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비


<욥기>를 통해 본 고통 마케팅에 대한 비판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눕기만 하면, 언제 깰까, 언제 날이 샐까 마음 졸이며, 새벽까지 내내 뒤척거렸구나. 내 몸은 온통 구더기와 먼지로 뒤덮였구나. 피부는 아물었다가도 터져 버리는구나. ―〈욥기〉 7,4~5 



    거실 창가에 배열해둔 딸의 사진들을 바라보며 그는 한참을 미동도 않는다. 생전 처음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에 눈길이 머문다. 촛대바위와 바다를 등지고 친구와 두 손을 입에 모아 힘껏 소리를 내지르는 포즈의 사진을 본다. 그 옆에는 가족과 함께 다녀온 미국 여행 사진이다. 콜로라도의 메이사 베르데 국립공원 입구에서 오른 손을 흔들고 있는 딸은 아직 초등학생의 모습이다. 그 옆에는 검은 사각모에 빨강, 파랑, 검정이 어우러진 가운을 입고 어설프게 카메라를 바라보는 어린 딸의 유치원 졸업사진이 있다. 벌써 14년이나 지난 일인데, 몇 달, 아니 며칠 전의 일 같기만 하다. 그리고 가운데, 커다란 눈이 예쁜 딸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다.

   수능시험을 치룬 다음날 딸은 오빠의 오피스텔에서 목을 매고 말았다. 지리학과에 들어가고 싶어 했고, 입학만 하면 페루 여행을 허락받았던 그녀는 두 번의 실패와 세 번째 예감된 실패를 비관하며 서둘러 삶을 마무리 지어버렸다. 삼년간 유예된 페루 여행을 육체를 벗어버리고서라도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죽던 그 한 해 전에 대학생이던 아들이 군 입대를 앞두고 페루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딸의 인내력은 폭발하고 말았다. 함께 가겠다고 며칠을 밥도 안 먹고 시위를 하더니 학원에서 쓰러졌고, 몇 시간 링거주사를 맞고 퇴원한 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녀의 아비는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한두 주 빠지고 여행 좀 한다고 무슨 큰일이라도 날까봐 딸의 자존심을 그토록 헤집어 놓았을까. 링거주사를 꽂은 채 몇 시간을 침대에 구속되어 있던 딸의 속마음은 이미 그때부터 자기에게 한계시간을 부여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그는 타살자의 심정이 되어버린다.  

   딸을 잃고 자책하던 한 아비의 일이 기억에서 희미해졌을 무렵, 그러니까 그때로부터 만 2년이 조금 모자란 날, 아들의 돌연사로 망연자실해 있던 또 다른 아비가 있었다. 대학원을 다니며 유학을 준비하던 과학도인 아들이 갑자기 쓰러졌고, 가족이 달려왔을 땐 이미 소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였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채 못 되어서 아들의 사망을 확인하는 서명을 했고, 슬픔도 눈물도 없이 3일간의 장례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고자 미뤄두었던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겨우 진정을 찾은 듯 앉아있는 아내가 다시 오열하며 실신할지 몰라 걱정하여 안경을 닦으며 조용히 책장을 넘기려 하는데, 자제할 수 없이 슬픔이 솟구친다. 그날 밤 그는 창자가 끊어질 듯 통곡했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 함께 다니기로 했다. 구원에 관한 교리가 여전히 납득되지는 않았지만, 혹여 아들이 천국에 가는 데 아비가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교인이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장례를 집전했던 목사는, 이 아이가 교회를 다니지 않았으니 ‘성도’(聖徒)란 문구를 쓸 수는 없지만, 부모가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이미 고인이 된 자녀도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다고 하며 성도임을 ‘보증’하는 의미에서 그 문구를 허락한다고 했다.

    그 논리들이 도무지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만의 하나 그게 정말이라면 어쩌나 싶어 열심히 기독교 신자가 되고자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바쁘다 해도 예배는 반드시 참여하고, 신자대학에도 등록했다. 날마다 성서를 읽었고, 관련 서적들을 탐독했다.

   신앙이라는 게, 그 교리라는 게 허술하기 그지없었지만, 하여 순간순간 회의적 물음들이 튀어나왔지만, 폐부를 찌르는 목사의 한 마디 말에 그는 모든 비판적 문제의식에서 스스로를 무장해제시켰다. “신앙이 없으면, 하느님은 나를 치거나 혹은 가족을 치십니다.”

    이 말은 수준 높은 지식의 소유자인 그가 신앙에 관한 한 자기의 지식을 유보시키고 교회의 가르침에 순순히 따르게 하는 효력을 발휘하였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그에게 이 말은 자기가 자식을 죽였다는 자책감을 낳은 것이다.

   그가 내게 물었던 첫 질문은 “어떻게 해야 신앙이 빨리 성장할 수 있나요?”였다. 대개 이런 물음은 교회의 제도 속에 순순히 편입되는 것에 자기 분열을 일으키는 이들에게서 나온다. 그런 이들은 교회의 신앙제도의 모범생이 되려는 강렬한 의지를 품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끊임없이 그의 내면에서 그 의지가 흔들리고 있다. 억제하고 있기에 그 동요가 의식으로 표출되지는 못하지만, 자기가 흔들리고 있다는 자각에 좀처럼 이르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무의식은 끊임없이 신앙제도의 모범생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동요하게 한다.

    어떤 말이든 위로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만난 이가 이런 물음을 던지면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신앙성장을 위한 비법 전수’, 이 순간 그가 위로받을 수 있는 최선의 답은 바로 이런 것이겠다. 한데 나는 그런 ‘묘수’를 알지도 못할뿐더러, 심지어 묘수라고 회자되는 것들에 야유를 퍼붓는 데 익숙한 자니 그를 위로할 길은, 내게는, 별로 없다.

    추측컨대 평소의 그라면 아마도 나와 좋은 대화를 할 수 있을 법하다. 하지만 자식의 돌연사에 직면한 이에게 신앙제도와 신앙 사이의 거리에 대해 얘기하고, 교회의 가르침이 대변하는 신앙제도, 그것의 위기를 넘어서는 것에 관한 냉철한 토론은 얼마나 무망한 것일까.

    그럼에도 서투른 카운슬러인 나는 그가 듣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닌 얘기로 대화를 이끌어갔고, 점잖고 사려 깊은 사람인 그는 나의 어법 속으로 순순히 들어와 주었다. 다행히도 그는 30년쯤 전, 대학생이던 시절에 기독교에 대한 남다른 지적 탐구의 기회를 가졌던 사람이었고, 이 대화는 오래 묵은 그 기억을 회상해내는 시간이 되었다.

    창조가 어떻고, 노아의 방주가 어떻고, 예수의 기적이 어떻고 등등, 얘기가 열띠게 오가던 중 그는 뜬금없이 자기의 숨겨진 갈등을 털어놓는다. 자식의 죽음 이후 다시 교회를 다니면서 꾸물거렸던, 하지만 잘도 숨겨져 있던 내적 흔들림의 실체가 언어를, 즉 형상을 얻게 된 것이다. 자기에게 닥친 이 고통에 대해 하느님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무슨 죄가 있기에 그의 목숨을 그렇게 앗아간다는 것일까요?” “도대체 교회에 안 다녔다고 자식을 빼앗아 가는 신이 어딨나요?”라고.

    하느님을 잘 믿으면 시련이 닥쳐와도 결국에는 몇 배로 보상해 주신다는 의미로 목사가 권한 〈욥기〉에서 그는 이미 전혀 다른 의문에 직면하게 되었다. 서론부(1~2장)와 결론부(42,7~17)에 나오는 이야기대로라면, 아들의 죽음은 결국 하느님이 사탄과 벌인 내기에 다름 아니라는 당황스런, 하지만 타당한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욥기〉에서 이런 의문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텍스트 속의 하느님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 한데, 이 글 앞에서 인용된 본문인 〈욥기〉 7,4~5 같은 내용이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는 사람, 그 처참한 고통으로부터 잠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시간마저도 박탈당한 사람, 그렇게 매순간 지옥을 체감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은, 죽은 아들의 시선으로 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이 구절은, 그가 기도생활을 잘 못한 탓에 아들이 죽은 것이라는 목사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해석학적 문제의식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욥기〉에서 서두와 끝의 이야기를 빼면, 내내 욥의 원망과 항변으로 점철되고 있다는 것을 읽어냈다. 욥의 친구들, 나중에 그 대화에 끼어드는 젊은이, 그리고 심지어 하느님마저도 닥친 재앙과 신앙 사이에는 인과성이 있다는 통념의 수호자들이다. 하여 심문관처럼 욥을 추궁한다. ‘네 잘못으로 네가 재앙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한데, 실은 그것이 하느님의 장난이라니......

    요컨대 〈욥기〉는 당시 통념으로 작동하던 인과성의 신학에 대한 저항을 담은, 매우 지적인, 일종의 반신학적 통속적 풍자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이 대중 사이에서 회자되는 과정에서 본래의 서두와 결론이 개작되어 통속소설화된 것이 우리가 접하는 〈욥기〉인 듯하다. 그러므로 본 내용을 통속화시킨 서론부와 결론부를 빼고 본론부만 읽는다면, 네 잘못이 재앙의 원인이라는 식의 통속적 주장에 대한 욥의 반신학을 읽을 수 있다.

    딸의 자살에 직면해서 자기의 잘못을 상상했던 한 아비, 그리고 아들의 돌연사에서 자기 자신의 불신앙을 보아야 했던 다른 아비, 이 둘은 바로 그 생각으로 인해 딸이, 그리고 아들이 겪고 있던 세상의 고통에 직면할 수 없었고, 그럴수록 세상은 그 죽음들로부터 면죄부를 얻게 된다. 물론 때로 고통에 직면해서 자기를 돌아보는 것은 매우 훌륭한 성찰의 태도다. 한데 문제는, 자책이라는 고통의 표현 방식이 종교제도나 국가제도, 심지어는 자본에 의해 마케팅의 도구로 활용되곤 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욥기〉는, 통념에서 벗어나 읽는 이에게는, 바로 이러한 은폐의 신학에 대항하는 반신학적 신학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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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15년 전 내가 노무현을 찍기까지 


    5.18 37주기를 한 주일 앞두고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성가대가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이 아니라 제창으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되고 나서 나흘이 지났는데 여러 부분에서 개혁적인 청사진을 펼지고 있습니다. 국정교과서문제, 비정규직 문제, 위반부 재협상 문제, 최순실, 세월호 사건 재조사, 청와대 비서진의 진용 등, 국민들로 하여금 많은 기대를 하게끔 합니다. 물론, 앞으로 수구보수 세력에 의해 만만치 않은 저항에 부딫치겠지만 잘 헤쳐나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15년 만에 대통령선거에 참여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될때는 미국 시카고에 유학중이었습니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시카고에서 듣고 불쾌하고 화가 나서 잠을 이루지 못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를 손 꼽아 기다렸나 봅니다. 15년 만에 대통령 선거를 하러 투표장소로 가는데 15년전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노무현이 당선되었던 그 선거 말입니다. 저는 당시 민노당 당비를 내던 당원이었습니다. 당시 민노당 대선 후보로 권영길이 나왔습니다. 정몽준과 노무현의 연대가 선거전날인가 깨졌죠. 저 뿐만이 아니라 민노당의 많은 당원들이 흔들렸습니다. 선거 당일 투표소로 가면서도 누구를 찍을지 결정을 못했습니다. 핸드폰으로는 민노당에서 문자메세지가 막 왔죠. 흔들리지 말고 권영길에게 투표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당시 저는 노무현을 찍었습니다. 노무현을 찍으면서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정치적 선택이 최선이 아닌, 최악을 피해야하는 소극적 행위구나, 라는 현실정치에 대한 한계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 최악을 피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일이고, 사력을 다해 온 힘을 다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이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서글프기 까지 했습니다. 그 즈음에 신학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선택은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 라는 물음을 갖고 주변에 있는 동료들이랑 한 동안 실랑이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 저는 노무현 정부 초기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미국에서 노무현 정권의 어려움, 이명박의 당선, 노무현의 죽음, 박근혜의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지 한 달만에 세월호 사건이 터졌고, 세월호 사건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정부의 대처는 결국 박근혜 정권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정권이 침몰한 것 같으나 더 근본적으로 민심을 버린, 자식을 버린 정권에 국민들이, 아니 하늘이 심판한 것이라 믿습니다. 이런 숨가쁜 사건들을 지나고 저는 다시 15년 만에 대선에 참여했습니다. 15년 만에 대선에 참여하면서, 15년 전 직면했던 문제와 다시 대면했습니다. 15년 전 대선에서는 권영길을 찍을까, 노무현을 찍을까, 였는데, 15년이 지난 2017년 대선에서는 심상정을 찍을까, 문재인을 찍을까, 여러분 제가 누구를 찍었을까요?  


도입


    제가 올 들어 주기도문에 대한 연속 하늘 뜻을 나누고 있고, 오늘이 마지막 여섯 번째 ‘악(惡: Evil)’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를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이 말은 예수 당시 일반 민중들이 메시아에게 기대하는 바이고, 메시아를 향한 염원의 최종 완결판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도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주기도문의 마지막을 ‘우리를 악에서 구해 달라’는 간곡한 기도로 끝을 내지 않았을까 합니다. 좀 오바해서 이 구절을 우리현실에 대입하면, 2017년 대선에 참여했던 대한민국 유권자의 70%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이 이 마음 아니었을까 합니다. 우리나라를 악에서 구해 달라, 적폐를 청산해라, 과연, 문재인은 이것을 실행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우리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다만 악에서 구해 달라’는 예수의 기도는 예수조차도 이루지 못했던 내용이 아닐까 합니다. 악의 문제는 그리 만만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악은 무엇이고,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오늘 하늘 뜻 나누기에서 제가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내용입니다.


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예전에 조지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이란.이라크, 그리고 북한을 향해 ‘악의 축“ (Axis of evil)이라 지목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정치적으로 정당화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부시가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란을 생각할때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만든 영화속에 등장하는 이란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그가 만들었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올리브 나무사이로‘ ’체리향기‘에 나오는 순박하고 천사같은 이란 사람들이 악의 축이라니, 저는 부시가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라크를 생각할때마다,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로, 2대에 걸쳐 이어지면서 폭행을 당했던 불쌍한 이라크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부시가 악의 축으로 지목한 북한을 생각할때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괜히 울화가 치밀고, 너희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라고 따지고 싶습니다.

    어쩌면 악은, 누군가를 악이라고 지목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것이 호명되는 순간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악은 정치적 의도와 음모의 소산인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를 악이라 지목하면서 그것을 공식화 한다는 것은, 우리, 즉 내부를 공고히 하여 하나로 뭉치게 하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지니는 문제(예: 권력의 정당성, 현실정치에서의 실정, 그 밖의 여러 내부 소란들)들을 일거에 소거할 수 있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악은 대부분 정치 권력에 의해 창조되고, 권력의 관심 속에서 길러졌으며, 다 크고 나면 권력에 의해 제거 당해야 하는, 혹은 권력의 유지를 위해 계속 있어줘야 하는 불행하고 불편한 존재였습니다. 이것이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악에 대한 범박한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말하는 '악'


    그렇다면 신학에서는 말하는 ’악‘은 뭘까요? 존재론적으로 악이라는 실체가 있는 것입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합니다. 존재론적으로 모르겠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악의 현상은 우리는 매일 목도합니다. 그것이 세월호 사건이나, 용산참사 같은 거대한 악일 수도 있고, 개개인에게서 소소하게 일어나는 일상적이고도 미시적인 악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모든 종교에서 악에 대한 물음은 가장 중요한 화두이고, 마지막으로 남겨진 문제였습니다. 이런 악의 심각성을 알기에 예수는 주기도문 제일 마지막에 악의 문제를 배치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악’은 너무나 큰 주제이기에 성서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그것을 한 눈에 조망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한 학기 세미나 제목입니다. 오늘 하늘뜻에서는 주로 예수가 말했던 악에 대한 이야기 위주로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가장 많이 이야기 되는 것이 악이 존재인가? 비존재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답을 했던 사람이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그는 악을 “선의 결핍”으로 규정을 합니다. 우리가 100% 충만한 존재,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을 듣는 완벽한 존재인데, 시간이 흐르고 상처를 받고 아픔을 겪으면서 100% 충만함이 깨졌다는 거예요. 이것을 어거스틴은 신플라톤주의 플로티누스의 유출설을 통해 설명합니다. 플로티누스에 따르면 물질이란 일자(一者)의 유출이 끝나는 곳에 위치합니다. 물질은 악의 유통로입니다. 이 말은 악 역시 선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어거스틴에게 있어 악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악은 선의 바깥에서 비존재로 위치하는 것입니다. 어둠은 빛의 결핍이고, 추위는 열의 결핍이고, 미움은 사랑의 결핍입니다. 그렇듯이 악도 선의 결핍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거스틴의 악에 대한 이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얼핏 어거스틴의 악에 대한 생각은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악의 현상을 너무 나이브하게 보는 것 아닌가, 혹은 일종의 어용철학자, 관변학자의 발언인 듯이 보입니다. “세상은 완벽해, 우주는 완벽해, 네가 지금 힘든 것은 현실에 치여서 네가 원래 지녔던 온전함을 상실했기 때문이야. 그 온전함을 빨리 회복하렴. 넌 할 수 있어! 네가 지금 불행한 것은 네가 수양이 부족하고 공부가 부족하고 기도가 부족한거야. 너의 수양과 공부와 기도가 100% 회복되는 날 세상은 변해있을거야. 넌 할 수 있어. 내가 기도할고 응원할께”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나요. 요즘 유행하는 힐링관련 책들의 결론입니다. 한국 사회를 휩쓰는 인문학 힐링 담론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악을 선의 결핍이라 주장했던 어거스틴의 그것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의 생애를 살펴보면, 어거스틴 만큼 또 악의 문제에 맞서 실존적으로 몸부림쳤던 사람은 없습니다. 젊었을 때는 육체적 쾌락에 탐닉했고, 이교인 마니교에 빠지기도 했으며, 전쟁의 한복판에서 공포속에 떨었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열병으로 죽죠. 누구보다도 악의 실존을 철저히 체험했던 사람이 어거스틴입니다. 제가 윤리를 하는 입장에서 어거스틴을 다시 읽으면서 어거스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다르게 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윤리는 기본적으로 선택과 결단, 그리고 행위의 문제입니다. 어거스틴의 악에 대한 생각이 나이브할 수 있겠지만, 어거스틴의 발언을 윤리적으로 바라볼때는 나름 유의미한 면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악의 존재론적 의미를 인정하지 않죠. 악을 존재론적으로 인정하는 순간 인간의 무책임이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뭘 해도 안돼. 할 수 없었어, 워낙 악이 강력하니까. 우리의 행위가 소용없어, 세상이 뭐 다 그렇고 그런거지. 그냥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자” 이런 식의 운명론, 혹은 냉소론이 인간이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가고자 할 때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어거스틴의 악을 ‘선의 결핍’ 이라고 보는 견해는 신정론(theodicy)이 아닌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인정론(anthropodicy)으로 윤리적 행위를 견인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가 말하는 '악'


