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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하라!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역사의 종말


    1990년대라는 그로테스크한 시절이 있었다. 레닌의 동상이 붉은 광장에서 철거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자본의 전 지구적 승리가 선언되었던 그 시기말이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문구로 그 시절을 요약였다. 그것은 자본의, 자본에 의한 세계 재배를 찬양하는 축가였다.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에 대해, 맑시즘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게임이 끝났다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이를 기쁜소식이라 말하면서“자유민주주의는 이상이 더 개선될 수 없다”라고 선언하였다.   

   이는 마치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인간의 이성이 마지막 기착점인 절대정신에 이르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절대정신에 이르러 인간의 역사가 완성되듯이 후쿠야마는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고 마지막 목적지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마지막 목적지란 말할 것도 없는 자본이 시장에서 아무런 제재와 비판과 규제없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이곳 지구다. 그렇게 20세기 내내 지속되었던 혁명을 향한, 유토피아를 향한 상상은 1990년을 기점으로 공식적으로 철거되었다. 


광장에서 시장으로, 이념에서 자본으로


   이 무렵 한국의 상황은 어떠했던가? 87년 체제를 거치면서 혁명의 뜨거움과 혁명의 헛헛함을 경험했던 한국은 1997년 IMF 사태를 겪으면서 건너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우리는 세계 금융시스템이 제시하는 프로그램을 따라야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정의와 대의, 자본의 원리에 반하는 인간의 가치, 자본의 원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양심과 이성의 소리들을 하나씩 포기해야만 했다. 신자유주의가 내세우는 세계화의 덫에 대한민국이 빨려 들어간 것이다.

   데이비드 헬드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세계화를 묘사하면서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결과적으로 개별국가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보다 높은 층위, 즉 금융시장의 역학 속에서 국가의 앞날은 좌우된다고 밝혔다. 1997년 한국에 닥친 IMF 외환위기는 꼭 이와 같았다. 한국정부는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고, IMF관리체제 아래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기업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명목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였다. 대량해고로 인한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가 대두된 것이 이 시기였고, 공기업의 민영화로 인한 공공요금 인상이 서민경제에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던 시기도 이 무렵이었다. 노엄 촘스키는 이러한 신자유주의를 “민주주의적 형식 안에 있는 전체주의”라고 비난하였다. 이는 무소불위한 지위로까지 격상된 자본의 위력을 경고한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처럼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급속도로 전파되었던 나라가 또 있을까? 시카고에서 10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2014년 한국으로 돌아와서 내가 제일 처음 던졌던 물음이었다.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이다. 이것은 비단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뼈속 깊숙이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신자유주의의 DNA가 자리잡았다. 노인부터 어린이집 아이들까지 하나의 거대한 염기서열을 이루어 그 원리에 충실한 신자유주의 완전체! 이것이 내가 귀국하여 3년 남짓 살면서 느끼는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그럼, 언제부터 이런 현상이 시작된 것일까? 세상사를 칼로 두부모 자르듯 야멸차게 재단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한국사회를 언급할 때 IMF이전과 이후를 분리하여 진술한다. 김영삼 정권에 이어서 등장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대한민국은 가치와 이념의 시대에서 신자유주의의 프로그램에 입각한 생존과 야만의 시대로 서서히 변모해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한국현대사의 발전과정에서 등장했던 유일한 민주정부였다. 두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민들이 가졌던 원죄의식, 그것은 과거 개발독재시절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유린,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도외시 되었던 정의에 대한 부채의식을 말하는데, 그 빚을 김대중-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탕감 받았다. 민주정부 10년이 면죄부 역할을 한 셈이다. 노무현 어록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라는 대사는 이 시대의 풍경을 드러내는 증상이라 할 것이다. 그때 대한민국은 “광장에서 시장으로, 이념에서 자본으로!” 깔끔하게 말을 갈아탔다.

    이 무렵 등장한 각종 위기 담론은 그러한 시대정신과 일정한 연관을 지닌다. IMF위기, 경제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 대학의 위기, 문학의 위기, 그리고 교회의 위기까지... 본래 위기란 최종적으로는 파국을 꿈꾸고 지향한다. 어쩌면 지금부터 다루게 될 냉소는 파국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마음, 혹은 파국의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과의 거리두기 일런지 모르겠다. 현실과의 거리두기가 냉소라 한다면, 그것은 현실에 대한 꿈과 변혁을 비관하는 불행한 정신이다.


파국의 현상학 그리고 냉소의 도래


   현재의 한국사회가 냉소주의가 만연한 불임의 사회라고 한다면 그것의 시발점은 이명박 정부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국민들은 국가의 최고지도자를 뽑을 때 만큼은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었다. 국가지도자는 대의를 존중하면서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자기희생이 있어야 한다.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겠다며 선거때마다 낙선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부산으로 달려가 떨어진 노무현, 민주주의를 위해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김대중, 하물며 김영삼조차 박정희때 민주주의를 위해 단식도 하고, 의원직도 재명당했던 전력이 있었다. 이처럼 대의와 명분, 지조와 신념을 가지고 자기희생을 치뤘던 인물들에게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표를 던졌다.

    그렇다고 볼 때, 이명박은 앞선 지도자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캐릭터다. 이명박의 대의와 명분은 오로지 자본이다. 앞선 대통령들이 지녔던 숭고한 아우라와는 다른 컨셉으로 이명박은 승부를 걸었고, 그런데 그것이 불행히도 먹혔다.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인권과 자유와 정의에 대한 원죄의식을 털어버린 한국 유권자들은 자본을 케츠프레이즈로 내건 이명박에게 몰표를 던졌다. 군사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면서 가졌던 원죄의식을 김대중-노무현 시기를 거치면서 씻어버렸기에 그 누구도 이제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과거에는 그래도 우리에게 최소한의 체면이 있어서 공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혹 돈을 주제로 대화를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격멸하거나 천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대화의 대부분은 재테그와 부동산, 아이들 영어유치원, 혹은 명품과 성형으로 상징되는 자본의 페티쉬에 대한 내용들 뿐이다. 더 이상 대의와 명분, 의리와 도덕 같은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자본이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그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사건이었다. 그 후 우리는 다같이 우리의 체면과 양심, 대의와 수치심과 윤리를 바닥에 내려놨다. 나는 그것이 바로 한국사회 파국의 지형학이고, 냉소의 감정이 시작되는 포인트라 생각한다.

    문득 10년간의 미국유학을 마치고 2014년 한국에 돌아왔을 때 지인들이 내게 해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그들은 비록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며 분신을 하거나 투신을 하던 열사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젊었던 어느 한 시절에서 조국과 자신의 현실에 대한 울분과 분노를 토로하면서 긴긴 밤을 나와 함께 지새웠던 절친들이다. 40대 중후반이 된 나의 친구들이 10년 만에 귀국한 내게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해주었던 조언은 결국 이것이었다. “네 마음 다 알아, 하지만 해도 안 돼. 오직 돈이야”

       냉소주의는 이러한 세상의 법칙을 알아버린 성인(成人)의 마음이다. 지젝은 이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것을 하고 있다. 냉소적인 이성은 더 이상 순진하지 않다. 그것은 계몽된 허위의식의 역설이다. 우리는 그것이 거짓임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이데올로기적인 보편성 뒤에 숨겨져 있는 어떤 특정 이익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포기하진 않는다.[각주:1]


    성인이 된 인간은 유소년시절에 가졌던 유토피아적인 환상을 더 이상 갖지 않는다. 혹 주변에서 여전히 유토피아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냉소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다 알아, 네 마음 다 알아...하지만, 꿈 깨라! 현실은 냉혹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라고 말이다.

    그들은 이제 공적인 가치를 상상하지 않으면서 정신과 양심의 가위눌림에도 반응하지 않는 쿨한 인간들이다. 그 어떤 충격과 놀라움이 밀려와도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간혹 쨉을 날리면서 자기만을 보호할뿐이다. 그들은 이제는 반성과 실천의 자리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세상사 별것 없다” 혹은 “인생 다 부질없어”라는 삶의 경륜과 지혜가 묻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말을 간혹 선문답처럼 날릴 뿐이다.


냉소의 고고학


    냉소주의를 철학사전에서 찾으면 cynicism으로 본래는 지금처럼 부정적이기만 한 정신은 아니었다. 냉소주의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견유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디오게네스다.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 “필요한 것이 뭐냐?” 고 물었을 때 “그대여! 나는 햇살이 필요하니 해를 가리지 말고 제발 내 앞에서 비켜 서 달라!”고 했던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는 인물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본래 냉소주의는 문명에 대한 비판이고, 체제에 대한 조롱의 정신이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자본주의의 등장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의 발흥과 더불어 전개되는 냉소주의란 “돈이 되는 것이면 다 한다!”는 문구에서 선명하게 그 특징이 드러난다. 고.중세 사회 인민들의 삶과 의식을 지배했던 것들, 예를 들어 전통, 관습, 역사, 윤리, 명예, 사랑, 대의, 양심 등등을 거론할 수 있을 터인데, 근대 자본주의는 이것들을 화폐의 양으로 전환시켰다.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전환시키는 자본주의 특유의 마력 앞에서 각각이 지녔던 개별적 가치들은 화폐의 양에 따라 서열화 된 것이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드라마 ‘가을동화(2000년 作)’에서 남자 주인공 원빈이 여자 주인공 송혜교에게 한 명대사가 있다: “사랑 웃기지마! 돈으로 사겠어. 돈으로 사면 될 것 아냐!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이 말은 지금도 회자되면서 패러디되는 유명한 드라마속 어록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개되는 냉소의 증상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봉건시대 귀족들이 내세우는 가치들을 냉소하고 화폐의 양으로 등가시키는 자본주의의 냉소주의가 앙시앙 레짐을 무너뜨렸던 것처럼, 기존 체제와 질서를 냉소하는(“웃기지 마!”) 정신이 현재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자본의 법칙에 타격을 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이유로 들뢰즈와 가타리는 그들의 공저 <안티오이디푸스>에서 자본주의가 지닌 파토스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변혁을 위한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음을 상상하기도 하였다.

    지젝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 탈이데올로기 시대를 맞아 거대서사가 사라진 상황속에서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한 형태로서의 냉소주의”를 논한다. 지젝은 독일의 사상가 피커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가 쓴 『냉소적 이성 비판(Critique of Cynical Reason)』에 기대어 부정적이고 무력한 냉소주의(cynicism)에 맞서는 또 다른 냉소주의인 키니시즘(Kynicism)에 주목한다. 그는 시니시즘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부도덕한 입장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자체로 부도덕성에 봉사하는 도덕성에 가깝다”라고 비난하나, 키니시즘에 대해서는 “공식문화를 아이러니와 풍자를 통해 통속적이고 대중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라고 두둔한다. 지젝이 말하는 냉소주의가 시니시즘에 머무르지 않고 키니시즘으로 나갔던 경우가 존재했었다. 바로 중세가 종말로 치닫고 근대가 도래하기 전 시기다. ‘죽음의 무도’가 울려 퍼지고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멘트가 울려 퍼졌던 그곳으로 지금부터 타임슬립을 해보겠다.


