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개혁하는” (Semper Reformanda): 2017년 세계개혁교회연합 총회를 앞두고

 



김혜란
(
캐나다 세인트앤드류스 대학, 실천신학 교수)


 

    매 해가 의미있고, 매 해마다 엄청난 사건들이 일어난다. 매 해에 벌어지는 일들에게 우리는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한다. 의미부여, 의미 만들기, 의미해석하기, 이 작업은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일이자 또한 신학자의 일이다. 그런 점에서 2017년에 대한 신학적 단상을 하고자 한다.

    정치적으로 2017년은 의미있는 해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해이자, 박근혜를 탄핵시킨 해이자,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해이다.

    종교적으로 2017년 역시 의미있는 해이다. 2017년은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다. 이에 맞추어 세계개혁교회연합 (World Communion of Reformed Churches, 전 세계개혁교회연맹, WCRC) 총회가 6월말 독일에서 열린다.

    이번 총회주제는 “Living God, Renew and Transform Us!” 이다. 주제가 명백하게 보여주듯이, 이번 총회는 개혁을 넘어 우리의 신앙과 삶, 우리가 섬기는 교회와 살고 있는 세계를 변혁하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져 있다.

    본 연합 (WCRC)는 8천만명이 소속된 기독교인들을 대변하는 개혁교회 최대 에큐메니칼 조직이다. 이 조직을 하나로 묶는 신학적 끈은 첫째, “언제나 개혁하는” 개혁교회 신앙의 끈, 둘째, 코이노니아 정신을 모태로 분리가 아니라 연합을 향한 소망의 끈, 그리고, 정의추구가 기독교인의 사명이라는 고백의 끈이다. 이 세가지 끈은 다양한 신앙고백 (1982년 Belhar, 아파타이드 반대) 과 신학 선언 (2004년 Accra, 경제부정의과 제국 반대) 등을 통해 교회를 묶어왔고 엮어왔다.

    2017년 총회 준비 자료 (Prayerful Preparation)를 보면 “언제나 필요한 개혁”(Semper Reformanda) 개혁교회 모토를 신학적으로 조명한다.[각주:1]

    자료집 서문에서 WCRC 총무인 크리스 퍼거슨은 21세기 연합이 품고 가야할 전지구적 사회적 문제로 경제부정의, 즉,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 의해 빈부격차와 자본의 횡포가 날로 심각해지는 현실, 또 생태위기, 환경문제, 기상이변과 재해, 오염등으로 약자, 약한 나라, 인간이 아닌 생태계 생명들이 파괴되어가는 현실, 그리고 이주의 문제를 들었다. (다음 기고에 경제부정의, 생태문제, 그리고 이주의 문제를 연이어 다룰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세가지 이슈가 WCRC 를 엮고있는 세가지 끈, 신앙, 연합, 그리고 정의와 어떻게 긴밀하게 연관되는지 설명한다.

    WCRC 연합 의장인 제리 필레는 종교적으로, 성서문자근본주의에 입각한 차별의 문제를 들면서, 개혁교회 신학인 Sola Scriptura의미는 성서가 기득권자, 힘이 있는 자들에 의해 선별적 해석이 되는 것으로 부터 보호할 책임이 개혁교회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들에게 있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Sola Gratia로 연결되는 이신칭의 (Justification by Faith) 신학교리에 대한 해석을 한다. 

    성서문자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다양한 차별과(성차별, 남성성직자주의, 성소수자, 인종차별) 다양한 폭력 (성폭력, 전쟁폭력, 환경파괴)을 극복하는 신학적 응답과 실천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는 은총의 실천이 신앙의 잣대가 되어야함을 주장한다. 세상의 이데올로기, 선입견, 편견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를 실천하는 일만이 궁극적임을 선언하고 있다. 예수의 은혜를 실천하는 것이 우리 삶, 그리고 세상을 변혁시키는 궁극적 힘이다. 아니, 예수님이 보여주신 은혜를 따르는 일이 선입견, 편견, 차별와 억압을 가능케하는 그 폭력을 끊어내는 저항과 변화의 힘이라는 것이다.

    포스트콜로니얼 페니미스트 신약학자이자 이번 연합 총회 신학교육과정 Global Institute of Theology 책임담당자이자 학장인 무사 두베는 자료집을 통해 로마서 12장 말씀을 해석하면서 사도바울의 철저한 로마제국에 대한 저항이 본 말씀에 담겨져 있다고 주장한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12:1) 는 말씀은 하느님의 은혜로 우리가 변화되었기에, 부패한 제국이 우리를 억압하지만, 그 더러운 손길이 우리를 해치지 못한다는 자유의 선언이라고 해석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2:2) 다음 구절 역시, 제국에 굴복하지 말고, 아니, 제국과 타협하지 말고 (confirm),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하심으로 변화(transform)되라는 것이라고 본문에 대한 의미부여를 한다.

    본 자료집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또 한가지 문제는 바로 성차별의 문제이다. WCRC 소속 교회의 연합을 막고 있는 장벽으로 여성안수문제를 지적한다. 이를 위해 나도 자료집 저자로 발탁이 되어 이 문제를 다루었다. 그리하여, 본 총회를 통해 아직까지 여성에게 목사안수를 주지 않는 WCRC 소속교단으로 하여금, 앞으로 7년 안에, 즉, 다음 총회까지 안수문제를신앙의 고백으로 실천할 것을 의결하는 안건이 올라와 있다. 동시에 성차별과 가부장제에 입각한 남성성직자주의의 문제는 성소수자에 대한 안수의 문제와도 직결된다는 걸 지적한다. 그러므로, 21세기 “언제나 개혁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WCRC는 성소수자, 성정체성, 그리고 성 다양성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그리고 목회적 성찰과 실천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본 총회가 독일 라이프찌히에서 열린다는 그 장소의 역사적 신학적 의미를 해석한다. 독일 신학자 울프 크뢰트케 (Krötke)는 자료집에서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던 그 해, 동독국가 종말의 시작을 알렸던 그 해부터 벌어진 월요일 비폭력시위 (Monday Demonstrations), 평화를 향한 기도회 (prayer for peace)가 라이프찌히에서 일어났다는 점을 주목한다. 라이프찌히는 냉전시기엔 동독에 속한 도시였다. 기독교인들에게 동독에 속해서 종교의 자유를 행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회주의체제안에 속한 교회가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타협과 절충, 심지어 굴복이었다. 그러나 신앙의 탄압과 교회에 대한 정부의 제제가 강해질수록 동독기독교인들의 저항과 인내의 힘은 줄지 않고 늘었다. 1980년대가 되면서 평화, 비폭력,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운동으로 퍼져갔다. 그 와중 1989년 10월 9일 동독 국가 40주년 기념식에서 벌어진 시위는 120만명을 전대미문의 참여로 이어졌다. 같은해 벌어진 중국 천안문 사태를 주시하면서, 사회주의, 전제주의체제가 불러오는 폭력, 인권과 종교의 탄압에 대해 라이프찌히에 속한 교회들은 침묵하지도 타협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언제나 개혁하는” 개혁교회 정체성을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결국 정확히 1달 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500주년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의미는 과거에 대한 향수도 아니요, 기독교 문화 중심주의로 돌아가고자하는 절박함도 아니다. “언제나 개혁하는” 그 신앙, 파격적 (radical)이고 신앙적 (faithful)인 그 개혁교회 정체성을 되새기면서 현재 8천만 개혁교회가 교회가 당면한 다양한 문제들과 교회가 소속한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예언자적으로 목회적으로 다루자는 의미이다. 


    2017년 세계개혁교회연합 총회가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신학적으로 역사적인 획을 긋는 총회가 되길 기도한다.


    살아계신 하나님, 저희를 새롭게 하시고, 변화시켜주소서! 

    “Living God, Renew and Transform Us!”


ⓒ 웹진 <제3시대>



  1. Prayerful Preparation: Exploring the 2017 General Council Theme.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하나의 키워드 : 이단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Ⅰ.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초기 기독교 이단 연구에 대한 비판적 읽기


     이단이란 정통종파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른 교리나 견해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흔히 붙여지는 종교적 용어로서 대체로 불온하고 미심쩍으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수반한다. 한 예로, 사전에도 "헬라어 원어 하이레시스의 기본 의미는 선택이나 의견으로서 단순히 분파, 파(벌) 등을 일컫는 경우(행22:22)와 교회 내에서의 편당(고전 11:19)을 뜻하는 경우, 그리고 다른 교리를 주장하는 이단(벧후 2:1) 등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나온다. 하지만 사회학자 피터 버거에게 이단적 명령은 근대 사회의 전형적 특성에 속한다. "전근대적 인간에게는 이단은 가능성에 불과했고 대개 거리가 먼 가능성이지만,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전형적으로 이단이 하나의 필요성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근대성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데 이 상황에서 취사선택은 하나의 명령인 것이다."[각주:1] 따라서, 앞서 본 사전적 정의와 달리 새로운 상황에 직면한 해석자로서 권위에 대한 도전을 감행한 개척자라는 긍정적 이미지가 이단에게 부여될 수 있다. 물론, 맥그라스라면 단호히 대처할 것이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이단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단이란 용어는 겉으로는 복음의 모양을 하고 있되 궁극적으로 복음의 본질을 전복시키는 신앙 체계를 가리키는 말이다."[각주:2] 사실, 이단적 명령에 따른 하나의 신학적 프로그램으로 버거는 19세기 자유주의 개신교 신학을 지지하고 있는데, 맥그라스에게 이것은 근대 유럽 초창기 자유지상주의의 열망과 궤적을 같이하는 인간주의적 주장에 지나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이단이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해방을 안겨준다는 신념은 1세기의 현실보다는 오늘날 서양의 문화 풍토와 훨씬 더 관련이 깊다."[각주:3]고 쓴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말이다.

     확실히 이 같은 맥그라스의 비판은 어떤 면에선 꽤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알다시피, 해석자란 역사를 자기 시대와 관련해 해석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존재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초기 기독교의 이단들에 대한 맥그라스의 견해 역시 비판적인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맥그라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단은 경험적 개념이 아니라 평가적 개념이다. 어떤 차원에서 보면 이단은 어떤 공동체의 사상에 대한 판단 내지는 평가가 낳은 결과인 만큼 구성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각주:4] 다시 말해, "이단은 역사적 분석으로 정당성이나 부당성을 증명할 수 없는 평가적 개념"[각주:5]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놓고 "이단에 관한 역사적 연구는 다른 이들이 이미 규정지은 것을 역사가가 묘사해야 하는 일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엇이 이단이고 무엇이 정통인지에 대한 판단은 역사가가 정당한 역사방법론을 활용하여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각주:6]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단을 정의하고 구성하는 그의 방식은 애초에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역사적 작업은 아닌 셈이다. 그 스스로 말한 바와 같이 특정한 신학적 관점이 미리 전제된 작업이고, 그에 따른 평가인 것이다. "사실은 잘못된 견해가 초창기부터 등장했기 때문에 후대가 이를 바로 잡아야 했다."[각주:7]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게다가, 초기 기독교는 어떤 종류든 획일성을 강요하는 권위구조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훗날에 정립된 신학 공식들은 명시적으로 공식화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 사상과 예배 속에 이미 내재해 있던 사상과 주제를 점진적으로 펼쳐 보이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각주:8]는 고어의 말을 자연스럽게 인용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것이 역사적 주장이라기보다는 기독교 교리의 역사를 설명할 때 정통주의자들이 흔히 동원하는 씨앗의 비유와 유사한 주장이란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4세기에 정립될 정통주의가 처음부터 존재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정통주의를 발현할 씨앗은 처음부터 품고 있었다고 보는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당시의 정통은 그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는 중이었다고 말이다. 정통은 기성복처럼 이미 만들어진 상태가 아니라 씨앗처럼 상당 기간에 걸쳐 자라나는 중이었다. 장차 정통의 구조에 편입될 모든 기본 주제들은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각주:9]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그에게 다윈은 기독교의 역사를 살피는 데에 적격인 인물로 등장한다. "교리의 발전이란 사상은 1859년에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됨과 동시에 새로운 지적 에너지를 공급받았다. 생물학 세계에서 진화를 얘기할 수 있다면 사상의 세계에서도 그와 똑같은 과정을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각주:10]

     그러므로, 기독교의 이단에 대한 맥그라스의 평가는 역사이기보다는 특정한 신학적 이해를 전제한 하나의 해석학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발터 바우어라면 이러한 신학적 전제는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고 비판할 것이다. 그에 따르면 "2세기 말까지 대다수의 장소에 있었던 주류 기독교는 정통파가 아니라 이단들이었다."[각주:11] 앞서 언급된 맥그라스의 씨앗 비유를 참조하면 "정통은 최초의 원래 견해와 다수의 보편적 견해를 모두 함의하고 있으며 이단은 그러한 정통적 믿음을 고의로 저버리는 타락을 뜻한다."[각주:12]는 에오세비오스의 설명을 맥그라스가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해 얼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각주:13]


바우어의 입장은 단순한 주장에 의거한 것이 아니었다. 각 지역에서 입수한 자료들을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에우세비오스의 기록과는 달리 최초기와 혹은 승리자측이 지배하기 이전에는 대부분 지역에서 이단적 형태의 기독교, 즉 승리자측이 나중에 공격한 기독교의 제형태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후기의 정통 기독교인들은 승리를 거둔뒤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 발생한 내분의 역사에 대한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어만의 이런 주장을 다소 과장된 레토릭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흥미로운 점은 바우어를 비판하고 있는 맥그라스조차도 바우어의 핵심적인 테제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바우어가 확실히 옳은 점이 한 가지 있다. 초기 기독교가 당시의 대표적인 일부 인물들이 우리에게 심어준 인상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고 다양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더 이상 논란거리나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각주:1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그라스는 바우어의 주장을 수용한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받아친다. 한 예로, 영지주의를 페민적인 평등주의 운동으로 보는 페이절스의 주장에 대해 영지주의 저술은 반여성적 진술로 가득하다는 매크라이트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전혀 근거가 없다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단이 정통에 대해 자신의 합법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는 바우어의 주장이 붕괴되진 않는다. 애석하게도, 이 지점에서 맥그라스는 논점을 교묘하게 흩뜨리고, 정통은 비록 원형적 혹은 씨앗의 형태지만 애초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초기 기독교 이단들에 대한 맥그라스의 작업을 단적으로 평한다면 발터 바우어를 비롯해 초기 기독교의 이단들을 새롭게 인식하려는 최근의 학문적 작업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각고의 노력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교회가 당면한 진정한 도전은 정통이야말로 강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정서적으로 매력있고, 심미적 감각을 증진하며, 개인적으로 해방감을 주는 것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고대한다."[각주:15]는 그의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각고의 노력이 “이단은 후기 고전 시대의 다원적이고 경쟁적인 세계 안에서 소멸될 수밖에 없는 결함이 있고 무기력하고 진정성이 없는 기독교의 한 부류였다. 반면에 정통은 그 장래를 안전하게 지키는 수단으로 진정성에 대한 추구를 촉진하는 등 이단보다 더 강한 생존력을 갖고 있었다.”[각주:16]는 논리비약인 동시에 일종의 결과론적인 주장으로까지 치닫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안쓰러워 보인다. 어떻게 역사가 맥그라스가 말한 바처럼 씨앗으로 이해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결과론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평가하고 마는 것일까? 그렇다면, “한 개념의 역사란 반드시 그의 점진적인 세련화의, 계속 증가하는 그의 합리성의, 그의 추상화의 변화율의 역사가 아니라 그의 구성과 유효성의 다양한 장의, 그의 사용에 있어서 계기적인 규칙들의, 그의 정교화가 추구되고 성취되는 복수적인 이론적 환경의 역사일 수 있다.”[각주:17]는 푸코의 지적은 애초에 상상할 수 없는 것 아닐까? 때문에, “마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에, 전통을 재구성하는 것에, 진화론적인 곡선을 따라가는 것에, 목적론을 기획하는 데에, 그리고 끊임없이 생명이라는 은유에 호소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는 바로 그 곳에서, 차이를 생각하는 것에 대한, 간극과 분산을 기술하는 것에 대한, 동일한 것의 확고한 형태를 해체시키는 것에 대한 어떤 거부감을 느낀 듯이”[각주:18]라는 푸코의 지적을 맥그라스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독교에 대한 푸코의 논점이 중세에만 해당된다고 맥그라스가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권력이라는 개념을 순전히 정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맥그라스의 푸코에 대한 오독이다. 푸코에게 권력이란 단순히 정치적인 차원에서만 행사되는 그 무엇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대교와 비교해볼 때 기독교는 믿음체계라는 맥그라스의 주장 자체가 푸코에겐 이미 하나의 권력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4세기 황제의 정치적 수단에 의한 이단 규정이 2세기와 같은 초기에는 없었다고 할 수 있지만 지식의 형태라는 점에서 보면 권력이 작동하고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푸코가 지적한 바와 같이 단일한 기원이라는 신화를 해체하고 복수적인 기원을 상상함으로써 초기 기독교의 이단들을 맥그라스와는 다른 관점에서 해석해 볼 여지를 얻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것은 발터 바우어의 논의를 숙고함으로써, 다시 말해 때론 수용하고 때론 거부하고 때론 혁신하면서 초기 기독교의 이단들과 관련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익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그런 작업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한 예로 맥그라스가 이단으로 낙인찍은 에비온파를 들 수 있다. 하나의 이단적 명령으로서 “타종교와 심각한 대결을 한다면, 적어도 가설적으로 다른 종교 역시 진리라는 명제에 대하여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달리 표현한다면 종교간의 대결에 돌입하려면 자기 자신의 현실관까지도 변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각주:19]는 버거의 주장을 참조하고서 버메스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경청한다면[각주:20] 다소 비극적이지만 그럼에도 초기 기독교의 한 분파로서, 정통이 이단이라고 낙인찍은 에비온파는 유대교와의 대화에도 생산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신성화 등과 같은 기독교의 부착물 없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랐던 토라를 준수하던 유대인들로 구성된 1세기의 수확인 유대-기독교의 쇠퇴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유대인 진영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이방인 교회의 교인들에게도 인기가 없었다. 그들은 예수에게 가장 가까이 남아 있었음에도 유대인들은 그들을 기독교인으로 여겼고 기독교인들을 그들을 이단으로 여겼다. 제롬이 어거스틴에게 보낸 글을 보면 그들은 유대인이면서도 기독교인으로 남아 있기 원했지만 그들은 유대인도 기독교인도 아니었다. 그들은 역사에서 사라져갔고 생존하던 몇몇 사람들은 다시 유대인 진영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와 함께 예수가 전하고 실천했던 종교의 흔적은 마침내 사라져 버리고 비유대인 세계에서 헬라화된 기독교가 승전가를 부르며 승전을 거듭할 수 있게 되었다. 공평하게 말하자면 생소한 교리적, 교회적 특징들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가난한 자를 위해 부를 포기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나 우리의 시대에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람바레네에 있는 병든 자를 위해 초기한 알버트 슈바이처, 그리고 노구를 이끌고 캘커타의 더러운 거리에서 죽어가는 자들을 돌보는 테레사 수녀를 통해 본을 볼 수 있는 동기의 순수성에 대한 강조, 자비의 마음과 같은 예수의 경건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아직도 소유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에비온파와 관련한 맥그라스의 이야기 역시 상당히 흥미롭게 들린다. “최근에 유대적인 기독교가 부활함에 따라 예수의 중요성을 유대인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일에 새로운 관심이 생겼다. 그들은 예수라는 이름이 헬라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그 이름을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전통적인 방식들이 그리스의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고 진정한 유대적인 방식으로 다시 진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예수를 선지자로 보는 것이 그런 예이다. 이로 말미암아 유대의 기독교 진영에서는 에비온주의 그리스도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각주:21]


ⓒ 웹진 <제3시대>



  1. 피터 버거, 『이단의 시대』, 서광선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81, p.36 [본문으로]
  2. 알리스터 맥그라스,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홍병룡 옮김, 포이에마, 2011, p.291 [본문으로]
  3.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20 [본문으로]
  4.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59 [본문으로]
  5.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103 [본문으로]
  6.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103 [본문으로]
  7. 알리스터 맥그라스, 앞의 책, p.48 [본문으로]
  8.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45 [본문으로]
  9.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125 [본문으로]
  10.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112 [본문으로]
  11. 정용택, 『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 자리, 2012, p.45 [본문으로]
  12. 정용택, 같은 책, p.43 [본문으로]
  13. 바트 어만, 『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 이제, 2008, p.365 [본문으로]
  14. 알리스터 맥그라스, 앞의 책, p.123 [본문으로]
  15.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343 [본문으로]
  16. 알리스터 맥그라스, 같은 책, p.134 [본문으로]
  17. 미셸 푸코, 『지식의 고고학』, 이정우 옮김, 민음사, 1998, p.21 [본문으로]
  18. 미셸 푸코, 같은 책, p.33 [본문으로]
  19. 피터 버거, 앞의 책, p.169 [본문으로]
  20. 게자 버미스, 『유대인 예수의 종교』, 노진준 옮김, 은성, 1995, p.262 [본문으로]
  21. 알리스터 맥그라스, 앞의 책, p.170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미국 진보 신학의 버팀목, 

시카고 신학대학원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각주:1]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 주간)

 


   프롤로그 : 시카고를 아시나요?


   시카고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시카고 대화재(1871년)와 1920년대와 30년대 시카고를 장악했던 미국 갱의 전설 알카포네, 1990년대 NBA를 장악했던 농구천재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 건축과 재즈의 도시, 바람과 호수의 도시, 그리고 얼마 전 퇴임한 바락 오바마 대통령 까지, 이상은 빅테이터를 돌리면 나오는 시카고 관련 내용들입니다.

    시카고는 미 중부 일리노이주에 있고, 미시건 호수 남서쪽에 자리잡은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정치적으로 시카고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와 더불어 민주당 초강세 지역으로 분류됩니다. 이런 까닭에 마약, 낙태, 총기규제, 반전, 흑인, 동성애와 이민자 정책 등에 있어 시카고는 미국내에서 진보담론의 진원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시카고의 특징들 가운데 빠진 것이 있다면, 시카고는 대학의 도시, 신학의 도시라는 점입니다. 명문 시카고대학, 노스웨스턴대학, 예수회 계통의 로욜라대학, 미국 내 최대 카톨릭 대학 중 하나인 드폴(De Paul)대학, 일리노이주립대학 등이 시카고에 위치하고 있고, 특별히 신학교육에 있어서 시카고는 바티칸 다음으로 가장 크고 내실있는 신학 네트워크가 조성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미 최대의 신학 도시, 시카고


   시카고의 가장 큰 신학적 특색을 꼽으라면 초교파적으로 구성된 12개의 신학교가 연합체(ACTS: The Association Of Chicago Theological Schools)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각주:2] ACTS에 속한 학생들은 어느 학교 수업이든 수강할 수 있습니다. 각기 다양한 신앙전통 속에 존재하는 신학, 예전, 역사들을 배우며 오늘의 신학을 재구성할 수 있는 풍부한 논의를 경험할 수 있는 있다는 말입니다. ACTS에 소속된 전임 교수는 260여명, 학생은 3천여명, 1년에 개설되는 강의는 총 700여 강좌에 육박합니다. 비슷한 형태의 샌프란시스코의 GTU나, 캐나다 토론토와 비교했을 때 비록 공동학위 시스템은 아니지만, 규모와 스케일 면에서는 가히 전미 최대 신학 도시라 할만 합니다.

    매학기 마다 수강신청을 하기 전에 무엇을 들을까 하고 ACTS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350개가 넘는 과목의 실라버스가 뗘 있습니다. 그것만 확인하는데도 일주일 넘게 걸립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 기독교윤리가 전공이었는데, 학기 시작 한 달전 ACTS에 소속된 윤리학 전공 30여명의 교수가 개설하는 50여 기독교 윤리 과목에 대한 research로부터 학기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달 동안 실라버스 확인하여 강의 내용과 일정, Text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됩니다. 그 과정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내가 듣고 싶은 과목 3-4개를 선택하여 수강을 합니다.

    또한 ACTS에 속한 학생들은 수강 신청 전에 사전 협의만 하면 시카고대학, 노스웨스턴 대학, 로욜라(Loyola) 대학, 드폴(DePaul) 대학의 철학과 종교학 수업도 들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책임윤리의 계승자로 알려진 시카고 대학의 슈바이커 교수의 강의를 오전에 듣고, 점심 먹고 노스웨스턴 대학으로 건너가 철학과에서 데리다의 정치신학을 강의하는 도이처 교수의 강좌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로욜라 대학에 있는 미국 내 레비나스 번역가로 알려진 페이퍼 젝 교수가 개설하는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학 수업도 수강 가능합니다.

    종합하면, 시카고가 지닌 신학교육의 특징은 Interdisciplinary Studies (학제간 연구)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시카고가 지닌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의 상황속에서 시카고의 신학은 이러한 시대적 질문에 대해 철저한 제 학문간 연대와 제휴를 통해 신학적으로 다양한 색깔과 무닉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ACTS가 위치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시카고 지역의 신학적 토양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 미국 진보신학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시카고 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 이하 CTS)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시카고 신학교가 위치한 시카고 남부 Hyde Park[각주:3]


   시카고 신학대학원 길라잡이


   저는 2004년 시카고로 도미하여 2014년 학위를 마치고 10년만에 귀국했습니다. 멕코믹 신학교에서 석사과정(MATS)을 마치고(2007), 바로 CTS로 진학하여 7년 동안 윤리학으로 Ph.D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지금부터 시카고 유학시절 CTS에서 공부하면서 배우고 느낌 점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CTS는 미국연합그리스도교회(United Church of Christ) 교단 소속의 신학교로서 1855년에 세워졌습니다. UCC 교단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교단으로 이민, 흑인, 반전, 동성애, 여성문제에 대한 선교정책에 있어 전향적인 자세와 실천을 이루어내고 있는 교단입니다. 우리 기장과는 1986년부터 파트너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중서부 지역 회중교회들을 모체로 세워진 시카고신학교는 미국연합그리스도교단 출신 학생뿐만 아니라 개신교 각 교단과 천주교, 동방정교회, 나아가 유대교, 이슬람 계통의 학생까지 모여 공부하는 초교파, 범교단적 신학교입니다. 이름이 비슷해 혼동하기 쉬운 시카고대학 Divinity school과 CTS는 초기에 교수진과 학생 교류, 학교 행정을 같이 하는 관계였다가 1960년 이후에는 단순한 협력관계로 바뀌었습니다. 그렇지만 수업과 도서관은 여전히 함께 공유하고 있습니다.