    그렇다면 예수에게서 악은 무엇이었을까요? 복음서에 보면 예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예수의 공생애는 크게 두 가지로 예수의 사역을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이고, 다른 하나는 기적입니다. 기적은 크게 치유와 축귀로 나누어 집니다. 여러분들 기억나는 예수님의 귀신쫓는 이야기가 뭐가 있습니까? 가장 대표적인 것이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 축귀 이야기”(막 5장)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에 대해 마가복음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는 무덤 사이에서 사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었다. 여러 번 쇠고랑과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쇠고랑도 부수었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 없었다. 그는 밤낮 무덤 사이나 산 속에서 살면서, 소리를 질러 대고, 돌로 제 몸에 상처를 내곤 하였다.” 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예수가 제일 먼저 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네 이름이 무엇이냐?”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엑소시스트들 소재로 한 영화들을 보면, 악령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사람들 뒤에 숨어서 자신을 감춥니다. 악의 생존방식이죠. 자신을 숨기고 다른 사람을 통해 악을 저지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밝혀진다는 것, 즉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 자체가 악령의 입장에서는 패배입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는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악령은 뜻밖으로 순순히 자신의 이름을 털어놓습니다. “군대입니다. 우리의 수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My name is Legion; for we are many” (5:9)

    레기온은 단수한 군인들의 무리가 아니라, 대략 육천여 명의 보병과 칠백여명의 기마병으로 구성된 로마의 군단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이 대목에서 악에 대한 실마리가 나옵니다. 그것은 악령이 말했던 we are many 라는 말에서 분명해 집니다. 많다는 것이 악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수가 많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목사들 만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인 몇 명이야? 몇 명이다” 라고 말하면, “와 많다. 잘 되었네”, 라고 기뻐합니다. 이건 단순히 목사들의 경우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풍요로움을 갈망하잖아요. 그렇다고 볼 때, 악마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서, “우리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답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이 말은 풍요와 성공과 다산을 갈망하는 인간들의 마음속에 악이 있다는 말일 수 있고, ‘많음’만을 강조하고 추구하는 전체의 생각이 사탄의 논리 일 수 있고, 나라는 개인 역시 많은(many) 사람 중 하나라고 볼 때, 나 역시 언제든 사탄이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악의 전체성


    서구 역사에서 악에 대한 담론이 크게 변화되었던 두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중세 말입니다. 십자군 원정과 페스트의 출몰을 겪으면서 죽음의 일상화가 전 유럽을 휩쓸던 시기였습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죄악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죄를 고백하는 의식, 즉 고해성사가 본격적으로 교회안에서 시행되기 시작하던 무렵이 바로 그때입니다.

    악에 대한 성찰이 발전했던 다른 한 시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20세기 후반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홀로코스트 이후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유럽의 지성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나찌가 가능했나, 라는 물음이 대두되었습니다. 한나 아렌트 같은 사람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집단(many) 속 개인이 범할 수 있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주목합니다. 집단 속의 개인은, 전체 속의 개인은 자기가 하는 행위에 대한 반성적 고찰을 이루어 내지 못한다는 것이죠. 멀쩡하던 사람들도 예비군 옷만 입혀 놓으면 돌아이가 됩니다. 미셀 푸코가 “전체는 광기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라인홀드 니버라, “도적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전체주의와 악에 대한 비극을 노래합니다. 이들 공히 악의 전체성에 주목합니다.

    악령이 말했던 we are many는 악의 전체성을 언급할 때 각주로 달리는 중요한 근거입니다. 한마디로 자기들의 힘과 목소리가 크고 세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사회를 지배했던 힘과 목소리가 무엇이었는지 한번 회고해 보십시오. 그것은 권위주의, 가부장제, 서열주의, 반공주의, 경제제일주의, 패권주의, 이성애중심주의, 성과주의, 분열주의 등입니다. 이런 목소리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할 때, 이러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다수가 될 때 악이 작동되고, 반대파를 향한 혐오의 메카니즘이 등장하면서, 그들을 향한 공격이 정당화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다만 악에서 구해주십시오’라는 기도의 숨은 뜻은, 전체주의적인 논리 안에서 그 전체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불이익과 폭력과 배제와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가부장제라는 전체주의적인 논리에서 이 땅의 여성들이 남모르게 고통당하고 있다면 그것이 악입니다. 반공주의라는 전체주의 논리 속에서 누군가를 빨갱이로 지목하면서 아무런 이유없이 사회적으로 매장한다면, 그것이 바로 악입니다. 무한경쟁, 무한질주, 세계경영의 신자유주의의 모토속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우리가 보살피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전체주의를 인정하는 죄인들입니다. 예수는 본인이 했던 주기도문의 마지막에서 이런 악에서 우리를 구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에필로그


    이번 주간에 5.18 이 있습니다. 5.18는 이런 악의 현상학에 저항했던 우리 역사의 소중한 기록입니다. 저는 세월호 사건이 벌어지고 숨가쁘게 전개되었던 근래의 사건들도 악에 저항했던 한국 현대사의 소중한 기억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역사의 노력과 기도의 끝에서 우리는 지난 주간 대통령 선거를 통해 아주 자그마한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어찌 될지 떨리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악에서 구원해 주십시오.”라는 주기도문의 마지막 구절이 새삼 더 간절하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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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7.05.17 15:3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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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5월 14일 한백교회 '하늘뜻 나누기' 원고입니다


감사의 이유가 사라진 곳에서



김윤동
(본 연구소 행정연구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7~18, 개역개정)


    감사, 영광, 기쁨 찬양과 같은 송영의 언어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언어입니다. 이런 언어들은 그 무게로만 따지자면 사랑이라는 단어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신앙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과도 같은 언어이지요. 감사와 찬양, 기쁨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그 분을 향한 무한한 긍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송영의 언어는 존재론으로는 하나님이 ‘신’으로서 누리는 독점적인 지위를 밝히 드러내는 말이며, 동시에 윤리적으로는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늘 상기시키고, 겸손해야 함을 일깨워주는 언어들입니다.


   그런데, 실상 지금 우리의 생활과 기독 공동체 안에서는 정작 송영의 신학은 천박한 인과율의 굴레 안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제 아들이 이번에 좋은 대학에 합격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제 사업이 술술 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는 언어들은 우리의 주변에서 늘 맴도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송영은 번영신학과도 강력히 결합되어 우리의 기존 신앙 체계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한데, 요즘 들어서는 그런 번영신학이 약간 변형된 형태로 송영의 언어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컨대 ‘하나님, 이번에 제가 일본여행을 계획했는데, 마침 다른 일로 취소되어서 못 갔더랬습니다. 그런데, 가려던 그 곳에 지진이 난 겁니다. 그 곳에 가지 못하게 막으신 당신의 계획이 놀랍습니다!’ 라든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기독교인의 집안에서 태어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만약 몰랐다면 저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와 같은 언어는 결코 우리의 귀를 거슬리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인과율의 송영이 녹아든 형태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누가복음(18:11~13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 등장하는 바리새인의 기도는 ‘인과율 송영’의 전형입니다. ‘불의를 저지르는 저 세리와 같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는 바리새인의 기도 말이죠. 이는 우리의 주님 예수께서 이미 천년도 더 이전에 부정하셨던 기도임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교회 안에서는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송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제대로 된 송영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또 존재합니다. 우리가 어떤 감사의 제목으로 인하여 감사하는 것은 온전한 감사가 아니라는 지적이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 하박국 본문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비록… 할지라도’의 송영입니다. 내게 키우는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내가 먹어야 할 양식인 포도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올리브 열매는 달린 것이 없습니다. 내게 우유를 제공하고 고기를 제공해 주는 자산 중의 자산, 양과 소가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없음에도 내게는 구원의 여호와가 계시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본문의 요지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원하는 것과 반대로 사건이 진행될지라도, ‘통념적인 감사의 제목’들이 사라질지라도 내게는 구원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찬양과 감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비록~ 할지라도’의 송영은 앞에서 살펴본 인과율의 송영보다는 훨씬 송영의 본질에 가까운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사, 찬양 등 송영의 언어는 성서 곳곳에서 나타나듯이 어떠한 상황 속에 처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고, 소망과 믿음을 통해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선한 뜻’에 대한 깊은 신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러한 기도는 요한복음 9장에 나타나는 ‘날 때부터 맹인’을 고치시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예수님은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이 아비와 그 당사자의 죄악으로 인한 결과라고 여기던 인과율의 연줄을 끊어 버리셨습니다. 오직 그가 맹인인 이유는 그 날 그 순간에 드러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사건을 목도하고 하늘의 아버지께 영광의 찬송을 돌리게 하려고 생긴 일이라 설명하십니다. 즉, 송영이란 현실의 당면한 문제, 가시적인 개별 현상을 뛰어넘어 드려지는 것이며, 소망과 믿음의 이름으로 영원 불멸한 하나님의 이름과 존재를 감사하라는 일종의 ‘정언명령’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다윗의 탄원 시편이라든지 오늘 읽은 하박국의 본문에서 등장하는 ‘비록 ~할지라도’의 신학은 현실을 뛰어넘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과연 오늘날의 우리 현실에서도 그러한 송영이 윤리적으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할지라도’의 송영은 신앙의 순전함을 강력하게 보장하는 송영이라 여겨질 수 있습니다. 최근의 신학에서도 이런 송영을 장려하지요.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녹록치 않아 보입니다. 마치 어디를 가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만이 ‘답’이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겠지만, 하나님만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라. 하나님이 계시는데 대체 불평할 게 무엇인가?”라는 당위적인 선언으로 그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인과율의 송영보다 더 억압적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역사 속에서 긴 호흡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무화(無化)시키는 결과를 빚어냅니다. 이러한 송영과 송영의 장려가 지금 고난과 고통의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을 얼마나 매만져줄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당장 내 주머니에는 소유한 것이 없더라도, 하나님이라는 ‘백지수표’를 소유했다는 말은 마치 미래의 수입을 담보로 끌어 쓰는 신용카드와 무엇이 다릅니까! 현재 존재하지 않아서 끌어쓰는 감사는 스스로를 위무하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여전히 ‘채우는 것’으로서의 감사라는 매커니즘은 더욱 공허한 종교적인 허무를 초래하지는 않을까요? 최근 횡행하는 힐링의 담론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 는 식의 이야기들은 그렇지 않아도 황폐한 우리 마음에 더욱 큰 구멍을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우리가 불러야 할 송영은 무엇일까요? 다시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있지도 않은 티끌만한 감사의 이삭을 줍고 또 주워 감사와 찬양의 제삿밥을 짓는 그런 류의 송영은 이제는 그만 두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렇게나 다짜고짜 감사해야 합니까? 왜 감사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 이름만으로 감사하라는 공허한 기계적 감사를 해야 하겠습니까?


    이 시대의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송영의 첫걸음은 송영에 대한 강박과 조급증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송영에 앞서 잠잠해지는 것, 달리 말하면, 그 감사의 제목, 그 자리가 비어 있음에 충만해져야 합니다. 섣불리 비어있는 송영의 자리에 하나님을 앉히지 않는 것 말입니다. ‘비록 ~할지라도’의 감사가 소극적이고 현실 도피적이며, 어서 하나님을 송영의 자리에 앉히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의 뉘앙스를 담고 있다면, 우리는 그 부정의 자리에 홀로 서서 송영을 멈추고 결연히 견뎌야 합니다. 이육사의 시 ‘광야’는 이렇게 불가능한 송영 앞에 서서 그 모욕과 부정의 시간을 견디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하여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친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고선 지고 

   큰 강물이 드디어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가득하니 

   내 여기에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 시에 대해 황현산 선생이 내린 해석과 우리가 모색하고자 하는 송영의 대안에 대해 연결지어 설명해보려 합니다. 우리에게 지금 현실은 산맥들도 차마 범하지 못한 그 광야, 바다를 연모하여 휘달렸지만, 결코 그 곳만은 길닦기를 포기한 그 광야를 닮았습니다. 송영이 가능할 리 만무한 이 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큰 강물’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큰 강물, 부지런히 계절을 피고 진 인류 전체의 고고한 역사의 강물은 흐르고 있음은 명백합니다. 마치 이소라가 노래한 것처럼,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고 고백할만큼의 고독이 강렬합니다. 그 강물 앞에서 나란 존재는 광야 앞에서 찌질한 삶을 견디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짧은 한 인생 살다 지는 티끌이 된 듯 합니다. 그렇지만, 화자는 말합니다. 눈은 내리고 있고, 매화 향기는 홀로 가득하다구요. 매화 향기는 작지만 고결하고, 단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 매화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 부끄러워하지만, 오히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된 세월의 아득함에 좌절하지 아니하고, 그 장구함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결국 현재로서는 별다른 힘을 지닌 것도 아니고 합창해주는 사람도 얻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화자는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는 것으로 결심하고 있습니다.[각주:1]

    가난한 노래의 씨, 이것이 우리가 불러야 할 송영이 아닐까요? 줍느니만 못한 감사의 조각들을 주워 연명하는 인과율적인 송영을 그만 두십시오. 가지지 못한 것을 ‘하나님’이라는 허구적 이름으로 치환하여 지금을 위무하는 ‘비록 ~할지라도’의 감사도 내려놓으십시오. 우리에게는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는 것으로 족합니다. 감사할 수 없음에 감사하십시오. 오히려 우리가 송영의 자리를 비워 두고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린다면, 천고의 뒤에 광야에서 목을 놓아, 진정한 초인(들)[각주:2]이 부를 그 송영을 꿈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웹진 <제3시대>


  1. 이 단락의 내용은 황현산의 책, 『우물에서 하늘 보기』(삼인, 2015), 18~19쪽의 내용을 요약, 각색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2. 이 ‘초인’에 대한 설명 또한 황현산의 해석으로 읽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 초인은 어떤 비범한 개인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름지기 그렇게 되어야 할 인간이며, 저마다의 자유의지로 행동하게 될 미래의 인류다. 이 “초인”이라는 표현에는 고난의 극한에서 노래 부르기를 선택한 자의 의지에 대한 시인의 자부심과, 높은 정신적 경지를 확보할 미래의 인간에 대한 강렬한 기대가 겹쳐 있다. 이 새 시대의 새 인류는 지금 시인이 숨죽여 부르는 노래를 마음 놓고 “목 놓아 부르게” 될 것이다. (황현산, 『우물에서 하늘 보기)(삼인, 2015), 19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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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났다



김윤동
(본 연구소 행정연구원)

 


어떤 '한 아이'의 탄생



    베들레헴 작은 말 먹이통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말 먹이통이란 가혹함 그 자체다. 포근하기보다는 까슬까슬한 촉감, 엄마의 젖내보다 악취가 더 먼저 그를 맞았을 것이다. 우리가 그리는 아이의 탄생 장면은 ‘비록’ 말 먹이통일지라도 사랑해주는 부모와 경배하는 목동들, 동방의 박사들에 둘러싸인 아늑하고 훈훈한 풍경일 것 같지만 이제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 아니 ‘염원’하는만큼 그 풍경이 아름다웠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생명에 대한 축하와 격려의 자리라기보다는 엄혹한 세월의 비바람 속에 ‘생존’의 가능성마저 의심받는 회한과 우려의 자리였을 것이다.





한 아이 : 그들 중 하나(One of them)


   그렇게 그 한 아이는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피난민 신세다.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상황이 예상과는 달리 진행되는 것에 놀랐을 것이다.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 일러준 예언의 기쁨도 잠시, 결국 헤롯의 칼날을 피해 아무도 알지 못하는 타지에서 시간을 보냈다. 한 명의 ‘메시아 용의자’ 찾기에 혈안이 된 헤롯은 박사들과의 대화를 기준으로 두 살 아래의 핏덩이들을 모두 죽여버렸고, 그 소식이 들려왔을 때 내 품의 아이가 진정한 하나님의 메시아인지 ‘죽음의 화신(化身)’인지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고로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사실, 그것은 이제 입 밖에 낼 수 없는 비밀이 되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 그는 한 명의 평범하고도 이름 없는 자로 살아가야 했다. 메시아의 목숨을 찾아 헤매던 ‘승냥이’ 헤롯이 죽었다는 소식에 이스라엘로 돌아오긴 했지만 여전히 고향의 상황은 떠나오기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서슬퍼런 권력의 칼날에는 ‘헤롯’에서 그의 아들 ‘아켈라오’로 이름만 바뀌어 새겨져 있을 뿐 살아있는 권력으로 어깨를 짓눌렀다. 그렇게 아이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평범하게 자라나갔다. 

