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누구를 위한 가정인가?





김나미

(미국 Spelman College 교수, 종교학)




     5월에는 기념하고 챙겨야 할 날들이 많다. 근로자의 날로 시작하여,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석가탄신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로 이어진다. 이와 더불어, 입양의 날, 성년의 날, 세계인의 날, 발명의 날, 식품 안전의 날, 부부의 날, 세계인의 날, 가정위탁의 날, 생물종 보존의 날, 방재의 날, 실종 아동의 날, 바다의 날, 세계 금연의 날 등 참으로 다양한 날들이 여러가지 명목으로 기념되고 있다. 바다도 기념되고, 생물종들의 보존과 식품의 안전도 챙겨지는 5월은 무엇보다 ‘가정의 달’로 불린다.


    형식적이고 의무처럼 되어버린 선물과 꽃다발을 가족들에게 안겨주고, 고도로 발전된 소비문화에 참여하는 것으로 ‘가정의 달’을 맞이하는 동안 간과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가정의 달’에 가장 많이 듣는 설교주제가 ‘행복한 가정’이기도 한데, 누구의, 누구를 위한 가정이고, 왜 특정한 한 달을 정해서 굳이 가정의 ‘행복함’이나 ‘소중함’을 되새겨야 하는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가정’은 “한 가족이 생활하는 집,”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 공동체”를 의미하고, ‘가족’의 뜻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로 정의되고 있다. 증가하는 1인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 대안가족을 고려한다면 사전적 의미의 ‘가정’이나 ‘가족’에도 곧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행복’한 생활 공동체일 것이라는 기대나, 개개인에게 가장 안전한 삶의 울타리나 보호망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 또는 통념과는 달리 어떤 누군가에게는 가정이 그 어떤 ‘공동체’ 보다 위험하고 두려운 곳일 수 있다. 가정을 위험한 곳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인중 하나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위협이나 압력이 아닌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다. 한때 ‘아내 폭력’, ‘배우자 폭력’등으로 불리기도 했던 ‘가정폭력’의 형태는 다양하다. 배우자와 자녀들, 노부모들을 상대로 가해지는 신체적 폭력, 정신적 폭력, 언어 폭력, 성폭력, 경제적 강압이 있고, 반려동물에 대한 폭력과 가정의 기물파괴를 통해 공포심을 조장하는 폭력도 가정폭력의 한 형태이다.  


    가정폭력은 물론 가정내에서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수치로 볼때 여성 3명중 1명이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다.[각주:1] 전세계적으로 여성살해의 약 38% 정도가 파트너 (배우자, 동거자, 연인)에 의해 저질러 진다고 한다.[각주:2] 여성들과 어린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요인중 하나가 바로 가정폭력인 것이다. 여러가지 통계수치를 통해서 가정폭력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하지 가늠할 수는 있지만, 가정폭력의 특성상 그 심각성의 정도를 ‘수치’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신고 되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고, 신고가 된다고 해도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폭력의 정도와 피해 상황은 보도 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할 수가 있다. 


    미국에서 가정폭력 또는 배우자 폭력은 “여성에 대한 전쟁”이라고도 불리는데, 가정폭력예방과 해결을 위해 일하는 한 활동가가 말하는 예를 보면 왜 그런지 이해가 될것이다. 베트남 전쟁중에 사망한 미국 병사들의 숫자가 약 58,000 명이었는데, 같은 기간동안 미국에서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여성들의 숫자는 51,000명이었다고 한다.[각주:3] 가정폭력의 피해가 국가간에 치루는 ‘전쟁’에서 발생하는 인명피해 (‘아군’의 피해)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숫자는 가정폭력으로 인해 다양한 형태의 부상을 입은 피해자들은 포함하지 않고 있다. 


    어느 정도의 교육과 미디어를 통해서 그 심각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듣고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가정폭력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폭력으로 존재한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집으로 부터 도망친 뒤에 노숙자가 되는 경우, 가정폭력에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다가 집을 나간뒤에 소위 가출 청소년으로 낙인이 찍히는 경우, 피해자들의 자기방어가 가해자에 대한 폭력행사로 간주되어 오히려 법적인 처벌을 받는 경우 등등 가정폭력의 피해정도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순간에 피해자들이 받는 정신적, 육체적인 상처와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폭력의 후유증도 심각하게 삶을 위협한다. 모든 전쟁의 정신적 외상 (trauma)이 몇 세대에 걸쳐서 영향을 미치듯이, 가정폭력의 정신적 외상도 세대간에 걸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문제이다.  


