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21세기가 당면한 국제적 문제이자 신학적 주제

 



김혜란
(
캐나다 세인트앤드류스 대학, 실천신학 교수)


 


    카나다연합교회 총회가 주관하는 선교와 봉사 (Mission and Service, 약칭 M & S)라는 기금이 있다. M&S 기금으로 후원을 요청하는 세계 에큐메니칼 교회들과 단체들은 도움을 받는다. 한국은 NCCK (교회협의회)포함해서, 파트너교단인 기독교장로회 소속 다양한 그룹, 그리고 한국여신학자협의회와 같은 기독교여성단체들이 이 M&S 후원을 받는다.

    많은 연합교회교인들이 지교회 1년 예산의 10%를 총회기금으로 설정하고 헌금한다. 사회정의와 약자보호를 더 열심히 하는 교회의 경우 20%를 총회 M&S 기금을 헌금한다. 지교회 재정 상황이 어려워져도, 총회 M&S 기금 액수를 줄이지 않고자 노력한다. 왜냐하면, 이 기금은 나 자신, 내 교회, 내 나라를 위해 쓰이지 않고 필요한 이웃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교회를 불리기 위해, 또는 교회 성장을 위한 전도가 아니라, 파트너 교회와 단체가 요청하는 도움에 대한 후원이다.

    매 주일 각 연합교회 지교회 주일예배를 드릴 때, 헌금 순서 전, M&S Minutes (노트)를 읽는다. 주당 1페이지 분량으로 작성된 이 노트는 각 장마다 이 기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귀한 소식들이 담겨져 있다.

    얼마전 한국소식이 이 M&S Minutes에 실렸다. 한국의 이주 상황을 다루었다. 이주민의 숫자가 지난 30년전과 비교해서 5배가 늘었다는 소식과 함께, 비한국 이주민들이 겪는 어려움과 차별, 이를 위해 애쓰는 교회 단체 (이주민 센터)를 소개했다. 그리고 어떻게 M&S 기금이 이 단체에게 쓰여지고 있는지 보고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2017년 한국에서 이주의 문제가 어떤지 궁금해졌다.

    난, 한국인으로서 한국을 떠나 사는 이주민이다. 통계에 의하면, 상대적 비율로는 (절대수는 중국인들이지만)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이주를 많이 하고 산다고 한다.

   지난 30년간 비한국인들이 한국으로 오는 이주의 비율도 높아졌지만, 분단된 남과 북, 더 비좁아진 한국을 떠나 세계 곳곳으로 이주한 한국인들도 지난 50년동안 엄청나게 늘었다. 물론, 일본제국주의시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이주를 당한 한국인들, 중국에서 사는 조선족과 스탈린 소련연방억압시대 러시아에서 추방당한 고려인들, 이들까지 포함하면 지난 100년이상 한국인들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이주민들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주의 문제를 한국인으로서 다룰 필요가 있다. 아니 이주의 문제는 한국이라는 지역적, 일개 국가적 문제가 아니라 전지구적 세계적 문제이다. 그래서 21세기는 글로벌 이주의 시대라고 불려지고 있다.[각주:1]

    여기서 난 기독교인으로서 실천신학자로서 예배학자로 교회를 본다. 기독교인의 사명과 책임이 교회에 국한된 것을 말하고자 교회를 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의 이유로 교회를 보고자 한다. 즉, 이주라는 세계의 상황,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이 운동이자 현상(people on the move)에 의해 교회가 영향을 받고 있고, 교회도 흔들리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기위해 교회를 보고자 한다.

    많은 출판사에서 이주에 관한 책을 펴내고 있다. 그 한 출판사는 영국 소속 Palgrave Macmillan이다. 최근 출판한 책 중 Church in an age of Global Migration: A Moving Body [각주:2] 이 2016년에 발간되었다. 이 책은 WCC (세계기독교협의회)가 1995년부터 이주의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고, 관련 글들과 운동을 벌여왔는지 소개한다. 더불어, 다양한 교단 출신, 성공회, 세례교, 정교회, 오순절, 장로교, 그리고 카톨릭 교회들에 소속한 저자들의 글을 통해, 전세계 교회들이 당면한 이주의 문제를 살핀다. 총 19명의 저자들이 속한 나라, 일하는 나라들도 다양하다. 필리핀, 호주, 과테말라, 미국, 카나다, 브라질, 이탤리, 레바논, 스위스, 영국, 벨기에, 인도, 그리고 동아프리카에 속한 에디오피아, 콩고, 수단, 소말리아, 우간다 등이다.

   역사가 다르고, 식민주의의 잔재가 다르고, 인종과 문화가 다르지만, 이들 나라들, 즉, 모든 대륙 (아시아, 아프리카, 북미, 남미, 중동,그리고 유럽)을 포함하고 있는 이들 나라들 모두 이주의 문제를 겪고 있고, 그 이주를 통해 신학이 깊어지고 있고, 신앙적 실천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주라는 세계적 현상으로 인해, 그 영향을 받아서 새롭게 정립되는 교회론의 주제를 네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로 번역되는 헬라어 에클라시아, 보내진 자들의 모임, (those who were sent), 어원의 의미를 살린다면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보내졌다면, 어디로 가고 있는가? 둘째, 교회를 순례라는 신학적 여정으로 본다면, 신앙인이 가야할 길과 이주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 세째, 출애굽기의 핵심 주제이자, 히브리 노예를 해방시킨 하나님의 가르침,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나그네를 학대하거나 억압해서는 안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붙여 살던 나그네였다” (출 22:21)라는 성서전통을 전승하고 실천하는 교회의 역할과 현실 이주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네째, 신약 에베소서에서는 우리는 (교회는) 외국인도 나그네도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느님의 가족 (2:19)이라고 역설한다. 더 나아가, “사실 우리에게는 이 땅위에 영원한 도시가 없고, 우리는 장차 올 도시를 찾고 있습니다” (히 13:14) 라고 히브리서신은 이주의 신학, 즉, 정착하지 않는 믿음, 안주하지 않는 신앙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이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초대교회와 이주의 문제는어떤 연관이 있으며 어떤 실천신학적 과제가 도출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신학적 응답은 궁극적으로 기존의 교회론이라는 교리적 이론적 신학적 틀에 도전을 준다. 내면적이고 (inward), 정적인 (static) 신앙, 우리 교회교인만 생각하고 (exclusive), 또는 기독교중심의 제국주의 (Christian centric/imperialistic)를 자성하고, 자본주의적 번영, 성장, 물질중심주의적 복음 (prosperity Gospel)에 대한 반박으로써 대안적 교회론 정립이 시급하다.

   이주라는 현상과 이주의 성서적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교회론은 교리적, 이성적, 추상적 신학적 사유를 넘어서서 경험적, 현상적, 그리고 실천신학적 사유를 요구한다. 이주라는 현실은, 이주가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하나의 운동, 움직이는, 변동하는 현실이다. 소위 이주는 고체가 아니라 액체이다. 그러므로, 동적 사고, 움직임을 직시하고 대처하는 교회론과 신학을 요구한다. 이미 정해진 이념이나 정돈된 사상이 있고, 이를 적용하는 식의 연역적 방식의 신학은 현 이주를 담아내기 부적합하다. 귀납적 방식의 신학, 유연하고 개방적인 신학과 실천을 요구한다. 이주라는 현실은 나와 같은 우리 (예. 동일한 언어공동체, 인종, 종교)가 다른 이들을 만나야 하는 상황을 불러온다. 그들과의 공존을 추구해야 하기에, 공존하지 않으면 분쟁과 폭력을 가져오기에, 다름을 포괄하는 신앙, 자기를 비우면서 타자에 관심하는 믿음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 공존의 삶은, 한번하는 구제가 아니라, 일상의 삶으로 이어지는 여정으로 교회가 자리매김할 것을 요청한다. 공존을 추구하지 않아서 최악의 경우 인종, 종족 말살 분쟁이 일어났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그런 인류 최악의 사태를 직면할 수 있다. 우려되는 바는 죽이지는 않아도 이주민들을 철저하게 배척하는 정책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변화하는 세상을 향한 신앙을 위한 예언자적 소리를 내야한다. 그 신앙이 교회안팍에서 녹아나는 구체적인 실천들로 그 모습을 드러내야한다. 보내진 자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 순레자로서의 교회, 출애굽 해방의 후손자로서의 교회, 나그네로서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교회, 이 모습을 현 21세기에 실현하는 교회로 담아내야 한다. 물론, 이런 이주의 문제를 씨름하는 과정에서 두려움, 무지 등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을 것임이 분명하다. 동시에 기존에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과 행위를 통해 교회의 본 모습이 드러날 수도 있다. 그런 긍정적인 측면에서 최근 카나다에서 벌어진 교회소식 하나를 나눈다.

    최근 하인즈 토마토 케첩 공장이 있는 도시로 유명한 리밍턴이라는 카나다 남부 지역에 속한 한 성공회 교회가 이슬람교도들이 예배드리도록 교회 문을 열고, 예배 공간을 나누어 쓰기로 한 사실이 알려졌다.[각주:3] 시리아 피난민들의 이주가 30가정 이상으로 증가되면서 그들이 따로 예배드릴 공간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성공회 교회가 예배당을 오픈 한 것이다. 예배의 핵심은 기도이다.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기도가 없는 곳에서 그 어떤 다른 신앙적 실천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예배당을 열고, 이슬람교인들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배려한 점은 일종의 기도이자, 실천신학적 교회론을 보여준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예가 다른 실천, 이른바 이슬람에 대한 편견제거하기, 서로의 신앙과 믿음 배우기, 함께 연대하고 공공선을 이루기 등으로 이어지리라 본다. 이렇게 교회가 이슬람교도들을 위해 예배당을 여는 일은 단순한 구제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기독교인)도 나그네라는 고백과 이슬람인들도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고백이 담겨져 있다. 이슬람교도에 대한 혐오와 이슬람 종교에 대한 배타적 사고가 너무도 팽배한 기독교 교회에 경종을 울리는 사례이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를 하지 말라고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권고했다 (롬 12:14). 소수였던 초대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여기서 교회는 에클라시아이다. 교회라는 곳으로 모인 자들 한 사람 한 사람, 원래부터 있던 기득권자가 아니라, 보내진 자들이요 초청받은 자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다. 영원히 좋은 자리에 앉아서 그 자리를 틀어쥐고 있는 특권받은 자들이 아니다. 여기가 좋사오니라는 집짓고 살자는 유혹에 빠질 때, 과감히 내려가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따라 길을 떠나야 하는 순례자이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다른 이주자들도 만날 것이고, 그 이주자의 삶의 조건이 어려우면, 그들을 돕고 환대하는 것이 보내진 자, 박해경험을 가진 자가 할 일이다 (히 13:2). 우리는 본향, 장차 올 도시를 향해 가지만, 그래서 현실에 집착해선 안되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저버리거나 현실의 삶을 수동적으로 살라는 뜻은 아니다. 가는 그 여정 순간에 충실하면서,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해내야한다.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주어야 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하며, 그 어려운 상황을 만드는 차별, 억압, 폭력을 제거하기 위해 온전히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출애굽해방의 전승을 계승하는 교회의 모습이다.

    리밍턴 성공회 교회는 그런 보내진 자의 역할을 한 것이다. 그 예배당 건물을 영원히 자신들이 소유할 것으로 쥐고 앉아 있지 않고, 기도를 요하는 이슬람 교인들을 위해 소유가 아니라, 성전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이주로 인해, 이슬람 이주자들을 만났다. 이 성공회 교회를 세운 신앙의 선배도 어딘가에서 온 이주자였을 것이다. 박해건, 전쟁이건, 또는 경제적, 문화적,종교적, 교육적 이유,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이 교인들의 조상도 이주를 했다. 익숙하고 편안한 고향, 고국, 자기 집을 떠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주라는 과정은 대부분의 경우 자발적 선택보다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더 많다. 특히 피난민으로서의 이주는 훨씬 더 그 힘든 여정을 동반한다. 그래서 피난민을 받고, 이주민을 만나는 우리 기독교인들, 이미 정착한 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단순히 자선베품의 단계를 넘어서 이 만남, 사귐을 통해 그 이슬람 교도들을 포함해서, 피난민들, 새로운 이주민들로부터 받을 배움에 관심을 두자. 그들과의 만남으로 본 교회의 모습을 되찾으면서 기독교인으로서의 귀한 정체성을 확인하자. 상생과 공존의 경험, 공존을 위한 실천을 위해, 신학적 성찰과 성서적 지혜를 구해야한다.

    디어드리 코넬은 예수님이 이주민이었다는 책을 썼다. 그 책에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이 땅으로 이주한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주민으로서 공생애의 삶을 사셨다고 주장한다.[각주:4] 예수님의 탄생 자체가 이주라는 것이다. 이주민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인 대림절을 보내면서, 이주의 문제에 관심을 두길 바란다.


ⓒ 웹진 <제3시대>



  1. Stephen Castles and Mark J. Miller, Age of Migration, 4th ed. (New York: Palgrave Macmillan, 2009). [본문으로]
  2. Susanna Snyder, Joshua Ralston, and Agnes M Brazal, eds. Church in an Age of Global Migration: A Moving Body (Palgrave, 2016). [본문으로]
  3. http://www.cbc.ca/news/canada/windsor/leamington-ont-anglican-church-opens-doors-to-muslim-worshippers-1.422166 [본문으로]
  4. Deirdre Cornell, Jesus was a Migrant (Maryknoll: Orbis, 20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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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이슈에 자극된 생각들 3] 요 8:11과 마 7:1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Interdiscipilinary Studies박사과정(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 박사후보생,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성소수자 혐오자들, 특히 기독교 계통의 성소수자 혐오자들이 기를 쓰고 ‘증명’하려는 것 중의 하나가 성소수자들의 성 정체성/성 지향성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때 굳이 ‘후천적’이라는 것을 기를 쓰며 주장하는 이유는,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성 정체성/성 지향성이 ‘선천적’이라고 주장한다고 이들이 믿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반박하려는 것일 터이며, 나아가서는 ‘후천적’인 것이므로 당연히 ‘교정’도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함일 것이다. 사실 ‘선천적’/’후천적’이라는 프레임은 성소수자 옹호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도 종종 채택하는 프레임이기도 하다. ‘선천적’으로 그렇다는 데 어쩔 거냐 그런데 왜 안 된다고 난리냐 이런 ‘옹호’ 의견이 종종 보이는 것도 현실이니까.

   어쨌든 저런 요설에 대해서는 바로 ‘후천적’이면 어쨌다는 건데란 반문이 나올 것이고 사실 이거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이야기해 볼 거리가 있다면,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성 정체성/성 지향성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선천적’/’후천적’ 프레임으로 읽는 것이 애당초 맞는가 하는 것일 터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자신들의 성 정체성/성 지향성이 자신들에게도 “어, 이상해, 나는 남들과 좀 다른 것 같아”라고 ‘발견되는’ 것이라는 것이며(그래서 어떤 성소수자 운동가는 이런 의미에서 성소수자는 비이성애자라고 볼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자신들의 성 정체성/성 지향성이 어떻게 성립된 것인지 추적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니까. 이런 이야기가 ‘태어날 때부터 그랬냐 아니냐’라는 식으로 읽힐 수도 있다는 것까지는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좀 더 성실히 읽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선천적이니 후천적이니 이런 야그로 읽어 치워 버리지는 말아야 할 것은 확실할 것이다.