    CTS는 역사적으로 교수와 학생 모두 시민운동에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신학생들과 교수들은 사회적 문제와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이런 저런 형태로 현실의 문제에 개입합니다. 이라크 전쟁 반대시위,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Ocu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 운동 가담, 그 밖에 동성애와 여성, 이민자 문제 등에서 CTS 구성원들은 대외적으로 활발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일까요, CTS는 미국 인권운동의 대명사 마틴 루터 킹 명예학위를 주는 최고의 고등기관이기도 합니다. 이 상은 198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기독교의 반 인종차별 운동에 앞장섰던 투투주교에 수여되기도 했습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맨토로 유명한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UCC) 전 담임목사 제레미야 라이트 목사가 CTS 출신입니다. 그는 미국의 패권적 외교정책에 대해 “Got damn America! (빌어먹을 미국)” 이라 비난하면서 문제적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이자 1980년대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도 참여한 제시 잭슨 목사도 CTS 출신입니다. 이들은 CTS에서 행사(졸업식, 각종 기념식)가 있을 때 가끔씩 등장해 연설을 하면서 좌중을 쥐락펴락 하면서 행사장의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계절 학기 강사로 강단에 서기도 합니다.

       종합하면 CTS는 대사회적 메시지와 참여에 충실한 한신 신학의 학풍과도 매우 유사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하겠습니다. 제가 Ph.D 과정 지원 할 때 SOP(학업계획서) 쓰면서 CTS 지원이유에서 ‘나는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신학교인 한신 출신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다’고 적었더니 교수님들이 흡족해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제로 CTS는 미국 신학계에서 한국 신학계에서 한신이 점하는 위치와 같은 진보적 색채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신이 요즘 안팎으로 변했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여전히 그 색깔을 변치 않고 시대에 맞게 진화하며 꾸준히 진보적 신학담론을 창출하는 CTS에서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시카고 신학대학원의 학풍


   CTS는 앞서 이미 언급 했듯이 미국 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신학교로 각종 사회적 이슈들에서 Radical한 신학적 입장을 견지하는 신학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CTS는 전통적으로 아웃사이더 신학이 강합니다. 전에는 해방신학, 여성신학, 정치신학의 입장이 강했고, 근래는 Queer Theology (Ken Stone), Postmodern Theology (Jennings, Schneider), Black & Womanist Theology (Butler, Terrell)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학자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CTS는 목회상담 1세대를 대표하는 학자 안톤 보이슨(Anton T. Boisen)에 의해 전미에서 최초로 신학교에서 CPE를 시행했던 학교입니다. 이러한 전통이 CTS를 임상 목회상담의 산실로 우뚝 자리잡게 하였습니다. 특별히 CTS를 오랫동안 대표했던 모어(Moore) 교수는 목회상담과 융과 틸리히를 연결하여 나름 그 분야 학제간 대화의 독보적 인물로 평가됩니다.

    특별히 저같이 데리다, 푸코, 라깡, 들뢰즈, 레비나스, 지젝등 현재 활발히 논의되는 유럽의 탈근대적, 좌파적 철학자들의 사상을 신학적으로 어뗳게 해석하여 운동(윤리)의 차원으로, 해방의 차원으로 승화시킬것인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CTS는 미국내 최상의 학교입니다. Theology, Ethics & Human Science 분야의 전교수가 이 문제를 갖고 연구하는 분들이시고 권위자입니다. 올해 은퇴한 테드 제닝스(Ted Jennings) 교수는 요즘 가장 핫한 바울에 대한 정치신학 비평으로 유명한 학자이고, 서구 정신사를 인문 신학적으로 꿰고 있는 국보급 진보신학자입니다. 레비나스와 지젝을 통해 서구 전통신학에 반기를 들었던 서보명 교수는 근래에는 유영모,함석헌 사상을 바탕으로 서구신학에 대한 대안을 모색합니다. 지금은 벤더빌트로 옮긴 슈나이더(Schneider) 교수도 CTS에서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본회퍼와 탈근대 사상을 연결하는 학자이자, 차세대 페미니즘을 대표할 신학자로 벌써부터 메이나 층이 형성된 신학자입니다

    CTS의 성서학은 전통적인 역사비평의 틀을 넘어서서 해석학적인 성서비평으로 유명합니다. 포스트콜로니얼의 시각에서 성서를 바라보는 양승애 교수는 리타 나카시마 브럭(Rita Nakashima Brock)과 곽퓨란(Kwok Pui Lan)등과 어깨를 견주는 대표적 아시아 여성신학자입니다. 구약학자 켄스톤 (Ken Stone)의 이름은 앞으로 반드시 숙지하셔야 할 것입니다. 미국내 Queer 관점으로 구약성서를 재해석하는 독보적 학자입니다. 이렇듯 CTS에 포진하고 있는 엣지있는 교수들과 학교자체의 진보적 색채 때문에 전미에 분포하는 개혁적 성향의 신학도들에게 CTS는 여전히 매력적인 신학교입니다.


* CTS 새 캠퍼스[각주:4]


   변화하는 시카고 신학대학원


   2010년을 넘어가면서 CTS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신학교들도 그러하듯이 미국의 신학교들 역시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미국 내 진보성향의 신학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CTS의 상황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2012년에 큰 결단을 내려 원래 Hyde Park 55가에 위치했던 덩어리가 컸던 캠퍼스를 정리하고, 한 블록 위에다 새롭게 아담한 캠퍼스를 조성하였습니다.

    옛 건물을 처분하고 캠퍼스를 줄여 옮겨 가는 과정에서 이익이 발생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장학사업과 그 밖의 교육프로그램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신학교협의회(ATS: The Association of Theological Schools)로 부터 인가를 받아 Mainline Protestant Seminary 중 최초로 online으로 M.Div. 학위를 수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의 정신과 커리큘럼에 동의하고 흥미를 느끼면서도 거리상 입학할 수 없었던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신학도들이 CTS M. Div 온라인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Eco-Community(생태 공동체) 프로그램과 Interreligious Institute(종교간 센터)를 새롭게 만들어 운영하면서 좋은 평을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 기획된 프로그램들은 CTS에 기존에 있었던 LGBTQ Center (Queer theology), Christian-Muslim Studies, Christian-Judaism Studies, Center for Study of Black theology, Center for Study of Korean Christianity 등의 기관과 유기적으로 협조를 합니다. 이러한 커리큘럼 재정비를 통해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 사회에서 타자를 환대하는 목회자, 타자와 더불어 함께 연대하는 목회자 양성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관계자 말에 의하면 M.Div 온라인 과정 신설과 여러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전에 비해 30% 가까이 학생수가 증가했다고 합니다.[각주:5]

    몇몇 CTS의 상징적 교수들이 은퇴를 하거나 학교를 옮겨 교수보강이 시급했는데 좋은 교수들이 임용되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슈나이더 교수 후임으로 2015년 Christoph Ringer 교수가 Public Theology and Ethics 교수로 부임하였고, 불행하게 세상을 등진 모어 교수 후임으로는 작년 2016년에 Zachary Moon 교수가 새로 영입되었습니다. Stephanie Buckhanon Crowder는 womanist(흑인여성신학) 관점에서 성서와 대중문화를 분석하는 독특한 학자인데, 새롭게 CTS의 교수진으로 수혈된 젊은 학자입니다. 특별한 소식을 하나 더 하자면, Bexley-Seabury 성공회 신학대학이 CTS 건물로 이주해 시설과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한 캠퍼스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신학교가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에필로그


    CTS에서 유학생 하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던 것은 민중신학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입니다. 그것은 민중신학의 빛바랜 과거에 대한 찬양도 아니고, 화석화된 민중신학에 대한 주례사 비평은 더더욱 아닙니다. 단지 미국 와서 신학을 공부한다고해서, 몇 가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신학이슈들에 발빠르게 대처한다고 해서 호박이 수박이 되는 것은 아니죠. 진보란 열려있음을 전제로 변혁을 꿈꾸는 정신성이고, 부단히 삶의 자리에서 실행되어야 하는 구체성입니다. 또한 진보란 부단히 흘러가면서 새로움을 상상하는 정신이자 그것을 감행하는 실재입니다. 이러한 진보적 유전자가 민중신학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CTS에서 공부하는 동안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CTS에서 배우고 살면서 느꼈던 것은 민중신학이 표방하는 성서 해석학, 예수에 대한 이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세계적인 신학이었고, 첨단의 신학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해왔던 것이 맞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변했으니 우리도 변해야 한다는 말에 속지 마십시오.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더 악랄하고 집요해졌을 뿐입니다. 다시 한번 민중신학의 자리를 점검하면서 새로운 진보신학의 언어를 발굴하고 적용하며 실천하는 일에 우리의 의지와 상상을 모을 때 입니다.


* CTS 새 캠퍼스 로비에 있는 문익환 목사님 이미지[각주:6]



ⓒ 웹진 <제3시대>



  1. 『세계와 선교』(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실리게 될 ‘세계 신학교 탐방’ 원고입니다. [본문으로]
  2. ACTS (http://www.actschicago.org/) 소속 12개 신학교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UCC,기장과 자매교단), McComick Theological Seminary (미국 장로교, 기장과 자매교단), Meadvill·Lombard Theological Seminary (유니테리안), Luthern School of Theological at Chicago* (루터교), Bexley-Seabury Seminary Federation(성공회), Loyola Institute for Pastoral Studies (예수회), Garreett-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 (감리교), Nor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침례교), North-Park Theological Seminary (언약교단),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복음적 자유교회 소속), Catholic Theological Seminary (천주교), Mundelein Seminary (천주교) (*가 있는 학교는 Ph.D 학위가 있는 학교임), 이 밖에도 1800년대 중후반 시카고를 중심으로 미국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무디(Moody)을 기념하는 Moody Bible Institute도 시카고 시내에 있다. [본문으로]
  3. 오바마의 정치적, 사상적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시카고 남부 Hyde-Park은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적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살아있는 흑인 인권 운동의 대부인 제시 잭슨 목사, 오바마의 멘토로 유명한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 등이 모두 시카고 신학교에서 신학 수업을 받았다. 위의 사진은 Hyde-Park에 위치하고 있는 시카고 대학과 시카고 신학교 전경이다. 우측 하단에 거대하게 버티고 있는 건물이 시카고 대학을 건립한 록펠러를 기념하여 세운 록펠러 채플이고, 바로 건너편 빨간 벽돌로 높이 솟아있는 탑이 시카고 신학교이다. 2012년 까지 이곳에서 신학수업이 이루어졌다. 사진 중앙을 가로 지르고 있는 길이 University Ave이다. 그 길 건너편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카고 대학이 펼쳐진다. 좌측 중앙에 보이는 회색 건물이 시카고 대학 메인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뢰겐스타인 도서관이다. University Ave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신학자 폴 틸리히가 자주 갔다는 맥주집이 길 모퉁이에서 아직도 성업중이다. 저 멀리 시카고 다운 타운이 보이고, 사진 상단 파란부분은 남한 땅이 풍덩 빠져도 남는다는 미시건 호수이다. [본문으로]
  4. 새로 옮긴 CTS 캠퍼스. 위에 옥상의 동그란 부분이 채플실. 3층이 도서관과 학생 휴게실. 1,2층에 강의실 및 각종 부속시설이 배치되어 있다. [본문으로]
  5. CTS에는 다음과 같은 학위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석사과정에 M.Div, STM, MA, 박사과정에 D.Min, ph.D. 좀 더 자세한 입학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학교 공식 홈피(https://www.ctschicago.edu/)에 접속하셔서 바탕화면에 떠 있는 Admission를 누르고 들어가면 됩니다. [본문으로]
  6. 새 캠퍼스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위에 실현하고자 분투했던 신앙인들의 얼굴이 우리를 맞습니다. 본회퍼, Harriet Tubman(노예였으나 탈출한 뒤에 수많은 노예를 해방시킨 '장군'이라고 불리었던 여성), 간디, Millard Fuller(해비타트 운동의 창시자), 마틴 루터 킹, Audre Lorde(흑인 여성주의자였던 시인), 로메로 신부, 마더 테레사 등....그리고 우리의 문익환 목사님도 그 벽화에는 새겨져 있답니다.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야훼의 인종청소





김진양

(Ph.D. The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 (the Old Testament))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피바다가 흐르는 끔찍한 땅으로 변질되었다. 사실 이것이 성서가 말하고 있는 약속의 땅의 적나라한 모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당황스럽고 씁쓸하다. 구약 성서학은 거룩한 전쟁이라는 신학적 담론 아래 가나안 원주민의 희생을 철저히 외면하였다. 약속의 땅과 거룩한 전쟁 같은 이데올리기는 고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을 정당화했을 뿐 아니라, 근대에 세워진 국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청소”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부끄러운 일이다. 


  공교롭게도 성서에서 처음으로 “인종청소”를 언급된 곳이 다름 아닌 히브리 노예의 해방을 기록한 출애굽기다:


나의 천사가 너희 앞에서 너희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있는 곳으로 인도할 것이다. 내가 그들을 전멸시키겠다(출 23:23, 새번역).


  성서의 “인종청소” 언급은 신명기에서 더욱 심각하다. 신명기는 가나안 땅의 사는 모든 남성, 여성, 심지어 어린이까지 죽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 우리 하나님이 그를 우리 손에 넘겨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와 그의 아들들들과 그의 온 군대를 쳐부술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모든 성읍을 점령하고 모든 성읍에서 남자 여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켰습니다(신 2:33-34, 새번역).


    더욱 놀라운 점은 신명기에서 “인종청소”의 주도적 역할은 다름 아닌 야훼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는 것이다(참조, 신 7:1-11; 9:1-; 11:8-9; 23:31-23). 여호수아서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특별히 첫 번째 부분은 야훼의 거룩한 전쟁이라는 이념 아래 “인종청소”를 합법적으로 설명한다(여호수아 2-12). 그야말로 야훼가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가나안 원주민의 피로 얼룩진 땅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구약성서의 “인종청소” 개념이 있다는 자체가 놀라운 사실이지만, 야훼가 이를 직접 요구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충격적이다.


 성서의 거룩한 전쟁은 “인종청소”라는 면에서 도덕적/윤리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가나안 “인종청소”가 근대 이스라엘의 성립 과정 중 행해진 팔레스타인 “인종청소”에 성서적이고 신학적인 근거를 제공하였다는 점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각주:1] 더구나 고대에 기록된 성서가 근대의 역사에서 “인종청소”의 도구로 오용되도록 성서를 해석한 성서학자들의 학문은 재고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서 1장에서 12장에서 언급하는 가나안 정복설은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오히려 초기 이스라엘은 다른 인종과 점진적이고 평화적 융합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고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초기 왕정시대인 철기시대의 팔레스타인 산악지대의 거주지는 오히려 “가나안”과 “이스라엘”사이의 인종적 구별이 없음을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은 외부에서의 침략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오랜 세월동안 내부의 혼합 과정을 거친 평화로운 민족 형성의 과정이다.


 지난 2000년 9월 10일자 뉴욕타임즈에 150명의 유대인 학자와 랍비는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시오니즘 운동의 정당성을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인은 유대인의 이스라엘 땅에 대한 존중을 표해야 한다. 홀로코스트 이후 가장 중요한 사건은 다름 아닌 약속의 땅에 재건된 이스라엘이다. 기독교는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성서에 기초한 종교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사실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기독교인은 단순히 정치적인 이유보다는 다른 많은 이유로 근대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에 유대인들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유럽의 유대인은 나치정권 유대인 말살정책인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인종청소”의 희생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근대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오히려 팔레스타인을 말살하는 “인종청소”의 주역이 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성서를 언급하면서 미국의 기독교인들을 향해 구애를 펼쳤다. UN과 미국의 지지 아래 1948년 근대 이스라엘이 탄생하게 된 이래, 이스라엘은 줄곧 미국의 어마어마한 재정적 지원을 받아왔다. 아래 도표에서 보듯이, 1948년 이후, 이스라엘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군사적이고 경제적 도움을 받은 최대의 수혜국이다.


 수많은 성서학자들이 땅에 대한 신학적/신앙적 논의를 하였지만, 정녕 “인종청소”의 부당함에 대해서는 침묵해 왔다. 미국 듀크대학 명예교수인 데이비스(W. D. Davies)는 자신의 책 The Gospel and the Land에서 자신이 의도하지 않게 이스라엘의 “인종청소”를 지지하게 되었다고 소고했다. 구약성서학의 대가인 발트 브루거만(Walter Brueggeman)도 1977년에 출판된 자신의 책 The Land도 같은 맥락이다. 브루거만 역시 성서신학에서 땅의 중요성을 강조한 반면, 가나안 원주민의 권리는 철저히 무시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달리 키스 와이트램(Keith Whitelam)은 고대 이스라엘 역사는 1948년에 세워진 근대 이스라엘을 정당화하는 날조된 학문이라고 주장하면서 근대 이스라엘의 합법성에 문제제기를 한 유일한 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책, 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The Silencing of Palestinian History (1997)에서 “다윗왕조와 근대 이스라엘 사이의 유사성을 비교하면서 시오니즘을 옹호하는 성서해석”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각주:2] 아래의 삽화는 1948년 이후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근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종청소”의 의미를 한눈으로 잘 보여준다. 성서학자들은 “인종청소”라는 폭력적인 정책의 성서적인 근거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바바라 로씽(Barbara Rossing)의 책 The Rapture Exposed: The Message of Hope in the Book of Revelation은 시오니즘을 옹호하는 세대주의 종말론((Dispensationalism)의 위험성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종말론 소설인 남겨진 자(Left Behind)와 같은 부류의 소설은 성서에 근거를 두지 않을 뿐 아니라, 폭력과 전쟁, 특히 “인종청소”를 정당화화는 위험한 책이라는 것이다.[각주:3] (필자의 블로그 참조: 미국의 중동정책과 묵시종말론).


 구약성서의 역사를 재해석하는 학문인 구약 성서학이 오늘날 이스라엘의 “인종청소”를 옹호하는 학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구약성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과 화해를 위해 성서를 해석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하신 야훼의 말씀을 오늘날 올바르게 재해석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필자소개

    현재 미 연합감리교회 북 일리노이 연회에서 목회, 시카고 루터란 신학대학에서 구약학 전공(Ph.D.), 시카고 루터란 신학대학 외래교수,  Wartburg College에서 강의


ⓒ 웹진 <제3시대>

  1. Michael Prior, "Confronting the Bible's Ethnic Cleansing in Palestine," in Burning Issues: Understanding and Misunderstanding The Middle East: A 40-Year Chronicle (eds. John Mahoney, Jane Adas, and Robert Norberg (New York: Americans for Middle East Understanding, 2007), pp. 267-90. [본문으로]
  2. Keith W. Whitelam, 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The Silencing of Palestinian History (London: Routledge; Revised ed. edition, 1997), p. 137. [본문으로]
  3. 바바라 로씽, 『미국의 중동정책과 묵시 종말론: 요한묵시록의 희망 이야기』 (번역: 김명수, 김진양; 경성대학교 출판부, 2009).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욕망하라!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 주간)

 

욕망으로의 초대


   근대 주체철학의 신화가 완성되던 무렵 근대성 일반에 대한 반란을 시도한 천재들이 19세기에 등장했으니, 다름 아닌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와 맑스(Karl Marx, 1818~1883)와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다. 그들은 각기 서양 주류철학이 걸어왔던 관념과 의식과 이성 중심주의에 맞서, 물질과 무의식과 반이성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욕망담론은 무의식과 반이성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던 그때로부터 1세기가 흐른 현 21세기에 와서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다.

    욕망에 대한 사유는 전통 사상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분야다. 그것은 프로이트와 라깡, 그리고 근래 지젝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의 정치철학화, 내지 윤리화 과정에서 부각되고 있는 새로운 사유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욕망인가. 이 대목에서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다. 지금부터 논의하게 될 욕망담론은 자본의 무한질주에 따른 소비에 대한 욕구와 충동을 격려하고 뒷받침하는 이론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로 재편된 21세기 현실 속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유일한 정언명법은 자본이다. 거대하고 막강한 자본이 선사하는 강제로 인해 지구촌 인민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지만, 지옥과도 같은 자본의 압제를 벗어날 전망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시기에 욕망이론이 현실 저편을 지향하면서 현실을 넘어가는 에너르기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에너지가 혹시 자본의 막강한 벽에 균열을 가하거나, 그 벽을 타고 넘을 힘을 제공하지 않을까라는 기대에서 사람들은 욕망이론을 펼쳐든다. 그럼 지금부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탑승하기로 하겠다.


욕망이 출몰하기까지


   정신분석학의 기본명제는‘모든 억압된 것은 귀환한다’는 것이고, 귀환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욕망은 억압의 산물이고 귀환을 일으키는 매개라 할 수 있다. 욕망이 담론사에서 정식으로 대우를 받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자끄 라깡(Jacques Lacan, 1901-1981)이라는 걸출한 정신분석가로 부터가 아닐까 싶다. 팔레스틴 지역에서 일어났던 예수운동이 바울을 통해 세계화되면서 그리스도교로 발전했듯이, 이념으로서의 맑시즘을 실천철학화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견인했던 레닌처럼, 정신분석학의 발전과정에서 프로이트와 라깡의 관계도 그러하다.

   프로이트에게 오이디푸스 단계의 아버지가 생물학적 아버지라면, 라깡의 경우는‘아버지의 이름’으로 상징되는 법과 제도와 규범을 의미한다. 프로이트의 남근(pennies)은 라깡의 남근(phallus, 팔루스)과 다르다. 전자가 단순한 생물학적 성기라면, 후자는 상징계(the Symbol), 즉 사회적 인정과 권위를 나타내는 기표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거세공포(Castration complex)는 생물학적 성기에 대한 제거의 공포라기보다는, 자기의 사회적 자리와 지위가 인정되지 않고 박탈되는 것에 대한 공포이고, 이것이 인간을 사회적 인간으로 남겨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이렇게 라깡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사회-문화적 해석의 틀로 확장시킬수 있었던 원인은 그의 언어관에 있었다.

    1953년 라깡은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외치면서 본인 이론의 토대라 할 수 있는 「상징계, 상상계, 실재계」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라깡은 본인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언어의 개입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특별히 그는 유아가 말을 배우는 시기인 6개월에서 18개월 정도의 기간을 ‘거울단계(mirror stage)’라 불렀다.

    라깡이 ‘거울단계’를 끌고 오는 이유는 분명하다.‘상상계(the imaginary)’를 언급하기 위함이다.‘거울단계’의 아이는 남들이 보기에는 보호와 돌봄의 대상이고, 정신적, 육체적 발달이 안 된 불안한 상태이지만,‘거울단계’아이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무척이나 낙관적이고 낙천적이다. 양육자(예: 엄마)와의 관계에서 100%의 쾌락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시기 아이는 자신과 양육자에 대한 구분이 없다. 이처럼 자기와 타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는, 다른 아이를 때리고도 자기가 맞은 것으로 오인하고, 다른 아이가 울면 따라서 울기까지 한다. 라깡은 이 시기를‘거울단계’라 부를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유아들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거울과 나를 분리하기 시작하고, 스스로를 객관화하면서 세상의 질서로 편입하게 된다.

    ‘거울단계’를 거치면서 유아와 양육자사이 형성되었던 2항 관계는, 아버지의 개입으로 깨지고 만다. 아이는 엄마와 자기 사이에 있었던 은밀하고 내밀한 근친상간적 욕망이 아버지로 상징되는 거대한 타자의 등장으로 폭로되고 위축되는 것을 느끼며 불안해한다. 이때 아이는 자기의 성기가 색정의 원인이므로 아버지가 자신의 성기를 제거할 것이라는‘거세위협’을 느끼게 된다. 그 결과 아이는 체념 속에서 근친 상간적 욕구를 억누르고, 자신을 현실원리에 적용시키고, 아버지로 상징되는 사회의 질서에 복종하면서 어머니로부터 떨어져나가게 되는데, 이를 가리켜 상상계에서 상징계로의 진입이라 칭한다.

   그런데 이 시기가 인간이 언어를 배우는 시기와 겹친다. 아이가 언어를 배우면서 타자를 만나고, 내안으로 침입하는 타자의 개입을 참아내면서 아이는 자라난다. 인간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자음과 모음을 배우고, 단어를 익히고,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를 구성하는 시스템속으로, 즉 기호의 세계, 상징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언어의 습득은 아이로 하여금 상상계에서 상징계로의 진입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쾌락원리에서 현실원리로, 본능에서 초자아로, 자연에서 문화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사회라는 제도로의 이행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이전단계(상상계)에서 가졌던 양육자와의 100% 쾌락이 붕괴되는 경험을 겪게 된다. 이때‘아버지의 이름으로’가 상징하는 것이 바로 상징계를 지배하는 대타자이다. 이것은 사회를 작동케 하는 원칙들, 예를 들어, 도덕, 관습, 법, 관례, 예전, 이념 같은 것들이다.


욕망의 심층


    이제 본격적으로 욕망의 심층으로 내려가보자. 라깡은 상상계와 상징계를 설명하기 위해 ‘the ideal ego(이상적 자아)’와 ‘the ego-ideal(자아이상)’라는 개념을 끌어온다. 각각은 상상적 동일시, 그리고 상징적 동일시와 쌍을 이루는 말이다. 지젝은 상상적 동일시를 “우리가 되고 싶어하는 그 무엇을 표상하는 이미지와 동일시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상징적 동일시는 “우리가 관찰 당하는 장소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장소를 동일시 함으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사랑할 가치가 있고 좋아할 만하게 보이는 것”이라 정의한다.