   한 명의 평범한 사람으로 자라간 그 ‘한 아이’는 배고프면 먹었고, 잠이 오면 잤다. 여느 나사렛 사람들처럼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중노동에 시달렸다.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밤이 되면 쉼 없는 고된 노동에서 오는 피곤에 짓눌려 잠자리에 파묻혔다. 메시아가 태어났지만 하늘로부터 내려왔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고,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자기의 탄생을 두고 메시아의 탄생이라는 예언은 한바탕 봄날의 꿈을 꾼 듯 씁쓸한 전설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그는 평범한 민중의 한 사람으로 살아갔다.

    마치 우리 시대 루시드폴의 ‘평범한 사람’이란 노래가사말이 그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다.


오르고 또 올라가면 모두들 얘기하는 것처럼 

정말 행복한 세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갈 곳이 없었네 그래서 오르고 또 올랐네 

어둠을 죽이던 불빛 자꾸만 나를 오르게 했네 

알다시피 나는 참 평범한 사람 조금만 더 살고 싶어 올라갔던 길 

이제 나의 이름은 사라지지만 

난 어차피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울고 있는 내 친구여 아직까지도 슬퍼하진 말아주게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 

나는 너무나 평범한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평범한 사람


    ‘한 아이’가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던 그 어느날이었다. 사람들이 수군수군거리며 어떤 ‘한 사람’ 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저 변방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이라는 이가 죄 사함의 세례를 베풀고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혈혈단신 맨 몸으로 성전과 권력에 대한 저항을 이어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전쟁과 같은 혼란과 번잡한 일들을 일으켜 일상을 무력과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노동으로부터 사람을 소외시켜 자기 몫을 취하지 못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죄와 악의 굴레를 영원히 맴돌도록 만드는 이들에 대해 분연히 일어난 ‘한 사람’이라 했다. 그 아이가 본 광경은 생경하면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 ‘한 사람’은 당장이라도 잡혀 죽임을 당했을 이야기를 하고 다녔지만, 그는 의연하고 당당하게 진리를 외쳤다. 한 사람이 의연하게 빛을 밝히니 사람들이 모였다. 마치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켰을 때, 모든 이들이 그 촛불이 있는 곳을 자연스레 쳐다보게 되듯이… 하나둘 그 ‘한 사람’ 곁에 여럿이 모여서 물결을 이루었다. 결국 헤롯 안티파스를 중심으로 한 권력자들도 의심의 눈초리로 세례자 요한을 노려 보았지만, 소요의 위험 때문에 함부로 그를 건드리지는 못했다. 한 사람의 용기로 비춘 불빛은 이제 들불이 되어 타올라갔다.

    그러나 그 ‘한 사람’ 세례자 요한도 별 수 없는 ‘한 사람’이던 것일까? 헤롯 안티파스의 치부를 집요하게 건드린 결과로, 순식간에 목이 베여 쟁반에 담긴 신세가 되었다. 구름 떼와 같이 모였던 무리들은 흩어지고 도망쳤다. ‘한 아이’도 그 무리들처럼 한편으로는 다시 찾아온 패배감과 무력감을 안고 또다시 일상으로 숨어들어갔다. 그 ‘한 아이’도 이름 없이 무력한 ‘그들 중 하나’인 순간이었다.


한 아이 : 바로 그 한 사람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마가복음 1:14~15> 


    ‘한 아이’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성서는 강력하게 증언한다. 분연히 ‘한 사람’이 잡히고 난 뒤에 ‘한 아이’가 다시 일어났다고 말이다. 세례자 요한과 똑같은 메시지를 들고 말이다. ‘요한이 잡히고 난 뒤’라는 시간의 진술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무력하게 도망친 무리 중 하나, ‘한 아이’가 예수로, 그리고 더 나아가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로 세상에 ‘나타나는’ 시점, 그리고 그가 외친 ‘말’은 반드시 몸조심해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위험한 말을 가지고 그가 등장했음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어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 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554쪽


    만약 세례자 요한 이후, 예수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무력을 떠안고 별 일 없이 살았다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못 들었을 뻔하였다. 하지만, “강력하고 집요하게 악의 정신이 지배할 때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인류 속에 고고하게 흐르고 있는 진리의 편에 서서 꺾이지 않고 균형을 잡고 서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렇게 살아갔다. 하지만, 그도 별 수 없는 ‘한 사람’이었을까. 몇 년동안 사람을 모으고 소동을 피우며 조금은 시끌벅적했지만 세례자 요한처럼, 또 한 명의 권력의 손아귀에 넘겨져 놀아나고 조롱 당하고 모욕 당하며 죽어갔다. 그로 인해 아주 잠깐 새 이스라엘의 희망을 가졌던 이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그의 손이 먹인 양식으로 배를 불렸던 무리들이 ‘야훼의 이름으로’ 그를 직접 처단하는 칼을 잡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결과는 그렇게까지 참혹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여느 때처럼 ‘한 사람’을 쳐다보던 무리들은 또 뿔뿔이 흩어졌지만, 단 한 사람으로 살아간 사람들이 이후에도 등장하고 또 등장했다. 최후의-최초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마음 먹은 이들은 세상을 변화시켜갔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은 의외의 장소에서 사건은 늘 일어났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대 '바로 그 한 사람'으로 살길      

 

    우리는 요즘 아무리 여러 사람이 공들여 탑을 쌓아도 한 사람이 세상을 완전히 망칠 수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사람’의 의미가, 결코 ‘많은 사람’의 반의어가 아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 사람의 중요성은 성경 내에서 아주 뿌리깊게 흐르고 있는 정신이다. 물론 여러 사람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끊어지지 않는 세겹줄(전 4:12)의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 또한 원자로서의 ‘한 사람’, 근원으로서의 ‘한 사람’을 뺀다면 세겹줄은 아예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다. 예수님의 주변에도 수천명이 모여 있었지만, 단 열두 사람만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해석해주셨다. 작은 일에 충성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아주 작은 사람(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것이 주님을 대접한 것으로 나오는 등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한 사람’의 엄중한 무게를 가르쳐 주고 있다. 오히려 ‘한 사람’이란 그 자체로서 스스로 온전히 하나이신 분인 ‘하나님’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으로 ‘가능성으로서의 온전함’, 또는 ‘온전한 가능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역사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갈 소명을 부여 받았다. 그러니 그대, 결코 혼자라고 마음을 놓거나 쓰러지지 마시길 빈다. 바로 그 ‘한 사람’이 되어 꿋꿋이 촛불을 켠다면 세상의 어둠은 단 한 순간에 스러져 물러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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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체리향기가 되어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사람아, 너는 생기에게 대언하여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렇게 일러라. ‘나 주 하나님이 너에게 말한다. 너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불어와서 이 살해당한 사람들에게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에스겔 37:9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들...  


    내가 좋아하는 이란의 영화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겠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알려진 그의 영화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였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내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같은 반 친구가 한번 만 더 숙제를 안 해오면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것을 알아버린 어린 주인공의 번뇌를 눈물나게 재미있고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비극은 처음에 이렇게 시작된다. 친구의 숙제노트를 실수로 자기 가방에 넣어서 갖고 온 것이다. 집에 도착해서 그것을 안 주인공은 엄마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그 친구의 집을 찾아나서는 나름 로드무비다.   

   <올리브 나무사이로> 의 마지막 장면은 내가 그동안 봤던 영화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엔딩이 아니었나 싶다. 남자주인공(호세인)이 여자주인공(테헤레)을 좋아하는데 집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여자 주인공 부모가 반대를 한다. 이런 저런 사건들을 지나 마지막에 테헤레가 올리브 나무사이로 난 길을 먼저 걸어가고 호세인이 뒤에서 뭐라고 하면서 소리치며 따라 간다. 굽이굽이 녹색으로 덮인 초원길과 밭길을 여자는 앞에서 남자는 뒤에 서서 걸어가는데 둘 다 하얀색 윗도리를 입었다. 스크린 상에서 두 사람이 하얀 점이 되어 안보일 때 까지 감독은 롱테이크로 둘을 끈기있게 관찰한다. 그 시간이 약 3-4분쯤 되었던 것 같은데 관객들은 둘 사이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갔는지 그때 상상할 수 있다. 짠하고 애틋하고 답답하고 조마조마하고 슬프고 행복하고...뭐라 말할 수 없는 여러 복잡한 감정이 들면서 피곤해질 무렵, 음악이 조용히 경쾌하게 바뀌면서 저 끝에서 하얀점 하나가 다시 관객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그것도 마구 아주 신이 나서 달려오는 것 아닌가! 영화는 호세인의 상기되고 환호하는 얼굴을 살짝 보여주면서 끝이 났다. 테헤레와 호세인은 결혼을 했을까?  


그리고 체리향기


   두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 마음이 티없이 맑고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샤워를 막하고 나온 느낌이랄까. 그런 감동과 기대를 가지고 키아로스타미의 <체리향기>를 보러갔었다. 그런데 시종일관 그 영화는 전작들이 지녔던 경쾌함과 유쾌함과는 다른 무거운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영화였다. <체리향기>는 주인공이 자신의 자살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주인공은 한 노인으로 부터 약속을 받아낸다. 자살한 자기를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겠다는 약속말이다. 그런 다음 그 노인이 주인공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기도 예전에 목을 매려고 줄을 갖고 나무 위로 올라간 적이 있었다며... 막 죽으려고 하는데 나무에 걸린 체리가 눈에 들어왔다고. 무심결에 그냥 손을 내밀어 하나를 떼어서 먹었더니 무척 그 체리가 달더란다. 그래서 계속 먹었다. 그랬더니 문득 세상이 좀 달리 보이고, 붉은 태양처럼 삶에 대한 열정도 되살아나는 것 같고,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도 정겹게 다가오고, 그래서 나무 밑을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체리를 따서 던져주다가 나무에서 내려왔다고...   

    영화는 결말을 열어두어 그 주인공이 자살을 했는지 안했는지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체 영화톤은 노인의 말로 인해 사내가 용기를 얻고 다시 세상으로 나갔을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비록 <체리향기>는 전작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올리브 나무 사이로>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톤이 무거웠지만 관객의 가슴을 활짝 열리게 하고 짜릿하게 하는 강도는 전작들보다 더 강렬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가 궁금해졌다. 첫 번째가 체리맛에 관한 것이다. 과연 그 체리 맛이 어떤 맛이었을까? 죽으려고 마음먹고 나무 위로 올라갔던 사내의 모진 마음을 녹여버린 그 맛이 무엇이었을까? 두 번째로 들었던 궁금증은 영화 제목을 왜 <체리 맛>이라고 안하고 <체리 향기>라고 붙였을까? 라는 점이었다. 문득,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흙으로 형상을 빚으시고 코에다가 생기를 불어넣으셨다고 기록된 창세기의 구절이 생각났다. 하나님이 아담의 코에 불어 넣었다는 그 생기가 혹 <체리 향기>는 아니었을까? 


마른 뼈. 다시 살아나...


    글을 시작하면서 구약성서에 나오는 에스겔서 중 일부를 적어 놓았다. 거기에도‘생기’라는 말이 나온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강가로 포로로 잡혀갔던 시기에 활동했던 예언자이다. 그 절패의 공간에서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특별히 위에서 언급한 에스겔 37장에는“마른 뼈가 다시 살아날 것!”(5절)을 선포하는 유명한 구절이 있는데, 오늘은 그 구절을 택하지 않고 그 밑에 있는 ‘생기’와 관련된 구절을 택하였다.   

    이 부분은 창세기 인간창조 설화와 상동성이 있다. 창세기에서는 흙이라는 질료가 있었고, 다니엘서에서는 그 질료가 뼈이다. 질료인 흙과 뼈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기재를 창세기와 다니엘서에서는 공히‘생기’로 표현하고 있다. 그 생기가 뭘까? 키아로스타미는 그것을‘체리향기’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체리향기’는 물론 단순한 냄새는 아니다. 자살하려고 나무에 올랐던 그 중년의 사람을 살아서 다시 나무 아래로 내려가게 했던 기운이‘체리향기’이다. 키아로스타미는 아직도 여전히 생명의 기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 기운이 주는 힘에게 신뢰와 희망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을 아주 매혹적이고 섹시하게 ‘체리향기’라 명명하였던 것이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들을 묘사하는 장면이 에스겔 37장 초반에 나온다. 골짜기마다 아주 말라 버린 마른 뼈들이 널려있었다고 적혀 있다.‘마른 뼈’라는 표현도 부족해서 아주 말라버린 마른 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 나는 갑자기 마른 뼈가 우리나라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말라 버린 마른 뼈! 그 어떤 희망과 가능성과 가치도 금방 증발하고 바짝 말라버리는 이 사회가 대한민국 사회라고 한다면, 에스겔의 ‘마른 뼈’ 묘사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대한 정확한 상징이자 은유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얼마나 많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자살을 하려고 나무위로 올라가는가? 우리나라는 노인, 중년, 청소년 할 것 없이 전 연령대에서 OECD 가맹국 중에서 자살율 1위를 달리는 나라다.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는 마른 뼈를 되살아 나게 하는 생기가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우리에게는‘체리향기’가 필요하지만, 아무도 그것이 도래하리라고는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것이 어쩌면 더 비극적인지도 모르겠다.


촛불이 체리향기가 되어


    비참한 일상을 살아가던 이 땅의 백성들이 촛불을 하나씩 들기 시작했다. 그 불씨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올 여름 이화여대에서 학생들이 학교 측의 방만한 운영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시작된 소요는 급기야 총장이 사퇴하는 단계로까지 번졌고, 곧이어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입학부정이 알려졌다. 조직적으로 학교측이 정유라의 입시부정에 개입을 한 정황이 포착되었고 학생들은 다시 분노하였다. 거기서부터 봉합되었던 체리향기는 풀어져서 스멀스멀 번져나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후 최순실의 행각은 단순한 입시부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님이 드러났다. JTBC를 통해 일파만파로 전해지기 시작한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들불처럼 박근혜에 대한 의혹과 분노와 울분으로 번져나가면서 바른 뼈 같았던 시민들은 하나 둘 광장에서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촛불은 계속 불타오르고 있었다. 304명의 죽음이 농락되고 왜곡되었던 4.16 세월호 광장에서, 평화를 전쟁으로 바꾸려는 강정과 성주에서, 자본의 물신이 발악하던 용산과 밀양에서, 사람의 인권이 짐승의 야만 앞에 짓밟힌 소녀상 앞에서, 그리고 백남기 농민이 시신이 안치되었던 장례식장 앞에서도 촛불은 계속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다. 그 하나하나의 한과 설움, 울분과 분노, 그리고 염원과 기도가 2016년 11월에 나비효과가 되어 빅뱅을 일으킨 것이다.  

    광장에서 촛불을 밝히면서 우리가 얻어낸 수확은 박근혜에 대한 탄핵안 통과도,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도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하나 하나가 ‘채리향기’였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체제와 권력이 그토록 감추고 싶어하고 두려워하던 그 비밀을 말이다. 혁명이 미래로부터 도래하는 어느 한 슈퍼스타가 지니는 광할한 빛의 에너지에 의해 성취되리라는 환상에 젖어있던 백성들에게 촛불은 거짓과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는 건 그런 거대한 빛이 아니라 인고와 어둠의 세월을 살아온 여기 광장에 모인 작은 촛불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또한, 촛불은 언제나 세상을 세상답게, 사람을 사람답게 돌이키는 것은 어떤 특정집단의 영도력과 일부 계층의 기획과 조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촛불을 들고 어둔 밤을 밝히는 무수한 개개의 단자들임을 알려주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밝혔더니, 그 수백만 촉의 빛을 받아 체리향기가 어디서부터인가 본격적으로 발향하기 시작했고, 그 생기에 취한 사람들이 마른뼈가 되살아나듯 살아서 꿈틀거리더니 말하고 춤추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는 그 향기에 취해 중독중이고 그 중독은 누구처럼 밀실에 갇힌 향락의 중독이 아닌 드넓은 광장에서 맛보는 혁명에 취한 중독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은 에스겔이 말하는 묵시론적인 환상이 실현되는 공간이 되었고, 우리는 지금 그곳에서 묵시가 실재가 되는 메시아적인 시간에 참여하고 있다. 천천히 그리고 똑똑히 이 시간을 두 눈 부릅뜬 채로 즐기라.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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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편집장
    2016.12.21 19:5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올해 마지막 웹진(99호)이 발행되었습니다. 2016년 한 해 동안 월 2회 2주 간격으로 총 24회 웹진이 발행된 셈입니다. 필진들을 헤어려보니 40명이 훌쩍 넘어가네요. 무엇보다 편집장의 원고 독촉에 시달리면서도 늦지 않게 옥고를 보내준 국내외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재미있게 읽고 따듯한 느낌 나누어준 독자분들께도 감솨. 내년에도 큰 목표나 다짐없이 그냥 해오던 대로 공기처럼 일상처럼 거기 한 켠에 우뚝 서 있도록 하겠습니다. 내년에도 변함없는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진화하는 작은 도시 공동체 이야기 4]



가치가 이끄는 삶


 

 

최규창[각주:1]

 


 

목적이 이끄는 삶


       제1세계의 유명한 목사가 쓴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다. 이미 대단한 양적 성공을 거둔 교회였기 때문에 그들이 그 성공의 동력으로 제시한 이론은 어떤 것이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었다. 근대적 합리성에 근거한 신앙성장 논리와 이를 따르는 교인들의 헌신, 그리고 현대 경영학적 전략과 전술을 잘 버무린 릭 워렌의 연작들은 계속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급기야 <목적이 이끄는 삶>에 와서는 마치 그 모든 성공의 비밀이 밝혀진 것처럼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거룩한 목적’, 이것만큼 사람들의 욕망과 신앙을 불편하지 않게 조화시킨 말이 있을까. 우리의 삶을 주님이 원하시는 하나의 목적으로 방향지우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삶의 우선순위, 일상의 계획, 경제적 삶의 유지, 시간사용, 재정관리, 사람들과의 만남 등 그 모든 기저에는 ‘목적’이라는 엔진이 항상 구동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은 우리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지구는 둥글다’는 말처럼 의심되지 않는 명제였다.  