  특히나, ‘기독교인’이라면 문제가 또 달라진다. 왜냐고? 당장 자신들의 신앙고백을 되새겨 볼 일이다. 자신들의 기독교 신앙이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모태신앙’이 아닌 이상 ‘선천적’이란 말은 못 할 테지만(사실 ‘모태신앙’이라고 해도 그걸 ‘선천적’이라 할 수 있는지는 또 의문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신앙이 ‘후천적’이라고, 지금 이 글의 맥락에서라면 ‘자기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신앙을 가지게 된 것 자체가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고백은 당장 걷어치워야 할 테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 가장 중요한 정체성에 ‘선천적’/’후천적’이란 잣대를 들이댄다는 게 넌센스임을 이렇게 잘 알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다른 이들의 성 정체성/성 지향성엔 그 잣대를 들이대겠다니, 이거야말로 코미디 아닌가.


2. 


  소위 ‘후천적’이란, ‘선택’이라고 굳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심보를 조금 더 뜯어 본다면, 그 심보를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들의 입에서 종종 오르내리는 또다른 이야기를 끌어들일 만할 것이다. 동성애가 그 당사자들간의 ‘선택’일 뿐이거나, 혹은 당사자 외에 다른 이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인정해 주어도 된다면, 소아성애도, 근친상간도, 다 인정해 주어도 되느냐는 그 이야기 말이다.

  일단 바로 생각나는 말대꾸가 있다면 그거 다 ‘이성애’ 아닌가요일 것이다. ‘이성애자’들 사이에서 그런 문제가 발생한다는데 왜 동성애를 끌어들여 지지고 볶고냐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대꾸가 틀린 거야 절대로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말대꾸를 하기 전에, 저 소아성애도 근친상간도 어쩌고 하는 말을 조금만 더 뜯어 보면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된다. 그럼, ‘선택’일 뿐이거나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걸 ‘인정’의 근거로 삼고 나면, 소아성애니 근친상간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반대할 근거라고 들고 올 것이 더 이상 없어져 버린다는 것인가? 그렇게 근거가 없어져 버리니 소아성애니 근친상간이니 하는 것들을 인정해 줄 수밖에 없어져 버린다는 것인가? 그런데 그런 것들을 인정하면 안 되는 건 자명하니, 역으로 ‘선택’이니 ‘피해 없음’이니 하는 근거로 동성애를 인정해 주어서도 안 된다는 것인가?

  이렇게 질문을 묻고 나면, 아무리 봐도 소아성애니 근친상간이니를 들먹이는 이 이슈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걸 들먹이면서 이게 ‘동성애를 반대’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답시고 여기는 사람들일 것 같다. 그들이 그걸 들먹이면서 지키고자 하는 소위 ‘성윤리’라는 것이 속 빈 강정도 이런 속빈 강정이 없다는 말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런 속 빈 강정 주제에 감히 남의 삶을 좌지우지하겠다고 지껄이고 있으니 더더욱이나.


3. 


  1과 2에서 언급했던 집단들이 목청을 높이는 이슈 중 하나가 ‘군형법 제92조 6항’이다. 남성 군인들 간의 합의에 의한 성관계마저도 처벌하는, ‘계간죄’ 어쩌고 하는 바로 그 조항. 어디서 이런 이야기까지 하는 걸 본 적도 있다. 남자들끼리만 모여 있는 군대에서 ‘동성애’를 허용해 주면, 그건 대놓고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당하라는’ 이야기 아니냐고.

  여기에 대해서도 바로 말대꾸를 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러면 하급자에게 강제력을 행사한 상급자만 처벌하면 그만 아니냐 왜 쌍방이 처벌되어야 하냐. 그리고 이런 경우도 아니고 ‘합의’에 의한 경우까지 처벌하겠다는 건 도대체 무슨 소리냐 이런 이야기부터. 이미 성소수자 군복무를 허용한 나라들이 있는데, 한국은 그런 나라와는 다른 ‘별종’들만 사는 나라라는 소리냐는 이야기도. 실제 군대에서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밝히게 되면 오히려 피해를 보는 경우(물론 ‘성폭력’에 가까운 피해까지 포함해서)가 많다는 현실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이 모든 말대꾸를 당연히 수긍하면서도 역시 여기서도 저 말 자체를 조금 더 뜯어보고 싶은 구석이 있다.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대놓고 ‘당하라는’ 운운하는 바로 저 이야기. 이걸 ‘당한다’ 어쩌고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상급자가 하급자를, 저항할 수 없는 하급자를 ‘여자’ 보듯이 할 수 있어서 ‘여자’에게 하듯이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터인데, 그럼 대체 평소에 ‘여자’를 어떻게 보고 있길래, ‘저항할 수 없는 조건’이 된다면 저런 행동이 만연할 것이다(고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말이다. 즉, 여기서도 정작 드러나는 건, 동성애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이성애자 남자들이 ‘여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그 시선을 ‘저항할 수 없는’ 존재들에게 어떻게 옮기고 있는가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4.


  성소수자들, 아니 비단 성소수자들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배제를 겪는 존재들에 대해서 동맹의 자세를 취하려 하면, 흔히 기독교인이라는 작자들이 반론이랍시고 들먹이는 성서구절이 요한복음 8장 11절이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말은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그런데 지금까지 글을 쭉 써오다 보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마태복음 7장 1절을 봐야 할 거란 생각이 든다.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가능하면 2절까지도 봐야 할 거다. 비판하는 그 잣대로 자신들도 비판을 받을 거다라는 그 이야기 말이다. 그리고 아마 같은 장의 22~23절도 보면 더 좋을 테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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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숭배에 관한 자서전적 초상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1. 근본주의적 신앙, 과학, 그리고 타종교


     원불교대사전에는 근본주의가 이렇게 제시되고 있다. “근본주의는 넓게는 18ㆍ19세기 미국의 보수적인 신앙운동 경향인 복음주의(evangelicalism) 전통 안에 일어난 신앙운동이라 볼 수 있다. 개신교의 근본주의자들은 1911년 《근본주의(The Fundamentals)》라는 책자에서 밝힌 다섯 가지 교리인 《성경》의 축자영감무오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ㆍ대속ㆍ육체적 부활ㆍ임박한 재림 등을 기본 사상으로 체계화했다.”라고 말이다. 기독교도 아닌 원불교대사전에 이렇게 실려 있는 것을 보니 뭔가 기분이 묘해진다. 하지만 이 사전이 타종교에도 관심을 갖고 있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기에 서로 다른 종교들 간의 사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친다면 묘하다는 느낌은 분명 잘못된 일일 것이다. 아무튼, 여기서 지적하는 근본주의 5대 강령은 내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적어도 10대 때까지는 말이다. 이 5대 강령 중 핵심은 다른 무엇도 아닌 축자영감무오설일 것인데, 왜냐하면 나머지는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강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중고등학교 시절 한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나름 지성적이라 여겨졌던 IVF에서 활동한 교회 선생님께서 성경공부 시간에 “창세기 1장 1절이 믿겨지면 신앙은 다 정리된다.”고 하셨다. 이 말에 반박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말씀하신 배경이 교회이기도 했지만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할 말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창세기 1장 1절이 믿겨지면 전체가 다 믿어진다는 논리가 그리 틀린 말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논리적으로야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글자 그대로 믿는다면 그 뒤에 이어지는 성서의 모든 기적들이 믿겨지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한 아이는 교회라는 공간에서만 살지 않는다. 이미 세속화된 세계에서, 그것도 진화론이 열심히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으로 가르쳐지는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 학교에선 진화론이 교회에선 창조론이. 이러한 공존할 수 없는 두 대립되는 세계에서 10대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사실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 교회에선 진화론을 이야기하면 창조론을 말할 것을, 한 예로 과학시간 시험에 진화론과 관련한 문제가 나오면 틀릴 것을 주장하는 그런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유포되는 장소에서 말이다. 대안은 정신분열적 증세를 겪으며 견디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철이 먼저 든 친구들은 데미안이라는 책을 내게 주며 “야 이 전도사 그리 고민하지 말고 좀 솔직해져봐라” 라고 했다. 학교에서 열심히 전도하던 나였기에 친구들은 가끔 전도사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전도사라는 별칭에도 자신은 분열증을 앓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친구들은 이런 나를 구해주려 무지 애를 썼다. 물론 그들 중 몇몇은 서서히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들은 편지로 때론 대화로 나의 신앙에 흠집을 낸 것이다. 성서가 너무 믿기지가 않아 힘들었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마다 나는 “아 이러면 곤란해 신앙으로 무장해야지”라며 스스로 체면을 걸던 때도 있었다. 흔들린 신앙은 참석한 전도 집회 때마다 “자 여러분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없으면 지금 당장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그런 분들은 일어나세요” 라고 외치는 목사님의 말에 일어서도록 만들었다. 확실히 과학은 나의 신앙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자연히 성서의 말씀은 믿어지기 않게 되었고 이와 함께 찾아온 회의적인 신앙은 구원의 확신마저도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사영리에 나오는 영접기도를 남몰래 교회에 가서 수십 번 기도해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미 주술로 전락한 기도 문구는 흠집이 난 신앙을 고치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한데 과학만 그랬을까. 돌이켜보면, 과학만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었던 것처럼 보인다. 친구들은 철학이나 신화로 나를 유혹하기도 했다. 니체가 말이야 혹은 다른 신화를 보면 말이야 하는 식이었다. 성서만 부지런히 읽고 QT생활을 즐기던 내게 철학이니 다른 종교의 신화니 하는 이야기들은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으나, 진화론으로 인해 갈등을 겪은 후로는 그래 그런 것도 말은 되겠구나 하는 쪽으로 변하도록 만들었다. “어 닮았네 그렇다면 과연 성서의 하느님은 맞을까 혹은 있을까” 하는 물음을 묻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다른 종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이야기에도 창조설화는 얼마든지 있었다. 단지 교회는 그것은 사탄의 이야기이고 다른 종교가 말하는 허탄한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르쳤기에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성서는 무오한 하느님의 말씀이었고 진리였던 반면에 다른 종교경전은 사탄이 뿌린 씨앗에 지나지 않았기에 말이다. 간단히 말해, 다른 종교에는 구원의 진리가 없다고 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흔들리기 시작한 마음은 다른 종교 경전의 이야기를 듣도록 해주었다. “아 다른 종교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구나. 신기하네. 그렇다면 뭐지”라고 하는 쪽으로 나아가도록 해주었다는 점이다. 내 종교의 무오가 옳다면 다른 종교의 무오도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옳은가. 그런데 누가 옳은지를 어떻게 가릴 수 있을까. 점차 종교다원주의라는 문제로, 그래서 공부를 한다면 비교종교학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마 내가 종교학을 공부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아 종교학을 통해 내가 다른 종교를 좀 더 잘 알고 그렇게 되면 내 신앙도 풍부해지고 열린 마음을 가진 목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 목사나 선교사가 되기로 하느님께 서원한 상태였기에 말이다.


2. 종교학, 신화학, 역사비평학


     다시 원불교대사전으로 돌아가 보자. 성서를 숭배하는 신앙, 즉 성서무오설을 견지하는 근본주의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19세기 신학계를 주도하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고 기독교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전개된 개신교의 보수주의적ㆍ복고주의적 종교운동이념”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10대 때에 그토록 잘못된 연구 잘못된 방식으로 성서를 읽는 자들이 자유주의자라고 들었던 진영으로 나는 서서히 발을 옮기고 있었던 셈이다. 종교학은 사실 내가 기대했던 바대로 다른 종교에 눈을 뜨게 해주는 차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가진 신앙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는 눈을 뜨도록 해주었다. 자기 종교에 메스를 들이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기가 믿는 신앙에 수술을 집도하는 행위는 엘리아데가 말한 바와 같이 우주의 중심이 무너지는 경험을 갖게 하는 일과도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과학으로 인해 일어난 갈등은 무너질 때 무너지더라도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 영역인지를 탐사하도록 만들었다. 종교학은 다른 종교에도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갖고 있으며, 그렇기에 객관적으로 중립적으로 정의될 필요가 있으며, 때문에 항상 종교연구에 있어 연구자는 자기신앙을 괄호쳐야 한다고 가르쳤다. 특히, 엘리아데는 기독교 이외의 종교들아 가진 영적인 풍요로움을 기독교 교리에 맞추지 않고 그 자체를 보게 함으로써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종교적 인간은 기독교에만 생겨날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생겨날 수 있고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우주의 중심을 찾고 있었음을 가르쳐주었다. 성현의 변증법을 겪는 인간인 호모랠리기우스는 어디서나 체험될 수 있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교신화학은 서구중심적인 시각을 깨트리고자 애를 쓰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인 레비스트로우스를 읽으면서 기독교의 많은 이야기들은 다른 곳에도 존재하며, 이 이야기들 간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그 이야기들이 원용되어 성서에 들어왔는지를 묻도록 해주었다. 대학원 2학년 1학기에 만난 배철현 선생님과의 만남은 결정적이었는데, 그때 들었던 고대근동 신화와 창세기에 대한 강의는 성서를 보는 나의 눈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종교 신앙의 확산과 그 영향에 관한 강의는 10대 때 교회 선생님이 말씀하신 믿음만으론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그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언어학에 근거한 역사비평학은 한 마디로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점차 나는 소위 자유주의 신학, 즉 근본주의가 그토록 싫어하던 역사비평학으로 발을 들여놓았던 셈이다.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항해하는 선원처럼, 하지만 먼 바다를 항해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선원처럼 나는 그렇게 비평학이라는 학문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신대원으로 갔다. 불행히도 신학교에서의 수업은 그리 감흥이 있지 않았다. 다양한 종교들 간의 비교나 텍스트에 대한 꼼꼼한 비평적 주석 달기 수업이기보다는 대체로 교양정도의 수준에 그치는 마는 터라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논문을 준비하면서 공부하게 된 신약학의 여러 학자들을 통해 새삼 역사비평학과 문학비평이 가져다준 자유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도 신화비평을 전개하는 학자들은 큰 영향을 끼쳤는데 - 불트만은 마가복음서를 그 방향으로 전개하도록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았고, 이후의 다른 학자들을 뒤지면서 - 특히 19세기 네덜란드의 래디컬 그룹과 그 그룹의 비평을 이어받은 신학진영 바깥의 사람들을 통해 나는 성서를 연구하는 자유가 짜릿하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로버트 프라이스는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비로소 나는 성서에 대한 우상숭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성서란 성서무오설이 말하는 것처럼 글자 그대로의 역사가 아니라 다른 의도와 의미들이 숨겨진 문헌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역사의 세계가 아닌 이념들의 세계, 즉 슈트라우스가 지적한 것처럼 관념들이 지닌 정신의 세계를 꿰뚫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교회의 이념들의 역사가 펼쳐지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3. 해석학과 탈식민주의


     분명 교회의 신앙의 이념들의 역사가 펼쳐진 공간의 극적인 양식은 약속과 성취일 것인데, 이것은 신약의 구약 인용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하지만 어떻게 교회는 구약을 원래의 문맥과 전혀 다른 뜻을 적용해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결국 해석학으로 옮겨오도록 만들었다. 이 점에서 로버트 포울러는 가장 흥미로운 학자였는데, 그는 마가복음서가 하나의 독자반응비평으로 읽혀질 수 있는 텍스트임을 증명해냈다. 원저자의 의도가 아니라 그것을 인용하고 적용하며 나름의 이야기를 구축해내려는 종교적 인간의 심성을 이해하는데 있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나로 하여금 이것은 해석학이라는 문제로 나아가도록 이끌었다. 인간이란 원래의 텍스트를 들이대면서도 이 텍스트의 의도는 그게 아니고 이것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존재임을 말이다. 때문에, 성서무오설은 더 이상 활개를 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이러니, 패러디, 수수께기 말놀이와 같은 일종의 전유에 관한 논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상호텍스트성에 관한 관심을 열어 제친 셈이다.