    예를 들어, 엄마의 젖가슴 만으로도 충분히 엄마와 합일이 가능했던 아이에게, 어느 날 엄마가 “너는 의사가 되어야 해! 그래야만 나와 합일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라고 말했다고 치자. 엄마는 더 이상 나를 더 이상 당신의 젖가슴을 만지는 나로 만족하지 않는다. 뭔가 다른 것을 보여달라고 성화다. ‘너는 교수다!’ ‘너는 의사다!’ ‘너는 박사다!’ 이렇듯 엄마는 자신의 젖가슴만을 탐닉하면서 상상계속에만 머물러 있는 내가 아닌, 교수, 의사, 박사, 판검사 등등의 이름으로 기표화 된 나를 요구한다. 그 결과 아이는 더 이상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엄마가 제시하는 이름표(기표)를 따는, 즉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라깡은 desire와 jouissance를 구분한다. Desire은 상징계속 주체가 갖는 욕망이다. 이것은 타인의 시선을 따라가는 욕망이다.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의사가 되고 CEO되는 것과 같이 어떤 기표를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이다. 남이 좋아라 하는 시선을 내가 따라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한국의 결혼풍속도를 보면 상징계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간의 사랑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남들이 이 결혼을 어떻게 볼까?’ 가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신랑은 뭐하는 사람이고, 신부의 집안 배경은? 혼수도 얼마나 했는지? 예식장은 어디? 신혼여행은? 이 모든 사항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조정되고 꾸며진다.

   반면, jouissance는 상상계에 남겨진, 혹은 상징계로 진입할 때 제거당한 내 마음 속 잔여를 향한 욕망이다. 어쩌면 상상계에서 상징계로의 통과의례를 경험한 주체는 슬픔과 외로움과 안타까움을 마음속 깊숙히 간직한 주체다. 왜냐하면, 상징계속 주체(사회적 주체)가 되는 과정에서 원래 아기(상상계속 주체)가 지녔던 것 중 일부가 상징계속 주체안으로 편입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 한국에 살고, 시카고에서 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땄고, 한백교회 담임목사이고, 한신대에서 가르치고 있는 이상철이다. 하지만, 지금 언급한 말로 나를 다 표현할 수 있나? 뭔가 헛헛하고 아쉽고 섭섭하고 안타까운 무엇이 있다. 상징계속 이상철, 현실 속 이상철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은 또 다른 이상철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남겨진 부분, 즉 잔여다.

    이런 이유로 주체가 상징계로 진입하는 과정은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상상계속 자아의 일부를 상징계로 진입하는 도중에 거세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를 spaltung(파열)이라 말한다. 마치 아기가 엄마의 자궁을 뚫고 나올 때, 엄마의 배가 찢어지는 것에 비유할 만하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낯선 타자와 직면하는 고통을 견뎌야 아기가 살 듯, 상징계의 주체 역시 마찬가지다. 상상계라는 제2의 자궁을 뚫고 나와 사회로 진입하면서, 사람은 드디어 인간(人間)이 된다.


슬라모예 지젝 曰 : "하지만, 이건 아니올시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통과한 인간의 욕망은, 상상계속 나의 욕망이 아니라, 상징계속 타자들의 욕망이다. 이를 좀 더 우리의 일상과 결부시키면 이렇다. 1970-80년대 대한민국의 역사를 회고해보라. 얼마나 많은 민주투사와 열사가 등장하여 조국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가. 조국의 근대화와 자주국방을 위해, 수출강국을 위해, 경제발전을 위해, 선진국 진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계처럼 일하면서 자신의 젊음을 바쳤던가. 진보진영에도 강력한 대타자의 목소리가 있었고, 보수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 기표를 흠모하면서 행위했다. 대타자의 음성은, 그것이 보수의 목소리든 진보의 목소리든 간에, 현실의 우리를 지배하면서, 우리를 뒤에서 조정하던 실세였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를 현재화할 때 사용되는 해석의 준거였고, 우리의 미래까지를 담보한다고 여겨지는 묵시였다. 욕망이란 대타자의 목소리를 믿고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동되는 주술이라 보면 맞다.

   그러나 슬라보예 지젝은 대타자가 지니고 있다는 권위와 숭고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롱한다:


대타자는 주체가 마치 그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행위하는 한에서만 존재한다. 대타자의 위상은 공산주의나 민족 같은 이데올로기적 대의의 위상과 같다. 그것은 자신이 대타자 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개인들의 실체적 토대이며, 개인들의 존재적 기반이며, 삶의 의미 전체를 제공 하는 참조점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지만, 존재하는 것은 개 인들과 그들의 행위뿐이다. 그래서 이 실체는 개인들이 그것을 믿고 따르는 한에서만 현실적으로 작동한다.


    지젝에게 있어 대타자는 실재가 아니라 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타자가 실재인 것처럼 행동한다. 이에 대한 적절한 예를 몇 해 전 개봉했던 영화‘국제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오후 늦은 시간에 국기 하강식을 하던 시절, 전 국민이 모든 하던 일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가 끝날 때 까지 부동자세로 태극기를 바라보던 장면이 영화에서 연출되었다. 그 영화 개봉 이후 누군가에 의해 국기하강식 전통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이후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다소 소란스러웠다.

    웬 국기하강식? 그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종북 좌파 빨갱이로 몰린다. 그런 낙인이 찍히면 살기 피곤해 진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비록‘반공이데올로기’가 중심이 비어있는 텅 빈 기표임에도 불구하고, 상징적 세계인 대한민국에서 실질적 힘으로 작동하는 대타자의 명령이기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형태의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근본주의는, 대타자를 향한 확고한 집단적 도착적 믿음위에서 탄생하였고, 그 믿음을 먹으면서 성장하고 나서는, 자기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대상을 향해서는 광기를 표출하는 삶의 자세라 할 수 있다.


(중간정리) 쉽게 이해하는 욕망論: “라면 먹고 갈래요?” 


    앞서 우리는 상상계에서 상징계로의 진입이 쾌락원리에서 현실원리로, 본능에서 초자아로, 자연에서 문화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사회라는 제도로의 이행을 뜻한다고 배웠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상상계에서 가졌던 양육자와의 완벽했던 양자합의 관계가 깨어지는 상실과 아픔을 경험한다. 누가 그랬던가 아픔만큼 성숙해진다고. 라깡식으로 말하자면 성숙이란 요구와 욕구사이의 괴리로부터 발생하는 슬픔과 상실을 견디는 법이겠지만, 그 작업은 언제나 실패하여 욕망이라는 찌꺼기를 남긴다.

    욕망은 요구와 욕구사이의 함수관계에서 결정된다. 욕구는 보통 생리적 욕구다. 배고프면 먹고, 배설하고 싶으면 싸는 그런 욕구 말이다. 요구는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잔여물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여기 고시원에 혼자 사는 비정규직 열정 페이 청년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녀)는 배가 고파서 (텅 빈)집으로 돌아와 라면을 두 개 끓여 먹었다. 그런데 라면을 먹는데 갑자기 마음이 안 좋아진다. 엄마가 차려준 집 밥도 생각나고, 하루 종일 일하다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오는 자신의 처지도 처량하다. 라면을 두 개나 먹어 배가 불러 욕구가 해결되었는데 뭐가 문제지? 아마도 그(녀)가 원했던 것은 라면이나 밥이 아닐런지 모른다. 그 너머에 있는 그 무엇 아닐까.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 안에 담긴 사랑 이라든지, 가족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먹던 저녁상가에서 벌어졌던 수다와 웃음이라든지...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것이 바로 요구의 영역이다.

    라면을 이용한 욕망계산법의 유명한 예화가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 등장한다. 연상녀 이영애는 늦은 밤 문밖에 서있는 연하남 유지태에서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제안을 한다. 연하남 유지태는 정말 라면만 먹고 그 집에서 가만히 무사히(?) 있다 나온다. 정말 착한 교회오빠 스타일이다. 두 남녀가 이해한 "라면"은 서로 다른 의미였다. 연하남 유지태는 라면을 배가 고플 때 먹는 육체적 욕구의 대상으로 해석을 한 것이고, 연상녀 이영애에게 있어 라면은 생리적 욕구가 아니라 심리적 요구였다. 나의 허기진 마음을, 나의 외로움과 고독을, 나의 이 쓸쓸함을 알아주고 만져주라는 싸인이 라면인데, 아직 세상을 몰랐던 유지태는 이영애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결국, 나중에 둘은 헤어지고 마는데... 잘 헤어졌다! 유지태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느냐?"며 따져 묻지만, 순수가 얼마나 문제의 본질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지, 사랑이 때로는 얼마나 저열하고 구질구질하고 남루한 현상인지를 어린 유지태는 몰랐다. 그런 유지태가 여인 이영애에게는 버거웠던 것이고. 그 영화를 보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이영애의 선택이 현명했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나도 속물이, 아니 성인(成人) 되어가나 보다.


영화 <봄날은 간다> 중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생리적으로는 배가 부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는 헛헛한 무엇이 항상 나의 무의식을 맴돈다. 그것은 욕구와 요구사이의 차이 혹은 결핍으로 설명할 수 있고,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입할 때 상상계에서 누렸던 요구의 100% 충족이 상징계속 대타자의 개입으로 깨어짐을 전제한다. 바로 그 지점이 욕망이 출현하는 진앙이다. 이러한 욕망에 대한 이해를 갖고 빨강구두를 둘러싼 욕망의 변증법으로 넘어가보자. 거기에는 또 다른 욕망의 세계가 펼쳐진다.


빨강구두와 죽음충동


   Google에서 ‘Red Shoe’를 쳤더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고급에로영화의 대명사인격인 잘만 킹 감독의 시리즈 포스터들이다. 한국에서 방송되는 <사랑과 전쟁>의 미국판 19금 버전이랄까. <사랑과 전쟁>은 이혼직전 남녀가 변호사에게 찾아와 당신들의 입장을 하소연 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는 한 남자의 우편함으로 배달된 여성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그녀들이 겪었던‘사랑과 전쟁’을 거슬러 올라간다. 사랑과 배신, 잘못된 만남, 어긋난 사랑, 뒤늦은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등등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성적 환타지를 아주 농익은 영상으로 수놓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상징하는‘빨간 구두’란 그야말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그것이 잘못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거되지 않고 조절되지도 않으면서 자꾸만 미끄러져 가는 욕망의 기표다.

잘만 킹 감독의 <Red Shoe Diaries> 포스터


    안데르센 동화 <빨강구두>에 등장하는 소녀가 신은 구두가 그렇다. 마치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운동하는 근육인 불수의근(involuntary muscle)과 같다. 심장에 있는 근육, 소화기관이나 생식기관에 있는 근육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심장을 뛰게 하고 소화의 촉진을 도우며, 성기를 빳빳하게하는 자동인형 같은 근육이다. 동화에서 소녀는 춤을 추지만 사실은 그것은 그녀가 추는 춤이 아니다. 빨강구두가 추는 춤이다. 그녀의 춤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구두가 끼워져 있는 발을 잘라내는 것이다. 결국, 빨강구두는 나와는 상관없이 보이나 강력하게 나를 지배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이고, 소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녀로 하여금 끝없이 춤을 추게 하여 발을 잘라내야 한다는 결정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죽음 충동’과 상관한다.

    ‘죽음 충동’이라는 말이 낯설게 다가오는 독자들이 있을 수 있겠다. 삶에 대한 충동인‘에로스’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생명을 끊으려고 삶의 에네르기와 단절하려는‘죽음 충동’은 그 제목부터가 무척이나 어색하고 심지어는 엽기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죽음충동에 대한 논의는 프로이트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로이트의 전기사상이「꿈의 해석」(1889)으로 대변되는 무의식의 존재와 그것의 의미에 대한 탐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그의 후기 사상은「쾌락의 원칙을 넘어서」(1920)와「자아와 이드」(1923)에서 언급하는 이드(Id)-에고(ego)-초자아(Superego) 사이의 역학관계에 관심한다. 특별히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에서 프로이트는 욕망을 두 차원으로 분류한다. 하나는 에로스이고 다른 하나는 에로스와 반대적인 에네르기라 할 수 있는 죽음충동(타나토스)이다. 에로스가 삶에 대한 충동이라면, 죽음충동은 삶에 대한 애착과 미련에 반하는 에네르기인 셈이다.

   ‘죽음 충동’이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주체와 실재(the Real)에 대한 새로운 상상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전통철학에서 말하는 실재란 상징적인 세상 밖에 있는 초월적 실재(absolute being)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실재는 다르다. 내안에 있지만 나도 모르는 그 무엇, 상징시스템 밖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실재가 아니라, 상징적인 것을 전제하고 이미 상징계 속에 들어와 있지만, 상징시스템에서 드러나지 않는 그 무엇이 바로 실재(the Real)이다. 빨강구두가 그런 것 아닌가. 내안에 있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그 무엇, 나와 붙어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그 무엇이 바로 실재이고 그것이 빨강구두인 셈이다.

    주체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근대적 이성을 바탕으로 불굴의 의지를 갖고 역사의 진보를 향해 달려가는 주체는 어쩌면 근대성이 부여한 환상일런지 모른다. 우리를 완성된 주체로 만드는 요인은 빨강구두처럼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우리조차 알 수 없는 이질적인 영역 때문 아닐까. 그 이질적인 것들이 출몰할 때 주체는 비로소 온전한 주체의 모습을 바닥까지 다 드러내는 것 아닐는지.


파국의 욕망, 혹은 욕망의 파국


    앞서도 언급했듯이 상징계 속 주체는 결핍과 결여의 존재다. 상상계에서 누렸던 100% 쾌락을 거세당한 채 사회화과정을 밟으며 성장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 결핍은 드러나지 않지만, 인생의 고비고비 삶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스멀스멀 올라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욕망은 어쩌면 그 결여와 구멍을 메우기 위한 인간의 방어기재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는 그 욕망이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대타자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욕망은 모른다. 돈을 많이 벌어도, 박사학위를 받아도 멋진 신랑 신부와 결혼을 해도, 성형수술을 해도 그 결핍은 채워지지 않는다. 주체는 타자의 욕망을 알고 싶어서‘케 보이(Che Vuoi)?’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고 질문한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답변은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죽음충동은 이 순간에 발동한다. 온갖 내공을 다 부려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삶의 에네르기는 방향을 틀어 묻는다.‘죽어버릴까. 내가 죽어버리면 대타자는 만족하지 않을까. 죽으면 이 쓸쓸함과 공허와 이별하는 것 아닌가. 이제는 지친다. 죽자, 죽어버리자’어쩌면 우리의 근원적 결핍을 메우려는 욕망의 진정한 의도는, 마치 수학(數學) 극한(Limit)에서 0을 향해 무한히 수렴(收斂)해 가는 것처럼, 죽음을 향해 수렴하는 무한질주 아닐까. 그렇다면 욕망과 존재의 근원인 제로(Zero), 무(無)로 들어가는 것이야 말로 세상으로부터 탈출하여 구원으로 이르는 계단 아닐까. 그 비상구는 에로스로 차고 넘치는 욕망의 거리에 있지 않고, 타나토스가 똬리를 틀고 앉은 욕망의 이면 어느 텅 빈 구멍 속 아닐까.

   정신분석학에서는 죽음충동을 성령으로 이해한다. 지젝은 라깡이 죽음충동을 성령으로 이해한 프로이트의 해석을 근거로 성령을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우리가 성령 안에 우리의 위치를 정하면 우리의 존재는 성스럽게 변하고 생물학적 삶 너머에 이는 또 다른 삶으로 진입한다.” 성령을 죽음충동과 연관시킨 대목은 신학적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성령임재 사건들이 갖는 특징을 언급하라면, 한마디로 자아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상징계 속 기표와 욕망과 기억과 경력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내가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기득권을 어찌 다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성령은 죽음충동이다.

   하지만, 성경에 의하면 성령체험을 한 사람들로 인해 역사의 물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고, 무너질 것 같이 않았던 전체성은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완고했던 시스템에는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성령을 체험했던 모세에 의해 파라오는 무너졌고, 성령을 체험한 바울이 로마로 들어가면서 제국의 기독교화는 시작되었다. 성령을 체험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백인과 흑인간의 불평등과 차별의 벽을 넘었고, 성령을 체험한 문익환 목사는 냉전과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들 모두에게 성령, 즉 죽음충동이 임하자 자아는 사라지고 텅 빈 충만이 자리했고, 그 힘으로 그들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다.


욕망의 전복성


   요약하면, 욕망은 삶에 대한 욕동인 ‘에로스’와 죽음을 향한 욕동인‘타나토스’로 구분될 수 있겠다.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빨강구두’는 삶에 대한 애착과 환희를 향한 욕망인‘에로스’를 상징하는 것 같지만, 자신의 발을 잘라내어야만‘빨강구두’가 추는 춤이 중단되어 원래 삶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죽음 충동’을 닮았다.‘빨강 구두’로부터 시작된‘죽음 충동’은 현실 속 그 무엇도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없음을 깨닫게 해준다. 어쩌면 우리의 욕망은 현실 저편의(혹은 아래의) 무엇을 지향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상상은 근대적 주체에 대한 불신과 전통 형이상학에서 말해왔던 완벽한 대타자와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하지만,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보편성의 중핵이 텅 비어있다는 욕망이론의 발언은 통쾌하다. 현재 전 지구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완고한 신자유주의의 보편성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을 놓고 골몰하던 이들에게, 정신분석학의 제안은 현실의 원칙에 집착하는 욕망이 아닌, 상징계 너머에 존재하는, 아니 상징계의 텅 빈 중핵을 겨냥하는 욕망을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상상이 21세기 제국이라 할 수 있는 자본에 균열을 가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틈을 통해 진입하는 혁명의 가능성을 노래하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분석학이 제안하는 욕망은 전복적이고 급진적이다.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포스트모더니즘과 주체 6]


알튀세르와 이데올로기적 주체



 

허석헌

(미국 샌프란시스코 GTU 박사과정, 조직신학)



왜 알튀세르인가


      루이 알튀세르(1918-90)라는 이름이 맑스주의 논쟁의 한복판에서 한 때 큰 영향력을 끼쳤던 적이 있었다. 발리바르가 ‘알튀세르를 위한 조사’[각주:1]에서 말한 것 처럼, 그는 맑스주의와 공산주의라는 테제를 프랑스철학사에 남긴 철학자이며, 맑스주의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에서 프랑스철학이 중심적인 위치를 점유하게 만든 공로자이다.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에 그의 이름은 거의 잊혀진 듯 보이지만, 오늘에도 그의 철학적 유산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맑스주의가 스탈린식 사회주의 실패 이후 포스트구조주의의 변화 안에서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방황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 맑스주의를 관념론적으로 수용하려는 유혹으로부터 과감히 분리시키고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해내었다는 점에서, 그의 노력은 학문적 완결성을 떠나 오늘날 맑스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모든 시도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굳이 열렬한 알튀세리앵이 아니더라도 우리 시대에 맑스를 말하려면 알튀세르는 한번 쯤은 넘어야할 할 관문같은 것이면서 동시에 관문을 통과시켜주는 열쇠와 같은 존재이다.

    이 글은 알튀세르가 이해하는 맑스주의적 입장에서 ‘주체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 글에서 그의 전체 철학의 내용을 조망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알튀세르가 맑스주의의 휴머니즘적인 요소를 구별시켜내기 위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발전시켰으며, 이를 위해 정신분석학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어떻게 파악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알튀세르는 주체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는지, ‘다양한 해석이 아니라 변혁을 위한 철학’이라는 맑스주의의 궁극적인 목표에 얼마만큼 충실하였는지를 평가해 보려고 한다.


맑스를 위한 자본론 읽기


    알튀세르의 철학적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의 논의는 그의 두 권의 논문집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첫번째는 ‘맑스를 위하여Pour Marx (1965)’이고 두번째는 ‘자본론을 읽는다 Lire le Capital(1965)’이다. 이 두권의 논문집을 통해서 알튀세르라는 이름은 맑스주의 철학자로서 주목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저술들은 무엇보다 책의 제목 자체가 그의 전 생애에 걸친 맑스철학자로서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이유가있다. 제목 그대로, 그의 철학은 ‘맑스를 위한’ 동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맑스를 위한’ 그의 실천전략은 다시 ‘자본론을 읽자’는 제안으로 전개된다. ‘맑스를 위한, 자본론 읽기’가 겨냥하는 일차적인 목표는 제일 먼저 맑스주의를 이데올로기화시키려는 모든 시도들로부터 경계짓는 것이다. 스탈린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맑스주의에 대한 스탈린식의 교조적 적용에 대해 돌파구를 찾고 있던 때에, 맑스주의를 옹호하려는 운동의 일환으로 나타난 손쉬운 반응은 맑스주의의 휴머니즘적 해석이었다.[각주:2] 이 휴머니즘적 해석은 맑스의 청년기 저작에 근거하는데, 특히 ‘경제철학수고(1844)’에서 재발견된 ‘소외’의 개념은 그간 무시되었거나 간과되었던 인간의 윤리적 심리적 차원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러한 청년 맑스의 재발견은 그동안 스탈린의 교조주의를 통해서만 맑스주의의 저작을 해석해야 했던 이들에게는 일종의 해방으로 경험되었다. 이 해방감은 다시 ‘자유주의’적이고 윤리적이며 휴머니즘적인 맑스주의를 진보처럼 받아들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 자유, 소외와 같은 휴머니즘적인 개념들로 맑스주의를 재해석하려는 흐름에 대해 알튀세르는 맑스주의를 이데올로기로 오염시키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대신에, 알튀세르는 맑스주의에 대한 ‘과학적 독해’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가 말하는 과학적 독해라는 것은, 맑스주의를 비판하거나 혹은 옹호하기 위해 맑스의 저작들을 이데올로기적 읽기방법으로 체계화시키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그의 해석방식을 말한다. 말하자면, 맑스를 순수하게 읽어야 하지, 다른 의도를 숨겨둔채 읽지 말것을 주문하는 것이다.[각주:3] 알튀세르가 보기에, 맑스주의의 휴머니즘적 해석은 청년 맑스에서 간헐적으로 보이는 이데올로기적인 요소들을 맑스 전체를 해석하는 틀로 오해한 나머지, 맑스 성숙기의 저술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비판한다.[각주:4]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에서, 알튀세르가 내세운 ‘맑스를 위한’ 읽기 방법은 맑스주의 이론을 다른 이데올로기적 해석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맑스를 훗설로, 맑스를 헤겔로, 맑스를 윤리적이거나 휴머니스트적인 청년 맑스로 위장”[각주:5] 시키려는 시도들에 대해 반박하는 것을 과제로 보았다.   

    따라서, 알튀세르에게 일차적으로 맑스 청년기 저술 안에 보여지는 휴머니즘적인 경향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이를 위해서, 알튀세르는 이론적 형성의 특수한 차이를 드러내는 선별 지점을 지시하기위해 자끄 마르땡에게서 ‘문제틀’이라는 개념을, 그리고 과학적 학문의 토대에 대한 이론적 문제들의 변화를 감지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가스통 바슐라르로부터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개념을 차용한다.

    먼저, ‘문제틀’이라는 것은, 개별 저자가 제시하는 “대답들을 주재하는 질문들의 체계”[각주:6]를 말한다. 쉽게 말해서, 질문에 대한 답은 질문과의 연관성/일관성을 벗어나서 답해지지 않고, 반드시 질문의 체계안에서 대답되어진다는 말이다. 모든 이론과 철학은 그 자체가 일관성 있는 연속적 개념들로 구조화되어 있기에 문제와 답은 항상 서로 연관된 틀안에서 상호작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우물가서 숭늉을 찾을 수 없는 것 처럼, 헤겔식의 관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맑스적인 유물론적 대답에서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질문은 이미 대답이 발견될 범위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틀’이라는 개념은 청년 맑스와 성숙한 맑스의 차이를 분별해 줄 수 있는 방법이론으로 차용되었다. 이 개념을 통해 알튀세르는 청년맑스의 ‘경-철수고’는 포이에르바하의 문제틀이지 맑스적 문제틀이 될 수 없다고 분석하며,청년 맑스와 성숙한 맑스를 분시시켜놓는다.

    ‘인식론적 단절’[각주:7]이라는 개념 역시 사적유물론의 주창자로서 성숙한 맑스를 이데올로기적 관념에서 발견되는 맑스를 분리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말은 앞선 ‘문제틀’이라는말과 연관되어 있는데, 과학 이전의 사고양식이라는 문제틀에서 과학적 사고양식이라는 문제틀로의 급격한 인식론적 전환을 의미한다. 이 전환은 서로 유착관계에서 일어나는 순리적인 변화가 아니라, 전환점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가 서로 모순되고 단절되며 불연속적인 대립속에서 벌어지는 적대적인 전환을 말한다. 알튀세르는 청년 맑스와 성숙기의 맑스안에서 인식론적 단절이 일어났다고 보는데, 그 기점은 ‘독일이데올로기’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독일이데올로기’[각주:8]에서 비로소 맑스가 목적론적 사고방식, 실증주의적 역사관, 휴머니즘적인 태도와 같은 이데올로기적인 방식과 완전히 결별하고 그의 독창적인 ‘사적유물론’을 전개하기에 이르렀으며, ‘자본론’의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진보하는 길을 열어놓은 것으로 보았다.

    이제, ‘문제틀’과 ‘인식론적 단절’의 개념들을 통해서 맑스주의를 다른 이데올로기적 체계(틀)과 분리시키고, 서구 부즈조아적인 휴머니즘으로부터 성숙한 맑스를 되돌려 놓기위한 알튀세르의 기획은 보다 구체적인 문제로 진입한다. 알튀세르는 이 목적을 보다 현실적으로 가시화시키기 위해 맑스의 초기 저작들 안에서 나타난 사회변혁의 주체로서의 인간 개념을 뒤집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한 알튀세르의 대답은 이데올로기론에서 다뤄진다.