       그러나 목적은 항상 권력을 생산한다는 점을 우리는 종종 간과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향해 ‘전진'해야하고, 그러자면 의사결정 권한을 지닌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계급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권력에 복종해야 하는데, 그것은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그들간의 계약이 이미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는 반드시 욕망에 의해 충동된 탈목적적 권력이 생겨나고 그 부산물들이 계급간의 억압을 생산해 내기 마련이다. 목적에 의해 도구적 권력이 정당화되는 대표적인 집단이 군대인데, 여기서는 합목적적 권력체계도 문제지만, 목적에서 벗어난 권력 남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권력의 작동이 억압으로 인식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목적을 벗어난 지배가 생산되는 지점이다. 억압과 차별은 필수적으로 피억압자의 분노, 슬픔, 한, 울분을 낳게 되는데 그 대부분은 적정한 방법으로 표현되지 못하고, 자기멸시와 자기파괴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목적이 이끄는 사회에서는 억압되는 소수가 필수적으로 양산되고, 그들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속한 사회나 공동체 중에서 목적을 가지지 않는 것이 있을까. 국가나 기업은 명확한 목표를 가진다. 국민의 보호, 시민의 정상적 삶의 영위,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것이 국가의 목표라면, 기업은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이윤을 만들어내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기업 내에서의 억압과 차별을 웬만하면 참아낸다. 회사가 존립하고 이윤을 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 나는 교회나 가정 같은 공동체는 (‘존재’가 아닌 ‘소유’의 의미에서) 목적을 갖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 공동체들은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주어야 하는 곳이다. 만약 이런 공동체들이 목적을 가지게 되면 위에서 언급한 권력과 계급의 생산이 다시 벌어지고 구성원들은 참된 안식의 공간을 잃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의 양적 성장=복음전도=하나님의 명령=우리의 삶의 이유'이라는 등식이 목표로 주어지면서, 총동원체제를 통한 권력구조의 공고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목적이 이끄는 교회’라는 것은 마치 ‘네모난 동그라미’처럼 의미상 모순이다. 가정도 ‘자녀의 사회적 성공’, ‘경제적 풍요’라는 목적이 부여되면, 아버지의 경제자본과 어머니의 정보자본이 권력으로 작동하면서 가부장제가 공고히 자리잡을 수 밖에 없고, 자녀는 고유한 정체성을 상실한 채 목적을 위해 훈련되는 기계로 전락한다.


공간확장과 장소의미화


      역사적으로 남성성은 '공간의 확장'이라는 ‘목표'를 한시도 포기한 적이 없다. 이윤의 극대화, 무한 증식을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는 그 자체가 남성성의 산물이다.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총과 칼을 들고 가든, 상품을 들고 가든) 다른 사회, 국가를 침범하고, 그 경계에서 분쟁과 충돌을 일으켰다. 경계의 충돌은 항상 전쟁의 양상을 띄게 되는데, 그 결과 '삶은 곧 전쟁'이 되고, 경계 내부의 사회는 ‘생존’이라는 분명한 목적의 지배를 받게 된다. 다른 사회와의 충돌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전체주의, 가부장제, 소수에 대한 억압이 정당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의 언어체계가 상징계를 장악하고, 젠더의 모순이 일상의 기저에 편재하게 된 것은 다분히 사회진화론 또는 구조결정론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가정에서 남녀의 가사 분담을 주장하는 여성들도 남편이 다니는 직장에서 여성이 동등한 기회를 얻는 것은 반대한다. 기업에서 여성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은, 남편을 그 회사로 보내는 전업주부들에게는 위험요인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내부의 체제는 구조의 영향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그 구조라는 것이 바로 끊임없이 공간을 확장하고자 하는 남성들의 욕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남성들은 역사적으로 항상 ‘협박범’이 된다.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미 이렇게 되어 있으므로’, ‘모두가 살아 남기 위해' 젠더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번번이 좌절된다. 이런 거대한 구조에 대한 반성은 전지구적 혁명과 같은 변혁을 겪지 않고는 일어나기 어렵다. 결국 유럽은 두 번의 큰 전쟁을 겪고 나서야 다른 관점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다른 관점이란 바로 공간확장과 권력체계에 대한 의존성에 회의를 품는 것이었다. 서구에서 젠더의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부터다. 외부의 커다란 위협이 최소화되는 시점에서는 국가 전체를 지켜야 하는 목표가 보다 작은 단위로 분절되기 마련인데, 그렇다면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논리적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남성성의 특징과 달리, 여성성은 제한된 '장소의 의미화'라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다. 최인호의 <타인의 방>(1971)은, 아내가 없는 아파트에 덩그러니 남겨진 한 사내가 자신의 집과 어떻게 불화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내가 없이는 밥을 할줄도, 세탁기를 돌릴 줄도,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주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남성들은 역설적이게도 ‘가정'이라는 ‘장소'에서는 소외되는 현상을 경험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책상이 움직이고, 시계가 말을 걸고, 우호적이지 않은 사물이 자신을 공격하는 환상을 경험한다. 목적이 지배하는 외부 영역에서는 끊임없이 공간을 확장해가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이를 잘 수행하는 이들이, 가정이나 교회 같이 뚜렷한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는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에 대한 반발로 가정이나 교회도 목적이 지배하는 남성적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시도가 ‘자녀에 대한 과잉 기대’, ‘사교육 시장’, ‘전도열풍’, ‘교회 건물짓기’ 등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남성은 목적이 없는 공간에서 소외를 느끼고, 자신이 역차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탈냉전시대에 냉전론자들이 느끼는 소외감도 이와 같을 것이다. 공공의 적이 불확실하고, 공간확장성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을 견디는 것, 자신의 삶을 ‘존재’의 가치로 들여다보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2008년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이런 면에서 ‘장소의 의미화’를 추구하는 여성적 운동성이(그것이 비록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지라도), 폭력시위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새롭게 정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건대, 남성적 시위는 공간의 확장성, 다시 말해 차벽과 경찰벽을 뚫고 나가 청와대라는 '목표'를 향해 진격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들에게는 진격의 대상만이 전부다. 그런데 촛불시위는 ‘시청 광장’, ‘광화문 광장’이라는 장소를 우리에게 각인시켰다. 그 곳에 촛불을 들고 앉아 몇 시간씩 구호를 외치고, 노래와 연설을 듣고 해산하는 것은 '장소의 시위’이지 진격의 시위는 아닌 것이다. 장소는 쉬는 곳이고, 대화하는 곳이지 달성해야 할 목표를 갖는 곳이 아니다. 진격은 점령하고 부수어야 할 대상을 목표로 하지만, 장소는 그 대상의 소멸과 동시에 그 너머의 '존재의 양식'을 바라 본다. 촛불시위대가 바라는 것은 대통령의 퇴진이 아니라(이것이 최종 목표라면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민주적인 국가일 것이다. 그러자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리더라도 의미화 과정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공동체의 일곱가지 가치

 

       공동체에 대한 연재글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장소의 의미화’, ‘탈목적적 공동체’라는 가치를 몇 가지로 정리하고자 한다. 한국사회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글들을 보면 대부분 현상적인 측면에 대한 분석에 집중되어 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 관철을 목표로 한다. 예컨데, 교회 내 의사결정의 민주화를 위해 장로로 구성된 당회보다는 다양한 성도들의 그룹을 대변하는 운영위원회를 둔다거나, 교회의 회계장부를 일반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게 한다거나, 목사의 전횡을 막기 위해 최고 의결기구인 공동의회의 의장은 목사에게 맡기지 않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러나 예로 든 이런 제도적 개혁의 더 본질적인 이유는 ‘돈’과 ‘권력’에 대한 이 공동체의 가치관을 세우는 일이다. 그 가치(value)가 제대로 자리잡지 않으면 제도는 다른 방식으로 악용될 수 있다. 지난 14년의 공동체생활과 두 번의 공동체 세우기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는 어떤 가치가 우리속에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치는 어떤 리더가 ‘이렇게 하자’고 선언하거나, 모두 모여 ‘우리는 이런 공동체가 됩시다’라고 결정한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과정을 겪어 만들어진 공동체라면 이미 어떤 가치가 그 속에 만들어져 있다고 봐야 한다. 형식적이든 암묵적이든 이미 그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여곡절을 거쳐 그 공동체에 남아 있는 것이고, 다시 모이게 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수 십년 된 교회나 공동체의 개혁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가치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올 해 아홉 가정으로 다시 시작되는 공동체에서 우리는 대략 일곱 가지로 부를 만한 가치가 내부에 심겨져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 가치들을 간략히 설명하면서 우리 공동체의 존재양식을 드러내고자 한다.   


       단순성은 자연의 원리다. 생떽쥐베리가 말했듯이 완벽하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정도로 단순해진 상태’를 말한다. 교회, 공동체, 조직이 너무 많은 것을 갖추려고 하면(이것은 대부분 소수의 욕망이다), 자체 유지 자체가 큰 목적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구성원에서 무의미하고 무리한 헌신을 강요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한국교회에서 일요일에 시행되는 행사, 노동, 프로그램의 70%는 없어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의 억압은 특히 ‘죄책’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고질적이다. 현재 우리 공동체는 일요일에는 예배와 먹기, 수다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일요일에 어떤 일을 도모하는 것은 자발적으로 제안되고 모두가 동의해야 가능하다. 공동체의 첫번째 필요는 안식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을 포기하고 많은 일을 계획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현명하지 않다. 이것은 일요일에 모든 사역의 역량을 쏟도록 훈련받은 사역자들과의 오랜 협의와 화해가 필요한 과정이다. 안식의 날짜와 패턴이 일반 성도들과 다르게 세팅된 모순이 일요일의 과도한 프로그램 운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역은 평일로 옮겨져야 한다. 따라서 평일은 더 거룩해져야 하고, 일요일은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두번째 가치는 ‘구조’에 대한 것이다. 공동체의 사이즈, 의사결정 구조, 건물의 크기, 목회자의 위상, 재산 등은 공동체의 정체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사이즈가 큰 교회에서 사회적 영성과 도덕적 민감성을 기대하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사이즈, 밀도가 구성원 개인의 도덕성, 영성과 정확히 반비례한다는 점은 심리학, 사회학에서 이미 오래전에 연구가 마무리된 사실이다. 그 구조 안에 있으면(짐바르도의 표현대로 ‘사과 상자가 썩어 있으면’),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직장의 전문인들, 상식적인 중산층, 평균 이상의 양심을 가진 성도들로 구성된 강남의 대형교회가 교회 살림(작정헌금 포함)의 5배에 달하는 빚을 지고 초대형 건물을 짓는 의사결정 투표를 무기명으로 했는데도 95% 이상이 찬성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정 구조 안에 있으면 누구라도 자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결정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를 시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공동체는 물리적으로 적정한 규모를 넘지 않아야 하고,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고 평등하게 결정할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 현재 우리 공동체는 아홉 가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가 원하는 구조를 유지하면서 예배를 같이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결국 두 교회로 나눠서 교제하기로 결정하였다. 작은 규모로 나누고 다른 방식으로 연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적정한 구조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아무리 많은 공동체라도 적정한 방식으로 연대할 수 있다.  

       ‘통합’은 단순성과 구조의 가치를 실현하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우리의 삶은 주로 가정, 생업(직장), 교회와 그 주변부로 구성된다. 이 공간들이 모두 분열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다. 현대인은 이 공간들을 왕래하는데만도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고, 모든 영역을 효과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생의 시기별로 '선택과 집중’의 방법을 취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30대에는 직장의 안정화, 40대에는 자녀의 학업을 중심으로 한 가정경제의 유지, 50대에는 사회적 관계를 공고하게 하는 관계망의 구성(교회, 취미동호회)이 중요해진다. 그러나 문제는 각 시기마다 포기하고 잃게 되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공동체는 이를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주거가 통합되면 자연스럽게 교회공동체가 그 안에서 생겨난다. 기존의 교회에서는 주거까지 통합하면서 구성원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라이프스타일이 구현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50대 이후 직장에서 은퇴하고 생업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면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함께 계획할 수 있는데, 이것이 생업의 통합이다. 극단적으로는 함께 귀농하거나 농촌 노동공동체를 계획할 수도 있지만 도시에서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함께 거주하는 가운데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실제적인 준비를 해 나갈 필요가 있다. 도시는 삶을 점차 세분화시키고 분절시키는 양식을 가지는데, 이를 다시 단순화하고 통합해 가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고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있다. 현재 우리 주거 공동체는 가정과 교회를 통합한 형태다. 그 정도만 가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매우 많아진다. 통합이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는 없으므로, 경험상 돌아보건대, 30대에는 주거의 통합, 40대에는 교회의 통합, 50대 이후에는 생업의 통합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연재글에서 설명했듯이, 공동체가 항상 시대성, 역사성을 가지고 새롭게 구성된다는 말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간에도 공동체의 이해와 실천이 상이할 수 있음을 내포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할 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하물며 한 세대가 지나가면 그 사이에 수 많은 용어가 생성되고 유행이 지나가며 사건과 사고가 발생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간의 관계와 역동 역시 달라지기 마련이고, 정치적 상황과 시대정신도 새롭게 변화한다. 공동체는 자기 시대의 문제에 직면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 성격과 형태, 존재 방식이 계속 '진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특별히 한 공동체가 한 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단(單)세대 교회론'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자녀를 자녀의 공동체로 떠나 보내고, 부모는 부모의 공동체에 머물게 하면서, 공동체가 공동체를 돌보는 형태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두 번째 공동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기존과 달리 새로운 멤버들이 참여하게 되면서 새로운 진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 진화는 우리가 나이들어가면서 직면하는 이슈와 관심사가 달라진다는 측면과, 새로운 멤버들의 참여로 공동체의 특징과 성격이 달라진다는 점을 모두 포함한다.