     그런데 이처럼 전유의 문제라면, 내가 사는 공간은, 다시 말해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공간은 어디이며, 또한 그 공간에서 자라고 있던 종교적 유산은 무엇일까에 관한 질문을 던지도록 만들었다. 신약학에서, 특히 복음서 연구에서 자주 등장하는 삶의 자리에 관한 물음은 역사비평학이 탄생했던 서구가 아니라 식민지적 세계, 식민지적 종교세계에 내가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텍스트를 전유하는 문제가 선교이고, 그 선교가 복음서라는 텍스트를 탄생시켰다면, 더 이상 서구의 자리에서 내가 물어야 할 것이 아니라 탈식민의 자리에서 성서를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피어났던 셈이다. 성서무오설은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구약이 말하는 바와 같은 유대인의 자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약이 말하는 서유럽의 세계도 아닌 동북아 지역에 살고 있으며 여기서 성서라는 문헌을 대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아무리 성서무오설을 외친다 해도, 인간이란 시대와 장소에 의해 중개되는 존재이기에 원래의 텍스트가 이러하다 저러하다는 말은 자기기만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기만은 마치 내가 10대 때 과학으로 인해 신앙에서 정신분열증을 앓아야 했던 것과 거의 흡사하다. 그러므로 성서를 숭배하는 일은 더 이상 가능치가 않다. 그것도 문자적으로 숭배하는 일은 말이다. 차라리 숭배가 아니라 전유하는 일이고, 이 전유를 통해 새로운 생성을 말해야 하는 과제가 더 진실한 신학적 물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탈식민적으로 성서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응구기와 치옹고처럼 그것은 우선은 정신을 탈식민화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두베가 말한 것처럼 완전한 탈식민은 불가능하다. 서구적 독법들을 소화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대위법적으로 넘어서는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 성서를 제대로 전유하는 일이 아닐까. 성서를 비판적으로 복원하는 자리가 아니라 비판적으로 전유하는 일이 생산적인 것이라면 - 물론 비판적 복원과 전유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쌍둥이일터인데 - 서구가 전유하는 방식과 나의 존재론적 공간인 동북아가 전유하는 방식은 원래 달라야 하며 다를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서구적 성서읽기에 목을 매다는 나의 열등감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성서문자숭배가 전하는 길과는 다른 길에 서 있는 인간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것이 성서에는 전혀 나타나 있지 않은 그러한 길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바울은 이미 문자는 죽은 것이고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더구나 공관복음서를 긴밀하게 검토해보면 이것은 동일한 이야기를 서로 다르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망을 담은 텍스트임을 보여준다. 공관복음서와 큰 차이를 보이는 요한복음서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행전을 읽으면 이미 서로 다른 유파들이 예수에 관한 서로 다른 이해를 내비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1세기의 신앙인들은 지금보다 훨씬 유동적이고 자유로운 해석의 자유를 누리며 그 나름대로 복음에 관한 진실된 이야기를 들려주려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문자무오설은 애초에 유지될 수 없다.

     문자숭배. 하나의 프로테스탄트적 노력이지만 노예적으로 전락한 신앙을 파괴하도록 부추긴 그러한 숭배이다. 사실 역사비평학은 이러한 문자숭배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자숭배는 결국 전유의 문제로 나아가도록 만든다. 그러니까 프로테스탄트의 문자숭배로 인한 역사비평학은 복원이 아니라 전유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텍스트들 간의 병행과 치환 및 접속과 탈구는 말하고자 하는 이의 욕망과 맞물려 새로운 이해를 가져다줄 수 있는 일종의 놀이일 것이다. 물론 이 때의 놀이란 경박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놀이일 것이다. 아무튼 그렇다면 나의 행로는 신앙은 문자를 지키고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전유이고 의미생성임을 가르쳐 준 그러한 것이었을까. 16세기 이후에 등장한 프로테스탄트의 문자숭배, 다시 말해 중세의 4중적 해석을 물리치고 문자숭배를 최고로 간주한 구호, 즉 ‘오직 성서만으로’는 나로 하여금 신앙은 문자에 있지 않고 그것을 전유하고 누리는 것에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원래의 의미가 아니라 전유하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자유를 말이다. 복음을 전해 준 백인에 대한 종속적이고 열등한 감정, 특히 그들의 과학적인 신학적 주석 방법에 대한 열등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 왜냐하면 서로 엮여 있는 세계이고 순수의 세계는 없기에 - 더 이상 구속이 아닌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하나의 기표의 미끄러지기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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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파기합니다. 나는 믿습니다.



김윤동
(본 연구소 행정연구원)

 


약해진 믿음을 강하게!


    최근 신도수가 줄어든 교회에서는 남아 있는 신도들을 향해 ‘믿음이 약해졌다, 믿음이 강해져야 한다’는 말을 외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믿음이란 게 무슨 단단한 고체와 같은 것이어서 근육처럼 그 힘의 정도가 약해졌다가 강해졌다가 할 수도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인 가보다. 발음 한 번으로도 입이 앙다물어지면서 힘껏 눈을 부릅뜨게 만드는 단어 ‘믿음’. 그 단어는 단지 듣거나 발음하기만 해도 너무나 단단하고 확고부동하여 토를 달거나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즉, 적어도 개신교 내부에서는 약해진 믿음(신심)은 곧 열등한 믿음을 의미하며, 믿음이란 자고로 강해야만 그것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고, ‘믿음’이라 불리울만 한 것으로 여긴다. 믿음은 그렇게 단단하고 확고하게 자리를 이탈하지 않으며 자태를 뽐내는 그런 것이어야 하나보다. 그 믿음이란 것이 어떻게 단단해지는지, 단단한 상태의 믿음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건지 어떤 합의도 없는 채로.


   최근 종교개혁 500주년이라 하여 각 처에서 ‘믿음’ 이 더욱 단단하고 확고해지기를 요구받고 있다. 그 사정은 이러하다.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시작했다(?)고 일컬어지는 마틴 루터가 로마서 1장 17절의 성서 구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을 통해 회심을 얻었다고 알려진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루터는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핵심 곧 구원론을 교회나 교황 등의 외형적인 상징이나 표지로 획득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고, 신도 개인이 가지는 그 ‘믿음’이 그리스도교 구원의 핵심이라 설파했다. 루터는 당시의 모진 괴롭힘과 박해를 뚫고 이 ‘오직 믿음(Sola Fide)’을 앞세운 이신칭의의 주장을 사수하여 프로테스탄트 혁명의 선두에 섰고 지금의 개신교 계통의 우두머리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프로테스탄트라는 종파 속에 있는 사람들은 이신칭의 곧, ‘구원=믿음’이라는 이 공식은 프로테스탄트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경계선이 되었고, 그 경계 밖을 나가는 교리는 소위 성서의 가르침을 벗어난 것이고, 거짓 이단사설 정도로 치부하기에 이르렀다.


   한데, 예수의 후예들이 예수가 행했던 실천과 선언들, 곧 역동적이고 ‘운동성’이 담긴 입체적인 ‘사건’으로서의 ‘예수’를 버리고, 안온한 의자에 앉아 사건성이 제거된 예수를 ‘숭배’만 하고 그 숭배의 파토스를 악용해 예수라는 브랜드의 장사치들로 변질되었듯이 루터와 그의 후예들인 프로테스탄트들도 루터가 당시에 ‘믿음’이라는 단어를 부여잡았던 저항의 정신과 당시 개혁운동의 사건성을 쏙 빼버리고 ‘믿음’ 이라는 단어 쭉정이를 숭배하며, 나아가 믿음이라는 이름의 ‘왕국’을 세워 루터와 개혁가들의 이름을 팔며 장사를 서슴치 않고 있다.


    그런 이들 중에 한국의 개신교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올해는 믿음 장사꾼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로 여겨진다. 한국 개신교 내 최대 종파인 장로교 통합측의 경우, 101회 총회를 통해 ‘다시, 거룩한 교회로!’로, 102회 총회 주제를 ‘거룩한 교회, 다시 세상 속으로!’라는 주제를 2년동안 잇달아 내놓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며 거룩하지 못하였다고 진단하고, 거룩의 히브리어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구별’된 자들로서의 정체성을 다 잃어버려 세상의 신뢰마저도 잃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드러나는 차이가 아무 것도 없고 그렇기에 자기들을 다른 종류의 인간들과 식별(Identify)하여 동일화(identification)할 수 있는 표식을 강화해야만 우리의 믿음이 강해질 것이라고 집단적으로 강변한다. 짠 맛을 내는 소금의 주성분이 염화나트륨(Nacl)이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그 실체적인 ‘성분’을 찾자는 게 요즘 주류 개신교 사회의 목소리다.


    9월 말경에 일괄적으로 열린 개신교 대형교단들의 총회에서는 이런 흐름을 극렬하게 반영한다. 이번 총회들은 그리스도인을 식별하는, 그리스도인을 확실하게 보증하는 그 신원 확인서의 요건을 강화하고 명문화(明文化)하는 작업의 향연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동성애자 뿐 아니라 동성애자 ‘옹호/지지자’의 교단 신학교 입학 금지 및 항존직 피택 금지, 이혼/재혼의 간음화(化) 등 기묘하고도 기괴한 상상력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경쟁을 벌였다. 특히, 심지어 최근 한 교단 총회에서는 교단 산하 신학교 교수들에게 ‘이신칭의론’ 곧 행위와도 같은 다른 불순물 하나 포함되지 않는 ‘순수’ 믿음으로 구원을 완전히 이룬다는 그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지 그 견해를 일일이 확인해달라는 제언을 하기도 하였다.[각주:1] 마치 사상검증을 통하여 ‘마녀’라도 사냥해야 속이 풀리겠다는듯이…


프로테스탄트와 믿음


    그러나 루터가 자신의 손에 들었던 무기인 ‘믿음’은 지금의 많은 개신교인들이 기억하고 심폐소생시키려는 믿음제일주의,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이신칭의론 제창과 같은 강력한 프로파간다와 일치하는 것일까? 만약 아니라면 루터 당시의 교회가 잃어버렸다고 주장한 믿음, 그것은 어떤 것일까?


    최근 루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출간된 책 ‘루터의 재발견’에서 저자인 최주훈 목사(중앙루터교회)는 루터파 등 일단의 개신교 진영이라고 불리는 무리들이 들고 일어난 개혁과 혁명의 기치를 높이든 16세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특징을 설명한다.


1520년 루터는 로마 교회로부터 파문 교서를 받고 이듬해 보름스 제국의회(1521)에서 실질적 제재 조치인 제국 추방령을 선고 받는다. (…) 당시 유럽은 오스만 튀르크 족의 유럽 침입으로 기독교 세계가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에 로마 교황청은 모든 제후들의 힘을 빌려 이슬람에 대항하는 정치적 연합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526년 6월 25일 제 1차 슈파이어 제국의회에서 ‘지역의 종교는 그 지역의 통치자의 종교로 한다’는 종교 선택의 원칙을 결의하게 된다. 이 결의의 이면에는 보름스 제국의회(1521)에서의 루터에 대한 판결을 덮어 두겠다는 정치적 합의가 숨겨 있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나 이슬람 군대가 퇴각함에 따라 국제 정치 지형도가 급변하고 이슬람의 위협이 사라지자, 황제는 곧바로 개신교의 확산을 막기 위해 1529년 4월 19일 제2차 슈파이어 제국의회를 소집하게 된다. 이 회의가 열리기 직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칼 5세는 모든 루터파 제후들에게 경고장을 발송한다. 루터파를 떠나 모교회 품으로 돌아오라고 권고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과 검이 루터파 제후와 영주들을 찾아갈 것이라고 경고장을 발송한다.[각주:2]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루터와 루터파 제후들이 선택한 것은 항복이 아니었다. 아무리 뒤져 보아도 성서에 그렇게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회유와 갖가지 협박에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고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읽어버리고 만 성서’,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읽을 수도 없고 해석할 수도 없게 라틴어로 쓰여 있는 그 성서 거기에는 당시 기독교 세계가 말하고 있던 셀 수도 없이 많은 그 종교적 장치들이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루터는 수도사 생활을 하는 동안 참회와 형벌의 문제를 고민하였는데, 교회가 오랜 기간 동안 제작해 놓은 구체적이고 세밀한 ‘생명-정치’ 시스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뼛속 깊이 착취하는 행태는 성서의 이야기들과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 그는 성서를 다시 읽었다. 최후의 심판과 구원의 주체는 사람이나 교회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읽고 말았다. 그리곤 그것에 올라타 소용돌이 속으로 기꺼이 휘말려 들어갔다.


