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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

▷ 지은이 : 구미정, 김진호, 이찬수 외
▷ 펴낸곳 : 도서출판 자리
▷ 2012년 4월 12일 발행 | 값 13,000원 | 272쪽
▷ 분 류 : 기독교 일반, 기독교 이해

책 소개 보러 가기

  

제목 그대로 오늘의 한국 기독교가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왜곡하고 있는 기독교 본연의 정신을 성서와 역사를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 모두 16가지 주제로 구성된 이 책은 매 주제마다 민감하고, 논쟁이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16가지 주제들은 기독교 신자이든 안티 기독교의 입장에 선 사람이든 기독교의 실체적 진실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키워드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 그 자체를 넘어서는 무엇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행태는 기독교 본연의 정신과 관련 없이 반공의 뿌리 위에 성장 일변도의 자본주의 방식에 철저히 입각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권력화된 기독교는 어느새 자본과 정치를 넘나들며 자신들만의 성새(城塞)를 단단히 구축하고 있다.

이를 넘어서는 과정은 결국 그 성새를 밑둥에서부터 부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업은 어떻게, 무엇을 통해 가능할까. 저자들은 기독교 본연의 정신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왜곡된 뿌리를 걷어내고, 그 위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인바, 이 책은 그 작업을 위한 성서적 기반과 담론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추천사 교회의 정명正名, 사회의 정명正名
머리글 교회가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의 여러 이야기들, 그것으로 이웃과 대화하기

1장 유일신 _‘신상神像 없는 신앙’ 혹은 ‘반권력의 파토스’
2장 정통과 이단 _이단, 역사적 싸움에서 패배한 정통
3장 내세 _영혼의 구원에 대한 강렬한 열망
4장 구원 _죽음의 대속론을 넘어 부활의 속죄론으로
5장 창조 _비과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성찰의 출발
6장 종말 _신체적 종말과 영원한 생명의 묵시적 이중나선
7장 성직 _목회는 본디 섬김이다
8장 성찬 _가장 낮은 이들에게 베푸는 평등의 밥상
9장 안식일 _굶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해방’의 날
10장 교회 _교회는 속죄의 목욕탕이 아니다
11장 사도신경 _배타성의 상징이 된 금관의 예수
12장 영과 육 웰빙 _시대의 ‘구원불평등’을 읽는 키워드
13장 결혼과 가정 _평등한 창조를 부정하는 순종론을 깨라
14장 교회와 여성 _원죄라는 편견이 만든 부정不淨의 여성관
15장 타종교와 이웃 _교회의 길이 아닌 그리스도의 길에 서라
16장 성전聖戰 _거룩한 전쟁, 성서는 이를 옹호하는가?

 

오강남 (캐나다 라이지나대 교수) : 성전화·권력화된 한국 기독교에 던지는 근원적 물음 점점 성전화·권력화·화석화되어 가는 한국 교회가 교회 본연의 정체성과 역할을 재인식하므로 이 시대를 사는 한국 기독교인 모두에게 기독교 신앙이 줄 수 있는 활력과 역동성을 되찾도록 하는 일은 현 한국 교회에 주어진 최대의 과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김진호 목사님을 비롯하여 이런 과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몇몇 의식 있는 분들이 엮어내는 이 책은 두 손 들어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나 일반 지성인들이 모두 읽고 한국 기독교 활성화를 위한 대화의 장이 더욱 활발해지기 바란다.”

김규항 (작가,《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 신자유주의 성전이 된 교회를 향한 단호한 질문 “극우독재의 ‘하면 된다’ 구호에 ‘믿으면 받는다’로 호응하면서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례없는 부흥을 한 한국 개신교 교회는 신자유주의, 즉 자본독재의 가장 강력한 정신적·물적 기반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더 이상은 ‘교회개혁’이라는 주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교회개혁은 교회임을 전제로 한 노력과 싸움이지만 그 교회들은 어떤 의미에서도 교회가 아닌 것이다. 그 교회들은 소박하게 말하면 교회를 가장한 상점들이며 제대로 말하면 신자유주의의 성전이자 회당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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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2/05/01 11:5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필자에 대한 신뢰만으로 책을 사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사실 그닥 좋은 독서법은 아니지만), 이 책이 그런 책이 아닐까 싶다. 글쓴이들이 면면과 다루는 이슈들의 선정성과 불온함이 분명 우리를 불쾌하게 혹은 불편하게 할 것이다. 아직 읽지는 못했는데 착한 교인들이 이 책을 읽고 좀 삐닥해졌으면 좋겠다.

 

탐욕스런 안보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바울이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그대로 갇혀 있게 하여 달라고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황제에게 보낼 때까지 그를 가두어 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 「사도행전」 25장 21절

통치가 절정에 이르던 기원전 22년 헤롯 왕은 항구도시를 대대적으로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본래 항구가 있던 자리가 아닙니다. 항구로 사용하기엔 해안이 너무 깊었지요. 굳이 그런 곳을 선정한 이유는 아우구스투스가 선물한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10년쯤 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그는 안토니우스의 지지자였습니다. 한데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 해전(기원전 31년)에서 승리하고 안토니우스는 자결을 했지요. 그의 통치에서 최고의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처세술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인물 헤롯은 놀랍게도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에서 승전 퍼레이드를 할 때 그를 보좌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원로원에 의해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았고, 아우구스투스로부터 헤롯은 팔레스티나 지역의 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하여 헤롯은 로마의 새 통치자에게 충성스런 봉신국 왕임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지요. 이 도시는 바로 그런 이유로 건설된 것입니다. 과거 옥타비아누스가 카이사르(시이저)의 양자로 입적되었을 때 그의 이름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가 되었지요. 이 이름을 따서 항구도시는 ‘카이사리아(가이사랴)’로 명명되었습니다. 요컨대 이 도시 건설은 헤롯 정부의 안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항구도시는 ‘단지 충성심’ 때문에 지어진 것만은 아닙니다. 그는 지중해 동부에 위치한 최대의 무역항을 꿈꾸었습니다. 페니키아 인들이 건설했던 작은 도시는 이제 지중해 동부를 대표하는 거대도시로 탈바꿈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국제무역항이 필요했습니다. 소아시아와 시리아에서 이집트를 잇는 뱃길의 중간 기착지 말입니다. 또한 로마와 아라비아반도를 잇는 동서간 국제무역에서도 지중해 동단에 위치한 항구의 필요성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남쪽으로 50여 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욥바라는 오래된 항구도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엔 여긴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성이 차지 않게 작은데다 이스라엘 성향이 너무 강해서 국제도시가 되기엔 적절치 않았습니다.