타임슬립 : 아포칼립스(apocalypse) 중세


    ‘아포칼립스’는 신약성서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그리스어 제목이다. 신약성서는 고대 그리스 헬라어로 쓰여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포칼립스의 뜻은 신의 비밀, 신의 계시가 드러난다는 말이다. 신의 계시란 말할 것도 없이 종말이다. 종말에 대한 서사와 종말을 둘러싼 현상학에 관한 책이 요한계시록,‘아포칼립스’이다. 사실 돌이켜보면‘아포칼립스’는 요한계시록 뿐 아니라 성서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였다. 제국의 식민으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독교도로 온갖 고초를 당해야만 했던 초대 기독교도들에게 아포칼립스, 즉 파국의 도래는 두려움인 동시에 희망이었고, 임박할 파국에 대한 기대는 현실의 절망을 견디게 하는 에네르기였다.

    이러한 아포칼립스적인 환상과 예언은 서구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당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해결할 중요한 해법으로 요청되곤 했다. 그것이 유독 강하게 대두되었던 시기가 중세 말이 아니었나 싶다.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중세교회의 권위는 십자군 원정의 실패와 유럽인구의 1/3을 죽음에 이르게 한 흑사병의 창궐로 위기에 빠진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나갔던 십자군은 이교도들에게 패배의 수모를 당하였고, 흑사병으로 인한 죽음의 그림자는 그 누구도 비껴가지 않았다.

    언젠가 김연아 선수가 세계 피켜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생상의 <죽음의 무도>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연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곡은 중세 말 유행했던‘죽음의 무도 dance macabre’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당시 화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백성, 귀족, 사제, 심지어 교황까지 해골과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마치 전 세계가 죽음과 한판 대동의 춤을 추는 형국인셈이다. 죽음이 선사하는 공포와 슬픔, 허무를 초극하려는 의지가 오히려 춤이라는 모멘트로 승화되면서 ‘죽음의 무도’라는 찬란한 슬픔을 만들어 냈다.‘메멘토 모리 memento mory’, 죽음을 기억하라! 는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시대를 향한 냉소적(키니시즘) 발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중세 말을 지배했던 주술적이고 신비적이었던 죽음의 광시곡과‘죽음을 기억하라’는 주문은 대척점에 놓여있던 이성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죽음의 무도’를 추면서 존재에 대한 허무, 실존에의 불안, 미래를 향한 공포를 지나갈 수 있었고, 그것은 죽음에 포로가 되어 염세적으로 흘렀던 중세 말을 벗어나 좀 더 합리적인 틀에서 보다 이성적인 잣대를 가지고 사건과 대상을 대면하자는 움직임과 맞물려 근대를 재촉하고 있었다. 실존적으로 다가왔던 삶에 대한 공포와 그 공포를 초극하려는 죽음에의 행위를 인식론적으로 회의하게 되면서 서서히 근대가 다가왔던 것이다.‘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그 상황속에서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향한 냉소의 메시지 였던 셈이다.


변화된 냉소의 지형학


    다시 21세기 대한민국 현실로 돌아왔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냉소해야 하는 걸까. 세상이 변하기 전에는, 서두에서 밝혔던 1990년대라는 크로테스크한 시절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선택해야 할 냉소의 대상은 분명했다. 반독재, 반통일, 반외세, 반자본. 너무나 많고 다양한 냉소의 메뉴가 있었고 우리는 아무런 고민 없이 그것을 골랐다.

    하지만 1990년대가 지나면서 선명했던 전선은 흐트러졌고 망가진 국경너머로 초국가적이고 전 세계적인 자본이 넘나들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무엇인 진리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전 시대의 패러다임으로는 판단이 안서는 계절이 도래했다. 그러나 잠시 소란스러웠고 불투명했던 상황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자본으로!

    이제 적은 외부에 있지 않다. 내 안에 있다. 나의 탐욕이 문제의 원인이 되었고, 나의 욕망이 유력한 사건의 용의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자본이 뒤에서 원격조정하고 있다. 시절이 바뀌면서 냉소의 성격도 변화하였다.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냉소에서 자본의 음성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나의 욕망과 탐욕이 냉소의 대상이 되었다. 냉소의 칼끝은 이제 그 누구도 아닌 나를 향해 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새로운 냉소의 지형학이다.

    자본의 위력에 기대어 모든 전통적 가치를 부정하는 감정이 냉소였다면, 21세기 자본주의가 선사하는 탐욕의 마음을 다시 한번 부정하는 냉소가 지금 우리에게 요구된다. 그렇다고 볼 때, 우리가 맞닥뜨리는 냉소의 현상학은 다분히 변증법적이고 이중적이다. 모든 가치를 무화시키는 자본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정신과 21세기 자본이 선사하는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한 유혹과 욕망사이에서 우리는 지금 홀로 외롭게 서있다.


에필로그 : 여기가 로도스다, 뛰어라!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도 쓰여져있고, 마르크스도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인용한 이솝 우화에 나오는 대사 하나를 적는다: “여기가 로도스다, 뛰어라! (Hic Rhodus, hic saltus! 히크 로두스 히크 살투스!)” 이야기의 배경은 이렇다. 어떤 허풍쟁이가 자랑을 했다고 한다. 자기가 로도스 섬에 있을 때는 높이 뛰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여기가 로도스 섬이라면 잘 뛸 수 있었을텐데”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사람이 듣다가 그에게 한말이 바로“여기가 로도스다, 뛰어라!”이다.

   맑스는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고,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녁에 날개를 편다고 말했다. “여기가 로도스다, 뛰어라!”는 혁명의 날이 밝았다는 신호이고, 비상(飛上)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며, 양적 축적에 따른 질적 승화라는 변증법적 논리학의 기초문법에서 승화의 순간을 가리키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벤야민은 그 혁명의 때를“지금 시간(Jetztzeit)으로 충만된 시간”이라 불렀다.

    우리는 자기가 머물고 있는‘지금-여기’서의 사소한 실천과 투쟁에 인색해지기 쉽다.‘아직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고, 아직 상황이 이르고, 좀 더 냉철해져야 하고, 소영웅주의에 휩쓸리지 말고 조금만 진정하라’며 스스로를 다독거린다.‘실행에 옮기는 것은 나중에 좀 더 지켜본 후에 하면 된다’는 말이 ‘로도스에서는 잘 뛰었는데’라는 허세와 동일하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일이다. 자, 이제 그대는 무엇을 냉소할 것인가? “여기가 로도스다. 뛰어라!”


ⓒ 웹진 <제3시대>



  1.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수련 옮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인간사랑,2002), 6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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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배종걸
    2017.02.18 10:0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혼란스러운 요즘을 보내는 데 안성맞춤의 내용을 써줘서 감사드립니다.



미국의 묵시록 11 : 젝 케루악과 길 위의 묵시록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내가 긍정하고 싶은 미국은 언제나 헨리 소로우의 글에서 드러나는 상상과 이상의 미국이었다. 그의 사상을 묵시록이란 관점에서 평가하자면 청교도 묵시록에 저항한 반묵시록이라 할 수도 있겠다. 콩코드라는 작은 마을에까지 드리워지는 산업문명의 그늘이 싫어 마을 어귀의 호숫가 숲속에 오두막집을 짓고 홀로 살았다. 그 숲은 악한 영들이 가득한 저주의 땅도 아니었고 개발하고 길들여 생산을 유발시킬 땅도 아니었다. 그에게 숲은 군더더기 없는 삶 그 자체를 살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런 삶은 문명에 대한 저항이었고, 저주받은 삶이 아니라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사는 길이었다. 소로우는 그런 삶을 위해 한 시간만 걸으면 됐지만, 케루악은 그런 삶이 길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케루악은 20세기 중반의 소로우였다. 잭 케루악은 소로우가 살았던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로웰 출신이었다. 소로우의 추억이 담긴 매리맥 강은 로웰을 가로질러 흐른다. 소로우의 문학적 그늘 속에서 성장한 케루악은 20세기 변화된 미국의 소루우가 되고자 했다. 시대가 만들어준 조건이나 제도에 휩쓸리지 않고 자유를 추구하는 정신이 미국적인 삶의 자세라는 인식을 이 두 사람에게서 찾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거의 같은 시기에 소로우와 <월든>과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읽은 나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사상에서 낭만과 저항은 자유로운 자아라는 입장에서 동일한 의미를 가졌다. 자유롭기 위해 그들은 떠나야 했다. 소로우는 자신을 안주할 곳 없는 떠돌이(Sojourner)라 생각했고, 케루악은 그와 비슷한 보헤미안적인 주변인의 삶을 찾아 길을 나섰다. 


    케루악의 책은 출간된 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부수가 팔리는 베스트셀러다. 그 책은 미국의 의미, 자유의 의미, 젊음의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정직한 안내서 역할을 해왔다. 케루악이 다녔던 길을 체험하기 위해 순례의 길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나에게 그런 여유는 없었지만 내 주변에 있는 케루악의 흔적을 모른 척 한 건 아니었다. 책 속의 주인공이 살던 뉴저지의 패터슨이란 곳은 내가 살던 곳에서 멀지 않았기에 그곳을 지나칠 때 케루악의 책을 떠올렸던 기억이 있고, 책에 나오는 시카고의 거리(South Halsted, North Clark)들을 지나다니며 심지어 졸리엣이라는 도시의 감옥 앞을 차로 지나면서 케루악의 여행을 생각한 적이 있다.


    젊은 세대의 저항과 자유를 추구한다는 케루악의 <길 위에서>란 책에서 묵시록을 읽는 것은 정당한 것일까? 핵폭탄이 만들어낸 묵시록의 시대에 대한 인식이 40년대 후반부터 기존 문학과 예술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세계관을 추구하는 운동으로 발전했고, 미국문학에서 그 변화를 이끌어낸 사람이 케루악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케루악이 길을 나선 1947년에서 그의 책이 세상에 나온 1957년 사이 핵무기의 묵시록은 미국 사회에 허무와 저항의 세대를 탄생시켰다. 여기서 나는 <길 위에서>를 묵시록 시대의 저항문학으로 읽고자 한다.