    그 후 루터와 믿음의 동지들은 누구도 신앙을 강요할 수 없다는 ‘신앙의 자유’, 교회 공의회나 사제의 권위보다 높은 ‘성서의 권위’, 성서는 성서 자체가 해석한다는 ‘성서 해석의 원리’[각주:3] 이 원리들을 붙잡고 계속해서 자신의 고백의 길을 이어갔다. 무려 1천여년 가까이 이어온 역사의 전통과 관습도 성서에서 비롯된 그의 ‘믿음’보다 상위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믿음’은 저항하는 믿음이었고, 좋은 게 좋은 것,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것이란 주장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믿음’은 십계명의 제 1계명이 천명하는 것처럼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고 지탱하려고 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 즉 ‘오직(Sola)’이라는 태도로만 성립하는 것이었다. 개신교 신학의 다섯 가지 표제어인 ‘5대 솔라Sola’ – Sola Scriptura 오직 성서, Sola Fide 오직 믿음, Sola Gratia 오직 은총, Sola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 는 단독적인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강조를 뜻하며, 중세 로마 가톨릭 신학에 대한 반대 표제어라 할 수 있다.[각주:4] 루터가 주창한 ‘오직’과 ‘믿음’의 결합이란 신자들의 믿음의 대상을 교회 기득권층 마음대로 지정하고 조작하던 것에 질문하고 반대하는 ‘믿음’이었던 것이다. 번잡스럽게 헌금함을 채워야 연옥을 면하는 것도 아니고, 성찰, 통회, 정개, 고백, 사죄, 보속 이 여섯 단계로 이루어진 고해성사 ‘절차’ 또한 성서가 말하는 믿음이 아니었다. 믿음의 목적어들, 곧 믿음의 대상을 요리조리 자기 입맛에 맞게 귀에 걸고 코에 걸었던 관행을 정지시키고 오직 믿음 그 자체를 통해 구원으로 향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즉, ‘비어 있는 것’으로서 믿음, 곧 다른 것 아닌 ‘오직 믿음 그 자체’라는 사실에 루터와 프로테스탄트는 주목했던 것이다. 이제 루터 이후로는 믿음과 대상이 분리된 상태, 곧 주술적인 행위로서의 믿음에서 ‘믿는다’는 행위 자체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믿음을 파기하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시대에서 ‘믿음’은 어떤 식으로 해석되어야 할까? 새로운 저항과 변화의 신호탄으로서 믿음을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공회 신학자이며, 예수 세미나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역사적 예수’ 연구로 잘 알려진 마커스 보그(Marcus J. Borg)는 이 시대에 잃어버린 신앙 언어들의 역사적 연원을 살피면서 동시에 그 언어들이 지금 어떻게 우리 시대에 다시 새로운 의미로 새겨져야 할지를 설명하는 책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 – ‘왜 신앙의 언어는 그 힘을 잃었는가?’를 썼다. 이 책 ‘믿음과 신앙’이라는 제목의 장에서 보그는 ‘믿음(Faith)’에 대한 여러 가지 사전적 정의를 설명하며 이들 간에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믿는다는 것은 확실성의 정도는 다르지만 무엇인가를 믿는다는 것, 어떤 진술을 믿는다는 것으로 정의되며, 실제로 믿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전제한다. 불확실성이 없다면 ‘믿다’가 아니라 ‘안다’라고 해야할 것이다.[각주:5]


    그렇다. 굳이 보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대체로 ‘믿는다’고 말할 때는 모두에게 자명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 믿는다고 하지 않는다. 불확실한 것, 어느 정도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그것을 거짓이 아니라 ‘참’으로 받아들이고, 진실로 받아들이고자 ‘결단’하는 그 행위를 ‘믿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 사실이 확률로 존재하고, 가능성으로만 존재하기에 ‘그렇다/아니다’라고 단정짓기 모호한 것들에 단호히 선을 ‘그어버림’으로써 그것에 형태를 주고, 형체로서 드러내는 일, 그것을 우리는 ‘믿는다’고 표현한다. 따라서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이란 ‘하느님에 대한 충절로서의 신앙, 하느님을 더욱더 중심에 두는 삶의 결실’이며, 특히 ‘하느님의 부력(浮力, buoyancy)을 믿고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그는 이야기한다. 이어서 보그는 이 ‘믿다’라는 동사는 신뢰하다(Believe in)라는 말의 의미와 가까우며, 이는 단순히 어떤 진술이나 누군가의 말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다는 의미에까지 다다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부력을 의지하는 믿음’이란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마태복음서 14장에서 풍랑 속에 베드로에게 다가가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했을 때처럼 부력을 의지하여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지 않고(마 14:30), 이 액체와 같은 세상의 바다 위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발을 내딛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가 베드로에게 요구한 믿음이란 예수라는 것을 바라보고 그 사잇길이 어떠하든지, 무엇을 만나든지 ‘걸어오는 동작’을 멈춰서버리지 않는 것, 동작을 이어나가고 계속하기를 견뎌내는 것, 그 동작, 계속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어떤 거대하고 강건하여 유동하지 않는 단단한 그것을 부여잡아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 명사적인 것으로서의 ‘상태’를 말하지 않는다. 믿음이 목적어로 취하고 있는 그 부여잡은 대상들, ‘물(物)’을 믿음과 일치시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믿음’ 은 진리와 진리라는 권위가 고정되어 있으며,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기득권들의 허구적 현실을 ‘재구성, 재창조, 재설계’하는 언어다. 현실의 관행적인 ‘믿음들’을 부수고 ‘나는 이렇게 믿소!’하고 어깃장을 놓으며 연약하기만한 새로운 가능성에 철갑옷을 입히는 행위다. 루터가 말한 프로테스탄트의 핵심이 저항과 질문, 소통의 문제라는 점도 믿음의 이러한 특징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눈에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손에 잡히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완전한 타자를 내 앞에 붙잡아 앞에 갖다 놓고 여기 저기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도록 형상화(形象化)하여 심지어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에 구원의 결정 여부를 갖다 붙이는 행위, 마녀라는 이름으로 눈이 감각할 수 있는 확실한 ‘적’을 생산하여 공포를 조장하는 알량한 정치전술을 펼치는 행위를 절단(切斷)하고 파쇄시키는 행위이지 않겠나 말이다.


    앞에서 ‘안다’는 것과 ‘믿다’는 것의 차이에서도 보았듯이 믿는다는 행위는 미완의 상태로 있는 것들에 경계를 주어 완전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이러저러한 가능성과 불온한 유언비어로만 치부되는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고 그것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는 동적 행위다. 적어도 ‘믿음’은 어떤 대상을 부여 잡고 주워 섬기며 숭배하고 그것에 종속되어 타자화하는 데에 그쳐서는 될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란 ‘사건’ 속에서 밀고 당기고, 들고 나는 호흡하는 동적인 유기체다.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정적인 완전성을 붙드는 것은 어리석다. 세계가 부단히 움직이며 상호작용하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바르다. 움직임을 멈추면 죽는다. 가라앉는다. 예수가 베드로에게 말한 그 믿음도 예수를 향해 계속해서 부력을 의지하여 걸음을 옮기는 ‘믿음-행위’ 때에만 성립한다. 예수를 봤다는 이유로, 바람이 분다는 등등의 이유로 멈추면 물 속으로 빠진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움직임이다.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고 움직인다는 ‘섭리’란 어떤 고정된 스케쥴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사건의 결을 따라 동적 균형을 이룬 완전성을 의미하고,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로서 신뢰해야 한다. 고로 믿음이란 ‘믿습니다’라는 행위로서만 존재할 뿐이며, 믿습니다’들’의 연속적 집합으로 이루어진다. 고로 믿음은 행위와 둘이 아니다. ‘믿습니다’로서 하나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는 둥, 믿으면 행동이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둥, 행위와 믿음을 언어 자체에서 구분하고 보는 자가 신앙의 적(敵)이다. 어떤 대상을 고착시켜 받드는 일로서의 신앙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정초하고 깊이 머무르되 또다시 박차고 일어나 의심하고 끊임없이 다시 고백하는 ‘믿습니다’의 여정, 그 속에 우리의 숨과 삶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 웹진 <제3시대>



  1.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3337 [본문으로]
  2. 최주훈, '루터의 재발견'(2017, 복 있는 사람), 48쪽. [본문으로]
  3. 위의 책, 50쪽. [본문으로]
  4. 위의 책, 50쪽. [본문으로]
  5. 마커스 J. 보그 지음, 김태현 옮김,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 – 왜 신앙의 언어는 그 힘을 잃었는가?’(2009, 비아), 158~159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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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22]



조르지오 아감벤 IV-호모 사케르에 대한 본론(2)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박사)



   앞에서도 말했듯이, 아감벤이 보기에 여기서 성스러운 것이 가지는 성격(호모 사케 르)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신에게 바쳐질 수 없으면서, 동시에 죽여도 법에 의해 심판받지 않는다는 두 가지 특성이 결합되어 있으며 이 성스러운 삶(호모 사케르)가 나타난 것은 법과 주권이 생겨날때, 즉 정치와 종교가 함께 배재의 영역을 만들어 낼때 이다. 이러한 아감벤의 말을 듣다보면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성서에서 찾아낼 수 있다. 바로 바울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는 모두 저주를 받은 자이다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복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 사람에게 미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3-14 [새번역])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율법에 대한 논쟁을 행하면서, 율법을 통해서 들어온 저주, 곧 사망의 저주에서 풀려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그리스도가 율법의 저주를 받고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신명기 21-23절, 즉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다는 근거를 가지고(이는 바울의 해석학적 관점으로 읽어야 한다. 신명기의 콘텍스트는 예수의 십자가와 매우 다르다.) 예수가 바로 율법의 저주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아감벤식으로 말하면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는, 거룩함에 들 수 없는, 정결하지 않는 생명이란 말이 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의 바울에게 나타나는 율법폐기론적 관점은 역으로 구약의 신에게는 드려질 수 없는, 신에게 바쳐질 수 없는 예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세상 통치자들 가운데는, 이 지혜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8 [새번역])


    한편,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극명하게 대조하면서 세상의 통치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없다고 일갈한다. 바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유가 그들이 지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로 여기에서 세상의 통치자들이 불리우는 세력들 속에 로마 제국를 넣지 못할 이유가 없으며, 바로 로마의 법에 의해 죽임을 당한 예수를 연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로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 바쳐지지 못하는 생명이며 (율법 때문에), 세상의 법으로 죽임을 당하여도 그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 호모 사케르이다.

    아감벤은 2015년에 출판된 [Pilate and Jesus (빌라도와 예수)] (Adam Kostkotrans., Stanford University Press)에서 요한복음 18장과 19장을 읽으며 예수의 재판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관찰을 보여준다. 아감벤은 요한복음은 절대로 크리시스 (심판하다)라는 동사를 쓰지 않는다. 그 대신 베마(심판하는 왕좌)라는 단어가 나타난다.(2015, 13-14) 빌라도가 예수에게 왕이냐고 물어볼때, 예수는 자신의 나 라는 이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요한의 내러티브에서 군중들은 예수를 죽이기 원하는데, 그 이유는 구약의 하나님에 대한 불경함과 제국에 대한 반란이다. 이 재판이 로마의 합법적인 재판으로 시작되었음을 기억하자. 문제는 빌라도가 예수에게 죽음을 언도했는지, 유죄를 판결했는지가 애매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다.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데리고 나와서, 리토스트론이라고 부르는 재판석에 앉았다.” (요한복음 19-13)


    빌라도는 예수를 데리고 분명, 자신이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명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아 재판석에 앉았다. (아감벤은 이에 대한 해석으로 “예수를 데리고 나와 재판석에 예수를 앉혔다.”로 번역할 수 있다고 말한다. [헬라어 번역으로 가능하다.] 이러한 번역은 마태와 누가에서 예수를 왕처럼 옷 입히고 ‘유대인의 왕ʼ이라 칭하는 장면과 도 연결된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마태복음 27-26절과 누가복음 23-25절과 같이 빌라도는 요한복음 19장 16절에서 예수를 심판하지 않고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그를 “넘겨”(파레도켄)준다. 즉, 재판은 있었으나 심판은 없었다(2015, 51). 이러한 ‘미스테리ʼ한 예수의 재판의 귀결은 십자가이다. 만약에 예수의 십자가가 로마의 법 안에서 이루어진 정당한 판결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바로 죽음에 넘겨진 것이다. 정당한 법적 판결이 아니라면 이를 정치적 또는 제사적 희생아라 볼 수도 없다. 즉, 예수야말로, 아감벤의 담론에서는, 호모 사케르, 죽일 수 있으나 신을 위해 희생되지도 못하고, 그를 죽인자가 벌을 받지 않는, 호모 사케르, 헐벗은 생명이다.


- 다음회에서는 이러한 성서적 읽기가 아감벤에게 어떤 결론을 주는지, 그리고 바울신학에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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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21]



조르지오 아감벤 IV-호모 사케르에 대한 본론(1)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박사)


    -이번 웹진의 중요 텍스트는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새물결, 2008)입니다. HS로 표기합니다.-


   태초에 인간이 있었고, 인간에게는 삶이 있다. 인간에게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동물의 삶과 같이 그저 단순한 일상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고 고대인들은 생각했다. 일상의 단순한 생명현상으로의 삶과 특정한 사회나 개인으로서의 삶을 구분하는 것이 정치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아감벤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삶(생명)이라는 말을 표현하는 두개의 단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HS, 33). 조에(zoe)는 ‘모든 생명체에 공통된 것으로, 살아 있음이라는 단순한 사실’이며 비오스(bios)란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 특유한 삶의 형태나 방식’을 뜻한다. 이 두 단어를 이용해서 아감벤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를 새롭게 정의한다. 바로 “정치가 존재하는 것은 인간이 언어를 통해 자신에게서 벌거벗은 생명(조에)을 분리해내며, 그것을 자신과 대립시키는 동시에 그것과의 포함적 배제 관계를 유지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HS, 45). 바로 이것을 생각해낸 아감벤의 상상력이 그를 현대의 정치학, 사회학 등의 분야에서 부터 신학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쉽게 말하면, 보통 정치를 당을 짓고 다른 당과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치를 쉽게 이해하는 방법이다. 어떤 일에 대해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모아서 힘을 만들어 그와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누르고 원하는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정치라고들 한다. 단순히 국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정치가 아니라 집안에서도 그것이 일어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을 얻기 위해 하는 모든 활동들이 정치적 행위이다. 이러한 정치의 의미 저변에는 개인이 각각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는 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식의 정치이해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자율성을 가지고 있으며 헌법이 보장한 기본적인 인권과 투표권을 통해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이런 식이면 정치적 주체로서의 인간이 보인다. 이러한 정치 이해에 일침을 놓은 사람이 바로 미셀 푸코이다. 아감벤도 말하듯이 푸코는 20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근대 국가는 ‘영토’중심의 국가, 즉 땅 따먹기 중심의 국가에서 ‘인구국가’ 즉 국민의 삶을 담당하는 국가로 바뀌었다(HS, 27). 그와 함께 국가는 자본주의의 끝없는 국가간의 경제적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위 ‘순종하는 신체’를 만들어내는 생명권력 중심의 국가로 바뀌었다고 말했다(HS, 27). 그러나 아감벤은 이러한 푸코의 생각은 정치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고 그 나름의 대안을 생산할 정도까지 나가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아감벤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올바르게 길러내는 전통적인 정치론과 국민을 세뇌하여 노예화 하는 푸코식의 주체화를 통합시켜 이해하는 현대의 정치를 이해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는데(40), 이를 위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정치를 이해하게 된다.

   호모 사케르(Homo Sacer), 성스러운 인간(sacred human being)이 바로 그러한 현대 정치를 이해하는 시작점이다. 이 호모 사케르는 위에 말한 조에(zoe), 그저 간신히 살아있기만 한 삶은 되지만 비오스(bios)인 정치적 존재는 되지못하는 인간이다. 여기에서 아감벤은 매우 도발적인 상상력을 보여주는데, 이 조에인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포섭 되어야만 주권자는 스스로의 주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 즉, 시민이 존재해야만 현대 정치에 주권자는 (박근혜든 문재인이든 생각해보자) 자신의 주권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주권자는 언제나 조에인 인간을 비오스의 인간으로 포섭할 때 항상 ‘포함인 배제’의 방법으로 받아들인다(HS, 43). 쉽게 말하면 포함하면서도 배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주기는 하지만 언제나 내어쫓는 방법으로만 받아들인다. 무슨 뜻일까? 여기서 아감벤의 ‘예외상태’라는 말이 나온다. 즉, 인간에게 정치적 권리를 주지만 그 권리는 오로지 예외상태에서만 주어진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 백명만이 입학할 수 있는 대학에 천명이 지원했다고 해보자. 이 천명에게 공정한 방법으로 경쟁해서 최상위 백명 만을 선발한다는 법이 있다고 하자. 이 법에 따라 백명의 학생을 선발할 것이다. 그런데 이 법에는 단서 조항이 있다. 단, 예외 상태인 경우, 또는 특별한 상황인 경우, 합격자는 총장이 임의로 선발한다고 적혀있는 것이다. 그리고 매번 학생을 선발할 때마다 예외 상태의 법률을 적용한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법을 전혀 어기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법을 어길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저 생존할 뿐인 삶을 정치적 삶으로 받아들이되 언제나 예외적 상황만을 계속된다면 정치적 삶이 아니라 생존의 삶, 헐벗은 삶만이 계속될 뿐이다. 이것이 아감벤이 말하는 정치적 상황이다. 하나의 예를 더 들어보자. 성소수자를 예로 들 수 있다. 인간이기에 법의 적용을 받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계속적인 차별을 받는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예외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성애자들이 그를 예외의 상태로 볼 때, 그는 인간의 삶이 아닌 생존의 삶을 살게 된다.