한데 문제는 이곳은 항구가 들어서기엔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수심이 너무 깊은데다 파도가 거센 탓에 선착장을 만들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헤롯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해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조상대대로 살아온 주민들은 강제로 쫓아냈고, 부역에 동원하였습니다. 수심이 깊은 곳에 나무로 거대한 곽을 짠 다음에 콘크리트와 돌을 부어 수심을 낮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센 풍랑을 맞으며 60미터에 달하는 방파제를 건설하게 합니다. 하루아침에 살 곳을 빼앗긴 이들이 목숨을 걸고 이 위험한 노역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바닷가에 살지만 바닷사람이 아닌 이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건 난해한 건축에 동원된 것입니다.

언덕빼기에는 신전을 건립하여 여러 종족의 사람들이 각기 자기들의 방식대로 바다의 신에게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착장에 이어지는 지하에 거대한 창고를 건조하여 신속하게 수하물이 선적, 하적되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국제무역항은 손색없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왕궁이 있는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주민들은 왕궁, 경기장, 원형극장, 수영장, 공중목욕탕 등의 건설에도 동원됩니다. 자기들이 살던 터에 왕족과 귀족들의 공간이 들어섭니다. 또 그이들이 마실 식수를 대기 위해 멀리 갈멜 산에서 9킬로나 이어지는 도수교를 건설했습니다.

여기에 건립된 헤롯 왕궁의 면모에 대해서는 당대의 역사가 요세푸스가 찬사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헤롯에 대해서 그토록 극한 언사로 비난해마지 않았던 그가 왕궁을 보고는 너무나 아름답다고 내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카이사리아는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서 로마로 연결되는 국제적 ‘관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국의 권력이 유입되는 곳이며, 또 팔레스티나 통치자의 권력이 공고히 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헤롯 사후, 팔레스티나의 통치권을 장악하고자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로마로 갔던 이들은 이 도시를 통해 나갔고 성공했든 실패했든 이 도시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또 로마 황제의 대리인으로 팔레스티나의 총독이 되어 부임한 이들은 이곳 관저에서 지냈고, 영전하든 좌천하든 임기 이후 이곳에서 떠났습니다. 헤롯의 손자였으나 헤롯에 의해 척살당한 집안의 장손인 아그립바 1세는 이곳을 통해 로마로 떠났고, 칼리굴라의 죽마고우로서 대권을 손에 쥐고 팔레스티나로 귀환할 때 이 도시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이 도시는 팔레스티나의 권력의 핵심이었고, 그 배후에는 로마 황제가 있었습니다. 즉 이곳은 로마의 정치적 식민주의의 관문인 것입니다.

또한 이곳은 부의 중심지입니다. 황제의 재가로 이곳에서 특권을 쥔 이들은 이곳에서 벌어지는 국제무역을 장악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 이 도시는 동부지중해 전역에서 가장 큰 재화가 형성되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 풍요로움은 이곳을 발판삼아 처세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여 비잔틴 시대에 인구 10만이나 되는 거대도시로 발전하기까지 합니다. 즉 이곳은 로마의 경제적 식민주의의 관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가능한 항구도시를 위대한 국제무역항으로 만들어낸 원천적 자원은 바로 원주민들의 땀과 피였습니다. 그들의 노동과 목숨이 기반이 되어 이 도시는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집을 빼앗기고 빈민지역에 거주하는 하층민이 되거나 떠돌이가 되어야 했습니다.

결국 이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 이 도시에서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 어느 누구도 그 원주민들의 고통과 죽음을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탐욕을 가지고 이 도시로 들어오고 탐욕을 가지고 이 도시를 살아가며 탐욕을 배우며 이 도시를 떠나갑니다. 반면 거의 아무도 도시의 제일 밑바닥 층에 화석이 되어 묻힌 원주민들의 몸을, 영혼을, 고통을, 삶과 죽음을 발견해내지 못합니다.

나는 여기서 안보론을 떠올립니다. ‘안보’는 통치자의 언어입니다. 통치자는 그 사회와 자신의 안전의 공통분모를 찾아 안보라고 명명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명명된 안보는 어떤 것과도 거래될 수 없는 절대적 위상을 지닙니다.

헤롯에게 로마는 안보의 핵입니다. 로마에 적대하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전 팔레스티나 사회를 몰락하게 할 것입니다. 해서 그는 로마 황제를 기리는 도시를 건립합니다.

한데 그곳이 항구이어야 할 이유는 안보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발전의 논리이지 안보의 논리가 아닙니다. 한데 이곳은 항구가 될 수 없는 지역입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무리한 사역을 위해 전 주민을 희생시킵니다. 한데 그 결과는 자기 자신과 주변의 세력에게만 이익을 줄뿐입니다. 나는 이렇게 안보와 발전논리가 교묘하게 결합하면서 극단의 비대칭적 이익을 창출하는 것을 ‘탐욕스런 안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탐욕스런 안보의 한 예가 최근 강행되는 강정의 해군기지입니다. 이 해군기지의 명분은 원래 남방 해역 안전과 해저자원 및 해양수송로 보호에 있었습니다. 한데 그것이 갑자기 대북 안보 문제로 둔갑했습니다. 

이것은 본래 미국의 대(對)중국 아시아 방위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아시아 방위전략이 영구주둔거점을 확보하는데서 순환배치로 전환되면서 중국에 대한 광역의 포위망을 순환거점 확보를 통해 형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안보 문제가 한국 국민의 안보로 둔갑한 것입니다.

여기에 지난 정부가 추진하다 중단된 것을 현 정부가 갑자기 추진하는 것은 총선용 색깔론의 혐의가 짙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규모 건설사업이 거대자본들의 이익과 맞물려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기에는 통치자와 지배권력의 탐욕이 안보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데 바로 이런 안보론의 제일 큰 문제는 ‘구럼비의 눈물’을 망각하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폭파되어 산산조각나고 있는 구럼비 바위처럼, 통치자들의 탐욕스런 안보론은 주민들과 그곳 물과 뭍의 생명체와 비생명체들 모든 것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산산이 흩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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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지난 미국 대선을 통해 본 2012년 한국 대선 읽기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미국에 와서 필자는 두 번의 대선을 경험하였다. 미국에 오자마자(2004년 가을) 재선을 목표로 하던 공화당의 부시와 민주당의 캐리간의 대결과, 2008년 민주당의 오바마와 공화당의 매캐인 간의 대결이 그것이었다. 미국인들은 우리나라 국민과는 다르게 서로 다른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들에 대해 목에 핏대 올리며 고함치지 않는다. 영리한 것인지 예의바른 것인지, 아니면 누가 되든 그 놈이 그 놈이라는 경험적 진실에 익숙해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와는 안 맞는 선거문화다. 한가지 비슷한 것을 굳이 고르라면 전통적 민주당 텃밭은 뉴욕, 시카고, 샌프란 등 주로 도시주변이고, 공화당은 남부 바이블벨트로 상징되는 시골들이라는 점이 한국과 그나마 비슷하다고 할까.