이데올로기는 물질이다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문제삼는 글은 그의 논문집 ‘레닌과 철학(1969)’에 실린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는 논문에서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해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는 이미 ‘맑스를 위하여’에 수록된 ‘모순과 중층결정’이라는 글에서 먼저 다뤄진바 있다. ‘모순의 중층결정론’이 함의하는 바는, 다양하고 상이한 여러 층위들로 구성되는 사회와 역사는 경제라는 ‘기본모순’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사회는 다양한 사회적 실천들로 구성되는 복합적 총체이고, 각 실천들은 제 각각 특수한 자질들을 갖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실천이 본질적 영역이 될 수 없고, 모순 또한 사회구성체의 다양한 층위와 심급들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회구성체는 서로 보조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를 맺으며 모순은 원리에 있어서 중층적으로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각주:9] 맑스주의에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가 결정한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수용되었다면, 알튀세르에게서, 상부와 하부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서로 자리를 맞바꿈 하는 중층관계라는 변칙적인 관계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하부토대를 이루는 자본과 노동의 경제적 모순이 가지는 상부구조에 대한 일방적인 결정구조를 비판하면서, 하부구조에 의해 파악될 수밖에 없는 상부구조라고 믿어왔던 요소들은 동시에 하부구조 안에서 ‘중층결정’[각주:10]의 관계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으로 보아 왔고 과학적 사고와 대립시켜왔던 기존의 입장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속에서 이데올로기가 차지하는 실제적인 물리적 성질에 주목한다. 알튀세르는, 대체로 오류나 환상, 왜곡된 의식, 관념적인 현상이라는 받아들여졌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데올로기는 사실 개인들의 실제적 존재 조건들에 대한 그들의 ‘상상적인 관계’를 나타내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실제적 관계의 표현은 아니지만, 실제적 관계처럼 보여지는 개인들의 ‘상상적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이론, 이론적 실천 그리고 이론적 형성(1966)’에서 이데올로기는 역사적인 실제에 관해서 ‘환영illusion’’을 구성함과 동시에, 역사적 실제를 ‘암시’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예는 기독교에서 발견된다. 크리스챤은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라는 상상적인 관계를 표상한다. 오늘 한국의 현실을 빗대자면, 열혈 친박-수구세력은 자신들을 국가와의 관계에서, 좌파를 청산하는 국가의 수호자라는 ‘상상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 관계는 상상으로만 머물지 않고 실제안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려는 속성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상상적인 관계로서 이데올로기는 단지 허위나 왜곡이 아닌 실제로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는 ‘물적존재’가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데올로기는 상부구조에서 맴도는 허구가 아니라 현실과 관계맺는 물리적 성격을 가진다는 말이다. 따라서, 포이에르바하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종교는 인간 욕망의 투영일 뿐이라면서 종교를 실체없는 허상으로 간주하였지만, 알튀세르식으로 보면 종교라는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토대에 구체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물적 형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상적인 관계에서 개인이 부여받은 의식은 단순히 관계를 인지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이 관계에 부합하는 실질적인 실천을 수반한다. 마치, 신의 자녀로 상상적인 관계를 맺는 자는 그에 걸맞는 종교의식, 종교적 규율과 의무를 하게 되는 것 처럼, 또는 친박-수구 단체 회원이 좌파로부터 조국을 수호하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상상적인 관계속에 지나치게 몰입하였을 때에, 폭력적이고 비정상적인 집단행동을 보이는 것과 같다. 인간 개인들은 상상적인 관계와 실천의 상호작용 안에서 점차 이데올로기에 예속된 주체로 나타난다.


이데올로기의 호명


    이데올로기에 예속된 주체는 부르조아 국가에서 사회를 작동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 생산관계의 재생산이라는 매우 중요한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국가가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산관계가 유지 재생산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두가지 수단이 동원된다고 본다. 하나는 정부, 행정, 군대, 경찰, 감옥과 같은 ‘억압적 국가장치’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 교육, 가족, 언론, 문화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다. 전자가 폭력을 통해 작동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작동하는 차이점을 갖는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확산하고 강화하는 근본적 수단이며, 이데올로기 장치안에서 개인은 이데올로기에 지배력을 장악당하는 주체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데올로기가 주체를 구성하는 관련성을 정리하자면, 개별자가 가지는 믿음, 신념의 존재는 관념에 머물지 않고 물화된 형태로 주어지는데, 왜냐면 개인의 주어진 관념은 물질적 실천들 속에 삽입되어 있는 물질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 물질적 실천은 물질적 의식에 지배되며, 그 물질적 의식은 물질적 이데올로기 장치에 의해 정의되고, 그 물질적 이데올로기 장치로부터 주체 관념은 파생된다. 여기서, 우리는 주체와 이데올로기의 역전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있다. 이데올로기는 주체의 산물이 아니다. 반대로 주체는 이데올로기의 산물이 되는 것이다. 유사하게,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개별자들에 선행한다. 신념이 있기에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주체적으로 구축하는 것이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장치가 있음으로 해서 개별자들은 신념을 가지게 된다. 말하자면, 알튀세르에게 주체는 이데올로기의 결과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한 개념이 ‘호명interpellate’이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마지막에서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주체로 호출/호명 한다’고 규정하는데, 이 말로서 알튀세르는 인간의 주체성의 본질을 가장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이데올로기의 기본 기능은 개인들을 생산관계에 적합한 주체를 생산해 내는 것인데, 이는 호명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즉, ‘이봐 거기 당신’이라는 작은 말 하나만으로도 상상될 수 있는 매우 세밀한 상상적 관계의 조작을 통해 모든 개인들을 주체로 구성하거나 변형시키는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젝은 ‘까다로운 주체’에서 호명과 관련된 슬로보니아의 농담을 적절한 예로 든다. 극장에 늦게 들어온 한 부자가 있었는데, 그가 연극을 방해한 죄책감에 싸여 있을 때에, 때 마침 배우가 내 뱉은 ‘누가 내 침묵을 방해하는가?’라는 대사를 부자 자신을 향한 말로 오인하였고, 결국 그는 극장 안에서 큰 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대답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말해주는 것은, 배우의 호명이 부자관객으로 하여금 큰 소리로 대답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배우에 의해 주체로 호명되는 사건은 이처럼 뚜렷한 인과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호명은 상상적 관계를 불러일으키고 행동을 유발하는 데 이 모든 과정은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오인’된 호출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시사한다.

    알튀세르에게서 ‘호명’이 이데올로기와 주체간의 관계에 대한 열쇠로 되는 이유는 개인을 주체로 되게하는 과정이 사실은 이데올로기의 환영/오인과 자기 암시에 의한 것임을 말해주기 위함일 것이다. 또한 환영으로 존재하는 상상적 관계일지라도 그것이 자신을 호명한 것으로 오인했다면, 그것은 개별자를 주체로 불러내는 것이며, 복종의 강요와 억압이 아닌 순주히 자신의 자발적인 선택과 행동에 의한 것으로 착각하도록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이 스스로 주체가 되었다는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국가장치에 의해 호출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자발적으로 존재한다는 환상에 도취되어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간을 파악하는 알튀세르의 입장이 드러난다. ‘인간’은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의 구성물이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사회가 요구하는 주체로 구성하기 때문에 주체는 이데올로기 없이 불가능하며, 이데올로기 없이 사회는 존재할 수없다고 본다. 사회적 재생산은 자신을 인식하는 자발적인 주체에 의해 수행되기보다 인간의 배후에 있는 장치구조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인간 자신이 선택한 목적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행위는 없으며, 모순의 중증결정 구조에서 경제적인 최종심급으로 규정되는 행위들과 효과만이 나타날 뿐이다.

    이렇게 인간에게서 어떤 본질적인 행위의 근거를 제거하는 것이 알튀세르가 맑스를 위해 자본론을 다시 읽기를 제안했던 의도이다. 알튀세르는, 자본론을 소외된 주체의 복권과정으로 읽어내는 주체 중심적인 독법을 신화적인 것으로 비판하고, 대신 ‘주체없는 과정’이라는 역사 개념을 등장시킨다. 역사는 주체가 없는 과정이다. “역사속에서 작동하는 변증법은 그것이 절대자이든 인간이든 그 어떤 주체의 활동도 아니며, 역사의 기원은 언제나 이미 역사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따라서 역사에는 철학적 기원도 철학적 주체도 없다”[각주:11]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간을 보는 알튀세르의 입장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간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신화일 뿐이다. 때문에 맑스주의는 인간의 주체로부터 출발할 수없다. 때문에, 계급투쟁도 역시 자유로운 인간주체들의 인식과 실천행위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사회의 생산관계를 구성하는 관계들 차이들, 대립들로 이루어진 체계와 구조의 반영물일 뿐이다. 이렇게 알튀세르는 맑스에게서 인간의 제거하고 과학만을 남겨놓았다.  


알튀세르가 남긴 것들


    맑스의 관점에서 모든 계급적 모순과 대립, 그리고 계급투쟁은 경제적인 동기에서 발생하여 경제적인 목적으로 회귀한다. 이러한 맑스주의 경제적 환원주의는 정치적 변혁과 계급투쟁의 개념들을 지극히 좁은 영역으로 제한하며 정치적 주체성이 발현되는 공간의 가능성을 애초부터 차단하고 만다. 이러한 맑스주의의 당면한 한계에 스탈린적인 교조주의로 응답해온 맑스주의 진영에 대해 알튀세르는 새로운 맑스주의 독법을 제시한다. 알튀세르가 주목하는 것은, 모순은 경제적 토대에서 결정되기보다 상부구조의 존재와 본질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계급적 모순은 경제라는 단선적인 층위로만 제기되지 않고,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의 국가장치들이라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계기를 통해 발생하게 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맑스적인 계급투쟁의 협소한 개념은 알튀세르에 의해 넓은 외연으로 확장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계급적 모순의 문제는 정치 이데올로기적인 구조의 문제들에 대한 정치적 실천의 차원에서 변화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와 같이 알튀세르는, 맑스주의에 대한 교조주의를 반대하면서도 이데올로기적인 해석 또한 분리시켜내어, 맑스주의를 오늘의 자리에서 진지하게 사고하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알튀세르의 반휴머니즘으로 드러난 이데올로기의 실체와 그로 인해 구성되는 인간은 역사에 대한 인간의 무능함을 넘어 회의감마저 들게 만든다. 인간은 역사를 구성하는 주체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구성되는 주체라는 점은 인간의 주체에 덧붙여진 환상과 오인을 제거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한편으로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한계 같은 것이 이미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의 반휴머니즘은 모순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전망해 주기보다 인간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구조의 승리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만든다. 마치 푸코가 지식과 담론이 구성하는 권력구조에 대한 탁월한 분석을 내놓았으나, ‘그러면 인간의 해방의 길이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 앞에서는 정작 궁색해지는 것처럼, 알튀세르 역시 이 점으로부터 인간주체에 대한 회의주의적 물음을 어떻게 처리할 지가 또다시 문제로 제기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제기 조차도 인간주체에 대한 불확실성을 견딜 수 없어하는 조급함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진정한 변혁은 현상을 현상대로 직시하는 자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이러한 물음은 계속될지도 모른다. 알튀세르 자신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알튀세르는 말년에 정신병을 앓던 중 아내를 살해한 비극적인 인생의 결말을 맞이한다. 이보다 더 큰 비극은 그가 평생을 붙들고 온 철학자로서의 걸어온 길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는 철학자로서의 삶을 정리하며 자신은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친 맑스와 프로이트를 결코 완독하지 못했고 따라서 둘을 결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기꾼이라고 털어놓는다. 그가 맑스와 프로이트를 완독하지 못했다는 말이 그들의 책을 섭렵하지 못했다는 뜻은 물론 아닐 것이다. ‘맑스를 위하여, 맑스를 다시 읽기’를 ‘해석이 아닌 변혁을 위한’ 철학자로서의 절대 사명으로 여겼던 그에게도 ‘맑스적인 주체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겨진 풀지 못한 숙제였다는 자기 고백이 아니었을까.



ⓒ 웹진 <제3시대>

  1. 에티엔 발리바르, 루이알튀세르 1918~1990 (민맥신서, 1991), 33. [본문으로]
  2. 가장 잘 알려진 휴머니즘적 맑스 해석으로서, 가톨릭 철학자 Jean Yves Calves와 Pierre Bigo, 알튀세르의 옛스승인 Jean lacroix, 실존주의자 Jean Paul Sartre, 현상학자 maurice Merleau-Ponty와 같은 철학자들은 맑스의 철학이 본질상 인간 삶의 질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철학으로 포함시켰다. 이들은 맑스주의를 자본주의의 비인간적인 상태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사유체계로 규정한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이런 종류의 휴머니즘은 도리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간교한 계략이며, 이는 맑스주의와 관련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루크 페레터,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앨피, 2006), 55. 참조. [본문으로]
  3. 알튀세르는 ‘맑스를 위하여’ 다시 ‘자본론을 읽자’고 제안한다. 맑스를 그 어떤 이데올로기와 연관지어 해석하려는 모든 시도들을 접어두고 순수의 자리에서 다시 맑스를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알튀세르는 ‘맑스를 위하여’ 불어판 서문에서 그의 학문적 지향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는 뒤로 물러서서 반쯤은 방향 감각을 잃은 상태로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어야 했다. 나는 나 자신으로서 그리고 우리의 과거로부터 오직 우리의 현재를 밝혀주고 우리의 미래를 비추어줄 그 무엇인가를 찾는 공산주의자로서 이 글을 쓰고있다.” [본문으로]
  4. 알튀세르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우리는 맑스의 청년기 저작들에 나타나는 이데올로기적 불꽃 속에서 우리들 자신의 불타는 정열을 찾기에 급급한 나머지 흥에 겨워 맑스의 성숙기 저술들의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맑스를 위하여, 24) 여기서 맑스의 청년기 저작은 ‘유대인의 문제’, ‘경제 철학 수고’, ‘신성가족’ 등을 말하며, 정확히는 ‘독일이데올로기(1845-46)’ 이전의 맑스철학과 저술들을 의미한다. 알튀세르는 맑스의 청년기와 성숙기의 분기점을 ‘독일이데올로기’로 구분한다. [본문으로]
  5. 맑스를 위하여, 서문 [본문으로]
  6. 맑스를 위하여, 67. [본문으로]
  7. 이 개념은 가스통 바슐라르(1884-1962)에 의해 사용되었는데 그에 따르면, 과학의 역사는 일련의 지속적 단절을 통해서 진보하는데, 이 단절을 통해 기존 과학은 폐기되고 새로운 이론 체계가 그것을 대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콩트의 실증주의 역사관과 유사한듯 보이지만, 전혀 반대되는 개념이다. 콩트에게 역사는 진보의 과정으로서 연속성을 가지지만, 바슐라르에게는 역사는 불연속성이라는 단절에 의한 것으로 파악된다.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의 전환 Paradigm shift’과 같은 의미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본문으로]
  8. ‘독일이데올로기(1845-46)’가 ‘인식론적 단절’의 전환점이 되었던 배경은 다음과 같다. 맑스와 엥겔스가 ‘독일이데올로기’를 집필하는 당시까지만 해도 맑스주의는 사회주의의 많은 집단과 경향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이는 맑스주의의 당면 과제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맑스주의를 자유주의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와 쁘디 부르주아 사회주의와 대비시키는 것임을 함축한다. 한편으로, 과학적 공산주의만이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해방을 위한 현실적인 길이고, 자본주의의 모순에 의해 노동계급이 자발적으로 선택되어지는 영도이념으로 확신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본문으로]
  9. 맑스를 위하여, 116. [본문으로]
  10. 알튀세르는 ‘중층결정 Surdetermination’이라는 용어를 다른 영역에서 빌어온 것이라고만 말하지만, 사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적 용어에서 유래되었다고 본다. 알튀세르가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헤겔적 모순에 대한 비판적 의도를 담고있는데,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의식의 경험들과 절대지의 도래에서 경험되는 모순들은 단순하지 않고 오히려 복잡성을 보여준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본문으로]
  11. 알튀세르, 레닌과 철학, 130.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피자 토핑에서 민중신학까지–신은 명사일까 동사일까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박사과정,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세탁소 일을 두어 달 정도 했던 적이 있다. 세탁소에 처음 일하러 갔던 날 이것저것 일을 배우다가 어색한 단어 하나를 들었다. ‘배깅’이란다. 대충 bagging쯤 되겠거니 하고 이해했고 세탁물 포장하란 이야기인 줄이야 알아듣긴 했는데, bagging이라니 bag이 동사라도 된단 말인가 싶은 느낌.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런 현상이 부지기수다. 피자 토핑(topping) 같은 것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익숙한 말일 터이고, 요즘 한국에서도 건설회사들이 하우징(housing)이란 말을 쓰기 시작한 모양이다. 교통 벌금이 두 배가 된다는 말을 doubled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럴 듯 하다. 작년 미국 대선 관련 기사를 읽다 보니 back이라는 말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예를 들어 트럼프 지지자를 두고 those who back Trump 뭐 이렇게 쓰는 식이다.

   그래도 이런 단어들은 영어 사전을 뒤지면 동사로서 쓰는 경우가 있다고 나오긴 한다. 그런데, 식품점에 장을 보러 갔더니, 야채를 쌀알 비슷한 모양으로 잘라놓고 파는데, 포장에 Riced라고 써 있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싶은 느낌. 아마 한국어로 직역하면, ‘쌀한’ 혹은 ‘쌀된’쯤 되려나? 그러니까 대강 이런 이야기가 되겠다. 명사나 형용사가 그대로 동사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 언젠가 서울시가 I seoul you라는 홍보문구를 내밀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은 적이 있었는데, 위와 같은 상황을 깔고 보면 이해가 전혀 안 가지만도 않겠다. 물론, 그래서 저 문구에서 정작 ‘seoul’이 뭔 뜻인지가 아리송하다는 게 문제겠지만. 


  2. 

   Bag, house, rice 같은 말을 저렇게, 명사를 그냥 동사같이 쓸 수 있다니까, 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본다면, 이런 용례를 God이라는 단어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이렇게 물으려니 속에 뭔가 걸리는 듯한 느낌이 있는 것은, God, 즉 신이라는 말은, 어쩐지 굳이 따져 본다면 명사를 동사같이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동사를 명사같이 써야 하는 말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분들도 아마 이런 이야기에는 동의를 할 것이다. 인간이 신의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물론 ‘성서’나 ‘교회의 전통’ 등을 통해 더 많이 파악을 할 수 있다고도 하겠으나, 그것을 감안해도 결국은 ‘불가능’이긴 마찬가지다. 그 말은 곧 신에 대한 이해를 ‘명사’적인 방법으로 할 경우 그 ‘명사’의 내용을 완벽히 채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도 되지 않겠는가. 필자가 다니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최근에 내신 책 제목마따나, 신은 ‘알 수 없는 분’인 것이다.

   그러나, 명사로서의 신이 ‘알 수 없는 분’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사건에 신이 관여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가능하고 실제로 많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아니, 종교와 신앙이란 것 자체가 바로 그 ‘어떤 사건을 두고 그 사건에 신이 관여되어 있다고 말하는 행위’의 집적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집적된 행위들을 성찰해 가면서, ‘신’이라는 ‘명사’의 내용을 완벽하게는 불가능해도 더 많이 채우게 되는 것일 테고. 그렇다면 ‘신’이란 단어의 1차적 의미에 가까운 품사는 명사라기보다는 동사가 아닐까 싶은 것이고, 명사로서의 신은 그런 동사의 집적에서 명사의 요소를 뽑아내고자 할 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3. 

   신이라는 단어가 동사를 명사같이 써야 하는 말이라면, 당장 직면하는 현실은 그 ‘동사’가 정말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즉 어떤 사건에 신이 관여되어 있다고 할 때, 그 ‘어떤 사건’이라는 것이 정말 제각각이고, 그 제각각의 내용이 쉽게 타협이나 조정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 제각각 중에서 맞는 것과 틀린 것을 가리려 한다. 또 어떤 이들은 가능한 한 맞는 것과 틀린 것을 가리려 하지 않는다. 물론 이 두 가지 태도가 공존하면서 어떤 국면에서는 전자가 나타나고 어떤 국면에서는 후자가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필자는 굳이 골라야 한다면 차라리 전자를 고르고 싶긴 하다).

   그런데 만약 맞는 것과 틀린 것을 가릴 수 있다면, 그 때 그 ‘맞는 것’이 되는 ‘동사’로서의 신은 인간에게 ‘모범’이 되는 그런 ‘동사’일까. 일단 이 글은 ‘그리스도교인’ 대상이니까 ‘그리스도교’ 안에서만 이야기해 본다면, 그 ‘그리스도교’에서, 신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실마리라는 ‘예수’는, 더도 덜도 아닌 정치범 사형수다. 게다가 그는 생전에는, 그 당시 신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실마리라는 ‘율법’이나 ‘전통’을 두고, 그런 것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든 나는 이렇게 이야기할래 그게 맞어라고 뻗댔던 사람이다.

   그러니, 이런 ‘예수’를 두고 묻는 적절한 질문은, 흔히 생각하곤 하는 이런 질문이 아닐 수 있다. “예수가 신이라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닮을 것인가” 혹은 “예수가 신이라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

   오히려 그런 질문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이런 질문 아닐는지. “예수가 신이라면, 정말 ‘저런’ 예수가 신이라면, 도대체 ‘신’이란 건 뭔가? 아니, ‘저런’ 예수를 신이라고 하는 세상이라면, 대체 그 세상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건가?” 즉, 예수를 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모범’이나 ‘절대자’의 모습을 결정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예수를 ‘신’이라고 밀어붙임으로써 세상을 당혹스럽게, 난감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 당혹과 난감을 풀어내기 위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도록 강제하는 일이라는 뜻도 되겠다.

   이런 예수 이야기의 양상에서 ‘신’을 이야기하는 데 대한 지혜를 빌어온다면, ‘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해답’일 수는 없다. 오히려 ‘문제’이고 ‘출발’일 것이다. 또한, ‘신’을 이야기한다고 어떤 ‘권위’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직 그 이야기하는 사람 자신이 얼마나 성실하게 자신의 삶에서의 ‘사건’에 다가가서, 자신의 출발점을 잡아내고 그것을 자신 스스로 얼마나 밀어붙일 수 있을까를 이야기할 수 있을 뿐. 그리고 ‘권위’나 ‘보장’이 없으니, 그 밀어붙임이 낳는 빛과 그늘에 솔직해야 할 뿐. 또한, 자신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닐 터이므로,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치열하게 맞닥뜨리는 것을 감당해야 할 뿐.


   4. 

   민중신학 연구자 중 한 명인 필자의 사견은 방금 말한 것과 같은 방식의 신 이야기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신학 중 하나가 민중신학이라는 것이다.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두고, 이 비유에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한 사람은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강도 만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신학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라면, 즉 ‘구원을 주는 존재’라면, 이 지점에서 나올 수 있는 적절한 반응은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기보다는 “아니 그런 게 구원이에요? 그럼 도대체 그런 구원을 왜 받아야 해요?”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구원이라고, 그런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다”라는 말의 뜻이리라. 나는 이 자본주의 혹은 이 민주주의 세상에서 잘 살고 있으니 (적어도 이 세상에서는) 따로 구원이 필요없겠다 싶은 사람들에게, ‘잘 산다’는 것이, 그래서 ‘구원이 필요없다’는 것이, 착각일 뿐이라고 밀어붙이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것이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다”라는 말의 효과라는 것이다. 이 말을 출발점으로 하여 조금 더 나가 본다면, 그런 ‘잘 산다는 착각’이야말로, ‘사람’이 ‘강도’를 만나게 되는 세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지금은 어떤 종류의 ‘잘 산다는 착각’을 하는 사람들을 일단 권력의 자리에서 막 떨구어 낸 시간이다. 아마도 6주 정도 지나면, 저런 사람들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권력의 자리를 차지할 것 같아 보인다. 이른바 ‘정권교체.’ 뭔가 ‘진보적’인 일들을 할 거라는 정권이 들어선다는 ‘정권교체.’ 그 ‘정권교체’가, 다른 종류의 ‘잘 산다는 착각’을 재생산하는 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도, 민중신학을 한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권력을 잡든지 간에, ‘강도 만난 사람’ 앞에서 당혹해 하고, 그 당혹을 출발점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내라는 강제를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갈 때까지 가 볼 수밖에.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해체하라!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 주간)

 

영화 <우리 선희> 속 세 가지 시선


   홍상수 감독의 2013년 작품 <우리 선희>는 주인공 선희(정유미)와 세 명의 남자 사이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그 세 명의 남자는 선희의 대학 시절 교수(김상중), 선배(정재영), 구 남친(이선균)이다. 영화로 미국 유학을 떠나기 위해 추천서를 부탁하러 학교로 간 선희는 추천서를 써 주기로 한 교수 동현(김상중)을 만나고, 옛 남친이자 갓 영화감독으로 입봉한 문수(이선균)와 역시 대학선배이자 영화감독인 재학(정재영)을 만난다. 선희는 세 명의 남자로부터 차례로 자신에 관한 각각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선희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것이 <우리 선희>일텐데, 영화는 세 남자의 선희에 대한 각자의 내러티브를 종합하고 정리한 총량으로서의 <우리 선희>가 진정 ‘선희’라는 사건과 대상의 본질인지를 관객들로 하여금 의심하게 만든다.

