀고, 하교 후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노느라 목덜미가 금세 까매졌다. 말끝이 제주바람이 잡아먹은 듯한 게 섬소년 느낌이 물씬, 아이의 적응력은 정말 놀랍다.

가끔 숙제가 있을 때 빼고는 책이 담길 일이 없는 아이의 가방 속에 낯선 책이 있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나온 학생용 연구교재였다. 아이에게 물으니, “엄마, 이거 선생님이 나에게만 특별히 준 미션숙제야. 선생님이 공부할 부분 접어줬는데 어디 있지?”하며 웬일로 숙제를 제 손으로 찾는다. 흥분한 손길로 책장을 넘기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접어놓은 곳을 펼치니 한글모음 연습이었다. 때는 6월 초, 주간학습표에는 아이들이 받침이 있는 단어를 읽고 쓰는 연습을 한다고 적혀있는데, 율이의 특별 미션은 모음 공부하기였다. 또 다시 마음에 바람이 분다.

아이를 키우며 나의 모토는 항상 ‘믿음과 기다림’이었다. 초등 입학 전까지는 꽤 잘 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글은 모르지만, 그림과 말로 충분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아이라 믿고 기다렸다. 초등 입학을 앞두고 여전히 까막눈인 아이를 보며 조금씩 불안이 밀려오기 시작했지만, 백발이 성성한 노인도 쉽게 익히는 한글인데 2학년까지는 기다려줄 수 있겠노라 스스로 다독이곤 했다. 그러나 “특별 미션”이 떨어진 순간, 나는 아이를 ‘잡는’ 부모가 되어간다. 미션 수행을 위해 “ᄀ, ᄏ, ᄁ”을 가르치는 순간과 동시에 까먹는 아이의 예상치 못한 경이로운 능력에 탄식이 절로 나오고, 결국에는 ‘과연 내 아이는 정상일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그런 나를 비추는 아이의 눈은 금세 불안으로 충혈 되고 미안하다며 눈물을 쏟아낸다. “율아, 아니야. 엄마가 더 미안한 거야”라고 고백하며 나도 함께 울었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습득하는데 있어 자기만의 속도와 취향이 분명한 아이라, 표준화된 진도에 맞춰야 하는 공교육 시스템에 들여놓기를 많이 망설였었다. 그래도 아이의 힘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교사와의 충분한 소통을 통해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유별난 교사를 만난 것도 아니다. 부모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하는 교사였으며, 유별난 쪽을 따지자면 입학 후 한 달 만에 전학을 감행한 부모가 더 그러할 것이다.

일주일 동안 내 아이에게 맞는 한글교육법을 찾아 헤맸다.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한글학습 관련 교재를 뒤지고, 신중하게 한 권을 선택해 주문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율이에게 물어보니, “국어시간에 다른 친구들은 다 한글을 아는데 나만 몰라 속상할 때도 있지만, 모르는 문제는 짝꿍 것을 보고 베끼면 돼”라고 한다. 정작 당사자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나름의 살 궁리를 터득해 가는데, 역시나 나만 불안해하고 호들갑을 떤 셈이다.

젊은 날 예수에 대한 믿음을 고백했던 사람으로서, 당시 나의 고백이 얼마나 거짓된 것이었는지 학부모가 된 후에야 처절히 느끼는 중이다. 큰 아이의 초등 적응 과정을 지켜보며 매 순간 ‘믿음을 시험당하는’ 기분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두 아이를 키우며 많은 순간 나의 믿음을 간증하고도, 자꾸 아이의 상태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고 점검하기 일쑤다. 아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스스로 깨우칠 힘이 있는 존재다. 나는 무식하게 앉아서 아이의 진정한 자기주도학습을 기다리기로 했다. 다시 한 번 다짐하고자 이곳에 내 결심을 남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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