    <지옥의 묵시록>이 개봉된 1979년,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은 <길 위에서>의 영화판권을 샀다. 두 작품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만, 좀 더 큰 상상력으로 연결되는 부분을 찾을 수는 없을까? 혹시 코폴라는 <길 위에서>를 읽고 묵시록 이후의 삶과 조건을 찾은 건 아닐까? 핵폭탄의 시대에 더 이상 안주할 곳이 없는 삶의 조건, 몸과 마음을 둘 곳 없이 떠돌아야만 하는 삶을 묵시록의 단면이고, 모든 로드 부비라는 것이 결국 그런 존재의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보진 않았을까? 50년대 미국영화에서 그런 상태를 저항이란 코드로 완성시킨 인물들이 말론 브랜도와 제임스 딘이었다. 하지만 브랜도나 딘의 상징적인 인물도 없고, 묵시록의 절박함도 담지 못하고, 비트의 리듬도 살리지 못한 채 2010년이 되어서야 개봉된 영화 <길 위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문학에서 ‘스크롤’(The Scroll)은 케루악의 <길 위에서>뿐이다. 케루악은 타자기에 용지를 갈아 끼울 필요가 없도록 텔레타이프 종이를 자르고 붙여 긴 두루마리 스크롤을 만들어 썼다. 글 쓰는 행위는 끊임없는 즉흥성이 담보되어야 했기 때문에 생각을 멈추고 종이를 갈아끼우고 여백을 맞추는 것은 재즈의 즉흥연주처럼 흘러야 하는 글의 리듬을 깨는 행동이었다. 마치 자신에게 들려진 음성을 기록하듯이, 색소폰을 부는 손가락의 움직임처럼 언더우드 타자기를 처내려갔다. 케루악은 글을 쓴 게 아니라 타자를 친 것이라는 Truman Capote의 말은, 색소폰고수들이 그들의 음악을 단순히 손가락을 움직여 만들어냈다는 표현을 참고한다면 틀린 것은 아니다. ‘비트’의 의미에 관해선 언제나 몇 가지 해석이 있었지만 내 생각엔 모두 맞는 말이다. 몸이 피곤해 녹초가 된 상태, 강렬한 리듬으로 표현된 시간의 순간, 그리고 케루악 자신이 선호했던 하늘의 복이란 뜻까지 모두 비트세대의 문학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의미들이다. 하지만 케루악을 묵시록이란 관점에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건 시간의 리듬으로서의 비트다.


    그가 원고로 남긴 것은 페이지의 구분이나 단락 사이의 여백도 없는 동그랗게 말린 35미터 길이의 스크롤이다. 그 책이 완성되기 까지 여러 해가 걸렸음에도, 케루악은 자신이 수정도 없이 3주 만에 완성한 것이란 인상을 남겼다. 한국에선 잔혹한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1년 4월이었다. 그 결과물은 고대 경전과 예언을 연상케 하는 두루마리 문서였다. 그 문서에는 20세기 핵폭탄 묵시록의 시대를 살던 미국의 젊은이들을 위해 계시된 삶의 지침서가 있었다.


    <케루악은 왜 길을 떠났을까? 책의 주인공은 길을 떠나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모든 게 죽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말했다. 모든 게 죽어버린 것 같은 세상을 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케루악의 책엔 ‘미쳤다(Mad)’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선호하는 사람을 “미친 듯이 살고 미친 듯이 말하고, 미친 듯이 구원받으려” 하는 사람이라 말했다. 여기서 케루악은 낭만적인 여행가로 보이지 않는다. 미국 중산층의 이념에 저항해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 청년.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은 자아를 찾아 길을 떠난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그보다 더 급박하고 절박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 절박함을 실존적이기 보다는 종말론적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책에서 자신의 역인 주인공의 이름에서부터 드러난다. 샐 파라다이스(Salvatore Paradise)는 ‘구원자’와 ‘천국’이란 뜻으로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포착할 수 있다. 비트세대의 주역들의 삶은 전위적이고 보헤미안적이었지만 케루악의 기본적인 성향은 술과 마약으로도 감출 수 없었던 보수적인 가톨릭 신앙이었다. 떠오르는 스타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 때도, 그는 뉴욕에서의 화려한 삶을 동경하지 않았다. 비트세대의 다른 동료들처럼 반전, 히피운동의 정신적 리더가 되지도 않았고 좌파정치에도 관심이 없었다. 케루악에게 미국의 세상은 몰락하고 있었고, 그가 길을 나서야 했던 이유는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케루악에게 몰락의 언어를 제공해준 건 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18년 <서구의 몰락>이란 책으로 서양의 역사해석에 큰 도전을 준 오스발드 스팽글러였다. 한 문명이 기술적으로 완성될 때 창의성과 생명력을 잃고 정신적 위기를 맞게 되고 몰락으로 끝난다는 스팽글러의 역사관은 케루악과 그의 동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역사관은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끝나는 종말의 묵시록이 아니었다. 문명은 몰락과 문화의 탄생을 반복하는 게 역사였다. 스팽글러의 서구문명 몰락의 진단은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살상 가운데 등장한 서구문화의 의기의식을 대변한 것이었다. 객관적인 근거보다는 니체와 같은 철학자들로부터 받은 감동을 역사로 풀어냈고 서구의 몰락을 논증해내기 위해 다른 역사들은 조역으로 동원한 저술이었지만, 당시 많은 이들이 공유했던 위기의식을 역사의 철학과 생명의 리듬으로 설명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케루악은 ‘비트’라는 단어도 그 책에서 착안했고, 몰락하는 미국문명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의지도 스팽글러에게서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케루악이 길을 나서야 했던 핵무기의 냉전시대는 그에 대한 공포심으로 유지되던 시기였다. 핵전쟁의 상황에 대한 미국정부의 지침은 가만히 숨는 것이었다.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가는 것도 금지사항이었다. 냉전체제는 핵무기의 공포 앞에서 숨는 연습을 강요하면서 유지됐다. 20세기를 ‘미국의 세기’(The American Century)라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그 세기의 본질적인 단면을 파악할 수 있다. 1950년대는 미국역사에서 가장 종교적인 시기였고, 그 어느 때보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았다. ‘복음주의’라는 미국의 보수 기독교가 탄생한 시기였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등장했고, 19세기말 천년주의 묵시록이 위세를 떨친 지 반 세기만에 소련과 냉전이라는 적그리스도와 최후의 전쟁의 징후들이 발견했다. 냉전의 공포와 종교의 위안은 묵시록을 향한 비전으로 이어였다. 1950년대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전시경제 효과로 경제적으로는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다. 핵폭탄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포의 세상을 사는 대가였는지도 모른다. 소비를 미덕으로 삼는 소비문화와 인간을 소비자로 이해하는 소비자주의(Consumerism)도 이 시기에 미국의 이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미국의 청교도들에게 마지막 시대를 사는 덕목은 절제와 절약이었지만, 냉전이란 세속의 묵시록은 공포를 사는 대가로 과시와 과욕의 소비를 보상으로 제공했다. 케루악과 비트세대는 핵폭탄이 선언한 묵시록의 질서를 거부하고 길을 나선 것이다.


    케루악에게 ‘길’은 공간보다 시간적인 개념이었고, 특히 묵시록의 시간에 대한 저항이자 도피의 도구였다. 그가 길을 통해 찾은 시간은 주어지고 정해진 시간의 리듬과 질서를 깨는 즉흥적인 시간이었다. 서구문화의 시간은 종말이라는 끝이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었다. 그 종말의 시간은 묵시록이란 드라마로 전해져 왔고, 케루악의 시대에 그 드라마는 핵폭탄이라는 한 순간에 역사와 시간을 끝낼 수 있는 심판의 무기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종말의 시계는 끝을 향해 움직이기 있었지만, 케루악은 그 시간의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명역사의 몰락 이후에 또 다른 생명의 리듬을 소유한 정신적 가치가 등장한다고 믿었다. 그가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의 길을 나선 이유는 다른 시간을 살기 위해서였다. 몰락의 시간이 아니라 즉흥적 순간의 시간, 비트의 시간을 살기 위함이었다. 그 시간은 그에게 ‘나의 시간’이었고 언제나 지금의 시간이었다. 역사의 시간에 갇힌 삶이 아니라 원시적 생명의 리듬을 잃지 않는 삶이었다. 케루악에게 길의 끝이었던 멕시코에 도착했을 때, 샐의 친구 딘은 원주민 소녀에게 손목시계를 건네주고 수정구슬 하나를 받아 챙기는 장면이 나온다. 계산된 시간을 포기하고 자연의 시간을 찾는 모습이었다. 케루악에게 역사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은 시간은 에덴동산의 시간이었다. 청교도들이 그랬듯이 에덴을 회복하기 위해선 광야의 길로 나서야 했다.


    책에서 길의 끝은 멕시코에 있었다. 멕시코에서 남미어로 ‘내일’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샐은 천국을 연상했다. 천국은 내일에 있었다. 천국으로의 구원자 샐 파라다이스는 길 위에서 천국을 찾았다. 마침내 여행길의 끝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샐은 그곳을 ‘성경적’인 곳이라 했다. 성경적인 곳의 원형은 에덴이었고 파라다이스였다. 왜 멕시코시티를 그렇게 이해했을까? 그곳에서 문명의 역사, ‘서구역사의 사막’에 대한 대안을 찾았기 때문이다. 케루악은 멕시코에서 몰락의 역사를 구할 원시의 역사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요즘 같았으면 오리엔탈리즘이라 욕을 먹었겠지만 그의 의도는 미국의 묵시록에 대해 저항이었다. 서구역사의 끝인 묵시록의 시간이 아닌 영원한 시간, 그 내일의 천국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길을 떠났고, 멕시코시티에 남아 있는 고대 남미의 흔적에서 길의 끝, 즉 묵시록의 종말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끝이 없는’ 곳을 찾은 것이다. 미국의 묵시록의 시간과 멕시코의 영원의 시간의 대조시키고, 멕시코의 문화에서 영원한 내일의 시간의 흔적을 찾는다는 것은 서양인의 환상일지 모르지만 케루악에겐 묵시록의 대안으로 필요한 환상이었다.