이번 달 웹진과 다음 달 웹진에 철 지난 미국 대선을 통해 본 2012년 한국 대선 읽기라는 제목으로 2회에 걸쳐 2012년 대선에 대한 단상을 게재한다. 물론, 본토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체감하는 현실인식과는 다를 수도 있고, 그래서 온도차가 있으리라는 예상도 하지만, 외부자(물리적으로)의 시선에서 대상을 향한 다른 안목을 제공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글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지난 연말에 하늘나라로 돌아간 김근태 전 의원의 마지막 메시지, “2012년을 점령하라!”는 유언에 힘입은 바 크다. 십 년도 훨씬 전에 그의 정치적 비젼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고 대화하는 모임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정치를 하지?’ 라는 생각에서부터 저런 정치가가 대한민국에 10명만 있어도 대한민국은 바뀌겠다!’라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고인이었지만, 내가 그 모임에서 김근태 의원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의원님, 정치하지 마세요!”였다. 대한민국 국회와 인간 김근태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 말을 듣고 허허웃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참 선하고 강직하고 논리적이었던 정치가 김근태가 그의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한 마리 학 같았던 그가 숨을 거두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2004년 미국 대선, 그 집단적 타락의 공유

 

필자가 겪었던 미국에서의 두 번의 대선은 선거 기간뿐 아니라, 선거가 끝난 후에도 많은 이슈들을 생산해냈었다. 2004년 민주당 캐리의 패배는 단순히 민주당과 전통적 민주당 지지세력의 패배라고 하기에는 할 말이 많았다. (표면상으로)지도자의 대의명분, 도덕성, 청렴성, 순혈주의(?)를 미덕으로 삼았던 미국 정치문화가 시장 개싸움으로 전락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제거라는 명분을 걸고 시작된 부시의 대이라크 전쟁은 결국 미국의 경제적 손익계산에 따른 선택이었고, 그 거짓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있었던 2004년 대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민은 (국가적)정의와 (국가적)이익의 기로에서 후자를 선택하였다. 모두가 그 전쟁의 공범으로 연루된 것이다. 백안관 대변인의 입을 통해 선포되는 세계평화와 민주주의 수호, 인권증진을 위해 미국은 언제나 노력하고 그것을 위해 숭고한 피를 흘리고 있다…….…(블라블라)……...” 다 뻥이었다 !

 

물론 많은 사람들이 백악관 대변인이 말했던, 오로지 미국은 세계평화만을 생각하고 수호한다는 지구방위대식 홍보물과 같은 발언에 전적으로 신뢰는 안 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상징계의 기표로써 미국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니, ‘미국=세계평화라는 상징계의 기표는 미국 보다는 오히려 한국 같은 나라들에서 더 심하고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지구상에서 미국에게 영혼까지 팔아먹은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남한이라 말해야 되지 않을까? 이번에 타결된 굴욕적인 한미FTA체결은 말할것도 없고, 재향군인회 혹은 한기총에서 주관하는 무슨 집회나 구국기도회에서 어김없이 휘날리는 성조기를 볼 때마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정점에서 성령, 혹은 미국의 이름으로 불태워지는 김일성, 김정일의 인형을 볼 때마다 무슨 원시부족에서 벌이는 토템향연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런데 명심하시라. 상징계속 미국과 실재의 미국은 다른 미국이고,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한 위대한 예술가가 조각한 성모 마리아의 순결한 동상이 바티칸에서 공수되어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회를 여는 첫날,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조각의 감상을 위해 몰려 들었다. 작품은 지금 커튼 뒤에 가려져 있고, 유명한 텔렌트 출신의 문화부장관, 부자동네 그 지역 국회의원, 무슨 미술관장, 구청장 등등의 VIP들이 속속 근엄하지만 세련되게 등장하여 손에 쥐고 있던 가위로 동상을 가리고 있던 커튼과 연결된 줄을 자르는 순간, 우리 앞에 드러난 그 마리아는 우리가 예상했던 순결하고 수줍어하는 마리아가 아니었다. 옆 집 정부를 유혹해 격렬한 정사를 벌이고 있는 마리아였던 것이다. 바로 그 마리아가 우리가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순결한 마리아의 진짜 모습이라면? 감추고 싶고 숨기고 싶고, 설마 설마 했던 그 실재(The Real)가 확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있어 2004년 대선이 그런 성격을 띠었다. 자신들의 치부와 위선과 진심이 선명하게 드러났고, 그것을 모두 봐 버렸으며, 최종적으로 그들은 그것을 승인하였다. 아마도 2004년 대선은 미국사회에서 있었던 선거에 의한 최초의 전체적, 집단적 타락체험이 아닐까 싶다. ‘, 무엇 때문에 미국민들은 그것을 용인했을까?’ 에 대한 분석이 선거 후에 난무했는데, 지금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경제논리와 국가권력에 대한 권위를 보호해야 한다는 애국심(?) 뭐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선거 후 전통적 민주당 텃밭인 이곳 시카고는 한동안 무거운 침묵가운데 빠져 들어 한참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MB, 부디 변치 마시라!

 

이 글을 읽는 한국에 있는 독자들은 MB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는 그에 대해 뭐라 하고 싶은 말도 없고, 아무런 궁금증도 없으며,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나도 눈길 한번 주지 않을 것 같다. 팃낙한 스님이 그랬던가? ‘어떤 대상에 에너지를 주지 않고 바라만보고 있으면 그것은 점점 스스로 죽어서 사라진다고 말이다. 그래도 팃낙한 스님은 중생에 대한 자비한 마음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시선을 주는 것 까지는 포기하지 않으셨나 보다. 하지만 나는 MB를 향한 시선조차 에너지라는 생각이 들어 그 눈길조차 아깝다. 이것이 성숙한 스님과 아직 설익은 목사와의 차이라고 비난한다면 할말 없지만

 

2007년 겨울,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웬만한 상식을 가진 사람에게 이 정권의 말로가 지금처럼 될것이라는 것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예상대로 이명박은 4년 내내 자신의 계급을 배반하지 않았고, 자신의 철학을 거역하지 않았다. 이점은 전직 노무현 대통령보다 낫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이 걸어갔던 정치, 문화적 행보와 경제, 외교분야의 행보는 사실 엇박자였다. 이러한 자기 분열이 그를 항상 괴롭혔고, 인간 노무현은 그것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보통의 정치인들은 그러한 자기분열(혹은 배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정치인으로서 마땅한 통과해야 할 의례로 여기는데 반해, 인간 노무현은 다른 정치꾼들처럼 그다지 뻔뻔하지도 파렴치하지도 못했다. 그런 점에서 바보 노무현!’이라는 표현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명박은 다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미일관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놓친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보다 낫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소통을 하라고 타일렀지만 MB DNA 속에는 소통이란 굴복이고 굴욕이어서 더 강한 어조로 자신의 진정성을 설파했야 했으며, 더 강력하게 모든 사안을 밀어부쳐야만 했다. 그는 박정희, 전두환 같은 신화시대에 등장했던 봉건영주들만큼 근성있는 지도자의 면모를 드러내 보였다고 볼 수 있다. 재임기간 계속되는 악재와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무장된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냉소적인 대한민국 국민을 상대로 자신의 심지를 굽히지 않고 꿋꿋하고 씩씩하게  강행했다는 점에서 그의 고집 하나만은 인정할 만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의 권력의지와 통치철학은 정치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 부정적 의미에서 타산지석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리라.