    추천서 때문에 오랜만에 자기를 방문한 제자 앞에서 교수는 이런저런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 충고를 선희에게 늘어놓는다. 그렇게 추천서를 부탁하고 나오는 길에 선희는 자신과의 연애담을 기초로 영화를 만들어 감독으로 데뷔한 구 남친 문수를 만나 낯술을 하면서 그의 뒤늦은 사랑고백을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음날 선희는 교수를 찾아가 “숨겨진 재능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입증할 수는 없고...”라는 문구가 새겨진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추천서를 받는다. 선희는 다시 써 달라는 부탁을 할 겸 자리를 옮겨 교수와 술 한잔을 하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두 사람 사이에는 사제관계를 넘어서는 뭔가 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가슴이 후끈 달아오른 교수는 절친한 후배 재학을 만나 선희를 향한 마음을 털어놓는다(재학은 그 상대가 선희인지 모름).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재학은 선희를 우연히 만나 역시 술잔을 기울이는데... 두 사람 사이에도 묘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이렇듯 교수와 문수, 재학 사이에서 선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있다. 서로의 감정과 애정사가 교차하고 빗나가는 지점에 선희는 존재한다. 이 세 명이 함께 모이면 선희에 대해 뭐라 말할까. 그들의 말들을 다 긁어모은 선희는 이렇다: “내성적이긴 하지만, 머리가 좋고, 안목이 있고, 또라이 같은 면도 있지만 똑똑하고 솔직한 여자.” 그가 바로 <우리 선희>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내내 세 남자의 선희에 관한 증언들, 그리고 회고담들이 과연 진짜 선희인가라는 의심와 회의가 점점 세게 밀려왔던 것은 왜일까. 셋이 모두 선희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그 어느 것도 선희에 적중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들이 말하는 <우리 선희>는 선희에 대한 진실이 아니라, 선희에 대한 오만과 편견 아니었나 싶다.

   영화는 텅 빈 기표로서의 <우리 선희>를 잘 드러내며 끝이 난다. 어느 가을날 창경궁에서 선희와 교수가 만나고, 동기는 선배를, 선배는 교수를 찾아 창경궁으로 온다. 그 순간 우리 선희가 사라졌다. 그러자 세 남자는 창경궁에서 길을 잃었다. 우리 선희는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우리가 봐왔던 선희가 진짜 선희였을까.


<우리 선희> Vs. <라쇼몽>


   영화 <우리 선희>를 보면서 일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 <라쇼몽>(1950)이 계속 생각났다. 일본 헤이안 시대 산속에서 칼에 찔려 죽은 사무라이 시체가 발견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살인 사건과 연루된 사람은 모두 네 명이다. 최초 신고자 나무꾼, 절에 도망쳐 있다가 잡혀온 사무라이 아내 마사고, 체포된 도적 타조마루. 그는 사무라이 아내 마사고를 겁탈하였고 그 후에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무당이 등장하는데 그 무당의 입을 통해 죽은 사무라이 타케히로가 말을 한다.  

    그러나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네 사람의 서사는 모두 다를 뿐 아니라, 서로 모순되기까지 한다. 과연 누가 범인이고 이 사건의 실체는 무엇일까. 슬라보예 지젝은 영화 <라쇼몽>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객관적인 진실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주관적으로 왜곡되고 편향된 서사들의 환원불가능한 다층성만이 존재한다.”[각주:1] 지젝이 언급한 ‘환원 불가능한 진리의 다층성’을 추구하는 것이 ‘해체’라면, ‘객관적인 진실에 대한 믿음’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해석’이다. 그렇다고 볼 때 <우리 선희>와 <라쇼몽>은 해체가 무엇인지를 놓고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많은 영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두 영화는 진실에 대한 해체적 접근을 시도한다고는 하나, 객관적 진실에 대한 믿음을 100% 포기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라쇼몽>에 등장하는 스님과 <우리 선희>에서 극 초반에 등장하는 또 다른 선배의 발언을 보면 말이다. 두 사람은 극에 등장하는 사람들이긴 하나, 비중도 미비한 영화 밖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텍스트 밖에서 혹 있을 수 있는 내부의 진실을 발설하는 역할을 한다.

    영화 <우리 선희> 초반에 교수에게 추천서를 부탁하러 학교에 온 선희가 우연히 만난 선배(이민우)에게 교수의 소재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이민우를 대하는 선희의 행동을 보면 주인공 세 남자들의 해석의 조각을 모두 합친 우리 선희, 즉 “내성적이긴 하지만, 머리가 좋고, 안목이 있고, 똘아이 같은 면도 있지만 똑똑하고 솔직한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 선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선배는 선희에게 금방 들킬 거짓말(교수가 외국 출장갔다는)을 한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진심으로 화를 내는 선희에게 ‘재미있으라고 한 말이었다’고 변명한 후에, ‘너 참 순수하구나’라며 선희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앞의 세 남자의 평에서는 어디에도 순수한 선희는 없었다. 어쩌면 선희는 순수한 여자 아니었을까.

   <라쇼몽>에 등장하는 스님도 비슷한 케이스다. 그는 살인사건에 대한 증인들의 다른 진술이 참을 수가 없었다. ‘진실이 없다면 지옥’이라고 말할 정도니 말이다. 나중에 나무꾼이 버려진 아기를 자기가 키우겠다고 하자 그 스님은 감사의 뜻을 표하며, “당신 덕에 인간에 대한 신뢰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훈훈한 말을 남긴다. 곧이어 아기를 안고 가는 나무꾼 위로 쏟아지는 밝은 햇살은 너무나 익숙하고 관습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겠는데, 변함없는 진실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해석학적인 냄새가 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단순비교 하자면, <라쇼몽>의 결말은 <우리 선희>보다 확실히 진리에 대한 미련이 더 강하다. 그런 면에서 홍상수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보다는 훨씬 세련되게 해석과 해체 사이의 간극을 잘 연출한 것 같다.


해석과 해체


    영화 <라쇼몽>중 어린아이를 안고 가는 나무꾼에게 쏟아지는 빛에 대한 이야기를 앞에서 했는데, 빛은 해석학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이다. 서양철학에서 추구했던 최고의 원리는 신플라톤주의를 창시했던 플로티누스 이래로 완전히 초월적인 절대 밝음에 대한 추구였다. 논리학에서 명증성(lucidity, lucid는 ‘빛나는, 밝은’)이 강조되는 이유도 이와 같다. 반면, 최저의 수준은 절대 어둠의 영역인데 그곳에는 적나라한 물질이 있다.

    플로티누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유출설을 통해 설명하면서, 초자연적인 존재와 물질사이의 연관을 계층화, 등급화하여 하나로 연결시키고자 하였다.[각주:2] 그리하여 그는 서구철학의 오래된 전통인 빛의 존재론, 빛의 윤리학, 빛의 미학을 정초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 한다”라는 공리는 그런 의미에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를 마감하고 근대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계몽주의의 영어표현이 Enlightment인데, 그 가운데 빛을 의미하는 단어 ‘lihgt'가 배치되어 있는 것도 중세를 암흑(타자)이라 상정하고 그것을 비추고 밝힌다는 의미다. 기본적으로 근대적 이성이란 계몽적 이성이고, 계몽(enlinghtmnet)이란 빛(light)의 사유다. 해석학은 이런 빛에 대한 믿음, 즉 빛에 의해 조명되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목적지에 이른다는 믿음에 의해 그 권위가 유지된다.

       루카치는 빛의 사유와 그것에 대한 믿음으로 유지되었던 시절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적고 있다:“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면서 갈 수 있고 또 가야 할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각주:3] 하늘에 떠 있는 저 별은 온갖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우주전쟁의 배경이 되는 별이 아니다. 저 별은 고. 중세인들에게는 삶의 지도, 인생의 나침반, 선택의 기준이 되었던 좌표였다. 인간은 그저 하늘에 떠 있는 별로 대변되는 천상의 이치(로고스)를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별을 보고 걷다 걷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목적지에 이르게 될 것이고, 우리가 꿈꾸는 구원에도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천상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는 빛을 매개로 하나로 이어져 삶의 완결성과 총체성을 완성하였다.

   해석학적 전통 안에서는 경험의 잡다한 다발들과 그로 인한 상대적 관점들이 각자도생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하나의 목표점을 향한 초월의 행렬을 이루고, 최종적으로 그 행진은 끝에서 객관적 진리와 만날 것이다. 해석은 이러한 믿음 위에 서있다. 그렇다면 해체란? 해체는 해석이 지니는 믿음에 딴지를 걸고 조롱하고 야유하면서, 해석이 만들어 놓은 절대적 믿음의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행위라 할 것이다. 해체는 절대 초월적 진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해체주의 철학자 데리다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There is nothing outside of the text)”[각주:4]

    해석학적 믿음은 텍스트 밖에 로고스(혹은 코기토)로 상징되는 해석의 빛이 있어서 텍스트 안으로 그 빛을 비추어 텍스트 속에 숨어 있는 천상의 진리를 발견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자궁에 있는 태아가 탯줄에 의지해 산모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천상의 진리 이데아는, 이성의 원리인 로고스 혹은 코기토에 의해 인도되어 텍스트와 교신한다. 데리다의 발언은 서양철학 전반에 뿌리 깊게 베어있는 해석학적인 믿음에 대한 반기라 할 수 있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해체주의 사상의 상징적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자크 데리다의 삶과 사상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자크 데리다'에게 있어 해체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는 1930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알제리에서 광폭하게 시행된 프랑스의 반셈주의와 페탕정책(학교에서 유대인 학생의 비율을 7% 제한하는 유대인 차별정책)의 피해를 받으며 고등학교를 마쳤다. 데리다가 그의 글이나 발언에서 강조하는 차이와 다름, 그리고 타자에 대한 환대개념은 유소년 시절 식민지 국가 알제리에서 유대인으로 살았던 차별과 배제의 경험이 사후적으로 재구성되어 귀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각주:5] 알제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데리다는 프랑스로 건너와 몇 차례의 낙방 끝에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여(1952) 수학하였다. 27살(1957년)의 나이에 교수자격시험을 통과한 데리다는 1964년부터 1984년까지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데리다 연구자들은 1990년대 현실 사회주의가 패망한 이후의 데리다와 그 이전 데리다를 구분한다. 데리다는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에 절필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나서 1992년에 후쿠야마가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승리를 선언한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을 썼고, 그로부터 1년 후에 데리다의 가장 문제적인 저작이라 할 수 있는 『마르크스의 유령들』[각주:6]이 출판된다. 이 책을 기점으로 해서 전기 데리다와 후기 데리다를 나눈다. 전기 데리다는 주로 서구 형이상학에 대한 해체에 주력하면서 그에 대한 전략으로 언어, 기호, 텍스트에 대한 천착을 그 특징으로 한다면,[각주:7] 후기 데리다는 정치, 윤리, 법, 신학,정의론 등 정치철학과 신학적인 부분으로까지 자신의 관심사를 확대하여 해체론을 적용하기에 이른다.[각주:8]

   데리다가 활동할 무렵 프랑스에는 가히 천재들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사상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 샤르뜨르, 폴 리꾀르, 미셸 푸코, 들뢰즈, 알튀세, 바디우, 자끄 라깡, 레비스트로스, 소쉬르, 야콥슨, 레비나스 등 서로 다른 무닉와 색깔을 지닌 일군의 학자들이 등장하면서 그야 말로 백가쟁명의 시대를 연출했는데, 그 중에서도 데리다는 당대 철학의 상징으로 우뚝 자리한다. 이런 데리다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해체와 차연이다.

    통상 해체주의는 파괴, 전복,폭력 등의 용어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어렵고 무거운 느낌을 던져준다. 이런 까닭으로 데리다를 변호하는 학자들마다 제일 먼저 시도하는 것은 해체주의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키는 작업이다. 데리다에게 있어 해체란 즉물적인 의미에서 무엇인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 해체란 기존 텍스트 안에 묻혀 있었던, 저자 조차도 의도하지 못했던 진실을 발굴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텍스트 해석의 지평을 확장하는 과정 혹은 절차 일반을 의미한다.

    이것은 데리다가 지니고 있었던 문헌학자로서의 특이한 이력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후설, 하이데거, 소쉬르 등의 책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기존의 관점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그들의 텍스트를 읽어냈다. 데리다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Timaeus』를 읽으며 플라톤조차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코라(Khora)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코라’는 조물주인 데미우르고스가 우주를 창조 할 때 물질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세상은 이데아의 모방(imitation)이고, 세상속에서 이데아가 구현되는 터, 질료, 대지가 바로 “코라”다. 이데아가 질서(Order)라면 코라는 혼돈(Chaos)을 상징한다. 흔히 서양 철학의 오래된 질문이라 할 수 있는 형상과 질료, 주관과 객관의 조화란 범박하게 말하면 이데아를 코라에 이식함으로 코라의 혼동을 극복하고 현실가운데 안정과 질서, 그리고 통일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그러나 데리다는 플라톤 스스로도 의도하지 못했던 코라의 의미를 찾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발견한 것이 ‘코라 없이는 이데아도 없다’는 것이다. 코라는 지금까지 논외의 영역이었고, 단지 이데아가 발현되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것으로 치부되었었는데, 데리다의 꼼꼼한 텍스트 분석에 의해 코라는 이데아 못지않은 위상을 부여받게 된다. 코라에 이데아가 심겨져야 비로소 그것이 발현되는 것으로 말이다. 이렇듯 그동안 묻혀있었던 텍스트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 혹은 그 과정 일반을 데리다는 ‘deconstruction’이라 불렀다.


'차연'에 관하여


    해체주의(deconstruction)의 대명사격인 데리다의 ‘차연’개념은 데리다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임과 동시에 이후 다루어지는 데리다의 사회철학으로 접근하는 데 있어 통과의례적 성격을 지닌다.‘차연’으로 번역된 differance는 어원적으로는 Differ(다르다) 와 defer(연기하다), 이 둘이 합쳐진 조합어이다. 영어로 번역된 데리다의 저작을 보면 불어인 differance를 그냥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사실, 영어로 differance를 표현하는 단어는 없다.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는데, differ와 defer의 의미 다 들어간 단어를 만들어 내기가 만만치 않은 까닭에 굳이 그것을 만드는 것 보다는 불어인 differance를 그대로 쓰는 것일 게다.

    미국 Northwestern Univ 철학과에서 현상학을 가르치면서 데리다 해석의 권위자로 각광받는 페넬로페 도이쳐(Penelope Deutscher)교수는 데리다의 차연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차연은 현존(present)도 부재(absent)도 아니다. 그것은 현존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일종의 부재이다. 그것은 동일성(identity)도 아니고 차이(difference)도 아니다. 대신 그것은 일종의 미분화(differentiaition)이다. 그것은 그러한 동일성들 사이에서 동일성과 차이의 효과를 산출한다.”[각주:9]

    differentiation는 수학용어로는 미분을 뜻하는 말이다. 미분이 무엇인가? 계속 잘게 쪼개는 것이다. 이렇듯 Differntiation은 사전적으로는 ‘미분화하기’이지만, 의미론적으로는‘차이화하기’로 치환된다.[각주:10] 미분했다는 말은 쪼개어져서 이 전 형태와 다른 차이가 발생했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볼 때,‘차이화 하기’라는 말은 차이를 계속 생성한다는 의미에서 ‘차이’ 와 ‘연기’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져있는 말이고, ‘차이를 계속 생성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틈과 여백이 계속 생겨난다는 뜻이며, 해석학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자면 해석에 대한 독점없이 해석의 준거점들이 계속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 글에서 ‘차연’은 틈과 여백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틈과 여백이란 의미가 재현할 수 없는 공간을 뜻한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예가 카푸카의 소설 <굴>이다.[각주:11] 소설은 굴을 파는 짐승의 시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누구도 침입하지 못하도록 안전하게 굴을 파는 짐승이 있다. 어느 정도 안락한 거처를 마련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디서부터 소리가 들린다. 짐승은 그 소리가 분명 바깥에서 들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짐승은 그 소리의 출처를 찾아 끊임없이 탐색한다. 소설은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카푸카의 <굴>을 읽다보면 그 소리가 바깥이 아니라, 이 짐승의 내부에서 나오는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짐승은 그 소리가 밖에서 나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 그 확신이 바로 자기동일성이고, 환상이고, 환타지다. 어쩌면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자기동일성’이란 타자에게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그래서 그 틈을 메워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히스테리였고, 변증법이란 그 틈과 여백을 메우기 위해 고완된 정신의 방어기재인지도 모르겠다. 헤겔은 “역사는 절대정신의 자기실현과정이다”라고 말했다지만, 데리다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절대정신의 자기실현 과정은 서구인들의 허풍이고 위선이다.

    현대철학은 헤겔류의 자기동일성에 대한 반동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자기동일성을 ‘Totality’(전체성)이라 비난한 후, ‘전쟁의 존재론’[각주:12]이라는 저주를 퍼부었고, 푸코는 서구의 근대가 그려나갔던 자기동일성의 역사를 ‘광기의 역사’였다고 회고한다. 데리다가 말하는 ‘차연’ 역시 이러한 서구가 지녔던 자기동일성에 대한 비판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체적으로 산다는 것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 사이의 간격을 유지한 채 나이스하게 서로의 다름을 넉넉히 바라볼 줄 아는 미덕, 이것이 글로벌하고도 포스트모던한 사회를 살아가는 명법이라 우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화법은 신자유주의로 요약되는 현대사회의 정치-경제적 현실을 왜곡하고 희석시킨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식자들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데리다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상징하는 대표적 학자로 지목되었고, 그리하여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로부터 집중 포화의 대상이 되었다. <맑스의 유령들> 출판이후에 이런 오해들이 다소나마 풀리기는 했지만, 데리다를 향한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데리다에 대한 세인들의 평가에는 다소 곡해가 있다. 데리다가 말하는 ‘차연’은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차이’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명사화된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차이가 계속 발생하는 상황과 차이가 발생하면서 일으키는 사건과 사태에 관심한다. 이것이 데리다의 차연이 지니는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간과가 데리다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셈이다. 데리다의 ‘차연’은 차이를 계속 발생시키면서 도래하는 사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다. 그렇다면 데리다의 차연을 현실의 삶에 적용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차이가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는 여성혐오, 동성애혐오, 장애인혐오,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백인제외), 특정 종교(이슬람)에 대한 혐오가 난무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 차이가 적대의 매카니즘으로 작동되는 것일까. 혹 절대적 진리에 대한 초월의 사유, 초월에 대한 믿음, 그리고 초월적 진리에 대한 해석의 전통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연후에 그것 이외의 것들을 적(敵), 혹은 균(菌)으로 분류하여 증오하고 혐오하면서 순혈주의를 강화하다보니, 우리와 다른 차이는 우리 사회에서 악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해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남성중심주의, 이성애중심주의, 백인중심주의, 기독교중심주의로 상징되는 절대적 믿음의 시스템속에서 차이를 계속 발생시키는 행위이고, 뿌리깊은 해석의 권위에 틈을 내고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여혐에 대해 저항하고,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며, 한국교회가 지닌 아집과 독선에 대해 회개운동을 펼쳐나가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자본에 의한 전 지구적 재편이 완료되고, 자본의 법칙만이 유일한 정언명법이 되어버린 세계 속에서 해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자본이라는 초월적 보편성에 딴지를 걸고, 자본의 원칙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상상하는 것이다. 무엇이 있을까. 4대강, 강정, 밀양, 핵발전소, 사드배치 등, 거대자본의 논리와 특정집단의 이익에 따라 국토를 유린하는, 국가의 행정집행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작게는 편리와 유행이라는 시대의 유혹 때문에 잃어버렸던 내 삶의 습관과 방식을 점검해보는 것, 그리고 나서 좀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유행과 욕망에 둔감해지는 방법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고민한 후에 실행해보면 어떨까.

   결국, 해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거창하지도 무시무시한 것도 아니다. 내가 내 삶속에서 차이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내 스스로가 우리 삶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의심해보고 재해석 하면서, 나만의 삶의 방식을 상상하고 실험하는 것, 이것이 자본으로부터의 일탈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해체적 인간이 출현하는 지점이다.


ⓒ 웹진 <제3시대>



  1.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서영 옮김, 『시차적 관점』, (서울: 마티, 2009), 349. [본문으로]
  2. 에버렛 퍼거슨 지음, 박경범 옮김, 『초대교회 배경사』 (은성, 1993), 384-386 [본문으로]
  3. 게오르그 루카치, 반성완 옮김, 『소설의 이론』(심설당, 1998) [본문으로]
  4. Derrida, Jacques., Of Grammatology, Corrected edition. Trans. Gayatri Chakravoty Spivak (Bultimore and London: Johns Hopkins Press, 1997), 158. [본문으로]
  5. 제이슨 포웰, 박현정 옮김, “1장, 알제리”,『데리다 평전』,(인간사랑, 2010), 37-53. [본문으로]
  6. Jacques Derrida, Specters of Marx. Translated from the French by Peggy Kamuf (N.Y:Routledge, 1994). [본문으로]
  7. 데리다는 1967년에 세 개의 주요 저서, 『목소리와 현상 Speech and Phenomena』(김상록 역, 인간사랑, 2006),『그라마톨로지 Of grammatology』(김성도 역, 민음사, 2010 개정판),『글쓰기와 차이 Writing and Difference』(남수인 역,동문선, 2001)를 발표하면서 일약 스타철학자로 급부상하였고, 1972년에 두 번째 세 개의 주요저서인 『산종 Dissemination 』,『철학의 가장자리 Margins of Philosophy 철학의 가장자리』,『입장들 Positions』,(솔출판사, 1992)을 발표하면서 그의 전기 사상을 완성지었다. [본문으로]
  8. 『법의 힘 Force of Law』(진태원 역, 문학과 지성사, 2004),『환대에 관하여 Of Hospitality』,(남수인 역,동문선, 2004),『불량배들: 이성에 관한 두 편의 에세이 Rogues』,(이경신 역,휴머니스트, 2003),『우정의 정치학 Politics of Friendship』(1994)등이 있다. 특별히 『The Gift of Death』(1986)과『Religion』(1998)은 해체론과 신학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본문으로]
  9. Penelope Deutscher, How to Read Derrida (New York: WW Norton & Company, 2005), 29. [본문으로]
  10. “그것은 미분화(differentiation)된 상황을 지시하는데, 그것은 거리두기(간격두기)를 말하는 것이고, 어떤 기호도 자기폐쇄적인 동일성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Ibid., 31. [본문으로]
  11.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굴”,『변신.시골의사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민음사, 1998) [본문으로]
  12. Levinas, Emmanuel. Totality and Infinity: An Essay on Exteriority. trans. Alphonso Lingis, Pittsburgh, (PA: Duquesne University Press, 1969), 22.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폭력과 타자성의 관점에서 본 신약성서 2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3. 포괄주의적인 기독교적 동일자로서 복음서 읽기 : 지라르의 『희생양 』 및 『나는 사탄이』


     지라르만큼 폭력의 문제를 집요하게 탐구한 이는 드물 것이다. 이것은 『폭력과 성스러움』, 『희생양』, 그리고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와 같은 그의 저서들이 폭력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그에게 종교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종교란 폭력이 내장된 성스러움에 대한 추구라고 정의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그는 대뜸 화를 낼 듯하다. 종교만 그렇겠는가라고 하면서 말이다. 왜냐하면 『폭력과 성스러움』에서 그는 현대의 사고가 폭력을 멀리하면 할수록 폭력은 오히려 귀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탈신화화되었다고 믿지만 현대세계는 결코 폭력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고, 다만 애써 외면할 뿐이라고까지 말한다. “스스로를 성스러운 것에서 생겨난 유일한 사회라고 믿지 않는 사회는 하나도 없다. 이것이 바로 다른 사람들은 결코 사람이 아닌 이유이다. 우리라고해서 이 보편법칙, 보편적인 무지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다.”[각주:1] 단지 “어떤 식으로든 항상 폭력에 종속되어 있는 어떤 무지 속에서 폭력을 피하고” 있을 뿐이다. 원시문화에서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폭력에 대한 그의 논의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다소 과장일 수 있지만, 폭력의 문제를 성찰하는 데 있어 지라르만큼 독보적인 사상가는 별로 없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처럼 폭력을 사유한 사상가이지만 지라르는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환영받는 인류학자다. 사랑의 종교라 불리는 기독교가 폭력을 사유한 사상가를 환영하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하지만 독일의 일간지 디 벨트(Die Welt)는 ‘지라르가 기독교를 구했다’고 극찬했다. 심지어, 정일권은 “다른 신화와 종교를 초월하는 ‘십자가’의 의미가 드러나면서, 세계 인류는 ‘유일한 진리’를 얻게 됐다. 다원주의 상대주의, 곧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힘을 잃게 된 것이다.”[각주:2]라고 까지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지라르 사상의 무엇이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극찬하게 만든 것일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각주:3]


복음서는 인간의 폭력을 진정으로 문제삼은 유일한 기록이다. …이런 것과는 달리, 구약의 요셉이나 욥 혹은 예수나 세례 요한 그리고 다른 희생양들을 보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토록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그토록 격분한 군중들에 의해 왜 추방을 당하거나 학살을 당하는 것일까? 기독교의 계시는 그 전에 있던 신화와 제의 같은 것뿐만 아니라 그 후에 오는 다음과 같은 것까지 다 밝혀주고 있다. … 예수의 수난 이야기는 이 세상의 왕의 비밀을 밝히고 모방 작용과 희생양 메커니즘의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인간 질서의 기원을 전복시킨다.