    우리 삶의 모든 장소가 예외가 규칙이 되어버리는 과정과 인간을 정치적 존재(비오스)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완전히 동시에 일어난다면 정치 자체가 예외 상태가 되어버리게 되고, 결국 인간은 “배제와 포함, 외부와 내부, 비오스와 조에, 법과 사실”이 구분 불가능한 영역으로 변해버린 상태가 바로 아감벤이 말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다(HS, 46). 이러한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란 존재가 실제로 존재했으며, 바로 인류 사회가 법을 가지기 시작한 때부터 이러한 정치적 상황은 계속 되었다고 말한다. 즉, 현대에 들어와서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로 인해 생성된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의 법전통에 필수 불가결하게 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아감벤은 로마의 법에 대한 연구에서 “최초로 인간의 생명 자체와 결부되고 있는 형상에 대한 기억”을 찾는다. “호모 사케르란 사람들이 범죄자로 판정한 자인데, 희생제물로 바칠 수 없는 자이면서 동시에 그를 죽여도 살인죄로 처벌 받지 않는다”(HS, 155). 이러한 종교적 전통과 법전통의 한 중간에 서있는 존재인 ‘성스러운 인간’(호모 사케르)는 “순수한 것과 불순한 것을 함께 포함하는 동종의 두 변이”이다. 즉, 보통 우리는 순결한 것과 더러운 것이 나누어져 순수한 것이야말로 성스러운 것이라 생각하지만, 성스럽다는 것은 순수한 것과 불순한 것을 함께 지칭하는 단어라고 아감벤은 말한다(HS, 166). 로버트슨의 연구에서 착안하여 아감벤은 고대의 종교적 전통은 언제나 순결한 것과 불결한 것에 대한 규칙들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그것을 만질 수 없다는 것에서는 동일한 것들이며 (성스러운 것과 불결한 것의 공통점은 만들 수 없다는 것) 그것을 구분하는 명료한 경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언제나 그 두개의 개념은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HS, 162-163). 여기에서 추방령이 의미하는 바가 재미있는데, “추방이란 신성에 대한 일종의 봉헌이며, 추방하다라는 동사는 흔히 바치다 또는 헌신하다라는 뜻으로 전이 된다”(163). 언뜻 보면 이러한 설명들은 매우 종교적인 분야로 보이지만 이런 종교학적 연구를 아감벤은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왜냐하면 아감벤이 보기에는 이러한 양가적 신성에 대한 이해는 종교와 법이 맞닿아있는 연구의 장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HS, 170). 여기에서 아감벤의 정치에 대한 이해는 종교와 정치의 영역이 종합되는 장으로 들어가는데, 이러한 아감벤의 관점은 그가 현대 정치와 인간 사회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말함에 있어서 고대의 텍스트와 성서를 읽어가는 정당성을 제공한다. 조금 더 나아가 아감벤이 어떻게 신성함이라는 종교적 코드를 법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지 살펴보자.

    아감벤이 보기에 여기서 성스러운 것이 가지는 성격(호모 사케르)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신에게 바쳐질 수 없으면서, 동시에 죽여도 법에 의해 심판 받지 않는다는 두가지 특성이 결합되어 있다. 즉, 인간의 법으로부터 예외인 동시에 신의 영역에서도 예외인 인간을 뜻한다(HS, 174). 바로 신의 영역에서도 설명되지 않고 인간의 법적 전통에서도 속하지 않는 이 인간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바로 이것이 아감벤이 묻고자 하는 질문인데, 그 질문의 답은 다음과 같다. 아감벤에 따르면 바로 주권(Sovereignty, 또는 통치권한)이 나타나는 영역에서 발견되는 인간이다(HS, 178). 여기서 아감벤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에서 주권은 바로 법적 예외 상태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다. 쉽게 말하면 계엄령을 발발할 수 있는 권한이다. 이러한 주권에 대한 이해는 칼 슈미트에 의해 개진되었는데, 칼 슈미트는 주권이 법에 의해 부여된 통치권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법을 정지시키는 계엄령의 권한까지 있기때문에 법의 안과 밖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예를 들면, 광주에 계엄령이 선포되었을때, 당시 군부독재정권은 시민의 권한을 송두리채 부정하고 자의적으로 살해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 주권이 국민에게 나오는데 어떻게 그 주권으로 국민을 살해할 수 있을까? 바로 계엄령을 발발시키는 주권이 그 법을 뛰어넘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바로 그것을 허락하는 법에 의해서 말이다(계엄령의 관한 법이 있기때문). 그러므로 주권은 법안에 있으면서도 법 밖에 존재하며, 그를 통해 예외상태를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이 예외상태를 규칙으로 또는 일상화함으로 법자체를 정지시켜 버리는 것이 바로 주권의 힘이다. 바로 이런 인간의 정치 자체가 생겨나는 영역, 즉 주권의 통치권한이 나타나는 곳이 바로 모든 인간을 호모 사케르, 즉 성스러운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순간이다. 즉, 생명을 성스러운 것이라 우리가 말할때, 보통 우리는 이 생명이 신에게 부여 받은 것이기에 절대적인 기본 인권을 가진 가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감벤이 보기에는 신의 영역에 버림받고 법의 영역에 보호받지도 못하는 죽음의 권력 아래에 놓인 헐벗은 삶(Bare life)를 말하는 것이라 주장한다(HS, 177). 그러므로 아감벤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보통의 정치학이 말하는 법과 정치의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신과 함께 살아가는 종교적 영역에도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이 두 개의 영역이 동시에 포함되면서도 부정되는 이중의 배제의 영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 다음 웹진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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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이슈에 자극된 생각들 2] 창조과학/과 동성애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Interdiscipilinary Studies박사과정(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 박사후보생,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최근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었다가 청문회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고 결국 사퇴한 한 교수가 이른바 ‘창조과학’을 신봉한다는 것이 화제가 되었었다. 물론 ‘사퇴’까지 이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른바 ‘뉴라이트’ 경향의 역사관에 따른 활동들이 노출되면서였지만, 그러한 부정적 요인들이 드러나도록 촉진하는 분위기가 처음 조성되는 데에 ‘창조과학’의 역할이 상당수 있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 듯 하다.

   창조과학이 한 공직 후보자의 평가에 이렇게도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담론들이 그만큼 비상식적인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일 것이며, 좀 더 깊게 들어가면, 그러한 비상식적인 점들은 이미 해당 인사가 공직 후보자에 오르기 전에 아예 걸러지거나 혹은 시정을 약속받아야 할 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조처 없이 버젓이 등장했기 때문에 더더욱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오게 되기도 했을 것이다. 결국 장관이 되기야 했지만 다른 부처의 장관 후보자도 이른바 ‘유사역사학’ 문제 때문에 비슷한 상황을 겪기도 했었고 말이다. 

  이렇듯 문제시되고 있는 창조과학의 비상식적인 속성은 역시 창조과학이 사실상 “성서에는 생명이 (진화가 아니라) 창조된 것이라고 나와 있으므로 그것이 맞다/맞아야 한다”는 전제를 미리 가지고 그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담론이라는 점에서 기인할 것이다. 그리고 그 ‘증명’을 위해서 과학적인 것인양 보이는 담론들을 만들어 내고 그 담론들에 과학과 동등한 자격을 부여해 달라고 우기는(그래서 역설적으로 ‘과학’의 권위를 더더욱 보강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대중들의 일각에 퍼져 있는 편견(그래서 유달리 많이 들먹이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생명이 진화되었다면 ‘최초의 생명’은 어디서 나온 거냐. 그러니 진화론은 말이 안 되는 것 아니냐”이기도 하다)을 끌어와, 자신들의 견해의 정당성을 보충하려 드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모든 모습은 결국, “성서가 생명이 창조되었다고 했으므로 진화가 아니라 창조가 맞다/맞아야 한다”는 전제가 깊이 뿌리박혀 있으므로 가능한 것일 터이다.


2. 


  그런데 이렇게 창조과학을 곱씹어 보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성서가 생명이 창조되었다고 했으므로 창조가 맞다고 우기는 것과, 성서가 동성애가 죄악이라고 했으므로 동성애는 죄다라고 하는 것 사이에는, 대체 다른 것이 무엇일까.

  일단 바로 앞에서 보았듯이 출발점은 다르지 않다. “성서가 그렇게 말했다니까”이다. 물론 성서에 등장하는 소위 ‘동성애’가 오늘날 정설로 정립된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가 아니라는 것은 그들에게 상관없다. 오히려 성서에 그런 동성애가 안 나오므로 동성애는 성적 지향이 아니라 성적 일탈이 될 뿐이라고 뒤집어 씌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가서, “성서가 그렇게 말했다니까”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 특히 ‘과학’의 외피를 쓰고 있는 이야기들을 끌어 대고, 거기에 대중들의 편견까지 동원한다는 점에서도 둘은 다를 바 없다. 벌써 논파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오는’ “동성애=AIDS” 담론이나 전환치료 담론, 도덕적 타락으로 매도하기 등의 담론이 그 예가 될 것이다. 하나 더 보탠다면, 동성애를 이렇게까지 매도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래도 좀 이상한 건 맞지 않나라고 여기는 흔한 생각이 결국 저러한 매도의 연료가 된다는 것은 굳이 두 번 말할 이유는 없을 듯 하다.


3. 


  그런데, 이렇게 창조과학이나 반동성애담론이라 그 형성 원인과 작동 방식이 별 다를 바 없다고 한다면, 한 가지 질문이 머릿 속에 생긴다. 별 다를 바 없는 두 개의 담론 중, ‘창조과학’은 장관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흠결’이 되는데, 어째서 ‘반동성애담론’은 거꾸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낙마시키고 대법원장 후보를 낙마시킬 뻔한 ‘동력’이 되는 것인가.

  그만큼 반동성애담론을 밀어붙이는 극우적 개신교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극우적 개신교의 집착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창조과학도 집착 대상이긴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면 저러한 차이의 이유를 ‘극우적 개신교’에서만 찾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을까. 아니, ‘극우적 개신교’의 입장에서도, 적어도 동성애 이슈에 대해서는 상대편에 ‘틈’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이기도 하지 않겠는가.

  앞에서 이미 동성애를 강하게 매도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래도 좀 이상한 건 맞지 않나라고 여기는 흔한 생각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런 생각이 명백한 하나의 ‘틈’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얹어 본다면, 동성애 이슈에 대해 인권보호라는 당연한 차원의 입장 표명을 못 하는 이유를 “사회적 합의가 없어서”라고 후보 시절에 변명하고 아예 동성애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대선토론 때 이야기하기도 했던 현직 대통령과, 그 변명에 자신들 나름대로의 변명을 지지자들이 양산하는 모습에서도 그러한 ‘틈’이 보인다고 할 것이다.

  특히 후자의 모습을 곱씹어 보면, 그 지지자들이 대선토론 때의 후보의 문제발언에 대해 LGBT 운동가들이 항의 퍼포먼스를 한 것을 두고 “만만하니까 그런 항의를 하는 거냐”라고 거품을 물었던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지점에서, 자신들을 ‘만만하게 보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과, 자신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의 차이가 드러나기도 할 것이다. 이 때, 전자가 전형적인 ‘권력자’들의 행태(그럼에도 여전히 ‘노무현’을 들먹이면서 자신들을 ‘약자’라고 생각하는 행태도 보이지만 말이다)라는 것도 짚어 둘 만할 것이다. 물론 이 때의 ‘권력’은 흔히 생각하는 ‘소수에 독점된 권력’이 아니라 ‘다수’로서 행사할 수 있는, 그래서 언제든지 ‘소수’에 대한 배제로 돌변할 수 있는 그런 ‘권력’이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쯤 오게 되면 이미 앞에서 이야기했던, ‘강하게 매도하진 않아도 좀 이상한 건 맞지 않나’와도 통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긴다. ‘권력’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다수’에 의한 ‘소수’의 배제. 그리고 그런 배제에 대해서 No라고 말하라는 것이야말로 성서의 핵심 메시지 중의 하나라는 건 두 번 말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러니, “성서가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니까 동성애를 죄라고 하고 반대해야 한다”는 게 ‘성서적’ 신앙이라는 말 이상의 코미디가 어디 있겠나. 오히려 성서 모독으로 짤없는 지옥행을 예약한 언행일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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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HRA
    2017.10.09 18: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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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는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에 법 질서를 깨고 무너트리는 죄다...
    당신 자녀가 동성애자라면 그렇게 소수의 인권이라 이야기할수 있는가...
    먹으면 정녕 죽는다...하신 선악과와 같이
    하나님이 죄라 하셨고 죽이라 명 하셨으니
    분명 죄고 하지 말아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
  2. jmh
    2017.10.11 14:4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도끼가 어찌 찍는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찐 자로 파리하게 하시며 그 영화의 아래에 불이 붙는 것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이사야 10:15,16

    우리가 어떤 위치인가요? 도끼이고 막대기이며 몽둥이이지요..누구의 손에 붙들여있는지 안다면 경홀히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개도 하지 않는 동성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지 맙시다.!


탈식민적 읽기로서의 '종교'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Ⅰ. 세속과 분리된 것으로서의 ‘종교’


     익숙한 어떤 것들과 관련해 사람들에게 당신이 당연시하는 그것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기원했고 또한 사용되어 왔는지를 아느냐고 물으면 곤혹스러워 한다. 말이 꼬이기 시작하고 급기야 왜 그런 당연한 것을 묻느냐며 화를 내기도 한다. 그래서 당연함 혹은 상식은 습속인 동시에 한 문화의 지배전략으로서의 권력이라는 주장은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하지만 간혹 어떤 이들은 과감히 깨고 새로운 사고를 개척한다. 대홍수의 이야기를 번역하고 있던 자신에게 줄루족의 응기디가 역사적으로 정말 일어난 것으로 믿느냐고 물었을 때, 자신이 겪었던 일을 소개한 콜렌소의 이야기는 한 예일 것이다. 문화적 습속에 얽매여 자신들의 종교적 이야기를 당연시하고 강요하기까지 하는 종교인들과 달리 그는 "만일 한 명의 천진난만한 줄루인에 의해서 성서의 역사적 정확성이 의문시될 수 있다면, 어찌하여 기독교 선교가 이를 문제시하지 않은 채 다만 절대적인 진리로 성서를 선전하는 데에만 급급할 수 있단 말인가?"[각주:1]라고 되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콜렌소처럼 익숙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에 관해 되물을 용기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것들이 있겠지만, '종교'라는 용어가 오늘날엔 비서구 세계와 관련한 서구문화의 지배와 실천을 보여주는 하나의 용어로서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한번쯤 되짚어 보는 일은 꽤 유용한 것처럼 보인다.