    그런데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가정폭력이 꼭 신체적 폭력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신체적 폭력에 앞서서 배우자나 자녀들을 고유한 이름으로 부르는 대신에 욕이나 막말로 지칭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가족 개별인을 고유한 사람으로 보고 대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화 (objectifying)시키면서 마치 물건을 대하듯이 하는 것에서 폭력이 시작되는 것이다. 철학자 마틴 부버 (Martin Buber)는 “나와 너” (I-thou)의 관계가 “나와 그것” (I-it)의 관계로 변하는 때가 폭력이 일어나는 시점이라고 했다. 즉, “인간 관계성”이 지워지면서 상대를 “대상화” 할 때 그 사람에 대한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각주:4] 폭력의 상대를 “관계성”을 맺는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행사해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대상’으로 보기에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가정폭력이 ‘저질러’ 지는 것이 아니다. 가정폭력은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술에 취했거나,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누가 ‘맞을 짓’을 해서가 아니라 할 수 있기 때문에 행사하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배우자와 자녀, 또는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할 수 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나 요소가 있어서가 아니다. 폭력의 대상자가 나보다 약하고 내게 종속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폭력을 행사해도 결과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임을 알기에 가해자가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에 의하면, 현행 가족폭력처벌법에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의 핵심은 그 법의 목적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즉, 현행 목적조항에서는 가정의 보존이 피해자의 인권보다 우선시 된다는 것이다.[각주:5] 가정의 보존, 아주 그럴 듯 하다. 그런데 그렇게 보존된 가정은 누구의, 누구를 위한 가정인가? 폭력가정의 보존이 우선시 된다는 것은 결국 가해자를 우선시하겠다는 뜻이다. 가장 우선시 되어야할 피해자의 안전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가해자의 처벌도 어려워 진다. 가해자를 보호함으로써 ‘보존’되어진 ‘가정’이란 곳은 피해자들에는 계속해서 위험하고 두려운 곳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렇듯 현행법의 목적조항의 문제를 지적 하면서 가정폭력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목적조항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5월을 굳이 ‘가정의 달’로 기념하고 싶다면 ‘행복한 가정’이라는 빈 껍질 같은 말 대신에 많은 사람들, 특별히 여성들과 아이들이 가정폭력으로 인해서 얼마나 참담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에 대한 의식과 실질적인 해결방책을 생각해보고, 이와 병행해서 그 누군가를 폭행해도 된다는 생각, 즉 사람을 ‘대상’으로 여겨도 된다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전념하는 달이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 어디에도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 웹진 <제3시대>



  1. World Health Organization, “Violence against women: Intimate partner and sexual violence against women” (Updated January 2016). Available at http://www.who.int/mediacentre/factsheets/fs239/en/ (accessed March 25, 2016). 가정폭력의 피해자중에 당연히 남성들도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피해자들이 여성과 아동임음 감안하여 이 글에서는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가정폭력에 중점을 둔다. [본문으로]
  2. Ibid. [본문으로]
  3. http://psychcentral.com/lib/understanding-domestic-violence/ [본문으로]
  4. Pamela Cooper-White, The Cry of Tamar: Violence Against Women and the Church’s Response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2, Second Edition), 41. [본문으로]
  5. 한국여성의전화. http://hotline25.tistory.com/32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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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취지

_여성이 다양한 종류의 폭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비율은 전세계적으로 4분의 1이다. 즉, 40명의 교회여성이 있다면 적어도 10명 이상이 폭력의 경험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인데. 많은 경우, “우리” 교회에서는 그 일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본 연구는 기독교여성 중 가정폭력을 경험한 여성들과의 인터뷰와 그 해석을 통해, 1) 교회여성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폭력의 경험을 어떻게 신앙의 눈으로 해석하는지 2) 교회는 그간 어떤 식으로 그녀들을 위로해주고 혹은 상처를 주었는지 이에 대한 목회신학적 대안을 제공하는 것과 3) 교회안에서 가정폭력의 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목회자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가정폭력? 사회적으로 정말 만연하고 중요한 이슈이기는 하지만, 우리 교회에서는 일어나지 않아요?” 이제 “우리”교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해보려고 한다.


강사 소개

_이화여대 기독교학과 학부, 대학원 졸업 후 미국 시카고 게렛 신학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이고, 이화여대, 연세대, 한신대에서 상담관련과목들을 가르친다. 저서로는 제임스 폴링과의 공저,Korean Resources for Pastoral Theology:Dance of Han, Jeong and Salim with James Poling (PickWick Publications, 201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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