     한 마디로, “인류학자가 인문학을 통해 다른 종교나 신화의 한계를 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를 주창“[각주:4]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야단법석과 달리 차분하게 한번 물어보자. 다른 종교나 신화의 한계가 대체 무엇인지를 말이다. 뒤집어 표현하자면, 어떻게 복음서가 유일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지가 될 것이다. 일단, 『희생양』이란 저서에서 그는 <로이 드 나바라의 판단>이라는 유대인 박해에 관한 기욤 드 마쇼의 텍스트를 해석하면서, "이 텍스트에 나타나 있는 모든 표현들 간에는 상호 합치, 즉 단 하나의 가설로써만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일치가 존재한다. 우리가 읽은 이 텍스트는 분명 박해자의 시각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실제로 일어난 박해에 근거하고 있는 텍스트다. 박해자의 시각은 자신들의 폭력의 정당성을 믿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잘못된 시각이다. 스스로를 재판관이라고 여기는 그들에게는 그러므로 유죄의 희생물이 필요하다.“[각주:5]고 말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런 판단은 『폭력과 성스러움』의 연장일 수도 있는데, 여기서 그는 인류의 종교적 활동뿐만 아니라 다른 활동들도 폭력으로 인해 붕괴될 위기에 처한 공동체가 살아남기 위해 하나의 예방책으로 소위 희생할만한 희생물에게로 폭력의 욕망의 방향을 돌리는 희생양 메커니즘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 희생물들에는 ”전쟁포로도 있고 노예도 있으며 아이, 총각, 신체장애자도 있고, 그리스의 파르파콘처럼 인간 쓰레기도 있으며 어떤 사회에는 왕도 있다.“[각주:6]는 점은 잘 알려진 흔한 이야기다. 요약하자면, 희생양메커니즘이란 공동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는 복수의 분노를 희생제물인 공동체 내의 약자나 외부인에게 전가시킴으로써 공동체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호폭력을 예방하고 정화하는 수단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지라르는 복음서의 이야기가 다른 종교텍스트들처럼 이와 같은 희생양메커니즘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박해자가 아닌 희생자의 시각을 보여주기에 다른 것들과 분명하게 구분되며 그렇기에 진실에 관한 유일한 기록물이라고 평한다. 다시 말해, 복음서의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기욤 드 마쇼의 텍스트 류의 것들이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라는 점이다. 지라르의 판단에 따르면, 복음서는 다른 것들과 달리 철저하게 희생자의 시각을 보여주기에 박해하는 자들의 잘못된 시각을 폭로하고 교정해주는 진실한 기록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놓고 말한다. ”신학자들에게 너무 오랫동안 잊혀져왔던 복음서의 인류학 영역에 대한 나의 이 연구는 간접적으로만 신학적이다.“[각주:7]라고 말이다.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하기도 했다.[각주:8]


그리스도의 적은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약속만 하고 가져다주지 않은 평화와 관용을 자신은 주고 있다고 자랑한다. 아닌 게 아니라 희생을 극단적으로 운운하는 오늘날의 풍조가 가져다준 것은 사시살 낙태, 안락사, 유니섹스, 엄청나게 많은 곡마단 놀이들과 같은 예전 이교도의 온갖 풍습으로의 회귀다. 그러나 여기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같은 기술 덕택에 진짜 희생양이 없다. 이 새로운 이교는 십계명을 비롯하여 유대 기도교의 모든 모럴을 참을 수 없는 폭력으로 추정하고 이런 계명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제일 목표로 삼는다.


     기독교인들에게 얼마나 은혜롭게 들릴지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때문에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정일권도 “다른 신화와 종교를 초월하는 ‘십자가’의 의미가 드러나면서, 세계 인류는 ‘유일한 진리’를 얻게 됐다. 다원주의 상대주의, 곧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힘을 잃게 된 것이다.”[각주:9]라고 까지 말했던 것이다. 기독교적 변증으로선 손색이 없다.

     하지만 복음서에 대한 지라르의 변증과 이런 변증을 극찬하는 신학자들에 대해 누군가는 민망했을 수도 있다. 한 예로, 월터 윙크는 "나는 희생양 주제가 전 세계의 신화들의 바탕이라거나 혹은 유대교-기독교 성경이 폭력에 대한 비판을 독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폭력적인 신화도 있어서(하나만 예를 들면 Hopi 인디언의 탈출신화), 기독교가 설명한 것들 못지않게 참된 것들도 있으니 지라르가 말하는 기독교 승리주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각주:10]라고 일침을 가했다. 특히,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바울의 이해 역시 박해자의 시각을 고발한다는 지라르의 주장에 대해서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하여 어떤 모호함을 드러낸다. 지라르는 그 모호함의 한 면을 강조했고 그의 비판자들은 그 다른 면을 강조했다."[각주:11]면서 균형 잡힌 비판을 보여주었다. 흥미롭게도, 오래 전 이미 다른 쪽에 속했던 포이에르 바하는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각주:12]


일반적으로 인간희생을 폐지했다는 이유로 기독교를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 기독교는 그러나 피를 흘리는 인간희생 대신에 다른 종류의 희생, 육체적인 인간희생 대신에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인간희생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므로 현상에만 얽매이는 사람들은 기독교가 이교의 종교와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을 세상에 가져다놓았다고 믿지만 그것은 하나의 환상일 뿐이다.


     게다가 희생자의 시각을 드러내 주기에 복음서의 예수의 수난이 박해자의 폭력을 고발한 것이라고 본 지라르와 달리, 포이에르 바하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각주:13]


기독교는 고통의 종교다. 우리가 오늘날 아직도 모든 교회 안에서 만나게 되는 십자가상은 우리에게 구원자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사람, 고통받는 사람을 제시할 뿐이다. 기독교도들 사이에서는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의식이 지배적인데 그것은 심리적으로 깊게 뿌리박혀 있는 그들의 종교관에서 오는 결과다. 십자가상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서 자기자신 또는 타인을 십자가에 못 박고 싶다는 욕망이 왜 생기지 않을 것인가?


     기독교의 역사를 참고한다면, 포이에르 바하의 이런 지적은 꽤 설득력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지라르의 말대로 희생자의 시각을 드러내주기에 복음서가 『티아냐의 아폴리니우스의 생애』와 같은 박해자의 텍스트들보다 더 뛰어난 것이라면, 왜 교부들은 이런 텍스트를 읽으면서도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저주를 내뿜었던가. 기독교의 도덕을 원한의 도덕이라고 불렀던 니체를 씹어대면서 복음서는 결단코 니체가 말한 바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격찬한 지라르는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인용한 터툴리안에 대해선 대체 뭐라 말할지 궁금하다.[각주:14]


그날이 오면 물론 또다른 구경거리가 있다. 최후의 영원한 심판의 날인 그날에 이교도들은 뜻하지 않게 자신들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보게 되고, 그토록 낡은 세계와 그토록 많은 소산이 거대한 불길 속에서 송두리째 타버리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얼마나 엄청난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겠는가! 얼마나 탄복하겠는가! 얼마나 웃어야 할까!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주님을 욕되게 한 그들을 그 때문에 하염없이 지켜보고 싶은 심정이다. 이 자야말로 목수나 매춘부의 아들, 안식일을 파괴한 자, 사마리아인이자 귀신들린 자이다. 이 자야말로 그대들이 유다에게서 사들인 자다. …내가 생각한 바로는 그것은 원형 경기장이나 두 개의 무대 관람석보다도, 또는 다른 어떤 경기장보다 더 재미있는 광경이다.


     터툴리안 뿐만이 아니다. 니체는 토마스 아퀴나스도 서슴없이 인용했다. "천국의 축복받는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진 자들이 벌 받는 것을 보고, 그로 인해서 자신의 축복을 더욱 기쁘게 여기리라."[각주:15] 마찬가지로, 이러한 원한의 도덕이 유대인을 대상으로 했을 때 역사는 가장 비극적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확실히, 역사는 유대인을 향한 증오가 기독교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그 중에서 가장 파괴적인 인간으로 히틀러를 꼽을 수 있지만 실은 근본적인 싹은 이미 피어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예로, 4세기 교부 크리소스토모는 “(유대인은)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야비한 이들로… 음탕하고 탐욕스러우며 게걸스럽고 배신을 일삼는 강도이며 …상습적인 살인자에다 파괴자이며 악마에 사로잡힌 이들로서… 그들은 사나운 짐승의 잔인성을 능가하며 자기 자손을 죽여서 악마에게 희생물로 바친다.”[각주:16]는 끔찍한 독설을 퍼부었다. 불행하게도, 이런 독설은 시간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오히려 뿌리 깊게 박힌 하나의 기독교적 신앙의 원형이라는 것을 루터는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각주:17]


그대는 유대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며, 그들이 어디서 음모를 꾸미는지 알아야 한다. 그곳은 바로 악마의 소굴이며 거기에는 헛된 자만, 교만, 거짓, 비방만이 난무할 뿐이다. 만일 그대가 유대인을 보았고 그들을 가르치는 것을 들었다면, 그대는 사람의 얼굴에 독을 뿌려 죽이는 살인 뱀을 본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루터가 뿜어낸 유대인을 향한 증오의 말들을 참고하면, 불행히도 20세기의 히틀러와 사실상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루터의 견해에 따르면 유대회당과 학교는 불태워져야 하고 더 나아가 하느님께 우리의 진실을 보여드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지옥불 속으로 던져버러야 한다. 유대인의 집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유대인이 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 고통 속에 사로잡힌 존재라는 것을 깨닫도록 집시들처럼 지붕 아래 또는 헛간에 머물게 해야 한다. 유대의 기도서와 탈무드 서적 그리고 성서마저 유대인들이 비방하기 위해 사용하기 때문에 압수해야하고 랍비들에게는 절대로 가르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통행로나 거리에서 유대인을 발견하면 즉시 체포해야 한다."[각주:18]

     안타깝게도, 이처럼 터툴리안에서 루터에 이르까지 기독교의 역사에 나타난 유대교를 비롯한 타종교에 대한 가해의 텍스트를 들이댄다 할지라도, 지라르는 그것은 그들이 복음서의 진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체로 기독교의 역사란 타인을 십자가에 못 박고 싶은 욕망을 폭력으로 해결한 역사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반유대주의 문제는 지라르가 말한 바와 같이 대충 넘어갈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라르는 대놓고 이렇게 말한다.[각주:19]


반유태주의, 선민의식, 반진보주의나 희생물이라 할 수 있을 무고한 인류에 대해 복음서가 범했을지도 모르는 어떤 범죄를 들추어내려는 모든 작업들이 흥미로운 것은 그것들의 명백한 상징성 때문이다.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스스로 명쾌하게 해결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바로 그 텍스트에 의해 바로 자신이 해석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인간의 헛된 사업들 중에서 이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것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절망스럽게도 "20세기를 통틀어서 가장 센 모방의 힘은 나치도 아니고, 희생양 근심에 들어 있는 유대교적 기원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이 근심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던 나치의 이데올로기도 아니다."[각주:20]라고 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신앙은 본질적으로 당파적이다. 그리스도를 찬성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사람이다. 나를 찬성하든가 또는 나를 반대하든가 둘 가운데 하나다. 신앙은 적 또는 친구만을 알고 있을 뿐 비당파성을 알지 못한다."[각주:21]는 포이에르 바하의 말을 지라르에게 헌정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모방하는 경쟁과 충돌, 그리고 희생양에 대한 그의 이해는 우리 시대의 가장 심오한 지적 발견의 하나”[각주:22]라는 윙크의 지적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사실, 희생자의 시각을 복음서가 다른 텍스트들보다 더 잘 드러내고 있다는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럼에도 현대의 모든 비평이 이교적이고, 반유대주의를 파헤치는 작업은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그의 지적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이 지경이 된 이유는 제의의 위기로 인해 발생한 폭력에 대해 종교들이 추구했던 해답의 차이를 역사적으로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다시 말해, 복음서가 유대전쟁 와중에 혹은 그 이후에 쓰인 것이라면, 유대교의 희생제의의 위기를 반영하는 일종의 논쟁적 이야기임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설령 했다하더라도 신화들의 비교를 통해 보는 방법론이 역사를 보는 감각을 망쳤을 수도 있다. 고로, 지라르는 브라이트의 다음과 같은 물음을 좀 더 신중하고 철저하게 고려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각주:23]


유대교가 실제로 추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의 남은 외길뿐이었다. 그것은 바리사이파가 지적한 길이니, 율법적 유대교, 곧 미쉬나와 탈무드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구약성서신학은 탈무드에 결합되어 그 열매를 맺은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대답이 있다. 그것은 크리스챤의 답이며, 또 크리스찬으로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답이다. 즉 그리스도야말로 모든 사람이 기다려 온 대로 하느님의 절대적인 구원권능이 인류역사에 결정적으로 침투한 그 사역 자체요, 모든 시대의 분기점인 대전환점이라고 선언한다. 요컨대 크리스찬의 대답은 그분이 바로 이스라엘 역사의 신학적 종착점이라고 확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디로? 라는 물음에 대해 이와 같은 상반되는 두 가지 답이 있다.


     이처럼 지라르와 달리 브라이트가 좀 더 겸손한 해법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브라이트는 "크리스챤과 유대인이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바로 이 문제에 관해서다. 비록 견해를 달리하더라도 양자가 사랑과 상호이해 속에서 각기 자기 입장을 지키도록 하자."[각주:24]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달리, 지라르 자신의 연구의 다산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개념들, 즉 짝패/쌍둥이, 제의의 위기, 초석적 폭력, 희생자의 시각에서 박해자를 고발하는 텍스트로서의 복음서 등은 기독교의 역사에서 발생한 반유대주의를 비롯한 타자에 대한 여러 폭력들을 성찰하도록 해 주는 소중한 유산이고, 그렇기에 브라이트의 겸손한 해법보다 좀 더 생산적인 해법을 내놓을 수 있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라르 그 자신은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보다 우월하다는 전통주의적인 기독교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는 한 때는 희생자였던 이들이 다른 때에는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몰랐던 것일까? 설령 희생자라 하더라도 폭력적 성향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내다보지 못했던 걸까? 이미 기독교의 역사는 이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비록 르낭처럼 유대교에 대해 독설을 내뿜거나 인종주의적인 색채를 풍기진 않았다할지라도 적어도 기독교 승리주의는 숭배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를 모든 것을 포괄하는 우월한 기독교라는 이념을 충실히 대변한 변증론자로 자리매김 해야 할 것이다. 이미 그 자신도 그렇게 말한 바 있지만 말이다.


4. 다원주의적 타자로서 복음서 읽기 : 프로이트의 『인간모세와 유일신교』 


     프로이트는 『인간모세와 유일신교』를 여러 차례에 걸쳐 썼고, 최종 저작본에는 서문을 두 개나 포함시켰으며, 더욱이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기 직전에 완성했다.[각주:25] 때문에 이 저서에서 반유대주의가 다루어지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할 대목은 반유대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모세가 유대인이 아니라는 프로이트의 폭탄과도 같은 발언이다. 프로이트 역시 이런 발언이 아주 충격적이고 위험한 짓이라는 점을 잘 숙지하고 있었는지 이 책의 첫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각주:26]


한 민족이 자신들의 겨레붙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을, 그 민족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행위는 잘 하는 행위도 못될뿐더러 함부로 할 행위도 못된다. 적어도 그 민족에 속한 사람에게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국민적 이득으로 추정되는 것을 위해서 진실을 도외시한다는 비난을 당해서도 안된다. 더구나 실세 사태의 해명이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을 베풀 수 있는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


     자 그렇다면 모세란 누구였단 말인가. 프로이트에 따르면 모세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프로이트가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모세가 만약 이집트인이었다면 이라는 전제를 달고 연구를 진행했다. 또한, 자신의 이런 전제가 매우 불충분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의 연구는 이 불충분하고 더구나 불확실한 결론에 만족하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다."[각주:27] 더구나 "잡지 이마고에 이 글이 게재되는 근거는 이것이 정신분석학의 적용을 그 내용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근거는 정신분석학적 사고에 익숙한 극소수의 사람들, 정신분석학의 성과를 평가하는 사람들에게만 인정받을 수 있을 것"[각주:28]이라고까지 말했다. 다시 말해, 역사학적으론 극히 빈약한 자료에 기초한 주장일 수 있겠지만 정신분석학적으론 충분히 타당한 연구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역사학이 보지 못한 진실을 정신분석학은 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일종의 자긍심이 깔린 말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처음엔 "모세가 이집트인이었다는 통찰에서 파생하는 모든 추론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각주:29]는 신중한 자세를 취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새로운 종교를 마련해 준 모세가 이집트 인이었다면 우리는 그가 마련한 이 새로운 종교는 이집트 종교였다는 가정을 뿌리칠 수 있을 것인가?"라며 본격적으로 실마리를 풀어가는 논의를 전개했다. 그리고선 결론을 내렸다. "만일에 모세가 이집트 인이었고, 그가 자기 종교와 유대 인에게 전했다면 그 종교는 아케나덴의 종교, 즉 아덴교였다는 것이다."[각주:30]

     이런 결론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겐 분명 충격이었을 것이다. 특히, 유대인들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학자들의 이론을 끌어들여 나름대로 증명하고자 애썼다. 증명을 위해 역사비평학의 논의를 살펴볼 수밖에 없었을 것인데, 이것은 "우리 앞에 놓인 성서의 보고는 참으로 귀하고 가치 있는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지만, 이 기록은 어떤 목적을 향한 강력한 의도의 영향 아래 형편없이 왜곡되고 문학적인 창작의 산물에 의해 지나치게 미화되어 있다."[각주:31]는 그의 진술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래서일까, 성서의 이야기에서 "탈락, 신경에 거슬리는 반복, 명백한 모순"[각주:32]을 잘 읽어내고 있다. 그런데 프로이트에게 이런 탈락, 반복, 모순은 단순히 사료 처리의 문제가 아니라 흔적의 제거나 왜곡과 같은 정신분석학적 개념들과 만나게 해주는 현상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흔적의 제거와 왜곡이라는 개념을 견지하고 성서의 이야기를 분석한 결과 프로이트는 모세가 이집트인이라는 논제보다 더 충격적인, 즉 유대 민중이 모세를 살해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런 살해가 죄의식을 불러일으켰고 결국엔 야훼숭배에 이르도록 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살해와 숭배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또 다른 변형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종교가 분명히 정신병적 증후의 성격을 갖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각주:33]

     이쯤이면,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프로이트는 대체 왜 이런 일을 착수했을까하는 물음을 말이다. 더욱이, 당시의 유대인들이 충격과 분노를 보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예감했음에도 말이다. 이를 위해, 일단 『토템과 터부』 히브리어판 서문을 참조해 보자.[각주:34]


이 책의 독자는 성서의 언어에 무지하고, 자기 조상의 종교로부터 완전히 소외되어 있으며, 민족주의적 이상을 공유할 수 없는, 그러나 아직까지 결코 자기 민족과 의절한 적이 없고, 자신의 본질적인 천성에 있어 한 사람의 유대인이라고 느끼고 있으며 그러한 본성을 바꾸고자 하는 어떤 욕망도 없는 저자의 감정적 위치에 자신을 올려놓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만약 그에게 당신이 당신 동포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모두 버렸으니, 당신에게 유대적인 무엇이 남아 있소라고 질문한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많은 것이 남아 있소. 그리고 아마 그 정수도 말이오.


     유대민족의 정체성과 관련한 프로이트의 복잡한 심경을 읽어볼 수 있는 글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이 글에 대한 로즈의 평은 『토템과 터부』뿐만 아니라 『인간모세와 유일신교』에서 프로이트가 행한 작업이 갖는 의미를 잘 포착해 내고 있다. 들어보도록 하자.[각주:35]


프로이트는 여기서 현대의 세속적 유대인에 대한 가장 충격적인 자기규정의 하나를 보여줍니다. 즉 언어적․종교적․민족적 정체성이라는 치장을 벗겨내는 것이 그를 덜 유대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유대적으로 만드는 유대인이 그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도이처가 말했듯이 세계의 틈새들에 거주하는 비유대적 유대인입니다. 이 비유대적 유대인은 자기 자신에게 유대인성의 정수가 있음을 주장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을 그것의 후견인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소유물로서 그것에 대한 권리를 강경하게 주장하며, 자신이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바로 이런 권리주장을 통해 특정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1930년대의 위기에 대응한다는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부터 프로이트는 스스로를 보편화하는 것이 유대인적 특수성의 과업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모세와 유일신교』의 모세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한 프로이트 자신을 투영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모든 해석이 해석자가 처한 정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을 굳이 참조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분명한 것은 로즈가 말했던 것처럼 비유대적 유대인으로서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특정한 공간에다 박아놓지 않으려는 프로이트의 이러한 정체성 모색은 민족의 시원인 모세를 새롭게 읽고 정의해내는 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프로이트에 대한 사이드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길지만 들어보도록 하자.[각주:36]


도이처는 유대주의 내부의 주요한 이의 제기의 전통이 스피노자, 맑스, 하이네, 그리고 프로이트와 같은 이단적인 사상가들에 의해 구성된다고 논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의해 박해받고 파문당한 예언자이자 모반자였습니다. 그들의 사상은 강력한 사회비판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도이처는 그 사상 콤플렉스의 본질적인 구성요소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치유불가능한 국외이산적 특성, 고향에서 추방당했다는 특성이 그것입니다…유대인적 관점에서 비롯된 비유럽인에 대한 프로이트의 성찰과 주장은 내가 생각하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나 필사적으로 뛰어들고 싶어하는 민족주의적이거나 종교적인 집단 속으로 정체성을 용해시켜 넣기를 거부함으로써 그러한 관점이 수반하는 것에 대한 감탄할만한 스케치를 제공해줍니다. 더욱 대담한 것은 가장 잘 정의될 수 있고, 가장 식별가능하며, 가장 강고한 집단적 정체성조차도 거기에는 그것이 하나의 오직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 완전히 병합되는 것을 방해하는 내재적인 한계가 존재한다는 통찰에 대한 프로이트의 심오한 예증입니다. 프로이트에게 있어 그러한 한계를 상징하는 것은 유대인 정체성의 정초자 그 자신이 비유럽적인 이집트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인간모세와 유일신교』에 대한 사이드의 이러한 지적이 프로이트에게만 해당되고 마는 일일까. 다시 말해, 우리에겐 적용되지 않는 사안일까. 앞서 본 것처럼 탈락, 신경에 거슬리는 반복, 명백한 모순을 야기하는 구약성서의 이야기들을 흔적의 제거 및 왜곡이라는 정신분석적 관점을 동원해 해체함으로써, 자신과 자신의 민족을 민족이라는 틀을 넘어 좀 더 보편적인 맥락에 위치시킨 프로이트의 작업은 복음서를 읽는 우리에게도 상당히 의미하는 바가 크다. 사실, 프로이트가 모세를 이집트인으로 해석한 작업은 개신교 성서학, 특히 역사적 예수 연구가 예수를 해석해 온 역사와도 일치한다. 한 예로, 예수가 유대인으로 와서 유대인으로 살다가 죽었다는 벨하우젠의 논제를 들 수 있다. [각주:37]분명, 이것은 모세가 이집트인이라는 프로이트의 논의만큼이나 예수를 기독교의 창시자로 본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낯설거나 혹은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논제는 벨하우젠 이래로 표준적인 이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르낭적인 논의, 즉 예수가 유대교에서 출발한 것은 맞지만 그 정신은 유대적인 것과의 단절이라는 주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 벨하우젠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이런 이해는 역사적이기보다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고수하기 위한 신학적 이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이런 이해는 할 수만 있다면 특정한 어떤 한계선 안에 가두어 놓으려 하기에 타자에 대한 이해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쩌면 홀로코스트 이후 계속 제기되고 있는 반유대주의 문제에 대한 치열한 역사적 신학적 싸움은 이것을 반증하는 예일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민족의 시원인 모세를 이집트인이라고 칭한 프로이트의 작업은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던져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인간모세와 유일신교』가 전해주는 의미는 이 뿐만이 아니다. 오스트리아로 침공해 오는 나치를 염두에 두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프로이트는 이 저서를 통해 반유대주의와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비판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 비판과 관련해 레너드는 중요한 설명을 곁들였는데, 들어보도록 하자.[각주:38]


프로이트는 유럽 중심의 설명은 물론 유대인 중심의 설명에서 드러나는 배제의 수사를 거부했던 것 같다. 프로이트는 긴 역사에 걸쳐 그리스인과 유대인 모두 순수성을 고집하는 사고에 반기를 들면서 이집트인 모세로 하여금 그리스인이 아니면서도 유대인에 대한 반유대주의적 고정관념을 확실히 헛갈리게 하는 잡종 인물을 만들어냈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의 다신교가 아닌 유대인의 유일신교 덕분에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는지 강조함으로써 지성의 역사와 관련해 아주 도발적인 주장을 펼쳤다. 프로이트는 앞서 시대의 멘델스존처럼 유대교를 이성의 종교로 회복시키려 했던 것이다. 더구나 멘델스존과 마찬가지로 유대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적대감과 관련된 광범위한 담론이라는 맥락에서 이러한 주장을 펼쳤다. …프로이트 자신은 유대인의 지적 자신감, 곧 그들의 우월한 이성을 그리스도교의 반유대주의적 원천으로 여겼다. 혹자는 그리스인에게만 독점적으로 이성의 속성을 부여하는 것이 어떻게 그리스도교의 반유대주의 산물인지 보여주려 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모세를 잡종적인 인물로 만듦으로써, 게다가 모세의 유일신교가 갖는 이성적 측면을 부각시킴으로써 반유대주의를 극복하고자 했던 프로이트의 이러한 관심은 바울에 대한 그의 비판에서도 드러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바울이 만든 "새로운 종교는 선행하던 유대교에 대한 문화적 퇴행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각주:39] 이제 프로이트는 대놓고 말한다. 바울의 기독교가 갖는 "현상은 수준이 낮은 새로운 인간집단이 다른 집단에 침윤하거나 침윤의 허락을 받아 낼 때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유대교는 정신성의 정점에 이르러 있었지만 기독교는 이같이 높은 수준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기독교는 무엇보다도 아덴교와 여기에 이어지는 모세교와는 달리 미신적, 마술적, 신비적 요소의 침투를 거부하지 않았다."[각주:40] 바로 이 지점에서, 어쩌면 경계인으로서의 유대인이라더니 결국 프로이트도 원한에 섞인 증오를 감행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게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세속화된 유대인으로서, 그리고 종교란 극복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로 보는 인간에게 그런 의문은 자칫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프로이트 역시 "기독교는 인간이 이룬 하나의 진보였고, 이때부터 유대교는 화석으로 전락했다."[각주:41]고 지적한 바 있다.

