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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05 [시선의 힘] 겨자씨들의 모임 (송진순)

겨자씨들의 모임

송진순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박사과정)

From: Barbara Cloud

Next Mustard Seeds meeting will be 12/2‏
Our next Mustard Seeds meeting will be our Christmas pot luck at Louise and Pattie's on Friday, 12/2.
As usual, we plan to sing lots of Christmas carols.


   일주일 전 바바라에게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이번 “겨자씨들의 모임”은 12월의 첫 금요일, 루이스와 패티의 집에서 크리스마스 포트럭 디너로 열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단문의 메일 뒤로 백발의 볼품없이 마른 바바라가 책상에 구부정하니 앉아 동그랗고 커다란 안경을 주름진 손으로 치켜 올리며 컴퓨터 자판을 한 자, 한 자 두드렸을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원래 겨자씨들의 모임은 격주 토요일에 있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금요일에 열리나 봅니다. 곧 모임의 멤버들이 한 명씩 회신을 보내왔습니다.

   턱수염이 트레이드마크인 퉁퉁한 딕. 넉넉한 웃음만큼이나 후덕한 뱃살 때문에 빛바랜 셔츠 단추들은 늘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일흔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하얗고 고운 피부의 아니타,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왕년 그녀의 변호사 시절을 짐작하게 합니다. 하지만 아니타 모녀의 음식솜씨는 환상에 가까워 멤버들은 그의 집에서 모일 때면 빠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밴더빌트 대학의 직원인 린다와 전업주부인 에드 아저씨는 참 무뚝뚝한 부부입니다. 큰 아들의 간병 때문에 간호사였던 아저씨는 자연스레 가정 일을 돌보게 되셨는데 원예에도 일가견이 있으십니다. 가끔 밭에서 수확한 토마토, 아기 주먹만한 사과를 모임에 가져오시죠. 만년 소녀 같은 루이스 아줌마는 제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곤 합니다. 70년대 말 한국의 선교사로 계시면서 이화대학에서 잠시 영어를 가르치셨답니다. 이 모임을 제게 소개해준 분이시죠. 아줌마의 막역한 친구이자 동거인인 패티 아줌마는 만나면 무조건 와락 안아주십니다. 티셔츠에서는 알 수 없는 소스냄새가 풍겨나지만, 패티와 같이 있으면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푸근한 할머니거든요. 메일을 보낸 바바라는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는 남편 프레드와 함께 이 모임의 총무입니다. 대학교수였던 프레드는 어김없이 정갈한 양복차림으로 모임에 등장합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하비 아저씨는 심리학과 심신 수양에 관심이 많으신 장발의 이야기꾼입니다. 소시적 아니타와 연인이었다고 누군가 귀띔해주더군요. 시력이 거의 없는 프레드리카는 뒤늦게 아저씨에서 아줌마가 되셨는데 사람들에게 시를 읽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작년 봄 내쉬빌의 엣지힐 교회에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들입니다.

   엣지힐 교회는 오래 전 흑인 프로젝트 지역이 시작되는 곳에 세워졌습니다. 미국의 전형적인 교회와는 다르게, 또한 한국의 전형적인 교회와도 다르게, 인종, 직업, 나이, 성적취향, 장애여부에 상관없이 한데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원래 예배가 교회공동체 구성원들 ‘누구나’ 영과 진리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라면 그들의 예배는 예배의 본래 의미에 부응하는 것이겠지요. 매 주일 예배 참여자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설교 후에는 모두가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성찬을 나눕니다. 마지막 성찬의 잔과 빵을 거두는 사람은 항상 대여섯 살의 아이들입니다. “겨자씨들의 모임”은 엣지힐 교회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이 만든 모임입니다. 함께 저녁 식사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35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삶의 이야기는 다양합니다. 지적장애 아들이 길을 잃은 일, 산책길에 만난 사람, 이번 주에 읽은 책, 훈훈한 뉴스, 로컬 푸드 이용기, 교회 내 전기 절약, 에너지 문제, 의료 보험의 문제, 정부의 현재 이슈 등등... 하지만 펀드나 재테크, 자기 집값 상승률, 손자들의 대학 진학, 믿음과 직분의 문제는 일 년이 지나도록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순탄하거나 넉넉하기만 한 것은 아닌데도 말입니다. 은퇴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고, 이혼한 딸과 노모를 돌보느라 마음이 힘겹기도 하고, 병원 생활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더 많은 이들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이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고 환경과 평화의 문제를 놓고 같이 기도합니다. 늘 그렇게 해왔듯이...