    케루악의 글쓰기는 묵시록의 시간을 역행하는 행위였다. 그가 추구했던 즉흥적인 리듬의 산문은 묵상이나 성찰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반묵시록의 퍼포먼스였다. 재즈의 즉흥연주(Improvisation)는 음악의 시간을 멈추고 기다리게 하는 행위였다. 종말로 흐르는 시간에서 생명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선 그 시간을 멈춰야 했다. 시간을 멈추게 하는 길은 시간의 순간을 즉흥적으로 사는 것이었다. 시간의 즉흥성을 자연의 리듬에서 찾았던 케루악은 멕시코에서 그 리듬의 비트를 찾았다. 그리고 케루악이 불교에 심취하게 된 이유 역시도 묵시록의 시간을 깨는 또 다른 가능성을 불교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미래와 종말을 지향하는 시간에 대한 환상을 깰 수 있는 열반과 깨달음의 순환적 시간을 불교에서 발견했다. 이런 시간의 이해를 실천하는 삶은 주류의 규범에 저항하는 삶이었다. 케루악은 멕시코의 원주민들에게서 ‘펠라인’(Fellaheen)의 삶을 보았다 (펠라인이란 단어는 원래 스팽글러의 용어인데, 케루악이 문명에서 소외된 주변인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했다). 몰락하는 문명의 역사적인 시간과는 관계없는 무목적이고 토속적인 삶이 그것이었다. 역사의 중압감이나 미래의 약속에 구속됨이 없는 생명의 리듬과 이 순간의 비트에 충실한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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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열번째[각주:1]


'아버지학교'의 '귀족 아빠' 되기

자기계발의 시대 아버지의 귀환 프로젝트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지난 글에서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의 시대에 개신교 대형교회의 대안교육 운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성공의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는 기독교적 공부법을 찾아 여러 묘수들이 등장했다. 다니엘학습법은 그런 묘수의 하나로 매우 성공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런 교사 주도적인 공부법이 아닌 대안적 방식은 없는가, 그런 노골적인 성공지상주의 아닌 품위 있는 방식은 없는가, ......, 이런 고민들을 담아 등장한 것이 일부 대형교회들에서 대두한 ‘귀족교육형 대안학교운동’이다.

    이곳에선 학습자의 자기 주도적 공부가 강조되고, 대학입학에 모든 것이 집중된 입시형 공부만이 아닌 인간화 교육, 아니 성도화(聖徒化) 교육이 수행된다. 그 정신은 몽매한 대중을 복음화하고, 국가를 하느님의 뜻에 걸맞는 나라로 만들기 위한 엘리트로서의 ‘성도’를 키우는 데 있다.

   이번 주제는 또 하나의 기독교적 자기계발 프로젝트로서 가족회복운동이다. 특히 아버지 변신 프로그램으로서 ‘아버지학교’를 이야기하려 한다.


아버지의 부재


   허문영은 1990년대 한국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을 ‘소년성’이라 불렀다. 위기의 사회를 구원하는 영웅적 존재에 열광하는 대신, 부조리한 사회에 홀로 던져진 소년의 이야기에 관객들이 깊게 공감을 표했다는 것이다. 그 소년들을 지켜줄 아버지는 없었다.

   이런 풍경은 2천 년대에 와도 다르지 않다. 아니, 민주주의 시대 그리고 소비자본주의 시대라는 세기적 변화의 길목에서 기성세대의 가치와 불화하면서 절망했던 1990년대의 퇴행적 소년성보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와 더불어 전개된 2천 년대는 훨씬 더 절박했다. 한 번 겪기에도 벅찬 무시무시한 신자유주의적 재앙이 두 번이나 거세게 휩쓸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만신창이가 되어 사회 속에 내던져진 자신을 지켜줄 아버지를 절실히 필요로 했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하소연하는 소리가 분출했다. 위기에 처한 아들을 위해 목숨 걸고 악당과 용감하게 맞서 싸워 이기는 상상속의 아버지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윤동욱 기자는 2006년의 기획에서 현실의 아버지에 관한 다섯 가지 기억을 이렇게 요약했다. “말없는 아버지, 힘없는 아버지, 때리는 아버지, 이혼한 아버지, 죽은 아버지.” 그러나 여기에는 아직 최악의 이야기는 숨겨져 있다. “어쩌면 그 소년들이 맞서고 있는 사회, 그 나쁜 체제 자체가 아버지였는지도 모른다.”는 것 말이다.

    ‘소년’이라고 했다. 소녀가 아니다. 여기서 소년들은 ‘퇴행적 남자들’을 말한다. ‘어른이 되지 못한 남자’들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질서와 불화하면서도 아버지의 권력을 동경한다. 저항하기보다는 숨어버리고, 조절되지 못한 힘을, 폭력을 더 약한 이에게 남용한다. 남자들은 그런 소년으로 남겨졌고,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을 동경한다. 한국사회의 이런 왜곡된 섹슈얼리티 양상을 해석하기 위해 여성신학자 김나미는 과잉남성성(hypermasculinity)이라는 사회학적 개념을 차용했다. 미성숙한 소년성이 신자유주의와 만나면서 퇴행적 소년들의 사회는 마초적 폭력에 휩쓸렸다. 


'아버지학교'


   몸은 어른인데 퇴행적 소년성의 증상을 보이는 ‘올드보이’들이 남편이 되었고 아버지가 되었다. 가족의 위기 혹은 해체에 직면한 ‘올드보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이 ‘아버지학교’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바로 선다.” 한국기독교 아버지학교의 효시이고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아버지 프로젝트인 ‘두란노아버지학교’의 슬로건이다. 가족의 위기에 대한 대안은 ‘아버지의 변신’에 있다는 얘기다. 그 변신을 위한 프로젝트가 ‘아버지학교’다. 

   두란노아버지학교는 1995년에 온누리교회의 출판기업인 두란노서원의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었고, 2001년에는 독립조직으로 확대 개편한 ‘두란노 아버지학교 운동본부’로 발족했으며, 2007년에는 사단법인이 됨으로써, 아버지 프로그램은 명실공히 아버지 프로젝트로 발돋음했다. 현재 국내 지부가 80개이고, 해외 61개국으로 확산되었으며, 지금까지 아버지학교 수료자가 30여만 명이나 된다.  

    게다가 온누리교회 교인으로 아버지학교를 수료한 이들이 종교를 불문하고 도처에서 두란노아버지학교 프로그램을 차용한 ‘아버지학교’를 개설하고 있고, 여러 공기업과 사기업에서도 두란노아버지학교를 모범으로 하는 아버지학교들이 만들어졌다. 또 수많은 교회들에서도 아버지학교 붐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더 나아가, 아버지학교 프로젝트만이 아니라, 선교 프로젝트로서 부각되기도 했다. 올해 7월에 열린 세계선교전략회에서 아버지학교는 한국형 선교모델의 하나로 지목되었다. 이제 아버지학교는 아버지 변신 프로그램을 뜻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아버지학교 프로젝트


    그렇다면 두란노아버지학교가 꿈꾸는 아버지 변신 프로젝트는 무엇일까? 위의 슬로건에서 보았듯이 가족의 복원이다. 가족이 위기에 처한 것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것이니 아버지를 소환하여 가족을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그냥 전통적 아버지가 귀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실은 아버지가 된 이들 자신이 전통적 아버지로 인해 삶이 굴절되었다. 위에서 말한 용어로 하면 ‘굴절된 존재’는 어른이 되지 못한, 소년성이라는 악령에 들린 퇴행적 남자다. 

    하여 두란노아버지학교의 첫 번째 미션은 아버지가 되어야 했던 소년들이 자신의 아버지와 화해하게 하는 것이다. 권력을 홀로 장악하여 가족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던 아버지, 그이로 인해 꺾였던 그때의 열정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뒤틀린 흔적으로 몸에 잔류하여 성숙한 어른으로의 성장을 방해한다. 미성숙한 소년성의 어른, 이 ‘올드보이’들은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권력이 없으면서도 종종 아버지의 권력을 모방한다. 조절되지 않은 미숙한 권력은 아내와 자녀로 하여금 마음을 닫게 하고 관계를 닫도록 만든다. 가족의 위기는 이렇게 왔다고 아버지학교는 이해한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바로 선다.”는 슬로건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다. 하여 아버지와의 기억을 소환하여 그이를 폭군이 아닌 아버지로 회상함으로써 화해를 도모하는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와의 화해로 시작되는 아버지의 변신은 텔레비젼의 가족회복 프로그램처럼 신파적이다. 수많은 마음의 상처들로 너덜너덜해진 관계를, 그것의 문제를 깨닫고 함께 데이트하고 눈물로 화해하게 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아버지학교는 초점이 아버지에 있다. 아버지가 변신하는 것, 그 선행적 행위가 가족회복의 실마리라는 것이다. 왜 아버지가 초점인가?

    단순히 ‘아버지’학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른바 기독교적 가족개념이 그 속에 내재되어 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같은 바울 위서들 속에 나오는 이른바 ‘가훈교리’들이 그 근거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인 것처럼 남편/아비가 아내와 자식의 머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골로새서〉 3,21 “자녀들을 들볶지 마시오”나 〈에베소서〉의 병행구절인 6,4 “자녀를 성나게 하지 말고” 같은 구절들은 가정의 머리로서 자신의 뜻에 따라 힘과 완력으로 자녀를 대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자녀를 돌봐주고 차분하게 이끄는 대화적 부성을 강조한다. 아마도 2세기 초, 바울의 위서들(친서가 아니라 바울의 이름을 차용한 저작들)은 폭력적인 아비의 훈육 풍조를 비판하며 자녀에게 이성적으로 이끄는 아버지상을 강조한다. 이것을 저명한 제2성서(신약성서) 학자이자 교육학자인 게르트 타이쎈(Gerd Theißen)은 ‘사랑의 가부장주의’(liebe-Patriarchalismus)라고 불렀다. 권력의 가부장주의가 아니라 사랑의 가부장주의에 기반을 둔 아버지의 변신 프로젝트가 아버지학교라는 것이다.


'귀족 아빠' 되기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많은 아버지들은 깊은 공감을 표했고 변신을 모색했다. 무수한 간증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무수한 성공 스토리는, 어쩌면 위기의 가족이 아닌, 이미 변신한 아버지, 이미 잘 형성된 가족관계를 신학적이고 사회학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간증들은 자신과 가족의 신앙적 올바름에 대한 무의식적인 홍보행위에 다름 아닌지도 모른다. 이 프로그램의 수료자 중 하나인 고문전문가 이근안의 간증이라고 소개된 동영상은 목사가 된 그가 자신의 과거를 뼈아프게 청산하고 변신하고자 한다기보다는 도구화된 변신의 알리바이로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이런 극단적 사례만으로 평가절하 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그럼에도 5주 5회의 교육만으로, 그것도 감정을 과잉동원하는 신파적 프로그램만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새 삶의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기는 뭔가 과장된 듯하다.

    아무튼 두란노아버지학교는 참가자들에게 이 기획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는 자긍심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적지 않은 이들이 자신의 일터(관공서, 교도소, 회사 등)에서 아버지학교를 개설했다. 물론 그들은 일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책임자들이다. 그들은 사회적 엘리트로서, 자신의 가족의 범주를 넘어서, 아버지학교를 통한 ‘사회적 계도’의 소명을 수행하고자 했다.