     바울뿐만 아니라 프로이트는 복음서에 대해서도 메스를 가했는데, 이 부분은 아주 짧지만 빛나는 통찰을 지니고 있다. 그에게 복음서란 사람들을 반유대주의에 오염시켜 유대인에게 원한을 퍼붓게 한 주범이다. "복음서가 유대인 사이에 있었던 일, 오로지 유대인만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원한의 전이를 훨씬 용이하게 만들었다."[각주:42] 하지만 원한의 전이보다 좀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복음서가 순전히 유대인만 다루고 있다는 프로이트의 통찰이다. 왜냐하면 어쩌면 이것은 프로이트가 기독교 경전이란 폭력이 배제된 깨끗하고 순수한 영성적 언어가 아니라 논쟁적이며 배제와 차별이 담긴 담론적 투쟁의 장소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경전이 하나의 투쟁의 장소라는 점은 큄멜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유대교와 관련한 논쟁으로서의 경전에 관한 논의는 아니지만 말이다.[각주:43]


마르시온이 이미 바울의 경전적인 권위를 확립했다고 하는 사실은 틀림없이 이미 교회 내에 있는 경향, 즉 사도적인 문헌들을 복음서의 문헌들과 같은 수준에서 평가하고, 이러한 새로운 성경을 분명하게 구분하려고 하는 경향을 아주 정확하게 강화해준 것뿐이다. 이러한 발전은 몬타너스주의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와 사도들에게서 계약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성에 의해서 더욱더 요구되었다.


     마르시온과 몬타너스주의 뿐이었겠는가. 그렇지 않다. 페이절스는 『숨겨진 복음서 영지주의』에서 네 가지 복음서를 주장하는 정통파의 주장이 영지주의를 배제하려는 시도였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정통파가 주장하는 사도적 승계는 경전의 형성을 도모하는 주된 논지였고, 정통파 자신들이 인정한 신약성서만이 "미래의 모든 교리와 형식을 결정하는 정전"[각주:44]이라고 믿었고, 이로 인해 신약성서 안에 있는 "네 가지 복음서 이외에 어떠한 복음서도 인정하지"[각주:45]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복음서가 유대인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기에 원한의 전이를 일으키는 텍스트라는 프로이트의 지적은 『신앙과 형제살인』이라는 류터의 책에서 직접적으로 확인된다. 게다가 류터의 이 책은 희생제의의 위기에는 쌍둥이/짝패에 관한 담론이 출몰한다는 지라르의 논의를 멋지게 보여주는 책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자기정립의 행위로서 아버지 유대교에 대해 아들 기독교가 행한 살해를 이만큼 잘 보여주는 책은 흔치 않을 것이다. 들어보도록 하자.[각주:46]


우리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죽음에 대한 비난을 로마 정치 당국으로부터 유대인의 종교적 지도자들에게로 전이시키려는 욕구가 복음서에 두드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 역사가들은 대개 이러한 이유를 이방 선교의 긴박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 그러나 중요하게 지적되어야 할 점은 책임 전가가 단순히 로마당국으로부터 유대 당국으로 넘겨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부터 종교적 당국으로 넘겨진 것이다. … 이것은 이 책임 전가의 목적이 단순히 이방인들에 대한 변증적인 목적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유대 종교적 전승에 대한 논쟁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변절한 이스라엘의 종교당국은 항상 예언자들을 살해했으며, 따라서 대메시아적 예언자를 죽임으로써 그 배교적 유산의 정점을 이루었다는 사상은 모든 복음서 안에 들어 있는 대부분의 이야기 방향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복음서만 이 지경일까? 사실 반유대주의가 아닌 다른 관점을 동원하더라도 문제가 돌출하지 않는 것은 없다. 뤼드만은 신약성서의 다른 본문들이 불관용을 조장한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각주:47] 윌스 역시 신약성서에는 그들과 우리를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가 깊게 스며있다고 주장한다.[각주:48] 그렇다면, 기독교 경전인 신약성서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반유대주의 및 불관용을 설파하는 신약성서의 어떤 이야기들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만 하는가?

     불행하게도, 이것은 단순히 경전의 문제만이 아니다. 게르드마에 따르면 역사비평적 성서연구의 초기에 속하는 제믈러로부터 불트만을 거쳐 그룬트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학자들이 앞서 본 르낭처럼 유대교에 대한 복음서의 폭력적 서사를 암묵적으로 승인했음을 보여준다. [각주:49]수잔나 헤셀은 히틀러 시대에 망령처럼 떠돌아다니던 아리안 우월주의에 맞게 기독교 신학을 개작하고, 그럼으로써 유대인 학살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고만 신학자들을 추려내어 적극적으로 비판했다.[각주:50] 때문에, 미쓰오의 다음과 같은 말은 핵심을 찌른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각주:51]


지금까지는 신약성서에 나타난 유대교에 대한 비판적 경향이, 기독교의 많은 성서해석에서 무비판적으로 계승되어 신약성서 전체의 해석을 위한 단서로 여겨졌습니다. 아직까지도 신약성서의 이러한 비판을 기독교적· 신학적으로 본질적(W. 윌켄스)이라고 언명하는 신약학자도 없지 않습니다. 신약성서의 반유대교적 발언이 기독교 신학에 던지는 문제에 정면에서 답하려는 시도는 지금까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 아우슈비츠 이후의 신학이 화제가 되기 시작한 이후, 겨우 최근에 이르러 조직신학 차원뿐 아니라 성서신학의 차원에서도 이 문제가 다루어지게 되었습니다.”[각주:52]는 미쓰오의 지적은 기독교 신학이 반유대주의를 성찰하고 청산하기가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객관적인 학문을 수행한다는 전제 하에 행해진 작업들 가운데서도 유대교를 비방하고 저주했던 루터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태반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역사적 예수 연구 제 3의 탐구시기 이전까지는 그랬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다. 예수의 성전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특히 율법과 관련한 논쟁들은 역사적 예수가 아닌 교회의 시기를 반영하는 논쟁이라고 못 박은 샌더스의 저작 『예수와 유대교』 이래로 이 분야에서 나름의 반성이 생겨났던 셈이다. 훌륭하게도, 샌더스는 “보다 납득할만한 가정은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행한 그들의 일이 하나님에 대한 참된 봉사로 보았다는 것과 바리새인들이 진심으로 그들이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 그들도 모두가 정상에 오르고자 원했고, 그것을 확고히 하기 위해 합리적인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바리새인과 맞선 논쟁을 보다 면밀히 검토할 경우, …그들의 실제적 동기에 관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각주:53]고 말했다. 물론 그 이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일어났던 유대교에 대한 천주교의 반성도 빠질 순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각주:54]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천주교는 놀랍게도 유대교에 대한 선교 자체를 포기하는 선언을 감행하기까지 했다. 독일 개신교도 이런 선언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유대주의적 시선이 신학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성서해석학의 역사에 대한 고찰의 결론으로서 동시에 버트챌의 말을 인용하면서 티슬턴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각주:55]


버트챌에 따르면 많은 영역에서 학자들을 혼란시키는 지점은 개별적 인간의 사건이 하나님과 인간의 연계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뿌리에 있는 문제는 성육신이다. 우리는 가현설과 아리우스주의를 동시에 피해야 한다.


     따라서 여전히 기독교 신학에 내재해 있는 이런 배제적인 해석학적 작업을 참조한다면, 경계인으로서 프로이트가 수행했던 작업은 꽤 의미 있는 과제를 던져준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경전에 박힌 타자를 배제하는 언어들에 함몰되어 배타적이고 포괄적인 기독교 승리주의를 발설하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서술된 타자, 정신분석학적으로 본다면, 흔적이 제거되고 왜곡되었을 수 있는 타자를 고려하는 읽기의 가능성을 프로이트가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특히, 혐오와 배제가 경전을 통해 더욱 힘을 얻고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선 말이다.


III. 마치며


     후설은 『데카르트적 성찰』에서 "일상적인 실천적 삶은 소박하며, 그 삶은 미리 주어진 세계 속으로 들어가 경험하고, 생각하고, 평가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 경우 모든 것에서는 경험작용의 지향적 작업수행들이 익명적으로 실행되는데, 이 작업수행들을 통해 사물들은 단적으로 현존하게 된다. 즉, 경험하는 자는 이 작업수행에 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며, 마찬가지로 작업을 수행하는 사유에 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각주:56]고 말 한 적이 있다. 평균적인 보통의 사람들이 자기가 처한 역사적 상황이나 환경을 객관적으로 성찰해서 판단하지 않고, 대체로 상황이나 환경이 제공하는 선입견을 그대로 수용해 해석을 감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퇴락에 빠지기 쉬운 존재이고, 보통은 선입견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인 것이다. 이로 인해 타자는 해석자의 선입견에 의해 포착되고 해석되며 점령당한다. 설령, 비판적 성찰을 거쳐 보편적 인식에 관한 감각을 기른다할지라도, 후설이 설명한 바와 같이, 인간이란 우선은 "모나드적 자기인식"을 거쳐야 하는 존재이며 상호주관적 인식은 단지 공감을 통해서만 실행될 뿐이다. 이것은 일상성에 빠져 사는 보통의 인간이 자기를 반성하고 타자를 포용함으로써 자기를 넘는 하나의 보편적 인식과 이해를 획득하기란 쉽지 않음을 가르쳐 준다. 아무튼, “보편적 자기성찰을 통해 세계를 다시 획득하기 위해서는 판단중지를 통해 세계를 상실해야" [각주:57]하지만, 분명히 인간이란 선입견 속에서 움직이며 그것을 토대로 끊임없이 판단을 수행하는 존재다. 하이데거식으로 고친다면, ”해석은 그때마다 하나의 앞서 가짐에 근거하고“[각주:58] 있는 어떤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살펴본 유대교에 대한 기독교적 자기 이해는 후설에 따르면, 타자를 고려한 상호주관성이기보다는 기독교적 자아에 의해 구성된 일종의 모나드적 자기인식일 것이고, 하이데거라면 기독교적 앞서 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프로이트를 따라 정리해 본다면, 이런 모나드적 자기인식 혹은 앞서 봄은 이미 반유대주의적 색채가 담긴 현상이었고, 이 현상이 반영된 아버지 유대교 살해에 관한 이야기들이 유포될 수 있도록 해준 원동력이었으며, 복음서 저자들은 자신들 보다 앞서 유포되고 있던 이런 이야기들을 자신들의 신학적 구상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하고 심화시켰고, 그리고 이를 통해 들어서게 된 원한과 증오가 다른 민족들에게로까지 전파되고 만 역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로 인해 기독교 초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대인을 향한 박해가 지속적으로 있어왔고, 최후엔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학살이 자행되었음을 상기하면, 오늘날 전투적 무신론자들이 추천하는 바와 같이 단순한 하나의 신화적 이야기로만 치부하고 끝내기엔 너무나 비극적이고 무서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심각하게는 이러한 비극이 다른 형태로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들이 얼마나 많이 타자들을 향한 혐오를 쏟아내고 있는가. 여성안수, 동성애, 이슬람 등과 같은 이슈와 관련해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담론들을 무수히 양산해내고 있다. 세월호와 관련해서도 어처구니가 없는 설교를 한 교회들도 상당한 수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과연 이 모든 일들이 성서를 잘못 해석한 인간들 탓에 생겨난 것일까? 그렇게만 본다면 너무 안일한 인식이 아닐까? 복음서에 나타난 반유대주의를 초점 삼아 지금까지 논의를 진행해 온 이유도 타자와 관련해 오늘날 교회들이 쏟아내는 혐오적인 발언이 이것과 무관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복음서 자체가 이미 유대인이라는 타자를 정의하고 대처하는 방식들과 관련해 다소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쪽으로 가르쳐 주고 있기에, 유대인이 아닌 다른 타자들에 대해서도 혐오와 배제를 실행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었다. 때문에, “차이는 있어도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모두가 거룩한 경전에 너무 많은 권위를 부여하는 위험을 안고 산다.”[각주:59]는 폴마이어의 지적은 한국 교회의 현실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는 게 아닐까. 경전이 제공하는 배타성에 함몰되어 타자를 배제할 위험성이 너무 많은 것이다. 더욱이 근본주의적 성서 이해가 판을 치는 이 사회에선 더욱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해석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본 것처럼 성서 자체에 이미 타자에 대한 배제의 담론이 투영되어 있다면, 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의 답변으로 프로이트적 독법을 제안한 것이 고작이라 자괴감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다원적이고 개방된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이런 독법이 최선이지 않을까.


ⓒ 웹진 <제3시대>



  1. 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 김진식․ 박무호 옮김, 민음사, 1997, pp.483~484 [본문으로]
  2. 정일권, "르네 지라르 '십자가 승리' 주목하라",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92703 [본문으로]
  3. 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김진식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4, pp.230~231 [본문으로]
  4. 정일권, "르네 지라르 '십자가 승리' 주목하라",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92703 [본문으로]
  5. 르네 지라르, 『희생양』, 김진식 옮김, 민음사, 1998, p.17 [본문으로]
  6. 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 p.25 [본문으로]
  7. 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p.240 [본문으로]
  8. 르네 지라르, 같은 책, p.226 [본문으로]
  9. 정일권, "르네 지라르 '십자가 승리' 주목하라",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92703 [본문으로]
  10. 윌터 윙크,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한성수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p.250 [본문으로]
  11. 윌터 윙크, 같은 책, p.249 [본문으로]
  12. 포이에르 바하,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강대석 옮김, 한길사, 2006, p.130 [본문으로]
  13. 포이에르 바하, 『기독교의 본질』, 강대석 옮김, 한길사, 2008, p.141 [본문으로]
  14.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학』, 홍성광 옮김, 연암서가, 2011, pp.61~63 [본문으로]
  15. 프리드리히 니체, 같은 책, p.61 [본문으로]
  16. 레너드 스위들러, 앞의 책, pp.230~231 [본문으로]
  17. 이스마 엘보겐, 『로마제국에서 20세기 홀로코스트까지 독일 유대인의 역사』, 서정일 옮김, 새물결, 2007, p.115 [본문으로]
  18. 이스마 엘보겐, 앞의 책, p.115 [본문으로]
  19. 르네 지라르, 『희생양』, p.189 [본문으로]
  20. 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p.225 [본문으로]
  21. 포이에르 바하, 『기독교의 본질』, p.401 [본문으로]
  22. 윌터 윙크, 앞의 책, p.251 [본문으로]
  23. 존 브라이트, 『이스라엘의 역사(하)』, 김윤주, 분도출판사, 1979, pp.358~359 [본문으로]
  24. 존 브라이트, 앞의 책, p.359 [본문으로]
  25. 데이비트 스태포드 클라크, 『한권으로 읽는 프로이트』, 최창호 옮김, 푸른숲, 1997, p;.245 [본문으로]
  26. 지그문트 프로이트, 『종교의 기원』,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05, p.257 [본문으로]
  27. 지그문트 프로이트, 앞의 책, p.267 [본문으로]
  28.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책, p.261 [본문으로]
  29. 지그문트 프로이트, 앞의 책, p.270 [본문으로]
  30.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책, p.281 [본문으로]
  31.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책, p.305 [본문으로]
  32.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책, p.307 [본문으로]
  33.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책, p.362 [본문으로]
  34. 재클린 로즈,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응답」, 『프로이트와 비유럽인』, 주은우 옮김, 창비, 2003, pp.99~100 [본문으로]
  35. 재클린 로즈, 앞의 책, pp.100~103 [본문으로]
  36. 에드워드 사이드, 『프로이트와 비유럽인』, pp.80~83 [본문으로]
  37. Julius Wellhausen, Einleitung in die Drei Ersten Evangelien, Berlin: Druck und Verlag, 1905, pp.108~115 [본문으로]
  38. 미리엄 레너드, 『소크라테스와 유대인』, 이정아 옮김, 생각과 사람들, 2014, pp.333 [본문으로]
  39. 지그문트 프로이트, 『종교의 기원』,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05, p.366 [본문으로]
  40.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책, pp.366~367 [본문으로]
  41. 지그문트 프로이트, 앞의 책, p.367 [본문으로]
  42.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책, p.371 [본문으로]
  43. W. G. 큄멜, 『신약정경개론』, 박익수 옮김, 대한기독교출판사, 1988, p.493 이와 관련해 바트 어만의 책, The orthodox Corruption of Scriptur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3은 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 [본문으로]
  44. 일레인 페이절스, 『숨겨진 복음서 영지주의』, 하연희 옮김, 루비박스, 2006, p.62 [본문으로]
  45. 일레인 페이절스, 같은 책, p.61 [본문으로]
  46. 로즈메리 류터, 『신앙과 형제살인』, 장춘식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1, pp.124~125 일레인 페이절스는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서가 반유대주의와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긋는다. 이에 대해서는 사탄의 탄생, 권영주 옮김, 루비박스, 2006, p.52를 참조하라. 하지만 뤼드만은 마가복음서에서 수난사화는 반유대주의적 성향이 스며있다고 지적한다. Gerd Ludemann, The Unholy in Holy Scripture, trans by John Bowden, Louisvill: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7, pp.85~90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47. Gerd Ludemann, Intolerance and the Gospel, New York:Prometheus Books, 2007 [본문으로]
  48. Lawrence Wills, Not God's People, United kingdom:Rowman& Littlefield Publishers, 2008 [본문으로]
  49. Anders Gerdmar, Roots of Theological Anti-Semitism: German Biblical Interpretation and the Jews, from Herder and Semler to Kittel and Bultmann, Leiden: Brill, 2009 [본문으로]
  50. Susannah Heschel, The Aryan Jesus,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8 [본문으로]
  51. 미야타 미쓰오, 앞의 책, p.50 [본문으로]
  52. 미야타 미쓰오, 같은 책, p.49 [본문으로]
  53. E.P. 샌더스, 『예수와 유대교』, 황종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8, p.458 [본문으로]
  54. 이와 관련해 펠리칸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어떠한 때 어떠한 자료이든, 가령 그 자료가 로마카톨릭 교회의 과거 공적인 자료를 포함하더라도 유대인에 대한 증오, 박해, 또 반유대주의의 표명을 슬퍼한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또 예수의 죽음을 당시 살았던 모든 유대인이나 현재의 유대인의 탓으로 돌리는 일체의 시도를 단죄하고 유대인을 하나님이 부정하고 저주한 자들로 여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였다.”는 점을 기술하고 있다. 야로슬라프 펠리칸, 『예수의 역사 2000년』, 김승철 옮김, 동연, 1999, p.364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55. 앤서니 티슬턴, 『앤서니 티슬턴의 성경해석학 개론』, 김동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2, p.528 [본문으로]
  56. 에드문트 후설, 『데카르트적 성찰』, 이종훈 옮김, 한길사 2002, p.227 [본문으로]
  57. 에드문트 후설, 앞의 책, p.233 [본문으로]
  58.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이기상 옮김, 까치, 1998, p.208 [본문으로]
  59. 잭 넬슨-폴마이어, 『예수를 배반한 기독교』, 한성수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12, p.147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무신론자의 믿음

: Post Human, Post Religion 시대의 믿음에 관하여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Science and Religion


   필자는 2014년 여름, 10년간의 시카고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미국유학을 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인상은 각 분야에서 Interdisciplinary Study(한국말로는 학제간 연구, 융복합 등으로 번역되는)가 상식처럼 보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미국 학계는 시대적 요청, 자본의 논리, 학문의 발전 등 갖가지 이유를 들이대면서 온갖 경계를 넘나들며 학제간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고, 그 결과 놀라운 성과물들이 학교로, 도서관으로, 그리고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비교적 보수적인 신학분야도 이러한 시대적 요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데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종교와 과학간의 대화가 아닐까 싶다.   

    미국내에서‘Religion & Science' 분야의 최고 연구기관 중 하나이자 정기적으로 기관지를 발행하는 ‘Zygon Center for Religion and Science’ Zygon 웹싸이트_ http://zygoncenter.org/ (줄여서 그냥 Zygon이라 부름)이 시카고 루터란 신학교(The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 내에 있다. Zygon의 운영자이자 미국 '종교와 과학' 분야의 대부격 되는 인물 중 한분이 지금은 은퇴한 Philip Hefner이다. 훼프너 교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GTU에 있는 테드 피터스(Ted Peters)와 러셀(Robert John Russell), 영국에서 활동하는 아서 피콕(Arthur Peacocke)과 폴킹혼(John Polkinghorne), 그리고 얼마 전에 타계한 이언바버(Ian G. Barbour) 등과 더불어 신학계 내에서 ‘종교와 과학’을 선두에서 이끌었던 인물이었고, 특별히 인간을 하나님과 함께 Co-Creator 지위로 까지 부상시켜 생태신학의 기반을 제공했던 중요한 학자이기도 하다. 훼프너 교수 강의를 들을 때 한국에서 번역된 그의 책을 가지고 가서 겉표지에 싸인을 요청한 적이 있다. 너무 신기해하면서 기쁘게 웃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테드 피터스가 편집을 맡아서 출간된 Science and Theology: The New Consonance (Westview Press, 1998)가 한국에서『과학과 종교: 새로운 공명』(동연, 2002)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 책에 필립 훼프너 교수의 논문인“생명문화적 진화와 창조된 공동 창조자”가 실려있다.      

   나는 시카고에서 석사과정 수학하면서 훼프너 교수가 개설하는 'Epic of Creation’(2005년)과 ‘Science & Ethics’'(2006년) 두 과목을 수강했었다. ‘Epic of Creation’(번역하면 ‘창조의 새 기원’쯤으로 해석되는)시간은 시카고에 있는 유수한 대학의 천문학자, 물리학자, 분자생물학자, 진화 생물학자들을 초빙하여 우주의 창조 혹은 진화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신학적 의제의 폭을 넓히는 시간이었다. 빅뱅에 대한 이론을 과학자들이 설명하고, 그 다음에는 구약학자들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음 시간에는 신약학자들이 신약성서에 나오는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 다음 시간에는 물리학자들의 엔트로피에 대한 해설을 듣는다. 이런 식으로 한 학기 내내 창조부터 종말까지 과학과 신학에서 다룰 수 있는 폭넓은 이슈들에 대한 논의들이 현란하게 펼쳐지는 수업이 바로‘Epic of Creation’이었다.


'뇌 과학'으로 바라본 Post Human의 쟁점들


   ‘Epic of Creation’을 마치고 다음 학기에 (2006년 봄 학기) 나는 회프너 교수가 진행하는 ‘Science and Ethic’을 계속 수강 신청해서 세미나에 참여하였다. 특별히 그해는 회프너 교수가 은퇴를 하던 해였던지라 대가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 그 수업은 과학의 발전에 따른 윤리적 이슈들을 다루는 수업이었는데, 인간복제, 핵, 가상공간, 기술문명, 환경, 뇌 과학 등의 주제들에 대한 윤리적 담론 형성을 목표로 디자인 되었다.  

    ‘뇌 과학과 윤리’를 다루는 내용은 학기 후반부에 배치되었다. 시카고 대학 의대에서 뇌신경을 가르치는 교수가 와서 수업의 반을 책임졌고, 응용윤리학을 강의하는 교수가 나머지를 담당했다.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마음과 감정의 매커니즘을 알아버린 지금, 이러한 지식이 인간의 윤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를 탐구하는 것이 강의의 주된 목적이었다. 교수는 수강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 “9.11 같은 끔찍한 기억을 선택적으로 지울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녀들의 기억력과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약을 먹고 뇌의 특정 부위에 대한 시술을 받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뇌과학에 의하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시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도덕적 의지와 직관은 무엇으로 보장받는가?” 그 강의는 이처럼 뇌과학의 발전에 따라 등장하는 다양하고 묵직한 윤리적 함의들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하여 전통적 규범윤리학에 함몰되어 있던 나에게 윤리적 혼란을 불러일으켰던 시간이었다.

    뇌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인지능력이 일어나는 회로를 파악하게 하였고, 그 지식을 토대로 인지능력의 개발과 보충을 가능케 하였다. 근육을 늘리고 강화하기 위해 무슨 약물들을 복용하는 것처럼, 기억력, 창의력, 감수성을 자극하는 방법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결국, 문제는 어디까지 뇌 과학의 발전을 허용할 것인가? 인데, 이 물음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인 문제와 최종적으로 조우한다. 왜냐하면 뇌 과학의 적용이 인간 조건에 대한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아픈 기억을 지워버리고, 호르몬 분배를 장악하여 인간의 감정과 기분을 통제, 조절하게 되면 인간이 어떻게 될까? 과연 인간 마음 깊숙이에는 변하지 않는 정신의 숭고한 무엇이 있고 그것으로 인해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지배받는 것이 확실한가?

    그 밖에도 뇌 과학과 윤리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산적하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뇌의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발전이 그동안 전통적으로 간주되었던 인간의 이성, 감성, 자유의지 등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그 결과 발생할 사회적, 윤리적, 철학적 딜레마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문제가 그것인데, 미국 내에서 뇌 과학과 윤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를 크게 두 분야로 나누는 것 같다.

   뇌 과학과 윤리를 다루는 개론적인 미국 책들을 읽을 때 두 가지 용어가 등장하는데, 하나는 ethics of neuroscience이고 다른 하나는 neuroscience of ethics이다. 전자는 ‘뇌과학의 윤리학’이고, 후자는 ‘윤리학의 뇌과학’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데 굳이 분류하자면, ‘뇌과학의 윤리학’은 뇌과학적 지식을 인간에게 적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절차의 문제들에 관심한다. 따라서 뇌 과학 자체의 윤리적 수행의 문제, 뇌 과학 연구자들의 행위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다룬다. 반면, ‘윤리학의 뇌과학’은 전통윤리학에서 다루어 왔던 윤리적 이슈, 예를 들어 자유의지, 선의지, 도덕성 등이 뇌과학의 등장으로 어떻게 다시 규정되는지? 에 대한 연구다. 즉 인간의 도덕적 행위에 대한 새로운 뇌 과학적 정의 혹은 버전이랄까. 윤리학 교과서를 뜯어서 다시 써야할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뇌 과학자들을 윤리학자들에게 넌지시 농을 건다.