     우선, 구글에서 종교라는 용어를 검색하면, 신이나 조차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체계라고 나온다. 만일 이 설명을 접한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아브라함 종교들 중 하나를 믿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곳에선 종교란 규정된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신앙공동체와 그들이 가진 신앙체계나 문화적 체계를 말한다라고 나온다. 이것은 신을 전제한 앞의 설명보단 낫지만 그럼에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세계의 모든 종교가 신앙체계로 설명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종교학자 러셀 맥커천은 『종교연구 길잡이』라는 자신의 책 맨 앞에 "현실을 그 일상성 그대로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도 없다. …사회학자들은 언제나 다음과 같은 문제에 마주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일상성을 비일상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일상성이라는 게 얼마나 비일상적인 것인지를 알게 될 그런 방식으로 일상성을 환기시킬 수 있을까?"[각주:2]라는 부르디외의 말을 인용한다. 그러면서 책의 마지막 「연구자들」이라는 부분에서 학자들이 종교를 어떻게 정의해 왔는지와 관련해 13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실어 놓았다. 맥커천의 이런 편집은 무엇을 의미할까? 과거와 달리 오늘날 종교에 대한 정의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 실린 학자들 가운데 조너선 스미스와 토모코 마스자와의 논의는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스미스의 논의를 들어보도록 하자.[각주:3]


종교를 위한 자료 같은 것은 없다. 종교란 다만 연구자의 연구가 창조해 낸 것일 뿐이다. 종교는 비교하고 일반화하는 연구자의 상상적 활동에 의해, 연구자의 분석적 목적을 위해 창조된다. 종교는 학문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고 좀 더 특정하게는 종교사학자는 끊임없이 자의식적이어야 한다. 자료는 오직 그것이 종교를 상상하는 것에 관련된 어떤 근본적인 문제의 사례 역할을 하는 한에서만 가치가 있다.


     경건한 신자들에게 스미스의 이런 논의가 안겨줄 충격은 상상할 만하다. 물론, 우려와 달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학자들이란 다 그렇지. 종교를 가슴이 아닌 머리로 배운 탓에 그런 것이지 라고 할 수도 있고, 게다가 오늘날 종교라는 개념에 대해 기독교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들이 부정적인 레토릭을 써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미스의 이런 논의를 단순히 지적인 허영심으로 치부하거나 각 종교들은 원래 종교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해서 해결될 문제일까? 장석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각주:4]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는 종교 연구자의 주장이 맞았는지 아니진 해당 종교의 신자들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제이 지(조나단 스미스)는 그런 생각이 도대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보겠다는 것인가? 그 누가 대표성을 가진다고 여긴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이가 스스로 자신을 그 종교의 대표자라고 주장한다면 과연 그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런 식의 질문을 하다보면 처음에는 그럴 듯해 보이는 이 관점이 얼마나 허황된지 금방 드러나게 된다.


     나아가, 인간 개념에 대해 의문을 표했던 푸코와 마찬가지로 "인간,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구인이 종교를 상상해 온 것은 지난 몇 세기에 지나지 않는다"[각주:5]는 스미스의 주장을, 그리고 이에 대한 반론으로 등장한 "그래서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종교의 역사를 다루는 모든 개론서에서 종교가 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등장하여 심지어 구석기 시대에도 종교가 존재하였음을 말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호모 렐리기오수스라고 널리 알려진 말은 이미 인간의 선천적이고 보편적인 종교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각주:6]하는 질문을 소개한다. 그런 후 스미스의 논의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각주:7]


언어학에서 말하는 언어, 그리고 인류학에서 말하는 문화와 마찬가지로 종교라는 것이 경험적인 범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종교라는 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총칭하는 이차적인 추상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점은 존 모리얼과 타마라 손에 의해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이들에 따르면 "삶 속에서 종교적인 것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 그 범주에 속하지 않은 여타의 것들과 구별될 수 있다."[각주:8]고 보는 관점은 1500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역사학자들에게 "종교라는 개념은 1500년대에 유럽에서 교회 권력과 세속 권력의 영역을 구분하기 위한 수단의 일환으로 처음 도입"[각주:9]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라는 말에 해당하는 라틴어 렐리지오는 이전에도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삶 속에 종교적인 것이라는 범주가 따로 구별되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1500년대에 이르러서는 정치와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기 시작했다. "종교는 사람들이 주교나 교황에게 바치는 충성과 봉사의 일부를 차지하고 싶어 했던 국왕이나 황제의 정치와 대조를 이루었다. 그들은 현실세계 곧 세속 세계에 관한 일들을 완전히 지배하고자 했다. 따라서 교회 공직자들의 활동을 내세, 즉 영원한 세계를 다루는 일로 제한하고자 했다. 또한 교회공직자들이 권력정치에 관여하지 않기를 바랐다."[각주:10] 그리고 이로 인해, "정치와 다른 것으로서의 종교에 관한 새로운 개념"[각주:11]이 정착되었다.

     불행히도, 이런 서구적 개념은 비서구세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일종의 식민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구는 자기와 다른 종교들에 직면하여 새로운 개념을 발견해내야 했다. 이와 관련해 모리얼과 타마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고 있다.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2]


유럽 기독교도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종교를 적용하여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 같은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 생물 분류상 사자panthra leo와 호랑이 panthera tigiris를 표범속genus panthera에 속하는 종으로 분류하듯, 그들은 그 지역의 전통들을 수많은 다른 전통들과 함께 종교라는 속genus에 속하는 종들로 분류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도 별 탈은 없을 듯하다. 즉, "영국인들이 인도를 식민지화하기 전에는 인도인들에게 종교와 힌두교라는 개념이 없었다. 인도에는 원래 힌두교도라는 말이 없었고, 1800년대까지는 힌두교라고 말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각주:13]고 말이다. 한데, 인도만 이러했을까? 그렇지 않다. 다시 이들의 말을 참조해 보자.[각주:14]


불교 역시 무수한 사람들이 2500년 넘게 활동하며 생각한 것들을 종합하여 종교로 분류한 유럽식 개념이다. 불교라는 다양한 수행의 공식 창시자는 고타마인데 그는 부처, 곧 깨달은 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 신들, 영혼, 천국, 지옥, 구원, 종교에 관한 서양식 개념들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았다. 오늘날 대학교 철학과에서는 불교를 가르치기도 하는데 부처의 방법들 중 일부는 자기계발 심리학으로 분류된다. ……유교는 종종 사회관계와 통치제제에 관한 일종의 철학으로 분류된다. 부처와 마찬가지로 공자는 신들이나 영혼, 사후세계 같은 내세의 일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다. 그런데 기독교 선교사들과 학자들은 종교라는 속屬에 속하는 일종의 종種으로서 유교라는 범주를 만들었다. 그들은 중국의 여러 잡다한 사상과 풍습을 도교라는 범주로 함께 묶어버렸고, 그것을 종교라는 속에 속하는 또 다른 종으로 다루었다.


     따라서 "하나의 새로운 종교를 발견하기 위해, 프런티어 이론가들은 하나와 여럿,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그리고 낯선 것과 친숙한 것 사이에서 비교를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과정에서 세계의 모든 종교들이 효과적으로 새롭게 창출되었다."는 치데스터의 말은 정당한 것처럼 보인다.


2. 분리에 따른 인종차별담론으로서의 종교


     그래서일까. 장석만 역시 “종교 개념이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나타났으며, 일정한 편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제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고 썼다. 사실, 종교학의 기원이 공간적으로는 서구이고 시간적으로는 19세기라면, 이런 문제제기가 괴상한 것만은 아니다. 다시 말해, 종교학은 하이데거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현존재가 가진 선입관을 깊이 간직한 채 시작한 학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과학을 표방하면서 그 연구를 시작했지만 종교학의 역사는 이 연구가 진화론에 물들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 예로, 샤프도 『종교학: 그 연구의 역사』라는 책에서 진화론은 종교학에서도 하나의 만능열쇠였다고 말한 바 있다. "진화론자들의 가설은 1880년 즈음 이미 사실상 항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스펜서는 인간문화의 전반에 대한 이론을 정립했고 이제는 하나하나의 세목에서 그의 통찰을 확인하는 일만 남은듯 했다. 진화론자들의 눈에는 종교가 예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쳤다. 종교를 일단의 계시된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발전하는 유기체로 보게 된 것이다."[각주:15]

     하지만 종교를 발전하는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자 했던 이러한 진화론적 연구방식이 처했던 맥락은 단순하지가 않았다. 푸코의 다음과 같은 논의는 폐부를 찌른다. 다소 길지만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6]


19세기의 기본적인 현상 중의 하나는 소위 생명에 대한 권력의 관심인 것 같다. ……그것은 열등한 인종이 좀더 사라지고 비정상의 개인들이 좀 더 제거된다면 종의 퇴화를 좀더 잘 막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나는 좀더 강하고 좀더 활기차게 살아남아 많은 후손을 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는 식의 관계다. 그러니까 군사적이거나 전투적 혹은 정치적인 관계가 아니라 생물학적인 관계이다. ……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수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우선 19세기의 생물학 이론과 정치 담론 사이에 재빨리 맺어진 관계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넒은 의미의 진화론-다윈의 이론 자체보다는 그의 개념들을 한데 합친 전체로서의 진화론-은 아주 자연스럽게 19세기의 몇 년 동안 단순히 정치적 담론을 생물학적 용어로 옮겨 놓거나 과학의 외피 밑에 정치적 담론을 숨겨 놓은 방식이 아니라 식민정책의 관계와 전쟁의 필요성, 범죄와 광기·정신병의 현상, 다양한 계급으로 구성된 사회의 역사 등을 사유하는 진지한 방식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생물권력의 양식으로 기능하는 근대사회에서 왜 인종주의가 발전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러셀 맥커천의 책 마지막 부분인 「연구자들」에 실린 마스자와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꽤 타당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각주:17]


사회과학에서든 인문학에서든 똑같이 종교라는 범주는 대체로 비역사회 되고, 본질화 되어 왔으며, 비판적 분석의 영향을 받지 않거나 태생적으로 이를 거부한다고 은연중에 전제되어 왔다. 학문의 입장에서 이런 실패, 분석적 관심의 이런 결여, 그리고 종교라는 주제와 관련된 고집스러운 맹목, 이런 것들의 원인은 의심할 바 없이 많고 복잡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런 담론의 형성 전체에 관해 다른 종류의 면밀한 검토를 꾸준하고 다소 구불구불한 역사적 분석을 한다면, 그 복잡성은 비판적 압력에 굴복하기 시작할 것이다.


     아무튼, 이제 종교라는 개념은 지극히 서구적인 것이었고, 게다가 인종적인 범주에 속하는 문제였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확실히, 치데스터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종교연구에 있어 푸코가 지적한 생물권력이 어떻게 활성화되었고, 또한 인종담론으로 수렴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각주:18] 물론,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앞서 언급했던 모리얼과 타마라의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바였겠지만 말이다. 들어보도록 하자.


학문적 고찰 속에서, 그리고 그러한 고찰이 드러내는 유사성과 차이의 유희 안에서 남부 아프리카에서 행해진 프런티어 비교종교는 제종교간의 비교를 위한 범세계적인 전략들도 동시에 개발하였다. 여기서 세 가지의 기본적 유형의 범세계적인 비교전략-분류법, 계보론, 유형론-을 다시 검토해 볼 수 있겠다. 박물학의 분야에서 스웨덴의 과학자 린네는 동식물과 인간을 속 및 종의 차이로 체계화하기 위한 기초적인 비교원리로서 분류학의 체계를 확립하였다. 이와 흡사한 방식으로 18세기 유럽인 비교론자들은 종교를 또한 종의 차이들에 의하여 나누어질 수 있는 하나의 유개념, 즉 특별히 유대교, 이슬람교, 이교라는 종들로 나뉘어질 수 있는 유개념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남부 아프리카 프런티어에서는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이와는 또 다른 분류법이 출현하였다. 다수의 프런티어 비교론자들은 하나의 시원적 고대종교로부터의 역사적 퇴화론을 선호하였다. 아프리카 종교들이 특정 시원적 계시종교로부터 퇴화하였다는 이론은 남부아프리카에 기독교 문명을 진척시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강구하기 위한 전력적인 논쟁들과 관련되어 있었다. ……블리크의 진화론적 작업은 아프리카인의 종교적 계보를 추적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보다 일반적으로 인류전체의 종교적 계보를,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문명화된 유럽인의 종교적 계보를 구축하기 위해서 의도된 것이었다. 그저 우리네 인종의 초기발전을 조사하는데 있어서 아프리카에 널리 퍼져 있는 인종들의 분파들을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긴요한지를 입증하고자 하였다.


     결국, 치데스터는 종교연구에서 서구의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 간의 "유사성이 붕괴되었을 때 그 기저에 깔려 있었던 것은 종교가 아니라 인종이었다."[각주:19]고 직격탄을 날린다.

     한데, 이쯤에서 몹시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과연 신학은 대체 이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었을까 하는 점 말이다. 흥미롭게도, 스미스는 생물학적 분류가 종교학에서 어떻게 쓰였는지를 언급하면서 "서구종교를 상상하는 커다란 틀 안에서 볼 때 유대교가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위치"[각주:20]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장석만은 다음과 같이 썼다.[각주:21]


유대교는 가깝지만 멀고, 비슷하지만 괴상하며, 서구적이지만 동방적이고, 또한 평범하지만 이국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낯익음과 낯섦 사이의 이런 긴장은 유대교를 상상하는 데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며, 인식을 환기하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긴장은 비교할 필요성을 불러일으키며, 비교를 요청한다. 유대교는 비교와 해석이 필요할 만큼 이국적이다. 반면에 유대교는 비교와 해석이 가능할만큼 가깝기도 하다. 가까운 것과 먼 것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교의 긴장 덕분에 유대교는 정의와 비교와 같은 핵심적인 방법론적 문제를 다루는 데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 게다가 유대교는 종교학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상상력, 자기의식, 그리고 선택과 같은 보다 포괄적인 영역을 밝히는 데에도 중요한 사례를 제공해 준다.