    물론 최고위층의 엘리트만 아버지학교의 수강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5주 동안 토요일 3시부터 9시까지 이 프로그램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또 아내와 데이트하기, 자녀와 데이트하기 등의 숙제를 할 시간을 필요로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벤트 비용이 추가된다. 또 생계노동에서 한발 물러서서 가족을 위해 살겠다고 가족에게 공표하도록 요구받는데, 기독교적 가훈교리에 기초한 가장은 여전히 가족의 생계를 돌봐주는 존재다. 그런 이가 가족에게 공표하는 가족을 위한 삶의 리스트에는 안락한 소비생활을 위한 지출 가능이라는 숨은 항목이 담겨 있다. 그러니, 수강료(10만 원)는 비교적 저렴함에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한 실비용은 그리 저렴하지 않다. 모두가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도 대체로 중상위층의 사회적 위상이 요구된다.

    그런 이들이 가족을 위해서 헌신하는 아버지의 자격을 얻는다. 아버지학교는 그런 정당성을 그이들에게 부여한다. 가족은 수료식을 통해서 아버지에게 부여된 신앙적 인준을 공유하게 된다. 즉 아버지학교는 그 스스로에게, 그리고 가족과 사회에게 그를 ‘웰빙 귀족 아빠’로 공인하는 사회적 장치다. 그는 웰빙 귀족으로서, 그런 아빠의 가치를 사회에 널리 전파하는 자로서 소명을 갖게 되는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다섯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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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7.03.05 23:2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전 아버지 학교는 안 들었는데, 해당 교회에 몇몇 프로그램을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알 것같습니다. 제가 귀족은 아니지만 귀족적으로 살고 싶네요... 우리나라는 나보다 나은 사람 인정하는데 인색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한 아이가 났다



김윤동
(본 연구소 행정연구원)

 


어떤 '한 아이'의 탄생



    베들레헴 작은 말 먹이통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말 먹이통이란 가혹함 그 자체다. 포근하기보다는 까슬까슬한 촉감, 엄마의 젖내보다 악취가 더 먼저 그를 맞았을 것이다. 우리가 그리는 아이의 탄생 장면은 ‘비록’ 말 먹이통일지라도 사랑해주는 부모와 경배하는 목동들, 동방의 박사들에 둘러싸인 아늑하고 훈훈한 풍경일 것 같지만 이제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 아니 ‘염원’하는만큼 그 풍경이 아름다웠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생명에 대한 축하와 격려의 자리라기보다는 엄혹한 세월의 비바람 속에 ‘생존’의 가능성마저 의심받는 회한과 우려의 자리였을 것이다.





한 아이 : 그들 중 하나(One of them)


   그렇게 그 한 아이는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피난민 신세다.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상황이 예상과는 달리 진행되는 것에 놀랐을 것이다.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 일러준 예언의 기쁨도 잠시, 결국 헤롯의 칼날을 피해 아무도 알지 못하는 타지에서 시간을 보냈다. 한 명의 ‘메시아 용의자’ 찾기에 혈안이 된 헤롯은 박사들과의 대화를 기준으로 두 살 아래의 핏덩이들을 모두 죽여버렸고, 그 소식이 들려왔을 때 내 품의 아이가 진정한 하나님의 메시아인지 ‘죽음의 화신(化身)’인지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고로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사실, 그것은 이제 입 밖에 낼 수 없는 비밀이 되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 그는 한 명의 평범하고도 이름 없는 자로 살아가야 했다. 메시아의 목숨을 찾아 헤매던 ‘승냥이’ 헤롯이 죽었다는 소식에 이스라엘로 돌아오긴 했지만 여전히 고향의 상황은 떠나오기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서슬퍼런 권력의 칼날에는 ‘헤롯’에서 그의 아들 ‘아켈라오’로 이름만 바뀌어 새겨져 있을 뿐 살아있는 권력으로 어깨를 짓눌렀다. 그렇게 아이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평범하게 자라나갔다. 

   한 명의 평범한 사람으로 자라간 그 ‘한 아이’는 배고프면 먹었고, 잠이 오면 잤다. 여느 나사렛 사람들처럼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중노동에 시달렸다.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밤이 되면 쉼 없는 고된 노동에서 오는 피곤에 짓눌려 잠자리에 파묻혔다. 메시아가 태어났지만 하늘로부터 내려왔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고,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자기의 탄생을 두고 메시아의 탄생이라는 예언은 한바탕 봄날의 꿈을 꾼 듯 씁쓸한 전설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그는 평범한 민중의 한 사람으로 살아갔다.

    마치 우리 시대 루시드폴의 ‘평범한 사람’이란 노래가사말이 그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다.


오르고 또 올라가면 모두들 얘기하는 것처럼 

정말 행복한 세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갈 곳이 없었네 그래서 오르고 또 올랐네 

어둠을 죽이던 불빛 자꾸만 나를 오르게 했네 

알다시피 나는 참 평범한 사람 조금만 더 살고 싶어 올라갔던 길 

이제 나의 이름은 사라지지만 

난 어차피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울고 있는 내 친구여 아직까지도 슬퍼하진 말아주게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 

나는 너무나 평범한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평범한 사람


    ‘한 아이’가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던 그 어느날이었다. 사람들이 수군수군거리며 어떤 ‘한 사람’ 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저 변방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이라는 이가 죄 사함의 세례를 베풀고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혈혈단신 맨 몸으로 성전과 권력에 대한 저항을 이어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전쟁과 같은 혼란과 번잡한 일들을 일으켜 일상을 무력과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노동으로부터 사람을 소외시켜 자기 몫을 취하지 못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죄와 악의 굴레를 영원히 맴돌도록 만드는 이들에 대해 분연히 일어난 ‘한 사람’이라 했다. 그 아이가 본 광경은 생경하면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 ‘한 사람’은 당장이라도 잡혀 죽임을 당했을 이야기를 하고 다녔지만, 그는 의연하고 당당하게 진리를 외쳤다. 한 사람이 의연하게 빛을 밝히니 사람들이 모였다. 마치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켰을 때, 모든 이들이 그 촛불이 있는 곳을 자연스레 쳐다보게 되듯이… 하나둘 그 ‘한 사람’ 곁에 여럿이 모여서 물결을 이루었다. 결국 헤롯 안티파스를 중심으로 한 권력자들도 의심의 눈초리로 세례자 요한을 노려 보았지만, 소요의 위험 때문에 함부로 그를 건드리지는 못했다. 한 사람의 용기로 비춘 불빛은 이제 들불이 되어 타올라갔다.

    그러나 그 ‘한 사람’ 세례자 요한도 별 수 없는 ‘한 사람’이던 것일까? 헤롯 안티파스의 치부를 집요하게 건드린 결과로, 순식간에 목이 베여 쟁반에 담긴 신세가 되었다. 구름 떼와 같이 모였던 무리들은 흩어지고 도망쳤다. ‘한 아이’도 그 무리들처럼 한편으로는 다시 찾아온 패배감과 무력감을 안고 또다시 일상으로 숨어들어갔다. 그 ‘한 아이’도 이름 없이 무력한 ‘그들 중 하나’인 순간이었다.


한 아이 : 바로 그 한 사람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마가복음 1:14~15> 


    ‘한 아이’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성서는 강력하게 증언한다. 분연히 ‘한 사람’이 잡히고 난 뒤에 ‘한 아이’가 다시 일어났다고 말이다. 세례자 요한과 똑같은 메시지를 들고 말이다. ‘요한이 잡히고 난 뒤’라는 시간의 진술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무력하게 도망친 무리 중 하나, ‘한 아이’가 예수로, 그리고 더 나아가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로 세상에 ‘나타나는’ 시점, 그리고 그가 외친 ‘말’은 반드시 몸조심해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위험한 말을 가지고 그가 등장했음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어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 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554쪽


    만약 세례자 요한 이후, 예수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무력을 떠안고 별 일 없이 살았다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못 들었을 뻔하였다. 하지만, “강력하고 집요하게 악의 정신이 지배할 때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인류 속에 고고하게 흐르고 있는 진리의 편에 서서 꺾이지 않고 균형을 잡고 서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렇게 살아갔다. 하지만, 그도 별 수 없는 ‘한 사람’이었을까. 몇 년동안 사람을 모으고 소동을 피우며 조금은 시끌벅적했지만 세례자 요한처럼, 또 한 명의 권력의 손아귀에 넘겨져 놀아나고 조롱 당하고 모욕 당하며 죽어갔다. 그로 인해 아주 잠깐 새 이스라엘의 희망을 가졌던 이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그의 손이 먹인 양식으로 배를 불렸던 무리들이 ‘야훼의 이름으로’ 그를 직접 처단하는 칼을 잡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결과는 그렇게까지 참혹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여느 때처럼 ‘한 사람’을 쳐다보던 무리들은 또 뿔뿔이 흩어졌지만, 단 한 사람으로 살아간 사람들이 이후에도 등장하고 또 등장했다. 최후의-최초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마음 먹은 이들은 세상을 변화시켜갔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은 의외의 장소에서 사건은 늘 일어났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대 '바로 그 한 사람'으로 살길      

 

    우리는 요즘 아무리 여러 사람이 공들여 탑을 쌓아도 한 사람이 세상을 완전히 망칠 수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사람’의 의미가, 결코 ‘많은 사람’의 반의어가 아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 사람의 중요성은 성경 내에서 아주 뿌리깊게 흐르고 있는 정신이다. 물론 여러 사람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끊어지지 않는 세겹줄(전 4:12)의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 또한 원자로서의 ‘한 사람’, 근원으로서의 ‘한 사람’을 뺀다면 세겹줄은 아예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다. 예수님의 주변에도 수천명이 모여 있었지만, 단 열두 사람만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해석해주셨다. 작은 일에 충성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아주 작은 사람(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것이 주님을 대접한 것으로 나오는 등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한 사람’의 엄중한 무게를 가르쳐 주고 있다. 오히려 ‘한 사람’이란 그 자체로서 스스로 온전히 하나이신 분인 ‘하나님’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으로 ‘가능성으로서의 온전함’, 또는 ‘온전한 가능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역사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갈 소명을 부여 받았다. 그러니 그대, 결코 혼자라고 마음을 놓거나 쓰러지지 마시길 빈다. 바로 그 ‘한 사람’이 되어 꿋꿋이 촛불을 켠다면 세상의 어둠은 단 한 순간에 스러져 물러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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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화된 불평등과 대상화된 여성




조은채*

 