    미국 학계에서는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뇌 과학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학제간 접촉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뇌 과학이 지니는 이런 저런 염려 때문에 뇌 과학에 대한 통제를 해야 한다는 기독교 우파진영의 목소리도 있는 것 같고, 뇌 과학의 발전으로 예상되는 우리 삶의 변화된 모습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가십성 기사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양식있는 학자들은 차분히 여러 각도에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성찰하면서 천천히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Post Human : 다시, 인간을 묻다


    결국, 뇌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근심과 걱정, 전망과 희망의 최종 종착점은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물음으로 귀환한다. 우리는 어떻게 다시 인간을 정의해야 할까? 뇌 과학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엄격히 말하면‘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가?’로 바꿔써야 맞다. 뇌 과학 이론에 따르면 마음은 뇌에서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뇌 활동의 산물이라고만 국한 시킬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제기에 맞서 뇌 과학자들은 ‘육화된 마음이론(emboded mind theory)’과 ‘확장된 마음이론 (extended mind theory)’을 주장하기도 한다. 전자는 인간의 마음이 온몸을 통해 형성된다는 이론이고, 후자는 더 나아가 인간의 마음이 뇌와 몸뿐만이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이론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의 마음은 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우주 전체가 우리의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된다. 만약 그렇다면, 윤리적 문제는 또 다른 양상에서 전개된다. 외부와 맺는 관계의 양상, 관계의 법칙으로 확대된다는 말이다. 즉 나와 다른 타자와의 접속과 교감의 능력이 마음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또 한 가지 간과 할 수 없는 것은 기억의 문제이다. 뇌 과학에서는 기억을 지우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언젠가는 공상과학 영화 <블레이드러너>에서처럼 기억을 심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으로 딸을 잃은 부모에게서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기억을 지우고, ‘딸은 성장하여 멋있는 남자를 만나 미국으로 유학갔고 지금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 라는 기억을 새로 심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사위에 대한 설명, 미국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자료, 딸의 연애과정, 결혼식 풍경, 공항에서의 이별 등 지금 살아 미국에 있는 그 딸에 대한 수많은 기억이 함께 구성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억이란 단편적인 것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은유와 환유의 고리와 연쇄를 따라 통합적으로 구성되는 사건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의 총합이 마음을 직조하고 그러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뇌과학에서 말하는 기억을 삭제하는 것이 가능하여 실제로 누군가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쓰라리고 고통스런 과거, 혹은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사건들의 기억을 지워버리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만약 이런 기술이 완성된다면 사람들은 괴로움을 잊고 평생 평안한 기분으로 살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아픔과 괴로움을 모르는 세상, 그런 세상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없는 세상일 것이고 아픔에 대한 연민도 소용없는 세상일텐데, 타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게 되는 그 세상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그들은 이제 공적인 가치를 상상하지 않으면서 정신과 양심의 가위눌림에도 반응하지 않는 쿨한 인간들이다. 그 어떤 충격과 놀라움이 밀려와도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간혹 쨉을 날리면서 자기만을 보호할뿐이다. 그들은 이제는 반성과 실천의 자 글이 다소 비관적인 관점으로 흐른 것 같은데,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뇌 과학이 지니는 부정적 요소가 아니라, 뇌 과학의 발달은 전통적 도그마에 갇혀있었던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 그리하여 다시‘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정직하게 대면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의 인간은 어떻게 자리매김 될까? 솔직히 별로 유쾌하지 않은 상상이지만, 우리는 이 불쾌와 낯설움을 뱀과 같이 지혜롭게 긴 호흡으로 건너가야 한다. 지금까지 나는 뇌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등장하는 Post Human 시대의 문제들에 대해 잠시 살펴보았다. 인간種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도모되는 Post Human 시대에 인간 마음의 총합이라 할 수 있는 종교 또한 Post Religion 의 단계로 진입하였다고 한다면 너무 불손한 발언일까?

    문득 지금 이 순간 그동안 스쳐지나갔던 숱한‘Post-’담론들이 떠오른다. Post Modernism, Post Structualism, Post Marxism, Post colonialism, Post Feminism, Post Human, Post Religion 까지... 왜, 이리도 많은 Post 담론이 그동안 존재했고 지금도 끊임없이 생산되는 것일까. 대부분의 Post 담론에 깔려 있는 정서는 불만과 불안, 그리고 위기의식이 아닐까 싶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에 대한 위기의식이고, 포스트 맑시즘은 정통 맑스즘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나왔다. 탈구조주의 역시 구조주의가 담지 못하는 의미의 결핍 혹은 균열에 주목한다. Post Human 담론도 테크놀러지의 발달로 인해 새롭게 창조되는 인간種에 대한 불안과 위기감으로부터 나왔고, 지금부터 다룰 Post Religion 역시 인간 삶의 조건이 바뀌는 격동속에서 인간의 믿음을 다시 응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종교의 위기라 부를 수 있겠다.


Post Religion이란?


    하지만 돌이켜보면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모든 종교는 현실에서 위기의 종교였고, 그래서 어느 시대건 종교는 항상 위기의 한복판에 자리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만 봐도 그렇다. 예수의 자리가 공백으로 남겨진 이후 역사적 그리스도교는 항상 위기의 연속이었고, 교회는 항상 위기의 공동체였다. 초대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중세 교회 역시 표면적으로는 강한 도그마가 세상을 짓누르고 있었겠지만서도 그 수면 아래에서는 변혁에 대한 꿈과 상상을 욕망하면서 위기를 잉태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500년 전에 발생했던 종교개혁은 여러 가지 긍정적. 부정적 평가가 있겠지만 어쨌든 중세천년의 교회전통에 대한 반동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카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엄청난 위기의 현상학이었다. 고중세가 지녔던 온갖 신화와 미신과 주술에서부터 탈출한 근대는 또한 종교적으로 볼 때 얼마나 위기의 시대였나? 막스 베버는 이런 근대를‘주술과 신화로부터 벗어난 시대’라 평했을 정도다. 뮈토스에서 로고스로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종교는 이신론에 입각한 자연종교의 경향으로 흘렀고, 유럽의 사회가 사회계약설에 입각해 급격하게 시민사회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종교는 시민종교로 탈바꿈하게 된다. 종교적 권위와 신적인 주술로부터 탈피한 근대는 어쩌면 역사상에서 종교적 파국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자본주의의 등장은 새로운 유사종교의 등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자본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사물의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전환시키는 시스템이다. 즉 사물이 지녔던 그 자체로서의 가치가 시장성으로만 평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인간 역시 그렇게 효용성의 원칙과 교환성의 원칙에 따라 서열화 되었다. 자본주의의 도래 전까지 인간을 지배했던 양식들, 예를 들어 우리의 전통, 관습, 역사, 윤리, 명예, 사랑, 대의, 양심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앙까지도 자본주의는 화폐의 양으로 전환시켜 버렸다.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전환시키는 자본 특유의 마력 앞에서 각각이 지녔던 개별적 가치들은 화폐의 양에 따라 서열화 된 것이다. 모든 질적인 차이를 냉소하고 화폐의 양으로 등가시켜 버리는 자본주의 정신은 기존의 세상 법칙과 질서를 새롭게 바라보는 종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렇듯 매 시대마다 Post Religion을 둘러싼 논의는 존재했었고, 이는 당대의 종교 위기상황, 혹은 위기의 종교에 대한 대항 혹은 대응 담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Post Religion 논의가 지금 막 등장한 Hot하고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이 종교생활을 시작하던 무렵부터 현재까지, 종교의 위기가 운운되는 당대의 삶과 질서 가운데 늘 가시처럼 존재했던 것이 Post Religion 논의였고, 당대가 지녔던 종교적 위기를 전제하면서 그 위기에 대한 답변과 대안을 상상하고 제안하고자 했던 것이 Post Religion 담론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 자본에 대한 전 지구적 재편이 완료된 상황속에서, 21세기 Post Human 논쟁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세계속에서 종교란 무엇인가?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한 온갖 기괴한 내공들이 인간정신의 흐름과 마음의 법칙을 발견하면서 그것들에 대한 조작과 변형이 가능해진 세상속에서 인류는 현재 인간種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믿음이란 무엇일까?


믿음에 대한 커밍아웃(Coming Out)


    얼핏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21세기 믿음에 대한 물음은 이미 전 시대에 한 차례 홍역을 치룬바 있다. 니체가‘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했던 충격적인 대목에서 우리는 이미 종교적 파국을 경험하였다. 21세기 믿음에 대한 문제로 본격적으로 접근하기 전에 잠시‘신의 죽음’이 선언되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보자. 흔히 정신분석학이나 문화인류학에서 대타자 아버지는 기존의 질서와 법과 가치에 대한 상징으로 묘사되곤 한다. 엄마로 부터 전적인 사랑을 받아왔던 아이는 생의 어느 한 지점이 지나면서부터 밀려오는 불쾌와 공포에 눈뜨게 되고 그것의 원인에 대해 알아가다가 마침내 엄마의 정부인 아버지와 대면한다. 아버지로 상징되는 상징세계(the Symbolic)와 맞닥뜨리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아이에게 있어 엄마가 당근이라면 아버지는 채찍이다. 아이는 엄마의 사랑과 아버지의 훈육을 먹고 자라면서 정상적인 성인으로 성장하는데......이것이 정신분석학으로 풀어쓴 범박한 인류학이다.

    신은 서구인들의 집단무의식에서 아버지로 상징되는 법과 질서와 도덕의 원형과도 같은 존재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의 죽음에 대한 니체의 발언이 충격적인 것이다. 하지만, 니체가 진정 의도했던 것은‘신의 죽음’에 대한 선언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는 모두가 성인(成人)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더 이상 신율(神律)이 작동되지 않는 허무의 상황속에서 인간 삶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묻고 싶었다. 신이 사라진 이곳에서 어떻게 우리는 다시 사회를 조직하고 공동체를 재건할 수 있을까. 그럴 경우 법은 무엇이고 그 법의 권위는 무엇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가. 대타자가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고 대타자의 균열을 감지한 자식이,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한 자녀들이 어떻게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이라도 한 것일까. 이것이 바로 근대의 비극성이 확인되던 무렵 니체에 의해 제기된 ‘신 없는 세상 속에서의 믿음’을 둘러싼 문제제기다.

    대타자 신의 죽음이 선포되고, 틈이 없어 보이던 실재에 균열이 생기고 빗금이 그어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니체 이후 사람 인간들은 비록 커밍아웃은 안했지만 무신론자가 되어버린 것 아닐까. 대타자로서의 역할을 하던 기독교의 神 대신에 서양에서는 힌두교, 불교, 도교에서 영향을 받은 명상, 힐링, 마음수련, 요가 같은 수행프로그램들이 확산되고 있고, 종교적 대상에 대한 숭배대신 스포츠, 연예인, 정치인에 대한 팬덤이 더 강력한 신도들을 거느린다. 최순실 국정농단에서 드러났듯이 줄기세포 주사, 태반주사 등 온갖 첨단 의료기술을 이용한 성형과 생명연장의 욕망은 이제 우리시대 믿음이 되어버렸다.

    이런 현상들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것은 어쩌면 우리시대 믿음의 문제는 무신론자들의 믿음, 무신론자들의 신앙으로 수렴되었다는 점이다. 오직 자본의 명령만이 유일한 정언명령이 되어버린 21세기 세상속에서 그 명법에 철저히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는 무신론자 아닌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Post Human을 꿈꾸는 우리는 유물론자라고 해야 맞지 않나. 이 보다 더 어떻게 무신론자일 수 있겠고, 이보다 더 어떻게 유물론자일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슬라보예 지젝의 지적은 날카롭다.

   지젝은“오늘날에는 오직 무신론자들만이 기도를 할 것” 이라고 말하면서 무신론자의 믿음을 논한다. 그리고 이들의 신앙패턴을 “믿음 없는 신앙(Faith Wihtout Belief)”이라 정의한다. 지젝의 이러한 발언은 어떤 의미에서는 타당하다. 서울 강남의 대형교회들을 보라. 수백 수천억원대의 교회당을 지으며 신앙을 물적인 양으로 환산하여 드러내 보이는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유물론자들 아닐까. 오히려 신의 존재를 믿지않은 유물론자들이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신학적 논의들을 신학자들보다 더 밀도있게 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유물론자들이 세상에는 물질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무신론자들의 믿음은 무엇일까?


발터 벤야민, '유물론자의 신학'을 낳다.


    현대 좌파 철학자들 가운데 신학적 상상력으로부터 혁명의 기운을 취하려는 사람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다. 자크 데리다, 알랑 바디우, 조르조 아감벤, 야곱 타베스, 슬라보예 지젝 등이 그런 인물들이라 할 수 있을텐데, 이들보다 앞서서 20세기 초반에 벌써 유물론적인 신학, 혹은 유물론자들의 신학을 언급한 섹시한 사상가가 있었다. 그가 바로 발터벤야민이다.

    벤야민이 활동하던 20세기 초반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그들의 광기로 자행된 세계대전이 창궐하던 때였다. 이러한 시기에 벤야민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공히 취급되는 메시아담론을 유물론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혁명을 위한 정치술로 제안하였다. 벤야민은 자신의 유명한 소논문 <역사철학테제>에서 신학과‘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의 결합을 동화와 같은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난쟁이 곱추로 그려진 숨어 있는 신은 메시아 혹은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으로 상징된다. 우리의 상상속에서 빛나는 메시아의 모습, 혹은 지난 역사에서 유토피아 건설을 가열차게 주장했던 혁명전사들의 늠늠한 모습에 비하면, 난쟁이 곱추로 묘사된 숨어 있는 신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이렇듯 벤야민이 말하는 메시아론은 기존 메시아론과는 다른 느낌을 우리들에게 선사한다. 거기에는 벤야민 나름대로의 계산이 깔려있다.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인류는 유토피아를 주장했던 많은 이들과 만나왔다. 그들은 본인들의 종교적 확신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념에 빠져 자신을 불살랐던 강철과도 같은 이들었다. 하지만,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몇몇 실험들이 디스토피아로 변했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우파 유토피아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나치일 것이고, 좌파 유토피아의 실패는 스탈린으로 상징되는 교조주의적인 공산주의가 아닐까 싶다. 기독교의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이 불러일으켰던 만행에 대해 이 자리에서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는 않다. 십자군전쟁, 종교개혁에 이은 각종 종교전쟁들, 서구 열강의 식민지 개척과정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진 만행들은 모두 유토피아를 내걸고 진행된 디스토피아 역사였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통해 다시한번 깨닫는 것은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없는 세상’혹은 ‘도래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유토피아에는 ‘부재하나 있어야 한다’는 공리가 또한 공존한다.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과 기대, 그리고 욕망이 없었다면 어떻게 인류가 진보를 거듭해왔겠는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서로 짝패인 셈이다. 존재하면서 부재하는, 부재하면서 존재해야만 하는 운명속에서 우리는 메시아를 어떻게 이해해야하고, 유토피아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 것 일까? 벤야민은 <역사철학테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이 유물론자의 신학을 태동하게 만들었다.


유물론과 신학의 공명


    지난 시절에 만들어진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 혹은, 메시아의 도래를 둘러싼 믿음은 목적론적인 역사관에 영향을 받은바 적지 않다. 목적론적 역사관이 무엇인가. 제1원인과 제1목적이 있고 만물의 변화와 운동은 그들로부터 기획된 순서를 따라간다는 것 아닌가. 그 종착점이 유토피아이고, 유토피아로 견인하는 작자가 메시아이다. 최종 목표인 유토피아는 이미 정해져있고 메시아는 그런 믿음이 깨지지 않도록 현실 속 우리를 강제적으로 그 길로 견인하는 존재라고 한다면 신성모독일까.

    벤야민은 일단 기존의 유토피아 이론과 메시아에 대한 믿음에 의심의 해석학을 들이댄다. 벤야민에게 있어 구원의 때는 미래의 어느 한 지점으로부터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사후적으로 구성되어“지난 세대와 현 세대 사이에 비밀스런 협약이 있다. Our coming(구원을 상징?)이 지구상에서 기대되어 진다. 우리 앞을 살았던 모든 세대처럼, 우리에게도 희미한(약한) 메시아적 힘이 부여되었다. 과거는 그 힘을 요구할 수 있다.” 현재 시간을 충만케하는 시간[Jetztzeit]이다.“역사는 특정한 구조물의 대상인데, 그 구조물의 자리는 단일하고(동일하고) 비어있는 시간이 아니라, Jetztzeit(the presence of the now)에 의해 충만한 시간이다. 그래서 로베스피에르에게 있어 고대 로마는 지금의 시간에 의해 충전된 과거였다... 프랑스 혁명은 스스로를 다시 태어난 로마로 간주하였다.” 벤야민이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이유는 이런 시간관 때문이다. 벤야민의 시간의식은 변증법적 시간관과 다르다. 본래 그것은 과거로부터 시작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해 중단없이 이어지는 시간관이다.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역사관이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아지리라는 기대와 지평속에서 미래를 향해 가슴을 열고 뛰쳐나가는 것이 변증법적 시간관의 특징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벤야민이 “희미한 메시아적 힘”과 “현재시간[Jetztzeit]”을 이야기하면서 기존의 변증법적 시간관에 대해서, 더 나아가 미래에서 기인하는 메시아의 도래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란 지나간 과거의 역사적 순간, 혹은 그것을 통해 현실의 비젼을 보게끔 하는 통로이겠지만, 그것은 기존의 메시아관 처럼 뚜렷한 목적론적 역사의식에 젖어있지는 않다. 그것을 벤야민은 “역사의 자유로운 하늘에로의 도약” Ibid., 261. 이라 표현하였다. 유물론자는 그런 비상을 꿈꾸는 자들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벤야민은 다시한번 논리를 비튼다. 지금까지 의심의 대상이 되어왔던 유토피아는 결코 폐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체스게임 판 앞에 터키풍의 의상을 입고 파이프를 물고 있는 인형이 앉아있다. 이 인형은 게임을 매번 승리로 이끈다. 좀 더 그림을 살펴보면 인형의 배후에는 게임의 명수인 난쟁이 곱추가 있고, 그 둘은 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벤야민은 인형을 사적 유물론으로, 체스의 명수인 곱추를 신학으로 비유한 후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상상을 한다. 신학과 사적 유물론이 제휴하면 “그 누구와도 한 판 싸움을 벌일 수 있다” 고 말이다.

    벤야민의 발언은 Post-Marxism이 걸어가야 할 바에 대한 아포리즘 같은 역할을 하였다. 혁명이 더 이상 번지지 않고 단절된 상황속에서 황망해하고 있는 맑시스트들에게 혁명이란 인간의 하부구조뿐 아니라 그동안 혁명의 요소에서 도외시 되어왔던 인간의 상부구조, 즉 정신, 신화, 무의식, 그리고 종교적 믿음으로까지 그 영역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벤야민의 이런 상상은 이후에 등장하는 유물론자들의 신학을 견인하는데 중요한 모멘템이 되었다. 우리는 결코 유토피아에 도달할 수도 없고, 그러므로 굳이 메시아의 도래를 손꼽아 기다릴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것들은 부재하면서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유물론자들의 갖는 믿음에 대한 고백이라면. 어쩌면 우리는 유토피아를 향해 가는 점근선에 위치하는 존재일는지 모르겠다. 수학에서 목표를 향해 무수히 무한히 접근하지만 닿지 않는 상태의 운동을 점근선이라고 한다지. 유물론자들은 계속 해서 그 점근선을 그리는 행위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고.


21세기 무신론 시대의 믿음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자본의 무한질주가 유일한 삶의 원칙이 되어버린 사회속에서 우리의 신은 맘몬이다. 조물주인 맘몬이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동원하여 인간에 대한 리빌딩에 들어갔고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인류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는다는 기사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시나리오다. 미래를 소재로 한 공상과학영화(혹은 서적)들에서 단골로 등장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SF영화 속 장면들이 실현되고 있는 현실의 상황은 영화에서 봤던 것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고 예민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종교적 감수성이 요구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데리다의 해체론을 신학적으로 풀어 설명하고 있는 존 카푸토(John D. Caputo)는 『종교에 대하여 On Religion』에서 지금 시대의 종교상황을 “Religion without Religion 종교없는 종교” 이라 표현하였다.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화된 종교와 독단적 진리를 해체하는 가운데 새로운 실천적 차원의 진리를 어떻게 세울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것이 카푸토의 과제다. “...the name of God in may post-modern Itinerarium is the name of infinity questionability...나의 포스트모던 순례에서 신의 이름은 무한한 질문가능성이라는 이름이다 ... God is a how, not a what 신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이다.”-Ibid.,134- 135. Post Human 시대를 맞아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을 요청하는 이 시기에 우리는 당연히 변화된 인간상에 걸맞는 종교에 대한 새로운 상상, 즉 Post Religion에 대한 담론을 마련해야 한다. 카푸토‘Religion without religion’은 나름의 답변이라 할 수 있을텐데, 구체적으로 그것을 어떻게(How) 현실의 삶에서 이해하고 적용해야 할런지는 또 다른 문제다.

   카푸토는 어떻게(how)와 관련하여 데리다의 ‘차연’개념을 적용하여 ‘사건으로서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 차연(differance)은 차이(differ)와 지연(defer)의 합성어다. 차연으로서의 신은 세상과 차이가 나는 신이지만, 신의 임재와 도래는 무한히 지연된다. 신은 인간의 믿음, 행위, 고백, 이성적 판단 안으로 수렴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알고있는 이러한 가능성들과 대립하는 불가능한 형식으로 도래한다. 신으로부터 기인하는 사건이란 신의 현재화를 드러내는 표식이겠지만, 한편으로는 현재화 될 수 없는 잉여를 남기며 미끄러져 가는 무엇이다. 사건의 결과 신은 현재화 할 수 없는 절대 미래, 절대 타자의 자리로 내몰린다. 그것이 카푸토로 하여금 “Religion without Religion”을 발설하게 하였고, 그 사건의 이름을‘사랑’이라고 카푸토는 말하고 싶었던 같다. “신의 의미는 사랑의 다양한 움직임안에서 규정된다....사랑은 정의되어야 하는 의미가 아니라 행하고 만들어야할 무엇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각각의 삶의 공간과 조건과 현실속에서 벌어지는 사랑의 사건 속으로 개입할 것을 요청받는다. 

    그런가하면 라깡의 욕망이론으로 바라본 사랑은 파괴적이다:“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불가해하게도, 나는 당신 안에 있는 당신 이상의 어떤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파괴합니다.” 이 경우 사랑은 주체의 대상을 향한 전유, 혹은 집착의 형태가 된다. 이 사랑은 앞만 보고 달려가기에 옆에 있는 이웃을 살피거나 뒤쳐져 있는 타자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만족을 모르고 전방만 주시하는 리비도의 돌진 앞에서 인간은 온전한 향유의 대상에서도, 관심과 배려의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사물로 전락하고 만다. 하지만, 카푸토가 말하는 사랑에 대한 서사는 다르다. 사랑과 욕망의 변증법 안에서는 ‘당신 안에 있는 당신 이상의 어떤 것’이 운동의 동력이 되지만, 사랑과 타자의 법칙성 안에서는 오히려 ‘당신 안에 있는 상처와 결핍’이 사랑의 원칙이 된다. 전자가 자기를 채워나가는 증산의 사랑이라면, 후자는 자신을 비워가는 감산의 사랑이라 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욕망이론 속 사랑이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여전히 그대가 그립다’라고 선포한다면, 카푸토식 사랑은 ‘내 안에 너 있다’라고 속삭이며 그(녀)를 품는다.

    이는 마치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모자이크와 같다. 수많은 파편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을 형성하듯, 수많은 이들의 꿈과 기억, 그리고 사건의 조각들이 우리의 구원으로 들어올 것이다. 구원이란 언젠가 도래하리라 믿어지는 환상 속 메시아의 단 한번의 붓질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유토피아는 현실에 뿌리박지 않은 미래로부터 도래하는 환상이 아니라, 이 땅에서 투쟁하던(는)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속에 보존되어 있던 사건들이 어떤 시점과 계기에 재생되어 사후적으로 되살아나는 그것이다. 그 날은 분명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문제들을 갖고 이 땅에서 투쟁하던 각각의 인민들이 지니는 서사가 특별한 계기에 우발적으로 맞아 떨어진 그 날일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의 거리거리들에서는 사랑의 송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노라고 누군가는 기록하겠지.


에필로그


    Post Human, Post Religion 시대의 믿음이 무엇일까? 라는 물음에서 이 글은 시작되었다. 근대이후 전개되었던 ‘신의 죽음’, 2차 세계 대전 유대인 대학살의 현장에서 확인된 ‘신의 침묵’은 ‘신의 무능’서사로까지 번지면서 무신론은 공공연한 진리가 되어버렸고, ‘무신론자의 믿음’이라는 그럴듯한 테마를 낳았다. 이러한 문제들은 기존의 신관념에 대한 변화를 요청하였다. 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종교적 믿음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상상하게 한다.

    최종적으로 카푸토의 조언에 용기를 내어 최종적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아닐까 싶다. 무신론자의 믿음이란 대타자인 신의 음성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수동적 믿음일 수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그동안 우리를 지탱케했던 상징계의 법칙과 교리의 강제와 도그마의 환상을 버리게 한다.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복수적 타자들이 일으키는 변혁의 사건들을 지지하는 사랑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 자리란 모든 개별적 존재가 지니는 차이와 다양성을 자본이라는 등가의 원칙으로 서열화한 세상이고, 그 자리란 생명에 대한 존엄이 무너진 디스토피아 세상이다. 더 구체적으로 그곳은 성의 차이로 인한 혐오가, 계급의 차이로 인한 소외가, 종교의 차이로 인한 적대가 넘치는 그곳이고, 거기는 또한 새로운 인간種의 탄생으로 인한 파국 예상되는 이곳 지구다. 그 파국의 한가운데서 다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할 수 있다면, 그것의 이름은 무신론자의 믿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by 제3시대

공지사항

카테고리

웹진 <제3시대> (779)
특집 (8)
시평 (91)
목회 마당 (57)
신학 정보 (126)
사진에세이 (36)
비평의 눈 (62)
페미&퀴어 (19)
시선의 힘 (126)
소식 (150)
영화 읽기 (28)
신앙과 과학 (13)
팟캐스트 제삼시대 (12)
연구소의 책 (13)
새책 소개 (38)
Total : 315,302
Today : 34 Yesterday :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