     유대인의 이러한 유용함은 신학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인종을 분류하는 담론으로서의 생물권력이 종교연구에 적용되기도 했다는 치데스터의 말을 참조한다면, 신학에선 홀로코스트 이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반유대주의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알다시피 이미 사이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에른스트 르낭은 이에 해당되는 최적의 인물이다. 사이드에 따르면, 종교문헌의 비교를 수행함에 있어 르낭은 셈어를 인도 유럽어에 비해 윤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타락한 것으로 보았다.[각주:22] 그의 유명한 『예수의 삶』역시 이와 같은 맥락을 지니고 있는데, 여기서 예수는 결단코 유대인으로 이해되지 않고 있다. 또한, 결코 예수가 유대인일 수가 없었기에 유대인과 그 종교에 대한 그의 독설은 짙었다. "당시의 예루살렘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현학적인 태도, 신랄함, 증오, 그리고 영혼의 왜소함 등으로 이루어진 도시였다. 그곳에서는 광신이 극에 달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결국 궤변가의 문제로 귀착되어 버리는 율법연구가 유일한 공부였다. 유대 박사와 율법학자들의 지식은 완전히 미개한 것이었으며, 도덕성이 완전히 결여된 보상없는 부조리였다."[각주:23] 사실, 르낭의 이런 인식은 우연히 태어난 게 아니었다. 19세기 분류체계의 정식화를 따랐고, 사이드의 말에 따르면 애초에 "비교하면서라는 말에 의해 셈어와 인도-유럽어 간에 통용되는 복잡한 패러다임적인 관계의 네트워크를 의도"[각주:24]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생물분류학과 비교, 그리고 그에 따른 인종이라는 19세기의 배경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그는 “그리스 문명 이외의 다른 모든 문명을 하나같이 조악하고 야만적으로 간주”[각주:25]할 수 있었고, 유럽인을 다른 어떤 인종보다 고상한 종족으로 볼 수 있었는데, 그의 예수는 이것을 가장 극적으로 대변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르낭만 유별난 하나의 예외적인 그런 인물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근대 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슐라이어마허에게서도 이 점은 어렵지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의 유명한 책, 즉 『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을 위한 강연』에서 슐라이어마허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각주:26]


유대주의는 이미 오래 전에 사멸된 종교이기 때문에 나는 이제 종교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유대주의는 어린아이 같은 아름다운 특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나쁜 것과 함께 모두 버려졌으며 여기서 전체는 예전에 그를 믿던 대중들로부터 완전히 사라지고 부패된 희귀한 예가 되어버렸다.


     이에 비해, 기독교는 “그 고유한 근본 직관을 통해 종교와 종교사 가운데서 우주를 가장 많이 가장 아름답게 본 종교”[각주:27]로 이해되고 있다. 한 마디로, 기독교는 "종교 자체를 종교를 위한 소재로 변형하고 조작하며 이로써 종교의 최고능력"[각주:28]인 것이다. 유한자 가운데서 무한자를 직관하는 것이 종교라는 그의 정의를 참조한다면, 기독교는 무한자를 가장 잘 직관하는 종교인 반면 유대교는 퇴화하고 부패한 사멸된 종교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이 점은 그의 책, 『기독교 신앙』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기독교에서 유대교나 이슬람교로 이행하는 것을 오로지 퇴행과 병적인 예외로 간주할 수 있다.”[각주:29] 따라서 그는 “유대교 예언자의 예언은 오로지 기독교를 위해서만 증거력을 가질 수 있는”[각주:30]것이라고 쓸 수 있었다.

     이쯤이면, 유럽의 다른 지성인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레너드는 자신의 책, 『소크라테스와 유대인』에서 칸트 이후 유럽의 여러 지성인들이 어떻게 유대인과 그 종교를 이해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슐라이어마허 못지않게 헤겔 역시 그러했음을 알 수 있다. 레너드의 말을 들어보자.[각주:31]


헤겔은 유대인들에게 미가 없으며, 심미적 영역과 관련된 이런 결핍은 자유의 결핍을 수반한다고 여겼다. 헤겔은 그 안에서 진리, 미, 자유, 그리고 정신성이 각각 상호 구성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강력한 등식을 구축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영속적인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다. 모세의 법이라는 도덕적 명령이 유대인들을 노예상태로 만들었기 때문에 오직 새로운 종교의 출현만이 그들을 거기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보았다.


     때문에, 르낭도 그러했지만 헤겔 역시 예수를 유대교와 대립되는 것으로 놓을 수 있었다. 레너드는 “헤겔은 그리스도교의 출현을 유대교의 실증성을 외면하는 것으로 특징지었다. 예수는 순전히 객관적인 명령들과 그것들과 완전히 이질적인 것, 즉 일반적으로 주관적인 것과 대립시킨다. <그리스도교의 정신과 그 운명>은 예수와 유대인들의 연관성을 전혀 추적하지도 않은 채 예수를 유대인 신앙의 대척점에 놓았다.”[각주:32]고 적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일은 유럽 이외의 식민지에서도 일어났다. 물론, 지금까지 본 것처럼 유럽의 맥락에서 발생한 반유대주의와는 다른 성격의 반유대주의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1914년 <남아프리카 원주민이 지니는 유대인 혹은 셈족의 전설과 관습>이라는 시드니 멘델손의 논문을 인용하면서, 치데스터가 "멘덴솔은 유대인과 남부 아프리카의 모든 토착민 사이에서 발견된다는 형태적 유사성과 공통의 혈통에 대해서 그것도 상당히 세부적으로 주장할 수 있었다"[각주:33]고 말했다는 것을 유념하도록 하자. 게다가, 아프리카인들을 보면서 멘델손이 "이들 검은 얼굴들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나는 저 착각을 불허하는 유대인적 용모를 보았고, 그러한 연유로 그들을 이 기묘한 땅의 이방인들로 거의 환영하고 싶은 충동이 일 뻔하였다."[각주:34]고 썼다는 점도 말이다. 확실히, 유럽인이 타자인 비유럽인을 정의할 때 유대인과 그 종교를 동원했듯, 비유럽인 역시 다른 누군가와 관련해 자신을 정의할 필요가 있었을 경우엔 유대인과 그 종교를 동원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반유대주의를 논하면서 유대인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나라에서 유대인이 출몰한다는 노만 콘의 말은 참조할 만하다.[각주:35]


절멸적인 반유대주의가 맹렬히 불타오르는 현상은 대중이 유대인이라는 존재가 그들 이외의 인류를 섬멸하고 지배하고자 획책하는 집단적인 악의 화신이라고 상상하는 경우로만 한정된다. 이런 종류의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이 현실 생활에서 수행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실제로 이러한 반유대주의는 한 번도 유대인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 수백 년도 전에 유대인이 사라진 나라들에서도 출현한다.


     알다시피, 일유동조론은 이에 해당하는 적절한 한 예다. 타츠루는 “언제 유대인이 일본에 출현하게 됐는지, 우리는 그 날짜까지 알 수 있다. 그럼 소개하겠다. 일본에 유대인을 존재하게 만든 사람은 스코틀랜드인 선교사 노먼 매클러드라는 인물이다. 그는 일본에서 행한 현지 조사의 결과 일본인은 유대인의 잃어버린 10부족의 후예라는 기상천외한 설을 1875년에 발표했다. 이것이 그 후 현재까지 전해지는 일유동조론의 기원이 되었다.”[각주:36]고 소개한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과는 다른 맥락이지만 유대인이 하나의 대립항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역설한다.[각주:37]


낮과 밤, 남과 여, 평화와 전쟁, 이러한 대립은 그 밖에도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습니다. 이런 대립은 현실적인 세계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대립은 현실 세계에 골격과 축과 구조를 부여하고, 현실 세계를 조직화하고, 인간에게 현실이 존재하게 하고, 그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다시 발견하게 만드는 그러한 대립입니다. … 유대인과 비유대인이라는 대립은 현실적인 세계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대립이 아니다. 반대로 이 대립은 현실 세계에 골격과 축과 구조를 부여하고, 현실 세계를 조직화하고, 인간에게 현실이 존재하게 만드는 대립이다.


     그리고 이런 대립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이렇게 적었다. “반유대주의란 꼭 유대인을 배척하라는 명시적인 박해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이 일종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매개로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설사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유대인에 대해 친화적인 태도나 경의를 표한다고 해도, 반유대주의자와 기본적인 세계인식의 도식을 공유한다는 말이다.”[각주:38]라고 말이다.

     한데, 타츠루의 책을 번역한 박인순의 말은 이보다 더 흥미롭다. 왜냐하면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각주:39]


북왕국이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게 멸망당하면서 10부족은 아시리아로 끌려가 나머지 2부족에 의해 잃어버린 10부족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기록이 남지 않아 이들의 행방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게 되었다. 10부족의 일부가 아프가니스탄, 인도, 미얀마, 중국, 일본, 한국, 영국, 미국, 스키타이, 아프리카 등으로 이동했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10부족의 일부가 이동했다는 지역으로 언급되고 있는 지역 가운데 우리나라가 들어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그리고 잃어버린 10부족 중 하나인 단지파가 바로 한국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들어보도록 하자.[각주:40]


삼성기 하편에 의하면 환국의 12국 중 하나인 수밀이국은 단군 족, 곧 백두산족의 일파이다. 기독교의 12지파 중에 단지파가 있다. 체형, 언어, 생활습관이 수메르인과 이스라엘인과 한국인이 유사하다이스라엘이 말하는 선민(選民)은 그 뜻을 선택받은 민족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원어는 chosen people로써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조선 사람」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단군 민족이라는 의미다. 세계를 방황하던 이스라엘이 유엔에 청원할 때 만주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고향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인 아브라함은 수메르 인으로써 함께 천신제(天神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한민족과 이스라엘의 동질적 역사와 문화(文化)를 보면 너무나 유사점이 많이 있다.


     사실, 이런 말은 누가 봐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허무맹랑하여 정신병자가 지껄이는 말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인이 이 가상의 유대인을 반복하여 호출하는 까닭은 자신들의 사정 때문이었다. 일유동조론부터 시오텐의 반유대주의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에 공통된 점은 국민국가의 정치적 위기와 국민적 정체성의 동요라는 두 가지 정치적 요인이다.”[각주:41]라는 타츠루의 말을 참조하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주장은 아니다. 다시 말해,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유대인의 지혜를 배우자는 소리가 한국 개신교 내에서 호응을 얻는 이유는 최근 침체한 한국의 경제적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를 살해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유대인이라고 말해야만 하는 개신교인들의 신앙적 고백과 모순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이러한 모순을 뚫고 한민족이 단지파라는 망상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이런 망상 뒤에는 현실적으로 막강한 전세계적인 힘을 누리고 있는 현재의 유대인의 기원이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한민족이라고 말함으로써 지금의 위기상황을 타계하려는 욕망이 숨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데, “반유대주의란 꼭 유대인을 배척하라는 명시적인 박해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이 일종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매개로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설사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유대인에 대해 친화적인 태도나 경의를 표한다고 해도, 반유대주의자와 기본적인 세계인식의 도식을 공유한다는” [각주:42]타츠루의 말을 대입하면, 이런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해진다. 반유대주의가 유럽 및 비유럽을 가리지 않고 출몰한다는 콘의 지적은 여기서도 핵심을 찌르고 있다고 말이다.


ⓒ 웹진 <제3시대>



  1. 데이비드 치데스터, 『새비지 시스템: 식민주의와 비교종교』, 심선영 옮김, 경세원, 2008, p.247 [본문으로]
  2. 러셀 맥커천, 『종교연구길잡이』, 김윤성 옮김, 한신대학교 출판부, 2015 [본문으로]
  3. 러셀 맥커천, 같은 책, p.299 [본문으로]
  4. 조너선 스미스, 『종교상상하기』, 장석만 옮김, 청년사, 2013, pp.14~15 [본문으로]
  5. 조너선 스미스, 같은 책, p.15 [본문으로]
  6. 조너선 스미스, 같은 책, p.15 [본문으로]
  7. 조너선 스미스, 같은 책, p.16 [본문으로]
  8. 존 모리얼·타마라 손, 『신자들도 모르는 종교에 관한 50가지 오해』, 이종훈 옮김, 휴, 2015, p.22 [본문으로]
  9. 존 모리얼·타마라 손, 같은 책, p.22 [본문으로]
  10. 존 모리얼·타마라 손, 앞의 책, p.23 [본문으로]
  11. 존 모리얼·타마라 손, 같은 책, p.24 [본문으로]
  12. 존 모리얼·타마라 손, 같은 책, p.24 [본문으로]
  13. 존 모리얼·타마라 손, 같은 책, p.25 [본문으로]
  14. 존 모리얼·타마라 손, 같은 책, pp.26~27 [본문으로]
  15. 에릭 샤프, 『종교학: 그 연구의 역사』, 윤이흠·윤원철 옮김, 한울아카데미, 1998, pp.71~72 [본문으로]
  16.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박정자 옮김, 동문선, 1998, pp.277~295 [본문으로]
  17. 러셀 맥커천, 앞의 책, p.259 [본문으로]
  18. 데이비드 치데스터, 앞의 책, pp.405~410 [본문으로]
  19. 데이비드 치데스터, 앞의 책, p.450 [본문으로]
  20. 조너선 스미스, 앞의 책, p.24 [본문으로]
  21. 조너선 스미스, 같은 책, p.24 [본문으로]
  22.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박홍규 옮김, 교보문고, p.257 [본문으로]
  23. 에른스트 르낭, 『예수의 삶』, 박무호 옮김, UUP, 1999. p.189 [본문으로]
  24. 에드워드 사이드, 같은 책, P.255 [본문으로]
  25. 미리엄 레너드, 『소크라테스와 유대인』, 이정아 옮김, 생각과 사람들, 2014, p.300 [본문으로]
  26. 슐라이어마허, 『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을 위한 강연』, 최신한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2, p.235 [본문으로]
  27. 슐라이어마허, 같은 책, p.239 [본문으로]
  28. 슐라이어마허, 같은 책, p.239 [본문으로]
  29. 슐라이어마허, 『기독교 신앙』, 최신한 옮김, 한길사, 2006, p.92 [본문으로]
  30. 슐라이어마허, 같은 책, p.131 [본문으로]
  31. 미리엄 레너드, 앞의 책, p.148 [본문으로]
  32. 미리엄 레너드, 같은 책, p.148 [본문으로]
  33. 데이비드 치데스터, 앞의 책, p.450 [본문으로]
  34. 데이비드 치데스터, 같은 책, p.451 [본문으로]
  35. Norman Cohn, Warrant for Genocide, London: Eyre & Spottiswoode, 1967, p.252 [본문으로]
  36. 우치다 타츠루, 『유대문화론』, 박인순 옮김, 아모르문디, 2011, p.65 [본문으로]
  37.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39 [본문으로]
  38.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75 [본문으로]
  39. 우치다 타츠루, 앞의 책, p.65 [본문으로]
  40. http://www.dailywrn.com/sub_read.html?uid=5775 [본문으로]
  41.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96 [본문으로]
  42.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7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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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20]



조르지오 아감벤 III-호모 사케르에 대한 서론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박사)


    이전 웹진까지 아감벤에 대해 논할 때 그의 저서 [남겨진 시간]을 중심으로 아감벤이 해석하는 바울의 종말론과 메시아론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감벤의 철학중에 [남겨진 시간]은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또한 이 부분은 아감벤의 전체적인 사상의 그림 속에서 볼 때, 더욱 그 의미가 확실히 드러난다. 이번 웹진부터 2회에 걸쳐서 아감벤이 그리는 그림 중에 가장 핵심적인 줄기에 속하는 [호모 사케르](2008, 새물결)를 중심으로 아감벤의 현대 사회에 대한 진단을 살펴본다.