       일상의 삶을 중심에 놓는 것 역시 공동체의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한다. 모든 훈련 프로그램을 하루에 몰아 넣고, 일요일+교회건물+목사 중심으로 삶과 신앙을 이분화시키는 형태로 유지되어온 한국 기독교는, 일상의 삶에서 복음이 드러나지 않는 상황을 별다른 고민없이 수용해 왔다. 그 결과, 특정하게 구별된 날, 절기, 사람, 장소만을 거룩하게 만들고, 나머지는 세속적 영역으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 일상이 가지는 다양한 측면들(유동성, 추상성, 가변성, 운동성, 실존성)을 인식할 수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일생을 통해, 한 사회의 발전과정을 통해 꾸준히 진화해가는 것이다. ‘사회’나 ‘국가’의 개념도 확실하지 않던 종교개혁 시대의 신학이 오늘날에도 절대 진리, 문자적 진리로 자리잡으면서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생략한 채 변경불가능한 고정된 진리로 탈바꿈되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해온 현실은 사실 삶의 이원화 외에는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신학이 일상을 붙잡고 지탱해야 한다는 말과 초역사적 신학의 견고함은 양립하기 어려운 말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다시 마르크스주의가 유행하는 것은 자본의 견고한 지배 하에 일상의 위대함을 잃어버리고 매일 반복되는 비참함과 지루함을 인생이라 여기고 살게 된 현실에서, 그나마 진정한 삶의 돌파구를 꿈꾸는 시도들이 그 곳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보편적 기준이나 진리는 관념적일 수 밖에 없는데 반해, 피지배되는 대상 즉 우리의 일상은 실재하며 물질성과 관계성을 지닌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관념으로서의 진리는 이전 시대를 대표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했으며 우리가 아닌 이전 타인들의 일상을 표상한다. 우리 시대의 보편적 관념은 몸과 물질성을 지닌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공통적인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공동체다(네그리, 하트, 아감벤, 블랑쇼, 바디우, 르페브르). 공동체는 일상과 비일상이 만나는 곳이고, 일상이 다시 복구되고 의미를 회복하는 공간이다. 그러기 위해서 공동체는 일상의 한 가운데 있어야하며, 먼곳에서 일상을 내려다보고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일상의 사건들에 '하나님의 뜻'이라는 해석을 개입시켜 일상을 비일상화(신성화)시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비일상은 일상이 그 한계에 이를 때 그저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와 같은 것이다. 목사도 한 명의 시민이며, 교회도 사회의 한 기관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주거와 가정의 통합을 통해 공동체 역시 우리 삶의 한 가운데 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르페브르는 우리가 일상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보고, 그 지배가 시작된 시점을 19세기 경쟁자본주의의 태동부터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이 때부터는 대량생산된 상품의 세계가 열리게 되며, 개인과 공동체의 고유한 양식(style)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작품'이 없어지고, 축제가 사라지고, 저항이나 주체적 혁명 역시 드물어졌다. 공중의 권세(엡2:2)는 일상을 장악함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예수의 인생은 결국 그러한 일상의 비루함에 비일상적 권위를 가져와 잔치를 벌이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일상에 임하는 것이다(눅11:20). 일상의 비참함 속에서 이익을 취하는 교회는 결국 시대의 지배적 권력 아래서 '유기적 지식인'(그람시)으로 생존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세상에서 벌여야 할 잔치는 무엇일까. 비일상적 경험을 통해 일상을 지탱하고 변화시키기는 커녕 일상을 탈(脫)일상화시키는 일부터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거창한 수식어들을 동원해 스스로를 구별하고 타자를 배제하면서 세상을 대상화하는 방식을 다시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교회는 분명 사명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목표 보다는 과정으로, 절대성 보다는 상대성으로, 외재적이기 보다는 내재적으로, 대립적이기(세상은 악, 교회는 선) 보다는 변증법적으로, 양보다는 깊이로, 사람 중심이기 보다는 모든 피조 세계 중심으로, 단일하기 보다는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것은 바로 (여섯번째로) '해석'이다. 한국 기독교는 성서 해석의 권한을 안수받은 소수의 설교자와 신학자들에게만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해석과 삶의 결합인 설교 역시 이들이 몫으로만 남아 있다. 목사의 설교에 대해 우리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은 기껏해야 약간의 인상비평 수준을 넘지 못하며, 다른 해석은 금지된다. 해석이 금지된 공동체는 각 주체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 없고, 다시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해석'의 차이로 수 많은 종교 전쟁과 종교 학살이 자행되었던 것을 알고 있다. 해석은 군중(성도)를 결집시킬 수 있었고, 그 군중을 배경으로 종교권력은 국가권력을 압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폴 비릴리오의 말대로, 국가가 종교와 분리되고 지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무기의 발달로 소수의 군대가 군중을 통제할 수 있게 됨으로써 막강한 절대국가가 탄생한 근대에 들어와서였다. 이 시기에 와서야 해석의 차이는 학살을 면하는 수준으로 변화된다. 그러나 오늘날도 '경전'으로 취급되는 성서의 해석독점은 교회 내에서 수많은 폐단을 낳고 있다. 나는 예전에 출석했던 몇 교회에서 지속적으로 설교자들의 다양화를 주장했으나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을 주장하는 나에게는 몇 번의 설교 기회가 주어졌으나 그것은 내가 바라던 해석의 보편적 자유가 아니었다. 토론이 아닌 일방향식 설교가 보편화된 오늘날 예배 형식에서 교단 신학교를 졸업한 사역자가 아닌 사람이 설교하는 것은 여전히 교회 내의 큰 위협으로 간주된다. 현재 우리 거주 공동체 교회에서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설교를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 그대신 설교를 마치고 그에 대해 설교시간의 두 배 가량의 시간을 할애하여 함께 해석하고 토론한다. 그러다보면 다양한 관점을 만날 수 있고, 성서의 텍스트가 수용자 중심으로 다시 쓰여지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으면서도 일상의 삶에 적용하기에 무리 없는 범주로 해석이 모아지는것을 느낀다. 신기한 것은 예전의 일방향식 예배에서는 한 시간도 버티기 힘들던 사람들이 세 시간 가까이 되는 예배시간을 별다른 무리없이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도 점점 대화에 대등하게 참여하게 되었고, 심지어 부모가 아이의 고민을 공동 예배시간에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자기의 해석이 공유되고 피드백 되는 경험은 연령을 초월하여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우정은 공동체의 중요한 존재양식이다. 한나 아렌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표현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독교인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각각의 사람은 오직 기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적, 그리고 심지어 죄인조차도... 사랑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실제로 사랑받는 사람은 이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 그 자체이다" 모든 인류, 원수까지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은 정작 한 사람을 사랑하는데는 소질이 없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아가페보다도 필레오(우정)가 더욱 어려운 사랑의 형태가 된다. 리젠트 칼리지의 설립자인 제임스 휴스턴은 기도를 '하나님과의 우정'이라고 정의했다. 증여나 환대가 여전히 증여자와 수혜자라는 계급성, 부채의식을 제거할 수 없다는 부르디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정의 가치야말로 현대사회가 회복해야할 가장 의미있는 돌파구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김현정의 말대로 우정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대하셨고, 우리 역시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수많은 타자들 앞에 서 있다. 전혀 불편함이 없는 동질집단 내에서 발현되는 것은 진정한 우정이 아니라 자기확인에 불과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은 그것을 위협하는 경계를 만날 때 흔들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우정을 통해 다시 진화한다. 놀랍게도 나의 경험으로는 이런 방식의 우정이 생존하기 힘든 가장 어려운 환경이 바로 교회다. 교회는 사회보다 더 많은 가면과 위장을 갖추어야 하는 공간이고, 자신을 드러내기 힘든 장소다. 특히 목사와 교사들(리더들)이 가지는 소외감과 외로움은 아무도 감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설교와 교육의 방식을 통해 종교담론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을 열어보임으로써 다름을 드러내고 인정하면서 우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대부분 배제된다. 나는 은퇴한 후 적정한 우정의 자리를 찾지 못해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노년을 외롭게 보내는 목사들을 자주 보았다. 그들에게는 '제자들', '양떼'라고 부르는 이들은 많이 있으나 우정을 나누는 친구는 희귀해진 것이다. 공동체를 인생 전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제자'도 좋고 '성직'도 좋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관계는 '친구'일 것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셨다(요한복음15:14). 친구란 계급관계가 상정되지 않는 유일한 관계다. 스승-제자, 상사-부하, 부모-자식, 선배-후배 관계 조차도 서열과 계급의 지배를 받는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에게도 함부로 말을 하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친구는 언제 만나도 친구고 동등하다.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목표가 없다는 말이다. 그 관계는 그저 서로의 존재로 만족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부모도 가정에서 목적을 제거하고 자식의 친구로 존재해야 한다.

 

인과론과 목적론을 넘어선 일상

 

       이러한 일곱가지의 가치(단순, 구조, 통합, 진화, 일상, 해석, 우정)는 우리 공동체가 오랜 기간동안 교회, 가정, 사회생활을 통해 갈구하던 삶의 양식들을 언어화한 것이다. 가치가 구현되면 현상적인 것은 그 가치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사실 여러 교회를 다녀본 나로서도 이 중 두 가지 이상을 지닌 교회를 아직 보지 못했다. 그래서 차라리 공동체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가정-교회-생업-활동(사역)을 통합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럴 경우 전체 비용은 감소하고 효과와 영향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는 가정과 교회를 통합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앞으로 생업의 통합과, 우리와 유사한 공동체와의 연계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뚜렷한 목적이나 권력관계가 상정되지 않는 작은 공동체들의 연대가 앞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다가올 것이다.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마이클 무어는 13명의 사망자를 낸 충격적인 고교생 총기난사사건의 원인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서, 그 중 핵심적인 것이 바로 총기를 쉽게 소유할 수 있도록 정부와 시민을 설득하는 '군산복합체'의 음모라고 분석한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는 원인과 주범들이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고 관객들 역시 이에 설득당한다. 동일한 사건을 묘사한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는 전혀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영화 내내 아무 목적도, 일관성도 없이 희생된 12명 학생과 1명 교사의 사고당일 일상이 지루하게 묘사된다. 그런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당혹스러운 무작위 총기 발사 장면이 갑자기 등장한다. 산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죽음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단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외에, 그들의 잘못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감독은 그 날 희생자들이 친구들과 대화하고, 아름다운 풍경사진을 찍고, 다른 친구들과 점심을 먹는 평범한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 일체의 인과론적 설명을 거부한다.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제의 원인이 분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 파생되는 권력의 부산물과 그것의 재생산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반드시 다른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공동체는 부유하게 된다. 사회는 목적을 가지더라도 내부의 공동체들은 탈목적론적인 가치를 보유해야 한다. 우리가 벗어나기 힘든 인과론은 결국 목적론과 연결된다. 목적을 향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그 인과성으로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가치들은 우리의 일상이 인과론도, 목적론도 아니라는 점을 암시한다. 이제 두 번째 스테이지에 선 이 공동체는, 아마도 긴 매너리즘을 거쳐 다시 새로운 목적에 사로잡히고, 서로 분열되기 시작할 때, 다시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이 공동체에서 우리들 대부분은 50대에 접어들 것이고, 이 시대, 이 장소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와 직면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삶을 온통 기존 교회에 바치느라 분주한 우리 선배들의 무관심 탓에, 우리에게는 '가보지 않은 길'이겠지만, 우리 후배들에게는 하나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품고 있다. 목적없는 공동체가 가능할까. 리더 없는 리더십이 가능할까. 리더십 없는 공동체가 가능할까. 우리의 실험은 계속된다.


ⓒ 웹진 <제3시대>

 

  1.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곳에 오래 매여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 수치가 세상변혁이라는 불가능성에 대한 부담과 지나친 민감함에서 나온 혼란이었음을 깨달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톱니바퀴로부터 일탈하여 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소박한 대안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십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시작된 법인사업과 생활대안운동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해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웹진을 통해 앞으로 4차례에 걸쳐 그 가치생성의 과정을 일부 나눌 예정이다. (주) 포리토리아 대표,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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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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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작은 도시 공동체 이야기 3]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최규창[각주:1]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리는 집


       <건축학 개론>이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승민(엄태웅)이 유학을 가기 전, 달동네 집에서 홀로 사는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연민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짜증을 내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 아파트 같은 깨끗한 집으로 이사 좀 가! 이런 구질구질한 집이 지겹지도 않아?” 그러자 어머니는 냉장고에서 검은 비닐에 싸인 반찬통을 꺼내면서 무심히 대답한다. “얘는... 집이 지겨운게 어딨니. 집은 그냥 집이지...” 마지막 남은 가족인 아들마저 외국으로 떠나는 상황에 처한 어머니에게 가족이 생활하고 자랐던 집이라는 ‘장소성'은 마치 몸의 일부처럼 작동하고, 말을 걸어오고,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해주는 공기와도 같은 자연스러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현대적 건축물을 설계하는 건축가인 아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상처와 가난의 표상 같은 달동네 집의 의미가 아련한 추억 이상의 것이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어머니에게는 그 집이 곧 자기자신의 삶 자체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성년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을 그 마을과 시장 사람들은 모두 그 집을 중심으로 네크워킹 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익숙해진 공간으로부터의 탈주는 꽤 큰 용기와 분명한 목적의식을 필요로 한다.  

       13년간 마포구 서교동의 작은 골목에서 빌라를 짓고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온 우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동체 주택이라는 공간 자체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간과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점점 더 깊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인데, 먼저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공간이 협소해지고 불편해지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우리들 스스로가 협소함 외에도 공간 자체에 제약되어 자신의 내면의 개혁과 미래에 대한 상상, 계획, 그리고 그 실행이 매우 힘들어졌다는 점에서 였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는데는 많은 민감성이 필요했다. 사실 주거공간은 하나의 생존 조건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사유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거 공간을 거주보다는 자산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비싸고 넓은 집을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스스로를 공간에 맞춰가는 삶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넓은 집을 소유해도 정작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심한 부조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자신만의 공간이 없으면 시간도 의미가 없어진다. 시공간의 여유가 생겨도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마치 마비증상이 있는 것처럼 생산성 없이 그것을 소모해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삶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자신이 처한 공간을 비판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공간'을 찾아다니는 존재이기 때문에, 분명히 우리는 하루 중 어떤 자투리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나름의 생존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결국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가가 자신의 공간 좌표를 정확히 보여주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 공간의 한계


      근대의 공간은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그리 많은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근대적 삶은 지난 수 백 년간 과학이라는 신을 영접하기 위해 모든 시간과 공간을 측정 가능한 단위로 분절시키고 운동과 에너지의 공식을 만들어 냈다. 최근 백 여 년간은 효율성이라는 목표 하에 철저하게 ‘구획화’된 시공간 속에 인간을 투입했고, 우리의 삶을 그 속에 안착시켰다. 갈릴레오는 자연에 존재하는 중력, 가속도 등의 개념을 인지하고 말로 서술하였지만, 뉴튼은 구체적인 시간(t)의 단위를 상정하여 이를 공식화했다. 그의 공로는 모든 운동을 시간으로 환원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시간’이 우주 공간의 중심에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데, 이 확신 속에 이제 우주의 시간과 공간은 리듬이 제거된 채 동질화되어 버렸다. (이 동질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작업이 앙리 르페브르의 <리듬 분석>이다) 이와 같이 과학은 측정단위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출발조차 할 수 없다. 과학은 결국 '자연의 수학화’가 아니던가. 이런 점에서 신학자 월터 윙크의 표현대로 뉴튼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발명한’ 것이다. 누군가가 시간과 공간에 기준을 세우고 나머지를 재배열하는 식으로 과학을 시작했고, 그것으로 우리의 시공간을 분절시켜 삶을 통제하게 된 것이다. 공간을 대수적인 수로 환원시킨 기하학이 오래 전부터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 밀접하게 대입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와서다. 앙리 베르그손의 말대로, 우리가 지각하는 시간의 관념은 (이미 어떤 측정 단위로 양화(量化)되어 버렸기 때문에) 사실 시간이 아니라, (시계바늘의 거리처럼) 공간적 속성으로 치환된 시간에 불과하다(여기서 베르그손은 자신의 고유한 사유인 ‘지속’ 개념을 주장한다). 우리는 어김없이 아침에 일어나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오후 6시가 지나야 퇴근할 수 있다. 동일한 점심시간에 쏟아져 나와 식사를 하고, 다시 시계에 의해 통제되는 오후 근무시간으로 투입된다. 집에서 아무리 달래도 밥을 먹지 않는 아이도 학교에 가면 얌전히 급식대에서 밥을 받아 시간 내에 식사를 잘 마친다. 우리는 공간과 시간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이 애초에 왜 정해졌는지를 아무도 묻지 않은채 말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공간 어딘가에 좌표로 존재하는 대상일 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근대적 주체를 발명한 데카르트가 바로 수학적 좌표를 생각해낸 사람이 아니던가) 그리고 시공간은 기계화된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의 한 명인 르 코르뷔제는 ‘집이란 그 속에 들어가 사는 기계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20세기 초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근대란 인간의 삶을 효율성이 지배하는 거대한 기계로 환원시키는 작업이었고, 건축물이란 그 연장선상에서 공간을 구획시키는 기계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들뢰즈와 가타리 역시 근대의 모든 산물은 ‘기계와 기계의 이항접속’의 결과물이라고 해석한다. 예컨데 밥을 먹는 일은 수저-기계와 입-기계의 접속이고, 자동차 역시 사람들의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기계인 셈이다. 인간은 가정, 회사, 거리, 술집, 교회을 전전하면서 자신의 공간을 ‘탈영토화’하고 ‘재영토화’ 한다. 이러한 배치가 안정화되면 그 사회는 다시 커다란 기계로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공간적 신체’(르페브르)이며, 공간의 생산물이 된다. 선생/학생, 의사/환자, 목사/성도는 학교, 병원, 교회라는 거대한 기계적 공간에 부합하는 신체로 가공되고 변형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계는 그 본질상 불가사리처럼 계속 커지고 비슷한 기능을 가진 주변의 사물들을 통합해 가게 되는 것이다. 한국 대형교회의 탄생은 결국 효율성과 시스템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어두움에 거하라"


       사실 시간과 공간의 구획화가 불완전했던 전근대 시대에는 자기 나이가 얼마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국가와 민족의 개념도 선명하지 않았다. 근대는 ‘해가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가서 쉬던’ 시대에서, ‘분, 초 단위까지 관리되며 노동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르 코르뷔제의 말대로 집이 거대한 기계라면, 인간의 의식 역시 기계화, 시스템화 되어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집의 개념은 이와 달라야 한다. 집은 인간이 안식하는 곳이고, 기계의 전원을 꺼야 하는 곳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기독교는 ‘빛에 거하라’는 말을, 어둠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 억압을 정당화하는 목적으로 사용해 왔다. 그리고 근대는 그 ‘빛'을 기계, 과학, 효율성으로 재해석했다. 그러나 인간은 불을 끈 어둠 속에서서만 쉴 수 있다. 효율성과 이유를 떠나, 우리는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주는 존재를 필요로 하고(그래서 신이 우리에게 부모를 주셨다), 불을 끄고 마음 속에 있는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인간 내면에 학문적인(위상학) 공간성을 최초로 부여한 프로이트가 전기충격요법이나 최면을 거부하고, ‘자유연상법’(조명을 줄이고 편하게 누워 이야기하게 하는 것)을 정신분석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도입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만약 가정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효율성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원형에 사로잡혀 자신의 의식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계산 가능성’을 신봉하는 근대의 기획은 인간의 상상력이나 직관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고, 형이상학이나 종교는 그것들과 함께 외부로 내몰려 버렸다. 그러나 인간은 이와 같은 기계의 시대를 얼마나 견딜 수 있었는가. 극단적 방식(자살)의 탈주가 급증하고 있고, 기계의 부속으로 자녀를 대하던 부모에 대한 반발이 인류 역사상 가장 거센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근대적 공간이 형성한 근대적 ‘의식’은 이제 그 이면의 무의식의 반발과 그로 인한 부조화로 자신의 좌표를 상실해 가고 있다. 근대적 주체가 실재가 아니라, 담론의 한 형식에 불과하다는 구조주의자들의 분석 이면에는, 그 주체를 존재하게 하는 의식의 불완전성과 편파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의식은 다분히 공간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직선이 아닌 공간(삐뚤어진 액자, 굽어진 방)을 견디지 못하는 근대 인간의 의식은 분명 기하학적 산물 그 이상으로 평가받기는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가정, 그리고 그 집합인 주거 공동체 공간의 의미는 이와 같은 반(反)기계적 성향을 지닐 수 밖에 없다. 미셸 세르토는 공간의 감시로부터 탈주하여 도시를 가로질러 사는 삶을 이야기한다. 공간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동선을 만들고 우리의 일상을 그 라인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훈육한다. 공간은 우리의 움직임을 이미 파악하고 있고, 매 단계마다 이항접속을 실행한다. 이 동선으로부터의 탈주는 용기를 필요로 하며, 전혀 예측되지 않은 방향으로의 전개가 요구된다. 공간의 질서와 법칙을 발견하고 체계화하는 사람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르며(그래서 천재들은 어쨌거나 우리의 언어 체계 안에 존재한다), 공간에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고, 가로지르고, 사각지대를 찾고, 허를 찌르는 사람을 선지자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전혀 새로운 경로, 허를 찌르는 상상력, 어떤 무조건적이 것, 효율적이지 않은 것, 외부로부터의 은혜, 어두움에 속한 것이어야 한다. 흥미롭게도 시간의 구획화를 무시한 채 출퇴근 시간, 휴가 일정을 자유롭게 하고, 오후 일과 중 몇 시간을 사무실 불을 소등하고 자유시간을 가지도록 하는 외국의 일부 기업들의 생산성이 우리보다 훨씬 높고, 아이디어 개발과 특허 출원이 급증하는 것은 무의식으로부터 이런 직관의 힘을 꺼내는 방식을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이런 ‘어두움’의 관점에서 다시 조명되어야 한다. 어찌보면 우리의 구원은 이 영역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구현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바로 가정, 그리고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와 공동체를 허용하신 가장 큰 이유는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두움 속의 안식’을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성품을 담는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간 생산의 시급성


       이런 의미에서, 두 번째 건축을 시도하면서 우리 공동체가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것은 바로 설계였다. 13년 전에는 설계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었다. 우리가 경험했던 공간은 아파트 형태(넓은 거실, 방3, 화장실2, 베란다)의 구조뿐이었고, 그 이상을 상상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인의 59%가 살고 있는(비슷한 구조의 빌라를 포함하면 80%) 아파트는 사실 가장 전체주의적이며 가부장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파트에서는 개인의 삶은 보장받기 어려우며, 불을 끌 수 있는 어둠의 자유 역시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안식할 수 없는 공간에서 우리의 무의식은 더 깊이 억압되고, 그로 인해 외부의 기계적 삶에 억압된 의식은 가정에서조차 안식을 얻을 수 없게 된다. 더구나 아파트는 동일한 형태의 가옥 구조 속에서 늘 집 값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익공동체가 아닌가. 그 허위적 소속감과 만족감, 자괴감이 안식을 줄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서로를 위로하는 대화, 자기를 성찰하는 기도,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통해 내면을 정돈하는 독서가 가정 내의 어떤 공간에서 가능한가. 가정이 어렵다면 공동체 내의 어떤 공간이 만들어져야 하는가. 우리의 ‘정신승리’로는 가능하지 않은 더 큰 원인이 존재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낼 수 있겠는가. 해가 거듭될 수록 우리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그래서 2015년 봄에 우리는 다시 서울을 벗어난 외곽에서 땅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소가 정해지자 6개월에 가까운 기간동안 우리는 모두 각자의 필요를 쏟아 놓고 설계에 집중하였다.   

