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열한번째[각주:1]


‘성(性)으로 성(聖)하라’

자기계발의 시대 웰빙적 신성가족 이데올로기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외설과 이단


    2009년 한국개신교계에는 이상한 논쟁이 벌어졌다. 《하나 되는 기쁨》이라는 책을 둘러싼 외설, 이단 논란이었다. 그리스도인 부부의 성(性)에 대한 ‘도발적’(?) 표현들이 많은 데다 그것을 통한 신앙의 성숙을 논하는 책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물론 그 당시의 사회적 상식에서 이 책이 외설 시비가 붙을 만한 내용은 전혀 아니었다. 시기상으로는 60여 년 전에 출간된 것이지만 내용에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도발적인 《킨제이보고서》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지도 10년이나 지났고, 영화 〈킨제이보고서〉의 한국 상영도 2005년에 있었다. 공교롭게도 《하나 되는 기쁨》이 출간된 그 해였다.

    저자가 자발적으로 책을 절판시켰으나 이 논란은 이듬해까지 계속되었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이단대책위원회가 끼어들어 ‘반기독교적 음란서적’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더욱 흥미로운 건, 이 책의 추천자로 한기총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이는 이 책을 비판하는 자들의 배후에 세간에 구원파로 알려진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유병언 씨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외설 논쟁이 이단논쟁으로 비화된 것이다.

   ‘그들만의 전쟁’을 밖에서 보면 논리도 뜬금없고 그 과장된 반응이 터무니없어 보인다. 하지만 많은 개신교 지도자들에게서 성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당혹스러운 문제인지를 이 사태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정 사역 현장과 '주권신자'


   한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한기총과 그 주변의 개신교도들과는 달리, 개신교의 다른 한 편에서는 《하나 되는 기쁨》 류의 책과 프로그램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성(性)을 적극적으로 드러내 이야기하고 그것을 성찰하는 것이 신앙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일단의 기독교 전문가들은 이러한 활동을 ‘가정 사적’의 주요 항목으로 간주하였다. 한국 최초의 가정 사역 전문가는 1976년 활동을 시작한 양은순 씨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정 사역 전문가와 단체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는 대략 2천 년대 초부터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이들의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대중이 폭넓게 등장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나는 이 대중의 정체를 ‘주권교인’과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 추정한다. 《하나 되는 기쁨》 논란에서 시사되듯 많은 교회와 목사들은 여전히 성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대다수 개신교 신자들이 교회로부터 성(性)에 대한 실제적인 신앙적, 신학적 안내를 받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한데 신자들의 수평이동 현상이 만연하게 되면서, 이들 떠돌이 신자들은 교회가 알려주지 않은 수많은 정보들과 해석들에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대선후보를 그이들의 정책과 이미지를 검토하면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주권적 시민들처럼, 그런 이해와 정보에 부합하는 교회를 선별 방문했다. 이런 과정에서 그들은 점점 ‘주권신자’가 되어갔고, 일부 진취적인 대형교회들은 주권신자화된 이들의 관심에 부합하는 프로그램들을 통해 수평신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성에 대해 철옹성 같던 교회의 경계 언저리를 떠돌던 ‘주권신자’들은, 과감한 성적 표현들을 이야기하면서 철학과 예술을 논하고 대중문화를 체험하는 사회문화적 분위기에 더 많이 노출되었다. 하여 그들은 신앙을 성과 적극적으로 연관시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의식에 직면했다. 바야흐로 기독교 가정 사역 전문가들이 주관하는 프로그램들이 크게 환영받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바로 2000년대 무렵이었다.


왜 그 때인가


    그때는 한국사회에서 가정의 위기가 심각하게 체감되기 시작한 때였다. 바로 외환위기 직후다. 당시 무수한 가장들이 일터에서 퇴출되었다. 다행히 살아남은 이들은 생존을 위해 더 불리한 노동 상황을 받아들였다. 집은 더 이상 쉼터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은 직장에서 못다 한 일과 터질 듯이 쌓인 스트레스를 품은 채 귀가했다. 전업주부인 많은 아내들은 결혼으로 단절된 경력 탓에 매우 열악한 조건의 노동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렇게 가열된 생존경쟁 상황은 학교까지 이어졌고, 자녀들은 거의 학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교육체계 속으로 휘말려 들었다. 

   중상위계층은 그나마 형편이 나았다. 아니 실은 이 시기에 사회양극화가 급박하게 심화되었고, 유리한 계층은 훨씬 더 유리해졌다. 그러나 그렇게만 이야기하는 건 너무 외면적 평가일 뿐이다. 그 상황을 더 유리한 기회로 맞은 이들도 마치 아슬아슬한 얼음판 위를 걷듯 불안했다. 자신이 잘못할 경우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무자비한 보복을 가했다. 또 개인의 잘못과 무관하게 재앙이 닥치는 일도 허다했다. 사회안전망은 애초부터 없었으니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자신과 가족의 안전망을 가설하기 위해 더 안달하며 일했다.