       남자 지인 중에 페미니즘 강연을 종종 들으러 다니고, 그 주제에 대해 나름 유의미한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대개 친절한 편이었고, 딱히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이전에 저질렀던 성폭력이 sns를 통해 폭로되고 고발되었을 때, 나는 놀라기는 했지만 경악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그런 행동을 직접 한 적은 없었지만, 그의 어떤 태도나 말에서 미묘하게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느끼던 의혹을 사소한 것으로, 혹은 괜한 것으로 치부해서 넘겨버렸다. 그가 나에게도, 그리고 대외적으로도 나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오히려 좋은 사람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는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며 투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노동자의 권익, 성 소수자의 인권, 그리고 옳다고 여겨지는 거의 모든 것을 위해 싸웠으면서도, 그에게 여성은 사실 자신과 동등한 주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일이라는 소리에 페미니즘에 관심은 가졌지만, 자기 주변의 여성들이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라는 당연한 진리는 인식하지 못했던, 흔한 여성혐오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가해 사실이 밝혀졌을 때 내가 엄청나게는 충격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이와 비슷한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기 때문이었다. 주위에서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통하던 남자 지인은, 같은 무리 여학생들을 ‘부위 별로’ 등급을 매겼다. 여성 인권에 관심이 있다고 누누이 밝히던 동료는 무리 내의 페미니스트를 뒤에서 성적으로 희화화하고 조롱했다. 앞서 언급한 ‘그’에게서 몇 가지 조건을 더하거나 빼고 이름만 바꾸면 똑같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말이 통하는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음에도, 가끔 그 생각이 내 착각이었나 싶은 질문을 던지는 남자 지인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 질문 안에 담겨 있는 여성혐오를 조금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태도 때문에 더욱 답답해지곤 했다. 다른 문제에서는 대단히 이성적이고 중립적이었던 친구들이 남성 장애인의 성욕 해결을 이유로 들며 성매매 합법화를 역설했다. 하지만 그들의 논지에서 여성 장애인이나 그들의 성욕은 등장조차 하지 않았고, 남성의 성욕은 누군가 반드시 해결해주어야만 하는 불가피하지만 절대적인 것으로 치환되었다. 왜 남성의 성욕에만 애정 없이도 그것을 해소해줄 대상이 필요한가? 왜 그 해소 방법을 여성과의 성관계로 당연하다는 듯이 한정하는가? 그들은 남성 장애인이라는 특수한 경우를 예시로 들며 성매매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 주장은 얼마든지 그 적용 범위가 확대될 수 있었다. 기러기 아빠라서, 여자친구는 혼후관계주의자라서. 세상에는 어떤 이유로든 성관계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을 테고, 그들에게는 비슷한 논리로 성매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그 논리대로라면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었다. 결국, 그 주장은 여성을 철저하게 타자화시켜, 남성의 성욕을 위해서는 보급되거나 구입될 수도 있는 존재로 만들고 있었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성적 대상화된 객체로 인식한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여성은 사회에서 사람임에 앞서 여자로 규정된다. 여성이 등장하는 기사에는 ‘여(女)’ 자가 빠지지를 않는다. 여대생, 여교사, 여배우, 여교수. 며칠 전에 본 기사의 제목은 ‘IS 대원 100명을 사살해서 현상금 11억이 걸린 23살 여대생’이었다. ISIS 무장세력때문에 고통받는 시리아 난민 소식을 접한 뒤, 대학을 그만두고 시리아의 쿠르드족 군대에 자원입대한 여성의 이야기였다. 이미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버린 지 오래이며 최전선에서 저격수로 활동하고 있음에도, 기사 속의 주인공은 군인이기 이전에, ‘어린 여대생’으로 먼저 이미지화되어 있었다. 반면, 남성은 사회 안에서 성별로 규정되기보다는 보편적이고 정규적인 ‘인간’으로 등장한다. 우리는 ‘청년’ 혹은 ‘청소년’, ‘교수’, ‘의사’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남성 주체를 먼저 떠올린다. 신문 기사에서도 굳이 ‘남의사’, ‘남교수’, ‘남기사’라는 단어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남’은 ‘여’와는 달리 불필요한 수식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청소년’이라는 말에 남성 청소년만 연상하기 때문에 ‘청소녀’라는 괴상한 명칭이 실제로 사용되기까지 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인간의 디폴트 값은 남성인 것이다. 결국 어느 한쪽은 남자이기 이전에 인간이 될 수 있지만, 다른 한쪽은 인간이기 이전에 여자가 되어버린다. 이 연장 선상에서 여성이라는 집단의 이미지는 종종 과잉되게 성애화된다. 그리고 남성 집단이 이 이미지에 기반을 두고 여성을 인식하는 것이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일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뒤에 앉은 남자의 전화 통화를 듣게 된 적이 있다. 그는 꽤 큰 목소리로 이름 모를 형님에게 오늘 ‘연애’를 하러 가자고 설득하고 있었다. 가격도 괜찮고 ‘여배우’ 같은 애들도 널렸다며. 잘 말해두면 시간도 길게 할 수 있다며. 그는 아쉬워하며 전화를 끊었다. 형님이 오늘은 안된다고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또 다른 형님에게 ‘연애’를 하러 가자고, 자기가 오늘 다 알아봐 놓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번 형님은 된다고 한 것인지 그가 신나서 계획을 읊었다. 절대 당사자 면전에 대고는 할 수 없는 모욕과 조롱이 양념처럼 곁들여졌지만, 그 남자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어 보였다. 통화 내용을 들을수록 그 남자가 말하는 ‘연애’가 성매수를 가리키는, 성매매 산업에서 흔히 쓰이곤 한다는 은어인 ‘연애’라는 것은 점점 명백해졌다.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통화 내용을 들어야만 했던 나는 문득, 그리고 아주 뜬금없이 남자는 만나는 모든 여자를 잠재적 연애대상으로 본다는, 제법 자주 쓰이는 농담이 떠올랐다. 물론 이 농담에서 말하는 연애가 그 남자가 통화로 형님들에게 같이 하자고 조르던 그 ‘연애’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연애’를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할 수 있는 남자가 하는 또 다른 연애는, 과연 그 ‘연애’와 얼마나 다를 것인가? 여성을 구입할 수 있는 성애화된 객체로 여기는데 이미 익숙한 사회에서, 그와 같은 여성혐오자들이 하는 또다른 연애는 ‘연애’가 아닌 연애라고 해서 무고(無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여성을 동등한 주체가 아닌 성적 대상화된 객체로 간주하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사실이 그가 발화한 말들로 선명하게 입증된 기분이었다. 친구였으면서 단체카톡방에서는 말로 온갖 성추행을 다 하고, 연인이었으면서도 헤어지자는 말에 폭력을 휘두르고, 자기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했으면서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자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도 어쩐지 알 것 같았다. 전화 한 통만으로도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혐오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증명되는, 그리고 그 증명이 공공장소에서 버젓이 그리고 별 거리낌 없이 일어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 닿았기 때문이다.


* 필자소개

      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하면서, 조형예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현상을 감상하고 분석하는 법을 배웠다. 동일 전공으로 석사에 진학하여 공부를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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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변화시키는 기도



류헌조

(GTU Ph.D. Candidate)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오늘 받을 은총 위해 기도했나요.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리.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시오.” 기독교인들이 즐겨부르는 복음성가의 1절 가사입니다. 힘들고 지쳐서 주저 앉고 싶을 때, 희망이 보이지 않아 낙심과 염려가 몰려 올 때, 이 노래를 부르면서 그리고 이 노래의 가사가 호소하는 것처럼, 기도하면서 위로와 용기를 얻고 다시금 힘을 내는 경험을 합니다. 기도에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참된 기도, 간절한 기도, 믿음의 기도는 실제로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듯 합니다. 많은 종교들이 기도(prayer)와 명상(meditation)을 대단히 중요하고 필수적인 수행방법의 하나로 생각하고 이를 수련하는 데 힘써 왔습니다. 기도를 빼고서는 거의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만큼, 기독교에서도 기도는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합니다. 기도는 자주 호흡에 비유되곤 합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죽은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조직신학자이자 영성신학자인 사이몬 찬(Simon Chan)에 의하면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성숙을 위해 실천해야 할 수덕(修德)의 첫 번째 원칙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기도는 정말로 효과(effect)가 있는 것일까요?

   기도의 효과에 대하여 상반되는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한 쪽 입장의 맨 끝에는 기도하면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여기고 기도를 마치 만병통치약, 만능열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은 오로지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강력한 기도를 더 오랫동안 더 많이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기도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한편, 이러한 입장의 반대쪽 끝에는 기도 무용론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기도는 종교가 사람들을 현혹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민중의 아편”이요, 인간이 “심리적 투사”로 만들어낸 신에게 말하는 자기 독백입니다. 그리하여 기도는 니체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성과 자유로운 정신을 박탈하고 결국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하게 합니다. 결국,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기도는 아무런 효과도 없습니다.

   기도의 효과에 대한 이 두 가지 극단적 입장 사이에는 기도의 효과를 긍정하고 실제로 경험하면서도 그 효과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신학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여성신학자인 도로테 죌레(Dorothee Sӧlle)는 기도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역설하는 반면, 네덜란드의 개혁신학자 아브라함 반 디빅(Abraham Van De Beek)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일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편, 해방신학자들처럼 기도와 사회정의의 불가분리성을 크게 강조하는 신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최근의 영성신학자들이 그러한 것처럼 기도를 통해 한 개인의 내면을 성찰하고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데 집중하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사실, 이들 모두의 주장은 기독교 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기도에 관해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가치들을 정당하게 짚어주고 있으며, 서로 뗄 수 없는 긴밀한 상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신학자들 사이에는 참된 기도는 분명히 효과가 있고, 제대로 기도하면 무엇인가가 반드시 일어난다는 기본적인 믿음, 합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신학자들이 기도는 특별히, 인간의 내면(정신 또는 마음)에 어떤 변화를 불러 일으킨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인간의 마음만큼 변화무쌍하고 통제하기 힘들며 또한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력 그리고 창의성을 가진 것도 드물 것입니다. 한 인간의 마음은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인간의 마음은 세상을 정의와 평화로 가득 찬 행복한 곳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불의와 폭력이 가능한 죽음의 장소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인간의 마음은 죄와 고통이 발생하는 악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을 잘 다스리고 선(善)으로 지향(志向)시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많은 종교들, 특히 기독교는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기 위한 도구로서 기도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가르쳐 왔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니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절)

   한 인간의 내면, 한 인간의 마음(정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성서, 특히 히브리 전통에서 마음은 인간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을 의미했는데, 그것은 한 개인이 어떠한 일을 결정하는 중심 기관이며 또한 도덕적인 판단이나 선택을 하는 곳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유명한 독일의 개혁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목사님은 인간의 마음을 가리켜 “내적 삶의 모든 심층들”이라고 말합니다. 즉, 마음은 한 인간의 중심이요 핵심이며 중추(中樞)입니다. 오늘날 뇌과학(brain science) 또는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 연구자들은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뇌의 활동에서 찾으려고 시도합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정신을 뇌세포들의 물리적 메카니즘으로 단순하게 환원시키거나 축소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더불어,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사용되는 뇌(brain)라는 용어와 뇌의 활동을 통해 창발적으로(emergently) 나타나는 인간의 의식/정신을 서로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인간의 마음(의식/정신)은 뇌세포들의 물리적 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영역에 속해 있다는 뜻입니다.