       르페브르는 공간이 절대적인 것이라는 칸트, 뉴튼의 생각을 거부하고, 공간이 바로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생산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공간 생산의 방향을 몇 가지로 설정하였다. 우선 구성원 각자의 사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가족이라해도 서로 방해할 수 없는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우선 가정 내에서 전시용으로 불필요하게 확장된 큰 거실을 포기할 필요가 있었다. 큰 거실은 대형 TV를 멀리서 보는 즐거움과, 외부 손님들이 가정의 경제력과 화목함을 느끼게 할 미장센을 연출하는 용도 외에는 실제적인 목적이 없는 장소로, 주로 가부장적 존재가 TV리모콘을 들고 혼자 소파에 누워있기 일수인, 그리고 가족들이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을 한없이 지연시키는 죽은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나라 외에는 전체 집의 면적 대비 이렇게 거실이 큰 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두 번째는 이와 반대로 공유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것은 각 가정 바깥에 존재해야 하는데, 이것은 첫 번째 방향(사적 공간의 확보)과 상충되지 않기 위해서다. 공유공간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지만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곳이며, 외부에 개방하고 타인을 환대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적공간에서 일어나기 힘든 환대가 공적 공간에서는 가능해진다. 이것은 공적 영역이 사라져가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투쟁의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건축물의 지하에 넓게 땅을 파고 다용도 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것이 근린생활시설로 신고가 되어 준공허가를 받는데 많은 고생을 하기는 했고, 생각보다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기도 했지만, 이 공간이 공동체와 마을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얻는 것이 훨씬 많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탈주 과정


       각 가정의 설계에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한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가정마다 모든 공간의 타일, 벽지, 가구, 부엌, 전기등, 블라인드, 바닥재, 소품을 직접 선택했고, 외부에서 조달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고, 우리는 그들의 의사를 가능하면 존중해 주기로 했다. 특히 사적 공간의 확보와 가정 간의 선호 공간점유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를 수 차례 변경하면서 결국 우리는 2층~5층까지 한 가정이 사용하는 ‘땅콩집’ 형태의 건축물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복층의 답답함을 없애기 위해 반(半)층씩 공간을 조성하는 스킵플로어(skip floor)방식을 도입해서 독특한 공간을 만들었다. 오르내리기 힘든 점도 있지만, 모두가 방해받지 않는 각자의 안정된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장점이 더욱 중요했다. 이웃과의 층간 소음 갈등을 걱정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특히 설계하는 과정에서 각자에게 필요한 공간의 필요성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공간설계 아이디어들이 쏟아졌고, 우리 집에서는 전혀 필요없다고 느꼈지만 다른 집에서는 반드시 만들기를 원하는 공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건물을 같이 세우는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점과 성향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알게 되는 소득도 있었다. 이것은 앞의 글에서 강조한 공동체의 ‘임의적 특이성’ 또는 ‘다중성’을 구현하는데 필수적인 정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는 획일화, 전체주의화 되어서는 안된다. 구성원들의 개성과 요구가 살아 있고, 그것을 서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정이란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핵심을 리더십, 규약, 목표의식, 비전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차이를 수용하는 성숙함이다. 우정은 자선이나 환대를 넘어서는 가장 성숙한 사랑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차이에 대한 인식은 향후 공동체의 성격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공동체는 '원래 그래야만 하는’ 형식이나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구성원들의 개별적 차이가 융합되어 형성된다. 그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공동체의 생명력을 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각자의 삶의 방식을 수용하는 다중의 공동체였다.

       이제 다음 글에서는 새로 만들어진 공동체 공간에서의 삶과, 우리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큰 숙제인 교회의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묶어주고 지평융합을 이루는 힘은 바로 '공유된 가치’(shared values)에 있다. 이것은, 역사성에 매몰되어 어떤 지속적이고 일관된 의미도 생성해 내기 어려웠던 철학적 해석학에 반(反)하여 움베르토 에코가 주장했던 ‘의미론적 동위체(isotophy)’와도 같은 것이다. 시대마다 용어와 해석이 달라지더라도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는 있는 법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항상 의미를 찾고자 하며, 시대적 언어를 초월해서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공동체의 좌표는 동시대적 관계와 역사적 연계 속에 생성된다. 따라서 ‘공유된 가치’는 반드시 공동체 스스로의 노력으로 시대마다 다른 언어로 정의되어야 한다. 이것은 해석의 과제임과 동시에 실천적 책임이기도 하다.


ⓒ 웹진 <제3시대>

  1.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곳에 오래 매여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 수치가 세상변혁이라는 불가능성에 대한 부담과 지나친 민감함에서 나온 혼란이었음을 깨달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톱니바퀴로부터 일탈하여 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소박한 대안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십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시작된 법인사업과 생활대안운동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해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웹진을 통해 앞으로 4차례에 걸쳐 그 가치생성의 과정을 일부 나눌 예정이다. (주) 포리토리아 대표,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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ὑπομονή (후포모네) 신앙

 



김혜란
(
캐나다 세인트앤드류스 대학, 실천신학 교수)


 

    지난 6월에 한국을 잠시 방문했다. 한국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지 얼마 후다. 그런데도 많은 가족들 친구들이 이렇게 살기가 힘들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어쉬었다. 그 고통의 무게가 그들의 한숨소리로 내게도 강하게 다가왔다. 열심히 사회 운동을 하고, 진보적인 기독교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시는 분들을 만나도 분위기는 같았다. 동성애 문제, 이슬람교 종교간 대화 문제, 교회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가 없을 정도라고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드셨다. 그 분들의 답답함과 아픔이 전해졌다. 

    이는 한국에 사는 한국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지난 6월 23일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독립을 하기로 국민투표를 했다. 어째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 한탄하는 소리가 유럽 전역에 울리고 있다. 7월 첫주 이슬람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절기인 라마단 기간 중에 이슬람국가 중 대표적인 이라크, 그것도 수도 바그다드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그것도 같은 라마단을 지키고 그 종교를 믿는 이슬람교도(물론시아파, 수니파 이렇게 파는 다르지만)에 의해 벌여진 사건이다. 무고한 시민들 150여명의 생명이 희생되었다. 그 희생의 울부짓음 소리가 중동, 서아시아 그리고 세계를 울리고 있다.  

    북미로 가보자. 6월 12일 올란도 한 게이바에서 총기를 든 미국시민권자인 오마 마틴 (동성애혐오주의자이고 반미주의자이자 극단적 이슬람교 출신)이 당시 바에 온 무고한 이들을 마구 학살한 사건이 있었다. 약 100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총기난사가 비일비재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조차도 한 사람의 총기로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상자를 낸 것은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고 보도한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마틴이 총 한방에 수십 수백번 총알이 퍼지는 그런 총, 도저히 민간인이 소지해선 안되는 전쟁용 총을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7월 5일 루이지에나주에서 흑인 남성 앨튼 스털링 (37세)가 CD를 팔고 있다가 백인 경찰이 쏜 총에 의해 사망했다. 다음날 6일 미네소타주 세인트 폴지역에서 젊은 흑인 남성 필란도 카스틸 (32세)가 자신의 차 안에서 백인 경찰이 쏜 총에 의해 사망을 했다. 연일 벌어진 이런 살인사건은 약 2년 전 2014년 8월 미져리주 세인트 루이스에서 벌어진 마이클 브라운의 살인 사건과 유사하다. 그 때도 백인경찰에 의해 쏜 총에 맞아 18세의 젊은 흑인 청년이 사망을 했다.아직 어른이라고 할 수 없는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은 마이클 브라운의 죽음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엄청났다. Black Lives Matter라는 운동 조직을 중심으로 인종에 관계없이 미국 도시 곳곳에서 경찰의 폭력, 인종차별, 그리고, 총기 난사에 대해 반대시위를 벌여왔다.  

    7월 5일 6일 희생된 흑인 남성들의 죽음에 대한 시위가 8일 달라스에서 일어났다. 평화시위였다. 많은 경찰들이 그 평화 시위를 보호하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 경찰들을 향해 총기를 겨눈 흑인이 있었다. 아프카니스탄 참정용사 출신인 미가 존슨 (25세)은 백인경찰을 향해 마구 난사를 했고, 5명의 경찰이 목숨을 잃고 10명이상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그는 이런 흑인을 차별하는 백인이 싫고, 백인 경찰이 싫고, 그래서 그들을 죽이고 싶다고 고백을 했다. 심지어, Black Lives Matter시위도 지겹고 싫다고 말했다. 달라스 경찰 살인사건이 일어난지 열흘이 지났는데, 분위기는 계속 살벌하고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위는 계속되고 있고, 경찰을 향한 분노는 죽음의 협박으로까지 벌어지고 있다.

    경찰의 총기 난사, 특히 흑인과 유색 인종을 향한 폭력의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매일 미국 경찰이 쏜 총에 의해 발생한 사망자는 3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사망자는 거의 흑인이거나 유색인종이다. 가히 충격적이다. 흑인-백인 분리정책이 공식적으로 폐기된지 50년이 지났다. 그런데, 흑인과 백인들 관계는 풀리지 않고 있다. 6월-7월 올 해 벌어지는 일련의 인종관련 폭력 상황을 두고 많은 이들은 1968년 상황이 되풀이 되는 건 아닌지 우려를 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흑인-백인 관계가 물과 기름처럼 나누어진 것은 아니라고 선언했다. 피부색을 넘어서 대다수 많은 이들이 인종 차별에 항의하고, 총기없는 세상을 외치고, 정책적 변화, 구조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오바마는 이런 모습을 기술하면서 지금 모두 힘들지만 어렵지만 대안이 안 보이는 것 같지만 절대 희망을 버려선 안된다고 전 미국인들을 향해 호소를 했다.

    이런 희망이 담긴 메시지를 들으면서, 절망하지 말라는 절절한 메시지를 들으면서, 연상되는 성서메시지가 떠올랐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 다양한 성서 본문들이 떠오르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별로 인기가 없는, 그래서, 감히 단언하건대, 다들 별로 알지 못하는 성서를 소개하려고 한다.

    히브리서신은 학자들 내에서 신약성서의 고아라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인기가 없는 성서다. 로마서와 고린도전서 다음으로 세번째로 긴 장 수를 가지고 있기에 신약성서에서 비중이 있는 성서이지만, 그 내용이 낯설다는 이유로 설교자들, 일반 교인들 모두 기피하는 성서다.

    나도 마찬가지다. 성차별적이고 희생을 강요하는 서신으로 이해하고 기피했다. 지난 22년동안 한번도 히브리서신을 본문으로 택해서 설교를 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최근 내가 속한 사스카추완 주립대 교수인 Mary Ann Beavis 와 이 서신을 주석하는 작업을 같이 하면서 이런 생각이 바뀌었다.[각주:1]


    히브리서신은 16장 전체가 하나의 설교다. 마치 유대인출신 초대 기독교인들 공동체에게 서신기자가 긴 설교를 했다고 상상해보라. 이 설교가 선포될 당시 상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 상황만큼, 아니 그 이상 심각했다. 이 공동체는 소수였다. 미국의 흑인이나 유색인종처럼, 한국사회 이주민들처럼 소수였다. 유대교를 따르는 대다수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박고, 동시에 로마 제국으로부터도 박해를 받는 기독교인들이었다. 곧 오실 거라 믿었던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자고 깨면 같이 신앙 생활하던 친구들이 순교를 당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살벌하고 두려운 상황에서 살아야 했던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이 설교가 들려졌다.

   이 설교를 듣는 대부분 교인들은 아마도 자신들도 곧 박해로 인해 순교할 것을 알았다. 죽을 줄 알면서, 믿음을 버리지 않고 결단하는 이들을 설교자는 위로하고 이들의 믿음을 격려한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바탕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11:1) 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히브리 서신은 그 공동체가 겪는 고민과 고통을 자신 히브리 신앙의 선배들도 겪었다고 위로를 한다. 아브라함도 사라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라합도,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리고 모든 예언자들이 이런 고생을 겪었다고, 너무나 많은 성서의 인물들을 열거하면서 위로한다. 이 신앙의 선배들도 당신들이 바라고 소망하는 곳으로 가지도 못했고, 원하고 바라던 모든 일을 이루어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힘든 길을 갔다고, 그러니 우리도 갈 수 있다고 이들 공동체를 격려한다. 그래서, 이들 모두가 “구름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되어 이 공동체를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다고 확신을 준다. 그러니 보이지 않지만, 지금 보이는 현실이 너무 갑갑하고 어둡지만, 소망하는 그것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고통을 견뎌내고 달려가자고 절절히 외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주석 작업을 하면서 배운 점이 많다. 하나는 후포모네 (hypomone)라는 헬라어의 의미다. 소위 “인내, 감내, 저항”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이 단어는 구약, 신약성서 전역에 걸쳐 나오는데 (예. 시 37:9, 이 51:5; 미 7:7; 스 3:8; 마 24:13, 롬 5:3-5), 히브리서신엔 11장 27절에 나온다. “그는 보이지 않는 그 분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견디어 냈습니다” 라고 설교자는 여기서 모세를 인용하고 후포모네를 썼다. 즉, 후포모네는 고통을 견딘 모세의 파라오 이집트 제국에 대한 저항을 가리킨다. 신약성서에서 히포모네는 저항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저항과 약간 의미가 다르다. 무언가 나서고 드러내고 시위를 하는 저항도 중요하다. 그래서 Black Lives Matter는 오늘도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보면 드러나지 않고 견디어내는 것, 이런 저항도 필요하다. 바로 이 저항을 히브리 서신이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서 히브리서가 고통을 무조건 감내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더 더욱 고통을 이쁘게 포장하고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는 것, 그 고통이 올 때, 수동적으로 피하지 않고, 감내하겠다는 것, 그 결단을 고백하고 있다.

   여기서 히브리서신이 가지고 있는 구원론 (그리스도론)을 잠시 살펴보자. 이 서신기자가 펼치고 있는 십자가의 신학이 가히 놀랍다. 십자가가 구원의 상징인 것은 그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이 변화되셨기 때문이라고 사도 바울과는 완전히 다른 주장을 펼친다.[각주:2] 사도바울은 십자가 사건이 구원의 사건인 것은 그 사건이 믿는 자들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갈 2:20). 그런데, 히브리서신 기자가 보기에 십자가 사건이 구원의 사건인 것은 그 사건이 예수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히 5:7-10; 2:9-18).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그 길을 가지 않고 피할 수 있었지만 (5:8), 예수님은 몸소 힘들게 그 길을 갔다고 히브리서신은 고백한다. 그리고 그 고통과 죽음으로 예수님은 우리 인간, 아니 피조물 모두가 겪는 고통에 대해 죽음에 대해 철저하게 경험했다는 것이다 (2:9; 2:17). 그래서 우리 인간과 유한한 피조물을 완전하게 이해하시고, 우리와 완전히 공감하시고, 우리를 완전하게 품어내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5:9).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 (12:2)이다. 예수님이 완전하신 건 그 분이 인간의 고통을 완벽하게 공감한다는 의미이다. 그 분이 하나님이신 건, 구세주인 것은, 그 분이 철저하게 인간의 고통, 죽음을 감내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후포모네 신앙의 역설이자, 히브리서신이 주는 지혜이다.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 지 모르는 요즘 같은 세상, 살상이 난무하고, 분노가 폭력으로 자행되는 이런 세상, 평화의 길이 도대체 안 보이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포기하지 않으나 감내하는 후포모네 신앙의 저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살기가 너무 힘들어 한숨이 나오고, 땅이 꺼질 만큼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야하지만, 그런 상황을 견디어 내는 신앙이 필요하다. 그 신앙은 결코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런 고통이 (다른 이에겐 일어나도) 내겐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안일함에 후포모네 신앙은 우리에게 함께 다른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라고 격려한다. 예수님도 하셨기에, 그 분이 우리와 함께 철처하게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셨기에 우리도 그를 따르는 자들로서 할 수 있다는 히브리서신 공동체의 믿음의 고백을 우리도 할 때다.