 

내가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우려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점이다. 혹시, 이명박 장로에게 성령이 임해서 마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전향했던 것처럼 눈에 붙어있었던 무엇인가가 떨어져 개과천선하면 어떡하나? 이 대목에서 그가 회심을 하면 정말 코메디인데… MB의 시대정신은 이대로 쭉 가서 자신의 진정성을 부여잡고 장렬히 전사해야 한다. 그래야 이 대하드라마는 멋있고 숭고하게 끝난다. 그러니 MB, 부디 계속 버티며 변치 마시라!

하지만, 이 글의 관심사는 MB에 대한 성토도, MB 정권의 말로에 대한 레퀴엠도 아니다. 4년 전 우리는 무엇에 홀려 이명박을 뽑았고, 이제 우리는 다시 누구를 찍어야 할 것인가? 누구를 선택할 지를 논하는 것은 대선 출마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좀 오바인가? 하지만, 4년 전으로 돌아가서 이명박에게 몰표를 선사한 우리의 집단 무의식에 대해서는 한번쯤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1세기 한국사회의 자화상

 

1980년 이후 한국 현대사를 나누는 굵직했던 사건을 꼽자면 80년 광주, 87 6월 항쟁, 그리고 97 IMF가 아닐까 싶다.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집권한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를 상당부분 해소시켰고, 대중들로 하여금 20세기 한국땅에서 벌어졌던 (군사독재로 인한) 야만과 자기혐오의 원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게끔 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제 잔치는 끝났고, 우리를 짓눌렀던 액운은 10년 동안 계속된 푸닥거리로 어느 정도 풀렸다. 이 말은 앞으로는 옛날 80년대식 운동 경력 내지 무협지 같은 무용담을 이야기 하면서 대중들을 혹하게 했던 약발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고, 투쟁의 경력은 더 이상의 자랑거리도, 더 이상의 감동의 요소도 아니라는 말이다. 한번은 통했는지 모르지만 두 번은 다시 안 통한다. 2007년 대선 당시 분명 대중은 가열찬 의지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치는 자칭 투사들의 몰이배식 말투와 억양에 피곤해 있었다. 이것은 그 무렵 휘몰아친 다양한 위기 담론의 발생과도 무관치 않다. 인문학의 위기, 문학의 위기, 그리고 신학의 위기……. 모든 위기담론의 근저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상실된 시대의 고민과 혁명에 성공하지도 못하고 더 이상 무엇을 잉태하지도 못하는 불임의 시대에 대한 아픔이 깊게 베어있다. 이 모든 현상의 원인과 전제가 되었던 사건이 바로 IMF이다. 왜냐하면, IMF이후 우리 삶의 지평이 그동안 우리를 지탱했던 윤리의 문제에서 앞으로 우리를 위협할 생존의 문제로 그 관심사가 180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윤리, 민주주의, 자유, 정의 이런 것들은 우리 삶의 우선 순위가 아니다. 심지어는 누군가가 대화석상에서 이런 주제를 꺼내면 우리들은 지루해 하거나, 혹은 무슨 중세적, 시대착오적 발상이냐며 마음속으로 무시하며 그 질문들을 폐기한다.

 

실제로IMF 이후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로 재편되었다. 비교적 진보적이고 도덕적이라고 믿었던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진 민주정부는 공교롭게도 IMF가 터진 97년 겨울에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대권을 쟁취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들의 예상보다 훨씬 충실하고, 착실하게, 그리고 단호히 신자유주의 원리를 이 땅에 이식하였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한나라당이나 조..동에서 말하듯 좌파정권도 아니고, 그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도 아니다. 이 표현은 너무나 과장되고 부풀려져 있는 말이다. 물론 이전 정권들과는 다르게 확실히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진전이 있었고, 문화와 사회전반을 향한 열린자세와 남북관계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취했다는 점에서는 그 공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신자유주의를 대하는 자세와 정책에 있어서는 김대중-노무현의 10년은 이명박 정권의 그것과 강도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틀 자체는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신자유주의의 시스템을 대하는 국민의 정부참여정부의 무력감과 한계는 인민들로 하여금 더 이상 윤리가, 이념이, 그리고 정의가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도 있구나!”를 각인시켜주었던 10년이었고,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그러한 의심과 회의를 최종적으로 확정지어준 사건이었다.

이 말은 이명박 정권은 어느 날 뚝딱 만들어진 정권이 아니라는 말이다. MB는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졌던 민주정부, 그러나 너무나도 신자유주의에 무력했던 10년 동안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난 숙주와 같다. 이런 이유에서 일까? MB는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난 미숙아 이기에 앞시대의 지도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한국 현대 정치사라는 지형에서 볼 때 일종의 변종 바이러스 같은 성격을 지닌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적어도 그 전까지의 정권은 김대중, 노무현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김영삼 조차, 그들은 적어도 일정기간 상징적인 자기희생을 통과한 지도자들이었다. 70,80년대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대중 정치인 김대중과 김영삼,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온몸을 던졌던 노무현! 이렇듯 그 전까지 대중은 지도자의 덕목으로 어느 정도의 자기희생을 통과의례처럼 요구하였다. 하지만, 이명박은 어떤가? 정치적 자산과 자기 희생의 전력이 전무한 MB, 그것도 선거 직전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이라는 사실이 어느 정도 다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표차로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IMF이후 우리를 압박했던 생존의 문제 10년이 지난 2007년 대선에서 닥치고 탐욕이란 물화(物化)된 시대정신으로 화려하게 만개하는 순간이었다.