   보통 일반적인 관점으로 인간의 정치를 논할 때, 근대의 민주정치는 길고 긴 인간 정치의 발전에 의한 것이라고 본다. 신화의 시대에 묶여서 고대 국가의 왕이나 제국의 황제를 신의 대리자로 섬기던 정치 사회에서 중세의 봉건사회의 귀족 정치를 넘어 중앙집권적 왕권의 역사를 지나, 비로소 민주정치의 시대를 인간은 이루었다. 근대의 민주정치는 주권자(대통령이든 의회이든)가 가진 국가 운영하는 힘을 민주사회를 이루는 시민 모두에게서 찾는다. 소위 천부인권사상에 의지해서, 모든 시민은 자신의 삶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나고 그 권리를 주권자에게 양도함으로써 주권자는 잠시 동안 시민의 삶과 행복을 위해 국가를 통치한다. 이전의 고대사회나 중세 사회와 다른 점은 주권의 주인인 국민들의 인권을 절대적인 가치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관은 근대 이래로 수많은 지식인들에 의해 의심되어왔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미셀 푸코를 들 수 있는데 그의 미시권력에 대한 이해 또한 이러한 민주정치제도의 환상을 비판하고 있다.

   민주정치제도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수많은 지식인들이 이야기했지만 요즘에 와서 아감벤이 많은 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가 야곱 타우버스(Jacob Taubes)와 칼 슈미트(Karl Schmitt)간의 논쟁에서 나타난 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의 이해를 계승 발전시켜 현대를 진단하는 새로운 정치학의 관점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Today everything is theology, except what the theologians declare to be such.”(Karl Schmitt) 

    -오로지 신학자들이 신학이라고 일컫는 것들을 제외하고 오늘날의 모든 것이 신학이다.[각주:1]


    슈미트는 근대 정치를 진단하면서 근대의 정치학에서 현실 정치를 이해함에서 벗어나 신학적 방법론으로 정치를 이해해야한다고 말한다. 보통 우리는 신이 지배하는 시대가 끝나고 인간의 정치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보통 ‘주권’이란 것은 신이 지배하던 시대가 종식되고 난 후에 인간 개개인의 권리에서 찾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슈미트가 보기에 주권은 이미 신적 권위에 의해 만들어진 법안에 장치되어 있었고 이제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으로서,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주권자란 법질서 안에 속하면서도 그 법이 중지를 명령할 수 있음으로 법자체를 무화시켜 버릴 수도 있는 법밖에 존재하는 자이다.[각주:2] 이러한 슈미트에 대한 이해를 통해 아감벤은 현대정치를 말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과 인간의 삶과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며 그에 대한 주권자의 위치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아감벤의 이해는 몇천년전의 고전을 읽는 것이 법과 인간 삶의 역사를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변한다. 법이 우리의 삶에서 동떨어져서 법학이란 분과학문으로 바뀌거나 국회에서 법의 제정자와 주권자의 전유물이 되기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 법을 통해 현실 사회를 바꿔보려고 했던 시대나 법안에 신의 뜻이 들어있다고 믿었던 시대의 법과 기록물들을 살펴봄으로써 좀 더 명확한 서구 정치의 원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아감벤의 방법이라 생각된다. 거기에 덩달아 성서라는 것이 가진 새로운 정치적 의미가 발견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아감벤이 바라보는 현실의 삶은 무엇일까?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현실의 정치는 모든 사람들을 호모 사케르(Homo Sacer)로 만든다. 여기서 호모 사케르란 인간이란 호모(homo)와 성스러운(Sacred)의 라틴어 합성어로서 ‘성스러운 인간’을 뜻한다. 그리고 현실 정치의 주권자는 모든 인간을 호모 사케르로 만듦으로 자신의 주권을 확보하여 정치적 입지를 유지한다. 여기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등장하는데, 아감벤은 이를 매우 절망적인 상황으로 본다. 단순하게 다시 말하면 아감벤은 이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나찌의 수용소(Concentration Camp)라고 여기고 이 수용소를 주권자들에 의해 호모 사케르가 된 사람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여러가지 질문이 등장한다. 왜 ‘성스러운 인간’이 된다는 것이 이리도 부정적인 것이고, 주권자는 도대체 어떻게 거대한 수용소를 건설하여 인류를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아간다는 것일까? 아감벤의 이러한 시대 개관은 매우 중요한데, 바로 어떻게 시대를 진단하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해법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웹진에서 이야기했던 [남겨진 시간]의 바울의 이야기는 아감벤이 바울을 통해 발견한 나름의 해법이다. 필자는 이천년전의 문서에서 아감벤이 발견한 하나의 특이한 생각의 방식을 바울을 통해 소개했고 이제 그 방식이 왜 현실 정치의 상황에 대한 해법이 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아감벤이 말하고 있는 ‘주권’의 개념, ‘호모 사케르’의 정체를 살펴보며 우리가 살고 있는 거대한 수용소로 한발자국 들어가보고자 한다. 다음 웹진에서는 본격적으로 호모 사케르의 역사를 살펴보자.


참고도서

Agamben, Giorgio. The Time That Remains: A Commentary on the Letter to the Romans. Stanford, Calif.: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6.


ⓒ 웹진 <제3시대>




  1. Carl Schmitt, letter to Armin Mohler, 14 August 1959, in Jacob Taubes, Ad Carl Schmitt: Gegenstrebige Fügung (Berlin: Merve, 1987), p. 37. [본문으로]
  2.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Vier Kartel zur Lehre von der Souveränität[1922](Berlin: Dunkcer & Humblot, 1996), 1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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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라 목사 ‘이단’ 시비를 통해서 본 ‘연대’와 ‘퀴어신학’의 가능성





김나미

(미국 Spelman College 교수, 종교학)




    이성애가부장제(heteropatriarchy)의 붕괴와 젠더 위계질서의 분열에 대한 두려움을 ‘동성애’에 대한 공격으로 분출해온 개신교 우파의 최근의 권력행사의 대표적 사례는 임보라 목사에 대한 ‘이단성’ 여부 조사일 것이다. 예장합동의 이단대책위원회가 임보라 목사에 대한 이단성조사를 표명했고, 7개 교단 이단대책위가 공조하면서 임보라 목사의 이단성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발표와 함께 급기야는 임 목사를 소환하겠다고 나섰다. 지금 한국 개신교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성애 관련 ‘이단’ 시비는 ‘정통’과 ‘비정통’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이성애가부장제에 위협이 된다고 여기는 신학적 입장, 목회, 목사를 ‘이단’으로 명명한 뒤에, ‘정통’과 ‘다르고’, 다르기 때문에 ‘비정상’이고, ‘비정상’이기 때문에 교회와 사회에 ‘해’가 되기에 낙인을 찍겠다는 것이다. 비정통이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몰려 차별, 배제, 멸시, 폭력, 심지어는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던 존재들은 21세기 한국사회에서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임보라 목사에 대한 ‘이단’ 시비와 관련하여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에서 포럼을 개최했고, 나는 임보라 목사와 함께 포럼에 참여하였다. 동성애에 대한 ‘교리신학’적, ‘윤리신학’적 이해에 대한 짧은 고찰과 8개의 개신교 교단에서 자신들의 교단에 속하지 않은 임보라 목사를 왜 ‘마녀사냥’하듯 이단으로 몰아가는지에 대해서 의견들이 오갔다. 한데 질의・응답시간에 나눈 의견들과 질문들 중 하나가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고 있다. 맨 마지막에 제기된 것인데, “이 날의 포럼이 퀴어들의 경험을 대상화하는 것은 아닌지”라는 것이다.[각주:1]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는 이 짧은 질문은 ‘퀴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행하냐를 묻는 퀴어정치학(queer politics)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또한, 이 질문은 성소수자, 젠더소수자들과의 ‘연대’는 어떻게 가능하며, 더 나아가 ‘누가 퀴어신학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퀴어’(queer)는 일반적으로 성소수자들과 젠더소수자들, 자신의 성과 젠더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일컫고, 이들과 연대하는 ‘엘라이들’(allies)도 포함하는 총괄적인 용어로 사용된다. 이렇듯 ‘퀴어’가 LGBTQIA(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stioning, Intersex, Asexual)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한 가지 의미로 규정될 수 없고 그렇게 제한되기를 거부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영어에서 명사로도, 동사로도, 형용사로도 쓰이는 ‘퀴어’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지워버린다는 의미, ‘뭔가를 위반하는 행위’, 또는 ‘이성애규범 성(heteronormativity)에 대한 대항’ 등의 의미로도 사용된다.[각주:2]


    퀴어정치학은 성적인 ‘일탈자’와 ‘타자’로 규정되는 주체들을 소수자들로 낙인찍고 억압하는 여러 가지 규제와 범주화에 의해 성적 주체들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분석할 뿐만 아니라, 성정체성의 이분화를 비판하고 이성애를 포함한 다양한 범주의 섹슈얼리티에 분포된 권력의 여러 지점들(힘의 불균형)을 예리하게 짚어낸다.[각주:3] 또한, 퀴어 이론가들은 동성애의 어떤 규범적 위치(position)를 옹호하는 ‘동성애규범성’(homonormativity)에 대 해서, 그리고 ‘퀴어’를 ‘이상화’(idealization)하거나 ‘동일시’(assimilation)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각주:4]


    이렇게 ‘퀴어’가 한 가지 의미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엘라이’로서 성소수자들이나 젠더소수 자들과 연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엘라이로서의 연대는 성소수자들이나 젠더소수자들, 그리고 사회에서 성적 ‘일탈자’로 규정된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를 한다거나 혹은 그들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연대는 그들과 ‘함께’ 하면서, 교회와 사회의 근간인 이성애규범성과 이성애가부장제, 젠더 위계질서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성과 젠더의 사회적 작동과정에서 차별과 배제, 고통을 유발하고 재생산해내는 사회의 권력구조에 대항하는 것이다. 비록 성소수자들과 젠더소수자들의 아픔과 고통의 깊이를 충분히 알 수는 없지만 그들에게 고통을 부과하는, 부정의하고 폭력적인 사회의 권력구조에 대항하는 것이 연대의 유의미한 하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르다’는 것은 단순히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 정체성의 ‘다름’을 차별로 전환시키는 권력구조의 작동임이라는 사실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인식한다면, 자신의 성과 젠더 정체성을 퀴어로 규정짓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사회의 권력구조에 대항하는 것을 통해서 성소수자나 젠더소수자들과의 연대가 가능하게 된다. 다름을 비정상으로, 비정상을 해악으로 규정하면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권력의 메커니즘을 각인하고, 그 속에서 여러 차별과 배제가 어떻게 생겨나고, 여러 가지 고통과 아픔이 어떻게 생산되고 재생산되는지를 인식한다면 그런 권력구조의 종식을 위해서 연대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런 연대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획일적’으로 이성애를 이해하는 태도를 경계하면서, 엘라이가 이성애자나 시스젠 더(cisgender. 태어나면서 지정받은 '신체적 성별[sex]'과 자신이 정체화 하고 있는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이 일치한다고 여기는 사람)로서 알게 모르게 특권을 누려왔음을, 그러한 (무)의식적 메커니즘에 기생하고 있어왔음을 자기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이다. 또한 성소수자와 젠더소수자들과의 연대는 이성애가부장제와 그것을 지탱하는 다른 권력 구조와 억압 체제들에도 대항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왜냐면 억압구조들은 서로 교차하고 그 교차성(intersectionality)에서 다양한 정체성들이 형성되고 작동되는 과정에서 편견과 차별, 배제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대의 끈과 망은 계속 넓혀져 갈 수 밖에 없다.


    ‘퀴어’의 다양한 의미와, 성소수자와 젠더소수자들과의 연대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퀴어신학에 대한 이해도 확장하게 된다. 약 30여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퀴어종교학(퀴어 기독교신학 포함)도 변해왔다. ‘퀴어’라는 용어가 한 가지로 규정되지 않듯이 퀴어종교학/신학도 내부적으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퀴어’를 LGBTQIA를 총 괄하는 용어로 규정하면서 퀴어정체성과 퀴어경험에서 출발하는 퀴어신학이 있고, 퀴어를 단지 성과 젠더 정체성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는 신학도 있다. 다시 말해서, ‘게이로서 신학하기’라는 정체성과 경험에 근거한 신학에 머무르지 않고, 기독교의 뿌리 깊은 이성애규범성과 이성애가부장제를 비판하고, 또 기독교내에 이미 존재하는 ‘퀴어성’(queerness)을 재발견해내려 하는 퀴어신학의 흐름도 있다. 이는 퀴어신학이 LGBTQIA의 경험만을 신학화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다름’을 ‘차별’로 규정하고 성과 젠더에 대한 지배 규범을 생산해 내는 사회의 권력구조를 비판하면서 기독교 역사와 전통, 기존의 성서해석과 신학을 퀴어적 시각에서 다시 읽고 재해석하는 작업이기도 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광범위한 퀴어신학의 한 분야인 퀴어적 성서 해석도 성서에서 ‘동성애’에 관한 것으로 여겨지는 구절들을 재해석하거나 성서의 몇몇 등장인물들을 ‘게이’로, 또 그들의 관계를 ‘동성 간의 사랑’으로 해석하는 시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식론적 관점으로서의 ‘퀴어’를 통해 성서의 이성애규범성과 이성애 가부장제, 젠더의 위계 질서를 비판하고, 성서에 나타난 규범과 비규범의 이분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비판함과 동시에 재해석하고, 성서에 내재된 퀴어성을 해석해 내기도 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서 내부적으로 다양한 퀴어 신학은 정상과 비정상의 극명한 대조를 해체하고, 규범과 비규범의 경계를 지우고, 차이와 경계들을 만들어 내는 권력구조를 비판하며, 그런 권력구조가 교회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계속해서 질문 하면서 경계 허물기를 도모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신학적 시도는 소위 ‘정통’신학에 대한 비판까지도 포함한다.


    임보라 목사와 퀴어신학의 ‘이단성’을 판단하겠다는 세력에게 대항하는 방식으로서 그들의 ‘비정통성’이나 ‘이단성’을 되물으면서 또다른 경계를 짓기보다는 그들이 그토록 지키려고 하는 권력구조의 억압성과 죽음 의 정치학을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폭로하면서 그들의 낙후되고 치졸한 ‘이단’ 시비에 대한 집단적인 대항의 목소리와 행동을 보여야 할 것이다.


    최근 교회의 경계 긋기와 벽쌓기가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다. 그러므로 점점 더 높고 폐쇄적으로 구축되어 가는 경계를 허무는 퀴어목회와 퀴어신학은 어느 때보다 지금 더욱 절실히 요청된다. 그렇기에 퀴어목회와 퀴어신학을 실천하는 임보라 목사에 대한 지지와 연대는 내일로 미뤄질 수 없다.



ⓒ 웹진 <제3시대>



  1. 이 질문을 한 오세요 전도사님에게 감사드린다. [본문으로]
  2. Patrick S. Cheng, Radical Love: An Introduction to Queer Theology (Seabury, 2011), pp. 3~5을 보라. 또한 Susannah Cornwall, Controversies in Queer Theology (SCM, 2011)을 보라. [본문으로]
  3. Cathy J. Cohen, “PUNKS, BULLDAGGERS, AND WELFARE QUEENS: Radical Potential of Queer Politics?” GLQ vol. 3(1997), pp. 437~465을 보라. [본문으로]
  4. Lisa Duggan, The Twilight of Equality? Neoliberalism, Cultural Politics, and the Attack on Democracy (Boston: Beacon Press, 2003)을 보 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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