ⓒ 웹진 <제3시대>


  1. Mary Ann Beavis and HyeRan Kim-Cragg, Hebrews Wisdom Commentary (Collegeville: Liturgical Press, 2015). [본문으로]
  2. Ruth Hoppin, “The Book of the Hebrews Revisited: Implications of the Theology of Hebrews for Gender Equality,” cited in Beavis and Kim-Cragg, Hebrews, 57-5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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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작은 도시 공동체 이야기 2]


공동체의 해석적 순환



 

최규창[각주:1]


공간, 장소, 거처


       많은 사람들은 보편적 ‘공간'에 의미가 부여되면 ‘장소’, 즉 ‘관계공간’이나 ‘역사공간’으로 변화된다는 점을 인식했다. 괴테는 '들판과 숲과 바위와 정원은 언제나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대가 그곳들을 장소로 만든다.’고 노래했다. 물건이나 사물에 의미와 목적이 부여되면 ‘도구’가 되듯이, 인간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성의 좌표 속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실존'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들이 우리의 존재론을 공간적으로 모두 설명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유에 실천이 첨가되지 않으면 어떤 한계를 넘어가지 못한다. 예를 들어, ‘속도’의 관점으로 근대성을 사유한 폴 빌릴리오도 오늘날과 같은 초고속 이동수단들과 광속 인터넷, 그리고 개인의 사생활까지 가속화시키는 스마트폰의 시대는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속도 자체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정교하고 흥미로운 분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무지막지한 속도의 중독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예언하지 못했다. 원리조차도 새로운 맥락을 만나면 시효가 소멸되는데, 그 결과 그것은 원리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정리에 불과한 것이 된다. 공간이 장소로, 물건이 도구로, 존재가 실존으로 전환되는데는 사유나 의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여기에는 경험으로 대변되는 일종의 시간성이 필요한데, 그로 인해 공간과 장소는 어떤 변증법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결국 우리에게는 인생의 의미를 담지하는 ‘중요한' 장소, 즉 ‘거처'가 필요한 것이다.  

       수 년 전, 도시의 삶에 적응하기 힘든 경제적 여건에 처한 몇 젊은 부부들이 거주할 장소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중, 울산 도심에서 떨어진 한 외진 지역에 지어진 조그마한 미분양 아파트 단지를 발견했다. 분양이 되지 않고 방치된 곳이어서 시행사에서도 그들에게 매우 저렴한 가격에 장기 임대를 해 주었고, 심지어 몇 백 만원의 보증금과 휴대폰 사용요금과 비슷한 수준의 월세만 내면 십 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계약도 체결해 주었다. 일단 거주가 해결되자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미 가지고 있던 목공기술, 도배기술, 커피 만들기, 운전면허 등을 활용해서 닥치는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생업도 안정되어 갔다. 비록 도심까지 진입하는데 다소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거처가 안정되어 있다는 것은 이 모든 불편함을 상쇄시키고도 남는 장점이었다. 현재 이 공동체에는 열 가정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단단한 가정 교회가 형성되었고, 경제적 부담없이 부모를 모시는 집이 생겨났고, 외부 손님을 수용할 게스트하우스도 마련되어 있다. 이 공동체의 특징은 소득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버는 돈을 한 군데로 모으고 개인당 일정 금액의 용돈을 매 달 받는다. 공동으로 모인 소득으로 모두에게 의료비, 교육비, 주거비 등을 무상으로 지급하고 있다. 점점 이 공동체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고, 사람들의 일거리와 가용한 생업 아이템들도 증가하고 있어서, 요즘은 일을 줄이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어딘가에 취업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 나서자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자금을 고려하더라도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돈을 더 버는 것 보다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공동체를 더 단단하게 이루는 쪽으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일단 거처가 안정되자, 젊은 부부들은 아기를 낳기 시작했고, 아이를 입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어떤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소유가 더 늘어난 것도 아니고,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도 아닌데, 불편한 위치에 있는 저렴한 주택에 함께 모여 삶을 공유하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도심 속의 가정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삶의 요소들인 가정꾸리기, 교회 유지하기, 생업에서 살아남기 등이 자연스럽게 한꺼번에 해결되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포기한 것은 단지 번듯한 직장에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삶 뿐이었다.   


환원근대 속에 상실된 공간


      앤소니 퀸이 주연한 <산체스의 아이들>이라는 영화의 OST 메인 타이틀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희망과 긍지에 대한 꿈이 없다면 사람은 죽을 것이다. 그의 몸은 움직일지라도 그의 마음은 무덤 속에서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땅이 없다면 사람은 꿈꿀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존엄성을 가지고 살 장소가 필요하다.”  


       안식할 땅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자유로울 수 없다. 거처가 없는 인간은 노마드 상태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의미를 가지는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인생의 터를 세우는 ‘거처'를 의미한다. 아마도 1960년대 이후 압축근대 시대에, 대대로 살아오던 거처를 떠나 도시로 밀려들어와 도시 빈민이 된 이들에게 거의 유일한 ‘유사 거처’(pseudo-dwelling place)의 역할을 제공했던 곳은 바로 ‘교회’였을 것이다. 새벽마다 하늘 아버지에게 매달리고 울부짖지 않으면 하루도 견디기 힘든 시절이었다. 자연스럽게 교회당은 ‘성전’이 되었고, 집보다 더 깨끗하고 거룩하게 관리해야 할 ‘거처'가 되었다. ‘70~'80년대에 종종 들리던 뉴스처럼, 자신의 장기를 팔아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일부 교회와 신도들은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믿음이라고까지 해석했다. 1960년대 이후 50여년간 한국 사회는 ‘2년 단위 전세’와 ‘아파트 중심의 주택공급’,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 선분양제’, ‘아파트 가격 폭등’ 등에 힘입은 빈번한 주거지 이동전략을 통한 서민 재산 증식으로 나라를 유지해 왔다. 2년 단위의 잦은 이사는 우리의 의식에서 거처를 소거시켰고, 동일한 구조로 설계된 아파트의 평수를 늘려가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었다. 거처가 되어야 할 집은 중산층 진입과 국가의 복지 의무, 자녀 학자금, 교회 헌금을 모두 떠받치는 재원으로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전 국민의 59%가 아파트에 살고 있고, 85%가 동일하게 설계된 모양의 주택에서 살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는 결국 주거공간의 획일화를 통한 전체주의를 이루어냈고, 잦은 이주를 통한 상실의 정치를 구현했다. 한국의 교회 성장 역시 이 지점에서 동일한 혜택을 입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안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반인 거처를 (늘 옮겨 다니는) 집에서 찾지 못하고 교회나 다른 동질집단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데이비드 하비가 ‘상대적 공간’ 개념을 통해 제시하듯이, 공간 속에서 생성되는 의미는 관찰자의 관점과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김덕영은 <환원근대>에서,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모든 가치와 전통을 ‘돈이 되는’ 것과 맞바꿈으로써 철저하게 자본 중심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대상/영역의 측면에서는 경제성장으로 환원되고, 주체/담지자의 측면에서는 국가와 재벌로 환원되는 이중적 과정을 거쳤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근대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지표인 분화와 개인화는 억압되고 저지되었다’는 것이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돈으로 환원되는 세계는 결국 '공간의 획일화'와 '거처의 상실'을 수반하게 된다. 개인이 존엄성을 가지고 꿈을 꾸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존엄성과 꿈은 가치의 다양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은 다시 말해, 거처의 해체를 통한 전체주의를 도모하는 힘과 그에 저항하는 힘 간의 ‘공간충돌' 또는 ‘공간투쟁'을 상정한다. 우리는 외양으로는 끊임없이 돈을 추구하지만, 내면으로는 계속 거처를 찾는 분열증을 앓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거처 탐색의 실패는 ‘헬조선’과 ‘세계 최고의 자살율’로 나타나고 있다. 절대적 빈곤 시대에도 나타나지 않던 현상이, 모두가 밥은 먹고 살 수 있다는 현대에 와서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고통 : 가치관의 충돌


       이제 여기에 덧붙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거처를 이루는 것은 공간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사람들이기도 하다. 특정한 공간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이 ‘관계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처가 된다. 그것은 실재적으로는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개인이 온전한 참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이 참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과정은 ‘의식’(意識)과 ‘이성’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내면의 ‘무의식'과 영적인 에너지의 발현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그것은 반드시 어떤 형태의 고통과 불편함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반드시 앞 세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삶의 지혜와 충돌을 야기한다. 인간은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서든 불편함과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한 시대가 낳은 지혜란 그 경로를 압축적으로 구성한 일정한 구조와 패턴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우리가 건축을 통한 주거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결심했을 때, 구성원들 전부가 양가 부모님들에게서 받았던 압박과 우려는 모두 여기서 기인했다. 한국전쟁을 겪고, 모든 것이 부족했던 어려운 시절을 지나온 그 분들에게 있어 돈을 함께 투자해서 벌이는 ‘경제적 융합 행위’는 실패가 자명한 매우 위험한 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돈을 거래하면 돈도 잃고 친구도 잃게 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돈이 속이지 사람이 속이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속이는 사람은 계속 속인다.’, ‘실패한 사람은 계속 실패한다.’, ‘돈의 유혹을 이길 장사는 없다.’는 것을 삶의 지혜로 터득한 이들에게, 전재산을 걸고 공동체를 건설하기로 한 자식들의 결심은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행위로 비춰졌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심지어 토지 구매잔금을 주기 전날 우리 집에 오셔서, ‘토지 계약금을 포기하고 공사를 하지 마라’고 강하게 충고하셨다. 당신 스스로도 평생 교인들 빚보증을 서주고, 수 많은 사기를 당해 오면서도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셨지만, 자식 마저 그런 상처와 배신 속에 인생을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답답했다고 하셨다. 나는 ‘저와 우리 친구들을 믿어달라'고 부탁드렸지만, 교회 내에서도 이런 사례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평생 보지 못했던 아버지는 설득을 포기한 채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셨다. 과연 ‘한 번 실패한 사람은 계속 실패한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맞는 것일까. 그냥 부모의 삶의 지혜가 농축된 격언들을 따라 살면 인생에 큰 문제가 없이 편안해질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의식’과 ‘이성’이 지배하는 격언들이 우리에게 어떤 에너지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우리의 선택은 자명했다.   

       그러나 이후의 과정은 우리에게 기성세대의 격언들이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해 깨닫게 해 주었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였다. 먼저 건축과정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격언은 단순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경험을 넘어가는 수 많은 이해관계와 구조적인 악으로 가득하다. 애초의 계획과 설계대로 진행되는 것은 거의 없었고, 건축이라는 과정을 진행하면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낭패를 거의 모두 경험해야 했다. 목적에 맞는 땅을 찾는데도 반 년이 걸렸지만, 세 필지를 사서 병합하고자 했던 계획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땅을 중개한 부동산컨설팅사는 애초에 필지병합을 간단한 과정으로 설명했지만, 현실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복잡하고 힘든 과정이었다. 결국 구매한 토지의 일부를 포기하고 땅을 설계해야 했고, 그 때문에 막대한 재정적, 시간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토지경계가 잘못 측정되어서 공사가 몇 달 중단되기도 했고, 결국 설계사, 시공사, 감리사도 교체되었다. 제대로 시공하고 있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교대로 휴가를 내고 현장에 상주해야 했고, 구청 공무원, 시공사 소장과의 말다툼은 일상이 되었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각자의 재정압박이 심해져서 서로 돈을 융통하면서 버텨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건축이 완료되었지만, 주택 세 채를 분양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다시 큰 재정손해와 2년이 넘는 지루한 법정싸움이 이어졌다. 건축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잃고 길거리에 나가 앉을 뻔한 위기가 몇 번 있었고, 우리는 퇴근 후 밤마다 모여 기도회와 대책회의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때의 적막함이란 다시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참담했다. 이런 과정들이 반드시 수반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부모님들은 우리를 막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런 류의 프로젝트는 애초부터 시작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자기 시대의 아포리즘으로 형성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이 터널을 지나왔고, 놀랍게도 그 과정에서 한 번도 포기하거나 서로를 원망하려는 마음을 먹지 않았다. 이것이 부모님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점이고, 우리 세대에 새롭게 형성된 삶의 해석방식이었다. 그리고 이후 우리는 14년 반을 함께 거처를 이루었다. 물론 경험이 쌓이고 나서의 공정은 이와 같이 않을 것이다. 실재로 현재 진행중인 2차 공사는 마무리를 한 달 앞두고 있는 현재시점까지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경험이 전무했던 우리들은 모든 과정마다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부모님 세대의 아포리즘이 현실적이라는 깨달음을 준 두 번째 계기는 우리의 공동체 생활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갈등과 어려움이었다. 공동체는 공유된 가치(shared values)에 동의한 사람들이 형성하는 일종의 배타적 멤버쉽 개념을 포함하지만,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한편으로는 서로의 개성과 ‘임의적 특이성’이 살아 있는 충돌과 투쟁의 장(場)이기도 하다. 결혼이 개인의 결합이나, 양가 집안의 결합을 넘어, 수 십년간 따로 형성된 두 공간의 결합이듯이, 공동체 역시 교집합과 합집합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형성되어가는 하나의 지평융합의 완성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갈등에 의해 해체되든지, 아니며 공존할 수 있는 나름의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주거 공동체는 달리 다른 곳으로 도망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후자의 방식을 취하게 된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비교의식이다. 다섯 가정이 서로에 대해 깊이 알게 될수록 각 방면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들(best practice)에 집중하게 되고 그것을 자신의 가정과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배우자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졌고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자녀들을 비교하면서 생기게 되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웃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기 자녀에 대한 주관적 낙관주의로 육아와 교육의 스트레스를 이겨 왔던 이전과는 달리, 이제 아이들의 특징과 개성, 차이는 숨길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당시까지도 다양성의 가치를 삶으로 배우지 못했던 우리들은 여전히 세속적 기준으로 아이들과 우리의 삶을 재단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우리들은 이런 어려움들이 일종의 지평융합을 통해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하비가 ‘상대적 공간’ 개념을 통해 제시하듯이, 공간 속에서 생성되는 의미는 관찰자의 관점과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김덕영은 <환원근대>에서,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모든 가치와 전통을 ‘돈이 되는’ 것과 맞바꿈으로써 철저하게 자본 중심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대상/영역의 측면에서는 경제성장으로 환원되고, 주체/담지자의 측면에서는 국가와 재벌로 환원되는 이중적 과정을 거쳤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근대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지표인 분화와 개인화는 억압되고 저지되었다’는 것이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돈으로 환원되는 세계는 결국 '공간의 획일화'와 '거처의 상실'을 수반하게 된다. 개인이 존엄성을 가지고 꿈을 꾸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존엄성과 꿈은 가치의 다양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은 다시 말해, 거처의 해체를 통한 전체주의를 도모하는 힘과 그에 저항하는 힘 간의 ‘공간충돌' 또는 ‘공간투쟁'을 상정한다. 우리는 외양으로는 끊임없이 돈을 추구하지만, 내면으로는 계속 거처를 찾는 분열증을 앓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거처 탐색의 실패는 ‘헬조선’과 ‘세계 최고의 자살율’로 나타나고 있다. 절대적 빈곤 시대에도 나타나지 않던 현상이, 모두가 밥은 먹고 살 수 있다는 현대에 와서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끝나지 않는 순환과 융합 : 과정으로서의 공동체


       함께 하는 시간과 나눔을 통해 우리는 솔직해 지는 법을 배웠다. 그러자 서로에게 잘 보이거나, 가면을 써야 할 이유가 없어지고, 자신의 인격과 자기 가정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데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모임 중에 부부싸움이 빈번히 일어나고, 부부간에 둘이서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전체 모임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자기를 발견하는 경험이었다. 성장은 이성과 의식만이 아닌, 무질서와 무의식에 의해서 촉발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내면이 질서정연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혼돈과 무질서가 함께 공유되어야 진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주인공 타일러 더든은 ‘남자는 싸워봐야 진정한 친구가 된다’고 주장한다. 싸움은 무질서의 본능이 올라오는 경험이자, 광기의 행위다. 예수가 우리에게 평화가 아닌 검을 주러 왔다고 하신 것처럼(마태복음10:34) 가정 내의 다툼, 공동체 내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오지만, 결국은 서로를 더욱 단단하게 결속시키는 힘이 된다. 주거 공동체는 달리 도피할 곳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든 갈등과 고통에 직면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운 형태의 융합과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이성적인 대화로 갈등을 설명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는 차원이 아니라, 여전히 갈등과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은 채 섭섭함과 분노가 남아 있지만, 서로의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고, 더 깊은 정과 신뢰로 서로를 대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체험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근대적 주체로 형성된 근대적, 시스템적 공동체에서 경험하기 힘든 새로운 공동체 이해일 수 있다. 우리는 그냥 그런 과정 안에 머물기로 했다. (공동체 내의 무의식의 융합에 대해서는 3편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 

       공동체는 이제 우리에게 맞는 형태로 어떤 룰과 구조를 가지게 된다. 미로슬라브 볼프가 <배제와 포용>에서 말하듯, 서로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도 힘들고, 멀어져도 어려워지는 것이 공동체의 속성이다. 흔히 '매우 가까운 관계'에 대한 환상을 갖고 공동체에 접근하지만 그것은 상처를 불러올 수도 있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되면 자신과 상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사이에 타자를 수용할 공간을 갖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 타자가 바로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외부의 타자일 수도 있고, 공동체 자체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공동체에서는 항상 부분과 전체의 해석적 순환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공동체에서 생겨나는 구조와 룰은 공동체나 구조 자체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항상 구성원들이 참된 인간으로 성숙해가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가변적이고 과정중심적이다.  