 

글의 전반부에서 2004년 미국 대선이 미국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비양심과 몰염치를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라고 설명한바 있는데, 2007년 한국 대선도 그러한 역할을 하였다. 우리는 이제 대통령이 누가 되든 상관없다. “강바닥을 파헤쳐 온 국토가 망가져도, 뉴타운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옥상에서 불타 떨어져도, 내 집값과 내 땅값만 올라가기만 한다면 그가 누가 되든 상관없다. 난 그를 위해 표를 던진다!” 그것이 우리들의 2007년 표심이었다. 그 결과 이제 우리는 죄의식을 다같이 내려놔 버렸고, 때문에 우리는 이제 그 누구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세상을 살게 되었다. 이런 야만스런 상황속에서 우리는 이제 총선을, 그리고 대선을 앞두고 있다. , 이제 누구를 찍어야 할까? (다음 호에 계속)  

 

에필로그: 매번 선거때만 되면 우리는 누구를 찍어야 될지?’를 놓고 고민한다. 87 6월 항쟁 후에 있었던 대선 때부터 (양 김이 분열되고 노태우가 당선되었던) 등장한 비판적 지지어쩌구하는 고뇌에(?) 찬 구호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7년 대선까지 소위 양심적 시민들의 표심을 대변하는 슬로건이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어차피 최선이 아니라면 최악을 피하는 선택이 합리적이고 역사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현명하게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라는 발언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데리다의 표현처럼(그는 맑스의 유령에서 햄릿의 대사를 인용하며 “The time is out of joint”라 말했다), 아니 성경에 적혀있는 구절처럼 그 날과 그때는 점진적 발전과정이 아니라 도적처럼 임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물론, 매번 대선 때 마다 살짝 권영길를 찍을까 김대중을 찍을까? 노무현을 찍을까 권영길을 찍을까?를 놓고 고민했지만, 항상 나의 선택은 민노당 후보였다 (정동영이 나왔던 지난 대선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 대선 때는 미국에 있었다). 하지만, ‘최선에 대한 믿음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최악은 피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강박이 얼마 전부터 내게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에 너무 오래 있었나? 나이가 들었나? 아니면 이명박에게 너무 질렸거나 or 난 원래 최선에 대한 믿음이 없었거나 혹은 내가 변했거나어쨌든 선거는 사람의 마음을 참 묘하고 드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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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K 교회를 나가다』
- 한국 개신교의 성공과 실패 그 욕망의 사회학

▷ 지은이 : 김진호
▷ 펴낸곳 : 현암사
▷ 2012년 3월 31일 발행 | 값 13,800원 | 280쪽
▷ 분 류 : 정치/사회 > 사회학 > 사회학일반 > 사회일반서
              종교 > 기독교(개신교) > 교회 > 교회행정

책 소개 보러 가기

  

한국 개신교는 왜 극우적이며 친미적인가. 그 역사적 맥락은 무엇인가. 김진호 저자가 현대 한국 사회와 개신교가 서로 어떻게 맞물리며 성공과 실패의 궤적을 그려왔는지 이야기한다. 많은 이들이 개신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뜩지 않다. 여기에 수구 집단으로 정치세력화를 도모하는 보수 기독교 지도층들의 행보는 개신교에 부정적인 평을 더했다.

한국 근대 사회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서, 오늘의 한국 사회를 읽는 데는 반드시 개신교에 대한 질문과 답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 연구자들은 개신교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해왔고, 개신교 연구자들은 한국 사회 연구에 전혀 소홀했다. 이 책은 ‘한국 개신교의 부흥과 추락’을 선언하는 용기 있는 실험이자, ‘지금 여기에서 영성의 의미’를 찾는 더 깊은 생각을 위한 소중한 문제 제기다.

지은이는 지난 100여 년간 한국 사회와 기독교의 동거와 불화를 훑으면서 배타성, 성공(성장)지상주의, 극우반공, 친미성, 이 네 요소가 어떻게 한국 개신교의 중요한 특성이 되었는지를 묘파한다. 이러한 특성들이 한국 사회와 얽히는 왜곡된 과정과 부정적인 방식에 관한 논쟁적인 해석은 사회학적 상상력의 도발성과 예리함에서 가히 문제적이다.

목차

책머리에

들어가는 글   신의 퇴장, 신들의 귀한
2005년 인구센서스가 말하는 것|고아의식과 신앙|근대적 신의 몰락|시대착오적인 종교|영혼도 바꿔라!|영혼 없는 몸들|신 재림의 자리|시민종교의 발견-촛불의례|그 '종교성'이 잃어버린 것

1부 시민 K,교회에 나가다-한국개신교의 어제

미국의 영으로 오셨네_한국 개신교의 미국주의
새로운 제국 미국의 무기, 기독교|미국주의 종교의 탄생, 평양대부흥운동|조선의 근대적 신앙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근대 국가 출현과 기독교의 '영'

수치심과 복수_신사참배에서 반공주의로
왜 반공인가|신사참배의 수치심을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로|증오의 정치가 시작되다-월남자 교회|'전쟁은 끝났지만 복수는 계속된다'

생산적 증오심_치유와 기복, 성장주의의 발명
증오를 치유와 영적 체험의 수단으로 삼다|나운몽의 기도원 운동과 이단|복음과 성장의 동력은 증오

독재와 신앙의 동거_개발독재와 대형교회의 시대
영락교회와 한경직 목사|순복음교회와 조용기 목사|목사와 구역장, 공생하는 은사|교회와 기도원, 일상과 이탈 사이

시민 K, 교회에 나가다_1970,80년대 대부흥의 무의식
새마을운동 지도자와 같은 구역장|빌리 그레이엄의 부흥집회, 시민을 부르다|세련된 미국식, 광적인 한국식|미국식 교회 문화와 '무의식의 식민주의'

아메리칸 스타일 예배_청년 세대의 문화 전쟁
포크송과 복음성가, 전후 세대 청(소)년의 모던 체험|청(소)년의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교회

갈등하는 신학_교회 VS. 신학
순복음 신화, '성공지상주의'의 승리|'번영신학'과 중산층의 욕망을 결합하다|교회 VS. 신학, 갈등의 시작

신학의 봄_WCC 파동과 진보신학의 만남
WCC 소요와 '신학의 봄'|진보신학 꽃피우다|교회 VS. 신학, 그 갈등의 중립지대

비판자의 자리_진보적 기독교 사회운동의 영광
절반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성찰|빈민 교회와 진보신학, 노동운동에 눈뜨다|교회적 영성 VS. 새로운 영성

2부 시민 K, 교회를 떠나다-한국 개신교의 오늘

시민K, 교회를 떠나다_시민의 등장과 신의 추방
개신교도 감소, 멀티신자 등장|교인은 줄고 교회는 '고립된 성'이 되다| '시민'의 시대, '추방된 신'

신뢰 잃은 '말의 종교'_한국교회의 설교 실태
'짝퉁'작은 교회와 성공주의 목회|설교, 준비할 틈이 없다|설교, 편법들|교인들의 반란-설교비평의 시대

매매의 추문_교회 성장지상주의의 이면
중년의 남성 목회자, 교회를 폐어하다|문제는 성장지상주의다|성장주의에서 사회적 돌봄으로

이웃 없는 종교의 신_자본이 된 신, 신이 된 자본
축복의 신, 적극적 사고와 긍정주의|자본 신, 신 자본|공공의 '적'이 되어가는 교회

세계를 향하여, 무례한 선교자가 되어라!_'선교입국'의 사회심리학
아프카니스탄 피랍 사태와 해외 단기 선교|'단기 선교는 일종의 극기훈련이다'|해외 선교로 교회의 위기를 돌파하라?