    이런 사회적 재앙의 시기에 가족이 한층 심각해진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겠다. 더욱이 그 시기는 민주화의 시대였다. 가족 구성원 모두 평등한 주권을 가진 존재라는 자의식이 한층 발전하고 있었다. 게다가 소비사회로의 변화가 초고속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까지 약자이기만 했던 아내와 자녀들은 가족 내의 권력투쟁에서 유리한 자원을 보유하게 되었다. 소비자로서의 트랜디한 감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 아내와 자녀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회적 주권의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가족 내에서 민주주의적 타협과 대화의 전통이 성숙하기 전에 가족 구성원들 각자는 주권의지가 급상승했다. 

   하여 2천 년대 가정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쟁투의 현장이었다. 아내의 반란은 드셌고, 심한 스트레스에 피로도가 치솟던 남편과 아내의 대화 능력은 퇴화했다. 부부싸움이 많아졌고 이혼율이 급증했다. 자녀들은 집에서 잦아진 엄마와 아빠의 전투를 본다. 집밖, 학교와 학원에서는 치열한 학업경쟁의 시스템이 태풍처럼 몰아닥쳐 몸이 광풍에 휘말려버렸다. 그 언저리에선 또래집단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문화가 그들을 휘감고 있다. 이것은 자녀들의 가출과 자살의 비율이 급증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가족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양분되었다. 사회적으로 보다 불리한 계층은 무너지는 가족을 관리할 여력조차 없었다. 거의 무방비로 가족 해체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보다 유리한 계층은 새로운 생존비용 항목을 추가해야 했다. 그것은 가정회복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경제적이고 심리적인 비용이다. 그리고 그런 중상위계층의 가정회복 프로그램이 가장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곳의 하나는 몇몇 대형교회였다. 가정사역 프로그램은 대형교회의 캐릭터화의 하나의 주요 항목이었다.  


대형교회적 성 관리 체계와 웰빙우파


    부부의 성을 다루는 가정 사역은 떠돌던 주권교인들이 정박지를 찾는 하나의 조건이 되었다. 몇몇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부부의 성에 관한 거의 상시적인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주로 성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그것을 신앙화하는 집단 프로그램이었다. 그 신앙화 담론의 골자는 성(性)을 잘 관리함으로써 성(聖)의 체험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性)의 관리를 신앙과 연계시키는 건 꽤 유효했다. 특히 많은 남편들은 성(性)의 관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것은 동시에 ‘새로운 가족주의’를 낳는 요인이 되었다. 청빈론에 의지해서 과시적 소비를 지양하고 검약한 소비를 실행에 옮기려는 삶의 태도와 함께, 성(性)을 부부 간의 것으로 환원시키려는 신앙운동이 교회에서의 보수적인 웰빙적 가족주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러한 성(性) 관리 프로그램은 부부만이 아니라 예비부부에게도 유효했다. 많은 교회들은 ‘결혼예비자학교’ 등과 같은 이름의 프로그램들을 무수히 만들었다. 성(性)이 부부간의 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이들인 만큼 여기서 성(性)과 성(聖)의 해석은 매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가정 사역의 목표는 보수적 가족주의의 재구축에 있었다. 실제로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에 관한 교회주의적 서사는 이러한 보수적 가족주의를 모델로 하고 있었기에 위기에 빠진 가족의 재건은 교회에게 너무나 중요한 과제였다. 이때 보수주의적이란, 성(性)을 부부간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것과 전통적인 이성애적이고 남성 우월적인 성 역할체계를 고수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한편 교회 청년들에게도 성(性)을 관리하는 문제는 중요했다. 특히 대형교회의 대학부와 청년부는 거대한 결혼시장의 기능을 하고 있었으니, 청년들은 성에 관한 교회적 규율체계를 민감하게 수용하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여성의 성적 규율장치 항목은 의복과 관련이 있다. 한때 기독교 의류 쇼핑몰에서 ‘사랑의교회 스타일’이라는 패션 항목이 있었다. 단정하고 수수하며 여성스러운 원/투피스 패션이 교회 여성들의 복장의 모범형으로 소비되었던 것이다. 반대로 짧은 치마나 깊게 파인 브라우스, 화려한 액세서리와 화장, 성별 이분체계에 반하는 보이시한 복장 등은 환영받지 못했다. 이때 여성의 복장이 의식하는 시선적 주체는 그녀 자신이 아니라 부모세대 교인들이다. 그들은 ‘잠재적 시부모’이기 때문이다. 이 복장이 그들 잠재적 시부모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남편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여자’라는 것이다. 한편 남자청년의 성을 규율하는 상징어는 ‘교회오빠’다.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유능한 남자라는 메시지가 그 어휘와 얽혀 있다.

    여기서도 성(性)을 통한 교회주의적 신앙 담론의 지향점은 가족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이성애주의적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녀, 전통적 가족이 위기에 처한 시대에도 이들의 보수주의적 조화를 통해 구현된 ‘신성가족’의 출현, 그것을 통한 위기 사회의 극복과 재구축, 그것이 교회 사역자들과 많은 ‘주권교인’들을 공조하게 하는 대형교회적 동맹의 가족 이데올로기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다섯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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