       하이데거나 가다머가 주장하듯이 인간은 자기 시대의 역사성을 벗어날 수 없고, 무전제적인 해석을 할 수 없다. 우리들 자체가 세계를 객체화할 수 없고, 세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경적 공동체’라는 것은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우리가 스스로 포함된 공동체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완벽한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다만 자기 시대를 참인간으로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시대적 공동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역사적 예수'를 우리의 기준이자 '의미론적 동위체'(움베르토 에코)로 삼는 한계적 순환 속에서 탄생한 어떤 구조나 패턴, 룰이 공동체 안에 존재할 뿐이다. 이것 또한 구성원들에 따라 계속 변화될 것이므로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어떤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강요하는 순간 우리는 해석을 멈추게 되고, 시대적 아포리즘에 사로잡혀 버리게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울산 외곽의 공동체 역시 자기들에게 맞는 임의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 방식들은 일반화되거나 다른 공동체에 강요될 수 없다. 공동체 내의 갈등이 해결되고 무의식적 차원의 공유가 일어나는 것으로 멈춘다면 우리는 계속 진화하는 공동체의 영속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우리가 어떤 룰과 구조를 만들지만, 그 구조들이 다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계속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해 가는 것이 공동체의 속성이다. 사람은 공동체를 만들지만, 공동체 역시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돈을 벌거나, 외부에 내세울만한 자랑거리를 만들거나, 성공을 추구하지 않으며, 오직 예수의 삶을 쫓아가는 참된 인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홀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또는 이 세상을 객체로 만드는 주객논리로는 모순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공동체에 속해야 하고, 그러한 해석적 순환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14년의 첫번째 스테이지는 우리와 공동체가 그런 방식으로 함께 영향을 주고 받는 남다른 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늦어버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절박하고 필수불가결한 변화의 요청 앞에 다시 서게 되었다. 새로운 주거 공간을 설계하고 건축하면서 이제 공동체의 목적과 동력을 새롭게 점검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공동체 14년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다음 단계의 공동체를 어떻게 구상하고 세웠는지에 대한 새로운 사례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 웹진 <제3시대>

  1.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곳에 오래 매여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 수치가 세상변혁이라는 불가능성에 대한 부담과 지나친 민감함에서 나온 혼란이었음을 깨달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톱니바퀴로부터 일탈하여 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소박한 대안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십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시작된 법인사업과 생활대안운동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해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웹진을 통해 앞으로 4차례에 걸쳐 그 가치생성의 과정을 일부 나눌 예정이다. (주) 포리토리아 대표,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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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바빌론의 포로가 되어 모두 끌려갈 것이다.



김윤동
(본 연구소 행정연구원)

 


부채사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 일종의 ‘게으름’의 표식인마냥 부끄러운 일이었던 것이 불과 수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얼마의 빚이 없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결혼을 하기 위해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다들 빚을 진다. 필자 주변의 10~20년 차이가 나는 어른들 또한 특출난 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심심치 않게 빚을 지고 있다. 처음에는 대단히 어색하게 느껴졌던 대출 회사 광고도 이제는 너무나 범람하다보니 어색한 느낌도 없이 무감각해져버렸다. 길거리에는 대출과 관련된 명함들이 가을철 낙엽처럼 온통 거리를 뒤덮고 있고 TV와 미디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빚을 진다는 일이 삶에 ‘큰 일’이 되지 않는 세상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거대한 채무관계의 거미줄에 촘촘하게 얽히고 설켜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즘 사회에 대해 어떤 수식어를 붙이는 게 유행이라 한다면, 지금 사회는 ‘부채사회’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지 않을까? 이 정도면 과거 전통적으로 인간을 연결시켰던 혈통, 우정, 사랑 등은 사치스럽거나 거추장스러운 관계이고, 오로지 채무 관계가 가장 우선적인 인간 관계라고까지 말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이런 진술들은 단순히 필자의 직관이나 느낌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몇 가지 경제 관련 데이터들은 채무 관계가 곧 우리 삶의 최우선적인 과제이며, 우리 사회의 얼마나 절대적인 지배구조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숫자로 나타난 지표들은 이러한 진단들이 결코 추측이 아님을 이야기 해준다. 한국 사회가 점점 1% 소수 부자들만의 세상으로 구축되어 가고 있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부자’라 불리는 금융자산 10억 이상을 가진 사람들은 0.33%인데, 이들의 월 가계수지(2379만원)는 일반가구(158만원)에 비해 15배나 되는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각주:1] 그럼에도 돈은 돌지 않고, 점점 서민들의 삶은 대출이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4.13 총선거를 통해 노동당 구교현 비례대표 후보가 밝혔던 말을 빌린다면,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166조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워낙 큰 단위의 돈이다보니 이 금액이 얼마나 큰 돈인지 가늠이 되지 않지만, 이를 한 사람당 빚으로 환산하면 6200만원이라는 수치가 산출된다고 한다. 지금도 세상의 빛을 처음 보고 울음을 터뜨리며 태어나는 바로 그 아기의 인생 또한 ‘마이너스(-)’ 6200만원이라는 통장 잔고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언제 갚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현 정권 들어 매일 2천억원의 빚이 늘었고 작년 한 해만 따지면 하루에 3천억원씩 가계부채가 늘어난 것이다.  



       부채가 왜 심각한 문제인가? 사실 부채라는 것은 본래 그 개념상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채란 미래의 소득을 ‘신용’이라는 이름으로 당겨 쓰는 것이기에 그렇다. 사실 부채가 증가하는 만큼 소득이 따라잡을 수만 있다면, 빚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전제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부채를 소득이 따라잡지 못한다. 부채는 갚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부채는 또다른 부채를 부추겨 그 고통을 눈덩이 굴리듯 불어나게 하고, 그 빠르기 또한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근본적으로는 한국 사회에서 ‘돈’만이 곧 권력이고, 이름이고, ‘존재’라는 명제는 우리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뿌리깊은 사고의 ‘틀거리’로 똬리 틀고 있다.

       이런 재앙은 거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라는 탈출구 없는 링 위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게임(Death Match) 때문이지만, 특히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발 경제 위기(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지금의 대출 ‘헬게이트’를 연 하나의 특이점이었다. 2008년 이래 미국과 세계경제의 불황은 백약이 무효하여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미국 대선이라는 정치적 빅 이벤트와 맞물려 최저금리 기조는 좀처럼 올라갈 것 같지 않다. 하여 한국의 경제정책 또한 미국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 또한 최저금리를 기조로 한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빚의 제국으로 진입하는 행렬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각주:2] 물론, 이 제국은 들어올 때는 쉬웠지만, 나갈 문은 찾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성채와 같이 우리 앞에 서 있다. 



       이렇게 서민들이 대출의 악순환고리에 얽혀 삶의 낭떠러지로 내몰릴 때, 미디어는 돈 빌리기를 더욱 부추기는 악마의 손길을 뻗치고 있었다. 케이블 TV에서는 고금리 대부업체 광고가 하루에 1364건이 방영된다고 한다.[각주:3] 하루가 1440분이니 거의 1분에 한 번 꼴로 ‘대출하라’는 말을 우리는 듣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본 방송 프로그램들의 상영시간을 제외하고 사이 시간을 이용해 광고가 나가는 걸 생각하면, 실제로 대단한 양이다. 이 글을 위해 필자가 TV속 대부 광고를 본 결과 과거에 비해 광고의 양도 현격하게 늘어났을 뿐 아니라, 광고의 형태 또한 매우 다양해지고, 광고의 질도 세련되고 더욱 부드러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즉, 과거에 공격적이고 노골적으로 ‘돈을 빌리라’는 말을 했다면, 지금은 대출과 관련된 ‘스토리’를 만들어 ‘대출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하는 감성전략을 사용한다거나, 고정 수입이 없어 1금융권에서 대출이 어려운 전업주부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 전용 대출 등 특정계층을 공략하는 전략적이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서슴치 않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었다.  

       끝없이 빚을 권하는 사회는 흉측한 괴물이 되었지만, 그 괴물은 우리 앞에 선량한 가면을 쓰고 나타나 달콤한 말들로 사람들은 대출의 늪으로 계속해서 이끌어가고 있다. 누구도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새로운 바빌론의 등장


       그러던 요즘, 며칠 전 운전을 하고 가다가 필자의 눈에 대형 건물 광고 간판이 들어왔다. ‘000저축은행 바빌론, 바로 빌려주는 론(Loan, 대출)!’이라는 문구였다. 이 저축은행은 대출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인 ‘신속성’ 즉, 금융 관련 이력과 조건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체 없이 바로 빌려주는 론! 임을 자처하고 그 앞 글자를 따 자신들을 ‘바빌론’이라 칭한 것이다.


  

       이제는 너무 많아서 무뎌질대로 무뎌진 대부업체 광고 중 하나이긴 했지만, 필자는 신호에 걸린 채로 무언가에 홀린 듯 이 간판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바라보았다. 바빌론이라는 글자는 기독교인에게는 매우 익숙한 단어였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이스라엘 주변에 자리하여 이스라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바로 고대 근동 지방의 대제국 바빌로니아(또는 성경 번역에 따라 바벨론이라고도 불린다.) 말이다. 성서의 관점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끝없이 침략하고 결국에는 예루살렘을 겁탈한 ‘제국’이며, 타락한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망치’(예레미야서 50:23)이기도 하다.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은 약소한 예루살렘과 그 거주민들을 사정 없이 침략, 강탈하였고, 예루살렘의 심장이자 야훼와의 언약을 상징하는 성전을 무참히 짓밟았다. 제 1성서(구약)의 수많은 야훼의 예언자들은 예루살렘을 침략하는 소위 갈대아인, 바빌로니아인들은 유다국의 왕을 능멸했다. 왕을 심문하고, 그 자식들을 처형하고, 눈을 빼어 쇠사슬로 묶어 그들의 땅으로 끌고 갔다. (열왕기하 25:6~7)  

       또한 성전, 왕궁, 성벽 등 건물이라는 건물은 다 부숴버리고 거주민들을 모두 포로로 잡아가 버렸다. 무엇보다 예루살렘에서 절대 보호받을 것만 같던 야훼 신앙의 상징인 성전 내에 있는 집기류들과 거룩한 물품들이 모두 갈대아인의 손에 빼앗겼다. 성서 내에서는 열왕기하 25장에서 일련의 사태를 기록해 놓고 있고, 당시 유다국 전반적인 상황을 김진호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바빌로니아에 의해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된 것이다. 두 번의 침공(주전 597년 여호야긴 왕 때; 주전 586년 시드기야 왕 때)으로 거의 대부분의 도시들이 불타 사라졌고, 수많은 농촌마을 또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에 무려 85%의 거주지가 역사에서 사라졌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급부상한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은 한때 인구가 일만오천 명에 이르는, 요시아 왕 당시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커다란 도시가 되었으나, 전란 후 오랫동안 그 십분의 일인 일천오백 명을 넘지 않는 소읍 정도로 전락해버렸다. 농촌의 경작지들은 거의 쑥대밭이 되었고, 대다수의 주민들은 유민이 되어 타지역으로 이주하여 마을은 거의 비어버렸다. 유대 지역은 이후 오랫동안 회복되지 못한 채 버려진 땅이 된 것이다. [각주:4] 


       모든 것이 끝났다. 바빌로니아는 이방 세력의 침략과 위협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예루살렘의 성전, 궁전 등을 모조리 박살 내었다. 과거 히스기야왕 당시 이방인들의 침략에도 야훼에 대한 신앙을 굳건히 하여 위기를 넘겼던 나라였다. 훨씬 부강했던 북쪽의 이스라엘국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훨씬 약소국이었던 유다가 100여년 가까이 무너지지 않고 연명하는 걸 보고 ‘과연 하나님이시로구나!’를 연신 내뱉았겠지만, 바빌로니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유다는 패닉에 빠졌다. 

       그런데, 바빌로니아가 이렇게 유다를 처참하게 짓밟기 전, 바빌로니아에 의한 유다의 멸망을 선포하다가 맞고 구금되고 모진 고문을 겪은 한 무리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예레미야와 그 일단의 무리들이다. 예레미야가 예언을 시작한 것은 요시야왕 즉위 후 13년이었다. 요시야 왕에 의해 야훼 신앙의 회복과 이스라엘의 중흥을 위한 시도가 재차 모색되었지만, 강대국의 침략으로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이 상황에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예언했다. 분명 그는 자신의 예언으로 자기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이’(렘 20:7, 9) 예언을 해갔다. 왕실과 기존 권력의 입장에서는 숨기고 싶은 사실을 떠벌리는 예레미야가 눈엣가시일 뿐이었다. 안 그래도 상황이 좋지 않은데, 핍절한 민중의 삶을 ‘힐링’ 해 줘야 할 예언자가 꼭 불 난 집에 부채질 하듯 쉬지 않고 파멸을 외치니 미움을 살 수밖에. 불온한 예레미야에게 파멸을 선언한 댓가로 모진 형벌이 내려졌지만, 그 고문이 끝나고 나서도 그는 입을 쉬지 않은 모양이다.(렘 20:3~6) 예레미야 입장에서도 피로감이 몰려왔다. 파멸을 선언할수록 유다국이 파멸하기는커녕 자신의 삶만 고달파졌다. 천천히 말려 죽인다고나할까, 도래하지 않는 파국에 대한 허탈함이 커져 갔다. 그치만, 그 신탁의 운명을 한편으로는 체념하고, 또다른 편으로는 뜨거운 불에 달려드는 부나비처럼 뛰어들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런 ‘모두’가 고통받는 상황을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마다 '폭력'을 고발하고 '파멸'을 외치니, 주님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됩니다. (...) 수많은 사람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겁에 질려 있다. 너희는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합니다. 나와 친하던 사람들도 모두 내가 넘어지기만을 기다립니다. '혹시 그가 실수를 하기라도 하면, 우리가 그를 덮치고 그에게 보복을 하자' 합니다.(예레미야 20장)


       예레미야가 겪는 이 참담함은 우리에게 놓여진 현실과도 많이 닮아 있다. 이스라엘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바빌로니아에 의해 파멸당할 것이라 외치는 예레미야나 단박에 빌려준다는 ‘바빌론(바빌Loan)’, 즉 금융자본제국에 의해 우리가 곧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고발하는 지금의 예언적 무리나 수치를 당하기는 매한가지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폭력을 고발하고 파멸을 외치는 이들이 받는 대접은 예레미야가 당하는 것만큼 수치스럽다. 금융자본의 제국이 멸망할 것이라는 선언은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기 십상이다.

       단지, 그 수치의 모양새가 권력에 의한 폭력이 아닌 일반 서민들에 의해 ‘냉소’되는 것으로 수치를 당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차피 파국을 선언해봤자 달라질 게 무엔가’라는 메시지는 주류 언론에서 ‘달관 세대’라는 이름으로까지 불리기도 한다.[각주:5] 파국에 대한 선언이 이토록 조롱을 당하는 이유는 그만큼 제국이 안겨줄 비참함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걸 모르는 것이 아니라 너무 잘 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지연된 고통을 ‘지금 당장은’, ‘지금만이라도’ 멀리하고 싶은 마음일 게다. 조금이라도 더 미루고 싶은 심정이야말로 매우 힘겨운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태어남 자체를 저주했던 예레미야의 말(렘 20:14)처럼 우리는 창자를 부여잡고 대출과 금융자본제국의 파국에 대해 더욱 선언하고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먼저 우리는 달콤하고 짜릿하게 한 방에 이 고통을 끝내줄 것처럼 말하는 ‘바빌론’에 대해 진지하게 파산을 선언해야 한다. 적어도 법 규제를 통해 미디어를 통한 빚을 권하는 재생산이 줄어들어야 하고, 현재 일부 지자체나 시민단체를 통해 벌어지고 있는 악성 부채 등 빚 탕감에 관한 사회적, 국가적인 논의가 더욱 많아져야 하겠다. 논의를 넓혀 조세도피처와도 같은 상류층에 의해 저질러지는 악질 경제범죄에 대해 시민들 스스로 감시와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각주:6] 특히, 이러한 거대한 자본의 횡포와 맞서 ‘난장이들이 쏘아 올리는 공’에 대한 냉소 또한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달관’ 같은 냉소의 말이야말로 사회의 병폐를 고착시키고 이 체제를 우리 속으로 더욱 내면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바(로) 빌(려주는) 론(Loan, 대출)’의 포로가 되어 모두 끌려가게 될 것이다. 아니, 지금도 이미 그 포로의 행렬은 시작되었고, 계속되고 있다. 단지 내가 지금 빚지지 않고 있다 하여, 포로의 상태가 아닌 게 아니다. 붕괴가 진행중인 금융 자본주의 제국에 우리는 ‘이미’ 살고 있다. 그 파국을 인정하고 선언하는 것이 빠를수록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고 그릴 수 있는 시간이 그나마 확보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이 수치는 2012년의 수치이며, 지금은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김철호, 임태영, 김옥연, 「10등급 국민」 (대장간, 2015), 184쪽. [본문으로]
  2. 경제학자 장하준은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세계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 일부에서 불황이 끝났다고 성급히 선언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지만 지속적으로 경기가 회복될지는 아직 불확실한 상태이다. (…) 설사 경기가 지속적으로 회복된다 하더라도 이번 금융 위기의 여파는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기업과 가계 부문은 원상 복구하는 데에만 몇 년이 걸릴 것이고, 이번 위기로 말미암아 생긴 엄청난 재정 적자를 만회하느라 정부는 공공 투자와 복지 혜택을 줄일 수밖에 없어서 길게는 몇 십 년 동안 경제 성장, 빈곤 문제, 사회 안정성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11~12쪽. [본문으로]
  3. MBC PD수첩 1041회, 「가계빚 1100조,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 (15. 6. 9 방영) [본문으로]
  4.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3, 웹진 제3시대 제 1호, ‘[시평] 그달리야의 꿈에서 위기를 보다(김진호)’ [본문으로]
  5.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24/2015022400161.html 조선일보는 ‘달관세대가 사는 법’ 이라는 시리즈물을 연재한 바 있다. [본문으로]
  6. http://newstapa.org/tax-haven-2016 , 인터넷 언론인 뉴스타파는 정치인, 경제인들의 조세도피 문제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보도한 바 있고, 세계적으로도 이 문제는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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