풍요의 신학은 복음이 아니다_교회적 '선진화 담론'의 두 얼굴
'값싼 실천'으로 '값싼 은혜'를 얻다|웰빙 신앙의 두 얼굴, 소망교회| 풍요의 신학은 복음이 아니다

신'들'의 귀한, 그러나 교횐는 없다_비어 있는 성찰의 자리
'시민의 길', '교회의 길'|박정희와 조용기 '이후의 이후'|다시 귀환한 신(들)의 사회, 그러나 교회는 없다


3부 시민 K, 작은 교회를 만나다-한국 개신교의 내일

'작은 종교'의 탄생_작은 자들의 반란, 희망의 전조
작은 교회인가 짝퉁 대형 교회인가|작은 교회가 희망이다|작은 교회 전임사역자의 생계 문제|1987년 체제의 한계를 넘어서

다시 민중 속에서 신을 보다_타자성의 신학과 신앙 운동들
배제된 자들과 함계했던 신|다시 민중의 눈으로 성서를 보다|그리하여 도래한 신들의 사회

덧붙이는 글 한국 개신교의 정치세력화, 그 우울한 풍경
1990년 이후의 한국 개신교|신화의 붕괴|위기, 악순환|정치세력화 그리고 극우 벨트|사회적 영성의 회복

후기   설교는 예언이고, '비평'이다_설교 쓰기에 관한 나만의 이야기
설교의 딜레마|수다 떨기로서 '하늘 뜻+나누기'|'지금 여기'의 삶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가|성서 구절은 어떻게 인용해야 하는가|설교가 비평이듯, 설교도 비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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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환경연구소와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공동주최하는 유익한 강연을 소개해드립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2012 지구의 날 기념, 생태신학 세미나]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신학과 윤리

1985년 고든 카우프만(Gordon D. Kaufman)은『핵 시대의 신학(Theology for a Nuclear Age)』에서 핵은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그리스도적이며, 그 자체로 성령의 역사와 반대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인간이 자기 자신은 물론 우주 생명까지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상황에서 하나님의 개념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후 약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핵무기로 인한 멸절의 공포와 핵발전으로 인한 피폭의 위협 아래 살고 있습니다. 작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대재앙은 우리에게 우리가 사는 핵의 세계가 결코 안전한 세계가 아님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더구나 한반도와 동북아시아가 세계 최대의 핵 밀집 지역이라는 사실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일대 각성과 새로운 삶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핵과 기독교 신앙은 결코 양립할 수 없음을 밝히는 한국 그리스도인 신앙선언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시대와 신앙의 요청은 분명합니다. 지금은 한국 신학자들이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신학’(theology for a nuclear-free world)을 상상하고 열정과 지혜를 모아가야 할 때입니다. 카우프만이 ‘핵 시대의 신학’을 이야기했다면, 지금 우리는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신학과 윤리’를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이에 우리 연구소에서는 매년 지구의 날을 기념하여 개최하는 생태신학세미나의 올해 주제를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신학과 윤리’로 정하고, 다음과 같이 초대하오니 적극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은 '핵없는 세상을 위한 신학과 윤리' 연구에 참여할 연구자를 찾습니다. 아래 참조)


- 일시 : 2012년 4월 23(월), 오후 2~5시
    ※ 세미나를 콜로키움 형태로 진행합니다. 참여하실 분은 아래 연구주제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 때, 발표 가능한 날을 모두 표기해주시면 최대한 많은 분들이 참석할 수 있는 날로 확정하려고 합니다.

- 장소 : 기독교회관 2층

- 목표 : ① 최근 발표된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신앙선언’을 검토하고, 
               이후 확장, 보완, 심화시켜나가야 할 신학적 연구 과제 도출.
           ② 이 과정을 통해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 신학자 네트워크(가칭)’를 구성.
           ③ WCC 부산총회 전, 핵에 대한 한국 신학자의 성찰을 담은 신학선언과 단행본을 출간,

- 주최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기독교환경운동연대

- 후원 :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연대,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 내용 : 1)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기도회
            2) 발표와 토론 1, 2부 / 종합토론 
                1부 - ① 피폭자와 십자가, ② 핵과 성서, ③ 핵 과학과 신학,
                        ④ WCC 및 세계 신학계의 성찰 
                2부 - ⑤ 핵 없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 ⑥ 핵무기와 평화윤리, 
                        ⑦ 동아시아 비핵화를 위한 종교간 생명연대, ⑧ 기타 (자유주제)
※ 초청글과 함께 첨부해놓은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신학과 윤리’ 세미나 참여신청서에,
이번 세미나의 진행 및 참여방식에 관해 설명해놓았습니다.
참고하셔서 참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문의 및 제출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02-711-8905, 011-9966-1557),
                       ecomiho@hanmail.net

- 세미나(연구 및 발표) 참가신청서 제출 마감 : 2012년 4월 5일(목)

* 파일첨부 - 1. "핵없는 세상을 위한 신학과 윤리" 생태신학세미나 초청글
                  2. "핵없는 세상을 위한 신학과 윤리" 생태신학세미나 연구참여 신청서

12_핵_생태신학새미나_초청글.hwp

12_핵_생태신학새미나_연구발표신청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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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하나님과 같이
- 요한복음 5장의 이야기

송진순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박사과정)

요한복음서는 분명하고 일관된 어조로 예수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빌립보서와 히브리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찬송시도 요한의 고백만큼 과감하지는 못했다. 요한의 전승을 만든 사람들과 요한의 기자는 유대적 배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음에도 왜 유대인들이 보기에 신성모독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예수를 이야기했을까? 요한복음서의 청중들은 예수가 하나님과 같다는 그들의 고백을 어떻게 경험하고 이해했을까? 

   요한복음 5장 18절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고발한다. 그들은 예수가 안식일을 범했으며 하나님과 자신을 동등하게 여긴 것에 신성모독죄를 물어 그를 죽이고자 혈안이 되었다. 적어도 요한복음을 쓴 기자의 눈에는 예수가 불경스러운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었음은 확실하다. 물론 이 단락을 두고 L. 마틴은 예수 시대가 아닌 1세기말 기독교 공동체의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반증, 곧 적대적인 주변 세계에서 고발당하는 기독교 공동체의 정황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예수 시대와 요한의 공동체 시대를 넘나드는 요한의 두 차원의 드라마는 요한복음을 꽤 읽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무대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유대인들이 안식일 준수보다도 예수와 하나님의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는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그들 스스로 선뜻 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한복음 5장은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치유받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 외곽으로 난 길을 걷다 베드자다 연못 돌기둥 근처에 모인 사람들을 보게 된다. 여러 병자 중 특히 한 사람, 한눈에 봐도 그 병세가 오래된 사람을 보고 묻는다. “낫고 싶으냐?” 그는 짧은 물음에 ‘그렇다’는 답변 대신 “물이 동해야 하는데, 나를 넣어줄 사람은 없고…….”부터 시작해 꾹 참았던 말 보따리를 풀 듯 제 사연을 꺼내 보였다. 이에 “일어나 걸으라.”는 예수의 말에 오랜 병고가 무색하게 그는 치유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타이밍이다. 하필 병자가 자리를 들고 일어난 때가 안식일이었다. 승냥이 같은 유대인들이 그런 타이밍을 놓칠 리는 없다.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면 안 된다고 점잖게 훈계를 놓던 유대인들은 치유를 행한 사람이 예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이 일로 인해 예수를 박해하였다(요5:16)고 요한복음서 기자는 전한다. 