   종교를 생물학적 관점, 특히 인간의 뇌의 활동과 관련지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신경과학자(neuroscientist)이자 신경신학자(neuro-theologian)인 유진 다퀼리(Eugene d’Aquili)와 안드류 뉴버그(Andrew Newberg)는 Why God Won’t Go Away (한국어 책 제목은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라는 책에서 자신들이 시도했던 획기적인 실험과 그로 인해 도출된 흥미로운 결과들을 소개합니다. 티벳불교의 승려들이 기도(명상)을 시작합니다. 기도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혈관에 방사성물질을 주입한 후 SPECT(Single Photon Emission Computed Tomography, 단일광자방출단층촬영)을 위해 제작한 특수한 카메라로 승려들의 뇌를 촬영합니다. 카메라의 촬영에 의하면, 기도가 절정에 이르기 전에 이들의 뇌는 아주 활성화되어 있었고 전반적으로 빨간색과 노란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절정에 이르렀을 때 촬영영상은 뇌의 색깔을 파란색과 초록색으로 나타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가요? 그것은 OAA(Orientation Association Area, 물리적 공간 안에서 방향과 거리, 각도 등을 인식하고 안전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뇌의 영역)의 활동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유진과 뉴버그는 프란시스코회 소속의 수녀들을 상대로도 같은 실험을 하였고 비슷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피실험자들은 기도의 절정에 이르러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할 만큼 자신들이 어떤 무한한 실재와의 연합을 경험했다고 말했습니다. 티벳승려들의 경우 온 우주 만물과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고 프란시스코회 수녀들은 하나님과 말할 수 없이 가까워지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요약하면, 기도와 명상은 사람들의 의식에 분명히 어떠한 변화를 일으켰고 그것이 실험을 통해 관측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실험을 했다고 해서 기도의 효과가 어떤 것인지를 자신있게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실험은 일정 그룹의 아주 훈련된 수도자들을 대상으로 행한 실험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수준의 사람들이 하는 기도나 다른 종류의 기도에 대해서 그 결과를 동일하게 적용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촬영영상을 통해 뇌의 활동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해서 그것이 한 사람의 생각이나 인생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 영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실험의 결과를 통해서 기독교인들이 믿는 신(God)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 실험을 통해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결론은 기도와 명상으로 지칭되는 이 특정한 종교적 활동이 인간의 뇌, 그리고 뇌의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마음/정신에, 부인할 수 없는 어떤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 과학적 실험을 통해서 우리는 기도의 효과에 대한 경험적인 증거(empirical evidence)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퀼리와 뉴버그는 이후 The Mystical Mind 라는 책에서 인간의 뇌는 일곱가지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연산자(operators)를 가지고 있고, 이 중 이항 연산자(the binary operator)는 뇌가 자신이 경험하는 사물(사건)들을 두 가지 대조적인 그룹으로 범주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설명합니다. 인간의 뇌는 이 이항 연산자의 기능에 따라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선과 악, 참된 것과 나쁜 것, 정의와 불의, 행복과 슬픔 등으로 분류하는데, 이를 통해 자신이 처한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현실을 효과적으로 파악하고 대처함으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종의 악(evil)의 신화(myth)가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뇌는 이항 연산의 기능을 통하여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이해하기 힘든 일들 -- 선한 사람에게 왜 악한 일이 일어나고, 악한 사람에게 왜 좋은 일이 일어나는지와 같은 – 을 신화의 형태로 바꾸어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리하여, 악은 이제 실제적인 것(as real)으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악의 신화가 작동하게 되면 인간의 뇌는 불안(anxiety)을 느끼게 되고 이 불안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특히 적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 불안을 해소하려 할 때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고 합니다. ‘죄와 기도 그리고 종교적 신비에 대한 논의의 타당성’을 인지과학의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George Tsakiridis는 최근 이 주제와 관련하여 Evagrius Ponticus and Cognitive Science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의 뇌가 느끼는 불안을 부적절한 방식으로 처리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이 부작용으로부터 죄(sin)가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에 의하면, 이 죄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한 방법이 바로 기도와 명상입니다. George Tsakiridis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명한 심리학자 Kenneth Pargament의 임상실험결과를 예로 들며 “기도를 동반하는 영적 치료(spiritual therapy)가 영적인 면을 배제한 심리치료보다 훨씬 더 탁월한 치료효과를 보여준다”는 증거를 제시합니다.

   기도는 오랜 세월 동안 종교인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려 왔습니다. 아마도 신앙인들의 삶에서 기도를 제거한다는 것은 한 그루의 나무를 뿌리부터 뽑아내버리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통해 주어지는 새로운 희망, 용기, 위로, 지혜와 평온함을 경험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정결하게 하고 인생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도와줍니다. 기도는 인생의 본질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한 인간의 삶이 보다 더 건강하고 가치 있게 되도록 도와줍니다. 이를 통해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게 됩니다. 기도의 효과는 경험으로 느껴지는 실재(reality)입니다. 오늘날 인지과학과 심리치료의 발전은 이러한 기도의 효과를 예전보다 더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기도의 작동 메카니즘, 기도의 유효성을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입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과학으로 완벽히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기도의 효과가 실재가 아니라거나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신학자인 저의 관점에서 볼 때, 기도를 통해 주어지는 초월적인 종교 체험은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얻게 되는 이론들보다 때때로 삶의 궁극적 실재를 더욱 더 분명하게 제시해 주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앞으로 계속적인 과학 연구의 발전을 통해 이 종교적 신비가 더욱 효과적이고 이해가능한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신학과 과학(또는 종교와 과학)이 인간의 마음을 더 아름답고 선하게 하는데 협력하고 그리하여 한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인류의 삶과 나아가 온 세상이 더욱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이 가득한 곳으로 바뀌어 가도록 함께 힘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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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독서모임



심범섭*



   독서모임이라는 세계에 내가 본격적으로 들어선 것은 2013년 가을이다. 어썸피플(Awesome People)이라는 모임에서 주최하는 독서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작년부터는 다른 독서모임에도 나가보고 또 내가 직접 모임을 주최해보기도 하면서, 지난 3년 남짓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독서모임 경험을 쌓게 되었다. 정확한 통계수치는 손안에 없지만 젊은 직장인이 참여하는 독서모임이 지난 3년 사이에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대한민국에서 왜 젊은 사회인들이 독서모임에 더 관심을 보이는지 궁금해하면서, 또 독서모임의 좋은 영향력이 더 확대되기를 바라면서, 독서모임의 의미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먼저 독서모임이라는 활동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상당히 긍정적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에서부터 생각을 시작해보고 싶다. 이런 긍정적 인식은 독서모임이 어떤 구체적인 시기 또는 상황에서 얼마나 인기를 누리는가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독서모임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사람들은 이 활동을 바람직하고 격조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형성되어 있는 이유는 물론 책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그 의식에서 책의 권위 자체가 약해지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책의 권위란 무엇인가? 책의 권위에는 수준있는 정신활동의 권위와 글의 권위가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무릇 ‘책’이라고 부르는 매체에는 어느 정도 격조있는 정보 또는 지식 또는 지혜가 담겨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전화번호부를 책이라고 이름하지는 않는다. 그 생김새는 책과 같지만 그 내용에 우리의 생각과 정서를 심화하는 요소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신문 읽기도 책 읽기와는 다른 활동으로 인식한다. 비록 신문에 실리는 어떤 글은 그 내용이 좋은 책의 내용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지만 신문의 전형적인 기능은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고 이런 목적으로 씌여지는 기사의 내용은 쉽게 ‘책’의 내용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전철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책을 읽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라는 탄식이 일상에서 큰 저항없이 이해되고 수용된다. 사실 따져서 생각해보면 스마트폰으로 받아들이는 어떤 내용은 책으로 읽는 어떤 내용보다 확실히 더 수준 높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스마트폰으로 유통되는 전형적인 정보가 책으로 전달되는 전형적인 정보보다 격이 떨어진다는 전제가 자리잡고 있다. 이런 전제는 책이란 쉽게 쓸 수 없는 것, 아무나 쓸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과 이어져 있다. 책이란 어떤 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 깊이 있는 지식이 있어야 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표현하는 능력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것이다. 책이란 진지하고 고상한 것이며, 훈련이 있고 긴장된 노력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것이다.

    책의 권위에는 이러한 내용의 수준에 대한 판단에 더하여 글이라는 표현방식에 대한 긍정적 판단도 관여한다. 많은 경우 글을 쓰는 것은 말을 하는 것보다 확실히 더 어렵게 다가온다. 사실 우리는 말은 나도 모르게 배우기 시작했지만 글은 자리에 앉아 의식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글이 말보다 더 지적 에너지를 더 많이 함축하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글을 제대로 쓰려면 말을 하는 것보다도 더 논리적이고 정연해야 하고 더 집중해야 하고 생각이 더 정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말해 글을 잘 쓰는 일은 어려운 일, 상당한 수련을 요구하는 일이고 그러므로 진지하고 고상한 일이라고 인식한다. 

    책의 권위가 뜻하는 바가 이러하므로 책은 공부, 배움, 교육, 지적 권위 등과 매우 밀접하게 엮이어 있다. 똑똑한 것, 많이 아는 것, 공부 잘 하는 것, 체계있는 것 등에 대한 존중과 인정과 연결되어 있으며, “문”의 숭상, 지성 및 지혜의 숭상과도 이어져 있다. 책에 실리는 내용은 보존하고 전파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이런 판단은 글이라는 매체가 지니는 전파성과 영속성에 의해 더 강화되는 측면이 있는 듯 하다. 철학자 안병욱 선생의 다음과 같은 지극한 책 예찬도 책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 근거하고 있다.