   예수의 이야기에 재미가 들린, 그 오래전 갈릴리의 무지렁이들도 먹고 살만하여 예수를 좇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지배 아래 삼중의 세금고에, 흔들리는 성전가의 타락에, 불안하고 흉흉하기만 한 정세에 마음 놓을 곳 없는 그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앞에 두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길까? 무슨 비유로 이야기해볼까?” 예수는 툭하니 질문을 던지고는 흙먼지 이는 척박한 땅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래, 그것은 세상의 어떤 씨보다 작은 겨자씨와 같은데 심고 자라면 풀보다 커져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게 될 것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좁쌀만 한 겨자씨야 한 줌씩 움켜쥐었다 둘레둘레 땅에 뿌려놓으면 금세 자라 뭉게뭉게 퍼지는 풀인데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일 줄이야. 레바논의 백향목은 아니더라도 올리브나무나 포도나무는 되어야 본새도 열매도 하나님 나라와 좀 비길 만했을 터인데,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굳이 겨자씨랍니다. 하기야 겨자는 얼얼하니 콕 쏘는 맛이 입맛을 돋우고 독충에 물렸을 때나 진통 소염제로는 그만한 것이 없으니 이모저모 요긴한 식물이기는 합니다. 길 위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노란 겨자 꽃들이야말로 그들에게는 거친 땅과 어울리는 익숙한 풍경이었겠지요. 땅 위 한 중심에 커다랗게 터를 잡고 올곧게 오르는 무언가는 아니지만 겨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친근하고 풍성한 푸성귀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너무 멋들어지게 성장해버린 하나님 나라에 우리 무지렁이들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있을까요. 있다손 치더라도 지금처럼 마음 놓고 둘러앉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의견이 분분하다 이내 생각이 바뀝니다. ‘그래, 별 볼일 없는 우리들이 겨자씨들이고 우리들이 율법학자들보다 저 높으신 위정자들보다 더 나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이지. 저 예수의 말처럼.’ 얄궂은 예수의 비유에 적잖은 실망도 잠시. 좋아라 무릎을 탁 치며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땅을 밟고 사는 이들이야말로 감각적 경험의 세계에서 학자들보다 예민한 인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예수의 손에 잡히는 겨자씨 이야기를 충실히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예수가 전하는 하나님 나라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인종과 신분의 경계, 성전과 토라로 대변되는 거룩과 정결의 상징, 제국 앞에 선 민족의 위기가 무화되는 또 다른 세계였습니다. 작고 낮은 일상에서 누구나 누릴 수 있고 너무 흔해 지나칠 수도 있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일상으로 들어온 신성 그리고 신성을 지닌 우리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예수의 감각적인,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이야기들은 일상의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기 위한 마중물이었습니다. 예수로 인해 일상에서 세상을 뛰어넘는 환희를 경험한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어려운 사회적 현실을 외면하지는 않았습니다. 복잡다단한 삶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동경하고 그 나라의 삶을 지속시키고자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땅에서든 잘 자라 한데 어울려 요긴한 푸성귀가 될 겨자씨들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12월 내쉬빌에서는 ‘겨자씨들의 모임’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늘 그렇듯이(As usual) 저녁을 먹고 삶을 나누고 캐럴을 부르며 아기 예수의 오심을 축하할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 나누며 그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이어갈 것입니다. 겨자씨인 저도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고민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것입니다. 일단 마중물은 부어졌으니 새물을 올리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리고 공중의 새들도 깃들이려면 겨자풀들이 소보록하니 잘 자라야 그늘을 내어줄 수 있을 듯하니 부지런히, 늘 그러하듯 그 나라를 이루어 가고자합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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