   예수와 유대인들(바리새파)과의 안식일 논쟁은 요한복음서 뿐만 아니라 공관복음서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안식일 논쟁에 대해 공관복음서는 안식일의 진정한 주인을 천명하며 새로운 정결례에 대한 예수와 예수운동의 삶의 자리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들려준다(막2:23-28; 마 12:5-6; 눅13:10-17; 14:1-6). 그러나 요한의 기자에게 포착된 안식일 논쟁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할 하나의 빌미일 따름이다. 그는 유대인들만큼이나 타이밍을 정확하게 사용할 줄 알았다. 그는 안식일을 구실로 유대인들의 입을 빌어 요한복음의 핵심, 즉 요한의 그리스도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안식일.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는 예수의 답변에 요한복음서의 기자는 유대인들의 상황을 전한다. “이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더욱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것은 예수가 안식일을 범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불러서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았기 때문이다.”(요5:18) 

   안식일에도 우주만물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에 대해 반박할 수는 없었겠지만 이를 근거로 안식일을 수시로 어겼던 예수나 예수의 사람들의 행태야 유대인들에게는 분명 거슬리는 행위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정작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예수가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불러 자신과 하나님이 같다고 하는 바로 그 지점이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의 기독교인들이야 ‘하나님 아버지’는 으레 자연스러운 호칭이기에 성서 어디든 발견되리라 생각하겠지만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신 32:6; 시 68:5; 89:26; 사 9:6; 63:16)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자연과 역사를 초월해있기에 인간과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여 계약을 맺었고 역사 가운데 자신을 드러냈다. 그렇기에 유대인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였으며 세계 안의 어떤 존재도 감히 하나님과 같을 수는 없었다. 물론 이사야 예언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으로 맺어진 부자관계로 보여주었지만, 질곡의 역사에서 유대인들이 거듭날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계약 관계를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그런데 유대민족을 흔들었던 위기가 1세기 팔레스타인의 흙먼지 이는 척박한 땅에 다시 찾아 왔다. 이미 지중해 지역을 장악한 로마 제국의 압제가 그들 깊숙이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유대민족 내부에는 정치적 혼란과 종교적 타락 그리고 가난으로 지속적인 반란이 일어났고, 다양한 형태의 유대교적 갱신운동들이 우후죽순 퍼져가는 때였다. 또 다시 민족의 혼란 속에서 유대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선인들이 그러했듯 율법준수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정립이었다. 유대인들에게 행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그와 같이 되는 것은 제일계명을 어긴 명백한 오만이며 악이었다.(2마카 9:12) 

    그러나 일반의 유대인들은 더 이상 지도자 유대인들의 언행에서,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들의 자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있어서 너무 멀리 있었고 위태롭고 지난한 삶은 너무 가까이 있었다. 그보다는 가난하고 소외된 낮은 이들과 동고동락하면서 함께 먹고 마시고 돌보고 그들을 치유했던 예수. 애끓는 심정으로 그들의 고통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인간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이 그들의 삶 깊이 들어오게 되었다. 요한복음 5장에서 보듯, 그것은 오래된 병자에게 먼저 다가가 몸을 낮추어 그를 살피고 말을 걸었던 예수.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병자의 말에 공감(共感)하고 눈을 맞추며 치유를 했던 예수의 자비(慈悲)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예수 시대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목도한 이들의 생생한 증언과 확고한 믿음으로 예수의 공감과 자비의 경험은 그들과 그들이 속한 공동체 가운데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되었다. 

   이제 유대민족의 하나님이 역사와 신앙의 위기 가운데 예수를 믿는 개개인의 삶에서 자신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예수의 눈에서 하나님의 눈을, 예수의 말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투명하게 보고 들었다. 예수와 하나님, 예수와 그들 그리고 예수를 통한 그들과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하나됨의 경험-너의 고락(苦樂)이 내 것이 되고 나와 너의 경계가 사라지는 영적인 통찰을 말하고자 그들은 예수를 감히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그들에게 예수는 하나님이었고 하나님은 예수였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극명한 차이와 거리를 뚫고 세상으로 들어온 예수라는 존재를 인식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불경스러운 발언이야말로 하나님을 경험한 그들에게 진정성있는 울림이었다. 율법, 성전 혹은 회당이라는 스크린을 걷어내고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내 안의 모신 자들의 말하는 방식이었다. 유대인들에게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신성모독의 발언은 요한의 사람들의 대담하고도 발칙한 경험의 순간을 의미했다. 

   예수를 하나님과 같이. 우리에게는 닳고 닳아 진부해진 이 교리 조각은 애초 요한의 사람들의 삶을 바꿔 놓은 떨리는 고백이었다. ‘예수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경위를 두고 많은 학자들이 유대적이냐 혹은 헬라적이냐 하며 그 근원을 따져 물었다. 책상 앞에 앉은 이들의 수많은 가능성의 범주에서 요한의 예수 고백은 매번 다른 채색을 더했지만 원화를 생동감있게 복원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펄떡이는 심장박동과 고통스러운 환희를 경험한 그들의 고백이 유대세계의 박해와 축출의 상황을 넘어 요한의 신학과 신앙의 역사를 새롭게 기록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이 되는 대담한 고백의 전승자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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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전쟁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강도떼가 숨어서 사람을 기다리듯, 제사장 무리가 세겜으로 가는 길목에 숨었다가 사람들을 살해하니, 차마 못할 죄를 지었다. ― 「호세아서」 6장 9절

이스라엘 국이 멸망하기 직전의 혼란 상황을 묘사하는 텍스트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수수께끼 같습니다. 세겜 길목에서 제사장들이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일까요? 

‘세겜’은, 과거 블레셋 군과 사울 군이 싸울 때 양군의 진영이 있었던 저 유명한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의 기슭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유다국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국의 수도인 사마리아로 가고자 할 때 도로가 세겜을 지나가게 되어 있지요. 더 나아가 이집트에서 시리아로 이르는 내륙 대상로가 이 지역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여 ‘세겜 기슭’이란 남에서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성으로 혹은 사마리아 성에서 유다 국으로 가는 길목인 셈이지요.