책은 인간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 영원의 도시 로마는 망했지만 로마의 책은 남아 있다. 신라는 무너졌지만 원효의 책은 살아있다. 그리스도를 처형한 권력자들은 죽었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을 담은 성서는 영원히 빛난다.[각주:1] 


    책의 권위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본 다음 이제 모임이라는 것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어떤 모임의 가장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개인적으로 만나서는 쉽게 나눌 수 없는 이야기를 쉽게 나누도록 중매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실 삶에서 중요한 솔직하거나 진지한 대화는 매개자가 있어야만 순조롭게 생성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아가씨에게 이성으로서 관심이 있다고 할 때 그 사람에게 직접 다가가 이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우매한 처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누군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 소개팅을 주선해 준다면 나는 자연스럽게 이 사람을 이성으로 대하면서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가족이나 친한 동무한테도 못하는 이야기를 생명부지의 정신과 의사한테는 털어놓을 수 있다. 이 의사의 자격을 공인하는 사회가 중간에서 매개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어떤 공통 관심사 아래 모임이 열리면 비록 그 모임에 온 사람이 단 두 사람이라도, 더군다나 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사이라 하더라도 이들은 사적으로 만나서는 할 수 없는 솔직하거나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매개자가 이렇게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게 하려면 소통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이 중매자를 신뢰해야만 한다. 달리 말해 어떤 모임에 와서 모르는 사람하고도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이 모임이라는 활동을 신뢰하는 것이다.  

    독서모임은 진지한 대화의 중매자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모임이라는 활동 자체에 부여되는 신뢰가 있는데다가 책에 대한 신뢰도가 높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솔직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 욕구는 근본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욕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친한 동무하고도 이런 이야기를 쉽게 하기는 늘 쉽지는 않다. 눈치를 봐야하고 분위기를 따져야 한다. 그래서 친구 사이에서도 부부 사이에서도 이 장벽을 넘기 위해 같이 술을 먹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 심각하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는 ‘맨 정신’으로는 하기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맨 정신으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독서모임은 제공해 준다. 그리고 책 안에는 여러가지 생각과 표현이 있기 때문에 심도있는 소통으로 가는 통로를 아주 다양하게 제공한다는 장점도 있다.

   ‘대화’는 말하기와 듣기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대화는 동시에 ‘대청’이다. 독서모임은 깊이 있는 대화대청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내 경험상 흥미로운 사실은 독서모임에 나온 사람들은 그 동기로서 듣고 싶은 바람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곧, 절대다수는 ‘다른 사람들이 같은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배우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풀어서 말하면, 나는 아직 생각하고 느끼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음으로써 같은 책을 더 풍부하게 경험하고 나아가서 내 인식과 정서의 지평 자체를 넓히고 싶어서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독서모임에 온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책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해 주고 싶어서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적어도 나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부터도 이렇게 말하면 잘난 척한다는 인상을 준다고 생각하므로 감히 발설하지 못하는 것일 뿐,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듣고 싶은 욕구보다 더 강한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에 따라 누구는 이런 욕구를 아직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그 말을 다른 사람이 경청해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독서모임에 온 사람들이 차마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철학자 이태수 교수는 대한민국의 대중인문학에 대해서 말하면서 고맙게도 언급해 준다.


    인문학은 스타 강사 강연에 수천명이 모이는 빅 이벤트에서 승부가 나는 게 아니라, 누구나 인문학을 읽고 입을 열 수 있게 하는 쪽으로 끌고 가야 한다. . . . 인문학도 유명 강사가 멋진 강연하고 박수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몇 사람이라도 모여서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게 진정한 인문학이다. 유명 인사의 말만 듣고 감탄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스타 강사 없이도 내가 내 얘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걸 지원해줘야 한다.[각주:2]


    이태수 교수가 부각시키는, “내 얘기를” 하는 것의 중요성을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생산성(productivity)’ 개념을 통해 이해해보는 것도 의미있으리라 생각한다. 프롬은 저서 <사랑의 기술 (The Art of Loving)>에서 생산성이라는 개념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언급하는데, 그가 이 개념에 부여하는 의미 (가운데 하나)는 다음 구절에서 드러난다. 


    어떤 창조적인 작업에서도 창조하는 사람은 자기 밖의 세계를 대표하는 그의 재료와 자신을 연합시킨다. . . . 모든 종류의 창조적인 작업에서 작업자와 그의 대상은 하나가 되고, 사람은 창조의 과정에서 세계와 자신을 연합시킨다. 그러나 이는 생산적인 작업, 곧 내가 내 작업을 계획하고, 생산하고, 그 결과를 보는 경우에 대해서만 유효하다.[각주:3]


    내가 주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일, 달리 말해 내 본질이 투여되는 일에서 나와 대상은 하나가 되며, 이런 일이 창조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고 프롬은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개념을 “내 얘기를” 하는 것에 적용한다면, 내 삶의 고유한 맥락에서 우러나온 이야기, 내 본질을 반영하는 이야기, 그래서 그 언어가 나로부터 소외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생산적인 일이요, 창조의 한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듣는 이로부터 깊고 진실한 반응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이 반응이 말하는 이에게 기쁨과 만족을 준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 생산적인 일, 창조에는 기쁨과 만족과 보람이 동반하며, 이러한 내적 경험이 일하는 사람과 대상이 하나가 되는데 크게 기여한다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창조와 그에 따르는 보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의 예가 구약성서 창세기의 첫머리에 나오는 창조설화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 .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 . 하나님이 물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 .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 .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 . . (1:1-31의 일부)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엿새 동안 창조 작업을 하는데 그의 창조물이 그가 보기에 좋았다는 말이 일곱 번 나온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은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 대상에 대해서 느끼는 기쁨과 만족과 보람을 암시한다. 더불어 이 대상에 대해 느끼는 애정도 암시한다.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창조 대상에 대한 이러한 내적 반응이 진정한 창조의 한 조건이라고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생성 대상에 대한 기쁨과 사랑을 낳는 작업만이 창조라는 의미를 이 이야기에서 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서너 달 전 어썸피플 독서모임에서, 이 모임에 처음 온 서른 살 된 한 여자분이 모임이 끝난 다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다른 분들이 제가 하는 말을 열심히 들어주셔서 정말 좋았어요.” 이 분이 느낀 기쁨과 만족이 “내 얘기를” 함이라는 생산적 활동의 보람이요, 따라서 이 분이 이 모임에서 한 일을 창조라고 이름할 수 있다고 믿는다.[각주:4]

    위에서 창세기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표현으로부터 창조자의 행복에 대한 해석을 끌어냈는데,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은 같은 표현으로부터 창조된 인간의 행복이라는 의미를 끌어낸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한 것은 피조물의 존재 자체를 긍정함을 뜻하며, 피조물이 보기 좋다고 한 것은 인간이 삶(생명)을 사랑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는 이 두 가지 의미가 어머니의 사랑의 특성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를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나오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에도 적용한다. “약속의 땅(땅은 언제나 어머니의 상징이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것으로 묘사된다. 젖은 사랑의 첫번째 측면, 돌봄과 긍정의 측면을 상징한다. 꿀은 삶의 달콤함, 삶에 대한 사랑과 살아있음의 행복을 상징한다.”[각주:5]

    비록 창세기 이야기에 대해 프롬과 나는 접근 방향이 조금 다르고, 또 프롬은 “젖과 꿀”을 사랑에 적용하여 해석하지만, 나는 그의 생각의 틀을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에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달리 말해, 창세기 이야기의 창조사건과 출애굽기의 ‘젖’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의 긍정을, 창조대상이 좋게 보임과 ‘꿀’은 이에 따르는 행복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창조가 이루어지는 소통을 젖과 꿀이 흐르는 소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이태수 교수의 말에서 그는 유명 인사의 강연을 듣기만 하는 것과 독서모임에서 “내 얘기를” 하는 것을 대조함으로써 독서모임에서 말하기의 능동성과 참여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에서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도록 허락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감지할 수도 있다. 독서모임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어서 정말 좋았다고 말하는 서른 살 된 젊은 여성의 소감에서도 이 분 개인의 과거 소통 경험과 우리 (여성) 젊은이들의 일반적인 소통체험을 읽을 수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말해 대한민국에서는 2, 30대 젊은이들도 자기 이야기를 마음껏 하지 못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사실 지난 3년 남짓 내가 참석한, 젊은 직장인이 주로 참여하는 수 많은 독서모임에서 받은 인상도 이와 일치한다. 달리 말해 대한민국은 소통의 젖과 꿀이 매우 부족한 사회이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양한 주제에 대해 깊은 대화를 쉽게 성사시키며, 너와 나가 함께 이루는 창조를 경험하게 하는, 그리고 이 밖에도 여러가지 장점을 지니는 훌륭한 독서모임이 더 많이 생겨야 하지 않을까? 창세기 첫머리의 창조 이야기에서는 창조물이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다는 말이 일곱 번 나온다. 여섯 번은 (매번은 아니지만) 개별적인 창조 단계가 끝났을 때 나오고 마지막 표현은 창조세계 전체에 적용된다. 구체적이고 특정한 창조물에 대해 ‘좋다’라고 느꼈을 때 이 기쁨과 만족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 다음 단계 창조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동기가 되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창조가 창조를 낳는, ‘창조의 창조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독서모임에서 경험하는 소통의 창조에도 이런 힘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창조성이 넘쳐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독서모임이 우리 사회에 더욱 많아지고 더욱 흥성하기를 기원한다.


    * 필자소개  

영어강사. Rice Univ 언어학 박사(Ph.D) 후에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과 시카고 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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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와 진실의 합창>, 삼육출판사, 1990, p. 59. [본문으로]
  2. 조선 비즈, 석학 인터뷰,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전병근 기자, 2014.10.25. 굵은 글씨 강조는 인용자가 함. [본문으로]
  3. Harper & Row, New York, 1956, p.17. 번역과 굵은 글씨 강조는 인용자가 함. [본문으로]
  4. 독서모임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창조를 이야기할 때 짚고 넘어가야할 사항이 적어도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대화대청을 통해 이루어지는 창조에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같이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위에서 예로 든 여자분이 말하는 이야기하는 사람의 행복은 듣는 사람의 경청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독서모임에서 이루어지는 깊이 있는 말하기와 듣기는 개인적인 만남이나 책을 매개로 하지 않는 모임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창조적인 대화와 다른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차이는 역시 위에서 말한 책에 결부된 권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책에 사회적인 권위가 있는 한 책을 매개로 말하는 사람은 이 권위에 관여하면서 자신의 권위의 성격과 정도를 결정하게 된다. 우리는 책의 권위와 더불어 갈 수도 있고 거슬러 갈 수도 있다. 책의 내용에 동의하면서 이야기할 때 우리는 책의 권위에 편승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을 비판할 때 이 비판이 설득력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저자의 권위를 위협하는 사람의 권위가 부여된다. 그리고 말하는 사람이 책의 권위와 교섭하면서 얻는 권위가 그가 얻는 창조의 기쁨과 만족에 직접 관여하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본문으로]
  5. 같은 책, p.49. 번역은 인용자가 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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