호세아 예언자는 이곳을 통과하는 이들을 제사장들이 살해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을 통과하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남에서 북으로 가는 이들일까요 아니면 북에서 남으로 가는 이들일까요?

이것을 알아내는 일은 간단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국은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전 국토가 유린당하고 있었습니다. 분노한 제국의 군대는 끈질기게 저항했던 성읍을 불태웠고 지도자들의 몸둥이를 기둥에 꿰어 성벽에 내걸어 놓았으며, 그곳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해댔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근 농지를 불살랐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또 노예로 끌고 갔습니다.

한때 시리아-팔레스티나의 패권국으로 광대한 영토를 병합했던 제국 이스라엘은 거의 모든 영토를 빼앗겼고 단지 사마리아 성과 그 인근지역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호세아서」는 내용상 1~3장과 4장 이후로 나뉘는데, 1~3장이 이스라엘 국이 아직 번성하고 있던 때를 반영하고 있다면, 4장 이후는 아시리아 군의 침공으로 전쟁의 참화 속에서 멸망하게 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상황을 다루고 있지요. 앞이 이스라엘의 영토가 방대했던 때였다면, 뒷부분은 사마리아 지방으로 쪼그라든 때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3장에서는 ‘에브라임’이라는 용어가 한 번도 사용되지 않는데, 4장 이후에서는 무려 36번이나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大) 이스라엘’이던 시절이 지나고, 왕국 말기에 사마리아 인근의 에브라임 지역만을 통제하고 있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세겜의 길목이란 남쪽으로 향하는 백성들이 국경을 통과하는 길목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북쪽에서 아시리아 군이 밀고 내려오니 사람들은 세겜을 통해 남으로 피란을 떠나는 것이지요. 살기 위해서, 군대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 파괴의 잔혹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곳을 제사장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왕의 군대가 아니라 제사장들이 말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왕궁의 녹을 먹던 사제들이었겠지요. 국가가 번영하던 때 연일 정복지에서 온 전리품이 이곳을 통과해서 왕실로 갔고, 봉신국이던 유다국 등의 공납물도 여기를 거쳐 지나갔습니다. 또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에서 시작해서 시리아로 가는 대상도 이곳을 지나갔지요. 그때마다 막대한 기부금이 왕실의 이름으로 제사장들에게 하사되었습니다. 하여 그들은 이곳의 강력한 종교귀족으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실이 몰락할 지경에 놓여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왕실과 운명을 같이할 것입니다. 그러면 야훼께서 축복을 주셔서 이스라엘을 다시 번성케 할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했고 또 그렇게 믿었습니다.

한데 백성들이 도성을 피해 남으로 피란을 떠나려 합니다. 사제들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하여 세겜 길목을 지키며 그곳을 지나는 백성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해댑니다. 왕실과 성전의 운명을 공유하지 않는 불신실한 이들을 신의 이름으로, 거룩한 이스라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살육을 합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바로 그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그런데 ...... 길르앗은 폭력배들의 성읍이다. 발자국마다 핏자국이 뚜렷하다.”(6~8절)

제사가 신실함의 표상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국란 상황에서 제사에 몰두하며 그것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무참히 죽였던 것입니다. 신정국가 사회에서 제사는 국가의 이데올로기이자 미래의 청사진이었습니다. 그 이데올로기와 청사진이 추구하는 것은 ‘풍요’였습니다. 신은 풍요를 주는 분이었고, 제의는 그러한 풍요를 표상하는 방식으로 화려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의를 주관하는 제사장들을 우월한 계급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호세아는 바로 이러한 제사종교의 폐단을 비판합니다. 그가 얘기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헤세드)‘과 ’하느님을 아는 지식‘(다아트 엘로힘)입니다. 그것은 풍요나 계급의 신, 그것을 보증하는 격식으로 존재하는 신이 아니라 (고통으로부터의) 구원과 (위계질서로부터의) 해방을 선사한 ’출애굽의 신‘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전쟁에서 탈출하려는 이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회피하려는 이들의 행동을 저주하고 그 몸을 죽음의 계곡으로 내동댕이치고 있습니다. 그러한 피비린내 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살고자 하는 노력을 가상히 여기고 그들에게 구원과 해방을 선사하는 신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텍스트는 오늘 한국의 대형교회 지도자들이 벌이는 행동들을 연상하게 합니다. 한국에서 교회는 지난 1990년 이전까지는 온갖 번영과 풍요를 누렸습니다. 그때 교회는 궁핍에서 풍요를 선사한 하느님을 선포했고 그 선포가 실현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또한 교회는 그 풍요와 영적 구원을 동일시하는 한국적 교리를 제도화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견고한 풍요의 성전 외부로 떨려난 이들을 저주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 이단들, 타종교인들, 성적 소수자들 등이 그들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축복과 저주의 담론을 예배 속에 제도화했고, 그것을 통제하는 관리자, 곧 성직자를 통해 그러한 배타적 성전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그런데 풍요의 시대가 가고 환란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자본의 광풍이 사람들을 헤어 나올 수 없는 저주의 늪으로 내던져 버렸습니다. 국가와 국민은 위기에 처했고, 지구자본체제라는 제국의 질서 속에서 공공 영역이 점점 와해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도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1990년 이후 저성장 상황에 놓여 있다가 1995년에서 2005년 사이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시민사회는 교회에 대한 신뢰를 폐기했고 심지어 혐오스러워 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위기에 대한 교회의 대응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발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인 번영신학의 철저한 순응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일상에까지 관철시키는 생활태도와 신앙태도로 무장하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실패자에게 무관심하거나 냉혹한 신앙제도로 교회를 재정립하도록 이끕니다.

둘째는 배제주의 이데올로기를 일상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념의 타자, 종교의 타자, 인종의 타자, 계급의 타자, 성적 타자에 대해 무자비한 종교제도를 추구하는 신앙을 낳습니다. 최근 한국교회는 이러한 대열에서 이탈하려는 자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일부 대학교수들을 강단에서 쫓아냈고, 이념의 타자들을 사냥하기 위해 온갖 색깔론을 발명해냈으며, 타종족․기층대중․성소수자 등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풍요의 신학을 재천명하고, 물량적인 축도의 종교로 사람들을 다시 끌어들이려 합니다. 하여 자본주의와 반공주의, 귀족주의, 성직자 중심주의를 추구하는 신앙제도 속에서 사람들을 묶어두려 합니다.

해서 우리는 호세아 예언자처럼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구원과 해방, 하느님에 관한, 성서에 관한 지식을 왜곡하는 이들과 양보 없는 일전을 벌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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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준혁아범님의 믹시

    2012/03/06 09:48
    삭제
    구약은 문자주의자들이 인용하는 그들의 여러만행의 근거자료라고 생각했는데... 이리도 그들의 잘못을 꾸짖는 말씀도 있군요... 역시 구약에 대해서도 포기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역시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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